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

창업자의 뜻을 지우는, 유한양행 이사진의 위인설관(爲人設官)
위인설관(爲人設官) : 사람을 위해 벼슬 자리를 일부러 만듦. 3월 15일 주주총회의 안건, 회장과 부회장직 신설 유한양행은 지난 2월 14일, 주주총회 소집 공고를 냈다. 한 개 안건이 논란이 됐다. 정관 변경 건이었다. 현재 유한양행 정관 33조 2항을 변경한다는 것이다. 기존 정관 제33조 2항에는 “이사회 결의로 이사 중에서, 사장, 부사장, 전무이사, 상무이사를 선임할 수 있다.”로 되어 있다. 이를 “이사회 결의로서 회장, 부회장, 사장, 부사장, 전무, 상무를 선임할 수 있다.”로 바꾸자는 내용이었다. 회장과 부회장직 신설이었다. 이는 곧 이사회에서 결정만 하면, 회장, 부회장을 선임할 수 있다는 말이다. 28년 전에 없어진 회장, 부회장직을 다시 살리는 이유에 대해 의문이 제기됐고, 이것이 유한양행을 사유화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됐다. 직전 회장은 연만의 유한양행 고문이었고, 당시엔 정관에 회장?부회장도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28년이 지나서 다시 기한조차 명시되지 않은 회장?부회장직 신설하는 저의에 대한 의문 속에서, 이는 수년 간 착실하게 준비된 된 것이라는 목소리기 나왔다. 그 시작은 2022년, 유일링 고(故)유일한 박사 손녀의 유한재단 이사 퇴출이었다. 쫓겨난 고(故)유일한 박사의 손녀 유일링(유은영), 견제와 균형 붕괴의 초석 고(故)유일한 박사의 유산은 기업 소유와 경영의 분리이자, 견제와 균형 시스템이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기 위해, 고(故)유일한 박사는 1969년 친아들을 유한양행 경영으로부터 손 떼게 했으며, 경영권을 전문경영인에게 넘겼다.  자식들에게 유한양행 주식을 1주도 남기지 않음으로써 주식을 통한 경영권 소유를 방지했다. 또한, 모든 주식을 교육기금에 기부하며 자식들은 이 기금 관리에만 힘쓰게 했다. 이 기금은 유한재단과 유한학원이며, 그의 자식들은 이곳 경영에만 참여할 수 있다. 유한재단과 유한학원이 유한양행 대주주라는 점에서, 유한재단과 유한학원은 유한양행 결정에 ‘반대표를 행사할 수 있다. 견제와 균형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하는 이유다. 견제와 균형을 위해선 유한재단 이사진의 역할이 중요하다. 의사결정은 그들 몫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2년 1월 유일링 이사는 유한재단 이사로 재선임 되지 않았다. 임기 만료가 이유였다. 당시 유일링 이사를 포함해 4명의 임기가 종료 시점이었지만, 유일링 이사만 재선임되지 않았다.  고(故)유일한 박사가 스스로를 기업가가 아닌 교육자라고 말했던 만큼, 유한재단은 유일한 박사의 정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차원에서 그의 유일한 손녀인 유일링 이사가 이사직에 재선임되지 않은 건 당시 큰 논란이었다. 또한, 고(故)유일한 박사의 뜻을 이어야 한다는 면에서 그의 후손이 유한재단에 남아야 한다는 시각이 강했다. 당시 유한재단 이사진들은 “유일링 이사가 미국에 있어서 재단 업무를 보기 어렵다" 고 말했다. 해임된 유한재단의 이시진은 전, 현직 유한양행 관계자로 채워졌다. 현재 유한재단 이사진 중 유한양행 전・현직 관계자는 5명 이상이다. 조욱제 (현 유한양행 대표이사・사장), 이정희(전 유한양행 대표이사・사장), 송두영(전 유한양행 재무팀 이사), 김성섭(전 유한크로록스 대표이사・사장), 정수길(전 쉬랑프라우 대표이사・사장). 유한크로록스는 유한양행의 가족회사이며, 쉬랑프라우는 유한양행의 합작 회사다. 유한재단 이사진이 전, 현직 유한양행 관계자와 가족회사, 합작회사 인원들로 채워졌다는 면에서 고(故)유일한 박사가 말했던 견제와 균형 시스템은 무너진 것과 진배없다. 유한양행 경영진과 이사회를 견제하기 위해선, 대주주가 견제할 수 있어야 하고, 그 대주주인 유한재단에 유한양행과의 특수 이해관계가 없어야 한다. 공익법인의 설립ㆍ운영에 관한 법률 5조 5항에서는 공익 법인의 현역 이사진 중 특수관계인을 5분의 1 이상 둘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단을 통한 기업 지배 방지를 위해서다. 특수관계인인 유일링 이사가 2022년 축출되고, 유한양행 관계자로 채워졌다. 유한재단의 유한양행 견제 능력에 의문이 드는 이유다. 한편, 유일링 이사는 유한학원 이사진에서도 해임될 뻔했다. 2023년의 일이다. 당시, 유한학원 이사진 중 유한공고 이사진들이 막아줘서 가까스로 이사직을 유지한 바 있다. 고(故)유일한 박사 지우기 논란과 이사진의 기업 사유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유한양행 임직원  “유일한 박사님은 경영과 소유를 분리했고, 사회환원을 말했다.”  “회장 부회장 직제 신설로, 기업 사유화 안 돼" 주주 소집 공지가 올라온 2월 14일 이후,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서는 유한양행 직원들의 게시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현 경영진들이 유한양행을 사유화하려고 한다는 비판이었다. 직원들은 유한양행 경영진의 비리와 경영 판단 오류, 이정희 전 유한양행 대표이사・사장의 채용 비리와 부하 직원 전 부인과 재혼하는 등 도덕성 문제들을 알리고, 부디 3월 15일 주주총회에서 반대 투표 해 줄 것을 요청했다. 유한양행 임직원의 평균 근속연수는 12년 8개월이다. 남성은 13년 9개월, 여성은 9년 7개월이다. 이는 국내 제약 바이오사 평균 근속연수가 5.25년인 것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또한, 국내 200대 기업 평균 근속연수인 9.45년보다도 높은 수치다. 근속연수 측면에서 직원들의 애사심이 높다는 걸 추측할 수 있다. 또한, 트럭시위는 전체 임직원 중 6분의 1에 해당하는 300명이 자발적으로 모금해서 이루어진 시위였다. 540만 원가량을 모아서 진행한 시위다. 높은 근속연수의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시위까지 벌인다는 면에서, 유한양행 직원들이 회장・부회장직 신설에 큰 우려를 하고 있고, 큰 사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유한양행 주주총회, 95% 찬성으로 회장・부회장직 신설 통과 3월 15일 열린 주주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는 직접 한국에 방문했다.