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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장애인콜택시 운전원’ 복지는 누가 책임지나
‘장애인콜택시 운전원’ 복지는 누가 책임지나 (2024-05-12) 이재혁(가명) | 교통약자 특별교통수단 운전원 장애인의 하차를 도와주고 있는 운전원. 한겨레 자료사진 나는 흔히 장애인콜택시라고 부르는, 교통약자 특별교통수단 운전원이다. 휠체어 탑승이 가능하도록 개조된 차량을 몰며, 몸이 불편한 노약자와 장애인 이용객의 이동을 돕는다. 교통약자 특별교통수단은 전국 시, 군, 구 모든 지역에서 365일 24시간 연중 휴일 없이 운영된다. 2022년 1월, 이 일을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마을버스 운전원으로 근무했다. 특별교통수단은 ‘운전’이라는 것을 빼면 마을버스와 많은 것이 달랐다. 우선 이용객이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깝고 안전한 장소에 정차한 뒤 승하차를 직접 도와야 한다. 휠체어 고정과 이용객의 안전벨트를 확인하고, “출발하겠습니다. 출발해도 괜찮을까요?” 다시 한번 확인한 뒤 출발한다. 동시에 미터기를 작동한다. 버스를 운행할 때는 해 보지 않은 일이다. ■ 서비스는 끝이 없다 광고 이용객이 호출하는 위치는 천차만별이다. 골목골목 차량이 들어갈 수 없는 곳, 어느 시장 장날에 꽉 막힌 도로 복판에서 부르고, 애초 콜센터에 접수된 목적지와 다른 곳으로 가자고도 한다. 종종 주정차를 할 수 없는 교차로나 횡단보도 인근, 정체되고 있는 도로에서 호출하기도 하는데, 안전을 우선으로 해야 하는 운행 원칙상 운전원들은 곤란을 겪는다. 이용객들이 자주 방문하는 ‘○’의원이 있다. 그 앞은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입구 가까운 곳은 늘 차량이 많고, 따라서 그곳에서 승하차를 하게 되면 사고 위험이 크고, 도로 지체·정체를 유발하게 돼 시민들에게 욕을 먹기 일쑤다. 지하 주차장이 있긴 하지만 공간이 협소해 덩치가 큰 특별교통수단 차량은 돌아 나올 수가 없다. 그래서 조금 더 안전한 곳에서 승하차하겠다고 양해를 구하면 열이면 아홉이 이렇게 말한다. “당신만 이상하게 왜 그러냐고. 다른 기사들은 다 해준다고.” 얼마 전 신입 운전원이 그 건물 주차장에 들어갔다가 결국 접촉사고를 내 차량 수리비 일부를 부담해야 했다. ■ 감정노동은 덤이다 광고 광고 몸이 힘든 것은 그나마 낫다. 이 일을 하다 보면 시작할 때 가졌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보람이 하루하루 깎여 나가게 된다. 이용객의 요구는 다양하다. 대형 자명종 시계를 싣고 가 달라, 고구마·감자 박스를 실어 달라, 장을 봤으니 장바구니를 좀 실어라, 가는 길에 친구를 태워서 가자, 은행에 들러 가자, 편의점에서 물 좀 사서 가자, 목적지가 지하에 있으니 좀 업어다 달라 등등…. 어디까지 운전원이 해야 하는 서비스인 걸까. 비나 눈이 내리거나, 휠체어 탑승이 끝난 뒤에는 차량 내부를 바로바로 청소해야 하고, 물, 커피, 음료 등을 쏟거나 여기저기 쓰레기를 두고 내려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아야 한다. 이렇게 하루하루 쌓인 감정들은 고스란히 운전원들의 정신건강에 영향을 끼친다. 근무한 지 1년이 넘어가면 많은 운전원이 감정노동으로 인한 우울증, 번아웃, 수면 장애 등을 겪는다. 나 또한 근무 3년차가 되면서 소화기 계통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지난달 3년 근무 끝에 사직서를 제출한 동료를 만나서 퇴사 이유를 물었더니 그가 말했다. “나도 살아야지. 더는 참는 것이 힘들다.” ■ 아무도 모르는 열악한 처우 광고 특별교통수단 이용객은 해마다 는다. 운전원 1명이 감당해야 할 이용객 수도 점점 늘고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상시로 주행 중에 배차가 이루어진다. ‘주행 중 배차’는 여러 문제를 야기시킨다. 우선 배차 알림이 내비게이션 화면을 정지시키기 때문에 운행 중에 기기 조작을 할 수밖에 없는데, 당연히 사고의 위험 요인이 된다. 또 운전원들에게는 업무 독촉과 다름없다. 배차 호출이 뜨면 이용객의 대기시간을 줄이기 위해 한시라도 더 빨리 고객 이동과 하차 지원을 하고, 차량을 이동해야 한다. 서두르다 보면 휠체어 리프트에 손이 끼이거나 베여서 다치기도 하고, 겨울철에는 미끄러지기도 한다. 호출이 쏟아질 때면 중간 휴게시간 챙길 여유마저 없다. 혼잡한 도로 위에서 하는 일이라 화장실 이용도 쉽지 않을뿐더러 화장실 가느라 늦어지면 항의와 민원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비뇨기계 질환도 직업병이 됐다.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 2005년 1월27일 공포되고, 2006년 1월28일부터 시행되었다고 한다. 이후 교통약자의 이동권 확대와 권리 증진을 위해 법안은 꾸준히 개정·시행되어 왔다. 그러는 동안 운전원 처우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없다. 교통약자들을 위한 복지 혜택인 특별교통수단 운전원으로 일하면서 생각해본다. 나의 복지는 누가 책임지고 있나.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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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나는 지역에서 혁명을 꿈꾼다
