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욕망 앞에서: 스러져가는 문화재들을 위하여

2022.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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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자본주의 시대잖아요?

“지금은 자본주의 시대잖아요?”

자본주의 시대에 알맞는 선택이죠.”

우리는 일상에서도 자본주의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실제 사용되는 예를 가지고 자본주의가 무슨 의미인지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자본주의를 돈이면 다 되는 세상, 돈이 가장 중요한 세상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본도 그냥 많은 돈이라는 의미 정도로 사용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資本主義, Capitalism)는 말 그대로 자본이 중심인 사고방식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자본은 뭘까요? 자본은 그냥 돈을 뜻하는 말은 아닐 겁니다. 돈이란 어떤 물건의 가치를 알기 쉽게 표현해주는 수치이기도 하고, 물건을 교환을 하기 위한 중요한 도구이기도 하고, 물건을 언제든지 바꾸기 위해 저장해두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돈이 자본이 되기 위해서는 일단 그 양도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노동을 통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이 돈을 통해서 불어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게 돈과 자본의 차이고, 이를 한자 단어로 표현하자면 증식(增植)되는 돈이야말로 자본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자본주의란 돈의 증식을 위해 존재하는 사회 구성 방식, 돈의 증식을 위해 사회가 구성되어야 한다고 믿는 생각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노동을 통하지 않고, 돈이 저절로 불어나려면 우리는 무엇을 할까요? 주식 투자를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것이고, 부동산 매매를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만, 중요한 건 결국 사람들이 특정 물건을 실제 가치보다 더 높이 판단하면 돈이 돈을 버는 현상이 생겨납니다. 과거에는 물물교환이 중심이었겠지만, 대부분의 아시아-유럽의 국가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한 가지 물건을 기준으로 놓고 거래를 하였습니다. 조선 땅에서는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비교적 최근까지도 쌀이 그 기준이었지만, 거의 대부분의 나라들은 금, 은, 구리, 철 같은 금속이 거래의 기준으로 쓰였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화폐의 형태는 꽤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이죠.

금속으로 만든 화폐가 등장하면서 우리는 금속 화폐를 중심으로 세상을 판단하기 시작했고, 화폐가 곧 부(富)의 실체이고 가치인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우리는 가치와 가격을 마구 섞어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가격과 가치가 구분되지 않고 섞이기 시작하면서 자본이 등장했습니다. 자본이라는 것이 어느날 갑자기 ‘나는 자본이다’라고 말하고 등장한 것은 아니고, 자본이라는 말이 사용된 것은 꽤 최근의 일이지만, 인간들은 이미 기원년 전후가 되면 거의 모든 지역에서 자본을 형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 ‘신분이냐, 계급이냐, 계층이냐’의 차이는 있지만서도, 개인이 어떤 형태로든 자본을 소유하고, 노동 혹은 노동력의 대가를 화폐로 지불하는 체제 하에서, 자본의 증식을 가장 핵심적인 동기로 삼는 사고방식, 혹은 그러한 사회구조를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는 노동에 기생하는 형태를 띌 수 밖에 없습니다(착취라고 말하면 거품 물고 뒤집어지는 분들이 계실까봐 기생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자신은 노동을 하지 않으면서, 누군가가 노동 혹은 노동력을 주고 받은 화폐를 끌어모아야 하니까요.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의 욕망을 부추긴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본이 증식될 도리가 없거든요!


왕릉뷰 아파트와 DDP

(장릉. 사진출처 문화재청 궁릉유적본부)

