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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남자들] 페미니즘 글에는 왜 꼭 “너만 힘드냐”는 댓글이 달릴까?
성평등 교육을 시작한 지 벌써 5년이 흘렀다. 직장인부터 시민사회단체 구성원, 초·중·고등학교 청소년과 군인 등 다양한 참여자를 만났다. 막상 어마무시한 저항이 있는 경우는 흔치 않지만 꼭 참여자 표정이 굳기 시작하는 대목은 있다. 바로 여성이 경험하는 차별을 이야기 할 때다.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한 여성 어린이가 자신의 가족 제사 때 겪은 성차별을 이야기했더니, 옆자리 남자 어린이가 "너는 대신 군대 안가잖아!"라고 소리치는 모습을 봤다. 의아해진 나는 남자 어린이를 진정시키며 물었다. "혹시 저 어린이가 군대에 보낸건가요…?" 여성 차별에 "너만 힘드냐"라니 이런 사례가 결코 적지 않다. 페미니즘 관련한 글, 아니 꼭 페미니즘이 아니더라도 여성이 경험하는 차별과 폭력에 대한 글마다 '남성도 힘들다!'는 댓글로 가득하다. 남성의 삶이 어렵지 않다고 이야기한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고통이 다른 이의 고통을 상쇄해 주는 것도 아닌데, 대체 이게 무슨 생뚱맞은 이야기일까? 뉴스에서 흑인을 향한 폭력, 장애인을 향한 차별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자신을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는 거냐며 발끈하는 경우가 드문데, 왜 젠더 문제에 대해선 그런 반응이  흔할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실제로 모르기 때문이 크다. 나도 학창시절, "성차별은 옛날 일"이라고 생각했다. '당장 학교만 봐도 똑똑하고 대학 잘 가는 여자애들이 이렇게 많은데, 무슨 성차별이냐'는 생각이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22년 국가성평등보고서'에 나타난 '성평등한 사회참여 영역 분야별 성평등 수준 현황'에 따르면, 학교 같은 교육·직업훈련 영역은 94.5점이다. 그러나 문제는 다음부터다. 경제활동영역 76.4점, 의사결정영역은 38.3점으로 처참한 수준이다. 고용률만 봐도 그렇다. 20대 때까지는 비슷하다. 하지만 30대에 접어들고 여성이 임신·육아·출산을 경험하는 시기에 엄청난 격차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우리나라 100대 기업 임원 비율은 여전히 6.8% 수준이다. 누구도 이를 제대로 가르쳐준 적 없으니 각인된 오해가 쌓이고 쌓여 오늘날의 성별인식격차가 됐다. 인권은 뺏고 빼앗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모르면 알아가면 그만인데, 왜 알려고 하기보다 화부터 낼까? 인권을 '제로섬 게임'으로 여기며 여성의 인권이 올라가면 남성의 인권이 추락할 것을 생각하며 불안에 떨기 때문이다. 나아가 성폭력을 오직 '피해자'와 '가해자'의 문제로만 치부하고 자신은 피해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장애 이동권을 위해 생긴 지하철 엘레베이터가 모두에게 편리함을 줬듯, 인권은 함께 증진될 수 있다. 성폭력은 권력의 문제이기에 남성도 피해자가 될 수 있고 우리는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하는 동반자로 나아가야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남성들이 이러한 이해 없이 페미니즘에 학을 뗀다. 어떨 때는 이런 남성들의 분노가 일종의 비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남성의 어려움 어디에서 왔는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교육 현장에서 듣게 되는 이야기나 글에 달리는 댓글을 찬찬히 살펴보면 결론이 비슷하다. 군대에 가야해서, 연애나 결혼할 때 경제적으로 부담이라, 더 위험하고 어려운 일에 내몰려서 '힘들다'는 이야기다. 힘들 수 있다. 실로 더 많은 남성들이 일터에서 사망한다. 2022년 자살률 역시 남성이 여성보다 두 배 이상 더 높다. 그러나 드러내지 못한다. 나약하다고, 남자답지 못한 '하남자'라고 낙인 찍힐까봐 염려하느라 꽁꽁 숨기고 산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감정은 분노다. 그래서 그렇게 길 잃은 엉뚱한 분노로 자신의 비극을 발산한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 불행 배틀은 할 수 있을지언정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남성들이 꽃다운 나이에 군대에 가게 된 원인이 무엇인가? 연애, 결혼에서 남성이 더 경제적인 부담을 지는 이유는?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만 운다는 말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모두 옆에 앉은 여성 때문이 아닌, 우리 사회의 성별고정관념과 성차별적 문화에서 비롯된 비극이다. 그리고 그 비극을 끝내기 위해 목소리 내는 사람들이 바로 페미니스트다.  늦지 않았다. 문은 언제든 열려있다. 지금껏 그랬듯 세상은 더 나은 쪽으로 변할 수 있다. 언제까지 '너만 힘드냐!'며 불행에 머물 것인가. 문제의 원인을 찾으며 함께 구렁텅이에서 벗어날 것인가. 당신은 언제나 선택할 수 있다.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은 남성연대에 균열을 내고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실천하고자 교육, 연구, 집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벌거벗은 남자들> 시리즈는 그간 가부장제 아래 왜곡된 남성성에 변화를 만들고자 남함페 활동가 5인이 남성 섹슈얼리티, 관계, 돌봄 등 남성의 삶 전반을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톺아보려 합니다. 본 글은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의 이한 활동가가 작성하여 여성 신문에 동시 연재되고 있습니다. 여성신문 원문 주소 : https://n.news.naver.com/mnews... 
성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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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의 칼국수와 카리나의 열애설
1   최근 한국의 아이돌 팬덤을 보면 결국 모든 게 ‘본전 뽑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팬미팅에 가기 위해, 포토카드를 모으기 위해 앨범에 쓰는 돈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물론 이거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야 없겠으나 금전적인 부분이 한국 아이돌 팬덤 문화에서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2   내가 초등학생일 때엔 H.O.T와 젝스키스 팬덤이 어마어마했다. 에쵸티라는 이름의 음료수도 나왔고 이들의 사진으로 필통이나 교과서 커버를 만드는 여학생들도 많았다. 엄청난 팬까진 아니었지만 나름 관심이 있었던 나는 남자가 남자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걸 혹시라도 주변에 티 내게 될까봐 살짝 조심했던 기억도 난다.   내가 중학교 3학년일 때엔 동방신기가 데뷔를 했다. 특이한 패션도 화제였지만 사실 가장 화제가 된 건 이름이었다. 그때도 지금도 똑같은 생각을 하곤 하는데, 사춘기이거나 20대 초반인 나한테 누가 ‘앞으로 네 이름은 서누선우다’라고 하면 난 울어버렸을 지도 모른다. 이 즈음부터 인터넷을 통해 화제가 된 것은 바로 사생이다. 어떻게 하는 건지는 알 수 없으나 아이돌 멤버 개인의 전화번호, 가족의 전화번호, 집주소 같은 것을 알아내 끊임없이 연락을 하거나 잠복하면서 숙소 내부에 잠입, 도촬을 하는 등등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내가 제대하고 나왔을 때엔 엑소가 인기를 얻었는데, 일단 이들은 자기들만의 초능력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생각하지만 누가 사춘기 혹은 20대 초반인 나한테 ‘이제 네 능력은 불이다’라고 하면 바로 소주 사러 달려 가지 않을까 싶다.   포토카드를 이용한 상술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게 이 즈음부터인 것으로 기억한다. 12인의 포토카드가 앨범마다 두 장씩 들어 있으니 이걸 다 모으려면 최소 6장을 사야하는 것이다. 하지만 랜덤이니 그 수는 무한정 늘어나는 것이고, 12인의 카드가 두 가지 버전이라 총 스물 네 장의 포토카드가 있다고 한다면 최소 12장 이상의 앨범을 사야하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앨범을 박스로 사서 종일 카드만 깐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팬미팅을 이용한 상술도 이 때부터로 기억한다.   사생이 심해진 것도 엑소 때부터인데, 여성팬이 머리를 박박 밀고 남자화장실에 숨어있거나 소변기에 소변 보는 척 서있으면서 엑소를 기다리다가 걸렸다는 둥, 엑소가 탈 비행기에 같이 예약했다가 엑소가 타면 사진만 찍고 우르르 내려 버린다는 이야기가 시중에 돌았다. 아이돌들의 세계관, 포지션, 포토카드나 팬미팅을 이용한 상술이 이 즈음부터 널리 사용되게 되었다.   내가 일본에 유학을 하고 있을 즈음에는 프로듀스101 남자버전(이하 프듀)이 대히트를 쳤다. 내 아이돌은 내가 만든다는 생각 하에 팬들은 자기가 지지하는 아이돌을 ‘내 애’라고 불렀고 자신들 스스로를 ‘~~맘’이라고 불렀다. 요 사이 사회적으로 화제가 된 극성 학부모들처럼 몇몇 극성 팬들은 내 애는 내가 지킨다는 마음으로 전략 투표를 하거나 인터넷 상에서의 괴롭힘, 악플 등을 시전하기도 했다.   이런 걸 보면 한국의 아이돌 팬 문화는 단순히 음악과 춤, 비주얼을 향유하는 게 아니라 연예인과 팬 사이의 강력한 감정적 연결을 가지고 유지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고, 시간이 흐를 수록 (명확한 통계는 없지만) 팬 개개인이 아이돌에게 바치는 시간과 돈이 점점 늘어나면서 아이돌의 존재와 활동은 내 시간과 돈에 대한 보상이라는 측면이 점점 더 커졌다.   물론 모든 팬이 이런 식의 보상심리로 아이돌을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만큼 돈과 시간을 쓰겠다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연예기획사들의 상술이 점점 심해지면서 내가 돈과 시간을 썼으니 뽕을 뽑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류의 상술과 상술로 인해 점점 강해지는 보상심리, 인터넷의 발달로 소통이 쉬워지면서 일부 팬들에게서 드러나는 유사연애 혹은 유사육아적 심리와 행동, 팬덤이 점점 커지면서 생기는 군중심리와 그에 의한 잘못된 행동 등 여러가지 모습이 쉽게 관찰할 수 있는 한국 아이돌 팬덤의 모습이라면, 이 이면에 깔려 있는, 즉 자세히 보아야만 보이는 측면도 존재한다. 바로 계급, 연령, 국적, 젠더라는 네 가지 측면이다. 3   계급(소득과 재산), 연령, 국적, 젠더는 팬덤 내부로 어느 정도는 들어가야만 확인할 수 있는 부분들이다. 어느 정도 들어야가야 한다는 것은 꼭 그 팬덤 조직에 들어가야한다기 보다는 그들이 남기는 댓글, 게시물, 사진 등을 어느 정도 모아놓고 자세히 봐야한다는 점이다.   이 네 가지 중에서 인터넷 공간을 통해 쉽게 확인이 가능한 것은 국적과 젠더다. 한국팬과 외국팬 사이의 문화차이와 갈등, 연예인과 팬의 성별/성적지향에 의한 차이에서 생기는 미묘한 혹은 격렬한 갈등은 인터넷 공간을 통해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나는 문화를 지역별로 구분한다면, 대중문화는 언어와 같은 기능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 지역 사람들의 일반적인 사고 방식이 발현되는 수단이면서, 표현을 통해 새로운 고민과 창조, 반성 같은 것을 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차원에서 한국 대중문화, 그 중에서도 아이돌 문화가 가지고 있는 어떠한 가벼움에 주목하고 싶다.   심각한 문제, 밀도 깊은 주제는 피하고 예뻐 보이는 것만 한 군데에 모아두는 가벼움 말이다. 물론 미국이건 일본이건 대중문화에는 다 이런 측면이 있지만 다른 나라는 다른 나라대로 잠시 접어두고 한국의 이야기를 하자면, 인종이나 성, 계급에 대한 문제의식을 전혀 찾아볼 수 없고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 즉 계급적 열망이나 성차별, 인종 차별 같은 문제에 대한 고민이 없고, 이런 문제에 대해 찬반은 커녕 언급을 피하는 방식으로 대응한다는 문제가 있다.   이런 불언급不言及은 사실 상당히 보수적인 것이다. 한국 대중문화의 내면에는 이와 같은 한국 사회의 자기중심성, 보수성이 깔려 있다. 문제는 아이돌로 대표되는 케이팝 산업이 이런 보수성과 자기중심성은 유지하면서 예뻐보인다, 멋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다양한 소수문화, 신문화를 마음대로 전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금년 초에 있었던 아이유의 Lovewins 사건도 이런 맥락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운이 좋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지만 2015년 트와이스 쯔위의 대만 국기 사건 때 쯔위가 결국 공개사과를 했던 일을 우리는 기억한다. 일본 멤버, 중국 멤버 넣어서 다국적 그룹이라고 말하며 케이팝 아이돌이 다양성을 확보한 것처럼 말하지만, 쯔위의 사과는 케이팝이 말하는 다양성이 얼마나 알량한 것이었는지를 알게 해준다. 4   젠더적인 부분도 그러하다. 여성 아이돌들이 보여주는 주체성이나 탈-연애적 모습, 전형적인 남성상에서 벗어난 남성 아이돌들의 모습은 해외에서 상당히 유의미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그런 차원에서 케이팝을 일종의 소수자 문화, 퀴어 문화로 받아들이는 사람들까지 존재한다. 이런 것 때문에 최근의 아이돌 문화를 사회의 변화와 진보를 보여주는 상징처럼 이야기하기도 한다.   사업자들이나 연예인 당사자의 성적 감수성이 높아진 부분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지만, 페미니즘 감수성이나 퀴어 감수성의 향상보다는 ‘그게 돈이 되니까’라고 보는 게 더 합당해 보인다. 알페스나 비게퍼(비지니스 게이 퍼포먼스)가 퀴어에 관심이 있어서 나온 게 아니라 화제가 되니까, 잘생기고 예쁜 남자들이 가까이 붙어 미묘한 느낌을 주는 게 ‘예뻐’ 보이니까 계속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 동안 보여준 퀴어함, 새로운 혹은 다양한 여성상은 돈 앞에서는 다 알량한 것이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아이돌의 음악이나 무대, 외양에 대한 찬사는 인정하지만 아이돌 산업이 그 이상의 문화적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는 듯한 설명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2024년 1월, 뉴진스의 민지가 사과문을 쓴 일이 있었다. 시작은 칼국수였다. 23년 초에 그녀가 침착맨 유튜브에 나와 혼잣말로 “칼국수가 뭐지?”라고 말했던 것을 일부 악플러들이 물고 늘어지자, 24년 1월, 방송에서 ‘본인이 정말 칼국수가 뭔지 몰라서 그런 말을 했겠냐’고 푸념을 한 일이 있는데, 이를 두고 ‘컨셉질’을 한다거나 ‘가르치려 드냐’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결국은 이에 대해 사과문을 쓴 것이다.   2024년 2월, 제로베이스원 김지웅의 욕설 논란이 있었다. 김지웅과 팬의 영상통화 이벤트 중에 이벤트가 마무리되는 상황에서 쌍시옷이 들어가는 욕설을 하는 남자 목소리가 들린 게 발단이었다. 해당 팬은 많은 돈을 내고 참여한 이벤트에서 왜 욕을 들어야 하냐며 이 영상을 X(구 트위터)에 올렸고 소속사에서는 이 욕설은 김지웅이 한 게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이래 저래 두루뭉술한 해명이라서 논란을 더 키우고 말았다. 결국 한터뮤직어워즈라는 시상식에서는 한 팬이 ‘김지웅 탈퇴해’라고 소리를 지르는 게 모두에게 들렸고 이 때문에 몸싸움이 벌어졌다는 말이 나왔다. 일부는 이 영상을 찍어 올린 사람이 외모가 못 생겼거나 사생이라서 욕을 먹은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고, 김지웅이 과거 두 편의 웹드라마에서 동성애자 역할을 했던 것을 두고 게이드라마 다시 찍고 싶냐는 조롱을 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남성 연예인과 여성팬의 관계, 퀴어 혐오 등이 뒤섞여 있다고 본다.   2024년에는 에스파의 멤버 카리나가 사과문을 썼다. 배우 이재욱과의 열애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어떤 팬들은 소속사 사옥 앞에서 전광판 차량 시위를 하기도 했다. 이와 대비되게 배우 이재욱측은 악성 게시물에 대한 법적 대응만을 이야기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2018년에는 현아의 열애설 발표 이후 소속사의 주가가 하락하고 현아의 전속계약도 해지되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연예인 류 모씨의 환승연애를 두고 누가 무슨 말을 했다, 이게 사실 그 증거였다는 둥 불필요한 세밀한 정보를 보도하고 있고 각종 커뮤니티나 SNS에서는 이를 두고 설왕설래하면서 못생긴 남자를 왜 만나냐 같은 말을 주고 받고 있다. 남의 사생활에 이렇게까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대체 뭘까? 요즘 전기세도 비싼데 이렇게 전기를 낭비해야 하는 걸까?   한 남성을 사이에 두고 두 여성이 얽혀 있는 사건인데 모든 발언은 두 여성만 하고 있고, 중요한 축인 남성 연예인은 아무 발언을 하지 않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남성을 사이에 두고 두 여성이 다투는 듯한 모양새가 은글슬쩍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성과 여성이 싸우는 구도를 만들어 놓고 사건의 당시자인 남성은 아무 언급이 없고 대중은 이를 게임처럼 관람하고 있다. 어쩌면 이게 한국 사회의 한 모습일 지도 모르겠다.    남의 일에 관심이 많은 이유에는 알려진 사람이라 ‘씹기 좋아서’라는 이유도 분명 있겠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돈을 많이 벌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최근 연예인들이 가져가는 돈 때문에 제작비 부담이 심해진다거나, 이와 대비되는 다른 제작진들의 수입 문제가 자주 거론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연예인들의 사생활이 까발려지고 기분 나쁜 게시글을 보더라도 그 정도 돈을 받으면 이 정도는 감수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故 설리의 사망 당시 악플러들의 언급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것이 알고싶다 1191회. 2019년 11월 17일 방송) 이런 언급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는 굳이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국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과 타인에게 지나치게 관심이 많고 작건 크건 타인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하는 문화적 특성, 한국의 성차별 등이 뒤섞여 케이팝 팬 문화의 어두운 부분을 만들고 있다. 케이팝의 영향력이 넓어지는 지금, 이런 어두운 부분을 케이팝 문화, 혹은 한국 문화의 특징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서 아무 문제 없고 전 세계에 케이팝을 즐기려면 이런 것도 이해하라는 듯이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나는 이전부터 한류의 몰락은 컨텐츠의 질 문제 보다 한국 사회의 보수성과 차별성 때문에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인종차별, 성차별, 계급차별) 24년이 시작되고 불과 1사분기만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이 한류 몰락의 경고등이 될지 시작점이 될지는 케이팝 팬덤 뿐 아니라 앞으로 우리 사회 모두가 지켜보고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성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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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의 장미] "야간근무와 성희롱에 시달리는 여성 대리기사에게 장미꽃을…"
[프레시안-노회찬재단 공동기획] 3.8 여성의날 노회찬의 장미 나눔 캠페인 ④ 여성 대리기사에게 이명선 기자 "상시적인 야간근무에다가 여성이라는 힘듦이 있지만, 누구보다 당당하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고혜진 씨에게 장미꽃을 전합니다." 부산에서 대리운전기사로 일하고 있는 고혜진 씨에게 장미를 보내고 싶다는 신청이 '3.8 여성의 날, 노회찬의 장미 나눔 캠페인'을 통해 접수됐다. 신청자는 역시 부산에서 대리기사로 일하고 있는 김철곤 카부기상호공제회(카 드라이버 부산·울산·경남 대리운전기사 상호공제회) 공동대표. 김 공동대표는 지난 달 27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고 씨 부부가 같이 대리운전을 하고 있다. 매일 밤 딸 두 명(중학생과 고등학생)을 집에 둔 채 나와 대리운전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당당하게 또 굉장히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며 신청 이유를 밝혔다.  이어 "고 씨는 카부기공제회에서 총무를 맡는 등 많은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며 "다른 대리기사들에게 많은 귀감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아내 '경호'하던 남편도 대리기사 됐다  고 씨는 남편과 함께 대리기사로 일하고 있다. '부부 대리기사' 이야기’는 지난 2월 KBS창원 지역국의 한 프로그램에 소개되기도 했다.  방송에 따르면, 아내가 대리기사 일을 시작하자 걱정이 된 남편은 아내가 대리운전하는 차를 따라다니며 '경호원'을 자처했고, 한 이틀 남편의 '경호'를 받던 아내가 남편에게 "돈 벌러 나왔더니 (기름값 등) 돈 쓰고 다니면 어떻게 하느냐. 걱정되면 같이 하자"고 권유해 남편도 대리기사가 됐다.  그렇게 고 씨 부부는 부부 대리기사로, 서로의 고충을 이해하고 응원하며 3년 6개월째 대리기사 일하고 있다. 여성 대리기사 위한 '보디캠'과 '화장실 앱' 야간에 취객을 주로 상대하는 대리기사의 특성상, 여성 대리기사들은 특히 안전에 취약하다. 김 공동대표는 "옛날보다는 일하는 환경이 좋아졌지만, 여성 대리기사에 대한 성차별이나 성희롱이 왕왕 발생한다"고 했다. 이에 카부기공제회는 노회찬재단의 도움을 받아 여성 대리기사 전용 보디캠을 마련, 보디캠으로 찍은 다큐멘터리 <밤의 유령>을 제작했다. 약 1시간 분량의 다큐는 오는 8일 여성의 날 공개 상영을 앞두고 있다. 추후 유튜브를 통해서도 공개될 예정이다.  <밤의 유령>은 '깜박깜박' 하는 방향지시등 소리와 함께 잔잔한 나레이션으로 시작된다. "밤의 유령, 대리운전 기사들은 스스로를 이렇게 부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노회찬 의원이 말했듯이 존재하되 그 존재를 평소에는 거의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의 작업장은 밤의 거리입니다."(다큐멘터리 <밤의 유령> 중)  여성 대리기사의 고충은 성희롱뿐만이 아니다. 근무 중 화장실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호소하는 일이 다반사다. 그 중에는 생리대를 교체하지 못해 일을 포기한 채 귀가하는 경우도 있다고….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카부기공제회는 심야 개방 화장실 애플리케이션, '한밤의해우소'를 직접 만들었다. '한밤의해우소' 앱은 부산뿐 아니라 전국의 심야 개방 화장실 정보를 알려준다. 물론 '한밤의해우소'는 남성 대리기사들에게도 유용하다.  김 공동대표는 "대리기사들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혼자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 보니 힘든 일이 생겨도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이 고독사(孤獨死)하는 사람도 있다"며 "보다 많은 대리기사가 카부기공동체와 함께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노회찬의 장미> 후원하기 https://together.kakao.com/fun...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노회찬의 장미나눔 캠페인>은 프레시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성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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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의 장미] "너는 너만의 길을 만들렴, 엄마도 나름의 길을 만들어갈게."
