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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대란 1년, 정치권은 응답하라!

2022년부터 본격화된 전세사기 대란이 평범한 사람들의 주거권을 위협하고 있다. 월 주거비를 줄이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기 위해 잠깐 머물러 있을 집을 구하고자 전세계약을 체결했지만, 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경매·공매가 진행되어 집에서 내쫓기고, 전세대출을 갚지 못해 신용도 빼앗기는 등 생존의 위협을 겪는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2023년 6월 1일, 「...

이철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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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때만 찾아오는 쪽방촌... 우리를 병풍 삼지 마십시오

[22대 총선] 여기, 주거 정책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있어요! 2024 총선주거권연대 연속기고 첫 번째, 동자동 쪽방 주민의 이야기 노동, 빈곤, 종교, 청년, 주거시민단체 등은 부동산 정책만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무분별한 부동산 규제 완화를 저지하고 주거불평등 심판, 온전한 주거권 실현을 위해 ‘2024 총선주거권연대’를 출범하였습니다. ‘2024 총선주거권연대’는 주거권...

2024 총선주거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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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대 총선 결과 정리

22대 총선이 끝났습니다. 결과는 더불어민주당의 압승, 국민의힘의 참패인데요. 이로써 윤석열 대통령은 임기 내내 국회에서 여당보다 야당이 큰 첫 대통령이 됐습니다.총선은 끝났지만 유권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직 많습니다. 당선자들이 제대로 일하는지 감시하고, 원하는 것을 요구해야겠죠. 나의 선택이 선거 이후에도 영향력을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해서요.앞으로 3년이 어떻게...

애증의 정치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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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만에 10년 후퇴한 윤석열 정권의 자유민주주의

윤석열 정권 3년차, 민주주의 평가하기①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선행 게재되었으며, 이후 얼룩소에 동시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 Dall E 3로 필자가 직접 생성. 썸네일용. 우리가 특정 정권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은 여러 가지다. 경제 성장이 얼마나 됐는지 평가할 수도 있고, 외교 문제를 얼마나 잘 헤쳐 나갔는가, 복지를 기준으로 얼마나 잘 분배했는가, 과학 기술을 얼마나 발전시...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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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5주기] 산업재해 피해자로 마주한 삶

면접을 위해 마련한 정장을 입은 김용균씨 우리 부부는 자식이 태어나며 더욱 행복이 충만한 가정이 되었다. 모든 중심은 용균이었고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별 탈 없이 잘 자라는 것을 보며 너무나 행복했었다. 특별히 공부하라고 다그친 적도 없이 알아서 노력하는 편이라 내신성적만으로도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어느덧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도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1년 동안...

