나는 사람이고 싶다
초등학교 때, 나는 공부 잘하는 아이 하면 내 이름이 불릴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공부 뿐만 아니라 스피치, 토론 등에서도 유명했다. 나는 '노력하는' 학생였다. 언제나 나보다 뒤처졌던 남자아이는 '똑똑한' 학생이었다. 중학교 때, 나는 여전히 공부를 잘 했다. 전교 일등도 몇 번하고 반장도 도맡아서 했다. 나는 여전히 '노력하는' 학생이었다. 나보다 항상 뒤였던 남자 아이는 '똑똑한' 학생이었다. 내가 수학문제 하나를 틀리면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고 그 아이가 하나를 틀리면 똑똑한 아이의 실수였다. 내가 수학 점수가 안 나오면 "역시 수학은 남자가 잘해. 절대 못 따라잡아." 라는 말이 나왔다. 확실한건, 나는 노력하는 학생이 아니였다는 거다. 나는 머리가 좋은 사람이 맞았고 그 남자아이는 새벽까지 공부하는 노력파였다. 한 번은 '노력하는' 꼬리표가 싫어 선생님께 물어본 적이 있다. 왜 내가 노력한다고 생각하냐고, 왜 나보다 공부를 못하는 그 아이는 똑똑하다고 생각하냐고. 선생님은 "원래 남자애들이 머리가 좋아. 교과서 봐. 교수님도, 역대 대통령도, 과학자도 다 남자잖아." 라고 대답했다. 그 안에 지워진 여성들이 셀 수없이 많았다는 것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대답이었다. 나는 알고있었다. 그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 여자형제들의 꿈을 밟고 그 자리까지 갔으며, 얼마나 많은 여성들의 기회와 열망을 꺾었는지. 그리고 내가 그런 여성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고있었다. '똑똑한' 여성들은 왜 그 자체로 인정받지 못할까. 왜 남자들은 여성도 '똑똑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고등학생인 나는 여전히 '노력하는' 학생이다. 선생님들은 "이과를 가면 남자애들이 똑똑해서 점수를 못 딴다. 좋은 대학가서 기쓰고 졸업한 다음 대기업가도 승진 못 하니 그냥 편하게 문과가서 있다가 시집이나 잘 가라." 라는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한다. 그 말에 발끈한 나는 일주일동안 교무실 청소를 해야했다. 인권 교육시간엔 여자도 무엇이든 될 수 있다면서, 정작 그들을 가로막는 장벽이 얼마나 많은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내가 그 차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의사가 되고싶다는 내 말에 선생님은 "남자들은 전문직 종사하는 여자 안 좋아한다~" 라고 했다. 여자선생님이 남학생들한테 '김치년' 소리를 들어도 잔소리 하나 없다. 여자는 시집 잘 가는게 최고라는 얘기는 여전히 선생님들의 단골멘트다. 나는 학교에 있는 매 순간 울고싶다.
우리에겐_페미니스트_선생님이_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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