[프레시안-노회찬재단 공동기획] 3.8 여성의날 노회찬의 장미 나눔 캠페인 ③ 발달장애인 노동자들에게 이명선 기자  "여성 발달장애인 노동자들에게 장미꽃을 전하고 싶습니다. 능력에 맞는 직업생활을 통해 미래를 설계하고 지역사회에서 존엄한 존재로 살아가기 위한 여성 발달장애인의 발걸음을 따뜻한 미소와 함께 향기로운 꽃으로 응원하고 싶습니다." 이은자 강서퍼스트잡지원센터장이 딸 지현이와 지현이 친구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3.8 여성의 날, 노회찬의 장미 나눔(대리전달) 캠페인'에 꽃 배달을 신청했다. 이 센터장은 발달장애 딸을 둔 엄마로, 발달장애인들의 취업을 돕고 있다. 이 센터장은 지난 달 27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딸 지현이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침마다 나가는 모습이 대견하다"며 "지현이와 지현이 친구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면서 일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지현 씨는 최중증 발달장애인이지만, 하루 4시간씩 주 5일을 출근하는 어엿한 직장인이다. 이 센터장은 "발달장애인들은 일정한 '루틴(rutin)'을 좋아한다. 지현이는 최중증이지만 평일에는 일하고 주말에는 쉰다는 루틴이 있다는 걸 안다"며 "아침에 깨우면 평범한 직장인의 표정이 나온다. '나 일해요'라는 말은 못 하지만 학교나 복지시설에 다닐 때와는 다른 표정이다. 일에 대한 의미는 모르겠지만, 학교나 복지시설에 다녔을 때와는 다른 상황이라는 데 대한 자각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발달장애인이 노동시장에 진입하기까지  이 센터장은 딸 지현 씨가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해 일하는 평범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장애인 노동을 공부하며 기획서를 들고 관공서를 찾아다닌 끝에 지금의 '강서퍼스트잡지원센터'를 설립했다.  이 센터장은 "장애인들도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람들과 지내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이 같은 사회화를 위해 제일 필요한 게 직업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설립 초기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지만 장애인 중에서도 노동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발달장애인 특성에 맞는 지원이 틀이 잡히고 난 뒤로는 좋은 결과를 내고 있다"고 했다. 설립 6년째인 강서퍼스트잡지원센터는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이뤄진 2인 1조 팀을 구성해 서울 강서구 인근 학교의 교실 청소 업무 지원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이 센터장은 교실 청소와 관련한 일화 하나를 소개하며, 발달장애인 한 사람이 사회 구성원이 되면서 주변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전했다. 자폐가 있는 친구가 파트너(비장애인)와 한 초등학교 교실을 청소하면서 계속 소리를 내자 파트너가 "소리 내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그런데 이를 보고 있던 교사가 파트너에게 "저 분은 저게 다예요. 자신의 말을 하는 거예요. 그냥 두셔도 돼요"라며 "소리를 낸다고 주변에 위협이 되는 것도 아니에요. 오히려 맡은 일을 잘하는 분이에요"라고 했다는 것. 이 센터장은 "발달장애인 취업 지원에 적극 나서지 않았을 때에는 스스로도 '장애인이니까 당연히 못 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며 "장애인들도 직장 생활을 통해 한 단계 더 성장하고 있다. 사회 구성원으로 '사회화'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지현아, 너의 길을 만들어가렴"  이 센터장은 취업을 희망하는 장애인과 채용할 학교 간 조율을 해야 하는 지금이 제일 바쁠 때라고 했다. 그럼에도 가끔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며 "너 참 보람 있겠다"라고 칭찬해 준다고 했다. 친정어머니도 이 센터장에게 "지현이 덕분에 달라졌다"며 "지현이 아니었으면 네 얼굴에서 그렇게 빛이 나겠느냐"는 말을 한다고….  이 센터장은 당당한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일하고 있는 지현이와 그 친구들에게 장미를 전하면서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지현이가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어. 지현아, 너는 너만의 길을 만들어가렴.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엄마의 길을 만들어갈게." <노회찬의 장미> 후원하기 https://together.kakao.com/fun...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노회찬의 장미나눔 캠페인>은 프레시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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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의 장미] "핑거푸드로 배 채우며 하루 12시간 일하는 네게 꽃을 보낸다"
[프레시안-노회찬재단 공동기획] 3.8 여성의날 노회찬의 장미 나눔 캠페인 ② 웹툰 작가들에게 이명선 기자 "오늘도 작업실에서 홀로 마감 전쟁을 치르고 있을 정연아! 어느 유명한 영화의 한 대목이 있지. "밥은 먹고 다니냐?" 오늘도 핑거푸드로 배를 채운 건 아닌지 모르겠다. 여성으로 중년의 나이에 매주 웹툰 마감을 하는 네가 참 대견하고, 또 대견해. '저녁 식사를 여유롭게 하고 주말마다 놀러도 간다'는 네 얘기를 들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하며 너에게 꽃을 보낸다. 아프지 말고 100세까지 건강하자, 우리." 웹툰 작가 노이정 씨가 동생이자 동료인 정연 씨에게 '노회찬의 장미'를 대신 전달해 달라며 올린 사연이다. 노 씨와 동생은 출판만화 전성기 순정만화를 시작으로 학습만화를 거쳐 웹툰에 이르기까지 서로를 의지하고 격려하며 한 길을 걸어왔다.  노 씨는 지난 달 28일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정연이는 아주 늦게, 웹툰 시장에서는 드물게 중년의 나이에 일을 시작했지만 '매주 마감'이라는 엄청난 노동강도를 견디며 일하고 있다"며 "매일 12시간씩 일하면서 밥 한 끼 편히 먹지 못하는 현 상태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이어 "비록 꽃 한 송이지만, 정연이가 장미를 건네받는 순간만큼은 환하게 웃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루 12시간 주 5~6일 노동…우리는 다 '을'이다"  "플랫폼 기업이 웹툰 시장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작가들은) 다 '을'이다." 노 씨는 고강도·장시간 노동의 대표 직군이 된 웹툰 작가의 근본적인 문제는 플랫폼 기업의 과도한 수수료에 있다고 봤다.  웹툰 산업의 급격한 성장에도 플랫폼 기업과 작가의 관계가 '갑을'로 심화되는 구조 속에 플랫폼 기업에서 50%에 가까운 수수료를 떼어가도 작가들이 이의 제기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 이에 더해 작가와 플랫폼 기업 간 직접 계약보다 콘텐츠유통사(CP사)를 거쳐 계약이 이루어지다 보니, 작가 입장에서는 또다시 수수료를 떼인다고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작가 1인이 스토리 기획 또는 각색부터 그림 그리기, 색깔 칠하기(일반적으로 '컬러'라고 표현한다) 등 전 과정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플랫폼 기업의 요구대로 매주 마감을 하려면 주인공의 손목시계 하나 제대로 그릴 여유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결국 마감에 쫓긴 작가들은 관련 아카이브에서 손목시계와 의상, 배경 등을 구매해 사용한다고….  또 웹 시장이 커지면 커질수록 컬러 등에 높은 퀄리티가 요구돼 컬러 작업을 위한 전문가를 별도로 고용하기도 하지만, 이 비용마저 작가가 직접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은 전 과정을 작가 혼자 떠맡게 된다고 했다. "플랫폼 기업과 콘텐츠유통사가 떼어가는 이중 수수료를 뺀 웹툰 작가의 월 평균 수입은 200~400만 원 정도다. 여기에서 작업실 임대료, 보조 작가 임금 및 작업에 필요한 비용 등을 빼면 정작 작가 손에 쥐어지는 건 200만 원도 채 안 된다. 이것이 하루 12시간 주 5~6일 노동한 대가다."  지난해 3월 발표된 '웹툰 작가들의 정신 건강 및 신체 건강과 불안전 노동 수준 실태조사'에 따르면, 웹툰 작가들은 하루 평균 9.9시간, 마감 전날의 경우 하루 평균 11.8시간 노동을 한다. 주당 평균 근무 일수는 5.7일이며 주당 평균 근무 시간은 51시간이다.  응답자의 64.4%는 '근무 시간이 적당하지 않다'고 답했다. 29.4%는 육체적 지침이, 31.6%는 정신적 지침이 '항상 있다'고 호소했다. 또 40.7%가 '건강 문제가 있지만 참고 일한 경험이 있다'거나 우울증(28.7%)과 불면증(28.2%)을 경험했다는 응답도 10명 중 3명꼴이었다.  특히 17.3%는 '극단적 선택'을 생각해 본 적이 있으며 8.5%는 '계획을 세워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실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비율도 4%에 달했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자"  노 씨는 "주변에 우울증 약을 먹어가며 일하는 작가들이 있긴 해도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다"며 "이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에, 오히려 현업 작가들이 더 놀랐다"고 전했다.  현재 '웹툰작가노동조합(웹툰노조)'과 '전국여성노동조합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디콘지회)' 등이 웹툰 작가들의 권리 보호를 위해 애쓰고 있다. 이들 노조 역시 웹툰 작가의 열악한 노동 환경의 주 원인으로 플랫폼 기업의 과도한 수수료를 꼽고 있다.  노 씨는 "조사에도 나타났듯 어린 나이부터 고강도 노동에 시달린 웹툰 작가의 수명은 30대"라며 "40대가 넘어가면 본인이 좋아하는 일이라도 더는 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망가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동료와 후배 작가들에게 "아프지 말고 건강하자"라는 말밖에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노회찬의 장미> 후원하기 https://together.kakao.com/fun...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노회찬의 장미나눔 캠페인>은 프레시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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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의 장미] "나의 애인이자 동지에게 노회찬의 장미꽃을 선물합니다"
[프레시안-노회찬재단 공동기획] 3.8 여성의날 노회찬의 장미 나눔 캠페인 ① 이명선 기자 "10여 년간 출판노동자로 일하며 각종 부조리를 겪었음에도 꿋꿋이 일한 나의 애인. 출판은 사양 산업이라는 자조에도 출판노동자의 권리와 보호를 주장해야 한다며 출판노조에 가입한 사람. 이제 곧 결혼을 앞둔 나의 애인이자 출판노동자 동지에게 노회찬의 장미꽃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오○○ 씨가 경기 파주의 원○○ 씨에게 장미를 대신 전달해 달라며 '3.8 여성의 날, 노회찬의 장미 나눔(대리전달) 캠페인'에 올린 사연입니다. 짐작컨대, 출판업에 종사하는 두 분은 동지에서 이제 곧 부부가 되나 봅니다. 축하드립니다. 출판노동은 '열정노동' 중 하나로 평가 받습니다. 책이 좋아서 책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았지만, 출판사 10곳 중 7곳 이상은 5인 미만의 소규모 출판사로 임금과 노동시간 등 고용조건은 열악하기만 합니다. 성차별뿐 아니라 성희롱에 노출되는 일도 종종 발생합니다.  출판사 내 노동조합이 있는 곳은 창비, 사계절, 돌베개, 한겨레출판, 보리, 고래가그랬어, 작은책, 좋은책신사고 등이며 출판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곳은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서울경기지역출판), 출판노동유니온, 출판노동조합협의회가 있습니다.  3월 8일은 '여성의 날'이고, 4월 23일은 '책의 날'입니다. 이번 '책의 날'에는 출판노동자들이 조금 더 활짝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언니에게, 친구에게, 그리고 어머니에게…  "3.8절을 어떻게 기념하는가를 보면, 그 나라의 여성 운동과 민중 운동의 여성관을 알 수 있다."(노회찬 국회의원) 고(故) 노회찬 의원은 2005년 초선 국회의원일 때부터 매년 3월 8일 여성의 날이면 각계각층의 여성들에게 장미꽃을 전달했습니다. 2019년부터는 '노회찬재단'에서 여성 노동자들에게 '노회찬의 장미 정신'을 담은 장미를 대신 전달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기 : 3.8 여성의 날, 노회찬의 장미나눔 캠페인)  이번 장미 나눔 신청에, 많은 분들이 참여해 주셨습니다.  허○○ 씨는 "오늘의 주인공은 어르신들의 케어에 당신의 삶을 다 쏟아 근로해주는 마음이 아름다운 이 시대의 언니"라며 전남 순천의 허○○ 씨에게 장미를 대신 전달해 달라고 신청하셨습니다. 허 씨는 언니에게 "노인의 케어는 우리 사회 누가 해도 해야 하는 일"이라며 "모든 걸 내어주는 여성의 품과 같은 당신의 노동을 사랑해 줘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습니다.  이어 "직장 동료들과 함께 3.8 여성의 날을 맞아 당신의 의미 있는 그 일에 한 번 더 박수 보냅니다. 당신이 계신 그곳도 근로환경이 나아지는 그날을 소망해 봅니다"라며 "이 사연이 행복하게 전달되어 함께 더불어 사는 우리 사회가 사람은 누구나 존엄하며 성평등한 변화를 기도해 봅니다"라고 전했습니다.  노○○ 씨는 "모두가 잠든 이른 새벽. 동이 트지 않아 어둑한 시간에 일어나 출근을 준비하는 내 친구야"라며 부산 동구의 신○○ 씨에게 장미를 대신 전달해 달라고 신청하셨습니다. 노 씨는 친구에게 "허리 구부려 비질을 하고 걸레질을 하며 얼마나 고되고 힘드니. 그래도 힘들다 투정 부리지 않고 묵묵하고 담대하게 역할을 해내는 네가 자랑스럽다"며 "언제나 응원하고 있어. 사랑해~♡♡"라는 말도….  릴레이 장미 나눔을 신청한 분들도 있습니다. 김○○ 씨는 경기 고양의 권○○ 씨에게, 권○○ 씨는 각각 경기 수원과 파주에 사는 서○○ 씨와 이○○ 씨에게 장미를 대신 전달해 달라고 했습니다.  "권○○ 사서 선생님과 함께 일하는 기쁨! 노회찬의 장미로 뜻깊은 하루가 되시길!"  "서○○ 선생님의 열정을 응원합니다^^"  "이○○ 분과장님, 파이팅♡"  또 오○○ 씨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장미를 전달해 달라고 신청했는데요. 어머니의 이름 석자를 강조한 사연이 눈에 띄었습니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가 아니라 서복래 여사, 그 이름 석자를 노회찬의 장미와 함께 불러드리고 싶어 사연을 보냅니다. 몇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와 평생을 부지런하게 살아오시며 자식 둘을 키우셨습니다. 지금도 일주일에 세 번씩 작은 도서관에서 청소하는 일을 하시며 열심히 살고 계십니다. 서복래 여사의 삶은 당당하고 멋진 삶이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런 엄마를 닮은 딸이라는 게 자랑스럽습니다. 엄마, 사랑해요!"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가 청년 여성 노동자인 정이립 디자이너에게, "청년 여성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마음으로 해마다 근사한 보고서를 만들어줘서 고맙습니다"라며 장미를 대신 전달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김철회 KT새노조 조합원은 김미영 KT새노조위원장에게 "우리 새노조를 이끌면서 노동자로서 본질적 목소리를 내는 위원장을 응원하고자 신청한다"고 하셨습니다. 특히 "통신노동자로 부끄럽게 살지 말자"라는 외침, 함께합니다. <노회찬의 장미> 후원하기 https://together.kakao.com/fun...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노회찬의 장미나눔 캠페인>은 프레시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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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울수록 빛나는 연대의 행진 - 2024년 총선에서 여성 주권자가 행동하고 심판해야 나라가 바뀐다-
양이현경(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총선의 계절이 다가왔다. 그러나 답답하기만 하다. 국회의원을 새로 뽑는다고 해서 나의 삶이 나아질 거라는 기대를 하기에는 현실의 한국 정치는 주권자들에게 실망감만 안겨주고 있다. 특히 이번 총선 기간에는 기존 정당을 탈당해서 새로운 정당들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유권자들의 삶을 나아지게 할 정치집단은 잘 보이지 않는다. 여성과 소수자를 배제하고 갈라치기 한 정치인들이 나라를 바꿀 적임자라며 개혁 운운하며 인기영합적인 정책과 상호비방에만 몰두하고 있다. 매일 수많은 뉴스에 정치인, 국회의 소식이 등장한다. 그러나 ‘정치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국회에서 몸싸움을 하거나, 서로 비난하는 장면이다. 이러면서 ‘정치’는 주권자들에게서 점점 더 멀어져가고, 보기 싫은, 관심 갖고 싶지 않은 영역이 되어버렸다. 한 언론에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정치인에 대한 신뢰도는 신뢰 15.4%, 불신은 82.1% 로, 많은 사람들이 정치인에 대한 불신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정치는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정치’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국회는 우리의 삶을 좀 더 낫게 만드는 법제도를 만들고, 그에 대한 예산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곳이기도 하다.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은 주권자(국민)를 대신하여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 의원들이 국가의 중요한 제도와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헌법 제1조에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고 되어있다. 이에 우리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에게 권력을 위임했고 그들은 국민의 뜻에 따라 국가를 운영해야 한다. 이에 주권자인 우리는 국회의원과 공무원들이 우리를 대신해 국회와 정부를 잘 운영하고 있는지, 주권자인 나의 의사가 잘 반영되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요구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대선시기 부터 안티 페미니즘을 이용하고, 구조적 성차별을 부정하며, 아무런 근거나 논리 없이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걸고 나왔다. 그러나 다행히 국회에서 여성가족부 폐지안이 담긴 정부조직법이 통과되지 못해 여성가족부는 존치되고 있지만 사실상 여성과 소수자의 차별과 폭력을 해소하기 위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여성가족부를 폐지하지 못하자 정부 정책에서 인구의 절반인 ‘여성’을 삭제하고 있다. 양성평등기본계획에서 ‘여성폭력’을 ‘폭력’이라고 바꾸고, 여성가족부가 매년 발표하는 ‘통계로 본 여성의 삶’을 ‘통계로 보는 남녀의 삶’으로 바꾸었다. 또한 여성과 소수자의 차별과 폭력 해소를 위한 정책을 없애고 예산을 삭감하고 있다. 이러한 퇴행은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가속화 되고 있다. 관련 지자체의 부서가 통폐합 되거나 여성·성평등 관련 정책과 예산이 축소·폐지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여성을 비롯한 시민의 삶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정부는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고 먹고 살기 힘든 국민 삶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현재 한국 사회는 그야말로 각자도생 사회, 공정이라는 이름하에 남을 짓밟고 올라서야 하는 경쟁사회이다. 어떤 방법을 쓰던 살아남는 사람이 옮은 사람이라는 사회 분위기가 팽배해있다. 여기에서는 차별 받거나, 다른 사람보다 뒤처져 있는 사람은 능력 없는 사람, 문제 있는 사람, 게으른 사람으로 취급받기 일쑤이다. 일하는 사람의 인권과 노동권은 기업의 이윤 창출을 위해서는 침해당해도 되는 참아야 하는 문제로 취급되고,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폭력의 실질적인 해결은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물가는 계속 오르고 생활 유지에 필수적인 난방비와 전기세도 급격히 오르고 있지만 일하는 사람들의 급여는 오르는 물가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에 더해 여성의 임금은 남성보다 30% 적고, 여성은 남성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현재의 우리의 삶은 어렵고 힘들어도, 더 나은 미래가 우리에게 있다면 지금의 답답함과 우울함을 조금 나아질 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는 모든 분야가 퇴행하고 있어 그런 희망을 혹은 괜찮은 미래를 꿈꾸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퇴행을 저지하고 모두가 배제되지 않고, 경쟁이 아닌 공생을 위한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는 주권자인 우리 손에 달려있다. 정치가, 정치인들이 문제가 있다고 해도 우리는 관심을 놓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어떻게 만들지는 우리의 손에 달려있다. 그 중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선거에서 제대로 된 투표를 하고, 대리자인 정치인이 우리가 원하는 사회를 잘 만들고 있는지 예리한 눈으로 감시하고, 때로는 지지하고, 때로는 요구하는 것이다. 안전하고 좀 더 나은 나의 일상은 시민으로서 나의 역할과 권리를 제대로 행사 할 때 만들어진다. 주권자이자 유권자로서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국회와 정부가 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 이유이다.   이에 한국여성단체연합은 1987년 창립 이후부터 수많은 여성시민들과 정치영역의 변화를 위해 활동해왔다. 정치영역에서의 여성과 남성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여성 정치대표성 확대를 위한 제도개선, 유권자 캠페인 등을 진행했다. 또한 여성연합 지부와 회원단체, 연대단체가 총선 젠더정책을 마련하여, 각 선거 시기 때마다 이슈화하여 이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으로 만들어질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또한 총선 기간 동안 핵심 젠더 정책을 각 정당에게 질의하여 답변을 받아 공개하였다. 예를 들면 지난 2020년 제20대 총선에서는 ‘낙태죄’ 폐지에 대한 각 정당의 입장을 묻고, 결과를 공개하여 유권자들의 선택에 도움을 주었다. 이번 총선을 앞둔 현재에도 각 정당에게 젠더정책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의는 진행 중에 있으며, 이에 앞서 작년에는 제22대 총선에 요구하는 젠더정책을 마련하였다. 제22대 국회에 요구하는 젠더정책 과제들은 크게 ▶ 돌봄·기후정의 실현평등한 시민적 삶 보장 ▶ 모두가 평등하게 일할 권리 보장 ▶ 젠더폭력 없는 존엄한 일상과 권리 보장 ▶ 모두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 ▶ 평등하고 정의로운 젠더관계를 위한 사회문화 조성, 6개 영역으로 분류했고, 이 가운데 특히 제 22대 국회에서 주력해야 할 24개의 핵심 젠더정책을 꼽았다.   [핵심 젠더정책 과제] 제22대 국회에 요구하는 총선 젠더정책 자세히 보기  1. 돌봄권 확보의 시작 : 주35시간제 도입 2. 성평등한 기후 정책 수립 3. 국가 성평등 정책 전담부처 '여성가족부' 유지·강화 등 성평등추진체계 강화 4. 포괄적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 5. 다양한 가족·공동체를 포괄하는 법제도 마련 6. 보편적 양육비 대지급제 도입 7. 결혼이주여성 체류 안정성과 한부모 이주여성의 사회보장권 보장 8. 장애여성지원법 제정 9. 여성농민의 법적 지위 보장 및 농민기본법 제정 10. 북한이탈여성을 위한 심리상담 치유 및 가족상담 지원의 확대 11. 여성의 정치 대표성 확대 12. 모든 일하는 사람의 노동권 확보 13. 성평등 공시제 법제화 14.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폭행 또는 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개정 15. ‘가정 보호’가 아닌 ‘피해자 인권’ 중심으로 「가정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전면 개정 16. 성매매·성산업 확산을 막기 위한 법 개정 및 강력한 법 집행 17. 사이버 공간 내 성적괴롭힘의 입법공백 보완책 마련 18.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 피해자 보호제도 강화 및 적극적 활용 19. 군 주둔지역 성착취 방지 및 피해자 보호를 위한 특별법 제정 20. 피해자 명예훼손 처벌 강화를 위한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개정 21. 공공임대주택 확충 및 주거제도 개선 22. 임신중지 의료접근성 및 성과 재생산 권리 보장 23. 공영방송 독립성과 공공성 보장 24. 힘을 통한 평화에서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 구축   또한 지난 12월, <2024 총선! 여성 주권자 행동 ‘어퍼’>가 출범했다. 전국의 146개 여성시민사회단체와 개인 주권자들이 함께하는 ‘어퍼’는 성평등한 국회, 여성과 소수자의 삶을 바꾸는 성평등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주권자들의 목소리와 힘을 보여주어 총선을 넘어 국회의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모였다. 여성 주권자 행동 ‘어퍼’는 그동안 여성과 소수자의 존재를 배제하고 외면해온 남성 기득권 정치를 타파하고 제22대 국회에서 여성·성평등 정책의 강화를 이뤄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전국에서 다양한 시민 참여, 국회 촉구 활동, 성평등한 지역사회를 위한 방안 마련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총선을 한 달 앞둔 3.8 세계여성의 날 당일, 전국 여성 주권자의 힘과 목소리를 결집해내는 어퍼 ‘대행진’을 진행할 예정이다. 우리는 더 이상 분노와 무력감만 느끼고 있을 수 없다. 주권자인 여성과 소수자 삶을 외면하고 퇴행을 거듭한 정치에 책임을 묻고, 정당이 어떤 젠더정책을 공약으로 만드는지, 공천 과정에 젠더 관점이 반영되어 있는지, 어떤 후보자가 앞으로 우리를 대변하여 나라를 잘 운영할지 제대로 따져 묻고 감시해야 한다. 기득권만을 대변하는 대의민주주의가 아니라 그동안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되어 왔던 여성과 소수자를 대변하는 민주주의로 거듭나도록 전국 곳곳에서 우리의 힘을 모아내야 한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함께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과 부정의를 해체하고 소수자를 비롯한 모든 시민의 삶에 평등과 존엄이 보장될 수 있도록 이제는 행동해야 한다.   ※ ‘어퍼’의 의미 : 여성과 소수자의 삶을 바꾸는 성평등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불평등한 세상에 맞서 성차별·불평등한 세상을 뒤집어엎고, 모두의 평등한 삶을 보장하여 삶의 질을 높인다(upper).    
