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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전세사기 대란 1년, 정치권은 응답하라!

2022년부터 본격화된 전세사기 대란이 평범한 사람들의 주거권을 위협하고 있다. 월 주거비를 줄이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기 위해 잠깐 머물러 있을 집을 구하고자 전세계약을 체결했지만, 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경매·공매가 진행되어 집에서 내쫓기고, 전세대출을 갚지 못해 신용도 빼앗기는 등 생존의 위협을 겪는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2023년 6월 1일, 「...

이철빈
토론
우리는 어떻게 주거권을 이야기 해 나갈 수 있을까? (1)

우리는 어떻게 주거권을 이야기 해 나갈 수 있을까? (1) 우리는 어떻게 주거권을 이야기 해 나갈 수 있을까? (2) 우리는 어떻게 주거권을 이야기 해 나갈 수 있을까? (3) 우리는 어떻게 주거권을 이야기 해 나갈 수 있을까? (4)우리는 어떻게 주거권을 이야기 해 나갈 수 있을까? (1) 우리는 어떻게 주거권을 이야기 해 나갈 수 있을까? (2) 우리는 어떻게 주거권을 이야기 해 나...

jisoo
토론
기후위기의 마지막 비상구, 기후정치

‘기후선거’, ‘기후정치’라는 말을 들어 보셨나요? 기후운동 진영은 2020년 21대 총선과 2022년 20대 대선에서 각각 ‘기후총선’과 ‘기후대선’을 주창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기후이슈는 선거이슈로 부상하지 못했습니다. 이유야 많겠지만 ‘위성정당’ 논란과 거대 양당의 ‘정권심판’ 프레임 속에서 기후이슈는 장식 취급을 받았습니다. 가끔 언론에 소개되는 다른 나라의 ‘기후투표’ 사...

이정필
토론
지금까지의 청년정치를 거부한다

*본 기고문은 캠페인즈x정치학교 반전의 공동 기획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지난 2022년 12월부터 2023년 5월까지, 약 반 년 동안 <정치학교 반전>의 첫 시즌을 함께했다. ‘한국정치의 반성과 비전을 말하자’는 반전의 제안에 반응하고 모여들 사람들이 궁금해서 문을 두드린 것이 시작이었고, 살아온 배경도 정당도 관심사도 제각각인 이들을 관통한 공통의 문제의식을 수 개월간 반복적으로...

양소희 Sohee Yang
토론
[김용균 5주기] 산업재해 피해자로 마주한 삶

면접을 위해 마련한 정장을 입은 김용균씨 우리 부부는 자식이 태어나며 더욱 행복이 충만한 가정이 되었다. 모든 중심은 용균이었고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별 탈 없이 잘 자라는 것을 보며 너무나 행복했었다. 특별히 공부하라고 다그친 적도 없이 알아서 노력하는 편이라 내신성적만으로도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어느덧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도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1년 동안...

