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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2022.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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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철학 연구자. 일어/중국어 교육 및 번역. => 돈 되는 일은 다 함

[시맨틱에러 공식 포스터. 사진출처: 왓챠]

여러분은 BL이라는 장르를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BL은 Boy’s Love의 준말로 본래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남성 동성애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원래는 일본에서 시작된 장르로 1970년대에는 잡지의 이름을 따 ‘쥬네(JUNE)’라고 불렸고, 80년대 이후에는 ‘절정도 없고, 결말도 없고, 의미도 없음(야마나시, 오치나시, 이미나시)’이라는 의미의 ‘야오이(ヤオイ; ‘야한 오빠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라는 명칭으로 불리다가 90년대 이후부터는 BL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BL물의 확대로 인해 여성의 관점, 그리고 동성애자 당사자의 관점에서 이것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 나름 오랜 논의가 있어 왔습니다. BL물에 대한 다양한 관점 중에서 여러분은 무엇에 더 공감하셨나요?

조금 더 알아볼까요?

한국에서는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에 야오이, 혹은 여성향(‘여성 대상’이라는 의미의 일본어 죠세-무케女性向け의 한국식 읽기)이라는 이름으로 수입되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BL이라는 이름으로 저변을 확대해, 현재 대부분의 인터넷 만화 플랫폼에는 BL 카테고리가 존재할 정도입니다. 특히 최근에는 OTT 플랫폼인 왓챠를 통해 방영된 BL 드라마 <시멘틱에러>가 큰 인기를 끌면서 BL이 상당히 큰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도쿄대학 사회학과 명예교수 우에노 치즈코  “같은 성별의 신체를 가진 남자끼리는 ‘이질적이지만 대등한’ 관계성을 나타내고, 이를 향유하는 여성을 종속적인 젠더 구조로부터 해방시켜, 자신을 망상의 대상으로 치환하지 않고 망상할 수 있는 공간을 유지시켜주는 ‘안전장치’의 의미를 가진다”

칸사이대학 인권문제연구소 연구원 호리 아키코 “보고, 해석하는 것에 의해 새롭게 작품을 즐기는 방식이 개척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즐기는 여성이라고 하는 ‘망상의 공동체’가 형성된다”

김효진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탈BL’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비엘이 남자주인공만 등장하고 여성 캐릭터를 배제하는 남성중심적 서사라고 비판하고 있다”

만화가 겸 비평가 에노모토 나리코 “여성이 수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하는 배경에는 여성인 자신이 성적 욕망을 품는 것이나 성행위 그 자체에 대한 혐오감이 있고, 그로 인하여 여성으로서의 신체 그대로 성적인 망상에 빠지는 데에 저항을 느껴, 자신을 남성으로 대체할 필요성이 생긴다”

유라주 “야오이를 좋아한다고 해서 동성애자를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성애자의 자기기만 아닐까.”

퀴어 영화 연구자 김경태  “비이성애적인 창작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봐요.”


BL과 페미니즘(1) 기존의 젠더 규범으로부터 해방?

BL 혹은 야오이에 대한 논쟁은 상당히 오랜기간 페미니즘이라는 틀 안에서 이어져 왔습니다. BL은 남성의 동성애를 주제로 삼지만 소비자가 대체로 여성이라는 점, 그리고 상당히 ‘음지’에서 향유하는 문화라는 점, 동성애가 전면에 등장하지만 작품 안에서 다뤄지는 사랑의 모습이 이성애적이라는 점 등이 그 주제입니다. 왜 헤테로 여성이 게이 남성의 연애물을 즐기는가에 대해서는 BL이라는 장르가 이전부터 시작된 일본에서 상당한 논의가 진행되어 왔습니다. 

예를 들면, 도쿄대학 사회학과 명예교수우에노 치즈코(上野千鶴子)는 “같은 성별의 신체를 가진 남자끼리는 ‘이질적이지만 대등한’ 관계성을 나타내고, 이를 향유하는 여성을 종속적인 젠더 구조로부터 해방시켜, 자신을 망상의 대상으로 치환하지 않고 망상할 수 있는 공간을 유지시켜주는 ‘안전장치’의 의미를 가진다”라고 설명하고, “임신출산과 관계가 없으므로, 여성을 강제적인 모성 젠더 규범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역할을 다하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우에노 치즈코上野千鶴子, 『발정장치 - 에로스의 시나리오(発情装置―エロスのシナリオ)』, 筑摩書房, 2002).