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는 주주총회에서 "오늘 하고 싶은 말은 할아버지의 뜻과 정신이야말로 회사가 나아가야 할 가이드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모든 건 이를 따라 얼마나 정직하고 거버넌스(지배구조)에 도움이 되는가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의 반대 의사 표명에도 의결권 행사자 68% 중 95%의 찬성으로 모든 안건은 원안대로 통과됐다. 회장, 부회장직이 신설되고, 이사회는 회장과 부회장을 임명할 수 있게 됐다. 회장, 부회장에 누가 임명되느냐가 벌써 주목받고 있다. 이정희와 조욱제 이사 모두 자신들은 “안 한다. 명예를 건다.”고 말했다. 회장을 안 할 거면, 이사회 의장은 왜 계속 하나.  “이미 경영진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이정희 현 유한양행 이사장은 유한양행 대표이사・사장으로 총 6년 임기를 마치고, 돌연 기타비상무이사로 등재해 3년간 유한양행 이사회 의장 자리를 맡았다. 전문경영인 6년 이후 회사를 떠나는 것이 관행인 가운데 이례적인 모습이었다. 3월 15일 주주총회에서 또다시 3년 연임을 안건으로 올려 통과시켰다. 합계 12년을 이사회 의장 자리에 있는 셈이다. 이정희 현 유한양행 이사회 의장이 유한양행 대표로 재직하던 시절, 이미 일감 몰아주기와 채용비리가 있었다. 조욱제 현 유한양행 대표이사・사장이 자기 아들을 유한양행 관계사에 취업 압력을 넣었고, 또한, 유한양행 주력 제품 판매 대리점 대표의 아들을 유한양행 2022년 공채에 뽑으라고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이었다. 해당 내용은 국민신문고에 접수되어 드러났지만, 조욱제 대표는 “지시한 바 없다"고 반박한 바 있다. 반면, 압력을 받았다는 A씨는 “조 대표의 압력이 없었다면, 학점 2점대 사람을 뽑지도 않는다.”고 반박했다. 유한양행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업계 관계자는 “유력 병원장이나 정부 관계자 자녀, 기관장 자녀 등이 채용된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며 “대주주인 유한재단이 ‘경영과 소유를 분리한다’는 원칙으로 주주권 행사를 사실상 하지 않는 바람에 경영진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모습에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대표,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 이석연 전 법제처장 등 ‘유한을 사랑하는 시민사회 인사 대표'들은 “유한양행은 국민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아름다운 기업 문화의 상징”이라며 “(유한양행 경영진은) 유일한 박사의 창립 이념과 기업가 정신을 잊지 않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사람을 신뢰했던 고(故)유일한 박사 고(故)유일한 박사는 “한 사람을 믿고 영입하면 그 사람과 거의 일생 동안 함께 일할 생각을 가지는 편이었다.” “그래서 창업 시기의 직원들이 20년, 30년 오랫동안 유한양행을 지키는 것을 보게 된다.”*  이정희 현 유한양행 이사회 의장은 1978년에 유한양행에 입사했고 2015년에 대표이사・사장으로 취임했다. 조욱제 현 유한양행 대표는 1987년에 유한양행에 입사했고, 2021년에  대표이사・사장으로 취임했다.  이정희 의장은 45년 동안 유한양행에 재직했고, 조욱제 대표는 37년간 재직했다. 모두 신입부터 시작해 전문경영인까지 올라간 사람들이다. 고(故)유일한 박사가 구축했던, 체제의 증인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더더욱 고(故)유일한 박사가 만들고 추구했던 정신을 추구해야 한다. 현재의 의혹들과 경영 행태 어디에 유일한 정신이 있는지 의문스럽다. 고(故)유일한 박사는 “기업의 생명은 신용이다.”** 라고 말했다. 현 이정희 이사회 의장과 조욱제 대표는 직원들에게 신용을 잃었다. 고(故)유일한 박사, “기업의 주인은 누구인가” 우리나라 기업 지배구조의 가장 큰 문제점은 독립성이다. 이사회 독립성은 경영진을 객관적으로 감시 할 수 있는가다. 독립성 없는 지배구조는 한 두 사람이 기업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만든다. 고(故)유일한 박사가 만든 유한양행의 지배구조는 경영과 소유의 분리했고, 견제와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했다. 한두 사람의 결정으로 기업이 움직이고, 사익 추구의 도구로 전락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고(故)유일한 박사가 국내 최초로 종업원주주제를 채택한 것도, 국민에게 시장가의 7분의 1 수준으로 주식 공개를 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기업의 주인은 누구이냐는 물음에, 고(故)유일한 박사의 답변은 “국민과 종업원”이었다. 이 체제를 위해 균형과 견제를 제도화한 것이, 그의 유산이다. 이 유산을 유지를 위해 그에 걸맞은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했고, 그 때문에 자식에게도 그 자리를 물려주지 않은 것이다. Ⓒ 한량, 서울시 동작구에 위치한 유한양행 본사 그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선 위인설관(爲人設官)이 아니라, 위관택인(爲官擇人)**** 해야 한다. 현재 유한양행 이사진의 행동은 위인설관(爲人設官)이다. 당장 필요도 없는 회장과 부회장직을 추후 필요하니까 만든다는 논리는 오히려 의심만 키울 뿐이다. 오히려 고(故)유일한 박사의 정신을 가장 잘 계승하고, 유한양행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위관택인(爲官擇人) 해야 한다. 고(故)유일한 박사는 유한양행의 로고로 버드나무를 택했다. 일제강점기 일제의 모진 행태에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 끈질기고, 무성하게 대성하기 바란다는 뜻이 담겨있다. 고(故)유일한 박사의 정신이 정말 무성하게 대성했으면 좋겠다. Ⓒ 한량, 유한대학교 내에 있던 버드나무 * ⟪유일한 평전⟫ (조성기/ 작은씨앗/ 2005) p.237, 289 ** ⟪위대한 선각자 유일한⟫ (김윤섭, 최상후/ 유한양행) p.23 *** ⟪유일한을 기억하다⟫ (민석기/ 중앙북스/ 2015) p.44 **** 위관택인(爲官擇人) : 관직을 위하여 인재를 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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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양행 창업 이야기, 유일한 정신에 대해