김용균재단
토론
중대재해처벌법 첫 실형 확정, 어떻게 보시나요?🤔

(출처:unsplash) 이제 원청 대표가 처벌 받는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적용 범위와 처벌 수준 등에 이견이 많았죠. 결국 이 법은 50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하고, 3년의 유예기간을 거치며 준비 단계를 밟아 작년부터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2023년 4월에 노동자 사망사고에 대해 업체 대표에게 징역이 선고되면서 중대재해법 첫 실형 선고 케이스로 이슈가 되기도 했는데요. 성 대표는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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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재단-조선일보 노동시장 이중구조 공동기획, 한석호 소명서
한석호 소명서 전태일재단-조선일보 노동시장 이중구조 공동기획, 한석호 소명서 - 2024년 3월 26일, 전태일재단 전 사무총장 한석호   소명에 들어가며   3월5일 조선일보 창간 104주년 특집호 1면 탑 “12 대 88, 쪼개진 노동시장을 바꿔야 한다”부터 3월22일 “‘나눔과 상생’ 전태일 정신… 이제 사회와 기업이 응답해야 할 차례”까지 10회차 특집은 전태일재단 이름을 앞에 걸고 진행한 기획입니다. 사안 성격상, 공동기획에 앞서 재단 안팎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고 이사회에서 승인하는 절차가 필요했습니다. 전태일재단 이사회는 과정과 절차의 책임을 물어 한석호 사무총장 사퇴 권고를 의결했습니다. 수용했습니다.   마무리와 짐 정리로 출근하는 길, 해방촌 위 남산자락 개나리가 활짝 웃고 있었습니다. 눈을 찬찬히 돌렸습니다. 산수유도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다시 눈을 돌렸습니다. 뽀리뱅이, 지칭개, 원추리, 망초 등 내 친구들이 곧 꽃 피울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 했습니다. 무릎 구부리고 봤습니다. 누구도 잘 보려 하지 않고 짓밟히기만 하는 보도블록 틈새의 개미자리가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나의 영원한 친구들, 고마워. 일 다 정리하고 힘내서 너희와 어깨동무하러 곧 산으로 들로 찾아갈게, 인사하며 환하게 미소 지었습니다.   사회적 파장과 충격을 예상했습니다. 보수와 진보, 노와 사를 북극과 적도의 환경과 거리만큼 가른 대한민국입니다. 편부터 따지고, 한 몸통의 다른 쪽 날개를 청산 대상으로 삼는 진영논리의 나라입니다. 관중까지 검투사에 이입되어 상대진영을 죽이려 덤비는 살벌한 검투장정치의 대한민국입니다. 지지 후보가 다르다는 이유로 아빠가 아들을 때리고 형제자매가 의절한 뒤 SNS에 자랑하기도 하는 삭막한 진영의 나라입니다. 그 험악한 풍토에서 대표적 진보단체 전태일재단과 대표적 보수매체 조선일보의 공동기획은 상상 이상의 파장과 충격을 불렀습니다. 조선일보와의 공동기획에 응한 이유를 소명하겠습니다.   1. 전태일을 국민의 바다에서 맘껏 헤엄치게 해야 한다는 마음, 간절했습니다   아동노동의 시절, 장시간노동에 배곯는 열서너 살 여공들에게 버스비 30원을 털어 풀빵을 사주고 평화시장에서 쌍문동 판잣집까지 13키로를 허청허청 걷고 뛰다 야간통금에 걸려 파출소에서 쪼그려 잔 따스한 청년 전태일, 실 먼지 풀풀 날리는 공장에서 폐병에 걸려 피 토하는 미싱사를 돕다 근로기준법에 눈뜬 각성한 청년노동자 전태일, 자신보다 어려운 처지의 시다·미싱사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려 동료 재단사를 모아 바보회·삼동회를 만들고 진정서 써서 노동청에 청원하고 설문지 돌려 기자에게 배포하고 대자보를 붙이며 집회를 개최한 불굴의 전태일, 150년 전 뉴래너크공장의 실험으로 사회적경제의 아버지가 된 로버트 오언처럼 노동의 처우를 개선하려 노·사가 상생하며 시장에서 제품으로 인정받고 세금도 제대로 납부하는 모범업체 태일피복을 구상한 뒤 창업자금을 마련코자 눈 한쪽을 팔려던 창의적·헌신적 기획자 전태일,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때에 한 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 치오니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시옵소서 기도한 독실한 기독교인 전태일, 자신보다 어려운 처지의 노동자를 우선 생각한 아름다운 전태일의 진면목, 낮은 곳에 임한 전태일의 사랑과 나눔과 연대와 실천의 정신이 국민의 바다로 두루두루 퍼져 나가는 희망의 꿈을 꾸었습니다.   다들 말합니다. 전태일을 노조만의 전태일로 가져가면 안 된다, 전태일을 진영에 가둬도 안 된다. 그 말 듣고 그렇게 하려고 하면 화들짝 놀랍니다. 누구하고는 안 된다, 어떤 매체하고는 안 된다, 어떤 정부하고는 안 된다, 진영의 그물망 안에 머물라 합니다. 추상적 사고는 진영 너머로 나아가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구체적 현실은 진영을 벗어나지 말라 만류합니다. 전태일로 국한된 현상이 아닙니다. 같은 정책도 이 정부면 찬성 저 정부면 반대하는 현상, 같은 대안도 기업의 제안이냐 노조의 제안이냐에 따라 찬성과 반대를 뒤집는 현상, 같은 논조 기사도 이 매체면 용인 저 매체면 비난하는 현상, 대한민국을 옥죄는 극단의 진영논리가 만든 현상입니다. 그물망이 빽빽하고 억세져 가기만 하는 진영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전태일과 전태일정신도 진영 그물망을 넘나들 수 없었습니다.   전쟁 폐허에서 국내총생산 세계 10위대 3만불 시대를 일궈낸 나라, 세계 청년이 선망하는 나라, 앞으로 계속 도약해야 할 대한민국은 진보와 중도와 보수가 함께 만들었고 노와 사와 각계각층이 함께 만들었습니다. 보수 국민, 중도 국민, 진보 국민, 함께 만들었고 또 함께 만들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새는 좌·우·꼬리 날개에 균형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국가와 국민인 몸통은 훨훨 비상할 수 없습니다. 시름시름 앓다가 죽습니다.   전태일과 전태일정신이 대한민국 구석구석 살아 숨 쉬게 하고 싶은 마음 간절했습니다. 노조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진영의 그물망으로도 불가능합니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의 논리와 토론하고 설득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전태일과 진영 너머 국민이 손잡게 하고 싶었습니다. 진영 너머 국민이 전태일을 받아들이게 하고 싶었습니다. 꼭, 꼭 그렇게 만들어, 위로만 향하는 대한민국의 시각점을 아래로 향하게 해서 나눔과 연대의 대한민국으로 거듭나게 하고 싶었습니다. 진보·중도·보수 가릴 것 없이 전태일과 어울려서 함께 만들어가는 대한민국 재설계 기획을 간절하게 꿈꾸고 있었습니다. 공동기획에 응한 이유입니다.   2.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더 방치하면 나라가 절단 난다는 마음, 절박했습니다   3만불의 나라입니다. 하나의 계급이라는 노동이 8만불, 9만불, 10만불, 11만불로도 부족하다면서 계속 오르려고만 하는 상위 노동과 2만불, 3만불에 머물면서 허덕이는 하위 노동으로 분단됐습니다. 상층 노동과 하층 노동의 격차가 5배에서 6배까지 벌어졌습니다. 노동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재벌의 일상과 달리, 노동의 일상은 상층과 하층이 서로 매일 바라보며 비교합니다. 그 상황에서 30여년에 걸쳐 누적되며 고착된 노동의 분단은 임금 격차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상층 노동과 하층 노동의 얼굴과 피부색, 음식과 의복과 차량 종류까지 갈라놓았습니다. 육아, 교육, 결혼, 출산, 휴식, 여행, 건강, 노후까지 일생의 모든 삶을 갈라놓았습니다. 하층 노동이 상층 노동과의 격차를 매일 느끼며 평생 안고 갑니다. 재벌과의 격차 때문이 아니라, 일상의 삶 속에서 목격하고 비교되는 노동의 격차 때문에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자존심 상해합니다. 사태가 그렇게 심각한데 문제 해결의 주체인 노·사·정은 저마다 상대방 탓만 하면서 먼 산 불구경입니다. 평등주의가 태생 철학인 진보도 소홀합니다. 온정주의가 태생 철학인 보수도 소홀합니다.   10년 전부터였습니다. 노동의 분단 문제에 집중했습니다. 노조 바깥의 더 어려운 노동과 손잡는 사회연대전략을 노동운동 전면에 띄웠습니다. 대한민국 소득 기준, 상층에 진입한 조합원이 기금을 조성해 노조 바깥의 하위 노동을 지원하자 주장했습니다. 