나는 지역에서 혁명을 꿈꾼다 (2024-04-28) 조혁민 | 두루미책방 대표 지난달 22~23일 열린 ‘국제회관 디아이티(DIT·Do It Together) 워크숍’에서 지역민들과 함께 새로 이사한 국제회관 공간에 들어갈 책장을 만들었다. 필자 제공 2008년 12월 말, 나는 이웃으로부터 폐기물처리장에 있는 재활용선별장에서 함께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하루 8시간 주 6일 근무에 급여는 120만원. 2009년 1월2일 첫 출근을 했다. 컨베이어 벨트로 지나가는 재활용 폐기물 가운데, 정해진 재활용품을 분류하는 작업이었다. 나는 캔을 선별해내는 일을 맡았다. 충남의 제일 끝자락 금산은 인구 5만의 작은 지역이다. 공기가 맑고, 별이 잘 보이는 이곳에 사는 청년은 농사가 아닌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지역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아버지 서재에 꽂혀 있던 ‘체 게바라 평전’(실천문학사, 2005)을 읽으며 혁명가를 꿈꾸었다. 혁명적인 삶, 대안적인 삶을 모색하기 위해 모부님과 나는 대안학교를 찾았다. 그러다 금산간디학교 고등과정 비인가 대안학교를 알게 되었다. 형과 나는 차례로 학교에 입학했다. 새로운 지역에서 새로운 학교에 다니며 사랑과 자발성을 기반으로 한 여러 종류의 공동체 실험을 경험했다. 일주일에 한번 학교 구성원들과의 전체회의로 약속과 규칙을 결정하고 소외된 의견을 다시금 상기시키며 다양한 시선과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내 삶의 혁명을 시작했다. 광고 내가 바라본 금산은 도시만큼이나 다양한 사람과 가치가 충돌하는 곳이었다. 이주민들, 특히 비인가 대안학교 졸업생에 대한 지역민들의 시선은 차가웠다. 늘 곧 떠날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달렸다. 그런데도 나는 금산이라는 지역에서 문화 활동을 계속했다. 친구들과 함께 글을 쓰고 공부했으며 연극, 버스킹, 축제와 같은 문화 행사를 기획하며 삶을 꾸려갔다. 하지만 주변의 여러 청년은 밥벌이 때문에 지역을 떠나야 했다. 지역에서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밥벌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18년 12월, 졸업생 청년들과 간디학교 선생님이 모여 청년문화예술협동조합 들락날락(들락날락협동조합)을 세웠다. 들락날락협동조합을 세우고 처음 맡은 일은 축제 기획이었다. 금빛시장 상인들과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지역 축제 ‘금산월장’을 열었다. 이를 통해 많은 주민을 만나게 됐다. 상인들과 매주 회의를 했고, 축제 참여자들에게 설문해 문제점을 고쳐나갔다. 축제가 매회 진행될수록 우리를 바라보던 지역민의 시선은 불신에서 믿음으로 변해갔다. 활동은 더욱 활발해졌으며 문화예술 활동을 하며 먹고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지역에서의 정주를 상상했다. 우리는 금산 지역민이 되어가고 있었다. 광고 광고 금산은 각종 인프라가 현저히 부족하다. 나와 또래 청년들이 누리고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다. 머무를 수 있는 공간도 충분치 않다. 우리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직접 만들어가고 있다. 그중 하나가 금산 청년들의 아지트가 된 두루미책방이다. 책방에서는 우리가 원하고 지역민이 원하는 프로그램이 열린다. 다수가 원하는 프로그램만이 아니라 소수가 원하더라도 지역과 우리에게 필요한 프로그램을 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지역에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청년과 청소년의 욕구를 반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광고 서울을 중심으로 이야기되는 장애인들의 이동권 이야기, 시와 소설을 읽는 낭독회, 주로 대도시에서 열리는 음악 공연,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과 철학 강의, 여성의 이야기와 여성의 글쓰기, 지역에서 쉼을 얻어 갈 수 있는 북스테이 프로그램 등 사람을 모으고, 그들을 잇고, 엮어내는 활동을 진행 중이다. 