칸사이대학 인권문제연구소 연구원호리 아키코(堀あきこ)는 “모든 남성의 관계성을 동성애적 친밀관계로 바꿔 읽는다고 하는 2차 창작의 문맥”에 방점을 두고 “보고, 해석하는 것에 의해 새롭게 작품을 즐기는 방식이 개척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즐기는 여성이라고 하는 ‘망상의 공동체’가 형성된다”고도 이야기합니다(호리 아키코堀あきこ, 『욕망의 코드: 만화로 보는 섹슈얼리티의 남녀차(欲望のコード : マンガにみるセクシュアリティの男女差)』, 臨川書店, 2009).


BL과 페미니즘(2) 기존 젠더 규범의 답습?

BL물이 보여주는 연애의 모습은 종래 젠더 규범을 강화하고 재생산 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BL물의 공-수 관계가 ‘성기의 삽입’을 기준으로 한다는 점이 자주 지적됩니다.

김효진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탈BL’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비엘이 남자주인공만 등장하고 여성 캐릭터를 배제하는 남성중심적 서사”라고 비판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또 “남-남 주인공의 관계도 남녀의 섹스처럼 ‘삽입권력’을 가진 이가 성적으로 우위에 서는 재현구도”를 만들며, 이는 곧 “‘남성-강자-공’이 우위에 서고 ‘여성-약자-수’가 아래 위계를 점하는 식으로 현실 남녀의 권력관계를 반영하고 강화한다”는 점에서 BL 장르를 남성 숭배적이고 여성을 타자화하는 장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한겨레.2019.05.17.). 

일본의 만화가 겸 비평가인 에노모토 나리코(榎本ナリコ)는 BL물을 소비하는 여성이 여성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수’ 캐릭터에 감정 이입을 하는 경우에 대해, 그로 인한 자기안정성이 확보된다고 생각합니다. 즉, “자기 신체의 대체재로서 수라는 남성 태릭터의 신체를 이용하는 것을 통해, 자기 자신은 상처받지 않으면서 임신할 위험도 없는 안정성을 손에” 넣고, 이를 통해 성행위를 즐길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에노모토는 또 “여성이 수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하는 배경에는 여성인 자신이 성적 욕망을 품는 것이나 성행위 그 자체에 대한 혐오감이 있고, 그로 인하여 여성으로서의 신체 그대로 성적인 망상에 빠지는 데에 저항을 느껴, 자신을 남성으로 대체할 필요성이 생긴다”라고 설명하며, “여성이 배제되어 있는 야오이/BL의 세계에서는 현실에서 여성이 자기도 모르게 늘 느끼는 ‘여성혐오’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라고도 설명합니다. (노비 노비타 野火ノビタ, 『어른은 판단해줄 수 없다 - 노비 노비타 비평집성(大人は判ってくれない―野火ノビタ批評集成)』日本評論社, 2003)

이 이외에도 일본에는 야오이/BL를 바라보는 여성주의적 관점은 매우 다양합니다. 기존 성역할의 전복에서 오는 쾌감 혹은 재미 때문에 인기를 얻는 것이라는 주장(오오타니 마리小谷真理, 『여성상 무의식 테크노 가이네시스 -여성SF론 서설(女性状無意識 テクノガイネーシス ― 女性SF論序説)』勁草書房, 1994), BL 문화의 향유를 통해 남성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여성혐오(미소지니)/동성애혐오(호모포빅)와 거리를 둔 여성의 호모소셜을 형성하는 효과가 있다는 주장(아즈마 소노코東園子, 「망상의 공동체- ‘야오이’ 커뮤니티에서의 연애 코드 기능(妄想の共同体――「やおい」コミュニティにおける恋愛コードの機能)」『사상지도(思想地図)〈vol.5〉特集・社会の批評』), 이성애의 실패로부터 회피하기 위한 소비라는 주장(미야다이 신지宮台真司, 『중학생으로부터의 사랑 수업(中学生からの愛の授業)』コアマガジン、2010年) 등이 존재합니다. 또, 다양하게 분석을 내리는 것 자체에 대해 불쾌감이나 저항감을 가지는 BL 소비자들의 목소리도 존재합니다. 


BL과 게이

BL이 남성 동성애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게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BL에서 다루어지는 사랑의 모습이 현실과 거리가 있고 판타지적인 캐릭터 조형이 등장한다는 점으로 인해 게이 당사자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초래한다는 비판은 오래전부터 존재했습니다. 2005년 여성신문에 실린 유라주라는 필명의 글쓴이는 “야오이는 남자인 동성간의 섹스를 다루는 이야기지 동성애자인 게이의 현실을 다루는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야오이의 연장선상에서 동성애를 이해한다는 것은 환상에 기인한 것인 만큼 비록 호의적이라고 해도 올바르게 이해한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위험한 이해이기까지 하다.”, “야오이를 좋아한다고 해서 동성애자를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성애자의 자기기만 아닐까.”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여성신문.2005.05.12.).