하위 임금은 두텁게 올리고 상위 임금은 얇게 올리는 하후상박 임금연대를 주장했습니다. 당시 노동운동 주류는 기업만 양보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10만불 상위 노동은 2만불 하위 노동에 양보하면 안 된다 했습니다. 재벌 일가의 주식과 배당금을 포함해, 잘 나가는 아이돌·연예인·체육인 등이 밀집한 최상위1>#/span###의 소득을 0으로 만드는 양보를 해도 노동의 격차를 줄일 수 없는데, 다음상위9>#/span###의 주축인 상층 노동은 양보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 상태에서 사회연대전략은 노동운동의 역린을 건드린 이단이었습니다. 숱한 비난과 욕설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사회연대기금을 주장한다는 이유로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에서 징계성 공개사과까지 했습니다.   무릎 꺾지 않았습니다. 성과가 나왔습니다. 징계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노총 공공부문 5개 산별 노사의 공공상생연대기금, 금융 노사의 금융산업공익재단, 사무금융 노사의 우분투재단이 잇달아 출범했습니다. 금속노조·보건의료노조·화섬식품노조 등은 사회연대기금을 적립해 노조 바깥을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부산지하철노조는 청년 고용을 늘리려고 조합원 1인당 1천만원 양보라는 파격의 고용연대를 실행했습니다. 현대차 노사는 하청 기본급을 원청보다 더 인상하는 하후상박 임금연대를 실험했습니다. 조선업 원하청 상생협의회, 제화산업 노사 상생협의회가 출범했습니다. 따스하고 시원한 사회연대의 바람이 노·사 현장에 확산하고 있습니다.   윤석열정부 상생임금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민주노총은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사퇴를 요구했습니다. 사회적 파장이 있었습니다. 노조 바깥 노동의 처우 개선이라는 일념으로 돌멩이 맞았습니다. 논쟁 없던 상생임금위원회는 호봉·직무급 임금체계는 이중화의 한 부분일 뿐이라는 점, 노사정 각각 부분적 자기주장만 되풀이하는 이중구조 문제의 종합적 분석과 종합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점, 그러면서 순서대로 하나하나 풀어가야 한다는 점을 합의하고, 마쳤습니다.   사회가 감당할 만큼의 적절한 경쟁은 대한민국의 활력입니다. 경쟁의 한계치를 넘으면 경쟁 도피 현상이 벌어집니다. 1차와 2차 노동시장 격차가 미국보다 더 심각한 대한민국 이중화는 한계치를 훌쩍 넘었습니다. 청년이 경쟁에서 도피합니다. 충격적 저출산의 핵심 원인입니다. 아이와 부모를 피폐하게 만들면서 한계치를 넘은 교육경쟁의 근저에도 노동시장 이중화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이중화는 유럽처럼 1차 노동시장 괜찮은 일자리와 2차 노동시장 기초일자리 간 격차를 개선해야 하는 난제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이중화는 유럽과 달리 2차 노동시장 일자리를 나쁜 노동으로 인식하며 기피하는 현상도 풀어야 하는 난제입니다. 모두가 머리 맞대고 사회적 대타협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도 20년에서 30년 걸리는 난제입니다. 그래도 꼭 해야 합니다. 미래세대가 더 크게 고통당하는 문제입니다.   대한민국 현재가 있기까지, 노사정과 사회 구성원 각각 공7 과3의 역할을 했습니다. 이중화는 정치의 산업전략, 기업의 경영전략, 노조의 임금전략 등에서 각각의 과3이 뒤엉켜 만든 합작품입니다. 보수·중도·진보 정치도 더 책임지고, 기업도 노조도 사회적 책임을 더 나누어야 풀 수 있습니다. 이중화는 노·사 측면만으로는 풀 수 없습니다. 노·노와 사·사, 노·상, 세대, 남녀, 생산자와 소비자 갈등까지 얽힌 난제입니다. 울타리 외부와의 갈등이 필수적 요소인 단결만으로도 풀 수 없습니다. 울타리 너머와의 협력을 무한대로 넓힐 수 있는 연대의 가치도 필요합니다. 시각점을 위가 아닌 아래에 둔 전태일정신이 절실합니다.   청춘 다 바친 민주노총에서 사회연대기금 주장을 이유로 징계당할 때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소득을 재벌과 아이돌과 스포츠인 등 최상위1>#/span###가 14.7퍼센트(14.7배) 점유하고, 상층 노동이 주 구성원인 다음상위9>#/span###가 31.8퍼센트(3.53배) 점유하고, 중위40>#/span###는 37,5퍼센트(0.93), 하위50>#/span###는 16퍼센트(0.32) 점유하는 황당한 불평등의 나라입니다. 그러한 사태를 20~30년에 걸쳐 최상위1>#/span###는 10퍼센트로, 다음상위9>#/span###는 20퍼센트로 낮춰, 아래 국민 90>#/span###의 점유율을 높이자는 주장에 대해, 공산당 위세가 서슬 퍼런 중국조차 임금은 정부가 강제로 삭감할 수 없는 것인데, 소득 점유율 낮추자는 주장을 임금 삭감이라 왜곡하면서 노동 분단 문제를 회피하는 민주노총이 몹시 안타까웠습니다. 최저임금위의 올해 최저임금 논의에서 공익위원의 9920원 제안이 1만원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9860원을 결정하게 만든 민주노총의 몽니를 지켜보며 무척 슬펐습니다. 회계 공시를 거부할 경우 조합원에게 미칠 불이익 연간 3~5만원 세액공제는 아까워 공시를 수용한 민주노총이 매몰차게 걷어찬 그 시급 60원은 연간으로 계산하면 150,480원입니다. 최저임금 노동자에게 그 금액은 상층 노동과 비교하면 50만원 60만원 가치가 있는 소중한 피땀입니다. 민주노총에 절망했습니다. 그만 멈추고 싶었습니다.   멈출 수 없었습니다. 낮은 곳의 노동을 품고 실천하고 나누고 구상하다 온몸 던져 산화한 전태일의 불에 타 절규하는 아픈 손을 차마 놓을 수 없었습니다. 사회연대전략을 민주노총이 거부해도 민주노총 산하의 금속노조 지부, 보건의료노조, 부산교통공사노조 등으로 확산하고 있었습니다. 한국노총은 임금인상분 중 1.5>#/span###를 사회연대기금으로 조성하자고 했습니다. 사회연대는 제3노조로도 확산하고 있습니다. 기업도 사회연대 대열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노사에 희망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노동의 상하 분단과 격차는 노동 당사자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노동 가족의 삶의 모습도 서로 다른 격차로 쪼갰습니다. 천진한 아이의 이유식과 밥과 간식, 옷과 신발, 학용품과 장난감, 놀이터와 여행경험까지 쪼개 버렸습니다. 그 가족의 가슴앓이와 한탄을 켜켜이 쌓고 있는 대한민국입니다. 비애감에 젖어 들게 하는 노동시장 이중화 문제를 대한민국 전면에 띄우고 싶었습니다. 관련 당사자가 모두 머리 맞대고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한국판 베버리지보고서를 만들어 사회적 대타협을 하는 대한민국 노·사·정과 대한민국 보수·중도·진보를 간절하게 희망했습니다. 조선일보와의 공동기획에 응한 이유입니다.   3. 기초노동의 애환, 그리고 전태일과 이소선의 삶을 떠올렸습니다 따듯한 찬성과 응원이 답지했고, 성마른 비판과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글에 못 담을 욕설도 묵묵히 감수하겠습니다.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향해 던지는 돌팔매입니다. 과거 한때, 조중동 폐간의 언소주 회원으로 조선일보 폐간 피켓도 들어 봤기에, 어떤 심정이고 어떤 생각일지 충분히 이해합니다.   전태일은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오로지 어린 여공의 처우를 개선한다는 일념만으로 물불 가리지 않다 산화한 전태일입니다. 공동기획에 응했을 것입니다. 진영과 매체를 가리지 않았던 전태일입니다. 독재자 박정희 대통령에게 존경 표현을 사용하며 편지를 썼습니다. 당시에는 박정희 정부 관제언론이던 경향신문 기자에 매달려 “골방에서 하루 16시간 노동” 기사를 싣도록 했고 평화시장의 열악한 노동 문제를 사회화했습니다. 재단사 친구 최종인은 손목시계를 전당포에 맡기고 그 기사가 나온 관제신문을 대량으로 사서 평화시장 곳곳에 뿌렸습니다.   아들 대신 41년간 낮은 곳에 임하다 아들 곁으로 떠난 이소선 어머니를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는 전태일기념사업회 안팎의 성마른 비난을 무릅쓰고 전태일기념사업회에서 민주노총 그물망을 걷어내고 한국노총을 품었습니다. 그 때문에 지금껏 전태일재단과의 연대를 거부하는 일부 흐름이 민주노총 안팎에 있습니다. 어머니는 강퍅한 진영논리에 강한 심적 압박을 받고 숙고하기는 했겠지만, 아들처럼 제안을 받았을 것입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조선일보와의 공동기획 제안에 응했냐, 물어 왔습니다. 