국내 ‘유일한 정신’ 지난 3월 15일, 유한양행 본사에서 주주총회가 열렸다. 여느 때보다 이목이 쏠렸다. 직원들은 주주총회 안건에 반발해 트럭시위를 벌였고, 유한양행 창업자 고(故)유일한 박사의 손녀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는 미국에서 직접와서 주주총회 안건에 반대 의사를 표했다. 주주총회는 주식회사가 1년에 한 번 주주들에게 회사 주요 사항들을 의결하고, 투표를 통해 결정하는 자리다. 배당금, 이사회 이사 선임, 최고경영자(CEO) 선임 등 주요 사항들을 결정한다. 금번 주주총회에서는 유한양행 정관변경이 핵심이었다. 이 정관 변경이 고(故)유일한 박사의 뜻이었던, 경영과 소유의 분리 원칙을 위반하는 초석이라는 의심이 나온다. 유한양행 직원들의 주주총회 반대 트럭시위에는 “유일한 박사님께서는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 일가족 그 누구도 경영에 참여시키지 않으셨다.”고 쓰여있었다. 유한양행 이사진이 그 뜻을 파괴하고, 필요도 없는 사람을 임명하기 위해 직책을 만들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한양행, 창업자의 뜻을 계승하기에 존경받는 기업 유한양행은 고(故)유일한 박사가 창업한 제약회사다. 22022년 기준 매출액 약 1조 8천 억원, 영업이익 약 360억 원으로 국내 제약회사 1위다. 또한,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제약회사 부문에 20년 연속 1위로 선정됐다. 유한양행이 존경받는 이유는 국내 1위 제약회사여서가 아니다. 창업자 고(故)유일한 박사의 뜻을 계승하고, 유지하기 때문이다. 그의 삶과 경영 철학은 이익이 아닌, 사회에 있었다. 때문에 그를 사회사업가라고 부른다. 고(故)유일한 박사와 같은 뜻은 현재까지도 국내에 전혀 없다. 고(故)유일한 박사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그 기업을 키워 준 사회에 환원하여야 한다.” 고(故)유일한 박사는 생전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그 기업을 키워 준 사회에 환원하여야 한다.”* 라며 “이윤의 추구는 기업 성장을 위한 필수 선행조건이지만 기업가 개인의 부귀영화를 위한 수단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고(故)유일한 박사는 자신의 신념과 말을 행동으로 옮겼다. 기업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신념은, 자신의 재산을 모두 교육기금에 기부한 것으로 실천했다. 그는 생전 재산 중 양복 세 벌과 구두 두 켤레를 제외하고 모두 사회에 환원했다. 자식들에게도 재산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1963년 9월에는 연세대학교에 1만 2천 주를 기부했고, 5천 주는 보건장학회에 기부했다.**  또한, “유한양행 주식 14만 941주는 전부 한국 사회 및 교육발전을 위한 기금에 기증한다.”는 유언을 남겼다. 유언대로 14만 941주의 주식은 교육기금에 기부됐으며, 현재는 ‘유한재단’과 ‘학교법인 유한학원’의 재산으로 남아 있다. 고(故)유일한 박사가 교육에 힘쓴 이유는, 일제강점기 해방 직후 나라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실제 그는 생전 자신을 경영인보다 교육가라고 말했다. “그가 외국으로 나가서 입국할 때 출입국 신청서 직업란에는 언제나 ‘Educator(교육자)’라는 영문 글자가 쓰여 있었다.”**  세 학교는 유한양행 주식 배당금을 통해 교육, 장학, 사회복지 사업을 하고 있다. 유한재단은 목적 사업비 90%가 유한양행 주식 배당금에서 나온다. 유한재단은 2022년 유한양행 주식 배당금으로 총 43억 8천 4백 5십 9만 7천 원을 받았고, 배당금으로 장학사업과 사회복지사업, 교육사업, 재해구호 사업 등을 하고 있다. 유한대학교 전경 Ⓒ 한량 고(故)유일한 박사 “기업은 개인 것이 아니라, 종업원과 국민의 것" 장학사업에만 몰두했다면, 고(故)유일한 박사가 여전히 존경받고, 직원들이 나서서 트럭시위까지 벌이 진 않을 것이다. 그는 유한양행이 개인의 것이 아니라, 국민과 종업원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한양행의 첫  주식상장 시에 이를 실천했다. 유한양행은 주식상장으로 “창업 이래 10년간 이어져 온 기업의 개인 경영이 막을 내리고 새롭게 법인체제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것은 그 당시 한국 상황에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가장 획기적인 건 주식상장의 가격과 배분에 있었다. 고(故)유일한 박사는 국내 최초로 ‘종업원 주주제'를 실시했다. 종업원 주주제란, 종업원이 회사 주식을 특별한 목적이나 방법으로 소유하는 제도를 말한다. 종업원의 애사심을 증진이 주목적이었고, 최근에는 근로자의 재산형성으로 촉진제의 하나로 인식된다. 실제 국내 대기업은 종업원에게 회사 주식을 상여금으로 주기도 한다. 고(故)유일한 박사는 ‘종업원 주주제’를 통해, 회사 주인이 개인이 아님을 말했다. 이를 위해 “종업원들에게도 액면가 10퍼센트 정도의 가격으로 주식을 골고루 분배해주었다.”** 주주 자본주의 하에서 기업의 주인은 주주라고 인식된다. 그 차원에서 보더라도, 회사 주식을 종업원들에게 값싸게 분배했다는 건, 의미가 있다. 한 개인이 회사를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라, 종업원 주주들과 함께 경영한다는 의미다. 한편, 고(故)유일한 박사는 국민 역시 싼 값에 유한양행 주식을 소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주식상장 당시 시장가의 7분의 1 수준으로 주식 가격을 책정했다. 연만희 전 유한양행 고문은 고(故)유일한 박사와 주식 가격 책정 일화를 소개한 바 있다. 연만희 고문은 유일한 박사가 당시 주식 가격을 100원으로 책정했는데, 이는 당시 시장 가격인 600~700원에 훨씬 못 미치는 가격이라며 만류했다. 그러자 유일한 박사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큰소리로) 내가 돈 벌려고 주식을 상장하는 줄 알아요? 상장하는 이유는 유한이 한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우리 국민의 것이기도 하기에 공개하려는 것입니다. 도대체 정신이 있는 겁니까? 당장 여기서 나가시오.”*** 유한양행 주식 상장은 당시 우리나라에 만연했던 부정부패에도 합리적으로 경영되고, 민주적으로 경영된다는 걸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었다. 당시 “사회는 어디를 보아도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이에 유일한 가사는 이러한 사회 풍조에 도전하기라도 하듯 유한양행이 합리적으로 경영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주식 공개를 결정"**한 것이다. 