성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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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리가 만들어내는 변화가 궁금해?_모두의숲 편
‘모두의숲’은 23년 4월 강릉 산불 재난이 일어난 이후 재난대피소에서 겪은 사람들의 경험을 성평등 관점에서 기록하고, 더 나은 재난 대피소를 상상하고자 <그럼에도 우리는> 2기에 참여했다. <모두를 위한 재난 대피소> 제안서를 통해 단순히 생존에 대한 구호가 아닌, 서로의 돌봄을 위해 관계를 지키고 모두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꿈꾸고 있다. ‘모두의숲’ 활동가 ‘솜씨’, ‘열매’, ‘짜이’를 만나 그들이 만들고자 하는 재난 대피소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럼에도 우리는>은 성평등을 주제로 다양한 실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활동으로 2022년 1기 13팀에 이어 2023년에는 9팀이 참여하고 있다. 빠띠는 협력을 통해 참여 팀들의 새로운 시도를 돕고 연대를 통해 성평등 문화 시민 네트워크를 확장하고자 한다.   모두가 찾아오고, 모두가 되고싶은 ‘모두의숲'   ‘모두의숲'은 지친 여성 활동가들의 소진을 방지하는 모임에서 시작했다. 구성원들이 활동했던 영역은 환경, 여성, 교육 등 모두 달랐지만, 숲을 기반으로 한 프로그램을 통해 쌓여있는 감정을 얘기하고, 강릉에서 활동하는 여성 활동가로서 힘들고 어려웠던 점을 나누며 서로를 돌봤다. 사업 외에는 마주하기 힘들었던 여성 활동가들이 서로를 통해 몸과 마음의 회복은 물론, 느슨하지만 끈끈한 연대를 만들어낸 시간이었다. 이 경험이 좋아 공통의 관심사가 생기면 짧게 협업하는 방식으로 ‘모두의숲’을 이어가게 되었다. 환경과 생태 교육을 공부한 ‘솜씨’를 중심으로 ‘모두의숲’은 산림복지서비스를 기획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주변의 여성활동가를 만나기 위해 노력했다. 2021년에는 버터나이프크루* 3기에도 참여하며 <성평등한 숲 학교 활동을> 진행했다. 성평등한 관점에서 숲을 바라보는 안내서를 만들고 숲이 가진 건강성과 회복성을 통해 성평등 가치를 전달하고자 했다. 올해 초까지 ‘모두의숲’은 숲을 기반으로 한 활동가의 회복에 초점을 맞췄었다. 하지만 2023년 4월, 강릉 산불 재난이 발생하고 숲과 집이 불길에 휩싸이며 재로 사라졌다. 숲을 기반으로 한 생태계가 파괴되고 강릉 시민의 터전이 무너진 가운데 ‘모두의숲’은 재난대피소에 머무는 이재민 회복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버터나이프크루 : 여성가족부가 2019년부터 시작한, 일상에서 성평등 의제를 찾아내는 청년 프로젝트 지원 사업   다양한 시민들이 달려가는 대피소   2023년 4월, 강원도 강릉시 난곡동에서 발생한 산불이 대형 화재 참사로 이어졌다. 많은 주민이 터전을 잃었고 긴급대피소와 임시주거시설에 머물렀다. 구호단체나, 군인, 시청 직원을 비롯해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일상을 잃어버린 이재민을 찾아왔다. 예술, 생태, 환경, 미디어,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저마다 캐리어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담아 이재민을 도왔다. ‘마술캐리어'로 불리는 캐리어에는 재난 현장과 직접적인 상관은 없지만,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마법 같은 물건들이 가득했다. 강릉에서 독립출판을 하는 사장님은 아이들을 위해 그림 도구와 종이를 지원했다. 봉사하러 왔던 숲 해설가와 씨앗 연구자는 그 자리에서 팀을 꾸려 아이들 놀이 활동에 보조 교사로 활약해주었다. 세월호 가족의 현장지원도 있었다. 배식봉사, 식기류 설거지, 심리지원 봉사 등 다양한 영역에서 힘써주셨다. 이재민들이 재난현장에서 벗어나 일상으로의 복귀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해나갔다.      ‘모두의숲’은 몇몇 구호단체와 함께 아이들의 심리지원부스를 운영했다. 높은 난간이나 계단이 아닌 <어린이 쉼터>를 만들어 서로의 얼굴을 그려주는 활동을 했다. 대피소라는 제한된 환경에서 머무는 아이들의 심리 표현을 자유롭게 발산할 수 있도록 도왔다. 사진 작업에 익숙한 팀원은 <추억의 사진관>을 운영했다. 핸드폰에 있는 사진 혹은 화재로 전소된 집에서 훼손된 사진을 인화하거나 복원하는 활동을 했다. 서로의 얼굴을 그리며 아이들이 웃고 떠든다. 인화된 사진을 손에 쥔 이재민은 사진을 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화재로 생긴 상처를 되돌릴 수 없지만 잔상이 옅어지기를 희망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대피소 내에서 아이들이 생일을 맞이하였습니다. 생일을 앞두고 아이들이 기대가 많았지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 걱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들이 방문하여 깜짝 생일 파티도 해주시고, 선물도 주셔서 아이들이 정말 행복해 했어요. “엄마 나 행복해" 이러면서 좋아했습니다.” 출처 : 「재난현장에도 00이 필요해!」 45p   이재민들의 마음을 돌보기 위해 여러 단체와 개인이 노력을 기울였다. 다만, 관 중심의 일방 소통과 매뉴얼은 여러 주체가 섞인 재난현장에서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방적인 소통이 아닌 다양한 모양으로 자신의 삶을 회복하는 과정을 거칠 때 기후재난 이후의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다양한 세대로 이루어진 재난 대피소에는 어린이 쉼터가 필요하다. 그림으로 아이들의 심리적 지원 활동을 진행하며 나온 결과물 ⓒ모두의숲   이재민의 다양한 목소리   ‘모두의숲’은 다양한 목소리를 담은 재난 매뉴얼을 만들기 위해 ‘그럼에도 우리는’ 2기에 참여했다. 대피소 내 성중립 화장실이 왜 필요한지, 물품이나 자원을 분배할 때 사회적 정체성에 따른 선택권 부여 여부가 얼마나 중요한지, 대피소 내 소통방법이 ‘이재민'이라는 큰 이름으로 묶여 내・외부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건 아닌지 등 매뉴얼에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고자 했다. 그러나 매뉴얼이 제시하는 정형화된 안내보다 이재민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담아내는 게 선행되어야 했다. 내부적으로 열띤 논의를 거쳤다. 다양한 목소리를 어떻게 담아낼 것이며, 이를 현실적으로 구체화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논의 끝에 프로젝트의 방향을 매뉴얼이 아닌 재난 대피소 제안서를 만드는 것으로 선회했다.  ‘모두의숲' 참가자 ‘열매'는 인터뷰를 통해 제안서를 만들기 위해 산불 피해자 인터뷰를 진행하며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았음을 고백한다. 하나의 예로 집을 잃은 건 똑같은데 주거 형태가 세입자인지 자가인지에 따라 보상금액이 달라졌다. 세입자는 기존에 사는 집의 계약이 해소되어 또 다른 집을 구해야 했다. 하지만 보상받은 금액으로 새로운 집을 구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재민이자 세입자인 시민은 마음을 추스르기 위한 여유도 없이 임시로 머무는 대피소에서 경제생활을 이어가야만 했다. 이재민의 실생활권 문제도 있었다. 장애를 가진 자식을 둔 고령의 이재민은 임시로 엘리베이터가 있는 거주 시설에 머물게 되었다. 자식의 거동이 불편하므로 이곳에 왔지만 밭을 일구며 생활했던 기존의 일상은 잃어버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건강이 점점 악화되었다. 주거 지원은 있지만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이 깊어져 갔다. ‘이재민'이란 뭉뚱그려진 이름에는 제 각각 살아온 일상의 모습이 지워져버리고 있었다.      ‘솜씨’도 공간에 대한 문제를 언급한다. 이동식 주택에 거주하는 이재민은 가족 단위로 생활하게 되는데, 주거 공간이 원룸처럼 되어 있어 성별・연령 차이에 따른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또한, 대피소는 설치된 화장실이 성별로 구분되어 있어 아들이 장애가 있거나 부모가 치매가 있는 경우 보호자가 보조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임시 주거시설은 말 그대로 ‘임시'이기 때문에 집처럼 편안함을 기대하는 건 어렵다. 다만, 다양한 맥락이 고려되지 않는 시설에 오래 머물수록 이재민들의 일상 회복도 더디게 진행되지 않을까.  그럼, 같은 강릉이지만 재난피해에 비교적 피해를 받지 않는 시민은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짜이’는 피해 주변 지역을 인터뷰하며 그렇지 않다는 걸 발견했다. 인터뷰에 응한 할머니는 겨울을 대비한 땔감을 많이 갖추고 계셨는데, 귀가 잘 들리지 않고 집에는 장애가 있는 아들이 누워있어 화재가 발생했을 때 대피하는 게 쉽지 않아 보였다. 화재 경보는 알림 등을 이용해 소리로 전파되는 경우가 많은데, 듣기 어려운 노년층과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은 화재 피해에 노출될 가능성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훨씬 컸다. 기후위기로 산불이 더 자주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서둘러 이들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였다.   모두의숲 솜씨가 재난 현장에서 자료 수집을 진행하고 있다. ⓒ모두의숲   모두의 회복을 위한 모두의 제안서   ‘모두의숲’이 만들어낸 제안서는 성평등한 관점을 바탕으로 대피소 생활을 말하고자 한다. 여성청소년이 월경대의 위치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표시를 하거나 배부처를 만든다. 반려견과 임산부가 편히 쉴 수 있는 쉼터를 조성한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에는 성별에 따른 구분이 아닌,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보호자의 편의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성적지향을 지닌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게 한다. 모두가 안전하고 회복할 수 있는 대피소가 되도록 공간을 이끌고 싶다. 그리고 이 제안서가 2023년 강릉 산불의 재난 현장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재난 현장에서도 적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 꼭 재난 당사자가 아니어도 좋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목소리를 내면 재난 대피소가 몸만 피신하는 공간을 넘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회복의 공간으로 바뀌지 않을까.     “짝꿍도 제가 피해자 인터뷰를 가면 “너는 왜 그걸 하니” 라고 할 때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 주변에 있는 피해자를 보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니까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이재민들을 보기 시작한 거죠. 이렇게 주변이 바뀌는 모습들. 대학원 동기들이 기사가 한 번 나고 이후 산불에 대한 소식이 없으니까 “그래서 어떻게 되고 있느냐” 이런 것들을 물어봐 주는데 이렇게 사람들의 관심이 늘어나는 게 제가 기대하는 변화 같아요.”(열매)   “보통 강릉 산불 재난처럼 사건이 일어나면 재난, 사회적 이슈 이런 큰 이름으로 덮이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금방 사라지죠. 근데 피해 당사자들은 계속 남아있어요. 사라지지 않거든요. 그래서 개인의 개별성이나 관점을 잃지 않고 버티는 게 필요한 거 같아요. “불이 나고 망했어.” 이렇게 하는 게 아니라 여기서 생태적으로 지낼 수 없나? 미디어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거지? 대피소도 조금만 공적으로 접근하면 좋아질 것 같은데? 이런 고민하고 있어야 해요. 저는 각자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잊지 않고 다시 해내는 힘 그걸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면 뭔가 다시 할 수 있는 힘이 생길 거 같아요.”(솜씨)   “주변 친구들이 “왜 자꾸 거기 가서 그렇게 열심히 해?”라고 할 때 화도 내고 부딪히기도 많이 부딪혔는데 친구들이 기분 나빠할 수도 있는데 한 번은 다시 물어보더라고요. 저도 그런 관심이 결국에는 변화된 세상을 만들지 않을까 이런 부분이 있어요. 그리고 이재민 중에서도 몇몇 분들은 산불로 힘들긴 하지만 내가 상황이 좋아진다면 이제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말을 하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따뜻함을 많이 느꼈어요.”(짜이)             👉모두의숲이 제안하는 <모두를 위한 재난 대피소> 제안서가 궁금하다면?  https://bit.ly/guide4_00   📝 글ㅣ우디 (데모스X5팀 크루) 소소한 주변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활동가 📷 사진 | 데모스X5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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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리가 만들어내는 변화가 궁금해?_서페대연 편
'서페대연'은 '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 동아리'라는 풀네임에서 알 수 있듯 서울 기반의 페미니즘 운동단체인 '서울여성회'에서 이끄는 공동체로, 대학에서부터 성평등한 문화를 만들어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고자 한다. 2017년 공식으로 출범해 6년째 활동을 이어오고 있으나, 페미니즘 '리부트(reboot)'와 동시에 더욱 거세진 '백래시(backlash)'로 인해 대학사회에서 점차 비가시화하는 페미니즘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올해 <그럼에도 우리는> 2기에 참여해 <페미니즘 원데이 클래스 : 원데이가 평생이 될지도>를 진행한 것도 페미니즘 운동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서였다. 서페대연 활동가 지수를 만나 대학 내 페미니즘 운동의 어려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동을 지속하는 이유를 들어봤다. *<그럼에도 우리는>은 성평등을 주제로 다양한 실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활동으로 2022년 1기 13팀에 이어 올해는 9팀이 참여하고 있다.  서페대연 활동가 지수(왼쪽)와  빠띠 활동가 리디아가 <그럼에도 우리는2>에서 서페대연이 진행한 프로젝트에 관해 이야기 나누고 있다. ⓒParti 대학 내 점점 강해지는 '안티-페미니즘'에 대항하기 위하여 서페대연은  대학 내 페미니즘 활동을 하고 싶은 학생들이 있고 일부 자생적으로 활동하는 이들도 있지만, 현실의 문제로 좌충우돌하는 상황에서 서울여성회의 선배들과 이 문제를 해결하면서 대학에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2017년부터 대학 내 페미니스트 공동체를 만드는 활동을 해왔으나, 코로나19 이후 대학 캠퍼스에 활기가 돌기 시작한 뒤로도 페미니즘은 백래시로 인해 '페미니즘'이란 단어를 꺼내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에브리타임(전국 400개 대학을 대상으로 학업 지원 서비스 및 커뮤니티 정보를 제공하는 플랫폼)'에서도 페미니즘 관련 커뮤니티 활동은 철저하게 필터링됐다. 이렇게 페미니즘 공동체가 차별과 억압을 경험하는 상황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떻게 다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안전한 공간을 만들고 공동체를 회복할 수 있을지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그럴수록 우리가 더 가까이, 더 넓게 다가가서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그럼에도 우리는>에 참여해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해보기로 했다.   페미니즘의 문턱을 낮추는 ‘원데이 클래스’  초반에는 방학 중에 주1회씩 총 3회차로 진행되는 장기 프로그램을 구상했다. 그런데 서페대연 기존 회원들만 대상으로 한다면 참여자를 모으는 데 무리가 없겠지만, 우리의 취지는 기존 회원 외 더 많은 사람을 모으는 것이었기 때문에 방학 중에 프로그램을 여는 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학기 시작 무렵으로 진행 시기를 옮기고, 더 쉽고 가볍게 참여할 수 있도록 원데이 클래스로 형태를 변경했다. 그리고 원데이클래스를 열기에 앞서 기존 회원들과 '페미니스트데이'란 이름으로 워크숍을 열기도 했다. 워크숍에서는 서페대연이 지향해야 하는 페미니스트 공동체 상(像)은 무엇인지, 페미니스트 공동체로서 어떤 문화와 언어와 규칙을 만들어가야 할지 논의하고 마음을 맞춰나가는 시간을 가졌다.  원데이클래스는 페미니즘 연구자 선생님들의 강연을 중심으로 참여자들이 편하게 서로의 관심사나 고민을 공유하며 친밀감을 쌓을 수 있도록 기획해 9월 11일, 12일 2회에 걸쳐 이화여대와 덕성여대에서 진행했다. 첫 회는 이화여대에서 진행되었는데,  여성학자 전희경 선생님께서 <페미니즘으로 다시 만난 세계>라는 제목으로 페미니즘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조목조목 쉽게 잘 설명해주셨다. 선생님께서 페미니즘과 차별, 인권을 연결해 설명해주셔서,  참여하신 분들도 페미니즘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소감을 남겼다.  페미니즘이 무엇인가에 관한 내용을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제 상황을 바꾸기 위해 우리가 모이고 뭉쳐야 한다는 이야기도 원데이 클래스에서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사전에 선생님께 페미니즘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도 해주십사 부탁드렸고,  이를 반영해 선생님께서는 강의 중에 '지속가능성'으로서의 페미니즘 공동체의 필요성에 관해서도  잘 설명해주셨다. 강의에 이어진 참여자 토론에서는 인상 깊었던 강의 내용과 함께, 책이나 강의로만 접하는 페미니즘이 아니라 실제 대학 사회에서 구현하는 페미니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두 번째 회차에서는 김주희 덕성여대 차미리사교양대학 교수님께서 <백래시, 동시대 경향성과 페미니스트 대안>이란 주제로 백래시에 관한 강의를 해주셨다. 김주희 선생님께서도 서페대연 단체를 소개해주시며 '함께 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해주셔서 감사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페미니즘을 더 공부해보고 싶다'는 피드백이 나오기도 했다. 두 차례 원데이클래스를 마친 후에도 참여했던 분들과 연을 이어가기 위해 영화 모임이나 운동 모임을 열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서페대연이 접점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이것저것 시도했다(웃음). 원데이클래스 이후 서페대연에 가입한 참여자들도 있다.   "원데이클래스 참여자분이 "이런 게 없는 줄 알고 속상해 하고 있었는데, 홍보 포스터 보고 남들 몰래 사진 찍어놓고 찾아왔어요" 하셨던 게 기억에 남아요. 기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고... 대학 캠퍼스 안에서 페미니즘 활동 홍보물을 찾아보는 것조차 힘들어진 상황이 된거죠. 서페대연 홍보물이 거의 유일한데, 그마저도 내가 이걸 보고 있는 장면을 누가 볼까봐 무서워서 몰래 봐야 하고요. 바로 이런 지점에서 서페대연이 학내에서 계속 페미니즘을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구나, 싶어서요."  (지수) 서페대연이 기획한 ‘원데이 클래스'에서 김주희 교수님의 백래시에 관한 강의를 듣고 있는 참가자들의 모습 ⓒ서페대연   더 많은 사람에게 더 쉽고 가까이 다가가려면 다양한 활동 방식이 필요하다 동아리를 운영하려면 지켜야 할 형식 같은 것들이 있어서, 활동을 기획할 때도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보다는 전통적인 방식을 적용하는 편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우리는2>에서 다른 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창조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는 걸 보면서 좋은 영감을 많이 받았다. 예를 들어  ‘등대’ 팀이 게임을 매체로 활용한다거나, ‘선을넘는몫소리’ 팀이 이주여성 당사자가 이야기하는 자리를 열거나, 이런 방식이 저희에게는 낯선 것들이었다. 페미니즘도 전통적인 ‘운동’ 방식이 아니라 다양하게 풀어낼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원데이클래스 참여자들과 운동 모임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예전 같았다면 ‘페미니스트끼리 왜 운동을?’ 했을 거다(웃음). 사실 이번에  원데이클래스를 4회 정도 하고 싶었는데 강사 섭외에 실패해서 2회밖에 진행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또 2회 모두 남녀공학이 아니라 여대에서 진행한 것도 아쉽다. 앞으로 원데이클래스는 꾸준히 했으면 좋겠고, 처음 기획대로 방학 중 3주차 워크숍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페대연이 대학 내 페미니즘 불씨를 살려내려는 이유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면 안 된다’는, 세상이 성평등하게, 더 민주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신념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 운동을 지속하는 가장 큰 원동력인 것 같다. 세상을 바꾸려면 행동하는 누군가가 있어야 하고, 그렇다면 나 또한 그 ‘누군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하나는 존엄한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다. 활동하면서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고 있다’는 믿음이다. 이 믿음을 지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어려운 세상 아닌가. 사회의 요구에 순응하지 않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사는 ‘고집’을 부리다 보면 활동을 지속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또 하나는, ‘사람’이다. 서페대연 회원들 중에도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운동을 계속 한다”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많다. 성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가 공동체다. 페미니즘 공동체를 재건하고 새로 구축해 나가는 것. 서페대연은 대학사회 안에 페미니즘 공동체를 구축해 이를 기반으로 대학사회를 변화시키고, 이 변화를 대한민국 사회 전체로 확장하고자 한다. 그래서 대학 내 페미니스트 공동체를 만들어 이 공동체의 힘으로 대학 문화와 제도, 구조를 바꿔나가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대학 문화, 대학 사회 자체가 붕괴된 상황에서 이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대학에서 학생이 ‘주인’이기 보다 ‘소비자’, ‘고객’이 되어가고 있으니까.  정말 슬플 때는 서페대연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사람들이 모를 때다. 코로나 시국에 정말 힘들고 답답했던 게, 학교에 갈 수 없다 보니 에브리타임에서 우리를 필터링하면 존재를 알릴 방법이 없는 셈이었다. 그래서 회원들이 순번을 짜서 각자 아이디로 저희 홍보물을 계속 올렸다. 삭제되면 다음 사람이 다시 올리는 식이었다. 그렇게 최대한 서페대연 소식이 노출될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학기 초에는 서페대연 회원들 에브리타임 계정이 다 신고 당해서 정지되곤 한다(웃음). 그렇게 어렵게 홍보하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 “에브리타임에서 보고 왔다”고 하면 정말 감격스럽다. 이 한 명을 위해 우리는 계속 회원 수십 명 계정이 정지되어도 홍보를 이어가고 있다. 새로 찾아오는 회원 한 명을 위해 캠퍼스 안에 홍보물 붙였다가 떼이면 다시 붙이고, 욕 먹고, 다시 붙이고 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우리가 여기 있다, 당신 혼자가 아니다”라고 알려주기 위해서.     “(숫자로 꿈꾸는 세상을 설명해달라는 질문에) 서울 지역 내 대학이 몇 곳이나 되죠? 서울 지역 전 대학에  페미니즘 공동체가 생기는 것. 서페대연 지회면 더욱 좋겠지만(웃음) 아니어도 상관 없습니다. 페미니즘 공동체 자체가 없는 학교가 많거든요. 어느 학교에나 페미니스트가 있으니, 이들이 자기가 있는 곳에서 활동하고 지지 받을 수 있는 공동체를 만날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가는 게 서페대연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수) 워크샵 활동을 하며 변화를 만드는 실천을 고민하는 서페대연 팀 ⓒ서페대연 📝 글ㅣ한승희기자로 소셜 섹터에 발을 들여놓은 뒤 다양한 조직에서 매니저, 활동가, 연구원, 기획자로서 이런저런 글을 써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사람들과 현장 이야기에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사진 | 데모스X5팀    