지역에서 산다고 해서 문화적 욕구가 없는 게 아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문화예술을 찾아 나선다. 도시에 가서 강연을 듣고 콘서트를 다닌다. 당연히 수도권 사람들보다 더 큰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이것이 반복되면 지역 삶의 지속가능성을 점점 잃게 된다. 그렇기에 작은 지역에서의 문화예술 활동이 중요하며 나와 같은 문화예술가들의 밥벌이 실험은 큰 의미가 된다. 코로나로 잠시 읍 단위 거점이 아닌 면 단위 거점으로 활동을 진행해오다 올해 다시 새로운 실험을 위해 금빛시장에 있는 낡은 건물인 국제회관으로 이사했다. 이곳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새로운 실험을 진행하며 지역에서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우리가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부딪히는 여러 가치를 받아들이고, 때론 싸우며 우리가 만들어가는 지역을 상상한다. 이 실험의 끝은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계속해서 공동체를 만들고 유지하며 더 다양한 가치들을 지역에 정착시키려 한다. 더 많은 청년이 지역에서의 삶을 실험하고 자신의 욕구를 실현해나갈 기회의 장을 만들어가고 싶다. 우리의 실험은 우리의 삶을 넘어 사회와 지역의 혁명이 될 것이다. 나는 지역에서 혁명을 꿈꾼다.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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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재활용품에 반려동물 사체, 주삿바늘…우리 노동은 쓰레기 아니다
재활용품에 반려동물 사체, 주삿바늘…우리 노동은 쓰레기 아니다 (2024-04-22) 익명 | 재활용선별노동자 2021년 2월 서울의 한 재활용 선별시설에서 직원들이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8년 12월 말, 나는 이웃으로부터 폐기물처리장에 있는 재활용선별장에서 함께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하루 8시간 주 6일 근무에 급여는 120만원. 2009년 1월2일 첫 출근을 했다. 컨베이어 벨트로 지나가는 재활용 폐기물 가운데, 정해진 재활용품을 분류하는 작업이었다. 나는 캔을 선별해내는 일을 맡았다. 손 씻을 수도시설이 없다고 했다 첫날 긴장한 채로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손을 씻어야 해 세면장이 어디에 있냐고 물었는데, 수도 시설이 없다고 했다. 화장실도 재래식 하나뿐이었다. 게다가 점심 식사 후에는 따로 앉아 쉴 곳이 없어서 하는 수 없이 내 차에서 점심시간을 보내야 했다. 난감했지만, 차츰 개선되겠지, 생각했다. 그땐 몰랐다. 이런 상황이 1년이 지나도 변함없으리란 것을. 오후 1시, 다시 작업이 시작됐다. 그때부터 6시 퇴근까지는 잠시 쉴 틈도 없이 일해야 했다. 중간에 화장실 갈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광고 한자리에서 서서 쉴 틈 없이 일해야 하는 선별작업은 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선별할 물건을 놓친다. 온종일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그것보다 더 힘든 건, 생각지도 못한 온갖 생활 쓰레기들을 직접 만져가며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섞여 들어오는 각종 음식물 쓰레기에 반려동물 사체, 깨진 유리병, 심지어는 피 묻은 의료용 거즈나 주삿바늘까지 일일이 손으로 만져가며 일한다. 자주 다치고, 무릎이나 어깨 등 근골격계 질환 한두 가지 생기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 됐다. 시간이 가고 일이 익숙해질 즈음 여름이 왔다.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벌레가 들끓기 시작하고 악취가 심해졌다. 그것도 익숙해지는 것 외에 별도리가 없었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선별작업 노동자 2명이 해고되었다. 한 사람은 재활용품을 집에 갖고 간다고, 또 한 사람은 유언비어를 유포해서라고 했다. 작업자들은 이제 해고의 두려움까지 생겼다. 광고 광고 문자로 받은 해고 통보 그해 12월이 되자 재계약이란 말이 나왔다. 그동안 별 탈 없이 일해왔던 나는 당연히 재계약이 될 줄 알았다. 12월31일 퇴근 시간이 되자 회사 대표가 말했다. 재계약 여부는 개인 휴대전화 문자로 알려줄 것이라고. 퇴근 후 ‘재계약 불가’라는 통보 문자를 받았다. 