이야기를 잠시 조선왕릉으로 돌려볼까 합니다. 서울, 경기 지역에 두루 분포되어 있는 조선 왕릉은 2009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조선왕릉 40기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단순히 왕의 무덤이라서가 아닙니다.  전문용어로는 천인상관(天人相關)이라고도 합니다만, 천지(天地) 질서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우주, 자연의 질서와 인간의 질서가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유교적 자연 이념에 기반하여, 무덤의 구조는 물론, 무덤의 위치까지 매우 세밀하게 구성해, 산과 강으로 대표되는 자연과 마을, 도시로 대표되는 인간 사회, 죽음과 조상, 뿌리라는 경건함과 태어나고 먹고 마시고 싸고 섹스하다가 죽는 세속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그 배치 방식은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사상의 표현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유네스코에서 조선 왕릉 40기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제할 때에는 그 완전성 진정성에도 매우 높은 점수를 주었습니다. 도시개발이 몇몇 유적의 경관에 영향을 미치기는 했지만 대체로는 엄격한 법률로 개발을 제한하고 있으며, 모든 유적이 본래의 기능과 경건함을 잘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완전성과 진정성을 평가받은 것입니다. 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문화재보호법> 등의 실정법으로 이러한 유산을 광범위하게 보호하고 있으며, 효율적으로 보존 계획을 세우고 관리하고 있다는 점, 일관성 있게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니고 있다는 점도 매우 큰 평가를 받았습니다. (유네스코-조선왕릉

그런데 이제는 이런 것도 자랑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경기도 김포시에 있는, 인조의 부친 원종(元宗. 추존왕으로, 정원대원군定遠大院君이라고도 함)과 인조의 모친 인헌왕후(仁獻王后)의 구씨(具氏) 능인 장릉(章陵) 앞에 아파트가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불법으로 지어진 것이라면 그것도 문제지만, 이것이 법에 합당하다고 하면 그것도 문제입니다. 한국 정부의 문화재 정책이나, 한국의 문화재 관련 법률, 혹은 문화재 담당 기관이 문화재를 지키기에 합당하지 않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파트 건축이 합법이건 불법이건, 아파트 시공으로 인해 세계적인 문화재가 훼손되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2020년 기준으로, 한국의 주택 보급률은 103.6%였습니다. 한국의 전체 가구수를 100으로 치면, 주택이 103채 있다는 뜻입니다. 한국의 주택 문제는 주택 보급의 불공정에 있는 것이지, 주택이 모자라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아파트에 목을 매는가 라고 질문한다면, 자본의 요술이라고 할 수밖에 없겠지요.


(사진출처 동대문 디지털 플라자 공식 홈페이지)

또, 동대문 디지털 플라자(DDP)라는 대표적인 사례도 하나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기억하시겠지만 DDP가 있던 자리에 원래는 동대문 운동장 있었습니다. 1925년 건설되어 한국 스포츠의 근현대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역사유적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2006년 서울특별시장으로 당선된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노후를 이유로 동대문 운동장을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DDP를 세우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시에도 한국 근현대 스포츠의 대표적인 유적이라 할 수 있는 동대문 운동장을 이렇게 헐어 버리는 것이 역사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겠냐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그런 말을 전부 무시하고 2007년 드디어 동대문운동장을 싹 밀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동대문운동장을 밀고 났더니 거기에서 조선시대 유적이 발견된 것입니다. 조선시대 최대의 군사 훈련 시설이었던 하도감과 민가, 수로, 가마 유적이 대규모로 발굴된 것입니다. 에초에 일제가 동대문 운동장을 지을 때에도 한양도성을 밀어버리고 지은 탓에 수많은 비판을 받았는데요, 동대문 운동장을 철거하면서 이 때 파묻어 버렸던 과거의 유적이 그대로 드러나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어떤 결단을 내렸을까요.  오세훈 서울시장은 자신의 치적을 반드시 남겨야 되겠다는 생각 하나를 가지고, 그곳에서 발견된 수많은 유적을 그대로 떠서 여기저기 나누어 다른 곳으로 옮겨 버렸습니다. 유적은 원래 자리에 보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시골에 있는 집을 헐어서 그걸 서울에 지으면 우리는 그것을 시골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이런 이치입니다.

1998년 경춘선 가평역을 지을 때의 일입니다. 역을 짓기 위해 땅을 파던 중 고조선시대의 유물과 유적이 우루루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래서 5년에 걸친 공사 끝에, 유물을 전시하는 전시관을 만들고, 고조선 시대의 움집과 움무덤터를 그대로 놔두어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보존 하였습니다. 또 2005년 부산광역시 4호선 수안역을 공사 할 때에는 임진왜란의 두번째 전투인 동래성 전투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동래성 유적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수원역을 공사할 때 동래읍성 전시관을 만들어 유물과 유적을 보존하였습니다. 