성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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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리가 만들어내는 변화가 궁금해?_닛더피스클럽 편
평화라는 단어가 얼마나 소중한 단어이고, 희생이 따르는 단어인지 알게 되는 요즘이다. 연일 국제적으로 안 좋은 뉴스가 나온다. 그런 뉴스들을 접하면 모두가 다 같이 평화를 추구하고, 연대할 수는 없는 걸까.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분명 나만 추구하는 건 아닐 텐데 말이다. 나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이고, 그 모임이 커뮤니티가 되고, 그 커뮤니티가 다시 다른 커뮤니티와 엮여 확장성을 갖게 되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닛더피스클럽은 뜨개질을 통해 평화를 엮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뜨개질을 통해 세상에 필요한 가치를 전하는 장을 만들고, 함께 행동한다. 이런 모임이 새로운 모임으로 계속 엮이고 확장될 수 있다면, 어쩌면 정말 평화가 올지도 모르겠다. “내일 세상이 무너져도, 나는 사과나무를 심겠다.” 인터뷰하면서 계속해서 뜨개질하는 닛더피스클럽을 만나 보았다.   *‘그럼에도 우리는'은 성평등을 주제로 다양한 실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활동으로 2022년 1기 13팀에 이어 올해는 9팀이 참여하고 있다.   ‘닛더피스클럽’의 팀원 라일락(왼쪽)과 봄봄(오른쪽)이 워크숍 활동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닛더피스클럽   닛더피스클럽의 탄생   닛더피스는 평화를 엮는다는 의미다. 영어단어 닛(Knit) 자체가 바늘을 의미하기도 한다. 단순 뜨개질이 소품을 만들 수도 있지만,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엮을 수 있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추구하는 가치를 나열해보면, 생태주의, 비건, 동물권, 퀴어 등이다. 이런 가치들을 뜨개질하면서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뜨개질을 통해 기후 행진에 필요한 깃대와 퀴어한 모자를 만들고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라일락과 봄봄. 두 사람은 이벤트를 통해 만났다. 라일락이 운영하던 작업실에서 진행한 이벤트에 봄봄이 당첨됐다. 인스타 이벤트였는데, 봄봄은 출근하기 전에 이벤트에 참여했다. 그렇게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됐고, 각자의 이야기를 하던 중 서로가 잘 맞는다는 걸 알게 됐다. 시너지가 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바로 같이하게 됐다.  둘 다 제로 웨이스트 방식으로 뜨개질하고 싶다는 니즈가 있었다. 소재도 친환경으로 쓰고 싶었다. 대개 아크릴이나 플라스틱 제품을 많이 쓰는데 값이 싸고 취급하는 곳도 많지만 둘 다 그런 제품 사용을 지양했다. 재사용 면실을 사용하자는 등 소재 면에서도 니즈가 일치했다. 또한, 멋진 결과물을 만드는 것에 몰두하지 않았다. 뜨개질하면 물질적인 결과물이 나오지만, 더 중요한 건 같이 하는 사람들과 활동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서로의 생각이 잘 맞았다.   ‘닛더피스클럽’의 라일락이 워크숍 참가자에게 뜨개질 과정을 알려주고 있다. ⓒ닛더피스클럽   닛더피스클럽의 닛(Knit) : 기후위기 행진과 연말 모임 활동   기후위기 행진은 라일락, 봄봄 모두 처음부터 하고 싶은 활동이었다. 둘 다 관심 주제가 기후위기여서 당연히 참여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예전에 페미니스트 그룹에서 뜨개질로 현수막을 크게 만들어 행진했던 걸 본 적이 있었다. 그걸 보고 우리도 우리만의 가치를 담은 제품을 만들어서 행진해보자는 쪽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그럼에도 우리는 프로젝트를 통해 뜨개질 워크숍을 열었다. 참가자들 대부분이 뜨개질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었지만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뜨개질을 하며 깃발을 만들었다. 7~8명이 함께 작업을 했는데 힘들면 잠깐 뜨개질을 내려놓고 소파에 기대거나 스몰토크로 쌓인 긴장을 푸는 편안함이 좋았다. 이후 기후위기 행진에 참여했다. 피켓이나 박스로 만든 게 아니다 보니 많은 관심을 받았다. 어떻게 만들었는지 물어보신 분들도 계셨고 사진도 많이 찍으셨다. 완벽하지 않지만, 우리의 방식으로 가치를 전달하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다줄 때 또 다른 연결고리가 생기는 거 같았다.   기후위기 행진이라는 큰 산을 넘으니까 다음에는 어떤 방식으로 워크샵을 하고, 어떤 재료를 사용할지 등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다만 아쉬운 건 깃발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온 다양한 이야기들과 결과를 어떻게 아카이빙 하고, 기후위기 행진 후기 나눔을 하는 시간이 부족했던 것 같다. 이런 부분을 다음에는 어떻게 해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2023년 우리의 일정은 마무리 단계다. 기후위기 행진했을 때가 하이라이트였다. 현재는 그동안 했던 것들을 아카이빙 해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연말에는 <퀸의 뜨개질>을 보면서 뜨개질 모임을 할 예정이다. 퀴어와 뜨개질이 섞여 있는 영화인데 활동 마무리도 영화처럼 편안한 분위기에서 서로 돌보는 시간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닛더피스클럽’의 봄봄과 라일락 및 워크숍 참여자들이 923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하고 있다. ⓒ닛더피스클럽   뜨개질로 만드는 커뮤니티와 자기 효능감   “가장 뿌듯했던 건, 코바늘을 처음 사셨던 분들이 지금은 각자 알아서 실과 코바늘을 사서 활동하고 계시다는 점이다. 뜨개질이 본인만의 취미가 된 거다.” (라일락)   현재 오픈 채팅방도 운영중인데, 구성원들이 알아서 기획하고 모임을 하신다. 이런 느슨한 관계가 만들어졌다는 게 변화라고 생각한다. 뜨개질로 만들 수 있는 게 다양하고 일상에서 어디서든 할 수 있으니까 하고 싶은 것도 많아지신 것 같다. 본인이 만든 걸 단톡방에 올리면 지지하고 응원하는 분위기도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데 한 몫하고 있다. 또한, 뜨개질을 통해 자기효능감을 찾은 분들도 있다. 뜨개질은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 그것이 어떤 모양이든, 서툴든 아니든 내가 만들어낸 창작물이다. 그러다 보니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실제 자기효능감을 되찾은 분도 계셔서 뿌듯하다.   “초반에는 제가 알려주는 선생님이었는제 이제 참여자들이 저를 알려주고 있다. 이것 역시 큰 변화라고 생각한다.” (봄봄)   “일상이 무료하고, 고립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뜨개질로 다시 자기 효능감을 되찾은 분도 있다고 느꼈다. 큰 행위가 아님에도 성취감을 주고, 효능감이 증가하는 변화를 만들어 냈다고 생각한다.” (라일락)   유튜브에는 다양한 도안을 똑같이 만들어내는 영상도 있고 멋진 결과물을 지향하는 오프라인 모임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모임에서 중요한 건 내가 원하는 모양을 만들면서 만드는 것 자체로 새로운 도안이 되게 하고 싶었다.  뜨개질이 서툴러 한 코 한 코가 일정하지 않아도, 모양내는 대로 자유롭게 만들며 예쁨이 규격화되어 있지 않은 느낌으로 모임을 이끌었다. 뜨개질은 열린 기술과 같다. 각자의 노력과 정성이 담긴 뜨개질을 누구에게도 공유할 수 있고 활용하면서 수정할 수 있다. 참여자들도 자연스럽게 이 부분을 이해하면서 좋아해 주셨다. 한편, 뜨개질이 사회적으로 여성적인 취미로 이야기되기도 하고, 여성들이 많이 하기도 한다. 이런 부분에서 접근을 다르게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이번 워크숍에도 성별을 구분해 참가자를 받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참여자 성별의 편향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남성분들 참여는 없었고 논바이너리, 퀴어 분들은 참여하셨다. 활동을 성별로 가늠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다양한 참여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모임이 되도록 계속 고민해 나가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워크숍에서 산호초 모양의 뜨개질을 공유하고 있는 닛더피스클럽 워크숍 참가들 ⓒ닛더피스클럽 ⓒParti   닛더피스클럽의 또 다른 ‘엮음'을 위해   “작은 목표 중 하나는 시민단체와 연대해서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다. 동물해방운동을 하는 새벽이생추어리에서 겨울을 날 때 필요한 돼지 옷이 필요한데 시중에서 돼지 옷을 팔지 않으니까 이불을 많이 쓴다. 그런 돼지에게 뜨개질로 만든 옷을 주면 좋지 않을까. 물론 돼지가 잘 입지 않는다고 한다. (웃음) 아무튼, 필요할 것 같은데 없는 부분들이 많이 있다. 그런 부분들을 찾아서 만들어 보고 싶다.” (봄봄)   “닛더피스클럽과 더불어 운영하는 커뮤니티를 잘 엮고, 각각의 커뮤니티를 통해서 필요한 부분을 채우고 싶다. 뜨개질을 통한 효능감과 함께 다양한 가치를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날씨가 추워지기 전 한강에서 비건 포틀럭 파티를 하며 산호초를 뜨개질했다. 자연스럽게 기후위기와 산호초의 멸종 위기가 나오며 다양한 정보를 나눴다. 뜨개질의 목표가 제품의 아름다움이 아닌, 과정을 통한 또 다른 가치를 연결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도록 커뮤니티를 잘 엮고 싶다.” (라일락)   📝 글ㅣ한승희기자로 소셜 섹터에 발을 들여놓은 뒤 다양한 조직에서 매니저, 활동가, 연구원, 기획자로서 이런저런 글을 써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사람들과 현장 이야기에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사진 | 데모스X5팀
성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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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리가 만들어내는 변화가 궁금해?_등대 편
등대(Lighthouse) 팀은 ‘그럼에도 우리는’ 2기 프로젝트에서 성평등 문화에 대해서 관련된 보드게임 만들고 있는 팀이다. 보드게임을 통해 단어 블록을 쌓으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쉽고 재미있게 성평등 및 성소수자 단어나 이슈에 대해 대화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자 한다는 등대팀을 만나보았다.    *‘그럼에도 우리는'은 성평등을 주제로 다양한 실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활동으로 2022년 1기 13팀에 이어 올해는 9팀이 참여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을 꾸려가는 빠띠의 활동가 포터가 그럼에도 우리는 참여팀 ‘등대’의 팀원 일리(왼쪽부터), 화영, 혜연, 한결과 인터뷰를 나누고 있다. ⓒParti   서로의 가치가 뭉쳐 ‘등대’가 되기까지   한국에서 무섭게 다뤄지는 성평등, 성소수자 이슈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풀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먼저, 화영의 경우 프랑스에 살면서 소수자 친구들을 많이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성평등 이슈에도 관심과 경험이 많아졌다. 그런데 화영이 한국에 돌아와서 보니 성평등 이슈에 있어서 한국에서는 이미 관심있거나 아는 사람들끼리만 모였다는 느낌이 들었다. 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성평등 관련 활동을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고 이런 맥락에서 등대팀의 활동 방향과 개인적인 니즈가 잘 맞았다.  일리 또한 성소수자 주제에 관심이 있었는데 게임을 통해 주변 친구들에게도 성소수자에 대해 소개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될 것 같아 합류하기로 했다. 특히, 기능적으로나 가치적으로 다양한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포괄적 디자인(inclusive design)에 관한 관심도 있었는데, 이를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기회인 것 같았다. 혜연은 대학원 친구들을 만나면서 성평등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됐는데, 성소수자 이슈와 성평등에 대한 가치관을 더 잘 알고 싶은 마음이 들어 프로젝트에 함께하고 있다. 또 시각디자인과를 전공하면서 항상 컴퓨터로만 작업을 했기에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실제적인 활동 중심으로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한결은 이전에 교육이나 환경에 관련된 사회 문제에 대해 활동을 해오고 있었다. 성소수자 문제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그 활동 방식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데, 그러던 중 대학원에서 디지털과 융합하여 어려운 문제들을 재밌게 풀어내는 작업을 보게 되었다. 특히, 대학원에서 혜연이 만든 VR로 혐오표현을 지우는 게임*을 보면서 사회적인 이슈를 흥미로운 경험을 통해 풀어낼 수 있구나 알게 되면서 성소수자 이슈를 다루는 게임도 만들어보고 싶었다. 어릴 적부터 어두운 바다의 길을 밝혀준 등대를 좋아한 한결은 어느 날 학과 다큐멘터리 영상에서 교수님이 꺼지지 않는 대학원 연구실의 불빛이 등대 같다고 말한 게 기억에 남았다. 이후 다양한 팀프로젝트의 활동명을 ‘등대’로 하기 시작했다. 물론 대학원생은 고단하고 치열하게 지내니까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실을 등대로 표현하는 건 자조적인 면이 있지만, 연구자이자 예술가인 우리가 등대처럼 다양한 이야기들의 가치를 밝히고 그 외연을 확장해나가겠다는 의미로써 등대라고 팀 이름을 정했다.   VR로 혐오표현을 지우는 게임 : 오늘의 행동 사회적협동조합이 만든  '혐오에 대항하는 도구KIT'를 VR로 구현한 게임(자세히 보기) ⓒ오늘의행동   등대의 불빛이 만들어지는 과정   처음에는 여러 보드게임을 직접 해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한결이 보드게임 워크숍을 다녀와 책자와 5가지 게임을 들고 왔다. 직접 해보고 논의하면서 어떤 게임을 모티브로 삼을지 함께 고민한 끝에, 자음과 모음을 결합하는 단어게임을 만들기로 했다. 어렵지 않으면서 재밌고 교육용으로도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단어게임에서 어떤 요소를 더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식으로 아이디어를 쌓기 시작했다. 교구를 만드는 과정도 흥미롭다. 처음에는 납작한 카드 모양의 모형을 준비했다가 우연히 연구실에 있던 정사면체 목재 블록이 눈에 들어와 그걸 활용해 교구로 만들어보게 되었다. 만들어 보니 목재라는 재료가 주는 따듯함이 좋았다. 또 단어를 쌓아간다는 행위도 게임과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블록은 바닥에 두고 조합할 수도, 위로도 쌓을 수도 있다. 단어 블록을 쌓으면 예컨대 책상에 두는 DP(전시용 사진)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 하려고 한다. 게임 중이 아닌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주고 싶어 고안한 아이디어다.  게임의 취지에 따라서 게임을 할 때 최대한 배제되거나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했다. 포괄적인 디자인을 적용하여 자음과 모음의 글씨체는 다색의 글씨체인  길벗체*를 사용했다. 받침이 없는 단어 블록의 빈칸에는 다양한 성 정체성을 나타내는 프라이드 플래그**도 추가할 수도 있어 시각적으로도 재밌는 요소를 주었다. 마지막으로 게임의 방식은 대부분의 한국이나 아시아의 보드게임처럼 점수제 같은 경쟁방식보다는 협동게임을 중심으로 제안하려고 한다. *길벗체 : 성적소수자 활동가이자 자긍심의 무지개를 고안한 길버트 베이커(Gilbert Baker)를 기리는 길버트체처럼 한글 글꼴 글자색을 무지개색으로 한 한글 글꼴이다. (자세히 보기) **프라이드플래그(pride flag) :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나타내는 다양한 정체성을 표현한 깃발이다.   등대팀이 만든 프로토타입 보드게임으로 '빠띠'단어를 만든 모습 ⓒParti   함께 단어를 쌓고 발화하는 시간   발화의 사전적인 의미는 ‘소리를 내어 말을 하는 현실적인 언어 행위’ 다. 한국에서는 성평등이나 성소수자의 주제가 유독 무겁게 느껴진다. 이에 대한 말을 꺼내기도 어렵고 또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도 전혀 많지 않다. 등대는 보드게임을 매개로 좀 더 일상적으로 성평등이나 성소수자에 관한 단어, 예컨대 ‘퀴어'에 대해 입으로 꺼내고 또 그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을 마련하려고 한다. 그것은 성평등 활동가나 성소수자 당사자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을 포함한 다양한 사람들 간 대화의 장이 될 것이다. 막상 말해지기 시작하면 어렵게 느껴졌던 주제들이 침묵의 무게를 벗고 한편의 후련함을 주지 않을까.   “알지만 모르는 척하고 말하지 않는 게 아니라 이런 단어들을 아무렇지 않게 꺼내어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일리)   ”실제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게임을 해봤다. 뿌리는 같은 곳에서 출발하는데, 뻗어 나가는 가지가 다른 방향으로 가지만 동시에 따뜻하게 한곳에 모여있는 느낌이 들었다. “(화영)   먼저 대학원에 같이 있는 연구실의 동료와 게임을 해보고 싶다. 성평등이나 성소수자에 관한 단어를 모르는 사람도 많아서 “이 단어 알아? 이게 뭐게.”라고 물어보면서 이런 문화에 익숙해 질 수 있는 활동을 동료와 해보고 싶다.  또한 퀴어동아리 친구들,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부모님과 게임을 해보고 싶다. 작년까지 퀴어동아리 청소년들과 글을 쓰는 프로그램을 했었는데 게임을 하면서 한 번 더 친구들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또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활동가들에게 게임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하다. 친구가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활동가인데, 특히 그 친구와 부모님과 해보고 싶다. 부모님과 청년, 아이들 세대 간에도 편하게 이야기할 매개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든다. 이렇게 점점 확장하다 보면 야외 부스에서 게임을 들고 나가 다른 시민이랑 대화하는 매개체로 활용될 수 있지 않을까.   등대의 한결과 화영이 그럼에도 우리는 2기 '피드백 살롱'에서 보드 게임에 대한 피드백을 듣고 있다. ⓒParti   등대 팀이 밝히고자 하는 앞으로의 변화   “팀으로서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하고 싶다. 패키지도 제작해서 완성품으로 만들고 2차 생산도 할 수 있는 보드게임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예술 공모단체같이 큰 단체들에서 성평등을 주제로 공모가 많이 열리고 작품들도 활발히 나왔으면 좋겠다.” (화영)    “이 프로젝트가 사람들이 꺼내기 무거워하는 주제에 대해 더 많이 인식하고 논의하는데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한 번의 경험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지속적해서 관심을 둘 수 있게 하는 방법들을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혜연)   “우리의 활동도 학회들에 조금씩 내보내면서 과정을 공유하고 싶다. 다른 성평등이나 성소수자 이슈에 관해 연구하는 연구자 뿐만 아니라, 일반 창작자나 대중에게도 참고되면 좋겠다. 한국에는 퀴어에 대한 작품이나 활동의 절대적인 양이 너무 적다는게 항상 아쉽다. 등대 팀의 활동처럼 다양한 게임을 만들면서 성평등 활동에 관한 사례들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결)   “친구 중에 성평등이나 성소수자 이슈에 대해 사실은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모른척 하고 싶어하거나 모르는 친구들이 많다. 하지만 막상 이야기 할수록 되게 재밌다는 점, 오히려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게임을 같이하고 싶다. 나라는 사람은 알면 알수록 다양한데 이를 잊고 살기도 하니까. 자신을 알아가면서 해방을 느끼면 좋겠다.” (일리) 글ㅣ오다움 사람들이 모여야만 경험할 수 있는 순간들에 관심이 있다. 최근에는 경직된 몸을 이완시키는 글쓰기나 움직임 활동을 구상하며 지낸다. 아마추어 정신의 프로가 되는 것이 최종 꿈이다.