고(故)유일한 박사가 정치권의 불법자금을 지원 요청을 단칼에 거절하고, 그에 따라 강력한 세무조사를 받았다는 건 이미 유명한 이야기다. 또한, 세무조사에서 장부가 너무 깨끗하고, 세금을 정직하게 낸 것만 증명되어 모범 납세자로 도리어 상을 받은 건 더욱 유명하다. 현재 유한양행의 주요 대주주로는 유한재단, 국민연금, 유한양행, 유한학원이 있다. 유한재단 15.7%, 국민연금 10.1%, 유한양행 8.5%, 유한학원 7.7%이다. 회사가 개인 소유와 사익 추구의 도구가 아니란 걸 보여주고, 체계화하기 위해 고(故)유일한 박사는 일가족이 유한양행 경영에 참여할 수 없도록 했고, 이를 위해 유한양행 주식 단 1주도 자식들에게 남기지 않았다. 1969년에는 자신의 큰아들마저도 유한양행에서 내보냈다. 현재도 유한양행 이사진 중 그의 후손은 없다. 경영권도 전문경영인에게 양도했다.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국내에서 드문 전문경영인체제를 도입한 것이다. 고(故)유일한 박사, 기업 소유와 경영의 분리 강조, 전문경영인체제 도입 유일한 박사는 제 44대 주주총회에서 회사 경영권을 조권순 당시 전무에게 넘겼다. 회사 소유와 경영의 분리 이념을 완성한 것이다. 출처 : ⟪나라 사랑의 참 기업인⟫ (유한양행/ 1995) p.335 고(故)유일한 박사는 제44대 주주총회에서 회사 경영권을 당시 전무였던 조권순에게 양도했다. 이때부터 회사 내부에서 승진을 거듭해 사장직에 오르는 건 유한양행의 관행이 됐다. 또한, 그 임기조차 3년 중임제로 최대 6년까지만 할 수 있다. 그렇게 임기를 마친 사람들은 회사를 떠나는 게 관행이었다. 그것이 고(故)유일한 박사의 뜻을 이어가던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고(故)유일한 박사의 유산을 사유화하는 유한양행 이사진 고(故)유일한 박사의 뜻은 기업이 개인의 사익 추구 도구가 아니며, 기업의 이익이 사회를 위해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시스템 마련이 고(故)유일한 박사의 업적이다. 이 업적이 당대 사회 분위기와 정반대되고, 아무도 생각지 못했었다는 점이 그가 존경받는 이유다. 경영과 소유의 분리는 우리나라 지배구조에서 더욱 보기 드물다. 오히려 창업자 일가의 경영권을 강화하는 움직임이 더욱 강하다. 정치권 역시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비합리적” 이라며 소유와 경영의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도 이런데, 독재정권 당시 모든 걸 추진했던 고(故)유일한 박사의 뜻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다음 글에서는 고(故)유일한 박사의 뜻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어떻게 무너져갔는지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3월 15일에 진행된 유한양행 주주총회를 자세히 살펴보며, 유일한 정신이 어떻게 무너져 갔는지 살펴볼 것이다. * ⟪위대한 선각자 유일한 박사⟫ (김윤섭, 최상후/ (주)유한양행) p.23, 25 ** ⟪유일한 평전⟫ (조성기/ 작은씨앗/ 2005) p.237, 308, 309, 312, 314 *** ⟪유일한을 기억하다⟫ (민석기/ 중앙북스/ 2015)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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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왜 일하나요 [처음 읽는 공동자원체제]
"임금 노동 외에 돈을 버는 방법이 없을까?" 성찰과성장은 '노동시장 너머 새로운 대안 제시하기'라는 주제 아래 3편 연재를 통해, 기존 노동시장의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뛰어넘는 새로운 노동 구조를 상상해보고자 한다. 이 연재는 전통적인 노동시장의 구조와 내재된 문제점을 진단하고, 지속 가능한 노동의 형태를 모색한다. 들어가며 이 글은 ‘왜 우리가 하루 24시간 중 8시간 이상을 원치 않은 곳에서 원치 않은 일을 하며 살아가야만 하는가’라는 의문으로 시작되었다.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우리가 강제적으로 일을 하는 이유는 말 그대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물려받은 자산이 있다면 ‘먹고사니즘’에 대한 고민이 덜 하겠지만 자산이 없는 사람은 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어떤 일을 하고 돈을 벌지 결정한다. 그리고 그 중 약 80%는 누군가의 밑에서 임금을 받으면서 살아간다(2024년 1월 기준 비임금근로자는 22.7%, 임금근로자는 77.3%이다). ▲ 우리나라는 임금근로자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성찰과성장 강제적인 일 직장인이라면 모두 알 것이다. 누군가의 밑에서 일을 하게 되면 그 일은 강한 강제성을 띌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그 ‘누군가’는 우리가 흔히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으로, 이들은 직원을 항상 감시하고 통제하려 한다.  사무직으로 일했던 본인의 경험을 꺼내보자. 사장(또는 관리자)은 심심할 때마다 사무실로 조용히 들어와 돌아다녔으며(일을 제대로 하는지 감시하기 위해 온 것처럼 느껴졌다), 언젠가는 오래 쉬는 직원이 많다고 생각이 들었는지 20분 이상 자리에서 사라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 사장의 ‘꼼꼼한’ 감시는 필요악일까? ⓒ성찰과성장 사장의 ‘꼼꼼한’ 지시는 열심히 일하고 있는 구성원의 의욕을 꺾는데 영향을 끼쳤는데, 그 지시를 유발한 장본인(너무 많이 쉬고, 꼼수를 부려서 일을 안하던 사람)들이 그 후에도 태도를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지시를 지키는 사람은 기존에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던 직원들이었고 이들은 괜히 회사에 대해 없던 불만만 품게 되었다. 사장의 감시와 통제는 수익을 얻기 위한, 그리고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행위임을 안다. 하지만 이 행위 때문에 회사에서 8시간 이상 시간을 보내야 하는 직장인은 아무리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더라도 노동 의욕이 꺾이기 마련이다. 