영문도 모르고 해고된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2010년 1월2일, 회사로 쫓아가 재계약이 안 된 이유를 물었고, 대표는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알고 있는 막연한 지식으로 회사 측이 사전 통보 없이 해고했으니 3개월치 급여를 내놓으라고 했다. 대표는 정당한 계약 해지여서 그럴 의무가 없다고 했다. 허탈하고 분한 마음에 시청과 고용노동청을 찾았지만, 돌아온 대답은 회사 측과 같았다. 정당한 계약 해지란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이고, 누구를 위한 고용노동청이란 말인가. 광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를 보던 남편이 노동조합에 문의해 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노동조합에 가 보니 나와 같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당장 노동조합에 가입했고 함께 해고된 동료 4명과 함께 복직 투쟁을 했다. 그렇게 75일간의 투쟁 끝에 우리는 2010년 3월25일 복직 통보를 받았다. 해고 뒤 약 3개월 만이었다. 복직하고 보니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수도도 놓여 있고, 비록 비닐하우스지만 휴게실도 생겼다. 이후 여러 명이 노조에 가입했고, 조합원이 늘면서 단체교섭도 시작했다. 휴식 시간과 휴가도 확보했다.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한 투쟁 2015년 재활용 선별시설에 새 공장이 세워졌다. 자동화 시스템을 갖춘 곳이라고 했다. 자동화라고 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 손이 닿지 않을 순 없다. 이 시스템이 원활히 돌아가도록 선작업과 후작업은 사람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동화라는 말이 그 노동의 가치를 깎아내려 버렸고, 매번 바뀌는 새로운 업체들은 우리 임금을 깎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투쟁과 복직의 연속, 그 투쟁들은 더 나은 조건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 나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생존의 마지노선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다. 지금도 재활용선별장에서 일한다. 이 일을 시작한 지도 어언 15년이 지났다.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도 높아졌다. 변하지 않은 건 재활용 선별작업 노동자에 대한 인식이다. 우리의 노동으로 선별된 재활용 쓰레기는 가치 있는 무언가로 다시 태어나지만, 우리의 노동은 여전히 매립장에 쓰레기들과 함께 매몰되고 있을 뿐이다.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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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정부가 허락한 병원 노예, 간호조무사 실습생
정부가 허락한 병원 노예, 간호조무사 실습생 (2023-10-16) 임정은 | 간호조무사·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특성화고노동조합 운영위원 지난 8월30일 국회 소통관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이 간호조무사 실습생 최저임금 청구 소송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 제공 저는 2022년 9월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취득해 10개월째 정형외과 병동에서 일하고 있는 간호조무사입니다. 간호조무사가 되기 위해서는 740시간 이론수업과 780시간 의료기관 실습을 거쳐 시험을 보고 합격해야 합니다. 환자의 생명, 건강과 관련된 일을 하는 만큼 이런 과정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780시간 실습이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이 아니라, 온갖 잡일과 허드렛일, 심부름 등으로 채워진다는 점입니다. 병원의 부족한 인력을 메꾸는 일을 하는데 ‘실습’이란 이유로 임금도, 노동법의 보호도 받지 못합니다. 광고 저는 정형외과 병원에서 약 5개월 동안 실습했습니다. 주로 환자 대기실 의자 청소, 진료실 문 열어주기, 환자 혈압 및 체온 재기, 원무과로 환자 안내 등 단순 업무를 했습니다. 그러다 실습생 관리 담당자인 간호부장이 갑자기 자기공명영상(MRI) 부서에서 실습하라고 하더군요. 