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인종차별, 성차별, 계급차별: 차별의 9층 석탑

2022.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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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미국과 유럽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발언과 혐오범죄가 도를 넘고 있다는 기사가 많이 나왔습니다. 오죽하면 2022년 5월에는 BTS가 백악관에 초청받는 상징적인 이벤트까지 열렸을까요?

(BBC.2022.05.27.)

아시아인에 대한 구미인의 혐오범죄는 한국에서도 꽤 화제가 되었습니다. 특히나 이런 범죄들은 아시아인 중에서도 여성이나 노인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유독 비열한 느낌을 줍니다. 교양 프로그램의 연예인 패널들이 아시안에 대한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글썽거리거나 탄식을 내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한편으로는 한국인들이 한국 안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 문제에는 얼마나 목소리를 내왔는가, 저기 눈물을 글썽거리고 한숨을 짓는 연예인 패널들이 한국 안에서 동남아시아인이나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에 대하여 저 정도의 목소리라도 내어본 적이 있는가, 이런 생각이 들어 텔레비전을 꺼버리고 싶은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한국은 외국에 관심이 있는가?

저는 이런저런 일로 다른 나라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만, 여러 나라 사람을 만나보면 유독 동북아시아 사람들이 다른 나라 소식에 어둡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특히 한국인과 일본인에게 이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일본 이야기는 차치하고, 한국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한국인이라서요.

한국은 일제 36년 식민지배를 받았지만 일본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좋든 싫든 미국의 영향을 받았으면서 미국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좋든 싫든 중국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중국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그 나라들의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경제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문화와 역사는 어떤지 정말 모른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수출 의존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한국, 속된 말로 남의 나라 돈으로 먹고 사는 나라인 한국이 그런 것 치고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른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미국, 일본, 중국에 대해서도 이러한데, 다른 나라는 더 말할 것도 없지요. 사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종차별국가 중 하나입니다. 베트남 휴양지에 놀러가면서도 베트남에서의 학살에는 눈을 감고, 타국에서 벌어지는 학살과 내전, 재해와 전쟁 앞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무슨 이득과 손해가 있을지만 계산하는 뉴스를 보곤 합니다. 

(Korean Harald. 2018.10.8. 예멘 난민 수용 반대 시위)

(아주경제.2013.07.07. 2013년 아시아나 항공기 착륙사고 당시 채널A의 뉴스 앵커는 사망자 2명이 중국인이라는 사실을 전하며 한국인이 아니라 중국인이 죽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블랙 페이스Black Face는 흑인 차별의 상징이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인들은 이게 왜 문제인지 모른다.)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에 온 이주민 10명 중 7명은 한국에 인종차별이 존재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웰페어뉴스.2020.03.19.) "남편 회사의 공장장이 한국 사람한테는 욕을 안 하는데, 남편한테만 'X새끼 왜 제대로 일 안 하냐'고 말해요." "동사무소에 가면 사람들이 '난민 왔냐'고 큰소리를 지르고 저를 보며 웃어서 기분이 나빴습니다." "길을 가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제 히잡을 벗겼어요." 국가인권위원회가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 의뢰해 진행한 조사에서 이주민들이 대답한 실제 피해 사례입니다. 이 조사에 따르면 한국에 오래 살면 살수록 인종차별을 체감하는 사람의 비율이 높다고 합니다. (연합뉴스.2020.08.19.)

앞서 말했듯이 간혹 동북아시아인들이 미국을 비롯한 백인들에게 혐오발언을 듣거나 혐오범죄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한국에서는 이 문제를 상당히 중요하고 심각하게 다룹니다. 하지만 동남아시아 인터넷 상에서 이런 한국의 모습을 비꼬는 유명한 짤이 하나 있습니다. 