거기다 직장인이 회사에서 만들어낸 모든 생산물은 사장이 소유(정확하게는 회사가 소유하는 것이지만 대한민국 대부분의 사장은 ‘내 것’이라고 생각한다)하기 때문에 일에서 느끼는 효능감은 점차 사라진다.  그럼에도 직장인은 회사를 그만둘 수 없다. 그저 매월 통장에 급여가 입금되는 것을 바라보며 산다. 일을 그만두면 먹고 살 수 없기 때문이다. ▲ 시대별 가구 평균 근로소득 대비 수도권 아파트 매매가 비율 ⓒ성찰과성장 외환위기 이후 불안정일자리가 확대되고 부동산 가격이 임금을 저축하는 것으로는 구입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아짐에 따라 직장인의 비애가 더욱 심해졌다.  특히 부동산 가격 상승은 가계부채를 높이는 데 영향을 주었다(박대근, 최우주, 2015). 통계청 데이터(주택매매가격지수, 아파트 규모별 매매 실거래 평균가격 등)를 활용하여 구한 수도권 85㎡ 아파트의 매매 가격은 2000년 1억 3천 6백만 원으로 2000년 근로자가구의 월 평균 근로소득 200만원의 68배 정도 되는 가격이었으나, 2022년에는 6억 2천만 원으로, 2022년 월 평균 근로소득 470만 원의 132배 정도 되는 가격으로 올랐다. (참고로 2022년 서울 85㎡ 아파트 가격은 가구 월 평균 근로소득의 230배이다) ▲ 가계의 월 평균 근로소득을 전부 모아도 서울 아파트를 구입하려면 19년이 걸린다. ⓒ성찰과성장 근로소득의 절반을 부동산 구입을 위해서만 저축한다고 가정해도 2022년 기준으로 22년을 모아야 수도권 아파트 한 채를 겨우 구입할 수 있다.  이는 아파트 구입을 위해서는 사실상 부채를 져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근로소득 470만 원이 평균값이라는 것을 잊지말자. 소득분위의 60%는 평균 근로소득에 미치지 못한다. 대부분 사람은 자가구입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세로라도 살기 위해 부채를 지니고 거주할 곳을 얻는다.  과거 경제성장 시기 직장인은 자유시간을 위해 직장생활을 버텼지만 지금의 직장인은 부채를 갚기 위해 직장생활을 버틴다(장훈교, 2019). ▲ 가계 대출의 위험을 알리는 뉴스 (가계대출 '1086조' 7개월 연속 증가..경제위기 뇌관 '빚폭탄' 터지나 - [핫이슈PLAY] MBC뉴스 2023년 11월 9일) ⓒMBC 뉴스 유튜브 갈무리 사장이 된다면? 필자가 직장인이었을 때 겪었던 일들, 그리고 주변 직장인 지인의 생각들을 종합하여 알게된 것은 많은 직장인은 (당연하게도) 출퇴근을 싫어하고, (생각보다) 회사에 애정이 없으며, 회사가 성장하든 말든 자신의 일자리와 임금에 타격을 줄 정도가 아니라면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사장의 자녀로 아버지 밑에서 일하고 있는 또 다른 지인의 생각과 행동은 완전 다르다. 그는 업계 특성상 하루에 12시간을 근무하며 간혹 일이 몰렸을 때는 밤 12시까지 일하기도 하고, 일요일이나 연휴 때도 출근 한다(이 업계에서 대부분 그렇게 일한다).  기본적인 노동 강도가 매우 높음에도 이 지인은 동료 직원보다 더 빠르게 출근하고, 더 늦게 퇴근한다. 그는 일이 들어오지 않으면 회사의 안위를 걱정하고, 쉬는 날에도 생산 기계가 잘 돌아가는 지 확인하기 위해 잠시 회사에 다녀오기도 한다.  그의 행동 속 숨겨진 이유는 간단하다. 회사의 자본을 자신의 것이라고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가 돈을 많이 벌어들이고 커질수록 자신이 소유할 자본이 커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는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하고 회사를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 ▲ 마르크스와 생산수단 ⓒ성찰과성장 직장인과 사장 자녀가 가지는 태도의 근본적인 차이는 생산수단의 소유(예정) 여부이다. 생산수단은 토지, 기계, 설비, 공장, 건물 등 무언가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말한다.  사무직을 중심으로 생각해보면 사무실, 의자, 책상, 컴퓨터, 소프트웨어, 프린터, 인적네트워크 등도 생산수단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통제와 감시 속에서 일을 하고, 자신이 만들어낸 것을 소유하지 못함에도 ‘직장인 되기’를 선택한 것은 이러한 생산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정리하자면 직장인은 생산수단이 없기 때문에 하루 8시간 이상을 통제와 감시 속에서 일하고, 스스로 창조한 것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상황 즉, ‘자신의 노동을 통제하지 못하는 객관적 조건’을 ‘노동소외’라고 칭했다(최일붕, 2023). 우리는 노동소외로 인해,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노동시간을 ‘임금획득을 위한 시간’으로만 바라보게 된다.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이 들지 않은가?  어릴 때부터 우리는 좋은 직장을 갖기 위해 경쟁하고, 취업 후에도 살아남기 위해 회사의 감시 속에서 발버둥친다.  참고 살면 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커져가는 빈부격차, 낮아지는 경제성장률, 불안정한 일자리, 나의 노후를 책임지지 않을 것 같은 국가,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압박한다. ▲ 임금노동자는 영원히 고통 받아야 할까? ⓒ성찰과성장 고백하자면 본인은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이 압박에서 벗어났다. 먹고 살 고민을 하지 않고 원하는 공부와 활동을 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고민을 시작했다.  다른 사람도 매일 보람차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를 위해 필요한 첫번째 방안은 바로 노동소외를 해소하는 것이다. ▲ 노동소외는 개인의 문제인가, 구조의 문제인가 ⓒ성찰과성장 노동소외를 해소하기 위한 시각에는 크게 두 가지가 존재한다.   첫 번째는 노동소외를 개인의 문제로 보고 개인이 열심히 노력하여 생산수단을 획득함으로써 노동소외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시각이다. 이 시각은 직장인 생활이 싫다면 주식, 코인, 파생상품, 부동산 등에 투자해서 자본을 모으고 사업을 차리면 된다고 본다. 이와 관련해 최근 ‘경제적 자유’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된다. 벤 칼슨, 로빈 포웰의 『경제적 자유: 돈의 알고리즘』(2023)에 따르면 경제적 자유는 ‘돈으로 얻는 자유’를 뜻한다.  