성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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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리가 만들어내는 변화가 궁금해?_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클럽(FDSC) 편
“디자이너는 작업물로 말해야 해.” 과거 디자이너와 대화 중 들은 말이다. 그 말을 증명하듯 디자이너들은 항상 포트폴리오를 쌓는다. 포트폴리오를 통해 외주를 따거나, 회사 입사 지원을 한다. 그런데 만약 디자이너가 자기 작업물을 포트폴리오로 가져갈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개인적으로 디자이너의 언어가 없어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언어와 말을 없애는 게 과연 맞을까?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이하 FDSC)는 디자인 업계의 불공정 계약이나 법적 분쟁에 대응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만연한 문제에 페미니스트의 시선으로 대안을 제시하고 변화를 이끌고자 한다. 과거 디자인 외주를 맡겼던 여성 디자이너가 내게 말했다. “이거 혹시 제 포트폴리오로 올려도 될까요?” “당연하죠"라고 말하면서도 ‘왜 당연한 걸 묻지?’라는 의구심이 있었다.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 FDSC와의 대화를 통해 그때의 의문이 조금은 풀렸다. FDSC의 이야기다.   *‘그럼에도 우리는'은 성평등을 주제로 다양한 실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활동으로 2022년 1기 13팀에 이어 올해는 9팀이 참여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을 꾸려가는 빠띠의 활동가 우디(맨 오른쪽 아래)가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클럽 FDSC’(이하 FDSC)의 팀원 윰(위쪽 중간), 지경(맨 오른쪽 위). 경주(맨 왼쪽 아래), 소미(아래 중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Parti   사라지는 것에 ‘왜?’라는 의문을 갖고 시작된 ‘FDSC’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클럽(이하 FDSC)의 시작은 간단했다. 여성 디자이너끼리 모여 정보 공유하고, 공부하는 모임이었다. 모임의 질문이 있었다면, “왜 여성 디자이너가 35세 이상이 되면 사라지는가?”였다. ‘사라진다’에 집중된 것. 그러던 중 사라지는 것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왜 사라지는가에 집중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 의문을 갖고 그렇게 되는 문제를 하나씩 뒤집어 보자고 생각하고 운영하게 됐다. “모임을 통해 나보다 가진 게 많고,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도 비슷한 고민을 한다는 걸 알게 됐다. 또, 다양한 사람이 이야기를 나눠서 목소리를 내면 바꿀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FDSC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이겠구나 생각했다.” (소미)   “참여 계기는 각자가 다르겠지만, 디자인 업계에서 느꼈던 공통 분모가 있었다. 무엇보다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있었고, 디자인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눌 동료가 필요했다. 처음 디자인을 시작했던 사람들이 점점 디자인 업계를 떠나는 걸 보면서 더욱더 갈구 했던 것 같다.” (윰)   “디자이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대학교 졸업 후 바로 신청했다.” (경주)   “디자이너 커뮤니티 안에 들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주변에 아는 디자이너가 많이 없어서 외로웠다. FDSC에서 동료가 많이 생기고, 관심사 표출도 가능했다.” (지경)   동료가 필요해서 들어온 것은 맞지만 기본적으로 페미니즘에 관심도 많았다. 또한, FDSC의 활동을 통해 페미니즘에 대해 더 관심을 갖고, “내가 차별을 받았구나, 평범하지 않았구나.”라는 걸 자각하기도 했다.   나만의 디자인으로 존중하는 문화, FDSC에 남아있게 하는 힘   FDSC의 매력은 다양하다. 이곳에 오면 일로 쌓인 긴장감을 풀 수 있다. 소위 말하는 스타 디자이너가 아니어도 된다. 디자이너들은 멋진 결과물을 만든다는 인식이 있다. 때론 나와 다른 디자이너를 비교하기도 한다. 그런 점이 긴장을 만든다. 하지만, FDSC는 그런 게 없다. 너무나 많은 디자이너가 있고, 작업물이 있다. 나만의 디자인이 있고, 그게 존중받는다.   “이 안에는 너무나 많은 디자이너가 있고, 다양한 작업물이 있다. 그 때문에 나도 나만의 디자인이 있고, 내가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라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됐다.” (지경)   “기존 디자인업계는 항상 스타 디자이너만 주목하고, 그런 사람들이. 인터뷰나 행사에 초청받는다. 그러나 FDSC에서는 꼭 스타 디자이너가 아니어도 사람들과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게 쌓인 긴장도를 해소할 수 있는 것 같다. 그게 매력이다.” (윰)   활동을 하면 할수록 긴장도가 내려간다. 또한 그 과정에서 나에 대해 알아가고, 일에서 오는 번아웃이 해소가 된다. 그것이 FDSC에 남아 있게 되는 힘인 것 같다. 더 이상 벗어날 수 없다. FDSC를 통해 무언가를 할 수 있고, 여기서 알게 된 걸 현장에서 직접 말해 변화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힘을 얻는 게 매력이자 장점이다.   디자이너의 ‘몫+소리’를 지켜내기 위해   그럼에도 우리는 프로젝트를 통해 디자이너들이 겪는 불공정 계약이나 법적 분쟁에 대응하는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콘텐츠는 칼럼 형태다. 변호사님과 3편을 만들고, 노무사님과 2편을 만든다. 현재 3회 분량 녹음이 진행됐고, 3회가 공개된 상태다. 칼럼은 FDSC와 협력하고 있는 변호사님이 작성해 주신다. 디자이너들이 겪는 사연을 모아서 변호사님께 전달해 드렸다. 전달해 드린 내용은 디자인하면서 겪는 어려움과 법적 문제점 등이다. 이 부분에 변호사님이 답변하는 형태로 칼럼이 진행된다. 이 콘텐츠를 통해 공정한 계약과 협상, 디자이너 본인의 권리를 지키는 법에 대한 법률 정보를 알리려고 한다. 12월 2일(토)에는 디자이너 각자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장을 진행했다. 꼭 디자인 업계가 아니어도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장으로 만들고자 했다. 40명 정도 규모로 계획했는데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행사에 함께 해주셨다.   디자이너의 목소리로 여성의 일을 말하는 팟캐스트 디자인FM을 통해 프리랜서로 살아가는 디자이너가 법을 근거로 대응하는 방법을 들을 수 있다. ⓒFDSC   FDSC 활동 자체가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 말할 수 있는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프리랜서 디자이너 중에 여성 비중이 높다. 70% 이상이 여성으로 알고 있는데 여성의 수는 많지만 정규직 형태가 아닌 프리랜서 형태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프리랜서 입장에서는 외주를 받을 때 회사와 비교하면 협상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개인 작업을 진행하는 것도 벅찬데 법적인 권리를 찾아 배우는 게 쉽지 않다. FDSC의 활동이 그런 여성 디자이너들에게 내 권리를 알려주고 말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준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현실적인 면에서 계약서를 잘 쓰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법적으로 자신을 지킬 수 있다.   “여성 프리랜서 비율이 70% 이상으로 높다. 회사와 계약을 진행할 때 협상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그런 여성 디자이너들이 혼자 전전긍긍 하는 게 아니라, 물어볼 수 있는 곳이 존재한다는 것. 그것이 가장 큰 도움이라고 생각한다.” (소미)    또한 비단 여성에게만 도움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약자를 위한 무언가가 존재할 때, 그것이 모두에게 혜택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FDSC 활동도 여성만 혜택을 받는 게 아니라. 소수자 혹은 약자 위치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약자에 대한 권리를 옮기는 게 아니라 모두의 권리를 옮기는 것이다.   12월 2일(토)에 진행한 ‘법딱뚝딱' 행사 장의 모습. 프리랜서 디자이너들이 도움 받을 수 있는 법 지식을 다루고 있다. ⓒFDSC   FDSC가 꿈꾸는 변화   현재 팟캐스트를 3화까지 녹음했다. 내용이 계약상의 권리와 의무다. 디자인권, 저작권 권리 관련 내용을 다뤘다. 결론적으로 현재 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바꿔야 할 부분도 많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예를 들면, 작업물이 회사에 귀속되어 내가 쓰지 못하는 게 현재 법이다. 디자이너는 포트폴리오로 말하는데, 내 작업물을 쓰지 못하는 것이다. 현재 법은 이런 디자이너의 특수성이 반영되지 않았다. 이런 부분은 회사와 협약을 통해 바꿔야 한다. 시작은 작지만 모두에게 필요한 내용을 다루다 보니, 확산이 된다면 디자인 업계 전체에 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그렇게 하고 싶다.   “최근 스타트업 디자인 작업을 하면서, 계약서상 내용을 변경했었다. 저작물이 회사에 귀속된다는 부분이었다. 스타트업에 직접 말씀드려서 수정했었다. 스타트업 입장에서도 전혀 몰랐다며 오히려 고마워하셨다. 이런 점에서 자신감을 얻고, 법적으로 권리를 주장하는 데에서 자신감이 생겼다.” (경주)   FDSC의 프로젝트 강연 ‘법딱뚝딱'의 강연을 듣고 있는 참가자의 모습 중 ⓒFDSC   FDSC 팟캐스트를 통해 디자이너가 아님에도 디자이너 문화에 대해 이해했다는 분들이 계셨다. 꼭 디자이너가 아니어도 프리랜서로 일을 하시는 분들은 공감되는 내용이 많을 거 같다. 이렇게 그동안 넘어갔던 부분들을 되짚어 보고, 문제를 제기를 함으로써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팟캐스트도 그런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변화를 상상하는 사람이 변화를 만드는 것 같다. 내가 큰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목소리를 내고, 함께 만들어 가는 것 같다. FDSC에서 내 목소리를 내는 경험이 쌓여서, 내 권리와 이야기를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지경)   “법이라는 게 완벽하지 않고, 개선되어야 하고, 더 편하게 느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면서 법이나 법정이 염라대왕 앞에 가는 느낌이 아니란 걸 알게 됐다. 그처럼 법에 대한 거리감을 좁혀보고 싶다. 법적으로 주장하지 못할 때, 같이 권리를 요청할 수 있는 연대가 강화됐으면 좋겠다.” (윰)   “'디자인 업계가 디자인 작업만 잘하면 되고, 다른 건 문제가 아니야' 라는 인식이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이미 권력이나 높은 자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대다수는 그렇지 않다. 일에서 소외된 채 기존 질서에 따라가거나 참고 견딘다. 그리고 대부분의 소외된 사람들은 본인들의 경험이 은폐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디자인하면서 접해야 하는 법에 관해 이야기하고 인식개선을 하고 싶다. 이런 활동이 넓게 보면 디자인 업계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궁극적으로 길을 열어준다고 생각한다. 또한 디자인업계에 들어오는 후배들이 억울하거나 부당한 경험을 더 이상 겪지 않도록, 앞으로의 나에게도 이런 일을 미연에 막을 수 있도록 하는 그런 활동을 하고 싶다.” (소미)   “법이나 저작권뿐만 아니라 디자인 업계의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다. 다양한 분야에서 바꿔야 할 부분들을 개선하는 활동을 하다 보면 많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면서, 향후에는 내가 기획해서 목소리를 직접 내보고 싶다.” (경주)   글ㅣ윤성민 한량이다. 말과 글,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을 존경한다. 그런 사람이 되고자 한다. 하고 싶고, 배우고 싶고, 이루고 싶은 게 많다. 우선 하고 싶은 일을 '신나게' 해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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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리가 만들어내는 변화가 궁금해?_위민후코드 서울 편
위민후코드 서울(Women Who Code Seoul)은 설립된지는 5년 된 글로벌 단체로, 2011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했다. 글로벌 단체 활동이 먼저 시작되고 이후 서울 지부가 만들어졌다. WWCode까지는 모두 이름이 같고, 맨 뒤에 오는 이름만 도시 이름을 따른다. 현재 약 147개국에서 320,000명의 멤버와 함께하며, 타이페이, 도쿄 등에 지부가 있다.  각 지부별 관심사에 따라 다양한 활동이 진행된다. <Tech Lounge>와 동아시아 네트워크와 함께 진행했던 <Empowering Yourself, Empowering Others>는 테크업계에서 시니어로 활약하는 여성들을 초청해 일에 대한 노하우, 커리어에 대한 멘토링, 다양성 등 다양한 주제로 대화하는 토크쇼다. 또한 여성 시니어를 인터뷰하는 <Nailed IT> 프로젝트와 <하프타임>과 같은 컨퍼런스도 진행했다. 이 밖에도 지부와 상관없이 위민후코드 운영진이 공통으로 송출하는 글로벌 이벤트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우리는'은 성평등을 주제로 다양한 실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활동으로 2022년 1기 13팀에 이어 올해는 9팀이 참여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을 꾸려가는 빠띠의 활동가 나기(맨 오른쪽)가 ‘WWCode Seoul(위민후코드 서울)’의 팀원 (맨 왼쪽을 기준으로)원지, 경희, 정원, 혜선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Parti   WWCode Seoul(위민후코드 서울), 어떤 조직인지 궁금하다   위민후코드 서울(Women Who Code Seoul)이 설립된지는 5년이 됐다. 위민후코드는 글로벌 단체인데, 활동 자체는 2011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했다. 글로벌 단체 활동이 먼저 시작되고 이후 서울 지부가 만들어졌다. WWCode까지는 모두 이름이 같고, 맨 뒤에 오는 이름만 도시 이름을 따른다. 현재 약 147개국에서 320,000명의 멤버와 함께하며, 타이페이, 도쿄 등에 지부가 있다.  각 지부별 관심사에 따라 다양한 활동이 진행된다. <Tech Lounge>와 동아시아 네트워크와 함께 진행했던 <Empowering Yourself, Empowering Others>는 테크업계에서 시니어로 활약하는 여성들을 초청해 일에 대한 노하우, 커리어에 대한 멘토링, 다양성 등 다양한 주제로 대화하는 토크쇼다. 또한 여성 시니어를 인터뷰하는 <Nailed IT> 프로젝트와 <하프타임>과 같은 컨퍼런스도 진행했다. 이 밖에도 지부와 상관없이 위민후코드 운영진이 공통으로 송출하는 글로벌 이벤트도 존재한다. 조직에 들어온 계기는 각자 다르다. 세미나를 통해 알게 되기도 하고, 블로그를 통해 WWCode Seoul의 존재를 알게 되기도 한다. IT 업계에 있으면서 느낀 바를 각자가 실행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들어오게 됐다. IT 업에서 일하며 느낀 조직문화와 생태계의 특성이 있었다. 성장만을 장려하고 태도, 남성 중심의 조직 문화 등으로 생겨나는 여러 문제들이 많은 가운데 여성으로서 IT업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었다. 또한, IT 업계 여성의 리더십을 키우고 싶었다.   “IT업계에서 여성들이 리더십을 갖고, 서포트하고, 정보도 얻게 한다는 취지를 듣고 처음에는 번역으로 참여를 했다.“(혜선)   “IT업계에서 일을 하면서 다른 아시아 국가의 IT 인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싶었다. WWCode Seoul에서는 가능하다고 생각해서 합류했다.”(정원)   “WWCode Seoul에서는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는 경험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IT업계에는 성공, 빠른 성장 외에 모든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이런 분위기 자체에 피로감을 느꼈고, 좀 더 포용적인 커뮤니티 안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하며 주도적으로 커리어 여정을 만들어나가고 싶어 WWCode Seoul을 찾게 됐다.”(경희)   그럼에도 우리는, IT 업계에서 느끼는 갈증과 고민을 나누기 위해    대부분의 IT 업계에서는 힘들거나, 불편한 감정을 해소하려는 말을 하면 “네가 이상한 거 아니야?” 라는 눈초리를 받는다. 개인화 되어 있다. 성장도 개인이고, 증명도 개인이 한다는 분위기다. 그러다보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가 어렵다. 마땅히 모아져야 하는 이야기도 파편화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더욱 답답하다고 느껴진다. 공감대 형성이 안 되는 분위기다.   “서로의 아픈 지점을 언어화 하고 표현하는 장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혜선) “너무 개인의 능력으로만 환원되는 분위기가 나의 어려움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말하는 걸 어렵게 만드는 것 같다.” (경희) 이런 고민들이 있던 것을 처음에는 주로 디스코드에서 어떤 활동을 해볼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중 4월에 ‘그럼에도 우리는(이하 그리는)' 지원사업을 발견했다. 어떻게 하면 IT업계에서 느끼는 갈증과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 ‘그리는'에 참여하면서 기획단계부터 아이데이션에 많은 시간을 쏟고, 진행하면서 가다듬을수 있었다.  “기술적 성취보다, IT 업계의 한계점과 개선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여성주의적으로 IT업계를 바라보자가 핵심이었다.” (정원)   그 중 한 프로그램으로 여성주의 자체에 대해 듣는 시간과 개발 업계에서 오래도록 일한 여성분을 연사로 초청해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2011년부터 대기업-중소기업-스타트업-공공기관 그리고 올해는 프리랜서까지 다양한 조직에서 여러 방식으로 일을 경험한 경숙님은 조직생활을 하며 겪은 일상적인 성차별과 이에 대응했던 경험을 통해 ‘내가 경험한 테크업계 조직문화'라는 주제로 토크쇼를 진행했다.  강연자 중심의 대화가 아닌, 참여자들도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 받으며 IT업계에서 ‘좋은 여성 선배'가 되려면 뭘 하면 좋을지?, 조직 문화에서 좋은 오프 보딩(Off-boarding, 조직에서 떠나는 것을 의미함)은 무엇인지 등 다양한 대화를 나누며 WWCode Seoul 안에서도 다양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다.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궁금하다면 👉https://bit.ly/테크업계의조직문화)   ‘위민후코드서울'이 <그럼에도 우리는>에 참여해 진행한 Redirect to ____ : 내가 경험한 테크 업계의 조직 문화 ⓒParti   새롭게 기획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는지 궁금하다   글방을 운영할 계획을 갖고 있다. 커리어가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해 쓰는 활동이다. IT 업계에서 글이라고 하면, 기술적인 것에 치중된다. 이런 글은 질리도록 많다. 글방은 그런 쪽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 쓰는 활동이다. 나의 정신적인 부분을 풀어내는 작업이다.   “글방은 온라인으로 4주에 한 번씩 진행된다. 열명 내외가 참여한다.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IT 업계 사람들이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생각들을 글을 통해 나누고 싶었다. 글을 쓰며 기능하는 나 이외의 나를 돌아보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게 목적이다” (경희)   앞서 말했듯 IT 업계만의 강박이 있다. 또한 이직이 잦은 분야다 보니, 내가 오늘 한 이야기가 다음 직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이 있다. 때문에 완벽한 모습만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게 될까? 라는 고민도 있지만 시도해보려고 한다.   “그런데 글방을 파일럿으로 시도했을 때, 생각보다 내면의 이야기를 많이 말하는 게 신기했었다. 그래서 더욱 확신을 갖게 됐다. ‘아, 이게 필요 하구나.’ 라고.” (정원)   또, 그리는 활동을 통해 ‘변화의 월담' 분들을 알게 됐다. 협력할 계획을 갖고 있다. 글방이 정신이라면, 변화의 월담과는 신체 활동을 할 예정이다. 12월 9일에 진행할 예정이다.   'WWCode Seoul'과 ‘변화의월담’이 기획한 몸을 살리는 기술 워크샵. ⓒhyejeong_photo   WWCode Seoul(위민후코드 서울)이 만들어낸 변화, 꿈꾸는 변화   IT 업계의 조직문화를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는 계기를 마련한 게 가장 큰 변화이자 영향력이라고 생각한다. IT 업계의 공론장에서는 화두가 제한되어 있다. 조직문화에 대해서도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 외에는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WWCode Seoul의 ‘그리는’ 활동을 통해 내가 겪는 문제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IT 업계의 시스템과 조직문화의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을 나눌 수 있었다. 이런 문제를 인식한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감각을 공유하며 다른 관점의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인식을 만든 게 큰 변화다. 또한, 연사님을 비롯한 롤모델을 알아갈 수 있던 게 좋았다. 그렇게 롤모델을 만나고, 여성이 자신의 성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걸 장려했다는 게 성과다. 조경숙 연사님을 모시고 토크쇼를 했을 때, 네트워킹 세션이 있었다. 그때 만났던 분을 실무에서 또다시 만났었다. 참여자를 만났던 것만으로도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네트워킹 행사에서는 주로 내가 가진 기술 중심으로 서로를 소개하게 된다. 행사 끝나고 만났던 사람들을 돌아보면 직무와 회사밖에 기억에 남지 않는다. 비슷한 공감대를 가진 사람과 다른 차원에서 연결되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는 행사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경희)   'WWCode Seoul(위민후코드 서울)’의 경희, 정원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Parti    “각자 온 사람이 한 명의 에이전트가 되서, 원래 자리로 돌아갔을 때 대안적인 단어를 쓰거나, 기획을 하는 등 실제 행동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그게 그분의 환경을 바꾸고 서서히 다른 부분들도 바꾸는 모습을 꿈꾸고 있다.” (원지) “사람들이 서로 바라보는 시각이 변했으면 좋겠다. 어느 수준에서는 다 개인화 될 수밖에 없는 게 있다. 하지만, 여성주의는 따뜻한 거라고 생각한다. 물어봐주고 필요하면 돌봐주고. 문제가 있다는 걸 파악하고, 같이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그 짐을 서로가 나눠질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문화에서의 변화가 나타났으면 좋겠다.” (혜선) “비슷한 활동을 쭉 해나갈 것 같다. 현장에서는 물론 말하기 어렵지만, 그 말을 쉽게하기 위해서 WWCode Seoul 활동을 하는 것이다. 기술이 미치는 영향력이 큰데, 여기에 몸담고 있는 여성 분들이 적고 40대가 되면 사라진다. 집으로 간다거나, 더 유연한 직종으로 간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일조하고 싶다. 어떤 방식이 될지는 모르겠다. 작은 워크샵을 운영하는 것도 될 수 있을 것 같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임팩트가 있다. 워낙 없다보니까. 동료들이 안 없어질 수 있게 하고, 동료를 많이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 (정원) 12월 1일부터 WWCode Seoul 운영진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위민후코드서울 인스타그램 채널에서 확인해보세요.@wwcode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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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리가 만들어내는 변화가 궁금해?_선을넘는몫소리 편