김용균재단
토론
중대재해처벌법 첫 실형 확정, 어떻게 보시나요?🤔

(출처:unsplash) 이제 원청 대표가 처벌 받는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적용 범위와 처벌 수준 등에 이견이 많았죠. 결국 이 법은 50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하고, 3년의 유예기간을 거치며 준비 단계를 밟아 작년부터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2023년 4월에 노동자 사망사고에 대해 업체 대표에게 징역이 선고되면서 중대재해법 첫 실형 선고 케이스로 이슈가 되기도 했는데요. 성 대표는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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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돈을 써? 대학생 쓰면 되지
문제: 공공기관이나 기업이 제출한 사업 제안서에 따라 사업을 수행하는 활동. 계획서 심사, 면접 등의 과정을 거쳐 선발된 경우에만 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 진행 주체는 사업 진행 과정에 대해 지속적인 평가와 감독을 받는다. 진행 주체와 상관없이 사업의 결과는 사업을 제안한 기관의 실적으로 남는다. 이는 무엇일까? (1) 공모사업  (2) 용역사업  (3) 외주사업  (4) 설마 봉사? 자원봉사, ESG, 그리고 열정페이 서울시자원봉사센터는 올해 3월부터 ‘2024 서울 청년 기획봉사단’ 사업(이하 기획봉사단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업의 내용은 문제 속 내용과 완전히 동일하다. 청년들이 팀을 이뤄 현대홈쇼핑, 아모레퍼시픽, 서울신용보증재단을 포함한 16개의 기업과 공공기관이 제출한 사업 제안서에 맞춰 기획안을 제출한다. 사전 교육, 서류 심사, 면접을 거쳐 최종 선발된 청년들은 사회공헌 사업을 진행한다. 중간평가와 최종평가를 거쳐 사업이 종료되면, 청년들은 활동혜택으로 무려 활동 인증서와 봉사시간을 제공받는다. 서울시자원봉사센터는 청년들이 이 활동을 통해 “사회 진입과 일 경험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밝혔다. 돈은 안 받지만 ‘일’을 경험해 볼 수 있다니! 청년들의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 아닌가? 기획봉사단 사업에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무급 노동’이다. 사실상 공모사업과 동일한 형태로 진행되는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참여하는 청년들에게는 합당한 대가가 전혀 주어지지 않는다. 약간의 실행금을 주긴 하지만, 인건비는 물론이고 장비 대여비, 교통비 등의 활동비로도 사용할 수 없어 참여자들은 오히려 자비를 들여가면서까지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 봉사니까 당연히 돈이 주어져선 안 된다고 얘기할 수도 있다. 어째서 그런가? 어째서 자발적으로 공익을 추구하는 활동은 오직 공짜 노동으로만 진행되어야 하는가? 환경, 생명, 인권의 가치를 짓밟아가면서까지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들에 대해서는 그토록 관대하면서, 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일에는 엄격한 금전적 순수성을 요구하는가?  설령 봉사의 무보수성을 인정하더라도, 기획봉사단 사업이 순수한 봉사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서울시자원봉사센터는 작년에도 기획봉사단 사업을 진행했었는데, 언론보도는 물론 센터의 웹사이트와 블로그를 뒤져봐도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이 진행되었는지를 알 수가 없다. 대신 기업의 봉사활동으로 둔갑한 보도나 기업이 사업을 진행한 청년들에게 ‘활동 인증서’를 수여했다는 보도만을 찾아볼 수 있다. 청년들의 무급 공익활동을 기업의 실적으로 가로챈 것이다. 기업의 사회공헌 사업을 용역 외주로 진행한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황에서, 청년들의 무급 노동에 ‘봉사’라는 이름을 붙이며 합리화하려는 행태는 기만적이다.  싸다 싸! 대학생의 공짜노동 청년들의, 특히 대학생들의 무급노동은 이미 흔하다. 수많은 공공기관과 기업에서 운영하는 서포터즈, 기자단, 마케터, 봉사단 등의 대외활동은 대학생들의 무급노동을 당당히 요구하거나, 무급노동에 가까운 수준의 활동비만을 제공한다. 이러한 활동에 참여하면 대개 블로그 포스팅 및 카드뉴스 등의 기사 작성, 홍보를 위한 영상 콘텐츠 제작, 기관 행사 및 박람회 부스 운영 등의 활동을 요구받게 된다. 활동을 위해 들여야 하는 시간과 노력은 절대 적지 않다. 대외활동을 위해 휴학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참여자가 얼마큼의 노동을 하든 간에, 그에 따른 보상은 노동량에 비해 턱없이 적은 활동비를 제외하면 봉사시간과 수료증, 기업의 제품 제공 정도가 전부다.  사업 운영진 입장에서는 적은 비용으로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으니 안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청년들은 왜 자발적으로 공짜노동을 하는가? 대학생들의 대외활동을 향한 관심도는 문자 그대로 ‘못 해서 안달’인 수준이다. 대기업이나 대형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서포터즈는 수십, 수백 대 일에 달하는 경쟁률을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결국 청년, 대학생 입장에서도 득이 되니까 참여하는 것 아닌가? 서로가 서로를 원하는 상황인데 뭐가 문제인가? 청년들이 자원해서까지 공짜 노동을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취업 때문이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두 개의 층으로 나뉘어 있다. 대기업 정규직이나 공무원처럼 고소득, 고용 안정, 장기근속이 보장되는 영역은 ‘1차 노동시장’이라 불리며 노동시장의 상층을 이룬다. 반면에 중소기업 재직자나 기타 비정규직으로 이루어진 ‘2차 노동시장’은 소득이 낮고 고용상 지위가 불안정하며 재직 연수가 짧다는 특징을 갖는다. 문제는 두 영역 간의 격차는 매우 큰데 노동시장 간 이동성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시장 진입을 앞둔 청년들의 입장에서 ‘1차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목표가 된 이유다. 그러나 1차 노동시장 일자리는 점차 줄어들고 있고,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청년들은 극심한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고, 무급노동이라도 ‘사서 고생’해야 한다. 사회구조적 차원에서 청년들에게 무급노동이 강제되고 있다.  일하다 죽었지만 산재는 아니다? 이는 청년만의, 또 급여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엔 이미 사회적 약자의 노동을 노동으로 보지 않는 인식이 가득하다. 최근 보도된 다음의 사례는 한국 사회의 편협한 노동 인식을 보여준다. 만 65세 이상 기초연금 수급자인 A씨는 2021년 경기도의 한 복지관을 통해 공공형 노인일자리 사업인 ‘공익형 지역사회 환경개선 봉사사업’에 참여했다. A씨는 이 사업에서 월 30시간 동안 지역 내 쓰레기 줍기 등의 활동을 한 뒤 약 27만 원을 받았다. 2022년 아파트 인근 도로 갓길에서 쓰레기를 줍던 A씨는 도로를 지나던 차량과 부딪쳤고,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곧 숨졌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A씨가 복지관 소속 근로자가 아니라며 산재보상을 거부했다. A씨의 유족은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으나, 재판부는 A씨의 노동은 근로 제공이 아니라 “지역사회 공익증진을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봉사활동”이라며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았다.  판결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재판부는 A씨가 한 “1일 3시간 범위 내 쓰레기 줍기 활동은 이윤 창출 등을 목적으로 한 근로제공으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왜 ‘1일 3시간 범위 내 쓰레기 줍기 활동’은 노동이 아닌가? 왜 ‘이윤 창출 등’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면 노동이 아닌가? 재판부는 이어 “근로 제공과 그 대가로서의 임금 지급을 목적으로 체결된 계약”이 아니라 노인복지법에 따른 “노인의 사회 참여 확대를 위한 공익사업의 일환”이라면서 “복지관으로부터 받은 1일 2만7000여원”도 “생계보조금 성격으로 국가 예산에서 지급된 것으로 근로 자체에 대한 대상적 성격을 지녔다고 평가하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노인들에게 쓰레기 줍기를 ‘시킨’ 것이 ‘공익’을 위한 것이라 노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에게 지급된 돈도 노동에 대한 급여가 아니라 생계보조금 성격으로 주어진 것이라 노동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노동이 아니라 공익사업이므로, 급여가 아니라 생계보조금이므로 문제없는 것 아니냐고? 노동을 공익사업이라고, 노동에 대한 대가를 생계보조금이라고 말장난하는 것이 진짜 문제다. 노동과 봉사를 가르는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 재판부는 이윤 창출이 아닌 노인의 사회 참여 확대가 ‘목적’이기 때문에, 주어진 활동비가 노동에 대한 대가가 아닌 생계보조금 ‘성격’이기 때문에 노동이 아닌 봉사라고 판단했다. 노동자성을 수행한 노동과 급여의 ‘목적’과 ‘성격’으로 판단하는 것은 난센스다. 대법원이 복수의 판례를 통해 세운 노동자성 판단 기준으로는 종속노동성 요소, 독립사업자성 요소, 보수의 근로대가성 요소가 꼽힌다.*** 사업 참여 노인은 복지관 등의 사업기관과 사업참여계약서를 작성한다. 이에 따라 정해진 기간, 보수, 장소, 업무내용, 업무규칙, 복무규정, 인사규정에 맞추어 업무를 수행한다(종속노동성 요소). 참여 노인은 타인을 고용할 수 없고, 사업기관이 제공한 비품과 원자재만을 사용해야 한다(독립사업자성 요소).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2020년에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전체 참여 노인의 74.2%가 급여를 목적으로 노인일자리사업에 참여한다(보수의 근로대가성 요소). 사법부의 과거 판례를 기준으로 살펴봐도 A씨의 업무를 봉사가 아닌 노동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목적과 성격을 바탕으로 억지스럽게 봉사와 노동을 구분 짓는 사법부의 판결은 약자의 노동을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돈을 안 줘도 되는 사람은 없다 대학생 기획봉사단 사업과 노인 공공일자리 사업은 업무의 종류도, 수행 주체도 전혀 다르다. 