조선일보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전태일재단에 공동기획을 제안한 것 같냐, 물어 오기도 했습니다. 보수로 전향했다는 비난도 받았습니다.   숱하게 천명했듯, 안정적 임금인상도, 고용안정도, 기업복지도, 노조 보호도 없는 2차 노동시장의 기초노동과 어울리며 기획하고 조직하고 지원하고 개선하는 일에 매진할 것입니다. 41년 전 어느 한밤, 건설노동자 아버지의 뜻을 따르려 고위 공무원을 꿈꾸던 대학생의 눈물을 쏟아내게 해서 운동의 삶으로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게 만든 전태일의 절반이라도 채우다 죽는 것이 목표입니다. 노동시장 이중화와 기초노동의 처우를 개선할 수만 있다면, 진영과 노사의 그물망에 개의치 않겠다는 결심입니다. 진보 외투를 벗은 이유입니다. 조선일보에서 “변화를 만드는 것은 강력한 투쟁도, 시장 논리도, 자본가나 정부만의 몫도 아니다” 했습니다. 강력한 투쟁과 시장 논리를 같은 반열로 엮어 놓았습니다. 노조 투쟁에 우호적이지 않았던 조선일보가 말입니다. “‘나눔과 상생’ 전태일 정신… 이제 사회와 기업이 응답해야 할 차례”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노조로 한정하지 않은 채, 전태일 정신을 사회와 기업이 응답해야 한다, 했습니다. 조선일보에서 말입니다. 가슴이 벅찼습니다. 전태일과 함께 평화시장 어린 여공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감옥에도 갔고 아내와 자식을 먹여 살리려고 봉제업에 복귀해 큰돈을 벌다가 어느 날 불현듯 이렇게 계속 돈 벌면 전태일 친구로서 전태일 이름에 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사업을 접은 전태일 친구 최종인은 살아생전 조선일보에 이런 기사가 나올 줄 상상도 못 했다며 기뻐했습니다.   전태일재단도 조선일보도 노조도 기업도 정당도 손가락입니다. 전태일과 이소선도 손가락입니다. 달은 노동과 국민의 삶이고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입니다. 누구도 전태일의 열 손가락 가운데 한 손가락만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전태일재단은 종합적으로, 민주노총·한국노총·제3노조는 각자 방식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종교는 종교대로, 보수·중도·진보도 제 방식대로, 각계각층은 저마다의 방식대로, 단 분신은 빼고, 실천과 나눔과 상생 등등 전태일의 열 손가락 가운데 마음에 드는 손가락을 알아서 선택하면 되는 것입니다.   과거의 나에게 무릎 굽히지 않겠습니다. 기초노동의 눈물을 닦을 수만 있다면, 무릎 꿇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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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피해자 연속기고] 4.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자 진짜 지옥이 시작됐다
"나라는 제대로 된 대책도 없고 더는 버티지 못하겠다." 2023년 2월 28일, 첫 번째 전세사기 희생자가 남긴 말입니다. 그 후 또 다른 피해자들이 잇따라 세상을 등졌습니다. 피해자들의 죽음, 절규, 투쟁으로 2023년 5월 전세사기 특별법이 제정되었지만 제대로 된 피해 구제와는 거리가 멀고 여전히 많은 피해자가 방치되고 있습니다. 전세사기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매일 전국 곳곳에서 새로운 피해 소식이 터져나오고, 기존 피해자들은 빚으로 빚을 돌려막거나 빚을 더 내서 피해주택을 떠안고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티고 있습니다. 그러나 4·10 총선을 앞둔 지금도 제대로 된 피해 구제 공약과 대책은 논의되지 않고 있습니다.이에 전국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직접 호소하고자 합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는 피해자들의 요구가 반영된 공약과 대책을 촉구하기 위해 관련 릴레이 기고를 진행합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간절한 목소리에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가 전국 각지의 피해자들의 사연을 접수받아 '전국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답해주세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만든 다가구 주택, 정부가 책임져라 우리는 다가구 주택 전세사기 피해자들입니다. 다가구주택은 어느날 갑자기 땅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 1990년 정부 지침 시행으로 생겨난 주거 형태입니다. 다가구 주택은 단독주택과 같은 기준으로 관리되지만 등기 구분이 되지 않고 1주택임에도 19명의 임차인과 임대차 계약을 맺을 수 있는 괴기스러운 형태로 방치되었습니다.(주택 내 가구수 2~19가구로 제한) 그럼에도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법과 행정시스템은 거의 개선되지 않았습니다.다가구 주택에서 전세사기 피해를 입은 한 청년이 있습니다. 그 청년은 평범하지만 어느 누구 못지않게 성실하게 미래를 준비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진학부터 취업 후까지 아끼고 참으며 악착 같이 저축해서 모은 돈 5천만 원에 1억 원 대출을 받아 전셋집을 구했습니다. 이제 겨우 한숨 돌리고 안정적인 거주 공간에서 다음 미래를 꿈꾸고 있던 찰나였습니다. 그러던 중 전세사기라는 절망이 미래를 빼앗고 나락으로 떨어뜨렸습니다. 그의 임대인은 대전에서 무자본으로 다가구 주택을 건축하고 공인중개사와 합심한 전세사기 일당이었습니다. 이러한 청년이 무수히 많습니다. 특히 대전은 1인 가구와 다가구 주택의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고, 전세사기 피해자의 80% 이상이 20∼30대로 대학생·사회초년생·신혼부부에 해당합니다. 전세사기는 한 명의 청년이 아닌 수많은 청년 세대의 미래를 빼앗는 사회적 재난입니다.정부는 이와 관련해 분명한 과실과 책임이 있습니다. 각 지역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대책위원회에서 추산하기로 대전과 경산의 다가구 전세사기 피해주택 수는 고작 350채도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피해를 입은 사람은 3300명이 넘습니다. 주택 하나에 10배에 가까운 피해자를 양산하는 다가구 주택, 정말 문제가 없습니까?건축물대장 및 등기부등본에서 열람할 수 있는 확정일자 부여일, 임차물 사용의 대가로서 지급되는 금전, 그 밖의 물건을 의미하는 차임과 보증금 내역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임대인의 동의 없이는 계약 체결 전 임차 보증금의 합계를 확인할 수도 없습니다. 또한, 열람 가능 서류도 법적인 효력이 없고 정보의 진위 여부도 여전히 불투명합니다.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되어도 길거리로 내몰려형사 고소, 내용 증명, 임차권 등기까지. 처음 들어보는 법적 절차를 간신히 끝내고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는다고 해도 다가구 주택 전세사기 피해자는 여전히 일상을 꿈꾸기 어렵습니다.다가구 주택의 특성상 선순위 세입자가 이의를 신청할 경우 경매 유예가 어렵고, 주택 규모를 고려했을 때 우선 매수권을 통한 셀프 낙찰 자체도 쉽지 않아 기본적인 대책부터 활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세사기 특별법이 다가구 주택 피해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고작 전세대출 빚을 또 다시 빚으로 해결하라는 것뿐입니다. 다가구 주택 피해자들은 피해주택이 경매에 노출되는 순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보증금을 하나도 회수하지 못하는 것을 넘어 길거리로 쫓겨나게 됩니다. 오늘 이 순간에도 경매가 진행되어 집단 퇴거해야 하는 다가구주택 피해자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여당은 민생을 위한다고 강조하면서도 지옥 속에 살아가는 국민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전세사기 발생 원인은 피해자에게 있지 않습니다. 다가구 주택을 비롯하여 전세사기가 발생하기 쉬운 토양을 만들어낸 것은 분명히 정부입니다. 지난 정부의 잘못이라는 변명은 이제 그만 듣고 싶습니다. 