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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중된 자들이 만든 광장, 새 민주주의로 향할까 🕯️
꺼진뉴스 다시보자 vol. 20 이번 호는 2024년 폴라리스 레터의 마지막 호입니다. 꺼뉴다보 20호에서 소개하는 모든 기사들은 12.3 내란 사태를 다룹니다. 연말이 연말 같지 않고, 연초가 연초 같지 않습니다. 내란이 철저히 준비된 과정과 그 엄중성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으며, 사태를 무마하기 위한 시도들에 대응하고 새로운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무기한의 과제를 맞게 되었습니다. 2024년과 2025년에 걸친 이 겨울은 참 이상야릇한 미완의 시간으로 남을 듯합니다. 과제의 무게와 장기성을 고려하여, 읽기와 리터러시의 필요를 놓치지 않으며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이와 같은 취지에서 12.3 내란 사태의 타임라인을 잘 정리한 두 링크를 꺼뉴다보 20호와 함께 공유합니다. 한겨레가 정리한 12.3 내란 모의, 집행 타임라인과 독립언론네트워크가 아카이브하고 있는 12.3 내란 사태 이후 정국 전개입니다. 뉴스 외에는 그 좋아하던 것들조차도 보지 않게 되었다는 지금과 앞으로에 도움이 될 기록들입니다. 마지막으로 제주항공 7C2216편 사고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를 표하며, 부상자들의 회복과 명백한 진상규명 및 수습을 기원합니다. 1. 사건과 구조: ‘극우 유튜버’처럼…왜 대통령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사로잡혔을까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2월 12일 담화에서 비상계엄을 결심하게 된 배경 중 하나로 선관위에 대한 국정원의 보안 점검을 꼽았다. 극우 유튜버의 부정선거 음모론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재료를 대통령도 언급했다. 그러나 이는 부정선거 음모론을 뒷받침하는 근거라기보다 부정선거 음모론이 확산하는 데 권력의 의지가 투영된 흔적에 가깝다.✍🏻 이효상 기자, <경향신문> 12월 12일 대국민 담화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보여준 극우 유튜브에 심취한 노인과 같은 모습에 충격을 받으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당일 담화에서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 명분으로 선거관리위원회 해킹, 시스템 부실 의혹을 골자로 하는 부정선거 음모론을 높은 비중을 할애하여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경향신문>의 기사는 부정선거를 증명하고자 대통령실과 국정원이 선거관리위원회에 가해온 외압과 부정선거 음모론의 불가능성을 소상하게 밝힙니다. 윤 대통령은 음모론에 빠져 사리분별을 못하는, 그런 불쌍한 사람이 아닙니다. 국가기관, 여당, 극우 유튜버와 사업자들과 조직적으로 음모론을 생산하고 관철하려 시도한 핵심 이해관계자입니다. 계엄 시도 무산 후에도 ‘계엄 당일 민주당 지지자들에 막혀 국회 출입을 못했다’는 나경원 의원, 남태령 트랙터 시위에 대해 ‘폭력적 난동으로 몽둥이가 답’이라 한 윤상현 의원의 발언과 같이 내란을 무마하기 위한 여론공작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가짜뉴스와 선동에 대해 촉각을 세우는 동시에, 망가진 언론 지형과 자유를 되살리기 위해 필요한 노력들에 대한 논의도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와 같은 취지에서 경향신문의 기사와 곁들여 윤 대통령과 여당, 극우 유튜버들의 음모론과 여론 장악 시도에 대한 몇가지 읽을거리들을 함께 부칩니다. 한겨레21은 윤석열 대통령의 12.12 담화 내용과 극우 유튜버 방송의 유사성을 중심으로 한 윤 정권의 극우 유튜버 의존 및 공생 관계를 다룹니다. 뉴스타파는 윤 대통령의 후보자 시절부터 지금까지 부정선거 음모론 생산과 여론 공작에 관여하고 있는 조직의 실체와, 여당 유력 정치인들의 관여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5개 언론사가 합작한 언론장악 카르텔 추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명박-박근혜 시절 불법 지원으로 성장한 보수단체가 윤 정권의 여론 공세에 함께하고 있음을 밝힌 한겨레의 보도도 함께 읽어보세요. 뉴스 보러 가기 🔥 2. 오피니언: 87년 체제 너머 저 낮은 곳, 응답하라 정치야 2024년 윤석열 탄핵집회의 양상은 비슷하되 다르다. 무엇보다 구성원이 달라졌다. 민주화 투쟁을 경험한 기성세대의 참여는 여전했지만, 이번에는 촛불 대신 아이돌 응원봉을 든 젊은이가, 여성이 시위대의 다수를 차지했다. 성소수자의 깃발이 곳곳에서 나부꼈고 장애인도, 외국인도 드물지 않았다. 수많은 비정규직, 불안정 노동자가 함께했으리라. 중산층 시민이라는 범주로는 포괄되지 않는 이들, 87년 체제가 제대로 대변하지 않는 이들이다. 삶의 위기가 이들을 광장으로 불러냈다. 정치가 응답할 차례다.✍🏻 조형근 사회학자, <한겨레21> 지난 12월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불과 11일 전 내란 사태로 위기에 처했던 한국의 민주주의는 시민의 힘으로 회복하여 세계의 주목을 받았으나 윤석열의 수사 불참석, 국민의힘의 미온적 대응 등 풀어야 할 과제는 많습니다. 한겨레21 칼럼은 2024년 윤석열 탄핵집회의 구성원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저자는 “삶의 위기가 이들을 불러냈다고” 말하며, 촛불시위의 계보를 설명하기 위해 1987년 체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87년 체제는 군부독재에 맞선 6월 항쟁의 승리로 만들어졌지만, 당시 민중과 재야 (민중운동, 시민사회)를 배제한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기도 했습니다. 대통령 직선제, 5년 단임제, 소선거구제를 골자로 하는 제도는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데 기여했지만, 동시에 불평등 구조를 고착화하고 양당 독점 정치로 이어졌습니다. 형식적 민주주의는 진전됐지만, 경제적 불평등과 정치적 배제는 해결되지 못한 채 이어져 왔습니다. 칼럼은 87년 체제가 이런 한계를 안고 반복되는 정치적 위기와 국민적 실망 속에서 그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번 탄핵과 광장의 목소리는 그 연장선에 있다고 말합니다. 기존의 체제가 대변하지 못했던 젊은 세대, 소수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광장으로 나섰고, 그들은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닌 근본적인 체제 전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탄핵 이후 올 민주주의는 더 포용적이고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야 할테지요. 개헌 논의와 정치개혁, 그리고 배제된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낼 체제 구축이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87년 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도래하길 바라면서, 칼럼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뉴스 보러 가기 🔥 3. 인터뷰: 장혜영·박지현 “2030 여성 새로운 정치 만들어갈 주체… ‘나중에’ 정치 멈춰라” "20대 남성들이 왜 계엄 사태에도 불구하고 광장에 나오지 않았는가는 기본적인 민주시민으로서의 소양을 갖추는 데 실패한 것이다. 또, 반대로 2030 여성들이 많이 나왔으니까 여성들이 훌륭하다는 방식의 이야기는 여성을 대상화하는 것이다. 그 평가의 주체는 20대 여성 자신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권력층이 그때그때 자기의 입맛에 맞게 어떤 때는 20대 여성을 칭찬하고, 어떤 때는 20대 남성을 호명하면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윤석열 탄핵이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윤석열 탄핵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회복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신다인 기자, <여성신문> ‘여성들이 정말 많이 나왔네’ 탄핵소추안 가결 촉구를 위한 집회가 이어지던 12월 초엔 어렴풋한 짐작이었습니다. 집회가 거듭되며 짐작은 데이터로 증명됐습니다. 2030 여성은 민주주의를 이끌어가는 주체로 우뚝 섰습니다. 추운 겨울 여성들은 망설임 없이 광장으로 나섰고, 약자와 연대했습니다. 매번 여성을 지우고 외면해 왔던 정치권도 2030 여성을 호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안과 의심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면, 과연 차기 대선에서 정치권이 광장을 지켰던 여성들의 모습을 기억할 것인가 의문이 남습니다. 단순히 청년 여성들이 집회에 많이 나왔다는 사실보다 여성들의 정치적 에너지가 무엇을 성취할 것인지 주목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여성신문은 두 청년 여성정치인에게 정치권이 2030여성이 새로운 정치적 주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는지 물었습니다. 장혜영 전 정의당 국회의원과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입니다. 이들은 정치권이 젊은 여성들을 기특해하는 것을 넘어 어떻게 여성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지를 말합니다. 2030 여성이 여느 때보다 주목받는 현 상황에 대한 해석과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지점을 충실히 담아냈습니다. ‘응원봉을 쥔 손이 의사봉을 쥘 수 있게‘ 하려면 어떤 구조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지 짚은 2편까지 이어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뉴스 보러 가기 🔥 에디터가 남긴 편지 매번 연말은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가지만, 올해의 12월은 정말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12월 3일 이후 우리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환호합니다. 여느 때보다 뉴스에 집중하고, 주말엔 방한용품으로 무장한 채 광장으로 나섭니다. 가만히 있어도 피로가 몇 배로 누적되는 요즘 무엇보다 힘이 되는 건 시민 간의 연대입니다. 폴라리스에도 그런 따뜻한 마음을 전달해 주신 독자분들이 계시는데요. 이번 에디터 레터에서는 이슈 딥다이브 9호 <이주노동자는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가?>를 읽은 한 독자분이 남겨주신 글을 공유해 드리려 합니다. 정성스러운 피드백을 남겨주신 모든 분께 감사를 표합니다. 따뜻한 연말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2024.12.30. 에디터 모래🏖️ 드림 만든 사람들: 푸릇 🌿, 산호 🐠, 모래 🏖️ 지난 토요일 탄핵 찬성 집회를 마무리하고 돌아가던 중, 같은 시간에 광화문에서 열린 탄핵 반대 집회에서 참여자 수 과대추산을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한 것 같다는 말이 SNS에 돌았었습니다. 동남아계로 추정되는 외국인들이 목에 탄핵 반대 팻말을 걸고 인파 속에 있는 사진과 함께요. 당연히 가짜뉴스(e.g., 사진 자체가 조작되었거나, 자발적으로 시위에 나왔을 경우 등)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지만, 이주노동자들이 평소에 처한 삶을 생각하면 이런 단기 알바가 제법 매력적일 수 있겠단 생각도 들었습니다. 돈도 주고, 기술이 필요하지도 않고, 주말에 진행되며, 위험하지도 않으니까요. 전에 어떤 책에서 '우리는 이주 노동자들을 무시하지만, 이주 노동자들이야말로 그들이 나고 자란 곳에서는 가장 진취적이고 현명한 사람들'이라는 말을 본 적이 있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이해가 되었습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자국의 경제적 지위, 타국에 나갔을 때의 비용과 효익 그리고 자신이 활용 가능한 제도까지 모두 고려해서 판단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 곳에서 이방인으로서 살아남겠다 하는 의지와 실행력이 필요하지요. 