그러나 노동을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똑같은 문제를 지니고 있다. 노동을 노동으로 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 현대사 속에서 활발하게 전개됐던 노동운동은 노동자의 권리를 크게 신장시켰다. 물론 오늘날에도 노동권을 둘러싼 문제는 산적해 있지만, 전반적인 여건이 상당히 개선되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노동권의 보장은 필연적으로 사용자의 책임(누군가는 이를 ‘비용’이라 오역한다)을 강화한다. 사회의 인권의식이 부족해 제대로 묻지 못했던 ‘당연한’ 책임이 떠오르자, 책임의 주체들은 이를 회피할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가장 쉬운 해법은 자신이 사용하는 노동자들이 사실 노동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노동자가 아니니 노동권을 무시해도 된다는 의미다. 돈도 안 줘도 되고, 안전도 신경 안 써도 되고, 근로시간이든 휴식이든 무시해도 된다는 것이다.  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대학생이나 노인만의 문제도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으로부터 먼 곳에 있는 자들의 노동은 언제나 부정당해왔다. 여성의 무급 가사·돌봄노동은 ‘집안 사정’이라서, 장애인의 저임금 노동은 ‘복지’라서, 고등학생의 저소득 노동은 ‘현장실습’이라서, 이주노동자의 차등적 최저임금은 ‘인구위기’라서 어쩔 수 없다며 노동 무시를 정당화해왔다. 기만적 수사를 한 꺼풀 벗겨보면 그 안에 숨어있는 차별이 드러난다. 특정한 ‘존재’라는 이유로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차별을 이제는 멈추어야 한다. 모두의 노동이 지닌 가치를 존중하고, 그들을 노동자로 인정하며 정당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지금 바뀌지 않는다면 당신의 친구도, 당신의 가족도, 그리고 당신도 언제든지 차별받는 자의 위치에 설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 권혜자·이혜연의 분석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대기업 정규직 초임 평균은 305만 원인 반면, 중소기업 비정규직 초임 평균은 138만 원으로 그 격차가 매우 컸다(권혜자·이혜연, <대기업집단 및 중견기업의 임금 프리미엄>, 《노동정책연구》, 19(1), 2019.).   또한 전병유 외의 분석에 따르면 2004~2006년에는 중소기업 근로자의 3.5%가 대기업으로 이직했으나 2013~2015년에는 이 수치가 2.2%로 줄어든다. 이는 노동시장 간 이동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전병유·황인도·박광용,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정책대응 : 해외사례 및 시사점>, 한국은행, 2018.).  ** 한국고용정보원의 자료에 기반한 조귀동의 분석을 보면 1차 노동시장 일자리의 대부분을 점유하는 서울 4년제 대학 졸업자 상위 30%의 소득이 2014년을 기점으로 되려 감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동일 일자리의, 특히 1차 노동시장의 임금이 감소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므로 결국 일자리의 수 자체가 줄어들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조귀동, 《세습 중산층 사회》, 생각의힘, 2020.)    *** 종속노동성은 특정 사용자에게 업무에 관한 지휘명령을 받아 업무를 진행하는지, 독립사업자성은 업무가 자영업자적 특성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보수의 근로대가성은 임금을 목적으로 노동력을 제공한 것인지를 따지는 기준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법무법인 지평의 노동법 뉴스레터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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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여전히, 배 안에 있다
우린 여전히, 배 안에 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 부끄러운 세대가 되지 않기 위하여 아이들을 보낸 지 벌써 10년입니다. 당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를 고민하며 고시공부를 전전하는 25세 대학생이었던 제게 4월 16일은 아이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겠노라 울면서 다짐하게 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3년상을 치르듯 너희의 죽음에 대한 의미를 찾겠노라 버둥댔고 2017년 4월, 의미는커녕 스스로의 삶 하나 건사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세월호 기억공간이 보이는 광화문 카페에 홀로 앉아 눈물을 훔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을 보낸 지 10년이 되었을 때에는 그래도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무언가를 영정 앞에 내어놓고 싶었는데, 매서운 세월의 바람 앞에 속절없이 풍화되어 온 다짐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10년이 지난 지금, 그 간의 마음을 매듭짓고 새롭게 다짐을 기록하고자 이렇게 글을 적어봅니다. #1. 2014년 4월 16일 : 우리 모두의 실패  돈과 물질, 권력과 허세로부터 인간과 생명, 자유와 평등을 향한 새 기풍을 진작하지 않는다면 팽목의 통곡은 머지않아 대한민국을 덮칠 것이다. 팽목은 이미 한국의 압축판이고, 세월호는 대한민국호의 다른 이름이다.- <통곡의 바다, 절망의 대한민국>, 박명림 교수 한겨레 기고문 중 사실 그럴 줄 몰랐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사회가 얼마나 위기상황인지, 얼마나 붕괴의 조짐들이 많이 보이는지 모르지는 않았습니다. 10대 시절 중고등학교를 보내며 교육구조가 얼마나 처참하고 그 구조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통받고 신음하는지를 보아왔고, 대학에 들어온 이후 여러 학문과 글, 이야기를 통해, 그리고 삶의 경험들을 통해 무언가 잘못된 거 같고 무언가 정상적이지 않은 것 같은 사회의 단면들을 바라보던 시절이었습니다. 내가 감각하는대로 정말 사회가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으레 어른들이 이야기하듯 아직 10대의 순수함을 벗어나지 못한 청년의 시절에 바라보는 순진한 시선이었는지 스스로조차 잘 알지 못한 채. 불편하고 답답했지만 외치기엔 자신이 없어 그저 그러려니 하고 나의 삶을 잘 살아내는 것에 집중하고, 또 그럴 수 있는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사건의 당일에는 그저 당황했던 거 같아요. 뉴스를 뒤덮은 수많은 속보들과 서로 맞지 않는 이야기들. ‘설마…’ 라는 말줄임표로 끝나던 생각이 시간이 흘러 ‘정말?’ 이라는 놀람의 물음표로 바뀌던 시간들. 하루이틀이 지나며 우려했던 그 일이 현실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부정하다가, 이내 무너져내렸던 시간들. 긴급히 생겨난 여러 모임들에서 함께 이야기하며 울던 시간들. 점차 드러나는 여러 정황과 실체들… 제가 무너져 내렸던 자리는 ‘그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구나’라는 자리였어요.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이 실려 있었던 화물들, 짐을 조금이라도 더 싣기 위해 줄여버렸던 평형수,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내보내고는 제일 먼저 도망쳐버린 리더십들, 침몰 당시 전혀 대비가 되어 있지 않던 위기상황체계, 서로 다른 정보가 뒤섞이며 엇갈리는 언론, 아이들을 구하고자 하지만 그 누구도 어찌하지 못하고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시간들. 어느 누가 책임자이고 죄인이라 이야기할 수 없었지만, 모든 프로세스 중에 현실과의 타협이 있었고 좀 더 이득을 취하고자 저지른 꼼수가 있었고 별 일 없을 거라며 눈 감던 관행이 있었고 뭐 굳이 그렇게까지 하느냐는 안일함이 있었어요. 그것들이 만분의 일의 확률, 십만분의 일의 확률로 연결되었을 때에 배가 침몰하고 사람들은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들을 사회와 공동체가 구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으니깐요. 중요한 것은 그러한 타협과 꼼수와 관행과 안일함이 사실 일상의 도처에 널려 있다는 점이었어요. 운명의 주사위가 다른 숫자를 내보였다면 그것은 2014년 4월 16일의 진도 앞바다가 아니라 내가 서 있는 바로 그 자리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죠. 사실 이미, 우리는 ‘우연히 살아남은 것’이었고 죽음의 주사위를 던질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만들어낸 대가를 그 배에 타고 있는 이들이 치를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저를 그리도 무너지게 했어요. 그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깨닫고 모르지 않았었는데. 가시화된 죽음을 목도하고 난 후에야 그것이 진실이었구나, 그리고 그 주사위를 막지 못하고 결국 굴리고 말았구나 라는 사실 앞에서 그들의 죽음에 저의 책임이 없지 않을 수 없다 생각했어요. 나와 우리의 안일함이 모이고 모여 이 주사위를 굴리게 만들어버린 것이니깐요. 그때부터였던 거 같아요. 10년. 10년 뒤에는 너희 앞에 부끄럽지 않을 나라와 사회를 만들어 보겠다고 했던 결심이 말이죠. 그렇게 10년이 흘러, 오늘 다시 아이들 앞에서 되묻고 있네요. 정말 우리는 그런 나라와 사회를 만들었을까 하고 말이죠. #2. 2024년 4월 16일 : 우린 여전히, 배 안에 있다 2021년 어느 봄날 저녁, 청와대 앞 광장에서 커다란 울음이 터져 나왔다. 스텔라데이지호 이등항해사 허재용 씨의 어머니 이영문 씨였다. 그날은 스텔라데이지호가 침몰하여 선원들이 실종된 지 4년이 되는 날로, 정부에 2차 심해수색을 요구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기도회에서 이영문 씨가 증언할 차례였다.73세 노모의 울음소리에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사람들은 침묵했고, 지나가는 차들의 소음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마치 세상이 정적 속에 정지한 것 같았다.그때 정적을 깨며 누군가 이영문 씨를 향해 달려갔다.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을 위한 기도회에 참여한 세월호 참사 유가족 창현 어머니였다. 그는 이영문 씨를 끌어안고 함께 울었다. 