한편, 퀴어 영화 연구자 김경태 씨는 “정말 사실적으로 섹스를 재현하자면 그냥 포르노를 보면 되죠. 그런 거는 창작의 상상력을 위축시키는 거예요.”라고 말하며, 서사를 위해 현실을 모두 반영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김 씨는 “현실과 똑같든 안 똑같든 간에, 이성애적이지 않은 거잖아요. 그런 것들이 많이 생산되는 건 좋은 거죠. 없는 것보다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죠. 담론이 많아야 그 안에서 새로운 얘기들이 나오니까요. 비이성애적인 창작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봐요.”라고 말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BL은 현실 속 게이와 다르다, 이미 그 인물 자체가 현실 속 게이가 아니기 때문에 현실 속 게이들이 처한 상황을 그대로 재현해낼 필요가 없다는 거죠. 기존의 현실 속 성차들이 제거되고, 최소한으로 등장하는 거잖아요. 두 명의 사람이, 성별에 부여되는 규범적인 역할들로부터 자유롭게 서로의 관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거니까. 그런 중성적인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다.2017.12.13.)


✏️BL물 어떻게 볼 것인가! 

우리 안으로 성큼 다가온 동성애!  BL물의 인기에 힘입어 앞으로 더 많은 BL 드라마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많이 예측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만화, 팬픽, 드라마, 영화 등등의 BL물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만약에 보셨다면 여러분은 어떤 느낌을 받으셨고,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물론 그냥 연애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작품을 감상하셨을 수도 있고, 동성애적인 사랑이 아니라 캐롤이 필요한 것이라는 모 평론가의 말처럼 동성애를 지워놓고 감상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감상과 성찰이 궁금합니다.

BL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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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BL과 현실의 동성애는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에도 예전부터 남성 아이돌을 주인공으로 한 로맨스 팬픽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둘 이상의 남성이 만드는 사랑 이야기가 왜 여성층의 주목을 받았는지, 젠더 규범을 허무는 과정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BL을 소비하면서 드는 감정, 유튜브 속 귀여운 강아지를 볼 때 드는 감정, 제우스와 토르가 싸우면 어떨까 하는 상상이 주는 감정... 등과는 얼마나 다르고 얼마나 같은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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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영 비회원

생각해봐야 하지만 한번에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네요... 그래도 이런 논의가 나왔다는 것 자체가 환영할만한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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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은 동성애의 탈을 쓰고 있지만 기존의 젠더규법을 답습하고 있습니다. BL과 현실의 동성애는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현실과 다르다고 해도 BL 등 동성애자를 다루는 미디어는 계속 생산될 필요가 있습니다. 고민돼요/ 잘 모르겠어요.

BL 콘텐츠 소비자로서 글을 관심있게 읽었습니다. 저도 생생이님처럼 여러 의견에 투표했는데요.

그동안 콘텐츠를 소비할 땐 동성애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스토리에 몰입해서 읽었기에 생각해보지 못했던 지점들이 많은 글인 것 같습니다. 

이성애뿐 아니라 동성애, 비이성애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생산되고 
논의될 필요성에 대해 동의하지만.. 젠더규범을 그대로 답습하는 콘텐츠들도 분명 존재하는 것 같아요. 콘텐츠 창작자 뿐 아니라 콘텐츠 소비자들도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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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투표네요. 어디에 투표할지 고민했습니다. 사회 맥락 속에서 BL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도록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마 전 팟캐스트에서 BL과 관련한 가볍지만 의미있는 얘기를 들은 게 떠올라 공유합니다. https://podbbang.page.link/eU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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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은 기존의 남성성을 뒤엎는 등 기존의 젠더규범을 허무는 효과가 있습니다. BL은 임신, 출산, 결혼 등으로부터 자유로운 판타지입니다. BL과 현실의 동성애는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현실과 다르다고 해도 BL 등 동성애자를 다루는 미디어는 계속 생산될 필요가 있습니다. 고민돼요/ 잘 모르겠어요.

제가 쉽게 말할 수 있는 주제는 아닐 것 같아, 공감 가는 안을 전부 투표해 보았습니다. BL의 존재 자체가 이성애만이 정상이라는 관점에 대한 안티테제일 것 같구요. 특히 결혼-임신-출산 등으로 이어지는 정상성의 서사와도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겠다 싶습니다. 기존의 젠더규범을 답습한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고 일부 납득은 되지만, 그렇다고 곧바로 새로운 무언가가 무에서 유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면 동성애 내에서의 이성애적 역할 수행이, 더 나아가 역할의 교차 수행이 그 다변화로 나아가는 한 과정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BL에서 그리는 내용들은 현실의 동성애와 분명히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과잉동일시 하면 안 될 것 같아요.(근데 이건 BL뿐만 아니라 어디든 적용될..) 그리고 BL 등 동성애는 자유롭게 더 다뤄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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