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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특별법 거부권 행사에 대해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끝내 윤석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기사 1 정부는 '참사의 진상 규명이 이미 이뤄졌고, 조사위원회 권한이 너무 크다. 따라서 특별법은 필요하지도 않고, 시행돼서도 안 된다'고 밝혔습니다.대신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과 보상을 확대하는 등 지원책을 내놓았습니다. 거부권 행사 이유:  1. 서울경찰청장을 포함해 관련자 23명을 재판에 넘기는 등, 특별법의 목적인 참사 진상 규명이 이미 이뤄졌다고 밝혔습니다. 2. 조사위원회의 권한이 너무 커서 국민 기본권과 사법·행정부 기능 등이 침해 3. 조사위 구성에 공정성을 기대하기 어려움  4. 국가 예산 낭비가 우려 국민의 힘은 입법 폭주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유가족들과 야당은 격렬하게 반발했습니다.  이에 대해 인터넷에서 반응이 나누어지고 있는 것이 목격되어 업로드하게 되었습니다.  특별법 거부권은 부당합니다. 1. 꼬리 자르기 식 처벌은 절대로 진상규명으로 볼 수 없습니다.  2. 유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이지, 보상금 및 돈이 아닙니다. 특히, 유가족들이 보상금을 받을 경우, 정부가 '돈으로 유가족들을 입막음'할 우려가 높습니다.  3. 외국 언론들도 정부의 책임을 조명했으며, 특히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는 외국인들도 사망했습니다. 특히, 이번 참사로 가장 많은 자국민을 잃은 이란 (5명)은 '한국 정부가 관리 방법을 알았다면, (핼러윈) 행사 관리를 했어야 했다'고 비판했습니다.  뉴스타파는 유일하게 이란 유가족들과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이란 유가족들은 한국 정부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비탄에 빠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4. 특별법을 반대한다면 처음부터 진상규명을 하는 태도와 자세를 보였어야합니다.  특별법 거부권은 정당합니다.  1. 국가유공자들과 군필들도 제대로 된 생계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유가족'이라고 지나친 특혜를 주는 것은 부당합니다.  2. 정부는 모든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신이 아닙니다.  저는 특별법 통과에 찬성하는 입장으로, 국가유공자, 군필 생계 문제는 이번 참사와는 별개라고 반박하고 싶습니다.  또한, 이미 국민의 힘이 현실적으로 특별법을 막는 이유는 입법 폭주가 이유가 아니라, '대통령과 관계자들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유가족들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죠.  관련 기사 시사IN의 기자는 특별권에 거부권을 행사할 이유가 없다고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1. ‘국론을 분열’시키고 ‘재난을 정쟁화’시켰던 것은 특별법이 아니다. 그 특별법에 반대했던 정부·여당 쪽이었다.' 2.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헌법에 반하거나 현저히 불합리하여 공익에 반한다는 근거가 전혀 없다. 대통령 거부권은 법안이 자신의 국정철학에 맞지 않는다고 자의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아니다.' 3. '국민의 생명권과 안전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한 사건에 대해 국가가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광범위한 책임을 규명하고 진상규명을 하고자 하는 것은 헌법상 국가의 책무에 비춰 너무나 당연하다. 법률안을 거부하여 진상규명을 지연시키고 방해하는 것, 참사로부터 교훈을 얻어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함에도 그 교훈을 역행하는 것이야말로 정부의 책임을 면하고자 재난을 정쟁화하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행위다. 그럼에도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해 함부로 거부권 행사를 주장하고 있다.'  추가 관련 기사 이언주 전 국민의힘 의원은 2022년, 국민의 힘 측에서 실언이 계속 나오자, '기본적으로 인간적인 도리의 문제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게 국민들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구나 이런 생각이 든다', '정치의 세태인데 지나치게 극렬지지층한테 어필을 하면서 그렇게 어필을 해야 살아남는 구조'라며 국민의 힘이 유족들에 대한 배려보다 지지층에 대한 정치적 메시지를 더 신경쓴다고 우려했습니다.  또한, 이언주 전 국민의힘 의원이 기사 마지막에서 한 말은 끝까지 국민의 힘이 버티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밀리면 끝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유가족들하고의 어떤 관계도 일종의 권력투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굉장히 방어적이고 피해의식이 있는 것 같은 느낌."  특별법 거부권은 정당합니다.  1. 국가유공자들과 군필들도 제대로 된 생계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유가족'이라고 지나친 특혜를 주는 것은 부당합니다.  2. 정부는 모든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신이 아닙니다.  여기서 특별법에 저는 모두가 찬성한다고 생각하기에, 여러분은 인터넷에서 나오는 반대 의견 및 '유가족들이 떼를 쓴다', '목소리만 크면 다 되는 줄 아냐'라는 의견에 어떻게 반박하시겠습니까?
10.29 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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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참사특별법’에 마저 거부권 행사할 것인가?
바늘구멍 통과하듯.. 국회 문턱 넘은 특별법 지난 1월 9일, 국회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되었습니다. 국민의 힘 의원들은 퇴장한 채 야당 의원들만 남아 표결한 결과로 말이죠. 국민의 힘 의원들은 밖에서 규탄대회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대통령실은 이에 대해 여야 합의 없이 야당만 참여한 국회에 ‘유감’이라는 입장을 냈고요.  🗣 임오경 민주당 원내대변인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넘은 지금에서야 특별법안이 통과된 데 대해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국민 여러분께 송구한 말씀을 드린다.” 🗣 국민의힘은 윤재옥 원내대표 “대한민국의 안전이 아니라 정쟁과 갈등을 선택한 것” 참사 1년 3개월 만에…쪼그라든 ‘이태원 특별법’ 통과 거부권, 특별법 앞길 막을 것인가 수정된 특별법은 국회에서 정부로 이송, 대통령이 공포하면 오는 4월 10일부터 그 효력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법안이 정부로 이송되기 하루 전인 1월 18일, 국민의 힘은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건의했습니다.  국민의힘, '이태원참사 특별법' 거부권 건의‥야당엔 '재협상' 요구 여당이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다는 소식은 1년 넘게 마음 졸이던 유가족들에게 절대 위로는 되지 못했을 겁니다. 유가족들은 머리칼을 내려놓으며 온몸으로 규탄했습니다. 600여 곳의 시민단체는 기자회견을 열고 특별법 특별법 공포를 촉구했습니다. 야당은 여당의 거부권 건의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의견을 내며 소란스럽습니다. 과연 유가족의 숙원이자, 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한 이 법안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까요?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국정을 책임져야 할 정부, 여당이 오히려 거부에 힘을 쏟고 있다. 대체 거부 말고 정부가 한 게 뭔가" 🗣 박정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이태원 참사 진상 밝히고 책임 묻는 게 왜 총선용 정쟁인가", "국민의힘은 더는 국민 눈물이, 분노가 되지 말고 특별법의 즉시 공포를 건의해야 한다." 野 `이태원 특별법 거부권 행사 건의 결정한 與, 비정한 정당` 재난의 정쟁화? 재난은 재난이다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의 죽음을 맞이하는 일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요. “다녀올게”라고 말하고 나간 가족의 시신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뛰는 동안 마음은 이미 여러 번 부서졌을지 모릅니다. 여러 번 압사 사고가 우려된다는 신고에도 불구하고 경찰력은 동원되지 않았고, 하룻밤 사이 159명의 사람이 서울 한복판 길 위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누군가는 “놀러 가서 죽은 것이니 국가 책임이 아니”라고 하지만, 놀러 가서 죽었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놀러 갔다가 죽을 수도 있는 나라가 안전한 나라일까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안전한 나라’입니다. 다리가 끊어지고, 백화점이 무너지고, 배가 가라앉는 참사를 목격하면서 이제는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항상 안전에 대비하지 않으면 참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말입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진상규명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어디에서 물이 새는지 알아야 누수를 고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윤재옥 국민의 힘 원내대표는 이태원참사특별법이 재난을 정쟁화한다고 했지만, 재난은 재난입니다. 뭐든 정쟁의 구실로 삼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해서 만큼은 정부와 국회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랍니다. 이번 특별법 시행이 반복되는 사회적 참사를 끊어낼 기회가 될 수 있을 겁니다.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10문 10답 기자간담회>  ❓여러분은 이 이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댓글로 의견을 적어주세요!
10.29 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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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기억] 어떤 일이 있었더라도, 잘 지내고 있다고
안방에서 뉴스를 보던 엄마가 알려줬다. “이태원에서 사고 났대” 작년 10월 29일 밤, 나는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보는 그저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엄마로부터 사고 소식을 듣고 무슨 일인가 싶어 뉴스를 찾아보았다. 아마 처음 접한 피해자의 수는 한 자릿수였던 것 같다. 사람이 정말 많이 모였구나 하고는 뉴스를 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뉴스를 다시 틀었을 때 피해자의 수는 두 자릿수로 바뀌어 있었다. 경악스럽다기보다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제야 실시간 뉴스를 보기 시작했다. 전혀 상상되지 않았다. 실내도 아닌 도로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게. 괜한 걱정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자 주변 지인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무사한지 확인했다. 다음날 아침, 사망자 수만 세 자리였다. 1년이 지난 지금. 이태원에서의 일을 나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너무 큰 충격이었던 탓인 걸까, 사실 작년 10월 29일을 잘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미디어를 통해 접한 이태원에서의 일은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잘 와닿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지치고 무기력한 감정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서일 수도 있다. 약 10년 전에 있었던 세월호 참사의 기괴함을 슬픔과 분노로 마음 어딘가에 두고 있다면 이태원 참사는 기괴함만 남아있다. 그 기괴함이 나는 아직 얼떨떨하다. 기괴함과 얼떨떨함 사이 어딘가에서 보라색 리본은 어색하기까지 하다. 나에게 1년 전 이태원 참사는 기괴하고 얼떨떨하며 어색한 지금이다. 나와 같은 사람이 적지 않을 거다. 세월호 참사 이후 일종의 집단적 트라우마로 인한 문제 회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안전한 사회를 위해 많은 이들이 노력하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노력 속에서 다시 나타나는 ‘참사’는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의식하지 못하는 절망감 아닐까. 대체 우리는 이 절망감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우선, 우리는 마주할 용기가 필요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1년 전 이태원 참사를 회피하지 않고 마주할 용기가 필요하다. 기괴한 일을 마주할 용기, 얼떨떨함에서 벗어날 용기, 어색해하지 않을 용기 모두. 그리고 얼떨떨함으로만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닌 슬픔과 분노의 과정을 거쳐, 떠난 이들을 진심으로 애도하고 안전한 사회가 되길 바라는 이들과 함께이길 바란다. 나는 이 용기를 가지겠다는 다짐부터 시작해야 된다. 1주기 전날, 참사로 친구를 떠나보낸 지인이 유가족으로부터 문자를 받았다고 알려줬다. "잘 지내시나요?" 잘 지내냐고 묻는 말. 내가 가늠할 수 없는 1년이 담긴 안부였다. 어떤 안부는 정말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나에게 그런 안부가 온다면 잘 지낸다고 답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안부를 물었을 때도 잘 지낸다고 했으면 좋겠다. 어떤 일이 있었더라도, 잘 지내고 있다고. 
10.29 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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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기억] 삭제된 공간의 기억- 왜 우리는 다시 묻고 있는가
사람들이 모이다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였다. IT 강국답게 소셜 네트워크로 이태원에 모여서 할로윈을 즐기는 것은 한국 전체를 들뜨게 했다. 다중(多衆)이 주는 광장의 에너지를 우린 무려 3년이나 누리지 못했었다. 코로나19가 준 공포, 환자가 죄인처럼 취급되는 두려움 속에서 밖으로 한 발짝 나가기가 어려웠다. 개인정보를 다 포기하면서까지 국가가 국민 안전을 위해 일해 주기를, 동시에 우리 자신이 스스로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그 속에서 손님이 현저히 줄어든 상점들이 하나 둘 문을 닫았고, 사람들은 출근 대신 재택근무로 방에서 화상회의를 했다. 2022년 후반 정부 규제가 차차 풀리기 시작했다. 백신을 서너 차례 맞았고, 한 번쯤은 코로나에 걸려 일주일 자가격리되는 경험도 생겨났다. 신종코로나에 의해 사망할 거란 공포를 인간의 지적 연구가 정복했다는 자신감과 함께, 코로나19가 감기 정도로 가벼운 병이 되었다. 암흑기가 끝나가는 시점. 전환점이 될 날이 바로 10월 29일, 30일 할로윈데이였다. 할로윈은 일반적인 날이면서 일반적인 날이 아니었다. 본래 켈트족에 연원을 둔 할로윈은 아시아권에서는 미국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알려진 명절이었다. 40대 이상의 사람들은 할로윈에 특별한 관심을 갖지 않았다. 젊은 층은 달랐다. 유치원 때부터 코스튬 분장을 했고, 영어조기교육으로 할로윈을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할로윈은 10월 31일 산 자와 죽은 자의 세계의 문이 열리는 날, 유령이나 귀신이 찾아오는 날이었다. 좋은 유령도 있지만 악령도 있기에 유령처럼 분장을 하고 뒤섞여 악령은 쫓아낸다는 의미가 있다. 한국에서 그날은 기성세대가 터치하지 않는 젊은 층만이 즐기는 코스프레 축제의 의미였다. 광장으로 모일 찬스. 이태원의 서구적 분위기, 자유롭게 코스프레를 해도 자유롭게 술을 마셔도 같이 즐기는 축제의 느낌. 좁은 경사로에서의 질식 그러나 모든 것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29일 토요일에서 30일 일요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해밀튼 호텔 옆 좁은 골목길, 올라가려는 이와 내려오려는 이의 장난스런 대결이 몸대결로 번졌다. 1번 출구로 빠져나와 이태원 세계음식거리로 가려던 사람과,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고 1번 출구 쪽으로 내려오던 사람들. 순식간에 몇백 명의 인파가 몰린 5.5평 공간, 앞 사람 얼굴이나 뒤통수도 확인하기 어렵게 비좁은 틈에 끼어 있었다. 누구도 통제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경사로를 따라 축제는 광란으로 변했고, 환호는 비명으로, 이태원 사거리는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교차로가 되었다. 질식이, 깔린 사람들의 장기 파손이, 복부 팽창과 기절이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150여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경찰들은 늦었고, 예상하지 못했고, 뒤늦게 문제의 심각성을 알았다. 외부로 나가는 목구멍에 걸린 사람들. 심정지 상태를 언론과 소셜 네트워크가 가감 없이 열어젖혔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는 이 일을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2014년 일어난 세월호 침몰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코로나19로부터 국가가 국민을 보호한다는 자긍심에서, 축제에 통제 인력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참담함으로 이어졌고, 사람들은 쉬쉬했다. 어떤 이는 그저 압사 사고라 했고, 어떤 이는 참사라고 했고, 어떤 이는 젊은이들이 “놀다가 죽었다”며 씁쓸해 했고, 어떤 이는 나와는 무관한 먼 세계의 일처럼 받아들였다. 어떤 이는 이것이 정치적으로 이용될까 저어했다. 이태원 도로를 중심으로 해서 해밀턴 호텔 쪽 가게들은 모두 문을 닫고 죽음의 냄새를 맡고 있었고, 그 건너편은 일상이 일어나는 한가하고 북적한 삶의 냄새를 끓이며 죽음의 냄새를 가까스로 닦아내고 있었다.   국가 애도 삭제 기간 정부는 서둘러 합동 분향소를 만들고, 국가 애도 기간을 정했다. 그 기간이 폭력적이란 생각은 못했다. 다만 세월호 사건에서 비롯된 것인지, 서둘러 사람들은 그 시간을 마무리 지으려고 했다. 적어도 괴로움을 축소 시키고 싶어했다. 정부는 이태원에서 죽은 젊은이들의 시체를 옮기고 거리를 삭제했다. 일반 사람들은 소셜 네트워크에 올린 그 날의 사진과 동영상들을 삭제했다.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고통스러움 탓이었다. 누르고 누른 감정들을 쏟아낼 길이 없는 사람들이 이태원역 1번 출구로 모여들었다. 이 좁은 공간에서 정말 150여명이나 사망에 이를 수 있을까. 그 사람들이 다 들어차기도 빠듯한 공간에. 심각한 얼굴의 사람들과 카메라를 높이 쳐든 기자들. 아직 장식이 채 지워지지 않은 할로윈 호박들. 상점에서는 청소하는 사람이 보이기도 했다. 우리도 각자 재빠르게 청소하기 시작했다. 유가족들의 고통을 방관으로 닦아내려 했고, 사망자인 피해자들은 단지 빗나간 청춘들처럼 긁어내려 했다. 가장 큰 청소는 침묵이었다. 고통스러운 일이라서, 젊은 층들만의 일이라서, 도대체 이해가 안 가서, 침묵했다. 정부가 알아서 하겠지 싶어서, 유가족들이 알아서 하겠지 싶어서, 침묵했다. 누구도 이 일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태원에 대한 언어가 사라지면서 기억도 금세 사라지는 듯 보였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치미를 떼는 사회.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까 이태원 참사는 그 좁은 골목에서 아직 이렇다 할 반응도 대응도 없이, 연기처럼 소실되었다. ‘이태원’ ‘할로윈’은 금기가 된 듯하다. 다만 언어가 삭제된 것으로, 그 공간이 삭제되고, 그 사건이 삭제되었다. 결국 기억이 삭제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어디서부터 이 이야기를 다시 다루어야 할까. 누구와 이야기할 수 있을까. 죽은 이들은 자신의 영정 사진을 올리는 것조차 저어하고, 그곳에 있었던 것조차 숨기려 하고, 옆에서 죽어간 친구 때문에 자살자도 생겨나는데, 우리는 유령들의 행진이므로 아무것도 볼 수 없다는 듯 입을 다물고 있다. 왜 이태원을 다시 끄집어내야 하는가. 왜 그들은 이태원에 모일 수밖에 없었는가. 우리는 왜 이태원을 모른 척하고 있는가. 아직 마음 아픈 곡소리가 들려오는데도. 삭제된 공간은 재생되기 어려운 기억일까, 생각해 본다. 1주년이 된 참사, 왜 아직도 물을 수가 없나 이제 10.29 참사로 명명된 이 사건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지나간 기억의 편린으로 흩어지길 기대하는 것 같다. 하지만 언젠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도 잊은 듯하다. 우리는 이것이 자연재해도 우연히 일어난 사고도 아니라는 걸 이제 안다. 더 많은 경찰인력을 동원했어야 하는 그때, 단지 마약이 아니라 질서 통제를 위해 힘쓰고, 신고가 들어왔을 때 단순한 불평으로 듣지 않았어야 하는 그때,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세월호, 코로나19로 우리에겐 국가의 의미를 재정의하게 되었다. 국가는 단지 경제공동체만이 아니라 자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질 줄 아는 공동체여야 했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한국은 선진국보다 더 나은 안전 체제와 의료체제를 갖춘 나라로 평가되었고, 국민들은 기꺼이 개인정보를 희생하면서 국가의 지시에 따랐다. 한국은 선진국이라는 의식도 차차 갖게 되었다. 그런데 그 자부심이 10.29 참사로 산산이 무너져 내렸다.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라는 질문조차 미궁의 구덩이 속에 질식사시켜버렸다. 국가는 이 문제가 마치 없는 문제처럼, 국가와는 관계가 없는 것처럼,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자연재해처럼 치부해버렸다. 우리가 10.29 참사를 다시 복기하는 이유 자, 그럼 다시 이런 문제가 발생할 때 우리는 또다시 책임자도 매뉴얼도 없는 사회에 노출되어야 하는가. 세월호보다 더 통제가 가능했던 10.29 참사조차 그 피해자의 잘못 정도로 지나쳐가는 국가에서 우리가 안전을 바라는 것은 어폐가 아닌가. 진상규명은 단지 책임자 논책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건 더 나은 사회를 바라는, 유사한 일이 일어났을 때 두 번 다시 동일한 문제에 빠지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그런데 책임자도 그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제 3의, 제 4의 참사에 우리가 무방비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우리는 다시 묻고 있다. “국가는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나?” 이는 달리 묻자면, “국가는 과연 어떻게 했어야 했나”, 의 질문이고, “유사한 사태에 대한 대책을 지금 당장 세우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10.29 참사를 다시 복기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진상규명이야말로 이 참사의 피해자를 위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10.29 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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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기억] 이태원을 가지 않는 게 해결 방법은 아닐 겁니다.