아무리 그 과정에 브로커가 있다 한들, 결정은 본인 스스로 내린 것 아니겠나요. 자신의 삶을 개혁하고 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을 이 사람들이 과연 이 시위에서 사진이 찍히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을지, 이 시위의 맥락을 이해하고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정치는 흐름이기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지 않으면 단번에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자국에서 있을 때에 비해 정보를 접하는 인프라가 열악할 수밖에 없죠. 한국의 언론사들이 익숙하지도 않고, 일상표현이 아니라 정제된 한국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자국에 한국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루는 언론이 없다면, 이들은 자의적으로 판단할 기회마저 박탈당한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결코 우민이 아니었을 이들이 언어적 장벽과 타국의 정치적 맥락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해 우민으로 이용되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주 노동자들이 안전한 환경, 법적인 보호 뿐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고 목소리를 낼 권리마저 잃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석하게도 사랑보다 혐오가 쉽고, 변화보다 관성이 쉽지요. 외부인으로서 한 사회에 녹아들기까지의 하루하루는 사실상 수많은 편견과 배척에 대한 투쟁의 과정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와중에 경제 상황도 좋지 않아 보통의 사람들의 삶이 팍팍해지니 이들에게는 추운 겨울이 얼마나 더 지속될 지 걱정도 됩니다. 트럼프의 정치 연설 법칙 중 하나가 최대한 쉽고 과격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하죠.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들이나, 정치에 대한 관심도가 낮은 사람들을 지지층으로 흡수하는 효과적인 전략 중 하나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레토릭을 사용하는 글은 해석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쉽게 피로감을 유발한다고 해요. 이주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이들이 교육 수준이나 정치적 관심도가 낮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정치적 텍스트는 무조건 쉽고 직관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안 그래도 혐오를 기반으로 한 정서는 통합되기 쉬운데,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마저 쉬우니 얼마나 파급력이 크겠습니까. 그래서 많은 국가의 극우주의 정당들이 저 방법을 택하고는 하지요. 국가를 막론하고 극우 세력이 전에 비해 득세하고, 자국우선주의가 강화되는 현 시점, 이주 노동자들에게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고 자신들의 권익을 위해 행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이들의 생존, 더 나아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위해 필요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적는 내내 나도 이주 노동자에 대한 편견이 가득해서 이런 말을 하고있는 것은 아닌지 수도 없이 읽어보게 됩니다. 아무리 제가 이런 저런 말을 늘어놓아봤자 저는 한국인이고 해외에서 살아본 경험이라고는 제도와 기관의 보호를 받는 교환학생으로서의 반년이 전부거든요. 당사자성이 없는 일에 대해 말은 얹는 것은 늘 조심스러워집니다. 응당 그래야 하는 것이구요. 실제 이주노동자들이 보면 허황된 소리고 위선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잔인하게도 현실에서 소수자 당사자만으로 해결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 소수자의 목소리는 쉽게 무시되고 짓밟히기 때문입니다. 흑인 인권 운동 시기에도 흑인 운동가보다는 백인 운동가가 더 조명되었고, 여성주의에 대해 논할 때도 여성 운동가들은 조롱당하고 위협당하지만 남성 운동가의 발언은 주목을 받죠. 그래서 공감과 사회적 합의, 연대가 중요한 것 아닐까요. 저도 다른 안건들에 대해서는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이 일에 관해서만은 주류이기에 연대하고 싶어 몇 자 적었습니다. 늘 정성 담긴 뉴스레터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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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살아도 괜찮아
‍ ‍ 가족 안에서 때로 소외감을 느낀 적 있으세요? 공부 잘하거나 특출난 재능 있는 형제자매한테 관심이 쏠리면 서운한 티라도 낼 수 있겠죠. 하지만 아픈 가족을 돌보느라 부모님이 바쁘시다면? '너는 알아서 잘할 수 있지?'라는 말을 들어도 혼자 고민하게 되잖아요. 이런 경험, 한 번쯤 해보셨나요? 이번 인터뷰는 이런 감정들을 더 깊고 지속적으로 경험하는 분들, 바로 장애를 가진 형제자매를 둔 '비장애형제'들을 만나보았어요. '비장애형제모임'을 이끄는 은아, 영아, 신영 님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 안에서의 역할과 책임, 그리고 개인의 행복에 대해 함께 생각해봤죠. 아울러 같은 경험을 가진 이들이 모여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돕는 과정에서 어떻게 가족의 일원으로서, 그리고 독립된 개인으로서 함께 행복을 찾아가는지, 그 여정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어요. 이 이야기들이 우리 모두의 삶과 어떤 식으로든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함께 읽어보시겠어요? ‍ ‍ 정당한 소외 속에 자라는 ‘착한 아이’ ‍ | 세 분 소개 부탁드려요. 정영아 (35세)  다운증후군을 가진 연년생 남동생과 함께 자랐어요. 현재 ‘나는’ 운영진으로 활동하며 다른 비장애형제들을 돕고 있어요. 이은아 (36세)  한 살 차이 셋째 여동생이 중증 발달장애를 갖고 있어요. 나만 이렇게 힘든 건지, 다른 비장애형제들은 어떤지 궁금해 나와 같은 사람들을 찾아보다 모임을 시작하게 됐어요. 김신영 (32세)  3살 아래 남동생이 자폐성 중증 장애인 이예요. 2018년 ‘나는’에서 출간한 책 북토크를 통해 저와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때부터 모임에 참여하고 있어요.   ‍ | ‘비장애형제’는 누구인가요? 은아, 영아 | 비장애형제란 장애인의 형제자매 중 장애가 없는 사람을 말해요. ‘나는’에서는 주로 정신적 장애인을 형제자매로 둔 청년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요. 정신적 장애에는 조현병과 같은 정신장애, 그리고 발달장애, 자폐성장애, 지적장애 등이 포함돼요. 청년 시기에 공통적으로 가지는 고민이 있기에 처음에는 20~30대를 중심으로 모임을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40대 이상도 참여하고 있죠. 장애의 종류에 따라 경험도 다양한데, 예를 들어 조현병은 청소년기 이후나 성인기 초반에 발병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발달장애는 처음부터 장애를 갖고 태어나죠. 저 같은 경우에는 1살 차이 발달장애 형제와 함께 자라며 그의 삶을 내내 지켜보며 돌봄에 참여해 왔어요. 부모님은 대개 자녀를 통해 장애를 처음 접하면서 큰 충격을 받아요. 장애를 치료하고 교육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게 되죠. 이렇게 장애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가족 안에서 비장애형제는 종종 뒤로 밀리는 경험을 하게 돼요.‍ ‍ | 발간한 책『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에서 ‘정당한 소외’, ‘착한 아이’, ‘죄책감’ 등 문구가 와닿았어요. 비장애형제들의 공통된 경험은 무엇인가요?‍ 은아 | 저는 어릴 때부터 유기불안과 인정욕구를 많이 느낀 것 같아요. 엄마가 동생을 돌보느라 바쁘셔서, 제가 조금이라도 말썽을 부리면 엄마가 떠나실까봐 늘 불안했죠. 아버지가 자식에게 장애가 있다는 걸 오랜 기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셔서 엄마 혼자 고군분투 하셨거든요. 항상 '착한 아이'가 되려고 노력하다보니 20대 후반에  뒤늦게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어요. '나는 장애인의 언니일 뿐인가?'란 질문을 스스로에게 많이 던졌죠. 신영 | 저는 '2인분의 몫'을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어요. 부모님을 비롯하여 친척분들께서도 '너라도 잘해야지'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고 그 말은 제게 큰 책임감을 안겨 주었어요. 그러나 열심히 노력했지만, 부모님께서 원하는 기대에 다다르지 못했을 땐 '네가 이렇게 밖에 못 한다면 대체 우리 집에서는 누가 해낼 수 있겠니?'라고 채근하셨죠. 장애를 가진 형제의 몫까지 감당해내야 한다는 기대와 부담감이 버거웠어요. 영아 | 저는 좀 다른 경험을 했어요. 부모님이 제게 미안해하시는 마음이 커서인지, 제게 무언가를 강요하거나 요구하신 적이 없어요. 항상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만 하셨거든요. 공부하란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어요. 자유로워 보이겠지만 사실 부모님의 관심과 의견이 필요하기도 했는데 어리고 속상한 마음에  방임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삶의 대부분의 결정들을 혼자 알아보고 결정했어요. 이렇게 자라다 보니 모든 일을 알아서 대비하고 혼자서 결정하는 독립적인 성격이 됐어요.‍ ‍은아 | 가족에게 느껴지는 죄책감도 문제예요. 성인이 되고 나서 제가 뭘 하고 싶은지 알아가기 시작했는데, 그게 가족들의 기대와 다르다는 걸 깨달을 때 엄청난 죄책감을 느끼죠. 유학을 가거나 자유롭게 직업을 선택하고 싶어도, 가족을 위해 안정적인 선택을 해야 하나 고민하게 돼요. 심지어 친구들과 영화 보러 가는 것조차 '나만 이렇게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도 되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 우리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압박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자식 노릇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생각이나 직업 선택과 연애, 결혼에 대한 고민도 무게감을 더하죠. 장애 형제의 존재가 우리의 인생 선택에 큰 영향을 미쳐요.‍ ‍ | “언니 같은 비장애형제 때문에 제가 엄마한테 욕을 먹는 거예요.”란 문장이 기억에 남아요. 비슷한 경험 속에도 각자의 느낌과 대응은 다른가봐요.‍ 은아 | 그 '언니 같은'의 언니가 바로 저예요. 신영님과 영아님은 모두 특수교육 전공인데, 저희 모임에도 특수교육이나 사회복지 전공인 분들이 과반 이상이에요. 장애 형제 중심으로 돌아가는 가족 환경 속에서 자란데다 가족을 돕고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마음이 큰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 영아 | 자라온 환경의 영향도 크겠지만 저는 제 일을 너무 좋아하고 적성에도 잘 맞아요. 동생한테 말을 가르쳐주는데 동생이 잘 따라왔던 순간의 희열을 지금도 기억하거든요. 그래서 동생 같은 아이들을 위해 일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특수교육을 진로로 결정했어요. 스스로 선택한 진로이긴 하지만, 마흔 이 후엔 다른 일을 해볼까도 생각하고 있어요. 사실 독립해  다른 지역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2주에 한번씩은 꼬박 집에 내려가 가족과 시간을 함께 보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좀 벅차단 느낌이 들더라구요. 