많은 한국인들은 한류(韓流, 韩流, Korean wave)의 영향으로 한국 드라마나 한국 아이돌이 인기가 있다는 이야기만 듣고 있습니다만, 한류 덕분에 한국에 관심을 가졌던 외국인들이 한국인들의 SNS나 뉴스 댓글, 한국의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를 보고 반한/혐한 감정을 가지는 일이 적지 않다는 일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한류의 인기가 뜨거운 만큼, 한국 정치인이나 연예인의 발언은 물론, 뉴스 댓글과 인터넷 커뮤니티의 인종차별 발언도 빠른 속도로, 그것도 아주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퍼지고 있습니다. 인도나 동남아시아, 이슬람권, 그리고 중남부 아메리카에서는 한류에 관심을 가졌던 많은 청소년, 청년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의 인터넷을 접한 후, 한국의 실상을 알고 실망하고, 심하게는 한국을 혐오하는 현상도 꽤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걸 아는 한국인은 몇이나 될까요?

요즘 한국인들은 입버릇이 된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명사 앞에 K를 붙입니다. 특히 문화 콘텐츠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K-pop, K드라마, K영화 등등등. 저는 한류의 종말은 드라마나 노래의 질 때문이 아니라, 한국 안의 다양한 차별이 전세계에 알려지는 그 순간이 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국 안의 인종차별에 얼마나 관심이 있으십니까


또, 한국의 노동자 중 외국인 노동자의 비중은 3.8%이지만, 중대재해로 인한 사망 노동자 중 외국인 노동자의 비율은 11.2%에 달한다고 합니다. (연합뉴스.2022.01.21.) 사망하지 않은 부상자나 사망을 신고하지 않은 경우, 불법체류자의 산업재해는 더 많을 것입니다.

2020년 12월 20일에는 캄보디아 출신의 이주노동자 속헹 씨가 비닐하우스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습니다. 연평균 매출 10억을 기록하는 농가에서 저임금의 착취를 해가며 최소한의 위생과 사생활도 보장되지 않는 생활환경을 강요받다가 불과 30세의 나이에 사망하고 만 속헹 씨는 2022년이 되어서야 산업재해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경향신문.2022.05.02.)

<이주와 인권연구소>의 2018년 조사에 따르면, 제조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 중 40.3%는 작업장 부속건물에서 지내고 있으며, 15.9%는 임시 가건물에서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고 제도에 미숙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사업주들은 최소한의 생활 보장도 해주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매일노동뉴스.2021.03.29.) 지금은 2022년, 이 조사 이후로 4년여의 세월이 지났지만 얼마나 바뀌었을까를 생각하면 고개가 가로저어집니다.

우리는 미국과 유럽에서 벌어지는 혐오발언과 폭력에 대한 우려의 반의 반만큼이라도 우리 안의 차별과 폭력에 대해 우려와 관심을 보이고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지방의 교육청에서는 학교에서 가정통신문을 여러 언어로 배부할 수 있도록 다국어 가정통신문 양식을 만들 정도로 결혼이주여성이 많습니다만, 아직도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제도적 복지는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미흡하며, 인식은 더더욱 미개합니다.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가정폭력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들을 보면서 ‘가난한 나라’ 운운하는 습관도 아직 다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에 있는 결혼이주여성 10명 중 4명은 가정폭력을 경험하였는데, 가장 많은 것은 언어폭력이었고, 물리적, 성적, 정신적 학대도 심각하였습니다. (한국일보.2019.12.10.

인종차별은 한국안의 성차별, 계급차별과 만나 차별의 9층 석탑을 짓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존재하는 차별의 크로스오버 속에서 각자 일정 부분의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이 사회를 만들어온 것도 우리고, 만들어갈 것도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돈오점수(頓悟漸修)