잊고 살았던 이태원 참사일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달력을 보니 작년 10월 29일은 토요일이었더라고요. 주변인들 사이에 알아주는 집순이인 저는 그날도 집에서 조용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른 저녁잠을 한숨 자고 늦은 밤 느지막이 깨어 핸드폰을 켜보니, 속보 기사가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압사. 사람들이 서로에게 깔려 죽는 일이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졌다는 걸 처음에는 믿기 힘들었습니다. 어릴 적 위기 탈출 넘버원에서나 봤던 경우가 실제로 일어나다니. 너무 당황스러운 내용에 현실 감각이 없어졌다가, 회사 메신저 방에서 다들 괜찮은지 묻는 국장님의 메시지와 혹시나 하는 걱정에 연락한 친구들의 카톡, 그리고 실제 이태원에 있었던 지인들의 실시간 스토리 공유를 동시에 겪고 나서야 실제 상황이라는 감각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끔찍했던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고 암묵적으로 ‘이태원’이라는 공간은 놀러 가기 껄끄러운 곳이 되었습니다. 그해 12월, 친구의 전시를 축하하러 오랜만에 들른 이태원은 이전과는 다른 조용하고 허전한 분위기로 변해있었습니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난 2023년 10월 29일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누구도 할로윈을 기념해 즐겼다는 내용의 소식을 올리지 않았어요. 그저 지나가는 주말인 것처럼 소소한 본인들의 일상을 공유할 뿐, 그 어디서도 ‘할로윈’과 ‘이태원’의 흔적은 없었습니다. 영화 속 캐릭터 분장이나 파티룸을 예약해 친구들과 만난다는 내용조차도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마치 할로윈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하더라도, 끔찍한 참사가 연상되는 장소와 이벤트를 굳이 다시 입 밖에 꺼낼 필요는 없으니까요. 이번에는 조용하게 할로윈을 보내는 것이 예의고 미덕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지만요, 그것이 곧 해결법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작년의 사고는 사실, 다른 어떤 곳에서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요. 당장 오늘 출퇴근 길만 생각해도 지하철 인파에 양팔만 겨우 들어갈 정도의 틈으로 수십 분을 버텼으니 말입니다. 이태원 참사는 이태원에서만 벌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할로윈 데이를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이태원을 가지 않는 것이 해결 방법은 아닐 겁니다.    오히려 그 일을 계속 이야기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잊지 않았다는 것을 계속해서 말하는 것. 그리고 지금도 아슬아슬한 상황이 어딘가에서는 계속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알리는 것. 안타깝지만 세상엔 이태원 참사만큼이나 끔찍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고, 야속하게도 계속해서 말하지 않으면 금방 다른 것들에 밀려나기 쉬우니까요. 세상에서도, 우리 기억에
10.29 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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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기억] 참사로 탄생한 이름
제목 : [함께 기억] 참사로 탄생한 이름 그 날은 수요일이었다. 대학생이던 나는 대학교 강당에서 점심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강단에선 교수가 설교를 하고 있었다. 설교는 12시 30분에 끝났다. 다음 수업이 1시 15분인 터라, 내 점심시간은 45분 밖에 되지 않았다. 설교가 끝나면 제일 먼저 강당을 나가 점심을 먹고, 도서관 소파에 누워서 어제 못 잔 잠을 자려고 했다. 설교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눈을 감았고, 교수가 한 말에 눈을 떴다. “지금, 진도 앞바다에서 배가 침몰해 학생들이 갇혀 있다고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핸드폰을 잘 확인하지 않는 나는 그제서야 핸드폰을 꺼내 뉴스를 확인했다. 진도 앞 바다에서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기사였다. 다행히 안에 있던 학생들은 모두 구조됐다는 소식이 올라와 있었다. 다행이다 생각하고 핸드폰을 덮었다. 불과 몇 시간 뒤, 앞선 전원 구조 소식이 오보라는 기사를 접했다. 수 백명의 학생들이 배 안에 갇혀 있으며, 구조가 시급하다는 기사가 연신 올라왔다. 구조하고 있다는 기사는 보이지 않았다. 가까스로 빠져나왔다는 기사만 있었다. 몇 시간이 지나고, 하루가 지나도 구조하고 있다는 소식은 나오지 않았다. 상식이란 ‘정상적인 일반인이 가지고 있거나 가지고 있어야 하는 지식’을 말한다. 가장 먼저 도망친 세월호 선장, 수 백 명의 죽음을 오보하는 언론, 7시간 만에 등장하는 대통령,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던데, 라는 말. 내게 이 모든 게 상식 밖의 일이었다. 선원들을 우선 해야 되는 게 선장 아닌가? 언론은 도대체 뭘 보고 기사를 쓰길래 수 백 명의 목숨을 구조했다는 오보를 냈을까? 대통령은 세월호 침몰 보고를 받지 않았나? 보고가 되지 않은 건가?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는 발언이 아니라, 어떻게든 구해라 라는 말이 나와야 되는 거 아닌가? 이런 상황에 대비하고 대응하라고 정부가 있고, 부처가 있고, 시스템이 있는 거 아닌가? 이 모든 상황에서 떠오른 한 가지 생각은 “세상이 이상하다"였다. 그 순간 언론에서 비추는 모습이 과연 진짜일까 의심이 들었고, 나는 내 눈으로 직접 그 상황을 봐야겠다 싶었다. 다음 주가 중간고사였지만, 아랑 곳 않고 진도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한량없다' 라는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자식 잃은, 아니 정확히 당시에는 아직 자식이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부모들을 보면서 뼈에 새겨지게 느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당시 아무 말도 할 수 없던 이유는, 유족들의 모습을 담을 적절한 단어가 뭔지 알 수 없어서였고, 비통해 하는 그 분들의 모습을 어줍잖은 단어로 품을 수도, 그 마음을 모두 헤아리고 이해할 수도 없어서 였다. 당장 서울로 올라가면 가족이 있고, 침대가 있는 방에 누울 수 있는 내가 무슨 말과 마음으로 그들의 비통함을 표현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 비통함에 압도되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난 여전히 그 분들의 모습과 마음을 품을 수 있는 단어를 알지 못한다. 물 흐르는 소리, 새 지저귀는 소리, 바람 부는 소리까지. 세상 만물의 소리를 담을 수 있고, 가장 과학적인 언어가 ‘훈민정음' 한글이다. 훈민정음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의미로, 억울한 것이 있으면 직접 한글로 써서 임금인 자신에게 항소하고, 억울함을 호소하라는 세종대왕의 마음이 담겨있다. 그 어떤 억울함도 표현하고 품을 수 있는 한글이지만, 한 가지 없는 단어가 있다. 바로 ‘자식 잃은 부모'다. 부모 잃은 자식을 일컬어 ‘고아孤兒’라고 하고, 남편 잃은 아내를 ‘과부寡婦’, 아내 잃은 남편을 ‘환부鰥夫’라고 한다. 하지만 자식 잃은 부모를 칭하는 단어는 없다. 부모가 자식을 잃은 것은 세상을 잃은 것이고, 자기 자신을 잃은 것과 같다. 자신 보다 귀한 자식을 잃은 사람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 그 비통함은 감히 말할 수 없다. 그 어떤 억울함도 호소하면 들어준다고 말한 세종대왕이지만,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만은 도저히 들어줄 수 없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애초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고, 그 단어를 만들지 않은 게 아닐까. 연극 <먼데서 오는 여자>에 이런 대사가 있다고 한다. “추모하고 애도하고 기억하는 게 아니라, 추모하고 애도하고 기억하게 해달라고 싸우다가 10년이 흘렀습니다." 세월호 침몰이 있은 후, 유족들을 표현할 단어가 없는 것처럼 그들의 억울함을 들어주는 정부는 없었다. 못 들어준 것이 아니라 안 들어줬다. 오히려 그 슬픔이 사회를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는 듯이 외면했다. 유족들은 계속해서 진상 규명을 외쳤고, 함께 기억하자고, 기억해 달라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사회를 만들자고 싸웠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억울함은 풀리지 않고 있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를 또다시 마주했다. 이번에도 정부의 시스템은 발휘되지 않았고, 책임 없다는 말과, 참사가 아닌 사고이며, 경찰 더 투입됐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정부를 보고 있다. 2014년 4월 16일의 부모님들처럼, 2022년 10월 29일의 부모님과 형제, 자매, 남매. 친구들과 예비 신랑과 예비 신부들은 또다시는 ‘한량없는' 슬픔에 잠겨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나는 참사가 있는 곳에 가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 앞에서 아무말도 할 수 없을 지언정,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직접 마주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문제를 해결하는 기본은 문제가 무엇인지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참사를 보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혼자라도 참사 현장에 가서 현장을 본다. 그리고 ‘나’라는 작은 사람에게라도 그 ‘햔량없는' 고통이 분담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량'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참사로 탄생한 이름이다. ‘나’라는 사람의 한계와 그릇은 명확하지만, 이 작은 한계와 그릇으로 고통과 억울함이 나눠질 수 있다면, 또 그 사람들이 모이고 모이면 유족들의 고통도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참사를 통해 있어선 안 될 이름들이 생겨났다. 세월호 아이들, 세월호 세대, 세월호 유족, 이태원 참사 유족, 이태원 참사 피해자 등이다.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외에도 국내에는 크고 작은 참사들이 발생했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와 조금 잊혀진 성수대교 붕괴 참사와 삼풍 백화점 참사 등이 있다. 참사를 통해, 세상에 있지 말았어야 할 이 이름들이 생겨났다. 우리가 그 이름을 잊어버리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그 이름을 잊는 날은 참사의 원인이 된 시스템의 부재와 정비, 책임자들의 사과가 있을 때가 그들의 이름이 잊힐 수 있을 때가 될 것 같다. 그때까지는 우리에게 그 참사가 있었다는 걸 모두가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때까지 내가 갈 수 있다면, 참사의 현장을 언제고 마주하고 싶다. 글을 쓰고 있는 10월 29일, 사고 현장인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골목과 추모식이 있다는 서울광장을 다녀왔다. 불과 30초면 다 걸을 수 있는 그 골목에서 수백명이 압사했다는 게 다시금 믿기지 않았고, 수 많은 사람이 모인 광장에 책임자들이 나오지 않은 게 더더욱 믿기지 않았다. 세월호 이후 8년의 세월이 흘러도 변한게 없어 보이고 오히려 퇴보한 듯한 상황이 안타까웠다. 나는 여전히 유족들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조차 어렵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인故人’을 추모하고, 글을 쓰는 것 뿐이라는 점이 부끄럽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그 분들의 고통과 억울함, 비참함이 줄어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나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유족들의 이야기를 책임자가 듣지 않는다면, 시민들이 유족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책임을 물어주면 된다고 믿는다. 부디,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유족들의 억울함이 조속히 풀어졌으면 좋겠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써, 간절히 바란다. 참사로 희생된 분들과 그 유족분들의 안녕을 기원한다.
10.29 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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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기억] 사회적 참사를 다루는 우리의 무게감
최근에 동료 활동가로부터,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간담회에 참여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진행자였던 중년의 활동가가 참여자들에게, 윤석열 대통령, 이상민 행안부장관 등 보기를 몇 개 던지며 제일 잘못한 사람이 누구인지 선택해서 손을 들어달라고 했다. 책임져야할 사람이 책임지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누가 제일 문제였는지를 분명히하는 작업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선 질문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래서 대통령이 제일 문제가 많다고 선택되면 대통령을 탄핵하면 되고, 장관이 제일 문제였다고 뽑히면 장관을 탄핵하면 되는 것인지, 사회적 참사를 온전히 잘 다뤄보고자 모인 자리에 썩 맞는 질문은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폭우로 인해 반지하주택과 지하차도에서 수많은 사람이 세상을 떠나며 재난, 특히 기후위기에 얼마나 우리 사회가 취약한지가 드러났다. 신림역과 서현역에의 묻지마 칼부림 소식, 관악구의 등산로 성폭행 살인 뉴스의 충격이 잊혀지지 않는다. 국가 정책과 보증 아래 대출을 받고 입주한 전세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해서 연이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정치와 행정 시스템의 붕괴 속에 이태원 거리에서 끔찍한 참사가 벌어졌다. 이 모든 일들이 1년 남짓 사이에 벌이진 일이다. 연거푸 이어지는 비극 속에 우리의 머릿속에는, 국가도 사회도 나를 보호하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채워지고 만다. 각자도생의 생존방법만을 고민하고 만다. 이태원 참사를 이태원 참사만 떼어내서 생각하지 않게 된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시스템의 무력함을 실감하며, 희생자 및 피해자의 규모가 크든 작든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반지하에 거주하든, 전세집을 계약하든, 비가 오는 날 운전을 하든, 축제 때 거리를 걸어다니든, 누구도 특별할 것 없고 잘못도 잘 한 것도 없고, 죽어야할 이유도 전혀 없었다. 하루 빨리 특별법의 통과와 함께 진상규명이 적절히 이뤄져서 책임자가 응당 잘못한 지점을 처벌받기를 바라면서, 동시에 사회적 참사를 개별적으로 뜯어내 장관 한 명 탄핵하며 끝내지 말고, 우리 사회가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생명과 안전의 사안 중 하나로 계속 다뤄나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사회적 참사는 사회적 참사로 기억하며 무겁게 다루고, 이태원은 우리에게 그간 그랬던 것처럼 신나게 노는 공간으로 두고 싶다. 작년 10월 29일 이태원에서 놀까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지하철 타기 번거로워서 을지로에서 멈춰 살 수 있었던 나를 떠올리며.