어느 정부에서 시작해서 부동산 대책이 어떻게 되었고 그로 인해 전세사기가 발생했다, 그런 핑계와 회피는 그만 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정부에서 시작이 되었든 잘못된 부분을 알았다면 지금이라도 바른 방향으로 바로 잡고자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잘못된 정책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오로지 국민이고, 청년이고, 이들의 미래입니다. 그럼에도 사회적 합의를 운운하며 피해자 구제를 반대하는 행태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부실 건설업체를 구제하는 것은 사회적 합의를 이루었습니까? 아니면 애초에 사회적 합의는 여당의 승인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다가구 주택 피해자들이 주거의 안정을 누리고 보증금의 일부라도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전세사기 특별법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합니다.총선에서 어떤 당이 승리하고, 대통령 지지율이 어떠하고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이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강구할 그런 정치인과 대통령이 필요할 뿐입니다. 전세사기 피해 구제방안과 현실적인 예방책, 시급히 마련하여야 합니다.이에, 우리는 정부와 여당에 대해 아래와 같이 엄중히 요구합니다.하나, 다가구 주택 관리에 부실했던 법과 시스템을 인정하고 사과하라!하나, 전세사기 특별법의 사각지대인 다가구 주택에 대한 지원책을 적극 마련하라!하나,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을 조속히 통과시키고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라!  -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대전대책위원회 장선훈, 조원희 -
주거 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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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자의 뜻을 지우는, 유한양행 이사진의 위인설관(爲人設官)
위인설관(爲人設官) : 사람을 위해 벼슬 자리를 일부러 만듦. 3월 15일 주주총회의 안건, 회장과 부회장직 신설 유한양행은 지난 2월 14일, 주주총회 소집 공고를 냈다. 한 개 안건이 논란이 됐다. 정관 변경 건이었다. 현재 유한양행 정관 33조 2항을 변경한다는 것이다. 기존 정관 제33조 2항에는 “이사회 결의로 이사 중에서, 사장, 부사장, 전무이사, 상무이사를 선임할 수 있다.”로 되어 있다. 이를 “이사회 결의로서 회장, 부회장, 사장, 부사장, 전무, 상무를 선임할 수 있다.”로 바꾸자는 내용이었다. 회장과 부회장직 신설이었다. 이는 곧 이사회에서 결정만 하면, 회장, 부회장을 선임할 수 있다는 말이다. 28년 전에 없어진 회장, 부회장직을 다시 살리는 이유에 대해 의문이 제기됐고, 이것이 유한양행을 사유화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됐다. 직전 회장은 연만의 유한양행 고문이었고, 당시엔 정관에 회장?부회장도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28년이 지나서 다시 기한조차 명시되지 않은 회장?부회장직 신설하는 저의에 대한 의문 속에서, 이는 수년 간 착실하게 준비된 된 것이라는 목소리기 나왔다. 그 시작은 2022년, 유일링 고(故)유일한 박사 손녀의 유한재단 이사 퇴출이었다. 쫓겨난 고(故)유일한 박사의 손녀 유일링(유은영), 견제와 균형 붕괴의 초석 고(故)유일한 박사의 유산은 기업 소유와 경영의 분리이자, 견제와 균형 시스템이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기 위해, 고(故)유일한 박사는 1969년 친아들을 유한양행 경영으로부터 손 떼게 했으며, 경영권을 전문경영인에게 넘겼다.  자식들에게 유한양행 주식을 1주도 남기지 않음으로써 주식을 통한 경영권 소유를 방지했다. 또한, 모든 주식을 교육기금에 기부하며 자식들은 이 기금 관리에만 힘쓰게 했다. 이 기금은 유한재단과 유한학원이며, 그의 자식들은 이곳 경영에만 참여할 수 있다. 유한재단과 유한학원이 유한양행 대주주라는 점에서, 유한재단과 유한학원은 유한양행 결정에 ‘반대표를 행사할 수 있다. 견제와 균형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하는 이유다. 견제와 균형을 위해선 유한재단 이사진의 역할이 중요하다. 의사결정은 그들 몫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2년 1월 유일링 이사는 유한재단 이사로 재선임 되지 않았다. 임기 만료가 이유였다. 당시 유일링 이사를 포함해 4명의 임기가 종료 시점이었지만, 유일링 이사만 재선임되지 않았다.  고(故)유일한 박사가 스스로를 기업가가 아닌 교육자라고 말했던 만큼, 유한재단은 유일한 박사의 정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차원에서 그의 유일한 손녀인 유일링 이사가 이사직에 재선임되지 않은 건 당시 큰 논란이었다. 또한, 고(故)유일한 박사의 뜻을 이어야 한다는 면에서 그의 후손이 유한재단에 남아야 한다는 시각이 강했다. 당시 유한재단 이사진들은 “유일링 이사가 미국에 있어서 재단 업무를 보기 어렵다" 고 말했다. 해임된 유한재단의 이시진은 전, 현직 유한양행 관계자로 채워졌다. 현재 유한재단 이사진 중 유한양행 전・현직 관계자는 5명 이상이다. 조욱제 (현 유한양행 대표이사・사장), 이정희(전 유한양행 대표이사・사장), 송두영(전 유한양행 재무팀 이사), 김성섭(전 유한크로록스 대표이사・사장), 정수길(전 쉬랑프라우 대표이사・사장). 유한크로록스는 유한양행의 가족회사이며, 쉬랑프라우는 유한양행의 합작 회사다. 유한재단 이사진이 전, 현직 유한양행 관계자와 가족회사, 합작회사 인원들로 채워졌다는 면에서 고(故)유일한 박사가 말했던 견제와 균형 시스템은 무너진 것과 진배없다. 유한양행 경영진과 이사회를 견제하기 위해선, 대주주가 견제할 수 있어야 하고, 그 대주주인 유한재단에 유한양행과의 특수 이해관계가 없어야 한다. 공익법인의 설립ㆍ운영에 관한 법률 5조 5항에서는 공익 법인의 현역 이사진 중 특수관계인을 5분의 1 이상 둘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단을 통한 기업 지배 방지를 위해서다. 특수관계인인 유일링 이사가 2022년 축출되고, 유한양행 관계자로 채워졌다. 유한재단의 유한양행 견제 능력에 의문이 드는 이유다. 한편, 유일링 이사는 유한학원 이사진에서도 해임될 뻔했다. 2023년의 일이다. 당시, 유한학원 이사진 중 유한공고 이사진들이 막아줘서 가까스로 이사직을 유지한 바 있다. 고(故)유일한 박사 지우기 논란과 이사진의 기업 사유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유한양행 임직원  “유일한 박사님은 경영과 소유를 분리했고, 사회환원을 말했다.”  “회장 부회장 직제 신설로, 기업 사유화 안 돼" 주주 소집 공지가 올라온 2월 14일 이후,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서는 유한양행 직원들의 게시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현 경영진들이 유한양행을 사유화하려고 한다는 비판이었다. 직원들은 유한양행 경영진의 비리와 경영 판단 오류, 이정희 전 유한양행 대표이사・사장의 채용 비리와 부하 직원 전 부인과 재혼하는 등 도덕성 문제들을 알리고, 부디 3월 15일 주주총회에서 반대 투표 해 줄 것을 요청했다. 유한양행 임직원의 평균 근속연수는 12년 8개월이다. 남성은 13년 9개월, 여성은 9년 7개월이다. 이는 국내 제약 바이오사 평균 근속연수가 5.25년인 것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또한, 국내 200대 기업 평균 근속연수인 9.45년보다도 높은 수치다. 근속연수 측면에서 직원들의 애사심이 높다는 걸 추측할 수 있다. 또한, 트럭시위는 전체 임직원 중 6분의 1에 해당하는 300명이 자발적으로 모금해서 이루어진 시위였다. 540만 원가량을 모아서 진행한 시위다. 높은 근속연수의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시위까지 벌인다는 면에서, 유한양행 직원들이 회장・부회장직 신설에 큰 우려를 하고 있고, 큰 사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유한양행 주주총회, 95% 찬성으로 회장・부회장직 신설 통과 3월 15일 열린 주주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는 직접 한국에 방문했다.