<선을넘는몫소리>는 대한민국 사회에 버젓이 존재하나 그 마땅한 '몫'을 누리지 못하는 주제 혹은 주체에 주목하는 세 팀으로 이루어진 크루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 <그럼에도 우리는>을 시작하며 '성평등' 담론의 저변을 넓히고자 했던 빠띠에게는 '이주여성'이라는 주제/주체를 제안한 ‘선을넘는몫소리’가 내심 반가웠다. 일주일 전 <그럼에도 우리는> 활동의 결실인 이주여성 사람책도서관 <당신의 세계로 데려다주세요>를 무사히 마친 선을넘는몫소리 팀원 주연과 동찬을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이나영책방'에서 만났다. *‘그럼에도 우리는'은 성평등을 주제로 다양한 실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활동으로 2022년 1기 13팀에 이어 올해는 9팀이 참여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을 꾸려가는 빠띠의 활동가 우디(맨 왼쪽)가 ‘선을넘는몫소리’의 팀원 주연(가운데), 동찬(맨 오른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Parti    비슷한 듯 다른 세 팀의 교집합에서 탄생한 <선을넘는몫소리>     ‘선을넘는몫소리’는 빠띠의 <그럼에도 우리는> 프로젝트를 계기로 구성한 프로젝트 팀으로, 지금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이곳 '이나영책방'(나영)과 책방을 함께 운영하는 출판사 '힐데와소피'(주연, 애란), 그리고 이들과 꾸준히 협업해온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동찬) 이렇게 3개 주체가 모여 만들어졌다. 힐데와소피와 이나영책방의 주요 관심 주제가 사회변혁, 평화, 북한이라면,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는 디아스포라, 이주민 문제에 주목해왔다. 세 팀은 수시로 연락하며 관심 주제에 관해 자유롭게 논의하며 활동의 교집합을 모색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협업하고 있다. 올해는 '트랜스내셔널', '이주' 등을 주요 키워드로 삼아 선을넘는몫소리를 비롯한 프로젝트들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이나영책방의 이웃 동네이자 이주민 밀집 지역인 대림동을 참가자들과 함께 탐방하면서 중국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하는 <대림동 탐방> 프로그램이다. 동찬이 주도적으로 진행해온 것인데, 이나영책방·힐데와소피가 '우리도 책방 손님들과 함께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협업을 제안해 함께하게 됐다. 사실 선을넘는몫소리도 이 프로그램의 연장선상에서 만들어진 팀이라고 볼 수 있다. <대림동 탐방>에 참여하셨던 분들 대상으로 프로그램 후기 설문조사를 하면, '당사자와 만나 교류하고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없어서 아쉽다'는 의견이 항상 나온다. 그래서 '사람책 도서관*' 형식으로 당사자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는 자리의 필요성을 줄곧 인식하고 있었다. *사람책 도서관이란 ‘사람’이 한 권의 ‘책’이 되어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독자/청자에게 전달하는 소통·교류 형식을 뜻한다.   "대구의 한 비영리단체에서 일했는데, 행사를 해도 매번 그 주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만 참여하는 게 늘 아쉬웠어요. 인식개선 프로그램을 운영해도, 이미 인식이 개선된 사람들만 오는 거예요(웃음). 그래서 '도대체 우리는 누구를 대상으로 활동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있었어요. 하지만 책방은 대중과의 접점이 넓기 때문에 저희가 만날 일 없는 사람들, 지나가다가 책방에 들어와서 "어? 북한?" 이렇게 반응하는 사람들에게도 저희 활동을 알릴 수 있죠."(주연)   대한민국 성평등 담론 경계 밖에 있는 '이주여성'의 '몫소리'를 전한다   세 팀이 함께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모색하던 참에 동찬이 빠띠의 <그럼에도우리는> 사업을 알게 됐다. <그럼에도 우리는>의 주제는 '성평등'인데, 한국사회에서 이 주제를 다룰 때 일반적으로 그 대상을 '한국여성'으로 상정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영역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주여성'의 이야기를 전달해보자는 취지에서 <그럼에도 우리는>에 지원하기로 했다. 한국여성의 성평등권을 중심으로 이야가 오가는 자리에서 이질적인 목소리를 내는 게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주여성은 젠더폭력을 넘어 인종차별 등 복합적인 차별 층위에 있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이란 존재가 비가시화되고 은닉되는 측면이 있다면, 이주여성은 여기서 한번 더 비가시화되고 은닉되고 있다. 이들 존재를 지속적으로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성평등 운동을 하는 여성인권단체이나 페미니즘 단체에선 이주여성 문제를 아우르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도 또 하나의 문제의식이었어요. 이주여성은 이주인권 운동 측면에서만 다뤄지고 있죠. 저희가 성평등을 주제로 한 <그럼에도 우리는>에서 이주여성의 이야기를 한다면, 여성인권과 이주인권이 만나 교차하는 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동찬)   이때 이주여성의 목소리를 '직접' 전달하는 게 중요했다. 이주인권 관련 학회에 가보면 이주민 당사자는 한 명도 없다는 게 늘 불편했다. 왜 우리는 뭔가를 매개하지 않고서는 이주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을까? 또 다른 문제는 우리가 이주민, 탈북민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할 때 사실은 내가 이미 갖고 있는 어떤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듣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주연이 대구에서 활동할 때 탈북민 사람책 행사를 진행한 적이 있다. 끝나고 소감을 나눌 때 한 참가자가 "탈북 경험이나 북한 이야기를 더 많이 들을 수 있을 줄 알았다"고 하더라. 당시 사람책을 진행한 탈북민은 현재 남한 사회에서 어떻게 먹고 살고 있는지 중심으로 이야기를 했는데, 대중은 '탈북민이니 탈북 이야기를 할 것'이라 기대했던 것 같다. 이렇게 누군가가 이주민, 탈북민이라는 '집단'으로 타자화, 대상화되는 걸 피하고 싶었다.   선을넘는몫소리가 <그럼에도 우리는>에 참여해 진행한 이주여성 사람책 도서관 <당신의 세계로 데려다주세요> ⓒ선을넘는몫소리   그래서 이주여성 사람책 도서관 <당신의 세계로 데려다주세요>를 기획할 때도 연사들이 한국사회가 이주민에게 기대하는 전형적인 서사를 구현하지 않길 바랐다. 한국 사회가 이주여성에게 기대하는 서사, 얼마나 어렵게 한국사회에 정착했고 마침내 어떻게 성공했는지, 그리하여 한국에 얼마나 감사하는지로 끝맺는 서사를 탈피하길 바랐다. 연사들과 행사 전 온라인 미팅을 할 때 이런 전형적인 서사를 피하기 위해 ‘진짜’ 사적인 이야기, 사소해보이지만 사실은 사소하지 않은 이야기를 끄집어내려고 노력했다. 결국 그렇게 연애사, 한국어 정복기처럼 저희에게도 신선한 충격을 준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었다. 연애 이야기를 하신 최설(북한) 선생님은 “참가자 연령 제한이 있느냐, 야한 이야기 해도 되느냐”고 묻기도 했다(웃음). 그리고 부티탄화(베트남) 선생님은 행사를 녹화한다거나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지 재차 확인하셨는데, 사전 미팅에서 공유하지 않았던 내용을 사람책 도서관에서 이야기하셨다. 이야기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사전 미팅에서 저희에게 하지 않은 이야기를 그 자리에서 들려주신 거라 들으면서 더 신이 났다. 저희의 취지를 잘 이해하고, 스스로 ‘이주여성’이라는 프레임을 깨는 쉽지 않은 일을 해내고서 매우 사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신 것 같다.     “결혼이주여성이 ‘결혼’이란 행위를 계기로 한국에 온다는 건 곧 한국 특유의 가부장적 환경으로 진입하는 것이라서, 처음부터 성차별을 경험하기 마련이에요. 결혼이주여성은 한국사회에서 ‘나’로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며느리’ 혹은 ‘부인’으로, 한국 남성과 결합했을 때 비로소 그 존재를 인정 받는 종속적 위치에 놓이는 거죠. 이분들에게 ‘온전한 나’로써 나만의 이야기, 나만의 서사를 가치 있는 역사로 풀어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드리고 싶었어요.” (동찬)   "<당신의 세계로 데려다주세요>에서 가능하면 다양한 배경의 이주여성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서 북한, 베트남, 콩고민주공화국, 마다가스카르에서 이주한 연사들을 어렵게 모셨는데, 행사 끝나고 북한에서 오신 최설 선생님께서 “다른 나라에서 온 이주여성을 만난 건 처음”이라고 말씀하신 게 기억에 남아요. ‘내 이야기 실컷해서 좋았다’를 넘어 ‘다른 이주여성의 삶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라는 소감 듣고 나니까, 다음 기회가 있다면 다양한 배경의 이주여성들이 모여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연)     선을넘는몫소리가 꿈꾸는 변화   그야말로 ‘꿈꾸는’ 변화라면- 일단 법을 싹 고치고 싶다(웃음). 비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들의 존재가 제도적으로 안정되지 않으면 위치성 문제는 있을 수밖에 없다. 국내 이주민 인구 중 중국 동포가 많은 것도 이들이 상대적으로 대한민국 비자를 받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제도가 사는 변함없이 돌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틀거리가 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계속 똑같이 돌아갈 거다. 기존의 무언가를 지키려고 하다 보면 차별이 생길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하면 기존의 무엇을 지켜야 한다는 관념을 깨뜨리고 큰 틀을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하는 것 중 하나가 정체성인 것 같다. 하지만 타자와 구분되는 나만의 고유한 정체성이 있다는 건 착각이라고, ‘한국인’이라는 정체성 또한 사후적으로 구성된 허구라고 생각한다. 동찬은 중국 선양(瀋陽) 태생으로 국경 넘어 한국으로 이주한 지 8년 됐는데, 오랫동안 “중국이 한국과 축구 시합을 하면 어느 팀을 응원하느냐” 같은 질문에 시달리며 정체성과 한국에 대한 충정 여부를 검증당해왔다. 국적을 비롯한 여러 정체성은 인위적으로 구성된 산물이지 고유한 무엇이 아니다. 국적, 인종, 민족처럼 인위적인 정체성에 의해 구분되고 대상화되지 않고, 각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로 존중 받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여기 살아있음이 곧 정체성이 되는 ‘존재의 정체성’을 토대로 만남을 이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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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리가 만들어내는 변화가 궁금해?_섭식장애건강권연대 편
섭식 장애, 익숙하지 않은 단어라 인터넷에 검색을 해봤다. 정신적 질환으로 인해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을 뜻했다. 대표적 질환은 거식증과 폭식증. 거식증은 몸매에 대한 강박으로 제대로 식사하지 못하고, 먹은 것 마저 토해내는 것을 말했다. 폭식증도 있다. 음식 섭취에 대한 자제력을 잃고, 한번에 많이 먹은 뒤 다시 토해내는 것을 말한다. 마른 것이 이쁜 것이라는 인식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그 기준에 맞춰서 사람들을 보지 않았나 싶다. 더 나아가 여성은 이런 몸매를 가져야 해 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건 아닐까. 그리고 이런 시선이 누군가에겐 강박이 되지 않았을까. 누군가 내 몸매에 대해, 내 식사에 대해 평가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에 더욱 건강한 식사가 이뤄지지 않을까 싶다. 자연스럽게 밥 먹는 하루, 누군가에겐 꿈이고 이상일지 모른다. 그런 꿈과 이상을 가진, 섭식장애건강연대의 선민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럼에도 우리는'은 성평등을 주제로 다양한 실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활동으로 2022년 1기 13팀에 이어 올해는 9팀이 참여하고 있다.     섭식장애건강권연대, 시작이 궁금하다 섭식장애 당사자로서 섭식장애를 가진 분들이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었다. 구체적 방법보다는 이 화두가 강하게 있었다. 그러다 인권 운동을 하는 친구들에게 화두를 제안했고, “한번 연대를 만들어봐"라는 이야기를 듣고 시작하게 됐다. 섭식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살아갈 수 있으려면, 의료적 법적 지원도 필요하지만 우선적으로 섭식장애 당사자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이야기 하고, 그들이 오늘 하루를 사는데 고통스럽지 않게 사는 방법에 대해 먼저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관련 활동을 하고 있다. 우선 당사자의 글을 모아서, 섭식 장애가 단순히 굶는 것, 살찌기 싫어서 토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당사자들이 어떻게 그 삶과 식습관을 갖게 됐는지 알리고 싶다.     섭식장애건강권연대, 이름이 궁금하다 우선 섭식장애 단어를 넣은 건, 직설적으로 말하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이 있었다. 은유적으로 말하는 것도 좋겠지만, 오히려 직설적으로 이야기 했을 때 나오는 질문과 이야기들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본 사람들에 따라 다르지만, 더 많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고 판단해서 짓게 됐다. 또 의외로 섭식장애를 모르는 분들도 많아서, 직접적으로 노출 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건강권이라고 하니까 “건강해져야 돼" 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런 게 아니라, 섭식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든다는 의미였다. 이렇게 두 단어를 합치니까, 갖추어진 느낌도 나서 좋다고 생각한다.   팀이 만들어진 과정도 궁금하다 문화 예술 기획 쪽에서 오래 종사했다. 섭식 장애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하다가 예전에 참여했던 프로젝트랑 친구가 떠올랐다. 연혜원이라는 친구가 진행했던 몸에 대한 프로젝트였다. 처음으로 섭식장애를 발견한 프로젝트였다. 프로젝트를 진행한 혜원이를 만난 게 첫 시작이다. 혜원이를 만나서 섭식장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연대를 만들어 보면 어때?”라는 제안을 해줬다. 마침 그때가 유명 패션 브랜드에서 데이트 폭력 관련한 캠페인을 했을 때였는데, 그걸 보고 “아, 우리 사회가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한 주권을 말하는 시대가 되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연대를 만들어보자 생각하게 됐고, 혜원이가 ‘여름' 이라는 친구를 소개해줘서 팀을 만들게 됐다. 그렇게 3명이 함께 시작했다.   팀 결성 이후 행보가 쉽진 않았을 것 같다 실제로 자금이 넉넉치 않으니 운영이 힘들었다. 나는 전적으로 하지만, 다른 두 친구는 다른 일과 함께 병행하던 중이었다. 또 스스로도 명확하게 “이걸하자, 이걸해야 돼" 이런 게 명확치 않은 시기였다. 그러다 지원 사업을 하면 다른 두 친구도 적극 참여할 수 있고, 운영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여러 지원사업을 넣었다. 다 떨어졌다. (웃음). 그러다가 빠띠의 ‘그럼에도 우리는 2기' 사업에 다행히 선정되어, 여름이와 저 두 명이서 함께 진행하고 있다.     프로젝트 참여자에게 어떤 기대를 하는지? 사실 진행을 하면서도 예상이 안 됐다. 섭식장애 당사자 분들이 온다는 생각은 했지만, 인식조사를 했을 때 당사자가 아닌 분들도 오고, 섭식 장애를 전혀 모르는 분들도 오셨다. 신기했는데, 그러다보니 예상이 더 안 됐다. 섭식장애건강권연대가 참여하시는 분들에게 줄 수 있는 게 뭘까 고민을 하면, 당사자 분들에게는 “당신이 겪는 고통이 결코 혼자서 겪는 고통과 문제가 아니다.”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당사자가 아니라면, 섭식 장애가 뭔지 고민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각기 다른 상황의 사람들이 얻어 가는 게 있으면 좋겠다. 세미나를 했었을 때, 섭식 장애 당사자분들도 오시고, 그 분들의 애인분들도 많이 오셨다. 여성 인권에 관심 있는 분들이 많이 오셨던 것 같고, 다양한 분들이 오신 것 같아서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어떤 분들이 오셨는지? 워크샵을 진행했는데, 1회차 때 총 다섯 분이 오셨다. 남자 두 분, 여자 세 분. 의외로 남자 분들이 오셔서 놀랐다. 그 남자 분 중 한 분은, 되게 재밌으셨어서 기억에 남는다. 본인과 애인이 섭식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닌데, 본인의 식습관에 대한 고민이 많으신 분이었다. 그 식습관과 환경을 연관지어서 고민을 하셨는데, 그렇게 연관지어서 생각하시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구술생애를 바탕으로 글을 쓰는 작가분도 오셨었다. 중년을 지나고 있는 작가님은 섭식에 대한 책도 쓰시고, 자신의 과거에 대한 고민도 말씀하셨다. 그 분 이야기를 들으며, 섭식 장애가 나이가 든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보통 20~30대에 없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계속 갖고 계신 분들이 분명 있다. 증상 호전이 안 되는 분들도 계시고. 그 분을 보면서, “특정 나이가 지난다고 없어지는 게 아닌데, 저 나이대의 섭식 장애 분들에 대한 콘텐츠가 너무 없구나.” 생각했다. 이런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됐다. 다른 여성분은 10대 학생분이였는데,본인이 갖고 있는 섭식 장애가 불편한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분이셨다. 예전의 나는 그냥 받아들였던 것 같은데, 참 다르구나 생각했고 개인적으로 10대를 쉽게 만날 수 없다보니 이번 만남이 더욱 특별했다. 그 학생의 생각과 받아들이는 방식을 많이 배웠다. 내가 그 학생 나이에 섭식 장애를 얻었는데, 나는 “이럴 수밖에 없다"라며 체념한 반면, 그 학생은 극복해가고 있었다. 그렇게 스스로 찾아보고, 불편을 해결하려는 모습에서 많이 배우고 인상이 많이 남는다.   “혼자서 공부하고, 홈 스쿨링을 하는 친구였어요. 아무래도 또래보다 빨리 많은 걸 접하는 것 같아요. (중략) ‘프로아나'라는 커뮤니티를 알게 되서 참여하고, 섭식장애를 알게 되고, 고쳐봐야겠다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선민)     참여자 중에 남성분들 비중이 높은 것도, 섭식 장애가 여성에 국한 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 같다 섭식 장애가 꼭 몸매와 연관되고, 여성에 국한된 게 아니다라고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사실 먹는다는 건 각자의 고충이 다 있다. 그런 것들이 삶에 투영되다. 예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으면 맵고 짠 걸 먹고,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샐러드와 닭가슴살을 먹는다. 이렇게 남녀, 연령에 구분없이 모두가 먹는다는 행위, 식사 행위를 통해 삶을 투영하고, 조금 더 편안하고 행복하고 잘 먹는 방법을 고민하는 이상 모두의 삶과 직결 된다고 생각한다.     섭식장애건강권연대의 활동이 성평등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앞서 말씀 드렸듯이, 남녀 연령 불문하고 신체 강박이 없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들 살이 쪘네, 다이어트 해야겠네 생각한다. 명절 때 어른들을 만났을 때 “살쪘네? 살 좀 빼라"라는 말은 남녀 모두가 듣는다. 이처럼 모두가 듣고 있고, 모두가 크던 작던 고통 받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거기서 받는 고통의 정도는 다르다. 그 문제가 여성에게 조금 더 카테고리화 되고, 문제로서 적용되는 것 같다. 하지만 모두에게 적용되는 문제인만큼, 섭식장애건강권연대의 활동이 성평등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건강한 식습관에 대한 생각은 개개인 마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 ‘건강함’의 기준이 다를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보편적인 ‘건강함’의 이미지로 타인을 판단 평가하는 것은 굉장히 폭력적인 일이다. 예를 들어 내가 케이크를 좋아해서 많이 먹으면, 미래에 당뇨가 올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당장 내가 오늘 케이크를 조금 먹어서 기분이 너무 좋다면 그건 건강한 식습관이라고 생각한다. 건강하면 좋다는 건 누구나 알지만, 모두가 건강한 식습관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그렇게 남에게 건강한 식사를 항시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누군가의 식습관에 대해 평가하고 말하는 건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개인의 식습관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런 평가에서 남녀가 구분이 없기 때문에 섭식장애건강권연대의 활동이 성평등에도 연관된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틀린 몸매와 식사방법은 없다고 생각해요. 질병으로 부터 건강하게 살아가고 싶다면 그런 식습관을 선택하는 거죠. 그거를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선민)   “식이장애 치료를 결심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치료에 대한 두려움과 강박 (빨리 치료가 되어야한다는 생각들)이 강했습니다. 선민님이 섭식장애와 함께 살아가기 프로그램 당시 "치료 받아야하고 교정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너무 스스로를 괴롭힐때까지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어쨌든 우리는 이것과 함께 살아야한다" 라고 말했을 때, 그 말이 엄청난 위로가 되고 제가 겪고 있는 병과 제 상황에 대해서 좀 더 힘을 빼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주는 말이 었어요.”(워크숍 참가자 후기 중)     꿈꾸는 변화 : 앞으로 만들고 싶은 변화의 모습은? 고민이 많다. 뭘 해야 될까. 지금은 오프라인에서 하는 게 당장 힘드니까, 다른 친구들 2명이랑 해서 간단한 SNS 콘텐츠를 준비하고 있다. 또, 섭식 장애 당사자 분들의 글을 모으는 작업을 오랜 기간 해서, 콘텐츠화 하고 아카이빙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또, 워크샵도 1년에 2번 정도 생각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자연스럽게 밥 먹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나서 밥을 먹을 때, “살 쪗네 건강해 졌다 혹은 예뼈졌다.” 라는 말을 듣는 게 아니라 정말 자연스럽게 “안녕하세요"하면서 밥 먹는 그런 모습이 되면 좋겠다. 가끔 이런 순간들을 마주치는 순간이 있다. 그때 마음이 너무 편하다. 살을 찌어서 갔는데, 자연스럽게 인사하고 밥 먹는 그런 모습. 그런 사회가 좋은 사회이고, 만들어보고 싶은 사회다. 그런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   “임산부가 되면 몸매에 대해서 평가에 자유로울 줄 알았는데, 임산부도 6개월 치의 몸매가 있는 거에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세상은 만났을 때 몸매에 대해서 평가하지 않는 세상.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꿈꾼다면.”(선민)
성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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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장막을 걷어, 그 너머로