10.29 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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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기억] 이 사고를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요
재작년 할로윈 때 이태원에 있었습니다.작년까지 사고 현장을 오고 가며 출퇴근을 했었고혹시 사고의 현장에 전 직장 동료들이나 아는 사람이 있었을 까봐 조마조마하며 연락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쩌면 사고의 당사자가 우연히 출퇴근을 하는 제가 되었거나저의 가까운 지인들이 되었을 수도 있었겠지요. 할로윈은 젊은 세대 축제의 상징이죠.할로윈 하면 이태원이 수식어로 따라올 만큼유명한 장소이기도 하고요. 사고가 난 이래로는할로윈은 왜 하필 그 좁은 이태원에서 모이는 걸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제가 작년 사고에 무엇을 했나 일기장과 sns를 뒤져보았어요. 압사 사고가 난 날은 집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고다음날 주일 아침 중고등부 선생님을 통해 카톡으로 뉴스를 공유받았어요.교회에서 확인하면서 이게 실화인가? 만우절 거짓말 같은 줄 알았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설마 하던 일이 진짜 라는 걸 인식하게 되었어요. 압사라는 단어도 저에겐 생소하고이런 사고에 대한 경험이 없었으니까이게 일어날 수 있는 사고인가 멍해졌어요. 마음이 많이 무겁습니다.압사를 당한 고인과 부상자들에게 송구스럽지만저는 이 이슈가 나올 때여러 부분을 비관의 눈초리로 보았습니다. 이 압사사고가 과연 세월호처럼 삼풍백화점의 붕괴처럼 성수대교의 붕괴처럼 바라봐야할 사고인가한동안 생각했습니다.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저는 학부모들과 대화를 나누며추모의 물결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언론매체에 언제까지 화두가 될 것인가 라는 의견을 나누었어요. 조심스럽게 쓰는 이 글은무조건적인 비난 이후 저를 되돌아보고자그리고 이 사고를 어떻게 인식해야할까1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사건을 다양한 시각으로 보고 싶었습니다. 역시 다양한 분들의 의견을 통해저도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이 사건을 통해 정리한 지금까지의 생각은사고를 통해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경찰과 공무원 등 관련 조직 내부 일처리 과정의 폐해,미흡한 안전교육 시스템 입니다. 안타깝지만 사회적 참사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참사는 이미 벌어진 일이고 돌이킬 수 없습니다.하지만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며하나 하나 개선해 나가며 사고가 재발되지 않기를, 후대에 물려주지 않기를 바랍니다. 미흡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0.29 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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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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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참사가 아니란 말인가
그토록 참혹한 날들 속에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구호 앞에 서면 왠지 마음이 복잡해진다. 하나의 소리가 크게 들릴 때 그 밖의 작은 소리는 소거되기 쉬우므로. 물론 그날의 일이 왜 발생했는지 아는 것은 몹시 중요하다. 그러니까, 왜 대비도 대응도 못했는지 밝혀야 똑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누군가 의무를 내던진 이유를 추궁할 때 그 책임에 무게가 실리기 마련이고, 죽음의 과정을 이해하는 건 망자를 그리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게 참사를 해결하는 전부일까. 말 그대로 ‘참혹한 일’이 ‘참사’의 정의라면, 나에게는 그날 이후 펼쳐진 모든 날들이 참혹했다. 때문에 두 가지 구호로만 소화하기에 참사는 훨씬 거대한 것이다. 다시 그날로 돌아가 보자. 저녁 식사를 마칠 무렵, 단톡방 알림이 울렸다. “얘들아 이태원 뭐냐...” 항상 업무가 바빴던 친구가 핼러윈을 즐기는 줄 착각하고, 나는 ‘ㅋ’을 연발하며 답장을 보냈다. 하지만 금세 그 행간이 다르게 읽혀 SNS에 접속하니, 충격적인 장면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도무지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지 싶어 오밤중 휴대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다 쫓기듯 잠을 청했는데, 다시 일어날 때쯤에는 사상자 숫자가 급격히 불어나 있었다. 그 아득한 현실에 얼이 빠졌지만, 한편으로는 주변의 반응에 더욱 기진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래서 핼러윈을 싫어하는 거야.” “너는 저런 데 안 다녀서 다행이다.” 일상은 속절없이 흐른다. 먼저, 그날 귀가하지 못한 사람들이 어른거렸다. 그 다음에는 현장에 머물렀던 사람들이, 혹은 나처럼 멀리서 소식을 접했을 사람들이. 가슴팍에서 많은 게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다들 아무렇지 않은 듯 조용한 모습들이 못내 기이하게 다가왔다. 과연 그 침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말이 필요 없는 사회도, 말하지 못하는 사회도 끔찍하기 매한가지인데. 국가애도기간을 거치는 동안에는 숱한 행사와 공연이 중단되었다. 그런가 하면, 온라인에서는 “놀러 가서 죽은 것”이라며 참사의 사회적 해결을 부정하는 목소리가 만연했다. 그리고 그 사이, 159번째 희생자 이재현씨가 친구들을 따라 세상을 떠났다. 참사로서 편견과 혐오의 문제 그날 이태원에서 핼러윈을 즐긴 사람들에 대한 혐오는 여전하다. 누군가의 고통은 그렇게 가중된다는 점에서 참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이때, 그 혐오는 핼러윈과 이태원을 향한 편견에서 기인한다. 핼러윈을 모르는 사람에게 핼러윈은 ‘외국 귀신 놀이’에 불과하다. 이태원을 모르는 사람에게 이태원은 ‘미군기지가 위치한 위험한 지역’, ‘젊은 애들 노는 문란한 지역’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팬데믹을 통과하면서 크게 강화된 시선 역시 작용한다. 언론에서는 코로나 확산 진원지로 이태원의 성소수자를 선정적으로 지목한 바 있고, 사람들은 밀집 경험을 민폐로서 감각하는 데 익숙하다. “그러게, 거길 왜 갔냐” 같은 비난은 그런 토양에서 자란다. “우리를 기억해주세요.” 1차 추모제의 제목은 그랬다. 그러고 보면, 분향소를 방문해 희생자의 얼굴을 만날 수 있다. 또한 기사를 통해 유가족의 사연을 새길 수도,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서명에 동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의미는 거기서 그치는 걸까. 나는 저마다 기억하는 전부를 증언해야 한다고 여긴다. 언젠가 참여했던 집담회에서 그런 고백을 들은 적 있다. “저에게 이태원은 마치 외국 어딘가처럼 와닿지 않는 측면이 있어요.” 용산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그날의 현장은 직관적이었지만, 사실 누군가에게는 상상조차 어렵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 그렇다면, 핼러윈과 이태원이 베일에 싸이지 않도록 기억의 파편을 잘 모아야 한다. 나아가 앞으로 어떤 기억을 만들지 스스로 선택할 수도 있다. 그날 이후 나는 일부러 이태원에 자주 들른다. 다가오는 핼러윈에도 놀러갈 작정이다. 더는 들을 수 없는 증언을 미지로 남기는 대신 그에 근접한 기억을 새로 쌓기 위해서. 그렇게나마 그날 이태원에서 핼러윈을 즐긴 사람들과 연결된 기억 속에 묶이고 싶다. 그런데 일주기를 앞두고, 곳곳에서 핼러윈 지우기에 여념이 없다. 놀이공원은 핼러윈을 벌써 다른 테마로 대체했고, 유통업계는 핼러윈을 건너뛰고 크리스마스를 준비 중이다. 심지어 마포구는 ‘핼러윈 금지’ 현수막까지 내걸었다. “우리를 기억해주세요.” 그 외침이 무색하게, 일각에서는 기억에 대해 아주 완강히 거부한다.  ‘죄책감’과 ‘답답함’을 넘어 나는 지난 5월부터 <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 기록단을 운영하고 있다. 처음 활동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세운 취지는 명확하다. 무엇보다 이태원을 애정하는 사람들에게 과연 이태원은 어떤 의미인지, 그날 이후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기억해 왔는지, 앞으로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듣고 싶었다. 본격적인 인터뷰 진행에 앞서 7명의 기록단을 모집했다. 특징적인 건 대부분 동네 버스 정류장에 붙은 포스터를 확인하고 신청했다는 것. 녹사평, 이태원, 해방촌 일대를 지나고 있었고, 이미 그 근처에서 거주하거나 노동하고 있었다. 주로 이태원에 관한 개인적인 인연을 간직했을 뿐 관련 활동 경험도 거의 없었다. 종사하는 분야도 천차만별이다. 그렇게 모인 마음들을 통해 참사에 관한 커다란 갈증을 실감했다. 특히 두 가지 감정이 도드라졌다. 먼저, 살아남은 사람은 죄책감에 시달린다. 매년 붐비던 골목을 알던 사람은 그 위험을 인지하고도 예방하지 않은 자신을 탓한다. 바로 옆에서 누군가 죽어가는 줄도 모른 채 축제를 즐기던 사람은 그날 무심히 웃고 떠들던 자신을 탓한다. 현장을 목격한 뒤 겨우 자리를 벗어난 사람은 구조에 망설이던 자신을 탓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런 죄책감을 적절히 해소할 기회를 주지 않고 있다. 개인은 그토록 고통스러운 감정을 덜어내지 못한 채 심화되거나 끝내 그 원인이 되는 참사를 외면하고 만다. 공동체 회복에 기여할 방법이 없으므로. 한편, 답답함도 가득하다. 그날 각자가 잃어버린 세계란 희생자들의 총합을 한참 넘어선다. 하지만 그 상실이 낳은 공포와 슬픔, 혼란, 분노 등을 나눌만한 장이 현재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고 보면, 기록단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서로를 발견하는 것만으로 치유 받기도 했다. ‘혼자가 아니었구나.’ 다들 좀처럼 말을 꺼내기 힘든 여건에 놓여 있다. 그 기이한 침묵 속에서 개인의 상처만 곪는다. 모든 게 조심스러워 입을 열기를 주저하게 되고, 그 어떤 표현도 와닿지 않은 탓에 고립에 처한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불충분한 구호에 다양한 마음을 우겨넣는 사회,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타인의 이야기를 함부로 재단하는 사회가 벽처럼 서 있다. 그날 우리가 잃어버린 세계 기록단은 9명의 인터뷰이를 만나 증언처럼 이야기를 들었다. 가령, 이태원의 핼러윈은 온 가족이 기다리는 온 동네 축제다. 핼러윈이면 집집마다 사탕 바구니가 걸린다. 지역 주민인 부부 민희씨와 원기씨는 매년 아이들 손을 잡고 이태원 일대를 구경하는 재미에 빠진다. 무엇보다 삼대 째 이태원에 거주하는 원기씨의 경우, 그날 이후 행여 유년의 추억이 사라질까 염려가 가득하다. 그 다음, 상인 범조씨는 매출이 돌아오더라도 가게를 정리할 참이다. 코로나에 이어 연달아 침체된 상권 속에서 생계의 불안정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태원을 찾는 사람들이 한때 자신이 경험했던 즐거움을 계속 누릴 수 있길 바라는 그의 마음도 위태롭다. 일찍이 이태원을 선망했던 샤인씨는 어쩐지 악착같다. 마치 당위처럼 “괜찮아야 했다”라고 강조한다. 퀴어 아티스트로서, 이곳이 아니면 더는 물러날 곳이 없다고 위기의식을 느낀다. 샤인씨는 자유와 환대의 광장 이태원을 아끼는데, 동시에 그런 자유와 환대가 가능하기까지 필요했던 배움 역시 강조한다. 상대가 나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대하는 만큼 나도 상대를 그렇게 대해야 하는 것이다. 이태원을 즐겨 찾던 승연씨 또한 비슷한 이야기를 전한다. 낯을 많이 가리는 승연씨는 이태원을 통해 변해 가는 자신을 보았다. 특히 난생처음 핼러윈 코스튬을 시도하며 한결 자유로워진 자신을. 그날 우리가 잃어버린 세계의 일부가 이렇다. 한편, 클럽 DJ들은 그날 이후 고민에 빠졌다. 예정된 파티를 진행하기로 결정하면서, 대신 추모의 뜻을 담아 ‘이태원 스트롱’이라는 슬로건을 떠올렸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노래로, 춤을 추는 사람은 춤으로, 디제잉을 하는 사람은 디제잉으로 그날을 기억할 수 있다고. 그러고 보면, 우리 사회가 그날을 기억하는 방식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일상과 애도는 분리되어 있고, 그만큼 사람들은 자칫 피로감에 빠진다. H씨는 아프리카 장례를 예시로, 보영씨는 애니메이션 <코코>를 예시로, 솔아씨는 퀴어퍼레이드를 예시로, 산 자와 죽은 자가 경계를 허물고 함께 어울리는 풍경을 상상했다. 나는 참사란 걸 그렇게도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참사가 아니란 말인가 그러니까, 묻고 싶다. 이것은 참사가 아니란 말인가. 다뤄지는 참사의 범위가 너무 좁게 느껴진다. 그날 이후 나의 친구들은 저마다 다른 청년들의 죽음을 떠올리기도 했다. 신당역에서 살해된 여성, 구의역에서 사망한 노동자, 연쇄적으로 사라진 성소수자 지인들, 그리고 언젠가 생의 끝자락에 서 있던 자신까지. 어쩌면 두서없고, 논리적이지 못하고, 횡설수설한 이야기다. 하지만 사람들은 꼭 그렇게 그날 이후를 살아간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아니, 듣지 않고자 하는 힘이 사회를 짓누르고 있다. 침묵, 편견과 혐오, 죄책감과 답답함, 상실, 일상과 애도 등 전부 참사의 영향권 아래 있다. 해결 역시 그만큼 거대해야 하지 않을까.
10.29 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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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기억] 우리의 이야기임을 인정해야 할 때
캠페인즈 미디어를 통해 직접 캠페이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요! “설마, 다 구조될거야” 아직도 또렷이 기억난다. 10년 전 4월 16일 친구들과 점심을 먹으러 간 학교 앞 식당에서 진도 앞바다에서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자마자 내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설마, 타박상 입은 사람이 몇십명이겠지” 작년 10월 29일 친구들과 단풍놀이를 다녀오는 길에 늦은 뉴스를 보고 든 생각이었다. 설마라는 말은 ‘그럴리는 없겠지만, 부정적인 추측을 강조할 때’ 사용한다. 상식적이라면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건들을 접해서였을까 ‘설마’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그리고 나는 그 시간에 즐거웠어서 죄스러웠다. 그해 12월에는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는 행사를 기획했다. 이태원 참사와 사회적참사를 기억하고 곱씹고 싶어하는 동료 시민들을 초대했다. 한 사람이 개인이 다치더라도 원인과 치료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데 사람이 죽고 다쳤다. 그것도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일상적으로 살다가. 사회적 참사는 우리 모두가 당사자이기 때문에 더욱이 함께 이야기를 나눠야겠다 싶었다.  그 다음해인 올해 2월, 참사 100일 시민추모대회에 봉사자로 참여했다. 대회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특별법 서명을 받고, 시민들이 안전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안내 했다. 이태원에서 옮겨오는 유가족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기다렸는데,시청 앞에서 경찰과 충돌했고 대치했다. 대회 이후엔 이태원에서 옮겨온 분향소를 지켰는데, 이 날 경찰의 집회 해산 명령을 처음 들었다. 이곳을 지키는 유가족과 시민들은 이런 억압과 곧 이어질 조롱을 매 순간 들어야된다는 것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몸으로라도 괴로움을 때우듯 내가 한번이라도 더 가면 이들에게 위로가 되지 않을지, 특별한 날 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이 참사를 기억하는 시민이 있다는 것이 티가나지 않을지 일말의 기대를 품고 그렇게 이태원과 서울광장을 오갔다. 사순절 마지막 주간, 다시 분향소를 지켰다. 고난 받은 예수가 지금 이 땅에 계신다면 아마 이 자리에서 고난 받는 이들과 함께하지 않을까 싶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사람들은 아무도 오지 않던 날. 여기서 뭘 하고 있나 싶다가도, 일찍 잃어버린 자식과 비슷한 나이의 청년을 보며 춥지 않냐고, 기억해줘서 고맙다고 손잡아주시던 유가족들과 함께 자리를 지켰다. 설마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날까? 5년 후 나는 또 다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해 길거리에 나돌아다니지 않아도 될까? 우리는 이 뼈아프고 도저히 지울 수 없는 기억을 바탕으로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가야한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숨겨야만 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사회적인 아픔이자, 함께 극복해 나가야 하는 것임을 인정해야한다. 매 참사마다 반복되는 유가족에 대한 혐오와 2차 가해, 이정도면 해결된거 아니냐는 짜증 섞인 물음, 이슈를 세력화하고 구분짓기만 하는 정치에서 벗어나야한다.  참사가 발생했을 때 먼저 생각났던 ‘설마’는 안전한 사회에 대한 바람이었을 것이다.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지 않아야한다는 당연함의 바람이고, 이를 책임질 사람이 있기를 바라는 당연함이었다.