바다에서 아들을 잃은 두 엄마가 서로를 안고 눈물을 흘렸다. - <포기할 수 없는 약속>, 416생명안전공원 예배팀 엮음 중 사실 2014년 당시만 해도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너무 컸던 거 같아요. 구하지 못해 미안하고 살리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그렇게 울면서 이야기했던 거 같아요. 하지만 이후 2016년에 마주했던 사건들. 강남역 살인사건과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건을 지나면서,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의 실체가 점차 가시화되고 알지 못하던 여러 곳에서 사회적 모순이 죽음의 사건으로 공론화되는 것을 보면서 조심스럽게 이야기할 수 밖에 없었어요. 우리는 아직, 배 안에 있구나 라는 사실을 말이죠. 죽음의 주사위는 여전히 굴려지고 있었고, 도처에서 신음과 울부짖음이 터져나오고 있었어요. 사건들이 터져나올 때마다 절망감이 스스로를 뒤덮었습니다. 사실 양상은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도록 막을 수 있는 기회는 수 번 아니 수십 번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 모든 기회들을 모두 비껴나면서까지 사건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현실은 마치 겹겹이 설치 해둔 창문들을 뚫고 들어오는 추위와 같았어요. 추위를 막고자 설치한 유리창들이 번번히 깨져 있었고, 바람은 그 깨진 유리창들 사이로 뚫고 우리를 공격해 들어오고 있었죠. 추위야 그저 견디면 그만일텐데, 확률의 유리창들을 뚫고 엄습한 사건은 가장 연약한 사람부터 공격해 들어왔어요. 그건 그저 사고가 아니었어요. 그것은 겹겹이 형성한 시스템 자체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신호였고 멈춘 시스템을 틈타 죽음의 주사위가 굴려지고 있다는 증거였어요. 자연의 위협을 완전히 차단할 수 없고, 사고의 위험을 완전히 없앨 수 없지만 그로부터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사회의 시스템과 공동체의 규율이 붕괴될 때에 공동체의 가장 약한 사람부터 확률적으로 피해를 볼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드러난거죠. 하지만 그보다 더 절망적이었던 것은, 그렇게 깨진 유리창들로 이루어진 사회 시스템을 보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는 사실이었어요. 그 시스템이라는 것은 비단 정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우리는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관여하는 개개인의 직업윤리와 공동체윤리마저도 붕괴된 현실을 살고 있으니깐요. 동시에 그런 윤리를 지키지 않은 개인에게만 탓을 하기에는 직업윤리와 공동체윤리를 지키면서는 도무지 살 수 없도록 설계된 사회였어요. 경쟁에 내몰리고 원칙이 비웃음 당하고 순수함이 순진함과 같은 의미로 쓰이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 이 문제들과 연관이 없다고 할 수 없음이 점차 피부로 와닿아졌어요. 국가의 실책, 제도의 실패 등에 대해서 당연히 이야기하고 바꿔야 할 문제였지만. 보다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이 점차 깨달아지고 있었죠. 그렇게 10년이 흘렀고 조금은 절망스러운 마음과 체념을 가지고 이번 10주년을 지나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3. 메타노이아metanoia : 마음의 전환  ‘메타노이아metanoia’는 마음의 전환shift of mind, 즉 사고방식의 전환이다. 그리스인에게 ‘메타노이아’는 마음의 근본적인 전환 또는 변화, 글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마음의 초월meta을 의미했다. 초기 기독교 영지주의 전통에서 ‘메타노이아’는 지고의 존재, 즉 신을 직접적으로 알고 깨우친다는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그러므로 ‘메타노이아’는 세례 요한 같은 초기 기독교인에게는 더없이 중요한 단어였으리라. 가톨릭 자료에서 ‘메타노이아’는 ‘회개’로 번역된다.- <학습하는 조직>, 피터 센게 지음 중 참사가 계속해서 되풀이 되는 이 때에, 이 비극의 연쇄작용을 끊어내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했습니다. 사실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어요.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사회운동이 일어난다고 해서, 한 두 개의 정책이 세워지고 법률이 통과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의 종류가 아닌 것처럼 보였습니다. 사회의 특정 부분, 구조의 어떤 영역에 특이한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도처에 깔려 있는 우리 스스로의,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겨누고 있는 무기들을 내려놓아야 할 거 같았어요. 박명림 교수님은 세월호 참사 당시에 기고하신 <통곡의 바다, 절망의 대한민국>에서 사회의 숨과 바람과 호흡의 방향, 정신과 영혼의 방향이 바뀌지 않으면 팽목의 통곡은 머지않아 대한민국을 덮칠 것이라 예견하셨던 것 처럼 말이죠. 그러던 중 제가 발견하게 되었던 것은 ‘메타노이아metanoia’라는 개념이었어요. <학습하는 조직>이라는 책에서 시스템 사고의 권위자인 피터 센게 교수는 특정 조직이 위대한 팀으로 거듭나면서 조직에 속한 구성원들이 하게 되는 강렬한 경험과, 그 경험이 구성원 각자의 인생과 방향성 자체를 바꾸어놓는 것을 목격했어요. 그리고는 그 경험을 설명하는 단어를 찾던 중 ‘메타노이아’라는, ‘마음의 전환’이라는 단어에서 찾았어요. 사실 이 단어는 종교를 가진 분들이라면 더욱 친숙한, ‘회개’라는 단어의 어원이 되는 단어죠. 종교를 가지지 않던 이가 종교를 가지게 되는 것처럼, 이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방향성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처럼 사람이 변화되었다는 것이었죠. 이 개념에 대해 알게 되면서 한국 사회가 참사의 연쇄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방법은 한국 사회의 ‘메타노이아’ 일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각자가 타협과 꼼수와 관행과 안일함으로부터 원칙과 생명, 공동체를 선택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전환하는 것’. 그렇게 각자의 깨진 유리창들을 모두가 보수하고 단단하게 만드는 것만이 더 이상 죽음의 주사위가 구르지 않고 그 죽음의 확률을 함께 힘을 모아 막아내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피터 센게 교수는 조직과 그 구성원들의 메타노이아에 대해 증언하고 있었고 그것을 사회 전체로 확산시킬 방법이 무엇일까에 대해서 계속해서 고심하게 되었죠. 하지만 전 사회의 메타노이아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비단 참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일상의 하루하루, 순간순간 속에서 원칙보다 편의를, 전체의 순리보다 나 자신 혹은 내가 속한 조직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하기를 강요받죠. 그러려고 하지 않는 마음조차 무색하게 그로 인해 당장 우리가 치뤄야 할 대가와 손해가 막심하거든요.설령 누군가가 그러한 마음의 전환을 하기로 결심하더라도 우리가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한 1명의 변화는 그 사람의 생존과 그 사람이 속한 조직의 생존을 위협할 뿐이에요. 세상의 룰은 바뀌지 않았지만 홀로 그런 선택을 하고자 하는 이에게 사람들은 도리어 ‘이기적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순진하다’ 혹은 ‘이상적이다’라고 손가락질을 할 수 밖에 없을 거에요. 심지어 모두가 바뀌지 않는다면, 정말로 그 행동으로 인해 손해를 보는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니깐요. 우리는 여러 사건과 이야기 속에서 그 상황들을 지켜보고 왔었죠. 그럼에도 전 사회의 ‘메타노이아’가 아니고서는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을 방법을 찾지 못했던 저로서는 그 방법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씨름했습니다. 조직을 넘어 생태계로 발전된 새로운 운동과 흐름에 대해 역사를 뒤적이기도 하고, 제도와 조직, 문화에 대해 씨름을 하면서 어떤 가능성의 단초들을 찾아나서고자 했어요. 하지만 긴 씨름의 끝에 제가 발견한 것은, 이미 ‘사회의 메타노이아’는 시작되었고 이 질문의 시작이야말로 그 증거였다는 아이러니한 사실이었습니다. #4.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 사건이 촉발하는 사회의 메타노이아 “조국애를 몰라서 조국을 귀하게 여기지 못했고, 조국을 귀중하게 여기지 못하여 우리 선조들은 조국을 팔았던가. 우리는 또 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않으련다. 나는 또 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이 가슴의 피눈물을 삼키며 투쟁하련다.”- <돌베개>, 장준하 지음 중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라는 말은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다가 광복 이후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던 고(故) 장준하 선생의 자서전인 <돌베개>에 나오는 말입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선생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독립운동에 뛰어들 때에 같은 마음을 가지지 않았을까요. 나라를 잃은 조상들과 다르게 우리 세대는 다른 길을 걷겠다는 그 마음이 척박한 여건 속에서 독립운동을 하게 하는 동력이 되지 않았을까요.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라는 말과 ‘더 이상 어른들을 닮지 않겠다’는 세월호 세대 아이들의 말이 겹치게 읽혔습니다. 그리고 이내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노력하는 방식을 통해 계속해서 사회의 메타노이아를 경험해 온 나라였다는 사실을 말이죠. 1910년에 일제의 식민지로 병합된 경술국치(庚戌國恥)를 겪으면서 사회 전체는 큰 충격에 빠집니다. 그리고 이내 일어난 1919년의 3.1운동과 이후 벌어진 독립운동은 모두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라를 다시 독립시키겠다는 열망이 사회 전체의 메타노이아를 일으킨 결과였습니다. 일부 친일파를 제외하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독립운동에 헌신했죠. 그리고 우리는 1945년 광복을 맞이합니다. 다시 대한민국의 독립을 이룰 수 있었죠. 