내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서른이 넘어 사춘기가 찾아온 것 처럼 정신적 독립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자식 노릇을 해야 할 사람이 나 밖에 없다는 부담감, 또 그걸 해내야 한다는 책임감에 맞춰 사는 게 어느 순간 너무 힘들어져서 물어볼 사람을 찾았어요. 그래서 모임의 문을 두드렸는데, 각자의 상황도 비슷한 듯 다르고, 사는 모습도 다양하더라구요. 은아 | 맞아요. 다들 저희처럼 살고 있을 줄 알았는데 모임에서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어요. 되려 장애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완전 다른 전공과 진로를 선택한 경우도 있었어요. 그분들을 통해서 이런 선택도 할 수 있구나..를 알게 됐죠. 타인의 기대와 요구에 부응하려 애쓰는 삶이 가족 안에서 끝나는 게 아니더라고요. 직장이나 사회에서도 항상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데 언제나 그럴 수 만은 없잖아요. 결국 자신을 몰아붙여 소진하게 되는데 이건 건강하지 않지요. 다른 비장애형제들을 통해 비슷한 상황에서도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걸 알았고, 나 중심으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 ‍ ‍ 서로 나누며 ‘나’를 찾는 방법, ‘나는’ ‍ | 자조모임을 만든 계기와 과정이 궁금해요. 은아 | 처음에는 그냥 비장애형제들을 만나고 싶었어요. 대학교 때 저를 종종 챙겨 주시던 발달장애 자녀를 두신 교수님께 연락을 드렸는데 지인 분의 자녀를 소개해주셨죠. 그렇게 처음 만나 얘기를 나눠보니 너무나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장애에 대한 어떤 설명 없이도  바로 통할 수 있는 게 너무 좋았죠. 그러고 나니 다른 사람들도 더 만나고 싶더라구요. 같이 모임을 시작해 4-6명 정도가 되었을 때, 전국에 퍼져 있을 비장애형제들을 더 모아보자고 합심해서 홈페이지도 만들고 여러 방법으로 홍보를 시작했어요. 그 때가 ‘16년이었는데 이후 모임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어요. ‍ | ‘나는’ 이라는 모임 이름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은아 | 모임 이름을 고민하던 중 한 친구가 외국의 비장애형제 관련 책을 언급했어요. 그 책 제목이 'What about me?'였는데, 우리말로 하면 '나는?'이 되죠. 비장애형제들은 자신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기 어려워해요. 나라는 존재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죠. 우리는 가족 안에서 하기 어려운 이야기, 수용되지 못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어요. 그래서 나에 대해 질문을 하는 모임이 되자는 의미에서 ‘나는?’, 나아가 'It's about me', 즉 '나는!'이라는 의미를 담아 '나는'으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처음에는 '나는, It's about me'를 같이 사용했는데, 모임 이름을 더 간결하게 하고자 지금은 '비장애형제모임 나는'을 정식 이름으로 쓰고 있어요. ‍ ‍ | 모임은 어떻게 운영되나요? ‍ 은아 | 주요 프로그램으로 '대나무숲티타임'이라는 자조모임을 운영하고 있어요. 비장애형제들이 모여 어디에서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예요. 상, 하반기로 나눠 월 1회씩 3개월간 진행하며 한 번에 15-20명 정도가 참여합니다. 주제는 연애, 결혼, 독립 등 비장애형제들의 관심사를 다루고, 경험 많은 선배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도 있어요. ‍심리검사 프로그램도 운영 중인데, 전문적 지원이 필요한 분들을 위해 비장애형제 상담사가 심리검사를 진행하고, 필요시 상담으로 연결해드려요. 위기 상황에 처한 비장애형제들을 위한 긴급 상담 지원도 하고 있어요. 인스타그램 DM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 모임 운영에 있어 가장 고민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은아 | 가장 큰 고민은 모임마다 비장애 형제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 듣고 싶은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고 갔는지 여부예요. 그리고 모임에서 ‘앞으로 난 이렇게 살 거야’ 하는 결심을 하더라도 현실에서는 장벽에 부딪히게 마련이거든요. 예를 들어 내가 원하는 일상을 살려면 부모님이 안 계실 때 장애 형제를 어떻게 돌볼지 대책이 있어야 하는데 딱히 대안을 찾기 어렵죠. 그래서 해결 방법에 집중하다보면 '나는'이라는 모임의 목적이 흐려질 수 있어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아요. ‍영아 | 우리 모임의 목적은 정해진 답을 찾기보다, 각자에게 맞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나누는 거라 생각해요. 개인마다 상황이 다르고, 특히 부모님 사후 문제 같은 건 제도적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라 당장 방법을 찾기도 어려워요. 처음엔 답을 얻기를 기대하고 왔다가 함께 이야기 나누며 결국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 같아요. ‍은아 | 운영 관련해서 연령대별 니즈가 다른 부분도 고민이에요. 모임을 지속하며 원년 멤버들의 나이가 들어가는지라 40대 모임도 따로 운영해봤는데, 같은 나이대라고 해서 꼭 비슷한 삶의 단계에 있는 건 아니더라구요. 20-30대에 해결했어야 할 문제를 40대에 가져오는 분들도 계셔서, 이런 차이를 어떻게 다룰지도 어려운 부분이에요.‍ ‍‍ | 자조모임을 통해 느끼는 나의 변화는 무엇인가요? ‍ 신영 | 우리 가족의 모습을 한 걸음 떨어져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어요. 같은 경험을 나눈 사람들과 유대감을 형성하며, 그 과정에서 ‘우리 가족은 어떤 사람들인지’, ‘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등 우리 가족을 정의할 수 있게 된 것이 큰 변화죠.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도 되고, 나를 위해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게 된 것도 중요한 변화예요. 마음먹는다고 해서 바로 행동이 바뀌는 것은 어렵지만 모임에서 서로 주고받는 응원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강한 원동력이 되기도 해요. ‍ 영아 | 고립감에서 벗어났어요.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진정한 공감을 받을 수 있었죠. 같은 고민을 해본 사람들이 주는 위로가 더 와닿고 든든하게 느껴지거든요. 은아 | 저는 한때 우울증 상태였는데, 모임을 통해 ‘그냥 존재 자체로 살아도 되는구나’를 느꼈어요. 또한 이 모임 자체가 저를 설명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비장애 형제 모임을 하는 나’로 소개할 수 있게 되면서, 다른 사람들과 더 편하게 소통할 수 있게 됐어요. 그냥 ‘장애 형제가 있다’고 하는 것보다 훨씬 가볍게 받아들이더라고요.‍ ‍ | 주변이나 가족들의 변화도 감지되시는지요?‍ 신영 | 대학 졸업 이후 물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는 일찍이 독립했지만, 정서적으로 독립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어요.  집에 자주 내려가서 동생을 돌봐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한 몫 했죠. 하지만 점차 동생을 보살피는 것보다 내가 살아가고  싶은 일상을 선택하는데 집중하며 작은 변화부터 시도하기 시작하였어요. 놀랍게도 제가 먼저 변하자 부모님도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에 맞춰 적응하시더라고요. 결국 부모님께서도 제게 기대하던 역할을 내려놓으시고, 본인들만의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가셨어요. 은아 | 저희 부모님의 경우, 활동지원 제도 같은 정부 지원을 활용하지 않으셨어요. 동생을 돌보는 건 항상 가족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셨거든요. 그래서 저는 '일당을 달라'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씀드리고, 활동지원사를 적극 활용하자고 제안했어요. 처음엔 갈등이 있었지만, 지금은 지원 제도를 이용하시면서 부모님도 편해지셨죠. 어머니와도 1년 넘게 대화를 나누며 설득한 끝에 저를 많이 이해하시게 됐어요. "엄마가 그때 잘 몰랐다. 미안하다"라고 말씀하셨죠. 하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자식된 도리'를 강조하세요. 모든 부모가 변화하는 건 아니에요. 부모 교육을 해보면, 정작 교육이 필요한 분들은 잘 오시지 않아요. 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이미 자녀를 잘 이해하고 계신 분들이에요. 변화가 필요한 부모님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에요. ‍ ‍ ‍ 1인분만 해도 괜찮은 삶 ‍ | 사회나 장애 가족이 아닌 사람들에게 기대하시는 바가 혹시 있으신가요? ‍‍영아, 신영 | '2인분을 하는 아이'가 아닌 '1인분을 하는 아이'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비장애형제라고 하면 안쓰러운 눈빛으로 보시는데, 환경의 일부분일 뿐 ‘비장애형제’가 우리를 온전히 대표하는 건 아니에요. 모든 사람이 각자의 상황에서 특별할 수 있잖아요. 그냥 "아, 그렇구나"하고 평범하게 받아들여 주시면 좋겠어요. 일반적인 형제자매 이야기하듯 편하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은아 | 우리 주변에 장애가 잘 보이지 않아서 더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특히 우리 사회에는 나이 든 장애인들의 삶에 대한 대책이 없어요. 이건 가족 내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예요. 저는 실제로 부모님이 안 계신 상황을 겪으면서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어요. 사회 전체가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어요. 우리의 이야기를 알리고 싶은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영아 | 맞아요. 이건 정말 큰 문제예요. 비장애형제나 장애인 가족들이 자신의 삶을 살려면 장애인이 갈 수 있는 곳이 필요해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탈시설화 이후 오히려 갈 곳이 없어졌어요. 특수학교도 부족하고, 성인 장애인들이 활동할 곳도 없어요. 그래서 장애인들이 주변에 잘 보이지 않는 거예요. 결국 가족들이 모든 부담을 떠안게 되는 거죠. 이런 부분들이 사회적으로 개선되었으면 좋겠어요. ‍ |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 은아 | 모임은 주로 서울역 근처에서 하고 있어요. 지역에서 오시는 분들도 계시기 때문이죠. 지역마다 모임이 생기면 좋겠지만 각기 주도적으로 운영할 분이 있어야 하기에 활성화가 쉽지 않아요. 부산 지역에서 모임을 결성했었는데 정기적으로 지속하고 있지는 않아요. 하지만 참여 문의가 계속 있어서 꾸준히 지역 네트워크를 유지하며 지원하려고 해요. 코로나 때 온라인 모임도 시작했는데, 대면 모임과 병행하기에 힘에 부치더라고요. 직접 만나 소통하는 게 더 깊이 있는 나눔이 가능해서 현재는 대면 모임에 집중하고 있지만 온라인 모임도 계속할 생각은 있어요.‍ 비장애형제들의 이야기를 알리는 일에도 집중하고자 해요. 우리가 모든 비장애형제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의 이야기를 통해 홀로 힘들어하는 비장애형제와 그 가족들이 도움을 얻었으면 좋겠거든요. 유튜브 채널도 오픈했는데 풀타임 직장과 병행하려니 관리하기 너무 힘들었어요. 지금은 인스타그램에 비장애형제들의 이야기를 짧게 올리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했죠. 전시를 해보자는 이야기도 나누고 있는데, 올해 오티즘 엑스포에서 부스를 운영해보니 부모님들과 관련 기관 등의 반응이 좋았어요. 부모 교육도 계속하고 있어요. 주로 특수학교나 복지관에서 요청이 와요. 주로 초등학생 부모님들 대상인데, 한 달에 한 번 정도 진행하고 있죠. 