10.29 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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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악플, 그리고 국가
‘핼러윈데이’가 다가오고 있다. 여느 때 같으면 코스튬을 입은 시민들, 이태원 거리의 파티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2022년 10월 29일 이후, 한국의 ‘핼러윈데이’는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 아픈 상처가 되었다.  올해 10월 29일이면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다. 서울 한복판의 골목에서 ‘압사’로 158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참사로 친구를 잃고 스스로 삶을 마감한 마지막 희생자까지 159명의 시민은 생명을 잃고, 목숨을 건진 수 백여 명의 시민은 ‘생존자’가 되었다. 한순간에 가족을 잃은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여전히 책임자 처벌과 진상 규명을 위해 거리에 서있다. 진상 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하지 않는 정부를 대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이런 상황 속에서 참사를 둘러싼 왜곡과 2차 가해, 혐오와 맞서는 이들이 있다. 참사 피해자에게 부정적 프레임을 씌우는 언론, 이들을 조롱하고 힐난하는 악플, ‘혐오해도’ 된다고 신호를 보내는 정치인. 참사를 마주한 사회가 보여주는 모습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청년참여연대는 지난 10월 23일,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에 대한 악플, 2차 가해를 저지른 인물, 언론을 대상으로 대응하는 유가족 A씨와 비대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개인이 감당하기엔 힘든 과정이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대응을 시작했다고 밝힌  A씨. 그의 이야기를 통해 이태원 참사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쏟아진 2차 가해 이야기를 드러내고자 한다.   “2차 가해하고도 죄책감 안 느껴… 처벌 선례 만들고 싶었다” 10.29 이태원 참사가 곧 1주기를 맞는다. A씨는 요즘 어떻게 지내나.  “다니던 회사를 휴직하고 정신과 치료받으면서 가족들과 지낸다. (이태원 참사 관련) 활동이 있을 때 가끔 나간다.”  –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관련하여 유튜브, 언론 기사의 댓글, 정치인들이 막말을 쏟아냈다. 피해자분들과 유가족분들의 입장에서 무척 고통이 클 거 같다. 이와 관련하여 언론, 악플에 대응 중인데, 현재 어떤 상황인가? “초반에 상황이 정리되지 않았을 때, 비교적 젊은 형재·자매들이 언론 대응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공식 메일 주소를 만들어서 언론사 연락을 받고, 인터뷰할 사람을 섭외하기도 했다. 일반 시민분들도 연락을 주셨는데, 2차 가해 기사나 악플 댓글도 제보해 주셨다. (초반에는) 일반인들 상대로 대응을 하기에는 악플이나 2차 가해 댓글 양이 많기도 하고, 다른 일들이 더 많았어서 취합 위주로 했다.  그러다 희생자분들 사연이 소개되면서, 신상이 공개된 몇몇 희생자분들이 있었다. 처음에 인터뷰를 할 때 댓글을 안 받고 올린다고 해서 응했던 것인데, 나중에 보니 댓글 창이 열려있었다. 거기서도 2차 가해를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런 걸 보고 무척 화가 났다.  그 사람들은 본인들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정작 모른다. (가해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정치인들이 언론에 나와서 아무렇지도 않게 2차 가해성 발언을 하고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처벌하는 판례를 남기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희생자에 대한 2차 가해에 대해 11월 초, 중반부터 대응했다.  주로 일베 사이트(일간 베스트)에 글을 쓴 악플러들을 고소했는데, 직접 찾아보고 취합했다. 그리고 변호사분이랑 같이 대리인 고소를 진행했다.”  –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한 인물들에 대한 적절한 처벌 조치가 이루어졌나? “현재는 고소한 사람 중, 7~8명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어떤 사건은 벌금 200만 원으로 최종 판결 나기도 하고, 어떤 건은 벌금 300만 원 형을 받았는데 피고가 항소를 했다. 사자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사람에 대한 형벌은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한 건이 1심에서 벌금 500만 원을 받았는데, 검찰이 항소하기도 했다. 벌금 500만 원보다 더 높은 처벌을 받게 하기 위해 검찰이 항소한 거 같다. 현재 그 사건은 2심을 앞두고 있고, 다른 것들은 아직도 조사 진행 중이다. 어떤 분들은 반성문을 쓴다거나 합의를 해달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합의는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어서 합의는 안 하고 있다.” – 일반인이 ‘악플 고소’를 하는 과정은 까다롭고 어려웠을 거 같다. 이 과정이 힘들지는 않았나.  “사자명예훼손 같은 경우가 굉장히 까다롭다. 알아보니까 정말 까다로운 게, 친고죄 (사자명예훼손죄, 모욕죄)는 고인의 가족만 고소할 수 있다. 허위의 사실을 고의성을 가지고 제3자가 보는 곳에서 적시했을 때 처벌이 가능하다. 그래서 처벌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고소했는데 어떤 건이 1심에서는 최고로 높은 형벌을 받았다. 아직 진행 중이지만 높은 형벌을 받은 판례를 남겼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  그런데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막말을 하고 2차 가해를 저지른 김미나 의원은 선고유예를 받았다. 정치인이면 본인의 말에 더 책임을 져야 하고, 잘못을 했을 때 더 중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데, 면죄부를 받고 있다는 것을 직접 느꼈다. 이를 보며 국가, 정부, 법원이 가해자들에게, 정치인들이 하는 말에 대해 면죄부를 주고 있구나 생각하면서 더욱 화가 난다.   악플을 취합하고 고소하는 과정은 (감정적으로도) 아주 어려웠다. 처음에는 악플 대응을 조용히 하고 싶었다. 글(악플)을 읽으면서 손이 떨리고 가슴도 뛰고 화가 났지만, 그것보다 희생자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을 참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나를 욕하면 상관이 없는데, 아무런 대응을 하지도 못하는 고인을 욕하니까. 잘못을 일깨우고, 악플 고소에 대한 판례를 남기면 참사에 대한 2차 가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국가가 2차 가해자다” -10.29 이태원 참사에 대한 2차 가해, 악플 공격이 왜 이렇게까지 심각할까.  “언론이 기사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인권을 충분히 보호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다른 유가족 분의 장례식장에 찾아와서 한 마디만 해달라고 하는 기자들이 많았다. 그들한테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정확한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기사를 쓰는 경우도 있었고,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유가족들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끔 기사를 쓰는 것도 느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언론과 국가가 이태원 참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주도했다고 생각한다. 악플러들을 고소해서 재판을 진행 중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언론과 정부가 그들에게 색안경을 씌워서 그렇게 된 건 아닐까 싶다.  법원도 2차 가해 해결을 막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법원이 사실상 한덕수 국무총리나 김미나 의원에게  2차 가해에 대한 면죄부를 줬다고 생각한다. 또, 참사 이후 분향소가 녹사평에 있었을 때, 분향소 옆에 신자유연대 단체가 노골적으로 2차 가해를 했다. 그런데 집회를 철수시키는 것에 대해 법원은 집회의 자유를 우선시했다. 유가족과 고인을 대놓고 모욕을 하는 집회를, 권리와 자유라고 존중하는 것이 이해가 안 간다. (이렇게) 대놓고 국가가 2차 가해자들을 보호하니까. 어떻게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국가가 2차 가해자다.” – 참사를 왜곡하고 피해자, 유가족에게 정신적 고통을 유발하는 혐오 표현 문제를 개선해나가기 위해 시민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이 있을까?  “처음에는 ‘놀러 가서 죽었는데 왜 난리냐’는 댓글들에 차분히 반박 댓글도 남겨보고 설득시키려고 해봤다. 그런데 생각을 바꾸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대응을 하다가 점점 포기하게 됐다. 아무리 댓글뿐이라 할지라도 실제로 상처받고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개인이 어떤 일을 실천해야 할까 생각하면 어렵다.  작은 실천으로는, 악플이나 혐오 댓글에 ‘싫어요’를 눌러서 반대 의견을 표하는 것도 있다. 혐오 댓글에 ‘이런 욕은 잘못된 거다’라고 반박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다수가 생각하는게 맞겠지’라고 수동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바른 말을 하는 사람들은 묵살되고, 또 다른 욕들이 달리는 거 같다. 그래서 기사의 ‘좋아요’나 댓글만 읽는 것보다 사람들이 스스로 무엇이 옳은지에 대한 판단이나 생각이 단단해졌으면 좋겠다.” – 10.29 이태원 참사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진정한 애도와 추모를 위해 시민으로서 함께 연대하고 싶다. 더 많은 연대를 위해 남길 이야기는? “이태원 참사 분향소에는 젊은 분들이 잘 안 온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분위기 때문에 젊은 분들이 지금 다 숨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 있던 게 잘못된 건가’하는 생각으로 부모님에게도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말 못 했다는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다.  사실, 이태원에 있는 거나 핼러윈 축제가 잘못된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유가족)한테는 이번 핼러윈이 슬픈 날이겟지만, 당시 희생자분들에게는 1년에 한 번 뿐인 일상이었다. 핼러윈을 너무 슬프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즐기거나 안 즐기거나 본인의 마음이지만, 즐기더라도 죄책감 갖지 않고 몸과 마음이 안전했으면 좋겠다.  덧붙여, 언론에서는 이태원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한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래서 우리가 거리에서 이야기하면 ‘다 해결됐는데 왜 아직도 저래’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국가, 정부에서 수사를 끌어서 하나도 해결된 게 없다. 진상 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되지 않았으니 거리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우리의 목소리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이번 사례를 통해 보여준 언론의 태도는 플랫폼 기업의 ‘혐오산업’의 구조와 맞닿아 있다. 자극적인 보도로 조회 수, 트래픽을 높여 기업 매출과 연관 지으려는 시도는 전형적인 언론의 패턴이다. 유가족 인터뷰 댓글창에 악플이 많이 달리자 댓글창을 폐쇄하길 요청했지만, 담당 기자는 주저했다고 한다. 당사자에게는 칼이 되어 꽂히는 악플이지만, 결국 기사의 성과와 직결되기 때문일 것이다.  구조적 혐오와 2차 가해 속에서 악플러 개인을 처벌하는 방식이 과연 유효할까. 어떻게 우리 사회가 혐오와 차별, 폭력에 대해 구조적, 기업적 책임을 질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10.29 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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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를 기억하는 법
조금은 잊혀진 참사 1994년 10월 21일. 이 날의 일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현재 굳건이 강남과 강북을 잇는 ‘성수대교'가 붕괴한 날이다. 오전 7시 느닷없이 서울시 성동구외 강남구 압구정동을 잇는 성수대교가 붕괴했다. 조금 이른 아침이었지만, 출근과 등교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총 49명이 한강으로 추락, 32명이 사망했다. 건설사의 부실공사, 감리담당 공무원의 부실 감사, 정부의 안전검사 미흡으로 벌어진 참사다.  참사는 또다시 이어졌다. 1995년 6월 29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위치한 삼풍백화점이 붕괴했다. 지상 5층, 지하 4층 짜리 건물이 한 순간에 무너졌다. 이로 인해 502명의 사망자, 937명의 부상자, 6명의 실종자가 발생했다. 해당 인명 피해는 한국전쟁 이후, 가장 큰 인명 피해 사건으로 기록돼 있다. 원인은 성수대교와 비슷하다. 이 역시 건설사의 부실 공사, 안전 불감증, 공무원 비리가 엮여서 발생한 사고였다. 완공 이후 무리한 증축이 이루어졌고, 백화점은 벽면 균열과 천장 내려앉음 등 붕괴 조짐을 알고 서도 영업을 중단하지 않고, 응급 조치로만 대응했다. 막을 수 있었지만, 막지 않아 발생한 참사였다. 참사를 통해 무엇을 배웠나 30년 가까이 된 참사 이외에도 생생히 기억나는 참사도 있다. 2014년 4월 16일의 세월호, 2022년 10월 29일의 이태원 참사다. 이태원 참사 당시 미국 워싱턴 포스트는 “이태원 할로윈 참사, 1995년 삼풍 붕괴 유령을 소환하다”라는 기사를 썼다. 기사는 우리나라가 삼풍 백화점 붕괴에서 전혀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지적, 붕괴 원인, 이태원 참사 상황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기사는 삼풍 백화점 붕괴를 “현대화 열망 속에 건설업자, 공무원이 안전조치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안전불감증과 공무원 무책임을 지적한 것이다. 또한, 이태원 참사가 참사 조짐이 보이고 알았음에도 대응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삼풍 백화점 붕괴와 같다고 말했다. 한국전쟁 이후 최대 인명 피해를 낸 참사에서 전혀 배운 게 없다는 뼈아픈 지적이다. 실제 이태원 참사의 경우, 참사 이전에 사람들이 압사할 것 같다고 말하는 신고전화가 11건 이상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수 많은 사람들이 올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코로나로 외부활동이 제한됐던 것을 감안하면, 코로나 제한 조치가 풀렸을 때 어느정도 폭발력을 가질지 분명 예측하고 판단하고 대비했었어야 한다. 참사가 발생한 이후, 제대로 기억하지 않으면 같은 문제는 또다시 발생한다. 또다시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선, 참사를 기억해야 한다. 단순 희생자를 기리는 것만이 아니라, 그 당시 우리의 문제는 무엇이었고, 왜 그 문제를 보지 못했는지 혹은 알고도 외면했는지, 그 문제가 다시금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지 계속해서 상기해야 한다. 참사가 기록되지 않으면,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처럼 참사의 유령만 계속 떠돌 뿐이다. 참사를 기억하는 법 참사를 기억하는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대표적인 건 추모시설을 건립하는 것이다. 추모시설을 통해 당시 우리가 어떤 참사를 겪었는지 상기하고, 다시는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대비하고, 치유하자는 취지다. 문제는 쉽지 않다는 점이다.  참사 피해자 유족들은 고인을 추모하고, 다시는 같은 참사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당장 참사의 유족이 아닌 사람들의 경우, 집 값을 떨어트리는 혐오시설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혐오시설이라는 인식 외에도, 공간 부지 마련과 사업비 문제, 행정 절차의 지연 등으로 건립이 안 되기도 한다. 서울시 광화문 광정에 있던, ‘세월호 기억공간'도 행정적인 이유로 철거된 상태다. 다시금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자는 유족들의 외침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듯해서 개인적으로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건 우리나라에서만 어려운 건 아니다. 해외에서도 오랜기간 논의를 거쳐서 이루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에서 9∙11 테러 추모를 위해 세운 9∙11 추모 광장과 메모리얼 파크다.  9∙11테러는 2001년 9월 11일, 미국 쌍둥이 빌딩에 두 개의 비행기가 자폭 테러를 한 사건을 말한다. 전 세계가 경악한 사건이다. 두 대의 비행기가 연이어 빌딩에 돌진하고, 쌍둥이 빌딩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게 전세계로 생중계 됐다. 2,996명의 사망자가 나왔고, 이중 민간인은 2,977명, 테러 주범인 알카에다 테러리스트 19명이 사망했다. 부상자는 25,000명 이상이다. 2006년 3월 13일부터 착공을 시작한 이곳은 2011년 9월 11일 꼬박 10년만에 추모관이 만들어졌고, 2014년에 박물관이 만들어졌다. 미국 역사상 가장 끔찍한 테러로 기억되는 9∙11테러 마저도 추모관 완공에 10년이 걸린 걸 보면, 어느 나라나 비극을 온전히 추모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걸 알 수 있다. 9∙11 메모리얼 파크에는 2개의 사각형 모양의 폭포가 있다. 그 폭포를 둘러싼 테두리에는 희생자의 이름이 각인 되어 있다. 단순히 희생자만 있는 게 아니다. 희생자와 생전에 가까웠던 가족과 친구들의 이름이 함께 기록되어 있다. 알파벳순이나 임의로 이름을 배열하는 것이 아니라 유가족들에게 일일이 물어 희생자의 이름을 생전에 알던 동료, 친구, 가족의 이름과 나란히 새긴 것이다. 건축을 맡은 아리드는 이를 ‘의미 있는 이웃들'이라는 개념으로 말했다. 이렇게 조성 된 메모리얼 파크와 박물관은 가족 투어, 현장 학습, 공공 프로그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방문객들로 하여금 어떤 사건이 있었고, 거기서 우리가 배우는 교훈은 무엇인지 계속해서 기억하는 공간이 됐다. 혐오하는 사람도 없고, 혐오 시설이라는 인식도 없고, 집 값이 떨어졌다는 소식도 없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안전에 대한 인식을 다시금 하게 되었으며, 공항 반입 가능 물품 등을 더욱 철저히 감시하기 시작했다. 테러 이전에 허용되던 조그만 과도를 제한하는 등 물품 하나 하나를 신경쓰고,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깐깐하게 심사했다. 그 결과 뉴욕JFK 공항은 입국 심사가 까다롭기로 악명이 높다. No Day Shall Erase You From The Memory of Time 대한민국은 더 이상 개발도상국이나 중진국이 아니다. 어엿한 선진국이다. 9∙11 테러가 발생했을 당시, 미국은 이미 선진국이었다. 그럼에도 테러가 발생했다는 건, 선진국이라고 하여 테러나 참사가 안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더욱 중요한 건, 참사를 받아들이고 다루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똑같은 슬픔과 악몽, 위험과 재난, 참사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정비하고, 희생된 사람들을 기억하며, 그들에게 벌어진 참사에 의미를 담는 모습이 선진국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도 이런 모습으로 나아가면 좋겠다. 9∙11 메모리얼 박물관에 입장하게 되면 방문자들은 이런 문장을 맞이한다.  “No Day Shall Erase You From The Memory of Time  (시간의 흐름 속 단 한 순간도 당신을 지울 수 없다)” 참사로 희생 된 사람들의 이름은 그 유족들에게 잊혀질 수 없고, 지울 수 없다. 당장의 유족이 아닌 사람들에게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은 기억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 참사가 있었다는 것과 그로 인한 희생자가 있었다는 것, 우리는 다시는 그와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기억하고, 시스템을 정비하고, 변해야 한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이태원 참사 1주기가 다가온다. 희생된 모든 사람들을 다시금 추모하면서, 부디 우리 사회가 그때의 참사를 다시 기억하고, 사회를 돌아보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출처 : 9∙11 MEMORIAL & MUSEUM
10.29 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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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참사의 기억을 담습니다