하지만 이내 1950년 우리는 6.25 전쟁을 경험합니다. 전쟁은 또 다시 사회 전체를 충격에 빠뜨리고 광복과 독립의 정신을 계승할 새도 없이 나라 전체가 폐허가 되고 맙니다. 기근과 가난 속에 태어난 세대는 전쟁의 충격 위에서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산업화와 경제개발에 사회 전체가 몰두하게 됩니다. 그렇게 우리는 1995년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를 달성하게 됩니다. 그 사이 1980년 국가가 국민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던 5.18 광주 민주화운동은 다른 의미에서 사회 전체를 충격에 빠뜨립니다. 군부독재 속에서의 억압 속에 살던 세대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기점으로 민주화 운동에 헌신하게 되고 1987년 6월 항쟁을 넘어 직선제 개헌을 통해 우리는 민주화를 이루게 되죠.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지나오면서 우리는 항상 이전 세대의 실패가 누적되고 축적되다가 돌이킬 수 없이 벌어진 ‘사건’을 경험하면서 사회 전체의 메타노이아를 경험해왔습니다. 물론 이 모든 일들에서 알 수 있듯이 사회 전체라고 하지만 모든 구성원이 그러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사회가 경험한 사건이 사회의 ‘메타노이아’를 일으키면서 사회 전체가 그 반작용의 활동에 몰두하게 되는 일들을 다름아닌 우리나라가 역사 속에서 계속해서 겪어왔더라구요. 그리고 그 메타노이아를 촉발시킨 사건은 앞선 세대의 모순이 누적되어서 촉발한 비극이었습니다. 경술국치가 그러했고, 6.25전쟁이 그러했으며,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그러했죠. 그렇기에, 이 모든 사회의 메타노이아는 기본적으로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헌신한 세대들의 발로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아이러니이자 일종의 비극인 이유는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라는 말 자체에 있습니다. ‘못난 조상’이라는 표현 자체에서 우리는 사회 전체에 있어 마음의 전환이 일어났지만 그 전환의 방향이 다음 세대로 계승되지 못하고 또 다른 비극을 낳고야 말았다는 아이러니를 보게 됩니다. 나라를 잃은 설움은 앞선 세대로 하여금 독립운동에 헌신하게 했지만 독립 이후의 혼란과 나라 형성을 제때 하지 못한 아픔이 남았고, 그 아픔을 딛고자 경제성장에 몰두하던 세대는 군부독재를 허용하고 민주화를 놓치면서 국가가 국민에게 총구를 겨누는 트라우마를 남기게 됩니다.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 하는 결심으로 일어난 세대는 기어이 민주화를 이루어내고 민주국가를 만들었지만, 세월호 세대는 또 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라는 말을 그들의 언어로 되풀이 하고 있습니다. 참사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우리가 마주했던 2014년의 참사가 우리 세대의 ‘메타노이아’를 촉발시킨 사건임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메타노이아는 안타깝게도, 과거의 역사가 그래왔듯이 이전 세대의 모순이 누적되고 축적되다가 돌이킬 수 없이 벌어진 ‘사건’으로 일어나고 있는 사회 전체의 ‘마음의 전환’임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가진 ‘참사의 되풀이를 막기 위한 방법’에 대한 질문 자체조차 세월호 참사로부터 촉발된 제 마음 속의 ‘메타노이아’였던 것이 깨달아지게 된 것이었죠. #5. 상처 입은 세대 :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못난 조상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타자의 비판이 한갓 타자의 부정에 머물러 적극적 자기 형성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이야말로 현재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의 본질인 것이다. 이 자기 형성을 통한 서로주체성의 실현이 좌절되었기 때문에, 공동의 적을 통해 결속된 우리는 그 적이 사라지는 순간 다시 남남으로 흩어지게 되고 지배 권력은 그렇게 원자화된 시민을 끊임없이 상호 경쟁으로 내몲으로써 자신의 지배 권력을 공고히 할 수 있게 된다.(…)다시 그런 봉기가 일어난다 한들, 그것이 단지 독재적인 통치 권력에 대한 부정과 반발에서 촉발된 것이라면, 결국 한국의 민주주의는 매번 유사한 방식으로 봉기하고 적대적 권력을 타도할 수는 있겠지만, 결코 온전한 의미에서 나라를 형성하지는 못할 것이다.” - <영성 없는 진보 -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생각함>, 김상봉 교수 씀 중 참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한 방법으로 ‘사회 전체의 메타노이아’를 발견했고 우리나라의 현대사 속에서 메타노이아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지만, 정말 아이러니 한 것은 이러한 참사를 계속해서 되풀이하는 주요한 원인이 다름아닌 이전 세대의 메타노이아 그 자체라는 것에 있습니다. 경술국치의 참혹함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어난 독립운동은 이 일을 촉발시킨 일제에 대한 저항과 항거였습니다. 동시에 경제성장을 향한 전국민의 노력도 전쟁의 트라우마를 딛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기도 했구요. 민주화운동 또한 국가가 국민에게 총구를 겨누는 참혹함에 대한 충격이 가지는 에너지가 있었습니다. 사실 모든 세대의 모든 노력들, 그리고 모든 메타노이아가 지금의 우리나라를 만들어내는 자양분이 되어주었지만, 그 에너지들 자체가 ‘이전 세대가 가진 모순의 누적으로 치른 대가에 대한 트라우마’의 성격이 강했음을 보게 됩니다. 그 어느 세대 하나 없이 모두 상처입은 세대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상처로 촉발된 마음의 전환은 그 자체로 큰 에너지가 있기 때문에 사회 전체를 변화시킬만한 힘을 보여주지만, 그 힘의 방향이 필연적으로 이전 세대에 대한 부정 혹은 극복이라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듭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균형 있는 자기형성과 성장을 만들어내기보다, 사회의 에너지가 과도하게 이전 세대의 모순에 대한 극복에 몰입되는 나머지 또 다른 측면에서의 모순을 눈감게 만들고 맙니다. 그것이 누적되고 축적되다보면 결국 다음 세대에게 트라우마를 안기는 또 다른 참사를 만들어내고 마는 것이죠. 김상봉 교수님은 최근 내신 저서 <영성 없는 진보>에서 한국 민주주의 위기의 본질에 대해 ‘타자의 부정에서 적극적 자기형성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을 들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현대사가 이전 세대에 대한 부정의 연속이었지만 그 가운데에서 트라우마를 딛고 적극적 자기형성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그로 인해 우리는 또 다시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새롭게 사회 전체에 일어난 마음의 전환을 목도하지만, 그 깊은 곳에 존재하는 근원적인 한계인 트라우마의 측면 또한 마주하게 됩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는 우리 세대로 하여금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분노어린 다짐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10년간 경험한 이러한 마음의 전환이 이전 세대에 대한 부정을 넘어 적극적 자기형성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한다면, 어쩌면 우리 또한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우리의 모순이 축적되어 벌어지는 참사를 넘겨주는 ‘못난 조상’이 되어버릴지도 모릅니다. #6. 비판에서 형성으로 : 비극의 연쇄고리를 끊어낸다는 것 “오로지 대학만 바라보고 공부하던 평범한 학생이었는데, 세월호를 보면서 어른들과 사회체계에 대한 불신이 생겼다. 어떤 어른을 믿고 따라야 하는지, 그 무엇도 신뢰할 수 없게 됐다. 한편으론 서로가 서로를 지켜줘야 한다는 마음, 믿음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런 어른은 되지 않겠다"...세월호 10년, 97년생이 온다” (오마이뉴스 2024.04.16.) 중 97년생의 증언 나라 잃은 아픔의 반작용으로 일어난 시대정신이 ‘독립운동’이라면, 전쟁으로 일어난 시대정신이 ‘경제성장’이었고, 국가의 폭력 앞에 일어난 시대정신은 ‘민주화’였음을 봅니다. 그런 우리 앞에 세월호가 웅변하고 있는 우리의 시대정신은 어쩌면 ‘주체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막연한 신뢰를 바탕으로 앞선 세대, 앞선 리더십, 앞선 이들이 해오던 대로, 하라는 대로 따르던 우리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의 결과를 우리는 보고야 말았으니깐요.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따라야 하는 시스템과 권위와 어른들의 이야기를 믿을 수 없고,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책임지는 자리에 설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을 봅니다. 실제로 이 새로운 세대는 분명하게 주체성의 경험들을 축적해가고 있습니다. 맨바닥에서부터 전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나가고 있는 스타트업들이 그러하고 스스로의 경험으로부터 서로의 필요를 위해 완전히 새롭게 생겨난 청년 단체들이 그러하고, 완전 새로운 판에서 자신만의 예술을 만들어가는 아티스트들이 그러합니다. 동시에 이전의 문화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주체적으로 반응하는 직장인들이 그러하고 학생들이 그러합니다. 디지털 전환이 만든 새로운 공간 위에 같은 ‘메타노이아’를 경험한 이 세대는 이전 세대에 의존하지 않는 전혀 새로운 사회와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다만 그렇기에, 우리가 앞선 세대들이 해왔던 비극의 연쇄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회’를 스스로 만들어가면서 우리의 트라우마를 스스로 직면하고 치유해야 합니다. 참사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세대는 더 이상 ‘다음 세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지금의 시스템과 지금의 사회에 각자의 책임을 다하고 변화를 직접 만들어야 하는 세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학생이 아니고 제3자인 누구에게, 어른인 누구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세대가 아닙니다. 