경제적 자유는 학문적으로 사유재산권을 강조하는 고전적 자유주의 관점과 시민의 도덕적 능력 계발을 강조하는 평등주의적 자유주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나(황재홍, 조필규, 2015) 요즘 대다수가 사용하는 ‘경제적 자유’는 전자의 관점에 따른 자유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 많은 이가 ‘노동소외’를 겪는다고 해서 당연하게 여기지 말자 ⓒ성찰과성장 두 번째 시각은 노동소외 문제를 구조의 문제로 인식한다. 직장인이 투자를 잘해서 자본을 모으고 사업을 차려 성공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자영업자 중 영세자영업자(고용원 존재 여부 기준)의 비중이 74%인 것을 보면 이를 더 확실히 알 수 있다. 또한 회사의 성장을 통해 주식 배당금을 받는 이상적인 투자 방식과 다르게 앞에서 말한 주식, 금융상품, 부동산 등 돈을 한번에 많이 버는 투자 방식은 제로섬 게임이다. 누군가 돈을 벌면, 다른 누구는 돈을 잃는다. 따라서 거시적으로 봤을 때 직장인이 사업가가 되는 것은 ‘노동소외’ 현상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필자는 노동소외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누가 되었든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더라도, 고용되어 감시 속에서 살아가지 않더라도,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그런 구조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대다수가 겪는다고 해서 ‘노동소외’ 현상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되며, 노동소외를 해소하기 위한 새로운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오며 필자는 세 편의 글을 통해 노동소외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의 구조를 모두의 노동이 “생명의 자유로운 발현이 되고 인생의 즐거움”(최일붕, 2023)이 될 수 있는 구조로 바꾸는 방법을 찾아갈 것이다. 2편에서는 노동시장의 의미와 노동시장이 없었던 시기에 살았던 사람들은 어떻게 생활했는지 짚어보고 능력주의를 넘어서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우리는 일을 하면서 즐거움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월요일 아침이 싫은 이유는 ‘일을 해야해서’가 아니라 ‘살기위해 강제로 돈 버는 일을 해야만’하기 때문이다. 단지 개인의 불평불만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가 부딪쳐야만 하는 객관적인 조건이자 구조의 문제이다. 세상에는 많은 것이 이해 불가 투성이지만, 거기에 한가지 의문을 더해보자. “왜 나는 매일 출근해야 하는 거지?” 참고문헌 박대근, 최우주, 2015, ‘가계부채의 결정요인에 대한 패널자료 분석: 주택가격과 대출심사기준을 중심으로’, 경제연구, 33(1) 최일붕, ‘마르크스주의의 방법 (1) 노동소외(https://wspaper.org/article/29843) 벤 칼슨, 로빈 포웰, 2023, 『경제적 자유: 돈의 알고리즘』, 인사이트엔뷰 황재홍, 조필규, 2015, ‘경제적 자유와 사회정의 신고전적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 검토’, 한국경제학보 22(2)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대안을 배달해드립니다 - 창작그룹 '성찰과성장' 글 작성 및 편집 : 신동주, 박배민 성찰과성장.com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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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락하는 제화 산업, 노사 상생의 길은?
이 글은 대화 참여자들의 주장을 압축하여 재구성한 것으로 오마이뉴스에 2023년 11월 13일에 발행된 글입니다. 20만원 수제구두 만들면 노동자 6500원, 사장님은? [오마이뉴스 23.11.13] ▲ 성동구 수제화 거리 성동구 성수역 인근에는 수제화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 서울시  성동구 성수역 인근에는 작은 구두상점들이 줄지어 있고 거대한 구두 모양의 조형물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성동구에서 지역 특화사업으로 지원하는 성동 수제화 거리다. 2021년 조사에 따르면, 성동구에는 462개의 신발이나 부품 제조 사업체가 있고, 1985명이 일하고 있다. 엄청나다고 놀랄 일은 아니다. 이 숫자는 매년 눈에 띄게 줄고 있다. 2012년부터 성동구를 비롯해 서울시와 중소기업청 등 여러 기관이 제화산업을 살리기 위해 다양한 지원을 펼쳤지만, 큰 효과는 보지 못했다.이런 가운데 제화공들의 불만은 2018년에 한 번 크게 터졌다. 수년째 동결된 수제화 공임을 견디다 못해 파업(형식적으로 개인 사업자인 제화공들은 파업권이 없다. 정확한 표현은 '일손 놓기'다-기자 말)을 감행했고, 제화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낮은 임금이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다. 이후 전태일재단이 나서 2021년부터 노사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상생위원회가 추진되었고, 올해 9월, 드디어 '제화산업 노사상생발전협의회'가 발족했다.그러나 한국 제화산업의 문제는 하청 업체 내 노사 합의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한 구조의 산물이다. 제화 대기업은 생산비가 싼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고 있고, 복잡한 다단계 유통 구조는 사업주마저 열악하고 위태위태한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 게다가 개수임금제(구두 제작 개수에 따라 일정 금액을 받는 체계)와 도급제는 기본적인 노동권마저 가로막는다.힘겨운 과정을 거치며 노사가 상생의 해법을 모색하기로 했지만, 갈 길이 멀 뿐만 아니라, 아직 어디로 가야 하는지조차 안갯속이다. 이제 막 상생을 위한 첫발을 뗀 제화업체 대표 2명과 제화공 2명이 제화산업의 어제와 오늘, 미래를 논하기 위해 '대담한 대화'에 나섰다. 이들의 대화가, 새로운 방향을 찾아낼 수 있을까?"구두 하나 만들면 노동자는 6500원, 사장은 7000원"  ▲ 제화산업 노사, 상생의 길은? 