10·29 이태원참사의 기억을 담습니다 캠페인즈 미디어를 통해 직접 캠페이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요! 10·29 이태원참사 기록보존활동, '이태원 기억 담기'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참사현장은 유가족들에게 트라우마 그 자체입니다. 참사의 공간은 애도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참사 이후, 많은 시민들이 참사현장을 찾고 있어요. 이태원역 1번 출구부터 해밀턴호텔 옆 골목을 따라 가벽까지 추모포스트잇과 추모물품이 가득했습니다. 지역 주민과 자원활동가는 작년 12월 말부터 2만 5천여 점의 조화를 비롯해 추모물품을 정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22년 12월 23일, 유족과 지역주민, 지역상인, 시민대책회의가 함께 ‘희생자의 온전한 추모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단장 및 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연 후,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피해자권리위원회가 공간을 관리해왔습니다. 수많은 메시지를 모두 수거하고 분류하기 위해서 더 많은 사람들의 참여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2023년 3월 11일부터 문화연대는 피해자권리위원회와 함께 시민들이 참여하는 기록보존활동 '이태원 기억 담기'를 시작하였습니다. 활동 소식을 듣고 부산에서 찾아온 한 참여자는 야외 공간에 놓인 추모물들은 금방 훼손되기 쉽상인데, “조금만 방심해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같은 추모 기록을 조금이라도 붙잡기 위한” 우리 활동에 딱 맞는 이름이라고 후기를 남기기도 했지요. △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참사 이후, 많은 시민들이 참사현장을 찾아 추모메시지와 추모물품을 남겨주었다. 기록보존활동 ‘이태원 기억 담기'는 크게 추모메시지 수거 작업, 추모메시지 분류 및 보존 작업, 현장 정비 활동, 추모메시지 공론화 활동으로 구성됩니다. 먼저 현장을 찾아 추모메시지를 수거해요. 많은 시민들이 남겨준 추모메시지를 보존하려는 게 첫번째 목적이고요. 가득 찬 벽에 새로운 추모메시지가 붙을 수 있게 여유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게 두번째 목적입니다. 아카이빙 작업 시엔 몇 가지 규칙을 따라, 메시지를 1차 분류합니다. 그리고 장기보존을 위해 메시지를 고정하고, 제습제와 함께 서류상자에 보관합니다. 현장 정비 활동 시엔 음식, 술, 꽃 등 추모물품을 수거하고 주변을 청소합니다. 또, 추모메시지를 남길 수 있게 필요 물품(포스트잇, 펜, 테이프 등)도 마련해두죠. △ 기억과 안전의 길에서 추모메시지를 수거하는 자원활동가들 △ 2023년 10월 현재까지 수거한 메시지는 십수만장에 달한다. 기록보존활동에는 연구자, 시인, 음악가, 대학생, 다큐멘터리 감독, 문화공간 운영자, 고등학교 교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평소 다른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발하게 활동해왔던 참여자도 있지만, 이 활동을 통해 참사가 주는 무력감을 이겨낸 참여자도 있어요.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활동가나 ‘이태원 기억 담기’ 활동 참여자 뿐만 아니라, 주변 상인과 지나가는 시민도 이 공간에 책임감을 느끼며 함께 공간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참사 현장 바로 옆에 있는 편의점 상인은 자원활동가들이 찾을 때마다, 분류 작업할 공간을 내어주고 마실 음료도 선물해주셔요. 바람이 드셌던 어느 날에는 참사 현장을 지나가던 한 시민이 흩날리는 포스트잇을 모아 서울시청 앞 시민분향소까지 손수 가져다준 일도 있었어요. 국가의 방기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각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추모메시지와 사회적 애도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기억과 안전의 길'에는 참사 현장에 있었던 생존자와 구조자, 그리고 희생자의 유가족과 지인을 비롯해 다양한 시민들이 방문하여 포스트잇에 추모의 말을 남겨주고 있습니다. 추모메시지에는 추모와 애도를 비롯해 미안함, 자책감, 무력감, 분노 등 다양한 감정이 뒤엉켜있어요. 희생자와 참사 현장에 대한 기억이 담겨있기도 하지요. 추모메시지를 작성한 사람들은 희생자가 겪었을 고통과 유가족의 상실에 공감하며, 타인의 삶을 상상하기도 합니다. 희생자의 사라진 미래를 안타까워하며, 사회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책임을 반성하기고 국가의 책임을 묻기도 합니다. 잊지 않겠노라고 되뇌이고, 가만히 있지 않고 행동에 나서겠노라고 다짐하기도 합니다. 메시지를 살펴보면, 떠난 이들을 추모하는 관용구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를 비롯해 "미안하다"는 말이 참 많습니다. 정말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사과하지 않고, 정작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고 있는 사람들이 떠난 이들에게 사과하고 있죠. 왜 살아남은 우리만 사과해야 하는 걸까, 이런 메시지를 볼 때마다 슬픔과 동시에 분노를 느껴요. 아래에 참사 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와 구조자가 작성한 메시지를 소개합니다. 이 메시지들엔 참사 현장의 풍경을 비롯해 희생자의 마지막 기억과 생존자의 트라우마, 다짐이 담겨있어요. 특히 구조자들의 메시지에서 재난대응시스템의 공백, 그리고 이들이 느꼈던 무력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가족, 지인을 비롯하여 희생자의 지인들이 그들을 호명하는 메시지는 우리의 마음을 강하게 울립니다. 여기에는 생전에 함께하며 느꼈던 행복감과 희생자가 떠나며 겪게 된 상실감, 슬픔 등 세상 모든 진한 감정들이 녹아 있습니다. 비록 일부 미디어와 시민들이 희생자를 비난하고 왜곡된 이미지를 덧씌운다 할지라도, 희생자들 역시 우리와 같은 공동체에서 살아왔던 평범한 사람이었음을 추모메시지는 알려주고 있습니다. 한편, 한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작성된 메시지도 2할 이상이나 됩니다. 이는 인도네시아, 미국, 일본, 중국, 우크라이나 등 다양한 국적을 지닌 사람들이 추모현장을 찾아 주고 있음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이태원이 다양성을 품고 있는 공간이었음을, 그리고 외국인 희생자도 이곳에 있었음을 기억하게 하지요. 안전사회를 위해, 우리는 기억하고 또 기록해야 합니다 사회적 애도를 위해 아직 해야 할 일은, 정리되지 않은 추모메시지만큼 쌓여 있습니다. 책임자들은 형식적인 사과만 늘어놓고 있으며, 국회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됐지만 아직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지요.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는 기억하고, 또 기록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기록은 우리 사회가 무엇을 함께 기억할지의 문제와 긴밀하게 맞닿아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참사현장에 발걸음한 시민들이 남겨준 추모와 애도의 메시지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아 안전사회를 위한 기틀을 마련할 수 있길 바랍니다. 글쓴이 _ 문화연대 박이현 활동가 | 앞산의 불을 끄는 일만큼, 너른 삶의 터를 다지는 일이 중요하다고 믿는 활동가. 잠든 감각을 깨우고, 마음과 마음을 잇기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씨앗을 심고 있다. '이태원 기억 담기' 활동을 비롯해, 기후위기에 대응하여 다양한 문화/예술 실천을 도모하는 한편 청소노동자의 스포츠권을 위해 운동으로 노동운동하고 있다. 이태원 기억 담기 | 매달 2회씩 정기적으로 모여 이태원역 1번출구 앞 '기억과 안전의 길'에서 추모메시지를 수거하고, 이를 아카이빙 및 공론화하는 활동을 진행하는 시민 모임. http://bit.ly/remember_1029에서 참가신청할 수 있다.
10.29 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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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추모 공간의 조속한 건립을 기원하며
기약 없는 이태원 참사 추모 공간... 또 사라진 '국가의 의무' - 뉴스 ... “합동분향소 운영 뒤 이전”…“추모공간 논의 시작” / KBS ... 이태원 추모 쪽지 훼손한 상인 기소유예...유족에게 사과 / YTN 조만간 416세월호 참사 9주기가 돌아옵니다. 23년 4월 4일,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한 추모 공간을 검색하면 가장 처음 나오는 뉴스의 헤드라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23년 지금 순간의 '검색 결과'를 기억해두고 시간이 흘러 또 어떻게 변화했는지 지켜보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제가 기대했던 기사는 416 생명안전공원과 같이 416세월호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시설 건립에 희망적인 메세지이길 바랬는데 아직은 요원한 모양입니다. 기억의 매개체를 만드는 일에 또 다시 이분법적인 정치적 갈등이나 편파적 주장만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조속히 추모공간 건립 계획을 세우고 절차가 이행되기를 응원합니다.  우리는 가슴 아픈 참사의 기억을 저장하고, 기록된 매개체로 전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추모공간을 조성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참사로 인해 상처 입은 공동체가 회복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후대의 사고를 예방하겠다는 다짐과 안전의 보장이기도 합니다.  그 공간에는 희생자와 유족과 남겨진 사람, 시민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연결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특정 일에만 찾아가는, 또는 찾아가기 어려운 곳이 아닌 일상을 함께 하는 접근성 높은 공간이어야 하겠습니다.  그 공간은 방문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합니다. 나아가 지속적으로 운영될 수 있게 인근지역 상인, 시민, 일반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공공선의 마음으로 참여해서 가꾸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쓰다 보니 추모공간 건립의 방향성처럼 적었는데 결국 정부나 서울시 주도의 추모공간 구성과 위로보다는 시민이 중심이 되어 운영되고 지속되어 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시나, 정부, 정치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추모공간은 필요하고, 또 심각하게 비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잊혀지지 않기를 강조하는 비장함보다는 스스로 오랫동안 기억될 수 있는 단단한 기억으로 표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태원 참사 추모와 애도 이후, 차츰 희미해져가는 의미를 붙잡고 지금 어떠한 이야기라도 해야 한다면, 추모공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고 어때야 할까, 그 형식은 어땠으면 좋을까를 함께 이야기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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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운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
윤석열 퇴진운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한국사회 전반이 무력감에 빠졌다. 우리 모두는 8년 전 세월호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고, 당시의 무력감이 반복되면서 사회 전반에 대한 신뢰 자체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이런 사회 전반의 무기력 속에서도 가장 격렬하게 구호를 외치며 거리로 나오는 집회가 있다. 바로 ‘윤석열 퇴진’ 집회다. 윤석열 정권의 무능함을 규탄하고자 하는, 그들이 가진 선의를 의심치 않는다. 다만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 퇴진운동은 결과적으로 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문제해결 불능의 사회로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사회적 문제는 해결하지 않고, 공수교대 하듯 정권교체만 반복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 우리 사회는 이미 2016년 촛불 이후 대통령 탄핵,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집권을 경험했다. 대통령을 탄핵하고, 정권을 교체하는 것만으로는 참사 반복의 시대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그 교훈이다. 그렇다면 이태원 참사 이후 필요한 사회적 반성과 성찰은 ‘대통령 퇴진’이라는 구호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왜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질 수 없을 지경으로 망가졌는지에 대해 말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현 시점 진행되고 있는 윤석열 퇴진 집회는 가장 게으른 방식의 운동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태원 참사 이전 윤석열 퇴진 운동 기본적으로 현 윤석열 퇴진운동은 이태원 참사 이전부터 계속되어 온 집회에, 참사 이후 추모메세지가 결합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태원 참사 이전의 윤석열 퇴진운동을 살펴보아야, 현 시점 퇴진운동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윤석열 퇴진 운동은 2022년 8월 6일 1차 집회를 시작으로, 거의 매주 촛불집회를 진행 중이다. 초기에는 1천 명 규모로 출발했던 집회가 11월 19일에는 40만 명이 모일 정도로(모두 집회측 추산 인원으로 계산) 규모가 커진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규모의 확장이 그 운동의 정당성을 증명하진 않는다. 보다 더 주요하게 봐야할 것은 집회의 성격이다. 아직까지도 윤석열 퇴진운동의 핵심 구호 중 하나는 ‘김건희 특검’이다. 심지어 이태원 참사 이후 집회의 한 웹포스터에는 "이태원참사 진실규명 특검하라, 우리가 이재명이다. 검찰표적수사 중단하라"가 메인 문구인 버전도 있다. 김건희 씨의 주가조작 의혹, 이력 허위 기재 논란에서 출발해서 이재명 민주당 당대표의 검찰수사 중단으로 귀결되는 집회구호가 이태원 참사 추모메세지과 공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집회에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결합될 수 있다. 하지만 그 다양한 목소리를 연결해내는 큰 줄기의 핵심내용이 그 집회의 성격을 규정하는 법이다. 그렇다면, 현 윤석열 퇴진 운동의 가장 큰 줄기는 무엇인가? 이태원 참사 희생자에 대한 추모와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인가? 아니면 김건희 특검과 이재명 수사 중단인가? 현 윤석열 퇴진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촛불승리전환행동이라는 단체를 살펴보자. 아래는 촛불승리전환행동의 출범선언문 일부이다. "2016년 광화문 촛불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적폐정권을 퇴출시켰고 2019년 서초동 촛불은 검찰개혁을 촉구하며 타올랐습니다. (...) 2022년 대선은 정치검찰의 쿠데타를 저지하기 위한 촛불항쟁의 과정이었습니다. 촛불혁명 제1차 3단계였습니다. 대선 결과 검찰 파시즘 체제가 도래(...) 3단계로 이어졌던 제1차 촛불혁명은 종료되었으며 이제 제2차 촛불혁명의 막이 올랐습니다.(...) 촛불혁명의 단계는 달라졌지만 본질은 동일합니다." 요약하자면, 촛불승리전환행동은 ‘촛불혁명’을 좌초시킨 검찰세력과 싸우는 ‘2차 촛불혁명’이 필요하다는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고, 여기에 기반해서 윤석열 퇴진 운동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집회에서 부르고 공연을 했던 ‘지랄하고 자빠졌네’라는 노래 가사는 더 노골적이다. "지랄하고 자빠졌네겨우 영점 칠삼프로 이겨놓고마치 점령군이라도 된 것처럼"(...)"조국 온 가족을 도륙해놓고정치검사 측근인사 승진했네" 기본적으로 현 정세를 20대 대선의 연장전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재명 후보가 대선은 졌지만, 결과를 다시 뒤집을 수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고, 조국 전 장관 사태를 언급하는 가사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결국 윤석열 정권을 물리치고, 이재명 당 대표와 조국 전 장관을 ‘복권’시키는 것이 정의라 믿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 아무리 민주당과 무관한 집회라고 주장한다고 치더라도, 선명하게 민주당과 이재명 당대표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 자체는 부정하긴 힘들다. 결국 조국 전 장관 사태 이후 발생한 광화문과 서초동 집회 대립의 연장선에서 태극기 집회와 현 윤석열 퇴진 집회가 존재하고 있으며, 제도권 양당 정치가 거리까지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퇴진운동의 근거 또한 부실하다. ‘김건희 특검’이라는 구호가,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동일한 선상에서 언급될 수 있는가? 대통령과 혼인신고도 하기 전의 주가조작 사건이 대통령 퇴진의 근거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고려 없는 퇴진운동은 ‘이재명 방탄 집회’라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려운 것이 현실적 조건이기도 하다. 윤석열 퇴진 운동, 무엇이 문제인가? 대통령 퇴진 요구 자체가 문제적인 것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 시기 용산참사와 쌍용차 파업이라는 국가폭력 이후 퇴진운동이 전개되었다. 박근혜 정부 때는 세월호로 출발한 전 사회적 변화의 요구가 퇴진운동으로 수렴되었다. 하지만 현 윤석열 퇴진 운동은 출발 지점부터 현재까지 과정에서 민주당 지지자의 요구만을 대변하고 있을 뿐이다. 이태원 참사 이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요구가 결합되었지만, 그 진정성을 의심받는 이유는 사회적 반성과 성찰의 과정이 생략된 퇴진 운동이기 때문이다. 최고 신고 시각에 대한 보도 이후, 국가 책임을 묻고 행정책임자 파면과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윤석열 대통령 퇴진이라는 구호가 나오기까지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정치와 언론, 시민사회 일부는 세월호 당시 사회적 경험을 과도하게 이태원 참사에 투영하고 있다. ‘막을 수 있었다, 국가는 없었다’라는 구호로 대표되는 국가부재에 대한 질문은 세월호 당시 담론을 그대로 가져온 셈이고, 국정조사-시민사회 연대체 구성-촛불집회-퇴진 구호 등장으로 이어지는 일종의 프로세스가 단 기간에 완성된 것 또한 세월호에 대한 학습효과라 볼 수 있다. 문제는 대중들의 정서가 이와 괴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정치는 참사부터 퇴진까지 일직선으로 로드맵을 구상하고 추진해나가고 있는데, 대중들은 대통령 하나 바꾼다고 모두에게 안전한 사회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세월호를 통해 경험했다. 이 괴리감을 해소하기 위해선 이태원 참사에 대한 추모의 대화가 필요하고, 이를 사회적 담론으로 정립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대화와 토론, 사회적 담론을 형성해나가는 과정을 너무나 일찍 생략(포기)해버렸다. ‘퇴진은 추모’가 아니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책임여부 혹은 퇴진에 대한 동의여부와는 별개의 이야기다. 적어도 지금 이 시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애도의 정치-추모의 정치화는 퇴진 구호와 달라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국가책임을 묻는 것이 정권에 대한 책임 요구로 축소되거나 수렴될 수 없다. 정권교체만으로 새로운 국가를 만들 순 없기 때문이다. 이런 입장에 대해 일부 진보적 운동 단체에서는 체제전환을 이유로, 윤석열 퇴진을 외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되묻고 싶다. ‘윤석열 퇴진’이라는 구호가 우리 사회를 어떤 방향과 내용으로 체제전환 시킬 수 있는가? 오히려 대통령 퇴진 구호는 체제전환의 요구를 가리고 있다. 윤석열 퇴진 구호는 불평등-기후위기-차별의 문제들이 아니라(혹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이재명-윤석열 두 개인 간의 정쟁,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대선, 지긋지긋한 양당정치의 구도를 먼저 떠올리게 만든다. 윤석열 대통령이 퇴진한다고 자본주의가 극복되는 것도 아니며, 대중들이 공감할 수 있는 대안사회의 모델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의 정권교체는 ‘도로 민주당’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도 하다. ‘도로 민주당’이 정말 ‘혁명’이고 ‘해방’인가? 운동은 하고 싶은 이야기만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목표를 제시하고, 대중들을 설득하며 함께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왜 그 노력을 ‘김건희 특검’을 외치는 세력과 함께 해야 하는가? 검찰과 싸우기 위해 모인 세력이 아니라, 현 체제에서 가장 고통 받고 아픈 사람들 곁에서 함께 투쟁해야 한다. 그리고 현 시점에서 사회운동 세력이 함께해야 할 곳은 10.29 이태원참사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 옆이다. 추모행동으로 출발하자는 의미 사회적 추모는 단순히 슬퍼만 하자는 것이 아니다. 추모를 통해 행동하자는 의미이고, 이 행동에는 여러 가능성이 열려 있다. 결과적으로 윤석열 퇴진운동을 전개하게 될 수도 있다. 다만 윤석열 퇴진(민주당 재집권)을 위해 ‘추모’를 끌어오는 방식으로, 본말전도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나아갈지 아직은 짐작할 수 없지만, 함께 슬퍼하고 감정을 공유해나가면서 우리는 새로운 언어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반복되는 참사의 시대는, 사회가 개인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사회적 경험을 제공한다. 특히 지금의 청년세대는, IMF부터 세월호 그리고 10.29 이태원참사까지 각자도생이 유일한 생존방법이라는 것을 살아온 삶 전부를 통해 학습하고 있다. 사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그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지며, 개인으로 파편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기에 사회가 해야 할 역할은 첫째는 반성과 성찰이고, 둘째는 고립되는 사람들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국가와 사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메시지는 단순히 책임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 잘못을 확인하고 대안을 찾아나갈 수 있는 사회라는 신뢰를 회복하기 위함이다. 또한 언제든 자신이 참사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내재된 사회구성원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통해 사회의 존재의미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윤석열 정부는 이를 포기하고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정치적 행동으로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출발해 국가에 대한 불신을 종식시키기 위해선, 새로운 사회 모델을 탐색하는 과정이 동반되어야 한다. 이제는 안전하다, 이제는 사회가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을 연결해내는 사회를 제시하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퇴진운동을 넘어서야 하는 가장 큰 핵심적 이유다. 게으른 퇴진운동을 넘어 국가담론에 대해 말하자. 누가 대통령인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사회로 나아가야 하느냐이다. *12월 17일에 있었던 있었던 민교협 토론회 <이태원 참사의 성격과 한국 정치>에서 발표한 발제문입니다.