우리는 이미 다 컸지만, 다음 세대는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 | 비장애형제, 또는 나만의 어려움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영아 | '나를 알자'란 말을 꼭 하고 싶어요. 우리는 스스로를 표현할 기회가 없는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자신을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하죠. 그러려면 먼저 자신을 알아야 해요. 저도 심리검사, 상담 외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가치관을 가졌는지 알게 됐죠.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그리고 강점과 한계를 아는 게 중요해요. 그래야 죄책감 없이 자신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어요. 신영 |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요. 많은 분들이 처음 모임에 오셔서 ‘이런 이야기를 할 곳이 없었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만큼 혼자서 모든 것을 감내해왔다는 뜻이겠죠. 저 역시 이 모임에서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을 받았어요. 여러분도 혼자가 아니라는 걸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어요. 은아 | 저는 ‘행복해도 된다, 그리고 나의 가족도 나의 행복을 바라고 있다’는 말을 다시 한번 하고 싶어요. 저도 이 말을 계속 스스로 되뇌고 있거든요. ‍ ‍ 글 | 김지선 ‍ ‍ 나는, 어떤 비장애형제들의 이야기 도서, 296쪽 ‍이 책은 정신적 장애를 가진 형제자매를 둔 청년들의 솔직한 경험을 담았어요. 장애인 가족의 현실을 생생히 그려내며, 비장애 형제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주죠. 가족 관계와 정체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기도 해요.‍ 책 정보 살펴보기 ‍ 나는 여전히, 오늘도 괜찮지 않습니다 도서, 264쪽 ‍이 책은 정신 장애인 가족의 형제들을 위한 매뉴얼과 같은 도서인데요. 비장애 형제들이 직면하는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지 제시하고 있어요.  건강과 가족 관계에 관해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이 떠오른 책이에요. 책 정보 살펴보기 ‍ 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 도서, 360쪽 ‍정신질환을 겪는 이들과 그 가족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쓰인 책이에요. 심리학적 통찰과 다양한 사례를 바탕으로, 어려운 감정을 다루는 법, 균형 있는 돌봄의 중요성,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까지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죠. 더 나은 일상을 위한 지혜를 배울 수 있을 거예요. 책 정보 살펴보기 ‍ ‘손이 덜 가는 아이’ 어떤 비장애 형제·자매의 이야기 기사 자조모임 ‘나는’의 구성원들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장애 형제에 대한 책임감, 가정에서 느낀 외로움과 부모의 기대, 스스로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 등을 풀어낸 시리즈예요. 형제 관계와 장애, 가족 내 역할 분담에 관한 사회적 시선을 재조명하며 비장애 형제들의 감정과 고민을 생생히 다루고 있어요. 인터뷰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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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을 살리는 마법, CWB를 아시나요?
영국 북부 맨체스터에서 차로 한 시간여 거리에 있는 인구 16만의 도시, 프레스턴을 아시나요? 산업혁명과 함께 번성했지만, 영국 제조업이 쇠퇴한 1970년대 이후 기업들이 프레스턴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높은 실업률, 영국 내 최고 수준의 자살률과 아동빈곤율 등 쇠락한 도시의 문제점들을 안게 되었죠. 도시 내 양극화도 심해져 부촌과 빈촌 거주자 간 기대수명이 15년 이상 차이 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국내 지자체장 중 프레스턴의 사례를 안 들어본 분이 없다네요.😁 영국의 소도시가 요즘 한국에서, 아니 전 세계적으로 뜨거운 이유,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요? 바로 ‘프레스턴 모델’로 불리는 지역재생 프로그램의 성공 때문입니다. 프레스턴은 2011년부터 인구감소, 고령화, 도시 집중 및 지역 간 불평등, 지방소멸 위기 등에 대응하기 위해 ‘부유한 지역공동체 만들기’(Community Wealth Building, 이하 CWB)’*전략을 실행했습니다.  *부유한 지역공동체 만들기(Community Wealth Building, CWB) 지역사회 부(富)를 증대시키고 이를 다시 지역경제로 순환시키는 로컬 경제전략이에요. 원어를 직역한 ‘공동체자산구축’이라고도 불리는 이 전략은 ▲공정한 노동 ▲지역 금융 ▲토지와 자산의 공정한 이용 ▲진보적 조달 ▲포용적이고 민주적인 기업의 5가지 핵심 가치를 중심으로 합니다. CWB는 공공기관, 대학, 병원 등 지역에 깊이 뿌리내린 ‘앵커’기관들의 조달을 통해 지역 소상공인의 참여를 확대합니다. 또한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의 설립을 지원해 지역 주도의 경제 활동을 촉진합니다. 이 모델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이익이 돌아가는 주택·부동산 정책도 포함하고 있어, 전반적으로 민주적이고 지속가능한 지역경제 선순환을 목표로 합니다. CWB는 2010년대부터 미국 클리블랜드와 영국 프레스턴 등에서 성공적으로 추진되어 왔으며, 현재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지역경제 활성화 모델입니다.  CWB는 기존 자본을 활용해 지역의 부(富, wealth)를 증대시키고, 이를 다시 지역경제로 순환시켜 민주적으로 축적하는 전략입니다. 이는 지역순환경제의 한 방법론으로, 2004년 미국의 비영리기관인 ‘협의하는 민주주의’에서 개념을 정립했어요. CWB는 △지방정부 및 지역 대학, 병원 등 지역에 뿌리내리고 있는 앵커 기관의 조달(물품 및 서비스 구매) 시장에 주민 참여를 증대하는 시민 중심 조달,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등 주민 주도 사업체 설립을 촉진하는 창업 정책, △약자를 보호하고 주민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도록 하는 주택·부동산 정책 등을 아우른 민주적 지역경제 선순환 모델에 중점을 두고 있어요. 희망제작소에서 2024년 9월30일부터 나흘간 ‘2024 지속가능한 로컬경제전략 국제포럼’을 열어 프레스턴시 등의 CWB 적용 사례를 탐구하고 그 가능성을 살펴봤어요. 이 포럼에는 매슈 브라운 영국 프레스턴시 시의회 의장과 닐 매킨로이 미국 협력하는 민주주의 글로벌 리더가 참석했어요. 특히 매슈 브라운은 시의원 시절부터 프레스턴 모델을 이끌어 온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프레스턴은 1990년대부터 글로벌 개발사들과 복합 쇼핑센터 등을 포함한 대규모 도시 재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했어요. 그러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프로젝트는 무산되었고 투자자들은 떠나버렸죠. 설상가상으로 보수당이 집권한 중앙정부가 돈줄을 바짝 죄며 긴축재정을 선언하면서 프레스턴 시의회 보조금 중 약 2천만 파운드(약 349억원)가 삭감되었습니다. 기업들도, 재개발 계획도, 보조금도 사라지자 도시에는 실망감과 좌절감만이 남았죠.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전개죠? 보통은 도시가 황폐해지고 슬럼화되어가는 결말이지만, 프레스턴은 CWB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4년 만에 프레스턴의 지역 조달 지출이 5%에서 18.2%로, 랭커셔 지역의 조달 지출이 39%에서 79.2%로 증가했습니다. 지역 공급망이 강화되어 일자리가 늘어나고 취업률이 상승했으며, 실업률과 아동빈곤율은 감소했어요. 숫자로 보이는 성과 외에 주민들의 정신건강과 행복감이 높아졌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이러한 사례를 공유하고 한국과 영국의 지역경제, 공동체, 중앙정부의 역할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대담이 마련되었습니다. 시민사회 운동가 출신이자 구청장으로 지역 행정 실무를 경험했던 박정현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바쁜 일정에서도 흔쾌히 대담자로 참여했어요. 대담은 2024년 10월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희망제작소에서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의 사회로 진행되었습니다. 대담의 주요 내용을 옮겨볼게요! “당연히 외부 투자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대규모 자본 투자가 주거 문제나 임금 수준, 노동자와 아동 처우 등에서 지역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죠. 대체로 투자자들은 지역의 부를 추출해 가는 경향이 있어요. 프레스턴의 CWB 전략은 대규모 투자에만 의존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경제의 균형을 새롭게 잡으려는 시도입니다. 이는 더 회복력 있는 경제 구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역에 적절한 보호 장치가 있다면, 외부 투자가 들어왔을 때도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오랫동안 지역에서 시민운동을 하고 시의원으로 일하면서, 외부 대규모 자본을 유치해 지역 발전을 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습니다. ‘무망함’(희망이나 가망이 없음)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싶네요. 그래서 구청장 선거 때도 그런 내용은 공약에 넣지 않았습니다. 자본 유치는 어렵고, 설사 성공하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반대급부가 발생합니다. 자본은 공짜로 들어오지 않아요. 결국 주민의 삶의 질, 편의성, 지역순환경제, 전반적인 발전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문제입니다. 브라운 의장께 궁금한 점이 있어요, 프레스턴도 대규모 쇼핑센터 건설이 중단된 경험이 있고, 그 대안으로 CWB 전략을 구축했죠. 그런데 시 행정이나 정치권에서 지역순환경제에 대한 이해가 먼저 있었나요? CWB는 기존의 대자본 투자 유치와는 다르고, 단기간에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워요. 오랜 시간이 지나야 성과가 나타나는 정책을 추진한 동력이 궁금합니다.” “프레스턴은 1990년대 말부터 쇼핑센터 건설을 추진했지만, 금융위기 여파로 결국 2011년에 중단되었습니다. 실패하고 나니 보였던 것 같습니다. 지역의 명운을 한 곳에 집중시키는 것의 위험성을요. 그래서 지역 개발 전략을 다양화하자는 취지에서 CWB 전략을 추진하게 되었죠. 어쩌면 아이러니하게도, 실패한 경험이 새로운 방법을 시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런 모델이 뿌리내리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만, 그 효과는 분명합니다. 지역에 일자리가 늘어나고, 부가 창출되고, 불평등이 완화되는 등 지역의 회복력이 강화되고 있어요. 이 과정에서 우리는 지역에 잠재적 수요를 확인했고, 이제는 주민들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프레스턴의 CWB 전략은 생활임금 도입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공공부문에서 먼저 최저임금보다 약 20% 높은 생활임금을 지급하기 시작했고, 대학이나 병원 등 지역의 ‘앵커’ 기관들에도 생활임금 지급을 권장했습니다. 프레스턴시는 랭커셔의 행정 수도(주도)로, 시청과 주 청사가 함께 있죠. 이 두 기관이 생활임금과 진보적 조달 정책의 선도적 역할을 했습니다. 대형 병원과 대학들도 이에 동참했고요. 조달 참여 기관들에 생활임금 기준 충족을 요구함으로써 이를 지역 전반으로 확산시킬 수 있었고, 민간 부문에도 장려했습니다. 