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는 주주총회에서 "오늘 하고 싶은 말은 할아버지의 뜻과 정신이야말로 회사가 나아가야 할 가이드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모든 건 이를 따라 얼마나 정직하고 거버넌스(지배구조)에 도움이 되는가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의 반대 의사 표명에도 의결권 행사자 68% 중 95%의 찬성으로 모든 안건은 원안대로 통과됐다. 회장, 부회장직이 신설되고, 이사회는 회장과 부회장을 임명할 수 있게 됐다. 회장, 부회장에 누가 임명되느냐가 벌써 주목받고 있다. 이정희와 조욱제 이사 모두 자신들은 “안 한다. 명예를 건다.”고 말했다. 회장을 안 할 거면, 이사회 의장은 왜 계속 하나.  “이미 경영진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이정희 현 유한양행 이사장은 유한양행 대표이사・사장으로 총 6년 임기를 마치고, 돌연 기타비상무이사로 등재해 3년간 유한양행 이사회 의장 자리를 맡았다. 전문경영인 6년 이후 회사를 떠나는 것이 관행인 가운데 이례적인 모습이었다. 3월 15일 주주총회에서 또다시 3년 연임을 안건으로 올려 통과시켰다. 합계 12년을 이사회 의장 자리에 있는 셈이다. 이정희 현 유한양행 이사회 의장이 유한양행 대표로 재직하던 시절, 이미 일감 몰아주기와 채용비리가 있었다. 조욱제 현 유한양행 대표이사・사장이 자기 아들을 유한양행 관계사에 취업 압력을 넣었고, 또한, 유한양행 주력 제품 판매 대리점 대표의 아들을 유한양행 2022년 공채에 뽑으라고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이었다. 해당 내용은 국민신문고에 접수되어 드러났지만, 조욱제 대표는 “지시한 바 없다"고 반박한 바 있다. 반면, 압력을 받았다는 A씨는 “조 대표의 압력이 없었다면, 학점 2점대 사람을 뽑지도 않는다.”고 반박했다. 유한양행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업계 관계자는 “유력 병원장이나 정부 관계자 자녀, 기관장 자녀 등이 채용된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며 “대주주인 유한재단이 ‘경영과 소유를 분리한다’는 원칙으로 주주권 행사를 사실상 하지 않는 바람에 경영진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모습에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대표,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 이석연 전 법제처장 등 ‘유한을 사랑하는 시민사회 인사 대표'들은 “유한양행은 국민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아름다운 기업 문화의 상징”이라며 “(유한양행 경영진은) 유일한 박사의 창립 이념과 기업가 정신을 잊지 않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사람을 신뢰했던 고(故)유일한 박사 고(故)유일한 박사는 “한 사람을 믿고 영입하면 그 사람과 거의 일생 동안 함께 일할 생각을 가지는 편이었다.” “그래서 창업 시기의 직원들이 20년, 30년 오랫동안 유한양행을 지키는 것을 보게 된다.”*  이정희 현 유한양행 이사회 의장은 1978년에 유한양행에 입사했고 2015년에 대표이사・사장으로 취임했다. 조욱제 현 유한양행 대표는 1987년에 유한양행에 입사했고, 2021년에  대표이사・사장으로 취임했다.  이정희 의장은 45년 동안 유한양행에 재직했고, 조욱제 대표는 37년간 재직했다. 모두 신입부터 시작해 전문경영인까지 올라간 사람들이다. 고(故)유일한 박사가 구축했던, 체제의 증인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더더욱 고(故)유일한 박사가 만들고 추구했던 정신을 추구해야 한다. 현재의 의혹들과 경영 행태 어디에 유일한 정신이 있는지 의문스럽다. 고(故)유일한 박사는 “기업의 생명은 신용이다.”** 라고 말했다. 현 이정희 이사회 의장과 조욱제 대표는 직원들에게 신용을 잃었다. 고(故)유일한 박사, “기업의 주인은 누구인가” 우리나라 기업 지배구조의 가장 큰 문제점은 독립성이다. 이사회 독립성은 경영진을 객관적으로 감시 할 수 있는가다. 독립성 없는 지배구조는 한 두 사람이 기업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만든다. 고(故)유일한 박사가 만든 유한양행의 지배구조는 경영과 소유의 분리했고, 견제와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했다. 한두 사람의 결정으로 기업이 움직이고, 사익 추구의 도구로 전락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고(故)유일한 박사가 국내 최초로 종업원주주제를 채택한 것도, 국민에게 시장가의 7분의 1 수준으로 주식 공개를 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기업의 주인은 누구이냐는 물음에, 고(故)유일한 박사의 답변은 “국민과 종업원”이었다. 이 체제를 위해 균형과 견제를 제도화한 것이, 그의 유산이다. 이 유산을 유지를 위해 그에 걸맞은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했고, 그 때문에 자식에게도 그 자리를 물려주지 않은 것이다. Ⓒ 한량, 서울시 동작구에 위치한 유한양행 본사 그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선 위인설관(爲人設官)이 아니라, 위관택인(爲官擇人)**** 해야 한다. 현재 유한양행 이사진의 행동은 위인설관(爲人設官)이다. 당장 필요도 없는 회장과 부회장직을 추후 필요하니까 만든다는 논리는 오히려 의심만 키울 뿐이다. 오히려 고(故)유일한 박사의 정신을 가장 잘 계승하고, 유한양행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위관택인(爲官擇人) 해야 한다. 고(故)유일한 박사는 유한양행의 로고로 버드나무를 택했다. 일제강점기 일제의 모진 행태에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 끈질기고, 무성하게 대성하기 바란다는 뜻이 담겨있다. 고(故)유일한 박사의 정신이 정말 무성하게 대성했으면 좋겠다. Ⓒ 한량, 유한대학교 내에 있던 버드나무 * ⟪유일한 평전⟫ (조성기/ 작은씨앗/ 2005) p.237, 289 ** ⟪위대한 선각자 유일한⟫ (김윤섭, 최상후/ 유한양행) p.23 *** ⟪유일한을 기억하다⟫ (민석기/ 중앙북스/ 2015) p.44 **** 위관택인(爲官擇人) : 관직을 위하여 인재를 택함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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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양행 창업 이야기, 유일한 정신에 대해
국내 ‘유일한 정신’ 지난 3월 15일, 유한양행 본사에서 주주총회가 열렸다. 여느 때보다 이목이 쏠렸다. 직원들은 주주총회 안건에 반발해 트럭시위를 벌였고, 유한양행 창업자 고(故)유일한 박사의 손녀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는 미국에서 직접와서 주주총회 안건에 반대 의사를 표했다. 주주총회는 주식회사가 1년에 한 번 주주들에게 회사 주요 사항들을 의결하고, 투표를 통해 결정하는 자리다. 배당금, 이사회 이사 선임, 최고경영자(CEO) 선임 등 주요 사항들을 결정한다. 금번 주주총회에서는 유한양행 정관변경이 핵심이었다. 이 정관 변경이 고(故)유일한 박사의 뜻이었던, 경영과 소유의 분리 원칙을 위반하는 초석이라는 의심이 나온다. 유한양행 직원들의 주주총회 반대 트럭시위에는 “유일한 박사님께서는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 일가족 그 누구도 경영에 참여시키지 않으셨다.”고 쓰여있었다. 유한양행 이사진이 그 뜻을 파괴하고, 필요도 없는 사람을 임명하기 위해 직책을 만들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한양행, 창업자의 뜻을 계승하기에 존경받는 기업 유한양행은 고(故)유일한 박사가 창업한 제약회사다. 22022년 기준 매출액 약 1조 8천 억원, 영업이익 약 360억 원으로 국내 제약회사 1위다. 또한,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제약회사 부문에 20년 연속 1위로 선정됐다. 유한양행이 존경받는 이유는 국내 1위 제약회사여서가 아니다. 창업자 고(故)유일한 박사의 뜻을 계승하고, 유지하기 때문이다. 그의 삶과 경영 철학은 이익이 아닌, 사회에 있었다. 때문에 그를 사회사업가라고 부른다. 고(故)유일한 박사와 같은 뜻은 현재까지도 국내에 전혀 없다. 고(故)유일한 박사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그 기업을 키워 준 사회에 환원하여야 한다.” 