10.29 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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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공론장]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의 대화:10.29 이태원 참사 이후, 시민들의 목소리' 공론장 결과보고서
사회적협동조합 빠띠가 기획·준비하고, 청년참여연대가 협력하여 진행한 [작은공론장]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의 대화:10.29 이태원 참사 이후, 시민들의 목소리” 공론장 결과보고서가 나왔습니다.  '안녕하신가요?'라는 말을 건내기 어려운 시기입니다.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정부는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하였지만 진상 규명 및 책임자 처벌 및 대안 마련에 미온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퇴진이 추모다'라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대해 ‘추모를 정치화 하지 말라'는 반응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한국사회의 양극화 된 정치체제는 10.29 이태원 참사를 둘러싼 반응 또한 양극화 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가지게 됩니다. 사회적협동조합 빠띠의 캠페인즈팀은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참사에 대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모으고자 캠페인즈에 ‘10.29 이태원 참사’ 이슈를 개설하여, 참사와 관련한 캠페인, 투표, 토론, 기사들은 올릴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10.29 이태원 참사에 관해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서로 의견을 나누고, 함께 추모와 애도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10.29 이태원 참사’ 이슈 페이지 다행히도 유가족 당사자들의 목소리, 그리고 시민들의 목소리를 나누고 사회적 대화를 나누어, 참사에 대한 사회적 기억을 만들어 가자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이번에 빠띠가 개최한 작은 공론장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의 대화: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시민들의 목소리” 또한 10.29 이태원 참사에 대해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들을 듣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준비했습니다. 발제자로 예비교사 대학생 신유진님, 성공회대 냉전평화센터 연구원 최성용님, 10.29 이태원참사 청년추모행동 공동집행위원장 김창인님, 용산구 의원 함대건님을 모시고 각각 청년, 언어, 정치, 제도의 키워드와 관련하여 발제를 요청드렸습니다. 발제문들은 공론장 행사 전에 사전에 업로드 하여 시민들이 댓글로 의견을 미리 달거나 행사 참가 예정자분들이 미리 볼 수 있도록 제공하였습니다.  ?[발제문] 함대건_10. 29.참사의 현황 및 제도적 보완 방안  ?[발제문] 신유진_살아남은 1990년대생이 목도한 참사들 ?[발제문] 김창인_참사 이후 정치, 우리는 왜 달라지지 못했을까 ?[발제문] 최성용_참사를 대하는 목격자의 태도 신유진 발제자와 최성용 발제자 김창인 발제자와 함대건 발제자 2022년 12월 20일 오후 7시에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의 대화:10.29 이태원 참사 이후, 시민들의 목소리' 공론장 행사가 열렸습니다. 공론장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빠띠의 '10.29 이태원 참사 이슈 페이지' 운영을 통해 생산한 캠페인, 투표, 토론 생산 활동 과정에서의 시민 토론 정보를 제공하고, 발제자들의 발제를 제공하고, 캠페인즈에서의 발제에 대한 사전 토론 정보를 간략하게 요약하여 제공하였습니다. 이런 다채로운 정보의 제공은 짧은 테이블 토론에서의 논의가 좀더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테이블 토론 후에는 이야기를 나누며 각자의 마음속에서 정리된 의견들을, 캠페인즈의 발제문 게시물에 댓글로 작성하였습니다.  캠페인즈와 공론장 행사에서 이루어진 모든 논의들을 "[작은공론장]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의 대화:10.29 이태원 참사 이후, 시민들의 목소리' 공론장 결과보고서"로 정리하였습니다. 네 개의 테이블에서 이루어진 토의를 간략하게 요약하고 연결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실시간 공론장_소모임 토의 전체 요약 및 연결 소모임-1조: 10.29 이태원 참사와 청년 이번 참사에 대해 청년으로서, 개인적인 경험과 느낌을 공유해주세요. 다양한 상징을 가지고 있는 이태원이라는 공간의 파괴 혐오의 사회를 체감 사회적 트라우마의 반복  이야기를 나누며 애도할 수 있는 상황의 부재 10.29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중요한 문제가 무엇이고,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분법적으로 서로를 혐오하고 같이 애도하지 못하는 것 죽음에 급을 나누고, 나만 괜찮으면 됐다고 생각하며 타자화 시키는 것 개인주의/자본주의 사회에서 손익을 따지게 되는 경쟁 구도가 원인  참사가 반복되고 제대로 해결하지 못함에 따라 사회적 신뢰의 파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참사의 공간을 애도의 공간, 안전한 공간으로 보전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애도하는 것 참사를 욕하고 혐오하는 움직임에 대응 정리되지 않은 감정도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 소모임-2조: 10.29 이태원 참사와 언어 [1] 주변에서 이번 참사에 대해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대한 경험을 공유해주세요. 참사 자체가 공공재가 되기 위해서는 10.29참사로 불러야 함 이태원이라는 장소에 대한 명명을 빼고는 구체성이 빠지게 되기 때문에 이태원참사 혹은 10.29 이태원참사라고 불러야함 (어떤 명칭으로 부르더라도) 아픔에 대한 공유와 공감이 있어야함 [2] 나눠주신 경험을 바탕으로, 10.29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중요한 문제가 무엇이고,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코로나 시기 동안 청년세대들이 장기간 놀지 못했던 것이 할로윈이라는 축제로 분출. 정부가 제대로된 역할을 하지 못함 이태원에는 항상 할로윈 행사가 있었음. 매뉴얼의 유무와 관계 없이 공공 시스템이 잘 작동했어야 했음 [3]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더 많은 대화를 통한 공론장의 활성화 약자가 중심에 서는 제도 희생자들이 내가 희생자라는 것을 밝힐 수 있는 상황 마련 소모임-3조: 10.29 이태원 참사와 정치 [1] 이번 참사와 관련하여 정치 차원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경험과 생각을 공유해주세요.  정치인들이 힘든 사람을 도와줘야 하는데, 힘든 사람이 힘든 사람을 돕고 있음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도 정치가 해야할 일 [2] 나눠주신 경험을 바탕으로 10.29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중요한 문제가 무엇이고,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들은 지옥철만 봐도 공포감을 느끼고 두려움을 느낌 이태원참사는 세월호보다 구체적으로 상상하기에 더 끔찍함 신고 이후에 정부의 처리절차가 더 심각함 [3]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정치적 이해관계에 상관없이 대안적인 목소리를 내야함 정치가 참사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야함 책임을 지는 사람이 부당하게 비판 받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소모임-4조: 10.29 이태원 참사와 제도 [1] 이번 참사가 벌어진 원인과 관련해 어떤 제도적 조치가 미흡했다고 생각하시나요? 투입할 수 있는 경찰관 인력 부족 국가가 책임질 수 있는 제도적인 프로세스 책임자들의 문제의식 안전에 대한 경각심과 위기의식 [2] 나눠주신 이야기를 바탕으로 10.29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중요한 문제가 무엇이고,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제도적 인식변화 부재 복구 과정에서 시민의 역할에 대한 매뉴얼 부재 sns에서 참사 현장에 대한 무분별한 공유 2차 가해에 대한 규정 및 사회의 대응  안전관련 공직자 부족 서울 중심의 행사 조례의 사회적 기능 여부 [3]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어떤 사회를 만들지 시민과 함께 논의 지역 상인에 대한 트라우마 치료 소모임 토의의 연결 참사의 당사자 당사자 주체 희생자, 생존자, 유가족, 목격자, 지역 상인, 청년, 여성, 소수자 그리고 (함께 슬퍼하고 연대하는) 시민들  당사자의 처지‘놀다가 죽었다’, ‘나만 아니면 된다' 등의 개인 탓, 폭력과 혐오, 편견과 배제, 슬픔, 무력감, 미안함, 2차 가해  참사에 대한 진단 참사의 원인 책임자들의 문제의식 부족 대응 과정에서의 매뉴얼의 부재 안전에 대한 불감과 제도적 프로세스의 부족 사회적 참사, 사회적 재난 다양한 상징을 가지고 있는 이태원이라는 공간의 파괴 2차 가해에 대한 규정 및 사회 대응의 부재 사회적 트라우마의 반복 사회적 신뢰의 파탄 이태원 핼러윈 행사는 항상 있었고, 코로나 이후 분출이 예상되는 상황이었고, 매뉴얼 유무와 관계 없이 정부의 대처가 있어야 함 참사에 대한 언어의 형성과 사회적 기억 애도/추모/정치의 부재 혹은 오염상징과 언어의 부재  감정의 공유 → 미안함=연결감 → 연대 사회적 기억의 형성 시민행동 추모와 애도 각자의 방식에 따른 애도 당사자 중심의 대응 혐오에 대한 대응 참사 공간을 안전한 애도의 공간으로 공론장의 활성화더 많은 대화를 통한 공론장의 활성화 정치와 제도 양극화 된 정치 양당의 이분법적 적대와 이를 바탕으로 한 공존 정부의 역할과 책임, (실질적) 대의 좋은 정치의 필요 반성과 성찰, 공감과 위로, 추모와 애도, 희망과 회복, 안전사회 연대, 사회적 대화, 시민들의 공론장  제도적 보완의 필요 사회적 참사/재난, 예방-대비-대응-복구, 안전관리(조례 개정) 참사의 콘트롤 타워 역할 수행 대책 마련 안전 관련 대응 체계 마련 안전 관련 조례의 현실화 +시민의 책무 소모임 토론 행사 개최 전 캠페인즈에 업로드 된 발제문 게시물에서의 사전 댓글 토론과 행사 당일 테이블 토론 후 참가자들이 작성한 댓글 또한 요약 정리했습니다.  ⭐️캠페인즈 댓글 토론, 요약과 연결 참사의 당사자 반복되는 참사 (세월호 이후) 또 다시 마주한 참사 반복되는 참사 속에서 청년의 무기력감 '우리는 늙어 죽을 수 있을까?' '내가 될 수 있었다', '우연히 살아남았다' 재난은 디폴트 우리 모두 당사자 불편함, 슬픔, 아픔 비난과 혐오 희생자 탓을 하는 댓글들이 가득한 것을 보면서 좌절감 책임감 10.29 이태원 참사에 대한 진단 참사의 원인 개인의 탓이 아니며, 놀러간 것이 잘못일 수 없음 놀다가 죽을수도 있는 나라가 정상이냐 누구에게나 쉼도 놀이도 필요한게 정상 참사가 반복되는 이유 집단적인 자기 성찰이 전무한 결과 사회적인 집단 자기 성찰이 없는 우리 사회 사회적 참사, 사회적 재난 정부의 역할이 중요 ‘참사가 끝난 게 아니다’ 계속되고 있다 책임‘누가’ 책임을 져야하는가 보다는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가 하는가에 집중하는 사회 시민행동 지향하는 가치 사회적 신뢰 서로에 대한 공감 연결감과 연대 사회적인 반성과 성찰 실천과 행동 정부와 시민의 공적 책무 함께 사는 공동체, 사회 건강하고 안전한 사회 애도 애도는 연결을 인지하는 것 일상 속 다양한 방식의 애도 사회적 기억 그들의 일 말고 우리의 일 참사에 대한 기억과 감정을 공유 참사를 기억하는 방법.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방법은 공감 표현하는 언어에 고민과 논의를 거칠 때 더욱 잘 기억할 수 있음  공론장 활성화 지속적인 대화와 공감 모두가 모여서 많이 말하고 듣는 공론장과 집담회 서로가 서로를 보듬고 공유 할 수 있는 공간들 제도가 사회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논의하는 공론장 정치와 제도의 필요 양극화 된 정치 참사가 각 진영의 수단으로 전락 '추모를 정치화 하지마라' vs '퇴진이 추모다'? 퇴진운동의 기회? ‘퇴진이 추모’라는 구호는 이 모든 과정과 가능성을 차단 나를 대의해줄 정치인이나 정치화된 언어가 없다 정치는 기존 우리 정치의 이항대립으로 녹아들어 그것을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어야 함 좋은 정치의 필요 사람들이 모일 때, 정부의 역할이 있는 것 참사의 원인에 정부의 역할 수행 부분이 관련되면 정치적 차원의 접근은 필수적 다양한 주체들의 사회적 대화와 논의에 기초하여 참사의 원인을 밝히고, 그 과정에서의 책임을 묻고,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 위한 제도적 보완을 하고, 사회적 기억과 사회적 추모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 정치 양당의 적대적 공존을 넘어 사회적 참사로서의 이태원 참사에 대한 사회적 대화의 확산 속에서 사회적 기억을 구성하고, 안전사회를 위한 사회적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추모와 애도의 정치 사회적으로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좋은 정치 제도적 보완의 필요 조례 제정 통해 확실하게 관리 '주최'가 없는 행사의 관리 체제 마련 재난의 예방과 대비 위협과 위험의 촉진 요인 제거 및 억제 비상계획 수립, 대응조직 준비 및 역량 강화 대응과 복구 “‘10.29 이태원 참사’의 당사자는 희생자이기도 하지만, 생존자와 유가족,  그리고 목격자이기도 합니다. 더 넓게는 이를 지켜보게 함께 슬퍼하는 시민들 모두이기도 합니다. 좀더 주의깊게 들여다보면 청년이며, 여성이며, 소수자이기도 합니다. 모두가 당사자이고 다 같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사회적 참사로서의 ‘10.29 이태원 참사'는 모든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하지만 각자의  차이들을 지니며 ‘사회적 기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 모여 다양한 측면에서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모아 공유 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참사의 당사자들은 ‘놀다가 죽었다', ‘나만 아니면 된다' 등 개인의 탓을 하는 반응들 속에서 폭력과 혐오, 편견과 배제, 2차 가해를 겪고 있고, 슬픔과 아픔, 미안함과 불편함, 무력감과 좌절감 속에 고통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세월호 이후 또 다시 마주한 반복되는 참사에서 '우리는 늙어 죽을 수 있을까?', '내가 될 수도 있었다', '우연히 살아남았다'와 같은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는 ‘재난이 디폴트'가 되는 ‘위험사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태원으로 놀러나간 것이 죽어도 슬퍼 할 수 없는 잘못일 수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쉼도 놀이도 필요한게 정상일 것입니다. ‘놀다가 죽었다'는 이들에게 ‘놀다가 죽을수도 있는 나라가 정상이냐’고 되물을 필요가 있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는 안전에 대한 불감과 제도적인 프로세스의 부재, 대응 과정에서의 매뉴얼의 부재, 책임자들의 대처에서의 무능 등으로 인해 벌어지고 극대화 되었습니다. 반복되는 참사는 사회의 집단적인 자기 성찰이 없다는 것의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참사가 개인들의 탓이 아니고 정치사회적 대비 및 대응의 부재로 인해 벌어졌다는 점에서 10.29 이태원 참사는 사회적 참사, 재난입니다. 참사 이후에도 원인 규명과 책임 처벌의 부재, 2차 가해에 대한 규정 및 사회 대응의 부재 속에서 사회적 트라우마가 반복됩니다. 이는 사회적 신뢰의 파탄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참사가 끝난 게 아니’고, 계속되고 있는 셈입니다. ‘누가’ 책임을 져야하는지도 중요하겠지만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가 하는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정치권은 '추모를 정치화 하지마라'는 진영과 '퇴진이 곧 추모'라는 진영으로 나뉘어 있는 듯 합니다. 양극화 된 정치는 서로를 비난하고 있지만 사실상 ‘적대적 공존 상태'에서 참사를 수단으로 여기고 있는 보입니다. 이 상황에서 당사자의 목소리,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는 들리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정치는 시민들을 실제로 대의하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역할과 책임을 다하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참사의 원인 정부의 역할 수행과 관련된다는 점에서 정치적 차원은 필수적일 것입니다. ‘추모의 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10.29 이태원 참사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는 기존 정치의 이항대립으로 녹아들어 그것을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어야 합니다. 좋은 정치는 반성과 성찰, 공감과 위로, 추모와 애도, 희망과 회복, 안전사회를 지향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한 시민들의 연대와 사회적 대화, 즉 시민들의 공론장이 가능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양당의 적대적 공존을 넘어 사회적 참사로서의 이태원 참사에 대한 사회적 대화의 확산 속에서 사회적 기억을 구성하고, 안전사회를 위한 사회적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추모와 애도의 정치”일 것입니다. “다양한 주체들의 사회적 대화와 논의에 기초하여 참사의 원인을 밝히고, 그 과정에서의 책임을 묻고,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 위한 제도적 보완을 하고, 사회적 기억과 사회적 추모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 정치”일 것입니다.  