다른 한 가지는 조달이었습니다. 대기업 중심의 조달 및 유통 모델이 지역 가치 창출에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진보적 조달 정책’을 펼치며 지역 기반 조달을 위해 조달 문턱을 낮추고, 지역 기업의 참여를 독려했죠.” “프레스턴 지역사회가 적극적으로 호응했네요. 수용성도 높았고요. 대덕구도 그랬습니다. 대덕구는 지역화폐인 ‘대덕 e(이)로움’을 발행해 지역 내 경제 순환을 촉진하고자 했어요. 대덕구는 대전의 5개 구 중 사업장 가입자 평균 월 소득이 가장 높아요. 그런데 대덕구민 평균 월 소득은 3위(2018년 기준)에 머물렀어요. 이는 대덕구 소재 사업장 근로자들이 대덕구에서 돈을 벌어 다른 지역에서 소비하는, 소비 유출이 있음을 시사합니다. 대덕구는 자영업 비율이 높아요. 주민들에게 우리 지역에 돈을 써야 소상공인들이 살고, 우리가 산다고 직접 설명하고 다녔어요. 지역화폐 성공은 주민 참여에 달려 있죠. 그래서 명칭부터 공모전 통해 정했고, 소규모 모임도 많이 조직했어요. ‘통장 협의회’나 ‘주민 홍보단’ 등 소규모 모임을 통해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했고요. CWB와 같은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에 지역 화폐가 디딤돌 역할을 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요.” “정치인의 영향력은 공식적인 지위보다는 그의 아이디어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속한 영국 노동당은 지방 분권을 활성화하고자 하며, 지역에서 교육이나 주거 등과 관련해 자체 정책을 더 많이 추진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형식적 분권이 아닌 실질적으로 지역의 힘을 강화하는 분권입니다. 저는 지자체들이 CWB와 같은 방법을 같이 실천할 때 지역의 자립과 힘이 더욱 공고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한국에서도 프레스턴의 CWB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것을 느낍니다. 더욱이 한국의 여러 사례, 특히 지역화폐 도입이나 지역주민 중심의 에너지 프로젝트, 영암군처럼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창고를 복합문화센터로 탈바꿈시킨 사례 등을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이러한 개별적 시도들이 지역 경제 전반을 포괄하는 종합적인 정책으로 발전해야 하겠죠. 이를 위해서는 지자체와 지방의원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사회 구조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지역의 내발적 발전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어요. 지역 발전의 핵심 기반은 공동체 자치력이며,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와 관련하여 국회에서는 주민자치기본법, 공동체지원기본법, 사회적경제기본법 등을 논의하고 있죠. 또한 지역 발전을 위해서는 사람들의 구심점 역할을 할 플랫폼이 필요해요. 제가 대덕구청장으로 재직할 당시 중간지원조직 개념의 주민자치회를 만들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행정 언어와 주민들이 사용하는 언어 사이에는 간극이 있어 일종의 ‘통역’이 필요하죠. 플랫폼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어요. 플랫폼을 통해 주민과 행정이 만나고 소통하면, 양측의 협력이 훨씬 원활해집니다. 이러한 플랫폼에서 주민 자치력을 강화하는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그 의미를 지역에 전파할 수도 있고요. 플랫폼은 주민들이 모일 수 있도록 돕는 좋은 도구예요.” 아쉬운 사례가 있어요. 박정현 의원이 대덕구청장으로 재직할 당시 도입한 지역화폐 정책은 좋은 성과를 냈었어요. 이에 고무된 대전시는 이 정책을 광역시 전체로 확대 적용했었지요. 그런데 중앙정부가 광역 단위에서만 지역화폐를 발행하도록 결정을 내린 거예요. 대덕구를 비롯한 기초지자체는 독자적인 지역화폐를 발행을 할 수 없고, 대전시와 같은 광역 단위 지역화폐만 사용 가능해진 것이죠.  지역화폐나 CWB 전략 모두 격차를 해소하고 부의 역외 유출을 막자는 것이 핵심이잖아요? 사실 대전 안에서도 원도심과 신도심 간 격차가 꽤 크대요. 신도심 인구가 원도심보다 12% 정도 많고, 점포 수도 약 6% 더 많아 소비 활동이 신도심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어요. 대덕구는 원도심에 가까워, 구 차원의 지역화폐 발행을 통해 지역 내 자영업자들에게 경제가 순환되도록 했는데, 중앙정부의 결정으로 대전시 전체에 통용되는 지역화폐만 남게 된 거예요. 원도심 소상공인에게 지역의 부가 순환되는 지역 화폐의 이점이 사라져 버린 거죠. 정책의 원래 취지와 어긋나는 결정을 중앙정부가 잘 모르고 내려버린 것이죠.😣 새삼 지역 맞춤형 정책의 중요성과 중앙-지방 간 긴밀한 소통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대담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함께 방한한 닐 맥킨로이 미국 싱크탱크 ‘협력하는 민주주의’의 CWB 글로벌 리더는 세계 곳곳의 CWB 사례를 연구하며 지역별 맞춤 전략을 고민하고 있어요. 맥킨로이는 CWB는 모두 똑같은 모습이 아니며 지역의 상황과 특색을 반영한 경제전략 모델로서 유효하다고 말합니다. ‘2024 지속가능한 로컬경제전략 국제포럼’에서 그는 “CWB를 구성하는 5개 기둥을 한꺼번에 도입하기보다는 지역에서 즉시 적용 가능한 것부터 시작해 점진적으로 변화의 물꼬를 트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어요. 지역의 현황을 면밀히 분석한 후 지역순환경제라는 큰 틀 안에서 적합한 전략과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거겠죠. 당연한 말이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이번 대담은 알고 보면 오랜 인연 끝에 열린 행사입니다. 박정현 의원이 시의원과 구청장 시절 지역경제와 공동체에 관한 여러 사례를 연구하던 중 프레스턴 사례가 눈에 띈 거예요. 지난해 봄, 그는 지방정부 단체장들의 모임에서 프레스턴 모델을 주제로 한 토론을 제안한 적이 있다고 해요. 그런데 정작 토론회 당일 박 의원은 코로나19 양성반응으로 참석하지 못했고요. 여하튼, 그 토론회를 계기로 희망제작소는 지난해 가을, 지자체장들과 함께 프레스턴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포럼은 대한민국을 가로지르며 전국적인 규모로 진행되었어요. 전남 영암군과 서울 국회의사당, 경기도의회 등에서 CWB 관련 포럼이 열렸고, 대전과 서울 성수동 등 사회연대경제 현장 방문 및 간담회가 있었거든요. 매슈 브라운 의장은 일정 중간에 병원에서 링거까지(...😥) 맞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한국의 사례를 주의 깊게 관찰하며, 지역재생에 대한 아이디어와 생각들을 나눴답니다. 프레스턴 사례를 처음 접했을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 조달 계약 시 공정한 고용조건을 갖췄는지 확인하는 부분이었어요. 보통 구매나 조달에서는 비용을 중요하게 보니 최저가 입찰이 많잖아요. 그런데 프레스턴은 조달 계약 시 직원과 고객이 연령과 성별, 인종과 종교 등으로 차별받지 않는지, 생활임금을 지급하고 있는지, 비용 절감만을 위해 무리한 인력 배치를 하지는 않는지 등을 살펴보더라고요. 조달을 통해 사회적 효익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모색한 것이죠. 계약 시 중요하게 여기는 관점만 살짝 바꿔도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 정책 입안자는 물론이고 우리에게도 필요한 가르침이지 않을까요? ※ 이 콘텐츠는 뉴스레터 스피커스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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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위한 기록 - 더 나은 내일에 대한 믿음을 가지며
'옳음'이란 무엇일까? 여의도에 다녀왔다. 오늘은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기존 일정을 취소하고 여의도로 출발했다. 여의도의 풍경은 광화문과 비슷했다. 한 쪽에서는 탄핵을 이야기하고, 한 쪽에서는 지지를 선언한다. 탄핵을 말하는 사람만큼 지지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 대부분은 50~60대였고, 저녁 늦지 않게 해산했지만 매번 상반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고민이 찾아온다. '옳음'이란 무엇일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기보다는 기존 생각이 강화되는 오늘, 옳음이란 무엇일까. 몇 년마다 반복되는 질문이다. '더 나은 사회가 가능할까?'에 대한 물음은 여전히 그렇다 와 그럴까 사이에서 해답을 찾고 있다. '진리'란 우리가 알 수 없다.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이를 진리라 부른다. 알 수 없지만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각자의 진리를 찾는다. 개인의 생각이 모여 사회의 방향을 정하고, 사회의 방향은 사람들이 원하는 세상의 모습과 가까워진다. 때로는 오히려 멀어질 때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앞으로 뒤로, 위로 아래로 반복하며 조금씩 나아간다. 우리는 영원히 진리에 다다를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진리를 향해 나아간다. 개인의 상황과 기존의 경험과 현재의 마주함 속에서 절대적 옳음을 고민한다. 우리가 영원히 다다를 수 없겠지만, 그렇기에 옳음을 고민하고, 이상향을 그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이번에도 그렇게 우리는 나아간다. 각자의 상황과 책임 동일한 상황이지만, 모두 다른 생각을 한다. 혼자 살아가는 사회가 아니기에, 나의 위치와 연관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고민이 생겨난다. 회사에서 사원/대리/과장/임원/대표의 입장이 다른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방향은 있다. 회사로 치면 회사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지만, 범죄를 저질러서는 안 되고, 범죄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는 선이 있다. 정치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다.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고, 사회 질서를 바로잡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는 행동이다. 정치인들은 국민들이 생각하는 '옳음'에 대해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고민한다.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과 전략은 다를 수 있다. 정치인이 속한 당의 전략에 따라 방법이 달라질 수 있지만 바뀌지 않는 단 한 가지는 '국민을 위한다는 것'이다. 함께 살아가는 시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듣고, 고민해야 한다. "주변 시민 여러분들의 목소리를 그냥 간과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투표에 참여하고 찬성 표를 던진 국민의 힘 김예지 의원은 "국회의원으로서의 책무를 먼저 생각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속한 당의 당론과 관계없이 지금 시민들이 무엇을 원하고, 말하는지를 듣고 반영하고자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내가 가진 지지층만을 바라보며 그 외의 경우를 생각하지 않는다. 탄핵이 가결되면 정권이 바뀌고, 바뀐 정권이 자연스럽게 다음 선거의 흐름에 영향을 주고, 지금 내가 있는 자리가 사라질 가능성이 높기에 탄핵에 반대한다. 철저한 개인의 욕심이다. 개인의 욕심을 탓하고 싶지는 않지만, 정치인이라면 그렇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당론에 반대되는 의견이라도 오히려 과감하게 앞으로 나가 찬성을 이야기하면 시민들의 관심을 얻을 수 있을 텐데, 당에서 미움을 받더라도 시민들의 지지를 받는다면 자리를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다. 