훌륭하고 빈틈없는 제도를 갖추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이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제도를 운용하는 것도 인간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며, 우리 개개인이 사회 속에서 도덕적인 책무를 다해야 하는 것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저는 제도만 제대로 갖추어지만 모든 문제가 사라질 것이라고 하는 제도에 대한 맹신은 영웅주의나 종교적 믿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도의 정비와 인간의 도덕적 함양은 함께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최소한의 생활과 건강 조건조차 위협받는 상황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다양한 제도를 마련하고 기존 제도의 허점을 정비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고, 이것을 위해 우리 사회 모두가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우리는,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저 자신부터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이나 안 읽으시는 분들이나 할 것 없이, 우리 안에 차별의 정신이 있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불가의 말 중에 돈오점수(頓悟漸修)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고려의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 1158~1210)이 수행의 방침으로 제시하여 유명해진 말인데, 원래는 당나라 때 하택신회(荷澤神會, 670~762)가 한 말입니다. 우리의 깨달음은 순간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도, 우리에게는 몸이 기억하여 관성적으로 행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계속 수행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성철스님’이라고 부르는 퇴옹성철(退翁性徹, 1912~1993)은 이에 반대하여 돈오돈수(깨달음을 얻었으면 수행도 끝나야 한다)를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만, 이것은 엘리트의 사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끊임없이 재산으로, 학력으로, 학벌로, 장애 여부로, 출신지로, 거주지로, 성별로, 국적으로, 인종으로, 외모로, 옷차림으로, 자기도 모르는 차별의 마음을 가지고 상대를 대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끝없는 수행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스스로 자신의 마음과 인격이 건강해지기를 쉬지 않아야 합니다. 알았다고 해서 끝나는 것은 없습니다.

게다가, 같은 한국인 안에서도 여성과 노동자가 책임을 지고 있는 의무에 비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외국에서는 상당히 널리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성별, 학력, 재산, 출신지, 거주지, 외모, 장애, 연령, 성적 지향, 성 정체성, 종교 등의 이유로 같은 한국인끼리도 차별 발언을 하고 이것을 폄하하는 단어가 하나하나 존재한다는 것도 많은 외국인들이 놀라는 부분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나라들에 차별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렇게까지 다양한지, 특히나 ‘~충蟲’이라는 표현에 깜짝 놀라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영문판 위키피디아에는 “남한의 인종차별”과 “한국의 민족주의”라는 항목이 있기도 합니다.)


말로만 세계화라고 하지 마시고

물론, 한국인을 비록한 동북아인에 대한 백인들의 차별은 진실로 그들의 수치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Korean Times.2016.08.14. 리오 하계 올림픽 중계에 잡힌 눈을 찢는 제스쳐. )

(BBC.2017.07.24. 한국 댄스그룹 KARD의 등장에 브라질 진행자가 보인 눈을 찢는 제스쳐.)

(개인적으로 그다지 좋아하는 말은 아니지만) 세간의 입에서는 ‘우리는 어느 한쪽으로 보면 모두가 약자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자주 오르내립니다. 기왕 한류가 이렇게까지 크게 세계를 휩쓸고 있다면, 한국이 지난 수백년 동안 인종차별에 앞장서온 백인들에게, 세상의 차별 받는 이들과 연대하는 단결의 정신을 발휘하여, 차별 받는 사람으로서 보일 수 있는 모범을 보이는 것은 어떨까 바라봅니다. 우리 안에 둥지를 틀고 있는 인종차별과 성차별, 그리고 계급차별과 학력차별이 심각하게 겉으로 드러나는 현재의 상태에 대해서도 그와 마찬가지로 정의를 위한 목소리를 내보기를, 저는 바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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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민족'인 우리 나라가 만든 'k-한류'는 허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설령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제 생존하려면 더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일상에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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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사례로 보는 띵한 울림... 잘 읽었습니다. 마침 이 기사가 생각이 났어요. https://v.daum.net/v/20220814100024741?x_trkm=t 우리는 다른 나라를 알기 위해 노력하는가. 다른 나라가 우리나라에 얼마나 관심있는지만 중요하지, 그 나라 자체를 존중하고 알아보려는 움직임은 왜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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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의 한류에, '선진국' 등극에 '국뽕'에만 차 있을게 아니라, '혐오와 차별'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 배려하고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을 때 진정으로 선진국이라 여기며 자랑스러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항상 반성하고 또 성찰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