추모와 애도의 정치는 제도적 보완을 지향해야 합니다. 사회적 참사/재난을 예방하고 대비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매뉴얼을 마련하고 관련 법이나 조례 제정 및 재정비를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대응과 복구를 위한 체계, 안전관리 체계를 마련하고 재정비 해야 할 것입니다. 대응-복구, 안전관리 체계를 마련하고 재정비 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주최'가 없는 행사의 관리 체계를 마련하는 것 또한 정부의 책임과 역할이 있음을 명확히 해야 할 것입니다.  추모와 애도의 정치는 시민들이 추모와 애도를 위한 책무를 다하기 위한 행동을 벌여나갈 때 가능할 것입니다. 시민들은 서로에 대한 공감 속에서 연결감과 연대의 관계를 맺고 사회적인 반성과 성찰을 지향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한 실천과 행동은 시민의 공적 책무를 다하는 것이며, 함께 사는 공동체, 건강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가며 사회적 신뢰를 형성해내는 일일 것입니다.  추모와 애도를 위한 시민행동은 일상속 각자의 다양한 방식에 따른 애도, 당사자 중심의 대응, 서로에 대한 연결과 연대의 형성,  혐오에 대한 대응, 안전한 애도의 공간의 형성, 더 많은 대화를 통한 공론장의 활성화의 방향에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행동을 바탕으로 애도·추모·정치의 부재 혹은 오염을 극복하며 10.29 이태원 참사를 잘 기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의 일 말고 우리의 일’이라는 관점에서 참사에 대한 기억과 감정을 공유하고, 당사자와 연대하는 시민들의 언어로 참사를 말하고 기억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참사에 대한 ‘사회적 기억'이 형성되고, 또 다시 이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사회적 힘으로 작동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주도의 공론장'을 만들고 활성화 할 필요가 있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에 대해 이야기 하는 공론장은 시민들의 지속적인 대화와 공감이 이루어지는 공간일 것입니다. 모두가 모여서 많이 말하고 듣는 공론장, 서로가 서로를 보듬고 공유 할 수 있는 공론장일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참사를 대비하고 대응 할 수 있는 제도가 사회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논의하여, 시민들이 위험사회가 아니라 안전사회를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낼 수 있는 공론장이 되어야 합니다.”  바로 위의 문장들은 캠페인즈에서의 시민들의 토론과,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의 대화:10.29 이태원 참사 이후, 시민들의 목소리' 공론장에서의 시민들의 토론에서의 의견들을 모아 재구성한 것입니다. 수많은 단어와 이야기들이 나열되어 약간 어색해 보일 수 있지만, ‘10.29 이태원 참사’를 추모하고 애도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모은 응축된 하나의 결과인 셈입니다.  시민주도 공론장은 들리지 않던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리게 해줍니다. 시민들이 직접 주도하여 자율적으로 열어가는 공론장은 당장에는 제도적 변화까지 도달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다양하고 중요한 이야기들을 자유롭게 논의 할 수 있습니다. 시민들에게 더 나은 민주주의의 의미를 직접 경험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 공론장의 가장 중요한 내적 가치일 것입니다. 목소리를 내고 토의하고 함께 의견을 모음으로써 공적인 삶에 참여하고 함께 의사결정을 하는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이 되어가는 과정에 함께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결과 중심이 아닌 과정에서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관점이며, 이러한 수많은 과정들이 쌓여갈 때, 여러 사회문제들을 실제로 다루게 되는 힘을 얻고, 실질적인 제도화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작은공론장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의 대화:10.29 이태원 참사 이후, 시민들의 목소리' 행사와 캠페인즈에서 나눈 사전 토론, 그리고 그 내용을 정리하여 기록한 이 보고서가 ‘10.29 이태원 참사'에 대한 시민들의 사회적 기억을 형성하기 위해 쌓는 돌탑의 이루는 하나의 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0.29 이태원 참사'에 대한 시민들의 진솔하고도 다양한 목소리 전체와 공론장 기획 및 과정 등을 보고서로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변의 이야기가 캠페인즈에서 논의되고 있습니다. 더 나은 세상은, 내가 목소리를 내는 것에서부터 시작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첫걸음을 캠페인즈에서 함께해주세요? 빠띠의 더 다양한 소식이 궁금하거나, 다른 활동가들과 소통하고 싶다면? ? 빠띠 홈페이지 가입하기 주목할만한 시민들의 캠페인·투표·토론을 메일로 받아보고 싶다면? ? ‘Today 캠페인즈' 구독하기 빠띠의 소식을 메일로 받아보고 싶다면? ? 뉴스레터 ‘빠담빠담’ 구독하기 빠띠의 든든한 후원회원, 빠띠즌이 되어주세요! ? 빠띠 후원하기
10.29 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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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대건_10. 29.참사의 현황 및 제도적 보완 방안
작은공론장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의 대화 :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시민들의 목소리' 에서 나눌 이야기를 소개합니다.글을 읽고 아래에 댓글을 남겨주세요. 궁금하거나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남겨주시면, 12/20(화) 작은공론장에서 함께 논의 할 수 있습니다. 함대건(서울특별시 용산구의회 의원) part1. 10.29.참사, 왜 발생했는가? 재난관리란? 재난관리 목적 : 인명, 재산, 환경 보호 관리방법 : 재난의 종류에 따라 다름  --> 재난으로부터 발생하는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해 각종 재난을 관리하는 것 재난관리 방법 재난에 대한 예방 재난으로 인한 위험을 축소하기 위한 활동 대비, 대응, 복구 등과 관련된 일련의 활동 --> 재난의 예방, 대비, 대응, 복구에 관한 정책 개발과 집행과정을 총칭 재난관리의 단계별 유형 예방단계 위협, 위험이 존재하는 곳에서 무엇을 해야하는지 결정 재난으로부터 생명과 재산에 대한 위험의 정도를 감소시키는 활동 실제로 발생하기 전 재난 촉진 요인을 미리 제거하거나 억제, 예방하는 활동 대비단계 재난에 대비해 필요한 비상계획 수립, 훈련 통해 재난대응조직의 능력을 강화하는 단계 재난의 목표설정으로서의 대비단계(준비 및 계획)의 의미 비상시 효과적인 대응, 작전 능력 향상을 위해 취해지는 사전준비 활동 대응단계 재난 발생 직전과 직후 재난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에 취해지는 인명구조, 재산손실 경감, 긴급복구 활동을 총칭 실제 재난 발생시 재난관리기관이 수행해야하는 각종 임무 및 기능을 적용하는 과정 복구단계 재난이 발생한 직후부터 피해지역 재난발생 이전의 원상태로 회복할 때까지 지원을 제공하는 지속적 활동 혼란상태 안정되고 응급 인명구조 및 재산보호 이후 재난 이전 상태 회복 위한 활동 단기적 응급복구와 장기적 원상복구로 나뉨 재난관리의 형태 분산관리 형태 재난 발생 유형에 따라 소관부처별 국가재난 관리 기능을 분산 유형별 재난의 특징을 강조하는 것에서 시작 지진, 수해, 화재 등 대응 방식에 차이가 있음을 강조 통합관리 형태 분산관리의 문제점, 여러가지 대응상 문제 제기를 통해 미국에서 제시된 모델 경고, 대피, 구호, 탐색, 구조, 구급, 사망자 처리 등은 개인과 집단에 관계없이 동일한 활동이 취해져야하며 재난대응의 계획과 자원은 동일한 수준으로 이루어짐 재난관리의 형태별 장단점 분산관리 형태 다수의 부처 및 기관이 소관 재난에 대한 관리 책임 부담을 분산시켜 특정 재난에 활동하는 방식 부처 및 기관에 정보전달 다원화, 재난관리 위한 재원 마련의 중복 등 통합관리 형태 소수의 부처 및 기관이 모든 재난에 대한 관리 책임 과도한 부담의 가능성 증가 정보전달의 단일화, 재원 마련 및 배분의 간소화 part2. 10.29.참사, 어떻게 대처해야 했는가? 1029.참사 대처의 문제점 : 국가, 경찰, 구청, 소방 차원에서(미완) part3. 10.29.참사 이후 우리는? 10.29.참사 이후 지방의회 조례발의안 서울시-서울특별시 다중운집행사 안전관리에 관한 조례안 주최 및 주관자, 단체가 없는 다중운집행사 등에 관한 안전관리조치 조항 명시 서울시장은 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추진되는 축제 및 행사의 경우에도 안전관리 대책 세워야 함 기존 옥외행사의 안전관리 조례는 서울시 등 주최가 명확한 경우에만 안전관리를 하도록 명시, 주최 미상의 다중운집행사는 제외 조례안 제5조 ▲1일 예상 운집 인원이 5만 명 이상, 행사 장소와 내용이 수시 변경될 수 있거나     ▲1일 예상 운집 인원이 10만 명 이상인 다중운집 행사의 경우, 서울시장이 서울시 경찰청장 및 자치구청장 등 안전관리 관련 기관과 사전 협의해 의무적으로 안전관리계획 수립 안전관리계획은 행사 내용, 다중운집 행사 지역 및 주변의 위험요소에 대한 안전 관리 대책, 안전관리인력의 확보 및 배치계획, 비상시 교통계획, 다중이용장소의 자체 안전 관리 인력 가동 상황 등 포함 제6조에는 시장이 시경찰청장에게 보행자·자동차 등의 통행을 금지 또는 제한하는 조치와 도시철도 운영자에게 지하철의 무정차 통과 조치를 요청할 수 있게 명시 다중운집 행사로 인해 사고·재난이 발생하면 재난안전대책본부를 신속히 설치할 수 있는 근거 조항 마련 제8조에는 통행의 금지 및 제한사항 규정 군집밀도 산정방식, 공간 수용능력 및 군집유동시간 등의 기준을 고려해 특정시간, 구역, 방법을 지정하여 통행을 금지하거나 제한 서울특별시 옥외행사의 안전관리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안 옥외행사의 범위에 ‘시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군중 행사’추가 옥외행사 장소 및 접근 경로 등 주요 통행로 등에서 군중 밀집에 대한 예측과 감지를 안전관리 계획에 포함 주최•주관이 없는 자발적 집단행사에 군중밀집 예측과 감지, 안전관리 대책 수립 시민의 책무 신설, 옥외행사에 따른 시민 안전 확보 도모 옥외행사 질서유지와 재난예방을 위해 자치구청장에게 필요한 협조 요청 *"10.29.참사의 현황 및 제도적 보완사항"(함대건), 위 글의 PPT 자료는 이 링크에서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10.29 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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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용_참사를 대하는 목격자의 태도
?작은공론장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의 대화 :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시민들의 목소리' 에서 나눌 이야기를 소개합니다.글을 읽고 아래에 댓글을 남겨주세요. 궁금하거나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남겨주시면, 12/20(화) 작은공론장에서 함께 논의 할 수 있습니다. 최성용(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부설 냉전평화연구센터 연구원) 왜 “놀다가 죽었다”고 말하는 것일까? 어떤 맥락에서, 어떤 감각으로 그런 말을 하 는 것일까? 우선은, 세 가지 정도의 맥락을 짚어보려 한다.  1) 상징과 언어의 부재  세월호 참사는 가령 ‘침몰하는 배’나 ‘노란 리본’, “가만히 있어라”와 같이 풍부한 의 미를 담은 상징과 언어들이 존재했다. 그것은 세월호 참사의 성격을 직관적으로 이 해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는 그러한 은유적인 상징이나 언어가 없어서, 여전히 너무 ‘비현실적’인 일처럼 다가온다.  안타까운 얘기지만, 지금 이태원 참사를 가장 간단하게 직관적으로 설명하는 언어 는 ‘놀러가서 죽었다’이다. 그래서 다른 언어가 필요하다. 언론에서는 인파에 휘말 리게 되면 개인이 어떡할 수 없는 재난의 상황이 된다는 의미에서, ‘군중난류’나 ‘군 중 눈사태’ 같은 개념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2) 오염된 언어와 냉소  “애도를 강요하지 마라”는 목소리는 사실 ‘국가애도기간’의 결과이다. 애도기간을 선포한 것은 다름 아닌 정부이지만, 정작 애도기간에 대한 반발은 정부가 아니라 시민들을 향하고 있다. 또,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에 대해서도 ‘개인의 책임’을 말하 는 이들은 ‘놀다가 죽었다’는 비난과 함께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보상금은 법 적으로 규정된 것이라 정부가 임의적으로 지급하는 게 아니다. 또한 국가애도기간 은 법적 근거는 없으나 과거 천안함 사태 때 선포된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천 안함 침몰 이후 한 달이 지나고 인양이 마무리된 시점에 애도기간이 선포됐다. 반 면, 이번 애도기간은 10월 30일에 선포되었다. 10월 29일 밤 10시에 사고가 일어 났는데, 다음날 아직 피해자들의 사망/생존 여부조차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애도 부터 했던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애도를 정치화하지 마라”는 말도 등장했다. 실제 “퇴진이 추모다” 같은 구호는 참사와 애도를 정쟁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걸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사회적 참사에 대한 애도는 필연적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정치’가 특 정한 정당을 지지하는 것으로만 사고되고 환원되는 현재의 상황이다.  이렇게 정부와 야당의 정치 언어가 ‘애도’나 ‘정치’와 같은 말들을 오염시키고, 다른 애도의 말들을 봉쇄하거나 도구로 활용하면서 가능한 사회적 언어가 사라지고 있 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들의 침묵과 냉소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놀다가 죽었다”는 그런 냉소의 표현이기도 한 것이다.  3) 이태원과 혐오  ‘놀다가’의 의미에는 이태원이 ‘위험’하고 ‘문란’한 곳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위험 한 줄 알면서도 ‘그런 곳’에 간 건 ‘개인의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근현 대사를 관통하는 이태원의 역사와 관련된다. 이태원 일대는 과거에 큰 공동묘지가 있었던 지역으로, 지금도 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종종 유해들이 발견되기도 한다. 일제 시대 용산에 일본군이 들어섰고, 해방 이후 미군이 용산에 들어서고 본격적으로 ‘기지촌’으로서 이태원의 역사가 시작됐다. 미군의 유흥문화와 미국산 제품들이 흘러나오는 곳이 됐고, 거기엔 잘 알려진 것처럼 ‘미군 위안부’의 역사가 서려 있다. 이태원은 각종 ‘미군 범죄’와 관련되어 ‘위험’한 곳으로 취급되어 왔고, 또한 이태원 은 트랜스젠더, 게이 등 성소수자들, 이주노동자와 난민 등이 드나들고 살아가는 곳이기도 했다.  이렇게 한국근현대사의 여러 모습들이 새겨진 장소이지만, 그렇기에 이태원을 둘 러싼 담론들은 늘 ‘혐오’를 바탕에 깔고 있었다. 그런 맥락에서 특히 2020년 5월 이 태원에서의 코로나19의 확산은 ‘위험하고 문란한 이태원’이라는 기존의 담론을 반 복하는 것이었다. 2020년 10월 말, 2021년 10월 말, 매번 핼러윈 시즌 때마다 코로 나19 확산에 대한 우려를 바탕으로 이태원의 성소수자, 외국인 및 이주민에 대한 혐오 담론이 나타났다. 그러한 맥락의 연장선에 2022년 10월의 핼러윈이 있는 것 이다. “놀다가 죽었다”며 사회적 애도를 가로막는 혐오 담론은 이런 역사적 맥락을 바탕에 두고 있다.  생존자와 목격자  생존자들의 호소하는 ‘미안함’은, 한편으로는 트라우마이자 아픔이지만, 다른 한편 으로는 희생자들과의 강력한 ‘연결감’을 의미한다. 나는 그 연결감의 아픔을, 먼 거 리에 있었던 목격자들, 그러니까 한국 사회가 나누어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목격자들은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다’라고 희생자와의 연결됨을 부정하는 식으로 반응하기도 하며, 아니면 ‘너는 나다’라는 식으로 희생자와 자신을 과도하게 동일 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목격자는 ‘살아남은 사람들’이며 그조차도 생존자보다는 희 생자와 ‘거리’가 있다. 그 거리감 속에서 목격자가 참사를 대하는 태도란 ‘나일 수도 있었다’일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많은 사람들이 “미안합니다”라며 “기억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다 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 는 그런 다짐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의 증거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참사가 ‘끝’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언제 다시 참사가 반복될지 모른다는 의미에서도 그렇지만, 현재 생존자들을 향한 비난과 혐오의 말들이 가득 하다. 이미 한 생존자의 사망 소식이 들려오는 지금, 10월 29일 밤에 살아남은 사 람들은 여전히 ‘길고 느린 참사’를 겪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참사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며, 아직 우리 사회가 구출해내야 할 사람들이 있다. 그날 밤 생존자들이 사람 들을 구하기 위해 애썼던 것처럼, 이제 생존자들, 유가족들을 (그리고 어떤 의미에 서는 희생자들까지도) 구해내야 하는 의무가 우리 모두에게 주어져 있다. *"참사를 대하는 목격자의 태도"(최성용), 위 글의 PPT 자료는 이 링크에서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최성용 캠페이너가 작성했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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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인_참사 이후 정치, 우리는 왜 달라지지 못했을까