제화 노동자와 사장이 상생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 대담한 대화에 나섰다. 지난 10월 31일 성수역 인근 성수다방에서 진행한 대담한 대화 ⓒ 임지순    제화 하청업체 사장들은 직접 제화공으로 구두를 만들 때부터 계산하면 모두 40~45년 정도 제화 일을 했다.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지만, 현재 제화산업을 보는 시각은 절망적이다.이종찬(사측. 구뚜슈즈 대표): "직접 구두 만드는 일을 할 때부터 치면 40년 동안 제화 일을 했는데, 바뀐 게 없어요. 원청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 같은 하청 업체에 주는 단가만 깎으려고 하고. 원재료 가격은 매년 올라가는데 이걸 반영하는 걸 본사에서는 용납 안 해요. 오히려 계속 깎으려고만 하지. 안 깎아도 공임을 올려 주지 않으면 사실상 깎이는 거예요. 원재료 가격과 인건비는 계속 올라가니까." 경철호(사측. 프리뷰슈즈 대표): "구두 일은 45년 정도 했고, 공장을 맡은 지는 21년 됐어요. 뭐 한때는 벌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다 까먹고 있지요. 솔직히 말하면 이 일 그만두고 다른 일 하면서 조금만 벌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아요. (제화공들이) 인건비 올려달라고 하는데, 내가 어느 정도 받으면 올려 주고 싶죠. 구두 하나 만들면 마진으로 3000원, 관리비로 4000원 벌어요. 물론 이것도 모두 똑같이 기계처럼 만들어서 불량이 없는 경우에 그 정도야. 기스(흠집)라도 조금 있으면 죄다 반품이야. 마진 3000원 받는다고 이게 3000원이 아닌 거지. 최소한 마진이 5000원은 넘어야 뭘 쪼개줘도 쪼개주는데... 또 원재료도 딱 맞춰 살 수 없으니까 재고도 많이 쌓이고."제화산업은 다단계 하청 구조를 가지고 있다. 백화점과 같은 대형 유통사와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대기업 원청, 하청 공장, 그리고 제화공의 4단계 구조다. 하청 업체는 원청이 주는 원가 내에서 마진과 제화공 임금을 비롯해 각종 임대료와 원재료비를 감당해야 한다.그렇다고 노동자가 속 편히 월급을 받아 챙기는 것도 아니다. 제화공은 구두 하나를 만들 때마다 공임을 받는 개수임금제에 묶여 있다. 예전에는 기술자가 인정받았지만, 지금은 일하는 기계 같다는 자조가 나온다.이창열(노측. 제화지부 성수분회장): "구두 일은 37년인가 38년 했어요. 처음 이 일 시작할 때만 해도 팀으로 일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3~4명씩 같이 다니다가 사장하고 싸우면 우르르 데리고 나가고. 그러면 사장이 힘드니까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좋지. 기술자들도 인정해 줬고. 그런데 (1997년) IMF 지나면서 싹 바뀌더라고요. 사장님들이 우리를 일하는 기계로밖에 여기지 않는 것 같아요. 우리는 월급제가 아니기 때문에, 일이 없으면 돈을 못 받아요. 그래서 여기저기 옮겨 다니거나 딴 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요." 박완규(노측. 제화지부 지부장): "16살부터 명동하고 미아리에서 구두 일을 하다가 20살에 성수동에 와서 일했는데, 벌써 35년이 됐네요. (하청 업체 사장님들과) 현장을 오래 겪어왔기 때문에 대표님들 생각이나 처지도 잘 알아요. 구두 일에서 일제 강점기부터 안 바뀌고 있는 게 도급제예요. 제화산업은 개수임금제, 도급제 때문에 노동자들이 뭉치지도 못해요. 공장장 따라서 여러 명이 함께 움직여 다니니까 노동자들끼리 서로 일감 받으려고 라이벌처럼 만들어 놓고. 출퇴근이 있고 월급제 하면 (노동자들에게) 좋은 조건을 만들 수 있지만, 개수임금제, 도급제 때문에 아무것도 안 되는 거예요."  ▲ 제화 하청업체 대표 경철호 프리뷰슈즈 대표(좌)와 이종찬 꾸뚜슈즈 대표(우)는 모두 구두일을 40년 이상 한 제화 하청업체 사장이다. 제화 공장의 해외 이전, 중국산 신발 수입으로 쇠락하는 제화 산업의 현실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 임지순    제화산업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구두 한 켤레에 들어가는 항목별 구성비를 알아야 한다. 사업장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이렇다. 구두 한 켤레의 원가는 보통 5만 원 정도 잡는다. 소비자 가격, 즉 우리가 사는 구두값은 원가의 4배 정도다. 원가 5만 원 중 업체가 이익을 남기는 마진은 3000원이다. 또 구두를 만드는 노동자는 파트별로 1명씩, 총 2명이 붙는다. 이들은 한 켤레를 만들 때마다 6500원 정도 받는다. 품질을 관리하는 업체 사장은 여기에서 관리비 4000원을 받는다. 나머지는 원부자재값이다.대체로 원청이 소비자가의 25%, 즉 원가만큼의 금액을 이익으로 가져가고, 백화점 등 유통업체가 38%를 가져간다. 여기에 한 켤레를 팔 때마다 판매 매니저가 12%를 보수로 받는다. 하청 업체의 마진은 발주 물량이 많으면 더 줄어든다. 예를 들어 200족 이상이 발주되면 마진은 3천 원에서 2천 원으로 떨어진다.  ▲ 구두 한 켤레 당 원가 구성비(추정) 제화산업은 구두를 만들 때마다 공임을 받는 개수임금제다. 구두 한 켤레를 만들면 하청 업체 사장은 마진과 관리비로 7000원을, 제화공은 6500원을 가져간다. 물론 업체와 상품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 대담한 대화  사시사철 일정한 물량이 발주되지 않으니, 월급제를 도입하기도 어렵다. 더 큰 문제는 물량마저도 계속 줄고 있다는 점이다. 원청은 인건비와 재료비가 싼 중국이나 인도네시아로 공장을 옮기고 있고, 이제는 어느 정도 품질을 갖춘 중국산 제화도 밀려들고 있다.물량이 없다 vs. 물량 있으면 일할 사람은 있나?이종찬(사측. 구뚜슈즈 대표): "물량이 부족한 게 현실이에요. 20년 전만 해도 동대문에서 만들어 달라는 물량이 하청 일감보다는 많았어. 그때는 일감이 부족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일감이 없어요." 경철호(사측, 프리뷰슈즈 대표): "동대문은 팔 수 있는 물량이 적으니까 중국에서 대량 수입은 못 하고 우리 같은 공장에 주문했었는데 지금은 거기도 죽었잖아요? 원청에서는 우리하고 단가가 안 맞는다 싶으면 중국으로 생산공장을 옮겨 버려. 계속 일감이 주니까 일하는 사람(제화공들)에게 뭘 해주고 싶어도 어려워요." 박완규(노측. 제화지부 지부장): "사실 물량이 늘어나도 문제 아닌가요? 현장에 가보면 50대 중·후반은 다 다른 곳으로 이직하고 없어요. 주로 건설업으로 옮겨요. 이런 상황에서는 물량이 늘어나도 만들 사람이 없잖아요? 사장님들은 물량이 늘어야 한다시는데, 일할 사람이 없다는 건 고민 안 하고 있어요. 건설 쪽은 하루 8시간 일하면 한 달에 400만 원은 벌어요. 