김예지 의원은 이번 일을 계기로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았고, 이 기세를 몰아 다음 의원직도 도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윤상현 "탄핵 반대해도 1년 지나면 다 찍어주더라" 기존의 경험과 사례가 있기에 앞으로 나서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전 박근혜 탄핵 때도 먼저 탄핵에 찬성하고 앞장섰던 의원들 중 현재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다. 그리고 탄핵에 반대해도 기억하지 못하고, 여전히 동일한 사람을 찍어주는 경우도 빈번하다. 변화를 만들기 위해 일어났지만 생각보다 변화는 빠르지 않다. I 변화의 시작 - 3.5%의 시작 하지만 때로 변화는 굉장히 빠르게 찾아온다. 뉴스가 계속 나오고, 시민들이 여의도에 모였지만 가결까지는 시간이 꽤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박근혜 탄핵 때도 가결되기까지는 거의 두 달의 시간이 걸렸다. 이번에는 경험이 있고, 사건의 심각성이 다르기에 더 시간은 단축되겠지만 한 달 정도는 걸리겠다는 말을 속으로 삼켰다. 3.5% 법칙: 소수는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 BBC News 코리아 3.5% 법칙이 있다. 사회 변화의 원동력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인구의 3.5%가 저항 운동에 참여하면 정치적 변화가 보장된다는 의미다. 시민들의 운동으로 인해 정권이 바뀌거나, 1년 이내에 목적이 달성되었을 때를 조사했을 때, 인구의 3.5%가 참여할 경우 실패한 사회 운동이 없다는 결과가 있다. 또한, 비폭력 사회 운동이 폭력적 사회 운동에 비해 4배 많은 참여 수를 보인다는 연구도 함께 나타난다. 3.5%는 사회 전체에서 보면 굉장히 소수다. 하지만 3.5%의 적극적인 참여자들이 있다는 의미는 더 많은 사람들이 운동에 동의하고, 지지한다는 의미다. 3이라는 숫자가 자주 보인다. 세 사람이 모이면 그때부터 집단이 형성되고, 주장에 힘이 실린다는 심리학적인 현상부터, 삼인성호라는 과거 고사성어, 삼세판이라는 우리 사회의 통념 등 삶 속에 3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일 때, 우리는 힘이 생기고 변화를 만들 수 있다. I 뻔하지만 기본으로 - 시민의 힘 정말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모였다. 다양한 연령, 성별이 각자의 응원봉을 들고 소녀시대의 노래를 불렀다. 남녀노소가 아니라 젠더노소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늘어날 만큼 각자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공통의 목소리를 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지도 중요하겠지만 그만큼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는지도 중요하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내는 한 목소리. 광장의 역할은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그 속내는 조금씩 다르다. 탄핵이 되어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고, 어떻게 해야 좋은 방향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은 하지만 딱히 뚜렷한 대안이 생각나지 않았다. '탄핵되면 당연히 이재명이 대통령 되고 정부도 문재인 정부 때나 비슷하겠지' 이런 식으로 우리 스스로가 상상을 제한해 버리는 순간, 실제로 다른 가능성들이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기대는 자기 실현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완전히 새롭게 열려 있는 광장에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나가서 진짜로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는 어떤 나라이고 대통령제가 문제라면 어떤 방식으로 보완해야 되는지 이런 얘기들을 차분하고 끈질기게 해나가야 된다. [인터뷰]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 - 프레시안 어느 순간 내일을 향한 기대감이 줄어들었을까? 반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나아가야 한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소통하고 함께 하자고 말했던 나와 지금의 나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생각도 했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가지기 위해 우리는 광장에 모이고, 이야기를 나누고, 뉴스를 보며 분노하고, 울고, 웃는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나아간다. 더 나은 내일이 있다고 분명히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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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예의, 유족에 대한 예의 그리고 ‘우리’
[최경호 칼럼] 무안 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2014년 7월의 비극을 떠올렸습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 유족에 대한 예의를 ‘우리’라는 울타리로 생각해 봅니다. 네덜란드, 어떤 ‘비극’에 관한 기억 세월호 당시 박근혜 정부의 유족에 대한 ‘예의’ 그때 그 오열의 현장, 카메라 플래시는 없었다 “다행히도 한국인 희생자는 없었습니다”… ‘우리’를 생각한다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을 이륙한 말레이시아 항공이 격추된 것은 2014년 7월 17일. 저는 주네덜란드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네덜란드, 어떤 ‘비극’에 관한 기억 퇴근 시간이 다가올 무렵, 공사님 방의 열린 문틈에서 나오는 뉴스 속보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얼른 검색해 보니 큰 사고가 난 것이었습니다. 격추라니, 전쟁으로 비화하지나 않을까. 이게 무슨 일인가. 대사님은 만찬 약속으로 외부에 계셨고, 공사님 주재하에 간단하게 회의를 마친 후 영사님과 제가 먼저 공항으로 출동했습니다. 대사님과 서기관님도 저녁 약속을 일찍 끝내셨는지 어땠는지, 부랴부랴 공항으로 오셨습니다. 각국 대사관들은 탑승자 국적 확인을 위해 난리였습니다. 우리는 특히 애가 탔습니다. 초기에 전원 구조라는 오보가 났었던 세월호 참사가 불과 석 달 전이었습니다. 잘못된 정보를 보고할 순 없었습니다. 그러나 공항에 마련된 상황실에는 탑승객의 가족 외에는 외교관들은 물론 기자들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불규칙하게 이어진 당국의 공식 브리핑에서도 항공사와 확인 중이라며 탑승객의 명단과 국적을 바로 확인해 주지 않았습니다. 외교관분들은 항공사의 공식 발표 이전에라도 빨리 파악하기 위해 항공사와 공항은 물론 타국 대사관의 인맥 등을 총동원했습니다. 밤 12시 (한국 시각은 아침 7시) 경에는 대사님과 한국 언론사의 전화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선후 관계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비슷한 시각에 공항 상황실이 유족들을 위해 모처에 마련된 숙소로 이동하도록 조처되었습니다. 제가 하려는 이야기는 지금부터입니다. 사고 브리핑도 유족 숙소에서 할 것 같아 (오로지 한국인 탑승 여부에만 관심이 있던) 우리가 따라가려 하니 장소는 비밀이라고 합니다. 왜? 언론사의 관심으로부터 유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탑승자 및 사망자 명부도 배포나 확인해 주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왜? 유가족에 대한 예의가 우선이라서. 네덜란드 정부의 공식 입장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유가족이 결코 언론사나 다른 경로를 통해 가족의 부음을 먼저 접하게 할 수 없다.”네덜란드 정부 가슴이 쿵 했습니다.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던 기억입니다. 세월호 당시 박근혜 정부의 유족에 대한 ‘예의’ 사실 뭐가 더 좋은 방법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당시 네덜란드 당국이 무조건 잘했다고 판단할 만큼 제가 양국의 문화나 재난 대비 매뉴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상황실에서 언론을 내보내고자 하는 명분이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또는 종편에서 출연자가 다른 이야기를 열심히 떠드는 동안 화면 아래쪽에서 무심히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흘러가는 자막 속에 가나다순으로 사랑하는 이의 이름이 지나가더라도, 그렇게라도 빨리 확인하고 싶어 하는 가족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어떠한 대우, 아니 취급을 받았는지가 생생하던 때였습니다. 그렇기에 유족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겠다는 원칙은, 방법론에서 어떻게 하느냐를 떠나 제 가슴을 깊이 때렸습니다. 하여 이태원 참사 때 희생자 명단을 언론이 공개하거나 합동 추모의 방식으로 공개하는 것에 대해 저는 우선 부정적이었습니다. 유족들의 동의 없이 그래도 되는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한편으로는 시대마다 문화권마다, 또는 참사의 성격에 따라, 장례의 절차나 인간과 망자와 유족에 대한 예의는 여러 형식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원칙에 따른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을 겪고 있을 가족들이 제일 덜 아픈 방향으로, 그리고 이런 사고가 반복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그때 그 오열의 현장, 카메라 플래시는 없었다 대사님 인터뷰 전에 모 우방국 대사관을 통해 명단을 확보하긴 했었습니다. 거기에 익숙한 한국식 이름 표기는 없었지만, 한국인일 가능성이 있는 애매한 이름을 가진 이들이 몇 명 있었습니다. 또한 국제 결혼 등의 경우도 있을 테니 영문 이름만으로 국적을 확정할 수는 없기도 했습니다. 성과 이름과 이니셜을 놓고 오만가지 경우의 수를 상상해 보는 밤이었습니다. 어찌어찌하여 탑승자 가족을 모신 호텔을 알아내어 그곳으로 갔습니다. 딱히 외교관들을 위한 공간은 없어서, 서성이던 중에 대사님은 내일 일정을 위해 귀가하시고, 저와 영사님은 남아서 계속 대책본부의 발표를 쫓기로 했습니다. 밤이 되어서 그런지, 가족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된 컨벤션 홀에 외교관들도 들어가서 카펫 바닥에 좀 앉기도 할 수 있었습니다. 옆에 보니 일본 대사관 직원이 두엇 있었습니다. 망설이다가 말해줬습니다. 우리가 입수한 명부에 명백한 일본식 이름은 없더라. 하지만 국적은 또 모를 일이니 더 확인해 보시라. 딱히 정보로서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지 몰라도, 여전히 확실한 정보는 아닐지 몰라도, 마음 졸이고 있을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하릴없이 로비에 나왔다가 밤공기를 쐬러 왔다 갔다…. 들고 갔던 논문 읽다가…. 하던 중에, 갑자기 웅성웅성했습니다. 추가로 신원확인이 된 모양이었습니다. 상황실에서 나온 이가 원탁에 앉아 있는 가족을 찾아가더니, 조용히 문서를 내밀며 (아마도) 이분이 댁의 가족 맞느냐며 묻는 것인지, 무언가 통보를 하는 것인지 하는 모습들을 보았습니다. 누가 슬픔의 표현에 동서양의 차이가 있다고 하던가요. 그 이후 보고 겪은 일들을 그 옛 소셜미디어에 나만 보기로 적어두었는데, 오늘은 굳이 꺼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다만, 오열의 현장에 카메라 플래시는 없었다는 것만은 강조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밤을 새웠고, 이튿날 오후엔가 외교부 브리핑에서 국적을 확인해 줄 때까지 안절부절못했습니다. 최종적으로 한국인 희생자가 없음을 확인하고는 대사관이 비상근무 체제로 들어가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었습니다. “다행히도 한국인 희생자는 없었습니다”… ‘우리’를 생각한다 사실 그 사고 이전에 저는 외국에서 무슨 사고가 났을 때 한국 뉴스진행자가 “다행히도 한국인 희생자는 없었습니다”라고 하면 울컥했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기본적으로는 화가 납니다. ‘다행…? 