<연애의 장막을 걷어, 그 너머로> by 남함페 연웅 벌거 벗은 남자들 : 새로 쓰는 남성 섹슈얼리티  • 이 프로젝트는 기존 남성 섹슈얼리티의 재탕이 아니라, 새로 쓰는 남성 섹슈얼리티다. • 편견과 왜곡, 위계와 대상화로 가득한 남성 섹슈얼리티의 실체를 고발하고 비판해야 한다. • 그 자리를 더 나은 질문과 고민을 통과한 남성 섹슈얼리티의 탐구로 채워야 한다. • 그러기 위해서는 남성의 내부고발, 실제적인 경험, 고민과 성찰이 필요하다. * 이 글에는 인터넷 용어 또는 혐오 표현을 직접 인용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나, 차별과 혐오의 재생산이 아닌 비판에 그 목적이 있으며, 가급적 사용을 지양하려 노력하였음을 미리 밝힙니다. “우리,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어느 날, 어떤 연애는 그렇게 끝이 났다. 나는 저무는 연애 앞에서 무엇도 하지 못한 채 가장 초라하고 몹쓸 사람이 돼 있을 뿐이었다. 연애가 내게 남긴 감상은 늘 ‘너무 어렵다'는 것에서 시작했다. 연애란, 정답지는 당연히 없을 뿐더러, 한 사람의 성숙이 그 관계의 성숙을 보장하지 않는 극한의 팀플이었다. 성숙한 한 사람이 나였을 때도 상대방이었을 때도 혹은 둘 다라고 믿었을 때도, 팀플의 난이도는 낮아지지 않았다. 연애의 끝에선 늘 실패만 돋보일 뿐이었다. 연애는 늘 맑은 거울처럼 나를 비췄다. 평소에 보이지 않던 뾰루지와 생채기가 왜 이렇게 눈에 띄는 걸까. 거울 앞에선 자꾸 지난 상처에 손이 가곤 한다. 만지다 덧날 걸 알면서도 그런다. 상처 위에 뽀로로밴드를 붙여도 상처는 티가 나기 마련이다. 때로 연애는 내가 알고 싶지 않던, 보고 싶지 않던 내 모습들을 자꾸 무대 위에 올려 놓는다. 무대가 익숙한 사람도 아닌데, 기획부터 연출에 연기까지 꼼꼼히 재고 있다. 어떤 대사는 날 간지럽게 하고, 어떤 배역은 내 깊숙한 심연을 자꾸 건드린다. 시나리오는 내 몫이 아니라 손 댈 수도 없다. 괜찮다. 어쨌든 무대만 잘 만들면 된다. 하지만 자만은 가끔 실망스런 결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생각보다 적은 박수나 예상치 못한 비평에 난 하염없이 무너진다. 자존심은 비틀거리고 서운함이라는 불청객은 어느새 안방까지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겨우 무대를 내려오며 할 말을 참는 날이 하나 둘 늘다 보면 어느새 지쳐 그만 둘 생각에 잠긴다. 그렇게 애정은 망한 극장처럼 알게 모르게 자리를 뜨고, 금새 이별이다. 다시 한 번 무대에 장막이 드리운다. 밀린 숙제처럼 지난 연애의 장면 장면을 곱씹다 보면, 자주 ‘사람’과 ‘관계’를 외면하고 ‘연애’ 그 자체에 집중하고 몰입하던 내가 보인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연애는 그 시작부터 엔딩까지 특별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우연이 인연이 되고, 인연이 이어지다 연인이 되는 과정 중 아련하지 않은 순간은 없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연애만 왜 특별한가. 다른 관계들에 비해 ‘특별 대우' 받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오히려 연애는 ‘특별해야만 한다'는 그 생각이 우리가 이걸 늘 망치는 근원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사람을 놓칠 수 없어"“이번이 아니면, 다신 없을 것 같아"“이 사람이 아니면 안 돼"“절대 헤어질 수 없어”“우린 특별하니까" 나도 그랬다. 언제나 사랑은 새로 발견한 불 같았다. 보고만 있어도 좋았다. 어느 날 가랑비에 젖어 식을 수도 있다는 생각, 날 다치고 아프게 할 거라는 생각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이전에도 데였으면서 이번엔 오래 따뜻하기만 할 거라고, 내가 그렇게 되게끔 만들 거라고 쉽게 자만했다. 단순히 근거 없는 자만은 아니었다. 그 사람에게 헌신하고, 사소한 것까지 잘 돌보고, 근사한 데이트를 기획하는 일을 ‘잘 해낼 자신’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늘 그렇듯 반전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한 명의 헌신은 다른 이의 부담이 되었고, 돌봄은 늘 상황 의존적이었다. 성실한 데이트 기획은 부담에 부담을 덧대는 꼴이 될 뿐이었다. 어느새 소원해진 관계를 돌아보며, 뭔가 바꿔보려고 할 때는 이미 역부족이거나 역효과라는 걸 깨닫게 된 후였다. 우린 보통 친구 관계를 비롯한 인간 관계의 친밀함을 측정할 때 ‘편하다'는 감각을 그 지표로 많이 애용한다. 편하다는 것은 그만큼 신뢰가 쌓였다는 방증이고, 그 관계가 부담스럽거나 나를 힘들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 관계가 ‘연애’로 가게 되면, ‘편하다'는 감각은 오히려 ‘이별'의 징후로 취급되기도 한다. 그 관계가 편해졌다는 것이 곧 그 사람에게 질린다거나 지루해졌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경우다. 왜 우리는 같은 ‘편함’의 감각을 연애에만 다른 잣대를 두고 보는 걸까. 계속 팽팽하기만 한 고무줄은 끊어지기 마련인데, 왜 유독 연애만 끊어질 것을 어떤 관계보다 두려워 하면서 끊어질 때까지 몰아 붙이는 걸까. 나도 여기에서 함정에 빠졌다. 나도 ‘연애'를 ‘일상적 관계'로 보지 않았던 게 아닐까. 고독과 고통으로 점철된 생으로부터 나를 구해 줄 ‘백마 탄 구원자' 정도로 ‘연애'를 생각했던 게 아닐까. 그러면서 그 특별함과 소중함에 잔뜩 취해 ‘연애’가 늘 ‘연애’답길 바란 게 아닐까. ‘연애 다운 연애’가 수많은 ‘연애’를 망친다. 연인과 친구가 무엇이 다를까. ‘섹스'를 한다는 것? 그건 개인 간에 취사 선택할 영역이다. ‘섹스 없는 연애'도 분명 있을 수 있다. 아니 있어 마땅하다. ‘이별’이 존재한다는 것? 친구 사이에도 이별이 없지 않다. 때론 연인 사이보다 드라마틱한 이별의 순간이 친구 사이에도 있질 않나. 누군가와 친해지지 않고 연인이 되려는 것, 가능하지 않거나 폭력적인 일이다. 연애는 일상이고 관계다. 관계는 그들만의 스펙트럼과도 같아서, 당사자들이 쌓아 온 시간과 애정의 역사 어딘가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이를 무시하고, 고백 같은 선언이나 일방적인 발버둥으로 연애를 얻으려 한다면, 필시 외롭고 쓸쓸하게 남을 것이다. 결국, ‘구분 짓기'가 만들어 낸 촌극이다. ‘친구'와 ‘연인'을 억지로 구분하려 하니 ‘모순'이 생기는 것이다. ‘남녀 사이엔 친구가 없다는 말'로 ‘이성 간 친구'라는 관계를 세상에서 지우고, 동성애 차별로 ‘동성 간 연인’을 삭제하는 것도 ‘구분 짓기'가 만들어 낸 비극이다. 심지어 굳이 ‘연애’라는 관계를 맺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솔로'라는 이름을 붙여 조롱하는 일 또한 마찬가지다. 연애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그렇게 살게 내버려 두지 않고, 연애하고 싶은 사람이 관계를 시작하고 유지하는 것조차 어렵게 만드는 것. 즉, 구분 짓고 이름 붙이는 것에 급급한 사회가 각종 차별과 배제를 만들어 내고, 우리 관계의 상상력을 제한하고 우리 관계가 더 편해지고 좋아지는 데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갑자기 웬 정치냐고? 이는 결국 ‘정치'의 문제다. ‘관계'의 문제보다 우리 일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일이 또 있을까. 우리의 행복한 ‘관계 맺기’를 ‘구분 짓기'로 방해하는 사회에 제발 그만하라고 외치는 것이 넓은 의미의 정치가 아니고 대체 무엇이겠는가. 모두가 편하게 연애 하거나, 편하게 연애 안 하는 세상을 만드는 일. 나는 이것도 ‘페미니즘'이라 부르고 싶다. 여기 A가 있다. 그는 평범함을 미덕으로 여기며 한국 사회가 가리키는 표지판을 따라 성실하게 달려온 학생이다. 고등학생 시절 선생님들은 ‘대학 가면 연애한다’고 말씀하셨다. 연애를 하고 있든 한 적 없든 모두 캠퍼스를 거니는 커플의 모습을 상상하며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A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선생님의 말대로 지금은 연애하거나 놀기보다도 공부에 집중해야 한다 생각했다. 대학을 간 다음 하고 싶은 걸 하자는 생각이었다. “대학만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연애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그 경험의 유예를 권장할 뿐이었다. 모두가 대학에 갈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게 된 A는 그간 인질로 잡혀 있던 연애가 풀려나 자신에게 반갑게 올 줄 믿었다. 근데 웬 걸? 대학은 고등학교보다 더 했다. 그야말로 자유경쟁시장이었다. ‘누가 더 많이 실수하나’의 각축장을 방불케 했다. 대학을 간다고 연애를 한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로 밝혀졌다. A는 억울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고등학생 때 연애할 걸. 억울한 마음을 풀고자 하는 의미였을까. 단순히 연애가 하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A는 적극적으로 미팅과 소개팅에 나가고, 주변에 조언을 구하며 연애에 ‘도전’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A의 일방적인 고백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었고, 동기들은 공지해 줄 과대표를 잃었다. A는 군대 갈 결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2년, 군대를 다녀 온 A는 이번엔 ‘복학생’ 신분으로 ‘연애’에 ‘재도전’하기로 했다. 그간 인터넷 커뮤니티를 드나들며 배운 토막 연애 상식들로 단련된 A는 각종 동아리와 학회에 출석 도장을 찍으며 열심히 ‘노력’했다. 심지어 관에서 하는 ‘솔로대첩’과 같은 행사도 빠지지 않고 나갔다. 하지만 결과는 이전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에게서 고립되고 배제될 뿐이었다. 그는 억울했다. 화가 나기도 했다. 자신의 노력이 보상받지 못하고 자신이 사회로부터 차별받는다고 느꼈다. ‘불공정’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그는 화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그는 여전히 혼자였다. 뭐가 문제였을까. 그는 한 번도 연애를 관계로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에게 연애는 성취, 목표, 도전과 같은 것이었을 테다. 매력적인 여성을 ‘여자친구’로 만드는 일을 ‘성공'하기 위해 최대한 열심히 ‘노력’하고 ‘도전’하였으나 처참히 실패했다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의 실패는 예정되어 있던 일이다. 자신을 성취의 ‘대상’으로 보고, 물건마냥 얻고자 ‘노력’하는 그와 같이 있고 싶은 여성은 단언컨대 없다. 물론 A는 억울할 수 있다. 청소년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과 억압이 큰 영향을 미쳤을 거고, 연애를 성취로 취급한 주변 어른들의 영향도 있었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여성과 ‘동료 되기’보다 ‘공격 하기’를 선택한다면 난 기꺼이 맞설 준비가 되어 있다. 그를 위해서라도. 나도 대한민국의 수많은 A였고,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처참히 반성하고 조금이라도 나아갔다. 어느 시절 나의 ‘고백’은 ‘폭력’이었을지도 모르고, 어느 시절 나의 ‘연애’는 애인에게 ‘감당’해야 할 짐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페미니즘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페미니즘 활동을 공개적으로 하기 시작하고, 성평등을 지향한다는 것을 주변에 공유하기 시작했을 때, 친구나 지인 혹은 모르는 사람(주로 인터넷 악플)에게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이라 쓰고 공격이라 읽는 것)이 하나 있다. “너, 여자 만나려고 하는 거지?” 이 질문은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어딜 가나 쫓아다니며 날 괴롭혔다. 이 질문이 악질인 것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과 소수자가 받는 성차별에 대해 저항하며 시작한 나의 페미니즘 활동을 폄하할 뿐 아니라, 나의 소중한 ‘동료’들을 납작한 질문 속에 가두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면, 오히려 ‘맞다’고 대답해주고 싶다. 맞다. 난 페미니즘 활동을 하며 정말 다양한 여성을 많이 만난다. 그들은 내 가족, 애인, 친구, 동료, 상사이며 함께 공동체를 구성해 살아가는 동지다. 나는 이들을 만난다. 나는 이들과 대화한다. 나는 이들과 공감하며 소통한다. 나는 이들과 함께 자주 웃고, 때로는 울고, 어느 날은 아파한다. 내 곁의 여성 동료는 내가 주눅 들지 않고 계속 페미니즘을 외쳐야 할 더 진한 이유가 되어, 날 조금이라도 더 나아가게 만든다. 이들이 있어 나는 치열하게 살아가며, 또 행복하게 죽어간다. “페미니즘에 분명 답이 있다.” 나는 A를 사석에서 만나게 된다면, 꼭 이 얘길 해주고 싶다. 뭔가 생각했던대로 풀리지 않아서, 어느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은 연애와 관계의 첫 발을 떼며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 이젠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할 그에게 ‘이 길'을 알려주고 싶다. 부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익명의 안티-페미니스트에게 같잖은 위안을 받으며 여성과 소수자를 조롱하는 길로 빠지지 않길 정말 절실하게 기도한다. 그 길이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방향이다. 나는 당신이 다시 우리의 공동체로 돌아오길 희망한다. 그가 생을 살아오며 만든 ‘업보’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에게 손과 함께 페미니즘을 건네겠다. 여성과 관계 맺기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데, 어떻게 연애를 할 수 있겠나. 여성과 연애를 하고 싶다면, 먼저 여성과 동료가 될 수 있어야 한다. 먼저 여성과 친구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곱셈도 못하면서 미적분 한다고 나서는 사람에게 코웃음 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여성의 현실을 알고, 여성의 아픔에 공감하고, 여성의 문제에 함께 나서는 것이 여성과 동료가 되는 일의 충분히 좋은 시작이 될 수 있다. 페미니즘에 분명 답이 있다는 것이다. ”좋고 나쁜 그런 걸 떠나 그냥 나 자신일 수 있어야 해요.”“그러니 결국 내가 나 자신일 수 있는 사람이 좋은 사람인 거예요.”“오직 나약한 남자들만이 강한 여자를 못 견디죠.”“강한 여자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은 강한 남자예요.” 본 글은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이 작성하여 미디어 플랫폼 '얼룩소'에 동시 연재되고 있습니다. 얼룩소 10화 원문 주소 : https://alook.so/posts/q1tlawV 
성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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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박스(Man Box)는 내 목젖에 있었어
<맨박스(Man Box)는 내 목젖에 있었어> by 남함페 정민 벌거 벗은 남자들 : 새로 쓰는 남성 섹슈얼리티  • 이 프로젝트는 기존 남성 섹슈얼리티의 재탕이 아니라, 새로 쓰는 남성 섹슈얼리티다. • 편견과 왜곡, 위계와 대상화로 가득한 남성 섹슈얼리티의 실체를 고발하고 비판해야 한다. • 그 자리를 더 나은 질문과 고민을 통과한 남성 섹슈얼리티의 탐구로 채워야 한다. • 그러기 위해서는 남성의 내부고발, 실제적인 경험, 고민과 성찰이 필요하다. * 이 글에는 인터넷 용어 또는 혐오 표현을 직접 인용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나, 차별과 혐오의 재생산이 아닌 비판에 그 목적이 있으며, 가급적 사용을 지양하려 노력하였음을 미리 밝힙니다. *맨박스(Man Box):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에게 주어지는 억압, 남자다움에 대한 강요로, 전통적인 남성 상에 맞춰 마초적으로 살아갈 것을 주문하거나, 타인(특히 여성, 성소수자)을 통제하거나 지배함으로써 자신의 권력과 위치를 강화하도록 만드는 문화규범으로 나타난다. “주말에 한 번 만나면 되는 거 아냐?”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여느날과 다름없이 나는 늦은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애인에게 걸려온 전화의 첫 음성, “나 할 말 있어.” 그 말은 신호탄이었다. 이미 지난 인연들이 언젠가 꼭 한 번씩은 했던 말이자, 우리의 관계가 이전과 아주 다른 방향으로 튀어나갈 것임을 알리는 경적소리였다. 나는 마른 침을 삼키며 말도 소리도 아닌 대답으로 통화를 이어갔다.  60분의 통화시간, 벌 서는 기분으로 듣고만 있었다. 애인은 수 개월 쌓인 감정의 응어리를 빠른 속도로 쏟아내고 있었다. 언어는 날이 서있었고 목소리에 힘이 실려있었다. 올 것이 온 날, 나는 초조함 속에 짝다리를 짚고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 “내가 네 우선 순위에 몇위쯤 있어? 한 10위쯤은 되니? 일, 활동, 스터디, 모임, 술자리, 출장, 네 개인시간에 다 내어주고 그 다음 자리쯤은 돼? 내가 보자고 할 때까지 너는 먼저 만나자는 말 한 번을 안 하잖아. 나는 만나자는 말도 ‘네가 바쁠 텐데’, ‘체력적으로 힘들 텐데’ 하며 생각에 생각을 거쳐서 겨우 눈치보다 한 마디 꺼내는 건데, 그렇게 다 고려해서 물어봐도 항상 너는 어디가야 한데, 또 회의가 있데, 이제는 온라인으로도 작업하는 게 생겼데, 나 완전 바보 된 것 같아. 우리 연애 왜 해? 우리 카톡도 전화도 그렇게 자주 안 하잖아. 나도 이거 겨우 이야기하는 거야. 내가 너무 속이 좁은가? 열심히 사는 애한테 괜히 뭐라고만 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몇 번이고 주저했어. 알아?”정적 끝에, 내가 되돌려줄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미안해,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물론 이 말은 애인을 더 화나게 했고(그걸 왜 나한테 물어?), 통화는 곧 끊어졌다. “뭘 더 어쩌라고?”  목에 걸려 말하지 못했지만, 사실 내가 하고팠던 항변은 아래와 같았다. “그러니까, 나더러 뭘 어쩌라는 거야? 주5일을 밤낮없이 일하고, 주말에도 스터디에 특강에 이렇게 글까지 쓰고 있는 나에게 뭘 더 기대하는 건데? 어디 한 눈을 판 것도 아니고, 거짓말과 핑계로 둘러댄 적도 없어. 쉴틈 없는 와중에 꼬박 하루 내지 반나절은 너에게 온전히 바치는데, 내가 왜 너에게 그런 미움을 받아야 하는 거야? 혹시 주말 내내 같이 있자는 거니? 그럼 당장은 좋겠지만 나는 미래를 대비할 수 없게 돼. 그것은 곧 더 나은 커리어, 더 나은 대우를 받는 걸 포기하는 거고. 내가 잘 되는 건 곧 네가 잘 되는 것이기도 해. 당장 내가 돈이 있고, 능력이 있어야 너에게 옷 한 벌이라도 사주고, 때우는 식사가 아니라 밥도 제대로 된 걸 먹을 것 아냐? 우리, 언제까지 분식에 메가커피만 먹고 살 거냐고.”이쯤 되면 여러분도 알지 않는가.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나는 기념일을 놓친 적 없고, 맛집과 좋은 카페를 훤히 꿰고 안내했으며, 항상 친절했고, 장을 보고 음식을 해먹일 줄 아는 애인이었다. 월급도 따박따박 나오는 직장에 다녔고, 데이트 비용도 쓰면 더 썼지 섭섭하게 한 적은 없었고 말이다. 꾸밈노동 또한 잘했다. 츄리닝과 삼선슬리퍼는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어디서 옷 못 입는다는 소리를 들은 적도 없었다. 한 마디로 ‘미루어보고 견주어봐도 손색없는’ 남자친구였다. 그런데 대체 왜, 나는 애인에게 그런 말을 들어야 한단 말인가? 심지어 갑자기 걸려온 60분짜리 폭탄에도 나는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방법을 물었지 않은가.나의 구속일지통화 이후, 애인과 연락은 잠정 중단되었다. 억울함이 구름처럼 밀려왔지만, ‘그럴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실상 나의 연애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전개되었으니까. 나의 좋아하는 마음과 구애로 관계가 시작되고, 상대는 고민하다가 몇 번의 데이트 후 연애를 승낙한다. 평화로운 몇달이 지나고, 어느 날 갑자기 애인이 서운하다면서 울음을 터뜨리거나 만남 도중 화를 내고, 간밤에 전화가 걸려온다. 그리고 헤어지거나 예전만 못한 사이가 된다. 나도 애인과 다투는 일이 즐거울리 없고, 내가 아끼고 좋아하는 상대가 나로 인해 서운하고 속상해하니 언제나 미안함과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솔직히, 내가 뭘 잘못한 건지는 알기 어려웠다. 그래서 본디 연애라는 게 구속적인 속성을 지니는 것이거나, “우리 사회에 아직도 서로를 집착하고 못 잃어서 안달인 연애 문화나 연애 시나리오가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는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씁쓸해 했다.그게 아니면  마치 응당 받고 누려야 할 것을 내가 주지 않아 괘씸하다는 듯이 말하는 애인이 더 괘씸하게 느껴졌다. 나도 분명히 연애를 위해 잃고 감수하는 것들이 있고, 지켜야 할 선을 넘은 적도 없었다. 내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져야 할 책임을 다 짊어졌다. 그런데 이런 태도로 나오다니. ‘더 내놓으라’며 떼를 쓰는 애인이 대책없어 보이고 못마땅하게 여겨졌다. 그래서 늘 연애를 시작하게 되면 이런 순간을 으레 예견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때 가서 할 말을 준비해둔 채 말이다. 이전 통화에서 꺼냈던 “미안해, 잘못했어”와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어?”라는 말은 개중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둔 것이었다. 대실패였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구자경(손석구 분)이 염미정(김지원 분)에게 했던 말이 처절하게 다가왔다. 염미정: "할 말 없나?"구자경: "할 말 있으면 니가 해.여자들은 꼭 맡겨 놓은 거 있는 것처럼 툭하면 뭘 달래.내가 너한테 빚졌냐?”염미정: "누가 다이아몬드 달래?"구자경: "다이아몬드가 더 쉬워. 추앙이 뭐냐? 난 몰라."JTBC, <나의 해방일지> 10화 中 그렇지 않은가. 원하는 게 있으면 그냥 말하면 되고, 해달라고 정중하게 요청하면 되는데 왜 이러는 것인가. 그렇게 같은 실랑이, 동어 반복이 몇 번 더 이어진 후에, 이번 연애는 끝이 났다. 한 계절이 이리 지나간 것이다. 끝을 지은 이후에도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따금씩 열이 나기도 했고, 한숨을 푹푹 쉬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수많은 감정이 일었지만 가장 굵직한 결은 억울함과 속상함이었다. 이렇게 끝날 관계가 아니라고 믿었기에 억울했고, 아무리 섭섭해도 그렇지, 지난 시간 내가 공들여 쏟았던 마음들은 하나도 전해지지 않은 것 같아 속상했다. 낮이 밤인 것 같고, 밤이 아침인 것 같았던 며칠을 보내고도, 이 관계를 한층 더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함께한다는 것그 무렵, 마음을 환기하려 펼친 소설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등장했다.  “여보 , 우리 주말 껴서 2박 3일 정도 도쿄와 하코네에 갔다 와요.” …“그래, 그러지 뭐, 당신 마음대로 해.”남편은 가정사의 결정과 선택을 모두 나에게 일임했다. 아내에게 전적인 선택권을 주면서 배려하는 것 같지만 달리 말하면 자신은 관심도 가지지 않겠다는 뜻이자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얘기와도 같았다.임경선, <나의 남자> 中 날카로운 칼에 베인듯 마음이 스산해졌다. 사위가 이토록 어두웠나 싶을 만큼 나는 일순간 고독해졌다. 다친 마음을 달래려고 꺼내든 독백체의 소설이 나를 사뭇 심각하게 만들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언제나 애인에게 선택권을 주고, 애인이 하자는 것을 따랐다. 애인이 만나자고 하면 만나고, 애인이 원하지 않으면 곧장 하지 않았다. 그것이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헌신이자 역할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나의 언어는 소설 속 남편의 목소리와 무척 닮았다. “어, 그러자.”, “응, 네 마음대로 해.”, “하고 싶은대로 해.”는 내가 참 자주 쓰는 말이었다. 그래서 애인과 뭘 하며 만나면 좋을지 먼저 떠올리기 어려웠고, 애인을 따라나선 곳이 좋아도, 심지어 별로여도 특별한 감흥이 일지 않았다.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고, 애인이 하자는 것을 하기만 하면 되었으니 말이다. 이는 내가 생각하는 애인과의 교제, 관계에 대한 무게와 분리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 날 애인은 내게 이 무게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누군가 연애는 함께하는 것이냐고 물을 때, 그렇지 않다고 답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럼 연애를 혼자 하냐?’는 반응이 돌아올 것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무엇이 함께하는 것일까? 몸이 같은 곳에 있으면 함께하는 것일까? 같은 식기, 같은 화장실, 같은 침대를 쓰면 함께하는 것일까? 고백하건데 나는 이런 고민을 제대로 자문한 적이 없다. ‘내가’, ‘연애를’, ‘누구랑’, ‘하는지/안하는지’에 골몰했을 뿐, ‘어떻게 함께 만날지’ 떠올려보지 않았다. 나는 연애를 해도 주어가 ‘우리’로 좀체 바뀌지 않았다. 그러므로 연애가 시작되면 ‘나’의 역할과 기능, 능력 그리고 남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지만 신경썼다. 내가 느꼈던 억울함은 역할에 충실했음에도 발생한 갈등 때문이고, 애인(아마도 내 삶의 모든 애인들)이 느꼈던 속상함과 화는 내가 연애가 시작된 이후로도 여전히 내 생각만 하는 사람이라는 것에서 비롯됐음을 몰랐다. 목젖에서 마주친 맨박스(Man Box)나는 이미 잘 알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맨박스(Man Box)라는 개념을 떠올렸다. 실상 내가 이 연애에 문제가 없다고 안심한 근거는, 남자다움에 근거한 조건과 역할이 충족되었다고 착각한 것에 있었다. 남자다움의 조건은 더치페이 이상의 데이트 비용을 지불할 능력, 데이트 공간인 집의 소유, 애인에게 부족함 없는 학력, 지식, 문화자본, 사회적 관계의 충족을 의미했다. 남자다움의 역할은 데이트 시 적절한 행동의 수행과 많은 것을 가타부타 요구하지 않는 과묵함이었다. 그러니 나는 남자의 조건과 역할을 모두 달성함으로써 ‘좋은 남자’로 승인된 것이었다. 따라서 이 연애에 문제는 없었던 것이다.그런데 맨박스, 남자다움의 억압은 단지 근육을 기르고 돈을 잘 버는 멋진 남자가 되라는 압력 이상의 영향을 미친다. 조건과 역할을 따지는 것에만 빠져, 상대와 좀처럼 상호작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의 경우가 그렇다. 애인이 섭섭함을 토로하면, 왜 섭섭해하는지에 부당함을 느끼고 섭섭할만한 이유를 탐색하는 게 아니라, 애인의 감정을 마주하고 그에 상응하는 나의 감정으로 되돌려주었어야 한다. 애인의 섭섭함 아래에는 나와 더 친밀해지고 싶은 욕구, 나와 더 많은 것을 나누고 싶다는 동기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의 나는 너무나 표면적으로, 피상적으로 애인의 감정을 쳐내기 바빴다. 나는 맨박스에 맞춰 사고하지 않는다고 자부했음에도 그랬다. 맨박스는 가슴 속  감정의 길목에, 그것을 언어로 실어 나르는 목소리를 차단하고 있었다. 상대와 소통하지 말라고, 상대는 지금 너의 역할과 헌신을 무시하고 있는 거라고 말하며. 60분의 통화시간-그날을 완전히 다르게 해석하도록 했다. 아마 애인이 그날의 전화에서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 바랐던 것은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을 것 같다.나를 더 사랑해줘.내가 너에게 하나뿐인 사람이라는 걸 느끼고 싶어.사랑도 없고 특별함도 없다면 그냥 달콤한 거짓말이라도 해줘.무미건조했던 나는 말 한 마디를 못했다. 억울함과 부당함에 골몰했을 뿐, 상대가 무슨 말을 하려 하는지 제대로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말을 끝내 듣지 못하는 사람과 계속 사랑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끝끝내 우리가 걷는 길의 풍경이 달라졌다. 당시 애인에게 걸려온 전화에 나는, 그동안 이 관계의 무게를 오롯이 혼자 감당하게 한 것을 미안하다고 답해야 했다. 그리고 네가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 바빠서 자주 만날 수는 없지만 네가 여전히 나에게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참신한 언어로 돌려주었어야 했다. 이러한 변화 가능성이 담긴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건너갔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 같다. 너무 늦어버렸지만 말이다. 당시 애인의 말을 골똘히 번역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번역 할 필요가 없도록, 애인이 그때 나에게 저 말을 그대로 직언했다면 결과가 달랐을까? 답은 ‘아니다’였다. 당시의 나로서는 어떤 말을 듣더라도 부당한 처사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게다가 저 번역된 말은, 누구라도 쉽게 발음할 수 있는 무게의 언어가 아니다. 나를 더 사랑하고 특별하게 대해달라는 말. 차마 직접 발화할 수는 없어도 너무 간절하게 원하는 말. 나는 기대도 하지 못해 표현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말을 애인은 온 힘으로 전하고 있었던 것이다.위에 인용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소통을 시도하는 염미정에게 “추앙이 뭐냐? 난 몰라.”라고 답한 구자경, 이에 대한 염미정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들개한테 팔뚝 물어뜯기길 각오하는 놈이그 팔로 여자 안는 건 힘들어? 어금니 꽉 깨물고고통을 견디는 건 있어 보이고, 여자랑 알콩달콩 즐겁게사는 건 시시한가 보지? 뭐가 더 힘든 건데?들개한테 물어뜯기고 코 깨지는 거랑 좋아하는 여자편하게 해주는 거랑 뭐가 더 어려운 건데?”JTBC, <나의 해방일지> 10화 中 사실 대부분의 남자들은 만나고 사귀려고 연애하는 게 아니라, 그냥 연애가 하고 싶어서, 애인을 인형처럼 곁에만 두려고 만나는 게 아닐까? 진정으로 말을 걸지도, 듣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나는 분명 나의 애인을 사랑했다. 내가 사귀었던 애인들 모두 마찬가지로 당시의 나는 그들을 사랑했다. 그 마음만은 변함없는 진실이다. 그러나 내가 그들을 사랑으로 대했는지 더는 확신할 수 없게 됐다.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나, 그것이 목젖에 가로막혀 바깥으로 표현될 수 없었다면, 그것을 진정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흔히들 사랑하면 다 잘 만나게 된다는 식으로 쉽게 이야기하지만, 나는 더는 이 통념을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맨박스는 단순히 남자다움에 갇혀 근육만 기르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맨박스는 사람이 사랑을 매개로 진정 함께할 수 없도록 한다. 삶에서 이보다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 또 어디 있을까. 그래서 성별고정관념으로 점철된 문화에 도전한다는 것은, 왜곡된 사랑을 부디 제자리에 돌려놓으려는 투쟁이다. 표현되어야 사랑이지 않은가. 그리고 그것을 막는 억압이 있다. 그러면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이 내 사랑을 알아주지 않는 상대가 아니라, 우리의 사랑을 가로막는 맨박스여야 하지 않을까. 본 글은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이 작성하여 미디어 플랫폼 '얼룩소'에 동시 연재되고 있습니다. 얼룩소 9화 원문 주소 : https://alook.so/posts/1RtMnRv 