우리 세대에서 정치인이 나오고 있고 우리가 직접 가정을 꾸리고 공동체를 구성하고, 우리 스스로가 사회를 형성하고 선택하며 동시에 직접 책임지는 자리에 서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이상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을 믿지 말자“라는 데에서 더 나아가 ”각자의 깨진 유리창을 책임지고 서로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자“라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앞선 세대에 대한 트라우마로 우리 사회가 쌓아온 모든 유산과 축적된 경험을 모두 불신하게 된다면, 그 또한 또 다른 모순을 만들어내는 선택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마이뉴스에서 기획한 세월호 세대에 대한 조사에서 나온 저 증언에 저는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 있다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세월호가 상처가 아닐 수 없고, 우리 안에 불신이 없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불신을 넘어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는 믿음의 연대를 회복해야 하고, 그것이 우리 안에서 일상으로 녹아들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해야 합니다. 거창한 정치나 시민운동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에서의 도움, 배려, 때로는 약자에 대한 도움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리창의 보수이자 치유의 과정일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같은 상황이 되었을 때에 다른 선택을 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비판이자 대답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그리고 우리는 ‘좋은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세대의 트라우마를 스스로 치유하면서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선택과 경험을 통해 성장해 나가겠지만, 동시에 우리는 우리가 하는 선택들의 대가 중 일부를 우리의 다음 세대가 치뤄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또한 앞선 세대의 부채를 껴안으면서 이러한 사건 앞에 설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앞선 세대의 대가를 치뤘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또한 다음 세대가 어찌 되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사회를 이용한다면,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우리는 또 다른 참사를 낳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결국 우리의 트라우마에 우리 스스로가 지배되어 우리의 동생들과 자녀들을 해치는 것에 다를 바가 없게 됩니다. 우리가 비극의 연쇄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좋은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회의 주도적인 세대가 되었을 때에 우리의 다음 세대에 대한 고려가 있는 판단이 있어야 하고, 다음 세대를 우리보다 더 나은 세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의 판단과 선택들, 그리고 책임들이 이루어지게 될 때에. 우리는 비로소 비극의 연쇄고리가 아닌, 세대를 거듭함에 따라 사회가 진보하는 선순환의 연쇄고리를 만드는 첫 단추를 꿸 수 있을 것입니다. # 닫으며 : 위대한 세대가 되기를 소망하며 미국에는 ‘가장 위대한 세대(Greatest Generation)’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으로 불리는 세대가 있다. 1901~1927년 태생이다. 이 세대는 청년기에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을 이겨냈고, 1950년대에는 미국 역사상 최전성기를 이끌었다.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넘은 ‘사회적 자본’ 개념을 널리 알린 〈나 홀로 볼링〉을 썼다. 이 책은 미국 사회의 질이 왜 갈수록 나빠지는지, 사회적 자본이 왜 갈수록 쪼그라드는지 추적했다. 답은 의외였다. 사회적 자본을 유난히 풍부하게 가졌던 윗세대가 퇴장했기 때문이다. 그게 전쟁을 겪은 세대, 그러니까 위대한 세대였다(퍼트넘은 1910~1940년생까지로 좀 더 넓게 잡는다). 이 세대는 후속 세대보다 공적 토론에 더 관심이 많고, 더 많이 투표하고, 시민적 결사와 공공업무에 더 많이 참여하고, 다른 사람을 더 많이 돕고, 동료 시민들을 더 신뢰한다. 한마디로 더 나은 시민이다.위대한 세대는 가장 가혹한 전쟁의 자식들이었다. 외부의 적은 내부의 응집력을 극적으로 높이므로, 때로 전쟁은 더 나은 시민을 만드는 용광로다. 퍼트넘은 방대한 데이터를 검토한 후, 결론으로 이렇게 쓴다. “1945년(2차 세계대전이 끝난 해다)에 절정에 달했던 국가 통합의 시대정신과 전시(戰時)에 불붙은 애국심이 시민정신을 강화했을 것이다.” 그 힘은 이 세대가 살아 있는 내내 사라지지 않을 만큼 오래갔다. 이들이 주도한 시대에 미국은 최전성기를 달렸다.- <코로나19가 드러낸 ‘한국인의 세계’- 갈림길에 선 한국 편> 천관율 기자 씀 중 천관율 기자님이 코로나 시기에 썼던 기사에서 나온 ‘위대한 세대(Greatest Generation)’은 그 또한 2차 세계대전이라는 참사로부터 메타노이아를 경험한 세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로버트 퍼트넘에 따르면 이 메타노이아를 통해 위대한 세대는 공적 토론에 더 관심이 많고 공적 업무에 헌신하고 동료와 연대하는 ‘더 나은 시민’이 되었다고 기술합니다. 물론 이 세대가 우리가 앞서 이야기한 앞선 세대의 트라우마까지 완전히 극복했는지는 저희도 알 수 없고, 현재의 미국을 볼 때에도 쉽게 알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대한 세대’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 또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상상를 하게 만듭니다. 사실 이 글에서 비극의 연쇄고리를 끊을 수 있는 중요한 일로 ‘앞선 세대에 대한 용서’를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우리가 트라우마조차 극복하지 못한 상황에서 세대가 겪은 상처에 대한 용서까지 이야기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어느 날이 되었을 때에, 우리는 우리 또한 다음 세대에 대한 가해자가 되어 앞선 세대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에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완전히 우리 안의 상처를 모두 회복한 후에, 상처로 인해 어찌할 수 없었던 지난 세대의 과오를 끌어안고 보듬을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됩니다. 우리 세대가 우리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앞선 세대를 용서하고 다음 세대에게 좋은 어른이 되는 세대가 될 수 있다면, 우리 세대로부터 우리 나라의 온전한 치유와 성장이 일어나는 시작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우리 또한, 미국조차 온전히 이루지 못한 ‘위대한 세대’를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요. 가장 많이 성공했거나 가장 화려한 세대여서가 아니라, 정말 우리 나라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도록 만드는, 후대 세대에게 롤 모델이 되고 기준이 되는 그런 세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떠나 보낸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되지 않을까요.그런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4.16 세월호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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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10주기 기억식 : 가슴에 노란 리본, 마음에 새긴 약속
2016년 4월 16일에 일어난 세월호참사가 어느덧 10주기를 맞이했다. 10주기 세월호 기억식은 안산 화랑유원지 제3주차장에서 진행되었다. 많은 시민, 유가족분들과 여러 인사들이 기억식에 참석해 주었다. 기억식 순서 식전 공연 이름을 불러주세요 추도사 기억 편지 기억 영상 상영 기억 공연 기억 합창 4.16 안전 문화 창작곡 수상자들의 공연으로 식전 공연이 시작되었다. 그 후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는 ‘이름을 불러주세요’가 이어졌다.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 김동연 경기도지사, 이민근 안산시장, 김광준 4.16재단 이사장, 고 김수진 아빠 김종민님의 추도사가 이어졌다.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은 유가족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하면서 추도사가 시작되었다. 해양수산부 장관은 재해로부터 자유로운 바다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달라지지 않은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했다. 책임, 인정, 사과, 재발방지, 의료지원 등 12가지 주요 건고에 대한민국은 응답하지 않고 있다고 말씀했다. 늦어지고 있는 기억공원 건립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자아냈고, 국민의 안전이 뒷전인 현재 대한민국을 지적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함께하겠다고 밝히며 추도사를 마쳤다. 김광준 4.16재단 이사장님과 고 김수진 아빠 김종민님의 추도사에서는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세월호참사가 일어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달라져야 한다고 하지만, 10.29참사와 오송참사가 잇따라 일어났다. 그러나 현실의 장벽이 높을수록, 함께 힘을 모아 장벽과 부딪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추도사가 끝나고 난 뒤, 97년생 동갑내기 김지애님의 기억 편지 낭송이 있었다. 4.16참사를 겪은 후, 자신의 다짐과 생각을 별이 된 친구들에게 전했다. “하늘이 맑을 때 너희를 기억하고, 비가 올 때 너희를 기억하고, 별이 많은 날 너희를 기억하고, 꽃이 피면 너희를 기억하며 살아가려고 해. 