고(故)유일한 박사는 생전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그 기업을 키워 준 사회에 환원하여야 한다.”* 라며 “이윤의 추구는 기업 성장을 위한 필수 선행조건이지만 기업가 개인의 부귀영화를 위한 수단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고(故)유일한 박사는 자신의 신념과 말을 행동으로 옮겼다. 기업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신념은, 자신의 재산을 모두 교육기금에 기부한 것으로 실천했다. 그는 생전 재산 중 양복 세 벌과 구두 두 켤레를 제외하고 모두 사회에 환원했다. 자식들에게도 재산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1963년 9월에는 연세대학교에 1만 2천 주를 기부했고, 5천 주는 보건장학회에 기부했다.**  또한, “유한양행 주식 14만 941주는 전부 한국 사회 및 교육발전을 위한 기금에 기증한다.”는 유언을 남겼다. 유언대로 14만 941주의 주식은 교육기금에 기부됐으며, 현재는 ‘유한재단’과 ‘학교법인 유한학원’의 재산으로 남아 있다. 고(故)유일한 박사가 교육에 힘쓴 이유는, 일제강점기 해방 직후 나라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실제 그는 생전 자신을 경영인보다 교육가라고 말했다. “그가 외국으로 나가서 입국할 때 출입국 신청서 직업란에는 언제나 ‘Educator(교육자)’라는 영문 글자가 쓰여 있었다.”**  세 학교는 유한양행 주식 배당금을 통해 교육, 장학, 사회복지 사업을 하고 있다. 유한재단은 목적 사업비 90%가 유한양행 주식 배당금에서 나온다. 유한재단은 2022년 유한양행 주식 배당금으로 총 43억 8천 4백 5십 9만 7천 원을 받았고, 배당금으로 장학사업과 사회복지사업, 교육사업, 재해구호 사업 등을 하고 있다. 유한대학교 전경 Ⓒ 한량 고(故)유일한 박사 “기업은 개인 것이 아니라, 종업원과 국민의 것" 장학사업에만 몰두했다면, 고(故)유일한 박사가 여전히 존경받고, 직원들이 나서서 트럭시위까지 벌이 진 않을 것이다. 그는 유한양행이 개인의 것이 아니라, 국민과 종업원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한양행의 첫  주식상장 시에 이를 실천했다. 유한양행은 주식상장으로 “창업 이래 10년간 이어져 온 기업의 개인 경영이 막을 내리고 새롭게 법인체제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것은 그 당시 한국 상황에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가장 획기적인 건 주식상장의 가격과 배분에 있었다. 고(故)유일한 박사는 국내 최초로 ‘종업원 주주제'를 실시했다. 종업원 주주제란, 종업원이 회사 주식을 특별한 목적이나 방법으로 소유하는 제도를 말한다. 종업원의 애사심을 증진이 주목적이었고, 최근에는 근로자의 재산형성으로 촉진제의 하나로 인식된다. 실제 국내 대기업은 종업원에게 회사 주식을 상여금으로 주기도 한다. 고(故)유일한 박사는 ‘종업원 주주제’를 통해, 회사 주인이 개인이 아님을 말했다. 이를 위해 “종업원들에게도 액면가 10퍼센트 정도의 가격으로 주식을 골고루 분배해주었다.”** 주주 자본주의 하에서 기업의 주인은 주주라고 인식된다. 그 차원에서 보더라도, 회사 주식을 종업원들에게 값싸게 분배했다는 건, 의미가 있다. 한 개인이 회사를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라, 종업원 주주들과 함께 경영한다는 의미다. 한편, 고(故)유일한 박사는 국민 역시 싼 값에 유한양행 주식을 소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주식상장 당시 시장가의 7분의 1 수준으로 주식 가격을 책정했다. 연만희 전 유한양행 고문은 고(故)유일한 박사와 주식 가격 책정 일화를 소개한 바 있다. 연만희 고문은 유일한 박사가 당시 주식 가격을 100원으로 책정했는데, 이는 당시 시장 가격인 600~700원에 훨씬 못 미치는 가격이라며 만류했다. 그러자 유일한 박사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큰소리로) 내가 돈 벌려고 주식을 상장하는 줄 알아요? 상장하는 이유는 유한이 한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우리 국민의 것이기도 하기에 공개하려는 것입니다. 도대체 정신이 있는 겁니까? 당장 여기서 나가시오.”*** 유한양행 주식 상장은 당시 우리나라에 만연했던 부정부패에도 합리적으로 경영되고, 민주적으로 경영된다는 걸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었다. 당시 “사회는 어디를 보아도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이에 유일한 가사는 이러한 사회 풍조에 도전하기라도 하듯 유한양행이 합리적으로 경영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주식 공개를 결정"**한 것이다. 고(故)유일한 박사가 정치권의 불법자금을 지원 요청을 단칼에 거절하고, 그에 따라 강력한 세무조사를 받았다는 건 이미 유명한 이야기다. 또한, 세무조사에서 장부가 너무 깨끗하고, 세금을 정직하게 낸 것만 증명되어 모범 납세자로 도리어 상을 받은 건 더욱 유명하다. 현재 유한양행의 주요 대주주로는 유한재단, 국민연금, 유한양행, 유한학원이 있다. 유한재단 15.7%, 국민연금 10.1%, 유한양행 8.5%, 유한학원 7.7%이다. 회사가 개인 소유와 사익 추구의 도구가 아니란 걸 보여주고, 체계화하기 위해 고(故)유일한 박사는 일가족이 유한양행 경영에 참여할 수 없도록 했고, 이를 위해 유한양행 주식 단 1주도 자식들에게 남기지 않았다. 1969년에는 자신의 큰아들마저도 유한양행에서 내보냈다. 현재도 유한양행 이사진 중 그의 후손은 없다. 경영권도 전문경영인에게 양도했다.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국내에서 드문 전문경영인체제를 도입한 것이다. 고(故)유일한 박사, 기업 소유와 경영의 분리 강조, 전문경영인체제 도입 유일한 박사는 제 44대 주주총회에서 회사 경영권을 조권순 당시 전무에게 넘겼다. 회사 소유와 경영의 분리 이념을 완성한 것이다. 출처 : ⟪나라 사랑의 참 기업인⟫ (유한양행/ 1995) p.335 고(故)유일한 박사는 제44대 주주총회에서 회사 경영권을 당시 전무였던 조권순에게 양도했다. 이때부터 회사 내부에서 승진을 거듭해 사장직에 오르는 건 유한양행의 관행이 됐다. 또한, 그 임기조차 3년 중임제로 최대 6년까지만 할 수 있다. 그렇게 임기를 마친 사람들은 회사를 떠나는 게 관행이었다. 그것이 고(故)유일한 박사의 뜻을 이어가던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고(故)유일한 박사의 유산을 사유화하는 유한양행 이사진 고(故)유일한 박사의 뜻은 기업이 개인의 사익 추구 도구가 아니며, 기업의 이익이 사회를 위해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시스템 마련이 고(故)유일한 박사의 업적이다. 이 업적이 당대 사회 분위기와 정반대되고, 아무도 생각지 못했었다는 점이 그가 존경받는 이유다. 경영과 소유의 분리는 우리나라 지배구조에서 더욱 보기 드물다. 오히려 창업자 일가의 경영권을 강화하는 움직임이 더욱 강하다. 정치권 역시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비합리적” 이라며 소유와 경영의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도 이런데, 독재정권 당시 모든 걸 추진했던 고(故)유일한 박사의 뜻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다음 글에서는 고(故)유일한 박사의 뜻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어떻게 무너져갔는지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3월 15일에 진행된 유한양행 주주총회를 자세히 살펴보며, 유일한 정신이 어떻게 무너져 갔는지 살펴볼 것이다. * ⟪위대한 선각자 유일한 박사⟫ (김윤섭, 최상후/ (주)유한양행) p.23, 25 ** ⟪유일한 평전⟫ (조성기/ 작은씨앗/ 2005) p.237, 308, 309, 312, 314 *** ⟪유일한을 기억하다⟫ (민석기/ 중앙북스/ 2015)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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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야에 대해서는 저도 전문적인 기사를 쓸 수 있을 정도로... X덕인데요 ㅋㅋㅋㅋ 기사 포멧의 한계인지 담기지 못한 내용도 많습니다. 그래도 최소한, 실존 인물의 움직임을 인식해서 따라한다는 점을 친절히 설명한 건 좋네요. 그..진짜 사람이라구요! 화면 뒤에 사람 진짜 있다구요 ㅠㅠ