누가 대신 죽어서 다행? 전체 사망자가 줄어드는 것도 아닌데?’ 하지만 그날 한국인 희생자가 없었던 것이 우리(대사관 식구들)에겐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한편, 전에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그때 이후 저는 지구촌 어디선가 사고가 났다는 뉴스를 보면 바로 ‘아이고 저 동네 한국대사관 직원들 초비상 걸려 고생이겠구나’ 라는 생각부터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도 요새는 점점 더 옅어져 가고 있었음을 이 글을 쓰다가 오늘 새삼 깨달았습니다. 저에게는 ‘우리’가 좁아졌다가, 다시 넓어졌다가 희미해진 것일까요? 아니면 좁아졌으되 촘촘해졌다가, 요즈음은 성겨진 것일까요? 관념으로서의 세계시민과 체험으로서의 동료의식 사이의 ‘우리’에 대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은, 어디선가 비상근무를 해야 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과, 어느 사고에든 ‘우리’가 아닌, 그래도 또 ‘우리’인 희생자들도 있다는 것을, ‘유족들에 대한 예의가 먼저다’는 원칙과 함께, 항상 상기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필자: 봄날의 곰 ‘어쩌면, 사회주택’(2024) 저자. 해산물에 환장하는 딴따라 불령선인으로, 한량을 빙자하나 알고보면 연구를 하는 중. Comme l'esperance est violente, comme la vie est lente 희망이 격렬한 만큼 삶도 너무 느린 증세를 보임. 블루스카이는 @chezgom.bsky.so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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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양재IC, 2024년 남태령
2016년 11월, 그때도 '전봉준투쟁단'은 서울로 트랙터 상경을 시도했다. 그때는 양재IC 부근에서 막혔다. 28명이 연행됐고, 3명이 다쳤다. 광화문 집회에선 '존경하는 시민' 운운하며 무기력으로 일관하던 경찰이, 양재IC의 농민은 때려잡았다. 그때는 농민들을 위해 달려나간 시민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8년 지난 12월, 오늘 전봉준투쟁단이 다시 막혔다. 이번엔 남태령역. 하지만 이번엔 응원봉 시민들이 달려나갔다. 시민들이 지켜보니 경찰도 무리한 진압을 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나도 못 가고 있는 입장이지만... 운동권들은 경복궁에 집중했고, 남태령역에는 운동권 조직이 많지 않아 보인다. 2030 여성 시민들에겐 운동적 관성이 없다. 이것저것 재지 않는다. 연대해야 할 일이 있다면 일단 달려나간다. 농민단체의 무엇에 동의할 수 없어 연대를 꺼리는 식의, 그런 '전술적 판단'을 이들은 하지 않는다. 시민을 무작정 상찬하는 건 내 취향에 안 맞는 일이지만, 운동권의 관성을 직시케 하는 이들의 행동력은 상찬하는 수밖엔 없다. 늘 대중을 염원하면서 막상 대중이 몰려나오면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우리 안의 비관주의를 직시해야 한다. 농민들의 안위가 걱정되면서, 시민들의 연대에 엄청나게 감동했다. 8년. 우리의 세계는 이만큼 달라졌다. 8년 동안 대중에게 각 부문의 가치를 환기하고 설득하기 위해 애써온 사람들의 공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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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령 대첩을 보며 활동가의 역할을 생각하기
남태령 대첩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다. ‘집회 때문에 시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는 흔한 논리를 시민들이 나서서 부수는 모습. SNS 등에서는 전장연 시위와 민주노총의 파업에까지 연결되어, 집회나 시위 행동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막는 탄압이 시민들의 불편의 원인이며, 이에 대해 앞으로는 집회 측이 아니라 경찰에게 항의하겠다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빗발치고 있다. 그 흔한 ‘불법집회’ 프레임에 대해서도, 민주주의 국가에 불법집회가 어딨냐며 응수한다. 사실 운동권들이 흔히 공격당하는 레파토리를 대중운동의 장에서 시민들이 나서서 부숴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8년 촛불집회에서는 시민들이 나서서 단체에게 ’깃발을 내리라‘고 요구했다. 종북 빨갱이 프레임이 씌워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에 대해 스스로 검열하는 정서가 시민들 사이에서도 작동했었다. 그러나 2016년 탄핵집회에서는 ’배후를 색출하라‘는 이야기에 시민들이 너도나도 깃발을 만들어 들고 나왔다. ’내가 배후다‘라고 외치며 각양각색의 깃발을 들고나오는 항의행동은, 종북 빨갱이, 전문 시위꾼들을 배후로 삼는 전통적인 공격 프레임을 전면으로 조롱하며 무화시키는 기발한 기획이었다. 이번에는 불편함은 시위의 주체들 때문이 아니라, 시위를 보장하지 않는 경찰과 정부의 문제라고 시민들이 나서서 이야기하고 있다. 또 하나의 프레임을 부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변화들이 우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흔히 시민들을 주체성 없고 정체없는 집단으로 쉽게 상정하곤 하지만, 사실 다이나믹한 한국의 집회시위 역사에서 시민들 또한 운동의 경험이 축적되고 있다. 시민들은 이전의 운동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반성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방법을 찾는다. 운동 내부에서는 부술 수 없는 논리들이 대중운동의 장에서는 부숴진다. ‘대중’이 발화하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각성한 시민들은 ‘순수한 대중’이라는 이미지조차도 전략적으로 활용할 줄 안다.  나는 대중운동이 분출하는 장에서만 가능한 진일보가 있다고 믿는다. 물론 시위에서 나오는 급진성이 대중운동이 끝난 이후로도 일상적으로 꾸준히 전부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중운동의 장에서만 가능한 진일보라는 것이 분명히 있고, 그런 것들은 회귀하지 않는다. 2008년에는 ‘배후세력’ 프레임이 먹혀들어갔지만, 2016년에 ‘배후세력 색출’이라는 프레임이 파괴된 뒤, 2024년에는 그 프레임이 씨알도 먹히지 않는 것처럼. 그런 부분들에 주목한다면, 대중운동의 장에서 활동가들이 해야 할 역할들이 좀 더 명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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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유기견 쉼터가 모두 없어질 그날까지
유기견 쉼터가 모두 없어질 그날까지 (2024-12-30) 처음 견사를 만들어서 데리고 들어와 적응하는 과정이다. 손도 안 타던 아이가 먼저 필자에게 다가와 장난도 치고 안기고 있다. 필자 제공 김미숙 | ‘동공당’ 대표 20년 동안 마을에서 개장수를 하던 할아버지가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그곳을 알게 되었고 주변 분들과 그곳의 개들을 구조하기로 하였다. 그곳 아이들은 이른바 짬밥(음식물쓰레기)을 먹고 살고 있었다. 동네 음식점에서 나오는 음식물쓰레기를 가져다 그릇도 없이 길바닥에 부어주는 식이었다. 묶여 있지 않은 아이들은 시내를 돌아다니며 길고양이 사료를 먹거나 남의 집에 들어가 개밥을 훔쳐 먹으며 다녔다. 동네 주민들이 민원을 넣어도 주인이 있는 개라는 이유로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는, 마을의 골칫덩어리였다.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사람들이 모였고 주말마다 봉사를 다니며 환경을 조금씩 개선하면서 할아버지를 설득하고 ‘동물자유연대’에도 도움을 청했다. 우리의 설득으로 할아버지는 개들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하고 가족들에게 돌아갔다. 새로운 곳을 찾아 쉼터를 짓는 것보다 20년 넘게 수많은 아이들이 팔려 나가고 죽어 나간 그 자리에 쉼터로 만들고 시작하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을 것 같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그 자리에 쉼터를 짓기로 결정했다. 개똥과 쓰레기더미로 뒤덮인 그곳을 몇날 며칠 치워가며 아이들이 지낼 수 있는 견사를 지었다. 단체 이름도 만들었다. 근사한 영어 이름도 거론되고 여러 이름이 추천되었는데 다수결로 ‘동물과 공존하는 당신’을 줄여서 ‘동공당’으로 결정됐다. 그동안 쉴 새 없이 태어나는 강아지들 이름도 지어주지 못한 채 입양처를 구하고 임시보호처를 구해서 보내기에 바빴다. 겨울에 시작된 공사는 봄이 되어 마무리되었다. 견사가 완성되고 길거리 아이들을 포획해서 ‘버려진 동물을 위한 수의사회’에서 중성화를 해주고 사료와 후원금도 보내주었다. 그사이에도 수많은 생명들이 태어나 가족을 찾아가고 또 죽어갔다. 처음 시작할 때 같이 있었던 사람들도 절반 이상은 떠나가고 바뀌었다. 광고 마을 사람들의 반발도 있었다.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농사를 망치고 들개처럼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잡아주어 고맙다고 인사하던 사람들이 견사를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철마다 밭에서 나오는 농작물을 사주는 것으로 타협을 봤다. 아이들이 입양만 가면 다 끝날 줄 알았던 이 일을 나는 5년간 하고 있다. 개체 수는 그때보다 지금이 더 늘었다. 솔직히 나는 쉼터가 지어지고 아이들이 중성화되면 입양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쉼터가 안정되고 들개에 가까웠던 아이들이 훈련을 통해 순화되고 누가 봐도 순하고 이쁜 집 강아지가 될수록 아이들은 입양을 가기가 더 어려웠다. 아니 입양 기회가 없어지고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갔다. 너무 비참하고 불쌍하고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아이들에게 밀려서 말이다. ‘일이년이면 되겠지’ 하고 겁 없이 시작한 이 일이 이제 햇수로 6년째 접어들고 있다. 처음 아이들을 입양 보내고 쉼터를 정리하겠다는 생각은 이제 포기했다. 남은 아이들이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잘 돌봐주고 행복하게 잘 살다 가게 해주는 것으로 목표를 바꾸었다. 목표를 바꾸고 나니 마음도 편해지고 해야 할 일도, 목표도 생겼다. 쉼터 아이들도 집 아이들과 다르지 않게 좋은 환경에 좋은 사료로 키우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다. 후원금에만 의지하지 않고 자체적인 수입이 있어야 한다는 결론이 났다. 올해부터 인식 개선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모르거나 잘못 알고 계신 분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고 올바른 반려동물 문화 정착을 위한 교육을 하는 것이다. 동공당의 최종 목표는 사단법인을 만드는 것도, 전국적으로 유명한 큰 단체로 크는 것도 아닌 해체다. 나도 6년째 이어지는 백수 생활을 하루빨리 정리하고 싶다. 아니 돈 쓰는 백수 일은 고만하고 싶다. 그리고 나처럼 이런 일을 하는 분들을 도와서 전국의 사설 쉼터를 하나씩 없애는 것이 나의 최종 목표다. 유기견, 유기묘가 없다면 우리 같은 사설 쉼터가 있을 이유가 없을 테니까. 모자라는 대표를 믿고 함께해주는 동공당 운영진에게 무한한 감사와 존경을 보내며 이 기회에 다시 한번 외친다. 사지 말고 입양해주세요. 버리지 마시고 끝까지 책임져주세요.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삶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노동X6411의 목소리X꿋꿋프로젝트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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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서의 양가감정] 나도 '우리' 안에 포함될 수 있나요?