?작은공론장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의 대화 :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시민들의 목소리' 에서 나눌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글을 읽고 아래에 댓글을 남겨주세요. 궁금하거나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남겨주시면, 12/20(화) 작은공론장에서 함께 논의 할 수 있습니다. 김창인(10.29 이태원참사 청년추모행동 공동집행위원장, 청년정의당 대표) 국가는 없었다 지난 12월 1일,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과 국정조사 특위의 간담회 자리에서 고 이지한씨 아버지가 무릎을 꿇고 진실을 밝혀달라며 울부짖었다.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해달라는 그 간절함과 절박함이 여실히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앞집 개가 죽어도 위로를 하는데 하물며 나라 어버이로서 158명 자식들이 죽었는데···”라는 유가족의 이야기는 이태원 참사를 마주하는 국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 이태원 참사 당시 국가는 없었고, 참사 이후에도 추모와 애도의 과정에서 국가는 무책임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직후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다. 바로 다음 날인 10월 30일부터 11월 5일까지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들은 근조 리본을 착용했고, 축제 등 문화공연도 자제하라는 권고가 있었다. 동시에 ‘참사’가 아니라 ‘사고’, '희생자‘가 아니라 ’사망자‘라는 표현을 썼다. 하지만 10월 30일은 아직 구조 및 의료 업무가 진행 중이었고, 희생자 숫자조차 확정되지 않은 시기이다. 죽지도 않은 사람들,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국가가 공식적으로 애도기간을 선포한 것이다. 정부에게 국가애도기간은 참사에 대해 함께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한 것이 아닌, 망각을 유인해 참사의 성격과 의미를 축소하려는 의도가 투영된 것에 불과했다. 참사 이후 정부가 유가족들을 대했던 모습은 윤석열 정부의 속내를 더 투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참사 다음날 희생자를 찾기 위해 수많은 병원의 응급실을 쫓아다녀야 했던 가족들의 이야기, 14시간 만에 나온 사체검안서 때문에 이틀이 지나서야 장례를 치를 수 있었던 이야기 등 상조회사만도 못한 정부의 행정절차로 인해 유가족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더욱 커져갔다. 더욱이 정부는 유가족들이 서로 소통하고 위로하기 위한 만남 자체를 차단해 버렸다. 유가족들은 “우리가 범죄자도 아닌데 같은 유족 만나는 걸 왜 이리 은밀히 해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참사 유족 간 접촉을 못 하게 하라고 공무원들이 교육을 받았다”라며 토로했다. 윤석열 정부가 유가족들을 정치적 적대 세력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세월호와 이태원, 잘못된 정치는 왜 반복되는가 참사 직후 우리 사회가 받은 충격과 슬픔은 단순히 참사의 규모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이태원 참사를 보면서 우리 모두는 8년 전 세월호가 가라앉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참극을 다시 떠올렸다. 더욱이 참사 희생자와 생존자에 대한 혐오부터 국가행정의 무책임한 태도와 꼬리 자르기 행태에 이르기까지, 현 정부의 대응과정에서 볼 수 있는 사회 면면은 세월호 참사 때보다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2014년 4월 27일, 세월호 참사 이후 열흘이 조금 넘은 시기에 당시 정홍원 국무총리는 사임을 표명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사건 수습을 이유로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았고, 두 달 뒤 내각 개편 과정에서 마땅한 후보자가 없자 총리 유임을 결정해버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 도중 사과를 하는 등 공식적 사과를 집요하게 피했다. 2015년 4월 16일, 세월호 1주기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은 진도 팽목항에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면서 “좌절하지 말자”라는 유체이탈 화법을 보였다. 현재 윤석열 대통령의 이상민 행안부 장관 파면은 법적 책임이 드러나면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규모 참사에 대해 정부와 여당 그 누구도 책임감을 통감하지 않았다는 점이 지금과 똑같다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 중 한 분은 자신이 ‘2찍’이라고 말씀하시며 통곡을 했다. 지난 대선에서 2번을 찍었다는 것이다. 자신도, 배우자도, 희생자인 아들도, 온 가족이 ‘2찍’이었는데, 어떻게 정부가 이럴 수 있냐며 배신감을 토로하고 있다. 어쩌다 우리 정치가 이 지경이 됐는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정확하게 사과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겠다는 말 한 마디가 어려운 이유가 무엇일까? 모든 문제를 양당의 적대적 공존에 기반해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태원 참사 이전과 이후, 거대양당의 정치는 달라진 것이 없다. 이태원에서 158명이 안타까운 비극을 맞이하고 있을 때, 거대양당은 민생은 뒤로 한 채 김건희 특검과 이재명 특검을 두고 싸우고 있었다. 참사 이후에도 전 국민이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데, 법무부 장관이 청담동 술자리에 갔느니 마느니, 캄보디아에서 영부인이 조명을 썼는지 아닌지를 가지고 진실공방을 하고 있었다. 왜 10월 29일 이태원에서 국가와 정치가 국민들을 지키지 못했는지, 그 진실에는 양당 모두 무책임했다. 이 모든 것이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는 행위가 정치의 전부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추모가 퇴진’이라는 두 번째 비극  역사는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우리 정치는 비극으로만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우리 사회의 두 번째 비극은 참사에 대응하는 정치와 언론, 시민사회의 모습이 세월호 당시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고 신고 시각에 대한 보도 이후, 국가 책임을 묻고 행정책임자 파면과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윤석열 대통령 퇴진이라는 구호가 나오기까지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김건희 특검’과 ‘윤석열 퇴진’을 구호로 매주 진행된 촛불집회에서,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라는 구호가 하나 더 추가된 것에 불과한 정치적 행위가 추모로 둔갑해있다. ‘퇴진이 추모다’라는 피켓들 사이에 간간히 보이는 ‘김건희 특검’ 피켓은, 한국정치의 파탄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정치와 언론, 시민사회 일부는 세월호 당시 사회적 경험을 과도하게 이태원 참사에 투영하고 있다. ‘막을 수 있었다, 국가는 없었다’라는 구호로 대표되는 국가부재에 대한 질문은 세월호 당시 담론을 그대로 가져온 셈이고, 국정조사-시민사회 연대체 구성-촛불집회-퇴진 구호 등장으로 이어지는 일종의 프로세스가 단 기간에 완성된 것 또한 세월호에 대한 학습효과라 볼 수 있다. 문제는 대중들의 정서가 이와 괴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정치는 참사부터 퇴진까지 일직선으로 로드맵을 구상하고 추진해나가고 있는데, 대중들은 대통령 하나 바꾼다고 모두에게 안전한 사회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세월호를 통해 경험했다. 이 괴리감을 해소하기 위해선 이태원 참사에 대한 추모의 대화가 필요하고, 이를 사회적 담론으로 정립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대화와 토론, 사회적 담론을 형성해나가는 과정을 너무나 일찍 생략(포기)해버렸다. 세월호 당시, 박근혜 퇴진 촛불 정세와는 다른 언어를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퇴진은 추모가 아니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책임여부 혹은 퇴진에 대한 동의여부와는 별개의 이야기다. 적어도 지금 이 시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애도의 정치-추모의 정치화는 퇴진 구호와 달라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국가책임을 묻는 것이 정권에 대한 책임 요구로 축소되거나 수렴될 수 없다. 정권교체만으로 새로운 국가를 만들 순 없기 때문이다. 재난과 참사 이후, 사회는 ‘반성과 성찰’을 기반으로 변해야 한다. 불평등이 재난으로 심화되지 않아야 하고, 참사를 예방하고 대비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코로나 재난 속에 비대면-원격사회로 전환을 대안으로 내놓고, 이태원 참사 직후에는 정권교체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반성과 성찰’이 없는 대안들이다. 참사의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세대에게 안전한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것은 욕심이 아니다. 그 권리는 정치로 구현될 수 있는 것이며, 그래서 추모와 애도에서 정치로 나아가자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추모와 애도가 정권에 대한 분노로만 귀결된다면, 안전 사회-대안 사회는 누가 만들 수 있는가?   추모에서 정치로 윤석열 대통령은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구속해야 정국을 운영할 수 있고, 이재명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을 퇴진시켜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인가? 왜 이 두 개인을 둘러싸고 우리 정치는 소모적인 논쟁만 거듭해야 하고, 시민사회 일부도 이 개인 간의 싸움을 정치투쟁으로 곡해하고 있는 것인가? 이 이분법적 정치의 구도에서 이태원 참사에 대한 사회적 추모가 가능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러한 질문들 앞에 서 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각박한 일상에서 잠시나마 숨통을 틔우고자 해방의 공간을 찾아간 158명의 청년들이 목숨을 잃었고, 이는 우리 모두에게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참사였다는 것을 전 국민이 확인했다는 것이다. 국가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면, 그 존재 이유에 대해 질문하고 일종의 ‘사회재계약’을 고민해야 한다. 참사의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세대에게 안전한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것은 욕심이 아니다. 그 권리는 정치로 구현될 수 있는 것이며, 그래서 추모와 애도에서 정치로 나아가자고 말하는 것이다. 국정조사를 통해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정권에 책임을 묻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추모의 대화’를 사회적으로 확대해나가는 것이다. 기성국가-기성정치-기성사회를 거부하고, 각자의 이야기를 산발적으로나마 꺼내놓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퇴진이 추모’라는 구호는 이 모든 과정과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 대통령 퇴진을 넘어서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사회 전반의 무력감을 해소할 수 있는 언어가 필요하다. 퇴진운동이라는 결론을 정해놓고 참사를 마주하지 말자. 어떤 결론으로 나아갈지 알 수 없지만,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 추모하고 대화하고 연대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고자 하는 마음을 모아나가야 한다. *"참사 이후 정치, 우리는 왜 달라지지 못했을까"(김창인), 위 글의 PPT 자료는 이 링크에서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10.29 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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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진_살아남은 1990년대생이 목도한 참사들
?작은공론장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의 대화 :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시민들의 목소리' 에서 나눌 이야기를 소개합니다.글을 읽고 아래에 댓글을 남겨주세요. 궁금하거나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남겨주시면, 12/20(화) 작은공론장에서 함께 논의 할 수 있습니다. 우린 무사히 30대 생일을 축하할 수 있을까요?  : 살아남은 1990년대생이 목도한 참사들    신유진(가까운 미래에초등학생을 만날 예비교사, 대학생) The scapegoat 뭉뚱그려진 책임 소재와 죄책감의 방향  희생자를 동정하면서도 “희생자에게 책임을 물음으로써 자신을 희생자들과 분리하려는 인간의 욕구,” “안타깝지만 저 사람들은 조심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나와 내 가족은 조심하면 괜찮을 거야.”라는 인간의 욕구는 언제나 살아있다.  -재난의 세계사(원제: The Big Ones: How Natural Disasters Shaped Us)』(2018) 늦게까지 기사, 유튜브, 트윗을 봤다. ‘사망자 대부분 20 대 여성’, 개인이 다수한테 가감 없이 나르는 이미지들. 잠에 들 수 없었다. 죽음이라는 게 내 앞에 당도해 있는 무언가로 느껴졌다. 고의로 기록을 게을리했다. 망각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분명하고 확실한 이미지를 흐릿하게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었다.(상실 사진 참가 후기 박서연) '일탈하다 변을 당한 애들' ‘흥청망청 유희를 즐기러 갔다가 죽은 애들'이라는 비난도 귀에 박힙니다. 국가가 우리를 지켜주지 못할 때마다 느끼는 이 공포는 왜 공유되지 못하는 걸까요? 간명한 애도는 새로운 정부에서도 반복되고 산 사람들의 이해관계로 간신히 아문 딱지는 자꾸 벗겨집니다. "팽목항에서 사고가 났는데, 모두 구조됐대. 참 다행이지"라던 사회 선생님의 말씀이 두어 시간 만에 "배 안에 사람들이 여전히 있는데, 물이 차오르는데도 아직 못 나오고 있대"로 바뀌었던 열일곱의 그 날이 머릿속에서 재생됐습니다. 선생님은 그 일이 마치 당신의 오보로 벌어진 것처럼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습니다. 검은 리본에 '근조'를 지우고 책임자 없는 사고라고 주장합니다. 교육부장관이 전국의 교육청에 노란 리본을 달지 말라는 공문을 보냈고, 끝까지 노란 리본을 달지 않은 한 대통령이 겹칩니다. "여기서 이렇게 많이 죽었단 말이야?"라는 말과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그렇게 발견하기 힘듭니까?"라는 말이 겹칩니다. 애도는 그 연결을 인지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일상 생활을 영위하기까지 연결되었던 무수히 많은 삶과 노동과 죽음을 기리며 매일을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러할 때 애도가 곧 무서운 하루를 버티면서 살아가는 나를 보살피는 방법이 되기도 할 것 같다. “그래, 애도는 매일 해야 하는 것이구나.”(상실 사진 참가 후기 박서연) 그들을 평생 곁에 둬야 할 존재들처럼 여기며, 소중한 사람들의 미래를 지키고 싶습니다. 안타깝게 희생된 분들을 끝까지 수호하면서요. 먼 미래에 친구가 될지도 모를 청년들이 새로운 시대를 아픔 없이 맞이하고 싶다고, 포기하지 말아달라 당부하는 듯해서 마음이 저리면서도 그 연약한 약속에 관해 생각하기를 멈추지 못합니다. *"우린 무사히 30대 생일을 축하할 수 있을까요?: 살아남은 1990년대생이 목도한 참사들"(신유진), 위 글의 PPT 자료는 이 링크에서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10.29 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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