너희 부모님들 곁에 서서 진실도 밝히고, 책임자도 끝끝내 찾아냈다고. 이제 이 땅에는 무책임한 정부로 인해서 벌어지는 참사는 없게 만들었다고 자랑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줘.” 가수 박창근님의 ‘별되어 내리네’와 ‘미련’을 불러주셨다. 바로 이어서 배우 박원상님의 정호승 시 낭독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제 널 가슴에 묻으라고 한다 세상에! 너는 언제나 내 가슴에 살아 있는데 어떻게 가슴에 묻을 수 있겠느냐 엄마는 너를 가슴에 묻지 못한다 아빠도 너를 황량한 가슴의 들판에 묻지 못한다. - 왜 돌아오지 않느냐 정호승 - 마지막으로는 4.16합창단과 시민합창단의 기억 합창으로 기억식을 마무리했다. 기억 합창단의 마지막 노래로 ‘잊지 않을게’를 부르며, 합창단은 노란 비행기를 날렸다. 10년이 지난 지금, 앞으로 10년이 지날 미래에도 노란 비행기처럼 세월호참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자라는 의미로 다가왔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듯,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듯, 진실은 침몰하지 않듯, 세월호참사의 진실이 밝혀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바쁜 와중에도 2000여명의 사람들이 함께 기억하는 시간이었다. 4월은 따뜻하고 꽃이 피는 봄의 시작이지만, 304명이 별이 된 달이기도 하다. 기억하겠다, 잊지 않겠다, 함께 하겠다는 말들이 많이 오갔고,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특별법 제정, 생명안전법 제정과 같은 요구도 잇따라 들렸던 기억식이었다. 기억식에서의 다짐과 약속이 기억식이 끝난 후에도 이어지면 좋겠다. 김지혜님의 편지 중, ‘나는 그저 살아남았고, 살아남은 사람’이라고 자신을 설명한다. 나도 김지혜님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저 나는 운이 좋았기 때문에 살아남았다고 생각한다. 이렇듯이, 세월호참사, 이태원참사, 오송참사는 남의 일이 아니다. 나의 일이다. ‘여전히 단단하지 않은 땅’에 살고 있는 우리는 자신을 위해, 남을 위해, 미래를 위해 참사를 기억해야 한다.
4.16 세월호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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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이스라엘을 공격한 이유
지난 13일, 이란이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 드론과 미사일 300여 기가 이스라엘 본토에 발사되었죠. 두 나라는 중동의 앙숙으로 꼽히지만, 이란이 이스라엘 본토를 직접 공격한 건 이번이 처음인데요. 이란은 왜 이스라엘을 공격한 걸까요? 중동에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되는 걸까요? 전쟁 중인 이스라엘 상황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반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담소 참고)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하마스 격멸을 위한 지상전을 벌이면서, 약 3만 3천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이 희생됐습니다. 이스라엘은 민간인을 집중 공격했고, 국제사회의 비판이 잇따랐습니다. 이스라엘의 강력한 우방국인 미국 역시 이스라엘이 민간인 보호에 나서야 한다고 경고했습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현재 미국과 이집트의 중재로 휴전을 협상 중이지만, 인질 송환 등의 문제로 협상 결렬과 재개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란과 이스라엘의 관계 하마스는 이란의 지원을 받는 반이스라엘 무장 단체 중 하나입니다. 이란은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이라크의 시아파 민병대 등의 이슬람 무장 세력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란과 이스라엘이 적대 관계가 된 건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 이후입니다. 이 혁명으로 이란에선 미국과 이스라엘에 우호적이던 팔레비 왕정이 물러나고,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권력을 잡았습니다. 2000년대 이란이 핵미사일 개발을 시작하면서 양국의 갈등은 더욱 커졌습니다. 지금까지 이란과 이스라엘은 공식적인 전면전 없이 ‘그림자 전쟁’을 펼쳐왔습니다. 이란은 하마스 등 이슬람 무장 단체를 이용해 이스라엘을 간접적으로 공격해왔고, 이스라엘은 이란의 미사일 배치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핵 개발과 관련된 이란의 유력 인사들을 암살하거나, 우라늄 농축 시설을 마비시켰습니다. 이란이 왜 이스라엘을 공격한 거야? 이란은 이번 공격이 이스라엘의 시리아 내 이란 영사관을 공격에 대한 보복이라고 밝혔습니다. ✅ 4월 1일, 이스라엘의 영사관 폭격 이스라엘은 영사관 폭격에서 이란 혁명수비대의 고위 지휘관 자헤디 준장을 노렸습니다. 자헤디 준장은 이스라엘이 하마스보다 더 경계하는 레바논의 반이스라엘 무장 단체 ‘헤즈볼라’와의 협력을 담당해왔습니다. 이 공격으로 자헤디 준장을 포함해 총 13명이 사망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영사관이 사실상 민간인 건물로 위장한 이슬람 혁명군의 군사용 건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 4월 13일, 이란의 보복 공습 이란의 드론·미사일 공습은 5시간 가량 이어졌습니다. 공습은 결과적으로 실패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미국·영국·요르단군과의 합동 요격으로 99%의 미사일을 파괴했다고 밝혔습니다. 작년 하마스의 로켓포 공습에 속수무책으로 뚫렸던 것과 달리, 이스라엘의 ‘아이언돔’이 이란의 공습을 성공적으로 막아낸 겁니다. 지난 하마스 공습과 달리 이스라엘이 대응할 시간이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하마스의 공습이 이스라엘과 인접한 곳에서 이뤄진 것과 달리 이란의 공습은 1,000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이뤄졌습니다. 다만 아이언돔의 비용적 한계는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미사일을 요격하는 데 약 1조 4천억에 달하는 비용을 지출했습니다. 하룻밤 새 연간 군 예산의 6.3% 가량을 썼습니다. 값싼 미사일의 대량 공습이 15차례 더 이어지면, 군 예산이 바닥날 수도 있다는 겁니다. ✅ 이란의 공습, 의도된 실패였나? 전문가들은 이란이 보복의 수위를 철저히 조절했다고 해석합니다. 체면을 차리기 위한 형식적인 보복에 그쳤다는 겁니다. 기습 공격을 펼친 하마스와 달리, 이란의 공격은 전날부터 주요 외신을 통해 예고됐습니다. 이번 공습이 사상자를 최소화하면서 볼거리를 극대화하기 위해 계획된 ‘끔찍한 불꽃놀이’라는 평가도 나옵니다. 이란은 이스라엘과의 전면전을 피합니다. 서방의 제재로 이란이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는 데다가, 대규모 충돌 시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할 것이 부담스러운 상황입니다. 이란은 이스라엘이 재보복을 하지 않으면 더 이상 공격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계속 내고 있습니다. 분쟁의 전개는 이스라엘의 대응에 달렸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 이스라엘, 보복할까 말까? 이스라엘도 딜레마에 빠져있습니다. 재보복 수위가 너무 약하면 이란의 담력을 키워 안보위협을 부풀릴 수 있습니다. 반면 재보복이 너무 강력하면 동맹국과의 관계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통화해 “이란에 대한 어떠한 반격도 반대한다”고 전달했습니다.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최대한 중동이 조용한 게 자신의 재선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네타냐후 총리 입장에선 이란과의 대규모 충돌이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란 공습 전 네타냐후 총리는 가자지구 전쟁 장기화로 정치적 위기에 몰려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선 총리 퇴진 시위가 연일 벌어지고 있습니다. 국내에선 개인 비리 혐의 수사가 진행 중이고, 국외에선 팔레스타인 피난민 밀집 지역 공격을 고수해 미국과 갈등하고 있었습니다. 이란과의 대규모 충돌이 발생한다면 현재 연정하고 있는 극우 세력과의 연대를 강화하고, 중도 보수층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전시 내각’이 유지되면 면책 특권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일각에선 네타냐후 총리가 이런 의도에서 이란 영사관 공격을 감행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일단은 미국의 만류를 받아들이는 모습입니다. 이스라엘 전시 내각은 전면전을 유발하지 않는 선에서 ‘고통스러운 보복’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는 영향을 미칠까? 이란 공습 이후, 휴전 협상에도 냉기가 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는 하마스가 “이란과의 긴장을 악용하고 있다”며 하마스가 제안한 협상안을 거부했습니다. 이란을 상대하느라 이스라엘의 전력이 분산되면 하마스에게 유리합니다. 반미·반이스라엘 진영의 핵심인 이란이 직접 이스라엘과 군사적으로 충돌하면, 하마스가 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하기에도 좋습니다. ✅ 세계 경제는 어떻게 될까? 이스라엘이 재보복에 나서 이란과 전면전이 벌어진다면 유가 급등과 물류망 마비가 예상됩니다. 이란은 세계 석유 생산량의 6분의 1이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수 있습니다. 세계 경제는 이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타격을 입었습니다. 세 번째 전쟁이 터진다면 경제 불안도 더욱 커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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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아이는 딸 하나예요?"라는 질문이 얼마나 잔인한 질문이 될 수도 있는지 처음 알게 됐습니다. 한 사람, 아니 한 가족의 이야기를 이렇게 읽으니 세월호가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난 수백개의 사건이었다는 말이 더 와닿습니다.