우리가 하루 8시간 일해서 400만 원 벌 수 있어요? 못 벌어요." 이창열(노측. 제화지부 성수분회장): "하루 10시간에서 12시간 정도 일해야 겨우 400만 원 벌 수 있어요. 중노동 해야 그 정도 버는 거예요. 게다가 일 년 내내 일감이 있는 게 아니잖아요? 일감 없을 때는 수입도 없어요." 박완규: "그 정도 벌 수 있는 게 일 년에 5~6개월밖에 안 돼요. 이때는 우리만 힘든 게 아니라 사장님들도 힘들다는 거 알죠."비교적 젊은(?) 제화공들은 주로 건설업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남은 이들은 대체로 62~63세로, 은퇴를 얼마 남겨놓지 않았다. 사람들은 떠나지만 새로운 사람은 들어오지 않는다. 월급제가 아니니 퇴직금도 일 년에 백만 원 정도로 합의하는 형편이다. 4대 보험은 엄두도 못 낸다. 그나마 노조가 생기면서 성수지역에는 4대 보험에 가입한 사업장이 3곳 생겼다.박완규: "지금은 두 곳이에요. 한 곳은 폐업했어요. 4대 보험에 가입하려면 월급을 정해야 하니까 한 곳은 280만 원, 다른 곳은 230만 원 정도로 합의해서 4대 보험을 납부하고 있어요. 이것도 노조 때문에 겨우 얻어낸 것이니까 아마 (노조가 없는) 다른 지역은 4대 보험 가입한 곳이 거의 없을 거예요." 이창열: "꾸준히 일을 하는 사람은 한 달에 250만 원 정도 벌지만, 나머지는 그것도 힘들어요. 우리 사장님에게 4대 보험 들어달라니까 해주겠대요. 그런데 제화공들이 (가입하러) 안 간대요. 다 늙어서 4대 보험 들어서 뭐 하냐고. 자기부담금조차 아깝다는 거죠."4대 보험 중 자기부담금조차 아까운 제화공들. 그러나 이런 어려움은 노동자들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경철호: "사장들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매일 생각해요. 당장 내일부터라도 안 하고 싶어.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사장들도 아마 99~100% 같은 생각일 거예요. 내가 사장이지만 일하는 사람이랑 똑같이 나와서 똑같이 들어가요. 뼈가 빠지게 일했어요. 이러고 내 한 달 수입이 얼마인지 알아요? 일하는 사람들하고 별반 차이가 없어요. (돈을) 못 가져갈 때도 있고 더 넣어야 할 때도 있어요." 이종찬: "사업주 입장에서는 일이 없다고 비용이 안 나가는 게 아니에요. 고정비는 계속 들어가요. 임대료도 내야 하고, 제화공은 아니지만 월급 주는 직원도 있잖아요."나만의 브랜드 갖고 싶은 이들... '상생'이 힘이 될 수 있을까?  ▲ 제화 노동자 박완규 제화지부 지부장(좌)과 이창열 제화지부 성수분회장(우)은 구두일로 잔뼈가 굵은 노동자다. 이들은 기본적인 노동조건도 보장되지 않는 제화산업의 현실에 분노하지만, 하청업체 사장들도 매우 어렵다는 것을 이해한다. ⓒ 임지순    이런 문제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성동구를 비롯해 서울시와 중소벤처기업부 등 여러 기관에서 제화산업을 살리기 위해 지원했다. 그런데 대부분 수제화 거리를 조성하거나 조형물을 만드는 데 투입됐다.과도한 유통 마진을 줄이기 위해 제조업자가 직접 매장을 열 수 있도록 낮은 임대료의 상점도 열었다. 그러나 남의 제품을 베끼지 않는 한, 직접 디자인해서 수량을 맞추기는 어렵고 독자적으로 마케팅을 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원가가 오르고 가격 경쟁력이 생기지 않는다. 몇만 원만 더 주면 백화점에서 브랜드 구두를 살 수 있는데, 왜 노상에서 사겠나?그래도 구두장이들의 꿈은 한결같았다. 원청과 유통업체에 덜 의존하고 나만의 브랜드를 갖춘 구두를 만드는 것. 이들은 그 꿈 때문에 아직 일을 놓지 못한다.이창열: "(수제화 거리에 있는 구두) 가격이 18만 원에서 20만 원 정도예요. 몇만 원 더 주면 백화점에서 사지, 왜 노상에서 사겠어요? 백화점 단가에 맞추니까 안 되죠. 나도 점포 열어서 해보려고 오래 구상해 봤어요. 주위 노동자들이 힘 모아서 월급제도 해보려고. 그런데 사업주가 아니라서 들어가지 못했어요."이종찬: "내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구두 일을 계속 한 건, 내 브랜드를 갖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나도 내 브랜드 만들어서 거기 한 번 들어가 보려고 했는데, 어렵더라고요." 경철호: "나는 지금도 내 브랜드를 만드는 게 꿈이에요. 안되면 공동 브랜드라도 만들고 싶어. 4~5개 업체 정도가 힘을 합쳐서. 각자 잘 만들 수 있는 걸로 4~5점씩 모아서 같이 해보는 거예요. 원청에서 지금처럼 일감 받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유지가 어렵다는 판단이에요. 지금은 물량도 줄고 있고 그나마 중국으로 다 빠져나가. 구두 일을 계속한다면, 내 브랜드를 가지고 돌파구를 찾고 싶어요." 박완규: "지금 국내 제화산업이 생각할 수 있는 대책은 딱 3개예요. 첫째 단기적으로는 유통 쪽이 1%만 양보하는 거예요. 그러면 지금의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어요. 둘째는 국내 물량을 중국이나 외국으로 넘기지 않고 유지해 주는 거죠. 그래야 먹고 사니까. 마지막 셋째는 우리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거예요. 지금 제화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복지나 근로조건이 다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나 돌파구는 찾아야죠."아직은 꿈으로만 남아 있다. 그러나 이들은 대화가 끝나고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 방법에서 '우리들의 브랜드'를 만들 방법까지 한참이나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단순히 어려운 영세사업장의 살길 찾기가 아니라, 좀 더 사회적인 가치를 담은 도전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영세자영업자와 노동자가 손을 잡고, 상생과 나눔의 가치를 담고, 사회와 지역을 연대의 가치로 연결한다면? 우리는 구두를 사면서 사회적 가치까지도 살 수 있지 않을까?물론 갈 길은 산 넘어 산이다. 그러나 이들은 맨 앞의 산 하나쯤은 이미 넘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일단 '상생'이라는 이름으로, 사장과 노동자가 손을 잡지 않았는가? * 이 글은 참여자들의 대화를 요약하고 재구성한 것입니다. 대화 전문과 제화 산업의 현황 글을 보시려면 아래의 링크를 참고하십시오. - 대담한 대화 전문보기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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