라이브2D와 3D의 차이도 중요하고, 버츄얼을 단순 아바타로 사용하고 실존 인물임을 상대적으로 강조(이세계아이돌, (아마)플레이브 - 제가 안봐서) vs 버츄얼 RP를 만들고 몰입하며 지키는 - 흡혈귀라던가 유니콘이라던가(스텔라이브) 차이도 상당히 크구요.

그리고 플레이브랑 이세계아이돌, 스텔라이브의 큰 차이로는 플레이브는 진짜 음반쪽으로 각잡고 기획되었다면 이세계아이돌은 프로듀스101형식의 오디션 형식, 스텔라이브는 둘의 중간? 회사와 강지(방송인 이름)주도로 아이돌 회사처럼 모집받았다는 점의 차이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버츄얼아이돌(VR아이돌)의 장점이라면

- 아티스트 입장에서 현실과 일의 분리가 가능

- 아티스트 입장에서 단점을 감추고 장점 부각이 가능 -> 목소리나 노래, 방송 진행력 등

- 팬 입장에서, 실시간 소통(인터넷 방송)및 2차 창작(인터넷 방송이나 온라인 송출 화면으로 2차 창작 용이, 캐릭터성이나 아이돌 서사에서 팬들의 비중 높음)이 더 용이함

정도로 볼 수 있겠네요. 단점도 물론 있겠지만요 ㅎㅎ

오타쿠 특징)좋아하는 거 나오면 말이 많아집니다. 진짜 언젠간 논문...최소 보고서라도 쓰고 싶은 주제 ㅎㅎ 심지어 이거 쓰면서도 VR아이돌 노래 방송 틀어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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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 알기 아쉬운 정보를 공유하는 '믕구'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에도 가스버너 화재사고를 기사로 본 적 있었는데 얼마되지 않아 유사한 화재사고를 보니 마음이 안 좋습니다. 쪽방촌 화재에는 '기존무허가건물'로 화재사고에 취약한 경우가 다분하다고 합니다. 이번 사고도 “방 안에서 간이버너로 음식을 조리해야 하는 열악한 주거가 아니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참사"라는 내용에 주목하여, 사회적 취약계층을 위한 주거대책 마련이 필요해보입니다.

살고 싶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안전 사회를 함께 잘 만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세월호의 의미도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게 새롭네요.

우선 생태체험장의 환경이 어땠을지가 걱정되네요 제대로 된 체험장을 본 적이 없어서... 꼭 우리가 다른 환경에 사는 동물을 '체험'해야 하는 것인지, 그 동물의 마음은 어떨지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평화가 일으키는 것들로 사랑을 잃지 않는 세상

예전에 동물권 교육을 들을 때 알게 된 문장이 떠오르네요. “인간과 동물은 평행관계다. 죽음을 통해서만 잠시 만났다가 다시 만난다" 결국은 ‘탈출’해야만 인간들에게 존재를 알릴 수 있는 수많은 ‘갇힌’ 비인간동물을 떠올립니다.

캠페인즈 열성 코멘터

타조가 어떤 상황인지 검색해 보게 되더라구요. 타조는 멸종위기에 있지는 않고 전세계에 퍼져 있는 모양이더라구요. '동물원에 갇혀 있는 동물'이라는 현상적인 자각을 넘어 이면에는 어떤 논의들이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가둬두고 구경거리로 만들며 돈을 버는 것에 집중하는 동물원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반면 자연 속에서 여러 조건들로 인해 멸종위기에 처해 있는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가능한한 동물권을 보장하는 윤리적인 동물원의 형태도 존재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한국의 경우에는 최근에 허가제에서 신청제로 바뀌어 이전보다는 조금 나아진 상태라고 들었습니다. 동물원이 꼭 필요하다면 넓은 곳에서 스트레스 없을 수 있게 꼭 필요한 동물들만이 있을 수 있도록 세부적으로 사회적으로 논의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항상 '이상의 옳음과 현실의 타협 사이에서의 간극'에서 고민하게 됩니다. 제가 만약 저 타조이고 이성이 있다고 가정하며 조금 달리 말해 본다면.. '불안한 자유와 노예의 안정 사이에서의 딜레마' 속에서 고민할 것 같습니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대안을 배달해 드립니다.

한 줄 한 줄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활동가 영역에도 노조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