캠페인즈 열성 코멘터

사회적 참사에 돌아가신 분들뿐만 아니라 그 가족 또한 참사 이후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어 규정된다는 것을 여실히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연대는 함께 기억하는 것이며, 함께 의미화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좀더 적극적으로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예방과 대응의 제도화를 하고자 하는 운동과 정치를 만들어내는데 힘을 보태거나 지지하는 일일 것 같습니다.

살림과 제철, 손작업물, 고양이 그리고 그림책을 좋아합니다.

공공임대주택 아… 이사할때마다 알아보는데 너무 1인 주거형태의 정석을 본인들이 만들어놓고 짜여놓은 곳이 고맙게 들어와 살아라하는 것같더라구요. 그리고 결혼 하지 않은 커플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도무지 없구요. 그리고 예전에 우리의 주거 공간이 4인가구 남여부부와 아이 둘이 살 수 있는 형태의 집만 있어서 다야완 형태의 가족은 살기가 힘들다고..

또다시 삼성에서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네요..

정말 필요하고 소중한 뉴스네요, 자식을 팔아 돈벌이한다며 헛소리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야말로 자식을 돈으로 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유가족과 생존자분들이 겪은 2차 피해에 대한 보상과 국가차원의 제대로된 강경한 입장이 이제라도 필요해보여요.

기록가. 이것 저것 기록합니다.

팩트체커가 있어 안심입니다. 어째서 트라우마 입은 이들이 계산까지 한다는 발상을 할 수 있을까요. 어째서 다친 이들에게 이기적인 이들이라 낙인찍나요. 일으켜 세워주지 못할망정 조롱하는 자들이 정작 국가 폭력의 가담자요 가해자란 사실이 너무 슬프고 괴롭습니다.

우리나라 만큼 돈에 너무 집착하는 나라가 있나요?..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