자신의 임기 내에 눈에 보이는 치적을 남기기 위해 DDP를 짓고야 말겠다는 일념 하나로 유적을 싹 밀어버린 오세훈 서울시장의 결단!


그건 실용이 아니라 욕심입니다

어떤 분들은 옛날 무덤, 옛날 집터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넌 지금 한복을 입고 한옥에서 사느냐고 되물으실 수도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이나 명동성당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다고 해서 제 삶에 큰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하철의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면 제 일상에는 큰 지장이 생깁니다. 당장 노트북이 고장나면 제 삶에는 큰 지장이 생깁니다.

실용이라는 것도 분명 중요한 것입니다. 인간은 실용 속에서 오히려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새로 만들어지는 열차 속에서, 평범한 빌라나 아파트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부정하고 싶지도 않고, 오히려 가끔은 존중하고 싶은 순간도 있습니다. 여자들의 노동력을 갈아 넣어 성대하고 아름답게 차린 전통 제사상보다, 모두가 함께 차린 단촐한 식사가 더 위대할 수 있습니다. 화려한 미사여구보다 진솔하고 담백한 한 마디가 더 많은 감동을 줄 수도 있습니다. 어느 시대의 양식을 따라 만든 드레스나 턱시도, 궁중의 예복을 입고 전통 예법에 따라 행동하는 모습도 아름답지만, 땀에 젖은 노동자의 모습이 도 아름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파트가 장릉을 가리며 건설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는지, 조선의 유적을 여기저기 옮겨놓고 지을만큼 DDP가 중요한 건물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프랑스나 영국의 박물관은 여기저기에서 훔쳐온 물건들로 가득합니다. 미국과 일본 여기저기에도 한국의 유물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이들은 이 장물들을 돌려주지 않겠겠다면서, 문화재를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곤 합니다. 낯짝이 두껍다는 말 밖에 할 수가 없겠지요. 

하지만 이제 한국의 유물은 돌려받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우리 문화재를 환수하겠다고 할 때, 외국에서 장릉 앞 아파트와 DDP를 거론하면서, 너희는 너희 문화재를 지킬 역량이 없는 나라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요? 오히려 장릉 앞 아파트와 DDP가 실용을 해치는 것은 아닐까요? 외국인들이, 혹은 후대의 사람들이 굳이 장릉 앞에 아파트를 건설해야만 하는 당위, 디자인 플라자를 유적지를 옮겨가면서까지 반드시 동대문에 짓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이었냐고 물으면 우리는 뭐라고 답을 해야할까요? ‘너희 대한민국은 부동산이라는 거대한 욕망, 자본주의 사회이므로 자본의 증식이라는 위대한 목표를 지켜야 한다면서 나머지는 깔아뭉개도 된다는 생각을 가진 국민들, 자기 치적을 남기기 위해서는 환경도 전통도 자기 일 아니라고 생각하는 정치인을 가진 나라가 아니냐’고 말한다면 우리는 뭐라고 대답을 해야할까요?

댓글

윤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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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는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또 반대로 고리타분하고 어렵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데 글을 읽으면서 중요한 것을 우리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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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런 문화재들이 보호받지 못하느 모습을 보면서 점점 사회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선이 넓어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사회나 정책은 변화무쌍한 것이므로, 척화비를 세우자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것도 무너진다고?’ 싶은 것들이 점점 많아진다고 느껴지는데요. 나중이 되면 어떤 논리로 어떤 것을 없앨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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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릉뷰(?) 아파트... 기사 보면서 충격이 컸습니다. 한국 자본주의를 개발자본주의, 건설자본주의라 부르기도 하더라구요. 개발에 따른 자본의 이익에 대한 욕망, 부동산을 통해 부를 늘리고자 하는 개개인들의 욕망이 한국 자본주의의 핵심 동력이 아닌가 싶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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