성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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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리가 만들어내는 변화가 궁금해?_변화의월담 편
몸을 도구화﹒대상화하는 사회에서, 바디(Body)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통해 억눌린 몸의 목소리와 가능성을 증폭시키고 있는 ‘변화의월담’! ‘그럼에도 우리는’ 2기 프로젝트로 일상에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놀이-돌봄 콘텐츠를 시도하고 있는 이 팀을 만났다. 더 건강하고 활기찬 성평등 영역을 위해 몸으로 맞닿고 놀이하는 게 더더욱 필요하다는 변화의 월담 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그럼에도 우리는'은 성평등을 주제로 다양한 실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활동으로 2022년 1기 13팀에 이어 올해는 9팀이 참여하고 있다.      변화의월담은 어떻게 시작했을까?   둘은(리조와 윤일) 대학교 학부 때 처음 만났다가 5년 뒤 서로 다른 맥락에서 다시 인연을 맺었다. 당시 ‘위험감수놀이’를 주제로 교육학 석사과정을 시작했던 윤일은, 막상 자신이 일하는 현장(유치원)에서는 이러한 놀이를 하기 어려운 상황을 마주하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 리조는 퇴사를 하고, 회복의 여정을 찾아가는 시기였고 ‘파쿠르(맨몸으로 건물이나 다리, 벽 등의 지형을 이동하는 운동)’를 대안교육의 한 방법으로 시도하고 있었다. 리조는 윤일에게 함께함을 제안했다. 변화의 시작이었다.  파쿠르 교육을 하면서 신체 기능 중심적인 몸 교육뿐만이 아니라, 몸을 규정하는 사회적 맥락과 사람들이 겪는 감정, 느낌도 다루면서 관계 중심의 신체 교육을 해야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게 됐고, ‘파이팅 몽키’ 워크숍이 이러한 교육을 만드는데 많은 영감을 주었다. 젠더와 나이와 상관없이 함께 몸을 탐색할 수 있는 파이팅 몽키 워크숍에서 받았던 영감을 ‘바디 커뮤니케이션 교육’으로 정립하였고, 이를 발전시켜나가는 중에 교육 참여자였던 ‘수민’까지 변화의 월담에 합류했다.    “딱 그 시기였어요. 뭔가 몸으로 하고 싶은데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러면서 엄청 여러 교육들을 참여하고 하다가 저도 월담 교육에 참여한게 너무 좋았고..”(수민)    변화의월담 멤버(왼쪽부터 수민, 리조, 윤일) 사진 출처 : @hyejeong_photo   변화의월담, 이름이 궁금하다.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 하나는 정말 물리적으로 담을 넘는 활동이다. 우리 주변의 건축물을 보면 몸을 자유롭게 하기 보다는 몸을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한 환경인 경우가 많다. 예들 들어, 길도 여기는 갈 수 있지만, 이 곳은 가지마라. 여기서는 앉아만 있어라. 이런 식으로 규범으로 둘러 싸인 물리적인 환경이 많다. 물리적인 환경 속에서 그런 담을 실제로 넘어보면서(월담) 내 몸에 내가 인지하지 못했던 어떤 규범이 작동하고 있는지 발견하고,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한편으로, 내 몸이 받고 있는 억눌림, 경직, 힘듦을 발견한다고 하더라도 바로 몸이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심리적인 장벽이 크기 때문이다. 몸이 자유로워진다는 게 어떤 세계인지 전혀 모르지만 그 알지 못하는 세계로 한 발자국 가려면 도전을 해야 된다. 우리도 그런 마음에 크게 공감했기 때문에 세상과 자기 내면의 장벽을 넘어서 좀 더 몸을 자유롭게 하거나 몸을 해방시키거나 아니면 좀 뭔가 약간 더 즐거운 관계, 평화로운 관계를 맺어보자라는 맥락에서 변화의월담이 쌓았던 경험들을 가지고 교육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다.  어떤 방식으로 활동을 하는지?   함께 팀으로 활동하기 전까지의 배경이 다르다보니, 각자 가지고 있는 습관과 선입견을 깨고, 서로를 인정하고 맞춰가는데 시간이 걸렸다. 리조는 기업에서 일했다보니 기본적인 마인드셋(mindset)이 실수하면 안되고 효율적으로 일해야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교육 분야는 창의적이고 예술적이다보니 비효율성이 중요하기도 하다. 즉, 실험 정신도 중요한데 머리로는 그런 개념에 대해 인식하고 있어도 막상 몸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이메일 커뮤니케이션에서 실수가 나오거나, 교육 준비물이 빠졌거나 이러면 불안해하고 경직되고, 서로 책망하기도 했다.    “일의 방식, 이런 것을 다 허물어야 새로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한 과정이 3년 넘게 걸렸다.”(리조)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은 기본적으로 가정환경과도 연결되어있다. 예를 들어, 부모님과 갈등이 있을때 어떻게 해왔는지, 어떻게 감정표현을 해왔는지에도 영향을 받는다. 갈등이 일어나면 회피한다는지, 적극적으로 촉발한다든지, 이런 차이점을 드러내고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에서 나는 어떤 맥락에서 성장해온 사람인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나랑 일하고 싶은 거냐 아니면 너가 원하는 상의 사람과 일하고 싶은 거냐” (윤일)   서로가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들도, 받아들이면서, 서로가 자신과 상대를 알아가는 시간을 거쳤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제는 일에 있어서도 태스크(task, 업무) 중심으로 계획하는 게 아니라 그 태스크를 둘러싼 과정과 각자의 생체 리듬을 중심에 두려한다.    “서로 너 이거 지금 안 괜찮다. 이런 역할을 제일 많이 해 주는 것 같아요. 자기는 알기가 진짜 힘든데(윤일)”     사람의 몸은 하나의 어떤 닫힌 시스템이 아니다. 보통은 내 안에서 나 혼자 해결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사람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오픈 시스템 안에서 되게 다른 방식으로 효율성을 갖게 된다. 그래서 일터에서 사람들이 유기적으로 살면서 성장하려면 다른 방식으로 일을 인식해야한다.   “내 치부를 드러내거나 상처를 드러내거나 힘듦을 드러내는 것이 정말 더 효율적일 수 있겠구나”(리조)   감정 표현이나 아니면 이 상황에 대한 해석을 공유했을 때 당연히 충돌한 경우가 있는데 이를 서로에 대한 질책이나 비난 혹은 원망으로 잇지 않는다. 이것은 어떤 신호일까? 내가 뭘 놓치고 있을까? 소위 우리 인지 체계에 대한 정보로 인식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독특한 것이 아니다. 해외 지성 네트워크의 글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예전에는 몸에 대해 이야기 하는게 프로페셔널하지 못하다고 했는데, 지금은 바뀌고 있다. 이제는 내가 책임을 지기로 했어도 노(no)할 수 있는 솔직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 나에 대해서 잘아는 것이 프로페셔널함이다. 그래야 문제를 빨리 인식하고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이나 기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변화의월담과 성평등의 연결고리   스마트폰이 우리 손에 쥐어진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소셜미디어가 일상이 된 동시에 가장 우울하고 자살률이 높은 세대를 맞이하고 있다는 연구들이 함께 나오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문제로 보여지지만, 이곳에는 젠더 맥락이 들어가 있다. 연구를 들여다보면, 이런 영향이 누구한테, 어떤 집단에 가장 크게 영향을 주냐 했을 때 10대 20대 여성이라고 한다.  디지털 시대를 사는 몸에 어떤 돌봄 또는 커뮤니티를 만드는 교육이 필요할까?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있고, 몸의 경험들을 이야기하는 대화가 드러나는 콘텐츠를 만들고자 한다. 그래서 뭔가 말로는 겪을 수 없는 몸의 놀이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으로 새로운 형식을 고민하고 있고, 보이는 팟캐스트도 그런 고민 중 하나다. 누구에게 어떤 첫마디를 던져서 어떤 대화를 이어나갈 것인지, 그리고 어디로 이어져야 되는지 등 구체적인 구성에 있어서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성평등은 내가 어떤 성 정체성이나 젠더로 태어나든, 가지고 있는 게 내 삶의 선택지를 제한하거나 아니면 차단시키지 않아야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즉, 나의 젠더 정체성에 상관없이 어떤 기회나 경험을 동등하게 누리고, 내가 누가 될 수 있는지 함부로 정의당하는 것이 아니라 내 가능성을 찾아가는 게 성평등이라고 본다.    “성평등은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만나게 하는 기회를 최대한 장벽없이 모든 사람에게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고 봐요”(리조)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의 젠더 규범 때문에 내 가능성 탐색을 크게 영향받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사회에서 장려하는 문화에 따라서 어떤 사람이 되는지가 굉장히 달라지고 있다. 우리의 역할은 놀이를 통해 이런 장벽을 깰 수 있는 경험들을 제안하고, 여기서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걸 경험하는 동시에 내 몸의 새로운 가능성을 만나는 기회를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와 만난 사람들이 이런 경험들을 해 나가면서, 소위 말하는 성평등을 추구할 수 있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성평등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플레이풀(playful) 함을 불어넣고 싶다는 마음도 있다.”(수민)   한편, 성평등 활동을 하다보면 끔찍한 문제를 맞닥뜨리면서 공격과 방어의 구도가 만들어지기에, 위험을 통제하고 소거하는 식으로 대응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말과 몸이 경직되고 보수화될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그게 우리가 원하는 변화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다. 위험을 차단하는게 가장 덜 위험하고 쉬운방법이긴 한데, 접촉을 통해 큰 위로와 지지도 받을 수도 있다. 따라서, 위험으로 인식하게 하는 사건들과 여기에 반응하는 나의 역할과 감각을 안전하게 살펴볼 수 있는 장을 제공해주고 싶다.      기억나는 변화의 순간이 있는지?   휠체어 타신 여성참가자가 생각난다. 말랑말랑한 공을 20번 정도주고 받는 동안 그 참가자 분은 매번 공을 놓치면서도, 그 모습이 매번 그리고 점점 달라졌다. 공을 못 잡아도 몸을 움직이면서 계속 학습하고 시도한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또 이런 환경이 이 사람에게 매일 주어진다면 1년 뒤, 3년 뒤, 10년 뒤 이 사람의 이 몸은 어떤 미래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전율이 느껴졌다.    이분은 같이 노는 걸 진짜 좋아했다. 활짝활짝 웃으시고..같이 막 침 흘리면서 하는데 그게 너무나도 좋았다. 침 흘리는 것에 대한 어떤 인식이 있으면 그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 너무나도 많은 경직에 쌓인 몸이랑 1시간 정도만 같이 놀았는데도 너무나도 많은 가능성을 경험할 수 있었다. 경계의 부당함과 이런 경계가 사라질때 누릴 수 있는 기쁨들이 너무 많아서 계속 생각난다. 아마 장애인 커뮤니티 안에서도 장애를 가진 몸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으로 인해 가능성이 규정 지어지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이것을 주물러서 확장시키고 싶다. 이런 마음이 되게 크게 들었다.    도봉의 성평등 활동센터에서 만난 분도 인상적이었다. 엄마와 딸이 함께 수업을 신청했는데, 딸이 도착하지 않은 상황에서 수업이 시작됐다. 참가자들이 짝을 맺어서, 한 사람이 눈을 감고, 다른 사람이 막 태어난 아이한테 세상을 처음 경험시켜준다면 어떤 것들을 안내해줄까라는 마음으로 공간을 안내해주는 시간이었다.   활동 후 이분(엄마)이 눈을 뜨면서 하시는 말씀이, “엄청 나한테 집중되네요. 60 평생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셨다. 출산한 지 얼마 되지않아 약간의 산후우울증을 겪고 있는 우리 딸에게도 이 경험을 시켜주고 싶다고 덧붙이면서, 엄마로서 자신보다 남을 먼저 챙기던 삶을 사셨을, 그래서 타인이 아니라 자신(본인)을 감각하며, 깊숙히 안으로 들어갔던 경험이 처음이었을, 그 참여자와 장면이 진한 여운으로 남는다.    “매번 봤어요. 한 명의 몸을 만날 때마다 월담이 진화한답니다. 배우고.. (윤일)”     앞으로 만들고 싶은 변화의 모습은?   “2017년도에 퇴사하고, 숨을 쉬는 법을 잊어버렸어요. 그래서 찾아갔던 곳이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이쪽인데 제 첫 직장이 실리콘밸리였거든요. 그때 되게 다양한 것들을 경험했는데 그중에 하나가 ODC 센터에요. 그 곳은 경계가 없는, 그러니까 장애든 성 정체성이든 그 어떤 경계도 허물고 365일 내내 연극, 무용, 음악 등 몸을 다루는 수업을 여는 곳이에요. 그 센터를 알게 된 계기는 장애인들이 만드는 퍼포먼스 때문인데요. 장애인들이나 뮤지션과 예술가로서 퍼포먼스를 하는데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것이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친 수준의 솔직함과 위트로 표현하는 것들을 보면서 의식이 약간 진짜 태풍에 지붕이 날아가는 것 같았어요. 다양한 몸들이 부담 없이 찾을 수 있고, 자기의 어떤 가능성이나 삶을 아름답게 하는 그런 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장이 존재하는 도시가 우리 주변에도 있길 바래요. 우리가 그 장을 만드는 사람이 될지 아니면 그 장에 이웃이 될지 그런 건 상관없이 그런 장이 커뮤니티에서 계속해서 존재하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요.” (리조)   “몸이나 마음의 감각을 억누르는 게 어른스럽고 바람직하다고 여겨지지 않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평생에 걸쳐서 젠더, 나이, 사회경제적 지위 같은 것에 상관없이 누구나 많이 노는 그런 세상이길 바래요. 그러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아요. 우울, 갈등 이런 것들이 다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요?” (윤일) “몸의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그런 관계나 일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요. 지금의 활동이 그 맥락인 것 같은데 이것을 이제 이렇게 넓혀보고 싶어요. 옷을 만드는 어떤 여정을 준비하고 있는데, ‘옷이 나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몸을 가장 가까이서 감싸고 있는 집인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한국 사회에서는 옷이 외적으로 보이는 모습으로 많은 평가와 판단이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죠.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 어떤 그 사람만의 모습, 정말 아름다운 모습과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삶을 온전히 이해하고 유지해 줄 수 있는 집(옷)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게 추가된 몸의 느낌이 되거나 지워지지 않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수민)
성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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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우리는] "우리는 서로의 페이스메이커" 피드백 살롱 이야기
“우리는 서로의 페이스메이커”‘그럼에도 우리는’ 피드백 살롱 현장 소식 을 전합니다. 성평등을 주제로 프로젝트 실험을 펼치고 있는 그럼에도 우리는 2기 9개 팀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지난 5월 시작된 프로젝트의 중간 지점을 함께 돌아보는 ‘피드백 살롱'이 열렸는데요. 달마다 정기모임을 통해 진행해온 과정을 소통하며 서로의 프로젝트에 대해 가볍게 공유해왔다면 오늘은 좀 더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팀별로 만든 콘텐츠나 제작물, 기획안을 프로토타입 형태로 공유하고 아이디어를 얻거나 고민되는 지점을 나눌 수 있도록 준비했는데요. 성평등에 대한 공통의 관심과 관점을 가진 팀들이기에 서로에게 가장 와닿는 피드백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죠. 또 남은 길을 함께 뛰어줄 든든한 응원군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고요. 피드백살롱을 통해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한번 살펴볼까요?    ½ 작은 성공 축하하기  먼저, 완성된 결과물이나 큰 성공이 아니라 과정에서 이루어진 작은 성공을 발견하고, 이를 축하하기 위해 팀별로 ‘진전 곡선'을 그려보았습니다. 진전 곡선은 가로축에는 ‘시간’, 세로축에는 ‘진전(성취감)’이 있는 곡선 그래프 입니다. 팀별로 시간 순서에 따라 성취한 일이나 경험을 적어보면서 그동안 이룬 작은 성공을 발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떤 변화를 위한 활동에서 빠른 성장을 기대하며 작은 규모의 성장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변화가 드러나기까지 기다리지 못해 너무 일찍 포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데이비드 피터 스트로(2015)의 ‘사회변화를 위한 시스템 사고’에 따르면 이러한 변화(성장)는 ‘일직선’이 아니라, ‘점진적인 곡선’을 가지는 것이 자연적이라고 합니다.   팀별로 현재의 진전 곡선과 위 곡선을 비교해보면서, 앞으로의 성장을 위해 ‘작은 성공'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되새겨보았습니다. 한편, 그 이후 성장 단계를 위해 활동의 결과를 정량화해서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되었습니다. 변화를 위한 임계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연결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의 활동을 처음보는 다른 사람의 시각과 언어에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데이터'가 필요한 것입니다.      변화의 데이터 데이터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공감과 연대를 이룰 때 효과적인 소통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성평등 활동에 관심이 있거나 시도하려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정보와 지식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외부의 시선이 아닌 우리가 직접 만드는 의미있는 변화지표를 만들어서, 스스로 성장을 확인하는데도 쓰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그럼에도 우리는’ 활동 이 만든 ‘사회 변화’를 보여줄 수 있는 데이터에는 무엇이 있을지 팀별로 아이디어를 모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를 위해 팀 활동으로 발생 가능한 사회 변화가 나타나는 곳을 ‘수혜’, ‘사회구성원', ‘사회변화자본' 3가지 영역으로 나누었습니다.   예를 들어, ‘FDSC’ 팀의 경우 여성 디자이너들의 법적 이슈 상담을 통해 20명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고(수혜 영역), ‘모두의 숲’ 팀의 경우 정부가 해야할 일을 하지 않아서 발생한 산불에 대해서 사회구성원들에게 알려서 정부에 대한 책임 의식을 높이는 영향을 줄 수 있었습니다(사회 구성원 영역). 등대 팀의 경우 성평등 인식에 대한 사회적 경험을 확산할 수 있는 보드게임의 개발을 하나의 지적 자본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사회변화자본 영역).  이러한 과정은 NPO를 위한 사회성과 측정 가이드북(서울시 NPO 지원센터)을 참고하여 이루어졌고, 향후 팀별 데이터를 다시 한번 수집해서, 그럼에도 우리는 2기, 변화의 데이터로 정리할 예정입니다.    피드백 라운딩 5월 오리엔테이션 때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공유하였던 9개팀은 4개월의 시간 동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다시 만났습니다. 피드백 라운딩은 그동안에 진행했던 활동을 공유하고, 피드백을 통한 서로 배움과 지지의 경험을 만들기 위해 마련하였습니다.  서로가 안전하고, 도움이 되는 피드백을 주고 받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이 피드백을 받고 싶어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팀별로 아래와 같이 어떤 피드백을 받고 싶은지, 그리고 피드백을 줄때 필요한 정보는 무엇인지 미리 준비해왔습니다. 피드백 받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다른 사람들이 피드백을 주기 위해 필요한 정보는 무엇인가요? 피드백을 받을 때 다른 크루가 어떤 점을 고려해주면 좋을 까요? 총 3라운드에 걸쳐서 라운드별 3팀씩 30분정도의 피드백 시간을 가졌는데요. 앞서 준비해온 피드백 살롱 준비물을 바탕으로 팀별로 요약발표를 하고, 다른 크루들은 피드백을 주고 싶은 팀을 선택하여 조별로 나누어 이동하였습니다. 이후 다시 한번 상세하게 피드백을 받고 싶은 주제에 대해 공유하였고, 서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기획과 콘텐츠에 대한 피드백을 듣고 싶어했던 팀, 프로그램 활동이나 프로토타입 제품을 시연하고 피드백을 들었던 팀, 앞으로의 활동 방향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던 팀들이 있었습니다.  서페대연팀의 경우 ‘페미니즘에 대한 혐오가 만연한 대학사회에서 프로그램 참여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 어떤 것이 더 필요할까요?’ 라는 고민을 나누어주었고, 다른 크루들은 환경 운동가들이 겪었던 이슈와 학과에서 먼저 지지하던 사례 등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뜨개질 커뮤니티 모임을 운영하고 있는 닛더피스 클럽의 시간에는 뜨개질을 할때 참여자들이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실제로 다른 크루들이 해보면서 피드백을 나누었고, 스트레칭하는 시간과 구체적인 시간 배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팀 안에서만 다루어졌던 이슈에 대해서 피드백라운딩을 통해 다른 팀 크루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새로운 시각과 지지적 힘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피드백 라운딩에서 나누었던 대화는 휘발되지 않고, 앞으로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도록 팀별 피드백 게시판에 정리하여 공유하였습니다. 참고 : <피드백 살롱>에서 우리의 여정을 되돌아봐요.☕️ - 캠페인즈 그룹   <피드백 살롱 참가 후기> 그럼에도 우리는 함께하기 ‘그럼에도 우리는’ 2기는 12월에 그동안의 활동 과정과 결과를 시민들과 함께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멈추지 않고 지속되는 ‘그럼에도 우리는’ 활동을 응원하는 시민들의 마음을 모으고자 모금함도 열었습니다. 성평등 문화 확산을 위한 성평등 페스타(축제)를 만들고자 합니다. 관심과 응원으로 함께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함께하기(클릭)
성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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