그곳에서 환자들 자기공명영상 검사 안내를 했는데, 한달 뒤 신규 직원이 채용되더니 제 업무를 하더군요. 저는 또 다른 부서로 옮겨졌고요. 자기공명영상 부서 직원을 구할 때까지 임시방편으로 간호조무사 실습생에게 업무를 맡겼던 것입니다. 제가 운이 없었던 걸까요? 아닙니다. 실습생 대부분 단순 허드렛일로 시간을 보내는데, 심지어 빨래, 직원 커피나 우체국 심부름, 병원 에어컨 청소를 하며 시간을 채우기도 합니다. 일부 병원은 간호조무사 학원에 연락해 ‘우리 병원에 실습생 보내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답니다. 광고 광고 지난해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에서 간호조무사 실습생 603명을 대상으로 병원실습 실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단순하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업무가 주요 실습 내용에 있는지 묻는 말에 71.3%가 ‘그렇다’라고 응답했습니다. 부당한 업무로는 잡무, 허드렛일이 71.9%로 가장 많았고, 병원 직원 개인 심부름(49.1%), 청소(41.2%)가 뒤를 이었습니다. 병원 특성상 감염 등 산업재해를 당할 우려가 크지만, 간호조무사 실습생은 노동자가 아니기에 다쳐도 산재 적용을 받지 못합니다. 환자 혈당을 체크하다가 주삿바늘에 찔려도 개인 돈으로 검사를 진행하라고 하거나 방역 마스크 하나 던져주고 감염병실에서 혈압을 재라고 시켰던 사례도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실습생이 결핵에 걸리거나 감염돼도 병원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광고 보건복지부의 방관 아래 병원들이 간호조무사 실습 제도를 통해 인력난을 해결하는 사이 실습생은 그저 혼자 버티는 수밖에 없습니다. 매년 간호조무사 시험에 응시하는 이는 약 4만명에 이릅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정도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렇듯 무임금으로 노동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8월 말, 실습병원 병원장을 상대로 임금청구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임금청구는 저의 780시간 노동에 대한 정당한 권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대법원은 근로자성 여부를 형식이 아니라 실질에 비추어 종속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고 합니다. 형식은 ‘자격 취득을 위한 실습’이지만, 실제로 병원에서 지시하는 노동을 했다면 노동자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2016년 고용노동부는 실습생, 수습생, 수련생 등이 교육 없이 단순 노동력으로 활용되는 문제를 막기 위해 ‘일경험 수련생에 대한 법적 지위 판단과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했습니다. 이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직무교육 프로그램 없이 업무상 필요에 따라 수시로 업무를 지시하는 등의 방식으로 일경험 수련생의 노동력을 활용하는 경우’, ‘교육·훈련 내용이 지나치게 단순·반복적이어서 처음부터 노동력의 활용에 그 주된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경우’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수련생이 사실상 근로를 제공한다면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 근로자로 볼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 기준에 따르면, 간호조무사 실습생은 노동자로 인정돼야 합니다. 저의 소송이 간호조무사 실습생들의 권리와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첫 시작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소송으로 다른 간호조무사 실습생분들도 용기와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간호조무사 실습생 노동착취 문제가 알려지고,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지급되기를, 실습생의 노동 사각지대가 없어지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간호조무사 실습생은 정부가 허락한 병원의 노예가 아닙니다.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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