🎶 추천곡 🎶 black eyed peas <where is the love> '그냥 사람들'의 논의되지 못한 삶들 지난해 역대급 세수 펑크를 기록했다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매번 역대급을 달고 나와 이젠 익숙해진 걸까. 여야 모두 감세로 뜻을 모았다. 올해 7월, 정부는 ‘2024년 세법 개정안’을 발표했고 그 중 상속세 개편이 핵심이었다. 상속재산에서 공제하는 액수를 늘리고, 세율과 과표구간을 조정하여 ‘중산층’의 상속 부담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개편으로 인해 가장 큰 혜택을 받는 이들은 초고액 자산가들이었다. 개편된 내용에 따르면 상속재산이 100억  원 이상인 고액 자산가들의 혜택이 늘어났다. 100억원 이상인 경우 세금이 23% 줄었고, 200억 원 상속 시에는 효과가 점점 더 커졌다. 상속세 개편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전체 피상속인의 6.3%, 약 1,200명 -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약 0.00002% - 에 불과하다. 국회에 국민을 대변해 입법자로 나선 사람들과 나라의 행정을 책임지는 사람들의 논의 테이블에는, 초고액 자산가들 혹은 그들을 위한 의제가 놓여있다. 중산층을 위한다는 껍데기 속 본질은, 초고액 자산가들을 위함이다. 상속세와 관련된 논의는 국민의 99.99%의 ‘그냥 사람들’을 위함이 아니었다. 반면 딥페이크, N번방 등은 어떠한가. - 20대 여성에서 가장 와 닿는 이슈를 가져왔을 뿐 범죄나 사회 문제의 경중을 나누는 행위가 아님을 알아주시길 -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사건이며, 피해자의 규모조차 파악이 어려운 딥페이크 범죄는 오히려 예산이 삭감되었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새로운 사회문제를 매번 접한다. ‘와 이 이슈 정말 역대급으로 심각하다. 관심 가져야겠다.’ 그리고 다른 이슈를 만나면 또다시 나는 ‘와 이 이슈 정말 역대급으로 심각하다. 관심 가져야겠다.’ 그리고 다른 이슈를 만나면 ‘'와 이 이슈 정말 역대급으로 심각하다. 관심 가져야겠다.’ 그리고 또 다른 이슈를 만나면…. 이와 같은 상황의 무한 반복. 매번 역대급을 갱신하는 사회에, 내가 모르는 또 역대급 최악이 있는 사회에 역겨움을 느낀다. 이와 같은 ‘그냥 사람들’의 이야기는 논의조차 되기 어렵다. 당연하게도 ‘그사세’의 공론장에는 올라가기도 어렵다. 여전히 논의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 의제들은 널리고 널렸다. 시민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 계엄 선포된 이후 나는 친구들과 함께 광장에 나갔다. 친구, 친구의 친구, 그의 친구, 또 그의 친구들이 모였다. 미리 만나 버려진 종이박스에 각자가 원하는 구호를 담았다. 학교 앞 현수막 전문점에서 깃발도 만들었다. 학생들이 모였기에 학교의 특색을 담으면서도, 그저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특별하지 않은 학생임을 담고 싶었다. 누구든 배제되지 않는 단어를 찾기 위해 1시간이 넘도록 회의가 이어졌고 우리는 ‘그냥 학생들’이라는 문구를 달고 광장으로 나아갔다. 가는 길에 만난 수능을 본 고3 학생과 그의 어머니는 우리에게 떡을 나눠주셨고, 학교 깃발을 보고 선배님들과 학우분들을 만나 응원의 이야기도 들었다. 지나가는 시민들은 ‘그냥 학생들’에 많은 호응을 해주셨다. “그냥 학생들이래~ 맞지, 그냥 학생일 수도 있네~” 모두들 ‘그냥 시민’으로서  광장에 모였다. 질서정연했고 민주적이었고 선진적이었다. 우리는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고, 노래에 맞추어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무드등, LED 촛불, 크리스마스 트리등, 응원봉 등 다양해진 촛불들에 민주주의가 물씬 느껴졌다. 옆 사람이 찬 바닥에 그냥 앉으니 자신의 기말고사 시험지를 가방에서 꺼내 준 고등학생들, 조심히 지나가라며 밝은 웃음으로 교통 정리를 해주는 경찰들, 밀집도가 높아지자 자발적으로 간격을 벌리는 시민들. 계엄이라는 수단을 들고 권력을 유지하려는 권위주의에 맞서, 우리는 민주주의의 가장 선두에서 등불을 밝혔다. 이후 시민들의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윤석열 퇴진으로 한마음이 된 사람들은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고 박수쳤다. 한 페미니스트가 나와, 자신이 페미니스트임을 밝히고 윤석열이 성차별주의자임을 규탄하자 분위기는 이전과 사뭇 달랐다. 누군가는 침묵으로, 누군가는 눈짓으로, 누군가는 목소리를 내어 페미니스트의 말에는 동의할 수 없음을 드러냈다. 민주주의의 한가운데에서 또다시 권위주의가 자행했다. ‘시민이 승리’라는 구호 안에 들어갈 수 없는 시민이 존재하는 자리였다. 그사세에서만 일어나는 ‘논의되지 못함’의 행태는 광장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학생사회에서의 광장 계엄이 선포되기 2주 전, 캠퍼스 중앙에 위치한 중앙도서관 외벽에 교수들의 시국선언문이 붙었다. (제목 :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우려하는 중앙대학교 교수들의 시국선언문) 시국선언문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색채를 드러내지 말라는 학생들의 비난이 이어졌다. 한편, 이 시국선언문이 붙은 중앙도서관 바로 앞에는 ‘의혈탑’이 자리 잡고 있다. 4•19 혁명 당시 중앙대 학생 5명이 총에 맞아 사망했고, 1명은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6명의 선배를 기리고 그들이 지킨 민주주의를 위해 의혈탑을 세웠다. 비단 중앙대학교만의 일은 아닐 테다. 많은 학생들이 죽거나 다쳤고 그들로 인해 민주주의를 바로 설 수 있었다. 학생사회는 항상 선두이자 핵심이었다. 계엄이 선포된 후 학교 곳곳에 대자보들이 붙었다. 학생 개인이 손으로 쓴 손자보부터 학과 차원에서 쓴 대자보, 동아리에서 쓴 대자보, 교수들이 쓴 대자보 등 다양한 목소리들이 쏟아졌다. 이와 동시에 수업 때 계엄에 대해 언급한 교수들을 신고하는 일도 일어났다. 학내 커뮤니티에는 대자보 목소리를 응원하는 학생들과 이를 비판 혹은 비난하는 학생들이 동시에 존재했다. 학생사회에서 움직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강해지자, 총학생회는 재적 중인 모든 학생들이 모이는 ‘학생총회’를 개최했다. 학생사회는 얼어가고 있는 걸까. 학생총회의 정족수는 재학 인원 중 10%인 2,500명, 결국 절반밖에 모이지 못해 학생총회는 개최되지 못했다. 총회 이후에 진행하고자 했던 학생들의 자유발언은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여의도 광장에서 들었던 불편한 감정이 이어지지 않길 간절히 바라며, 핫팩과 친구들의 온기에 의지하며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학생사회에서만큼은 탄핵 이후의 민주주의에 관해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진정 바라는 민주주의 사회가 무엇인지, 그 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광장이 우리에겐 필요했다. 그리고 사회학과에 재학 중인 박다안 학우의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학내 청소노동자의 이야기로 시작한 발언은, 민주주의 사회를 이륙하기 위한 우리의 다짐으로 끝맺었다. 탄핵만이 우리의 목표가 아님을, 탄핵 이후의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해야 함을 상기시키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또다시 교수들의 시국선언에 대한 반응처럼, 학생들의 비난이 난무했다. 탄핵을 이야기하는 자리에 청소노동자 얘기는 존재할 수 없었다. 박다안 학우의 자유발언 전문 광장에서의 양가감정 각양각색의 깃발들, 직접 만들어 개인의 색채가 가득 담긴 피켓들과 개성이 가득 담긴 촛불(의 대체재)의 다양성에서 안도감과 아름다움을 느꼈지만, ‘탄핵’이 아니면 다른 주제에 대해서 말하자는 그 공기가 소름 끼치도록 무서웠다. 광장에서 탄핵을 외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면 생각이 많아졌다. 6년 전에도 광화문에 나가 ‘박근혜 하야’를 외쳤던 사람들이 이곳에서도 ‘윤석열 탄핵’을 외치고 있었다. 우리는 이제 탄핵 이후의 국면을 이야기해야 한다. 민주주의 재건은 별개의 일이며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광장에서 탄핵 이후에 변해야 할 제도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별안간 나는 ‘탄핵 반대 지지자’가 되어버렸다. 지금은 탄핵만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룰이 존재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마치 하나가 된 것처럼 모여 한목소리로 소리를 내는 것이 감동으로 다가오기도 했지만, ‘윤석열 퇴진’이라는 두 단어로 모든 게 간결해지는 것이 언짢았다. 그 속에 논의되지 않는 것들이 있음을 알기에 불편했다. 윤석열을 뽑은 것이 누구인가, 바로 우리들이 아닌가. 정계에 입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흔쾌히 받아준 것이 누구인가, 바로 우리들이다. 우리의 선거로, 우리의 권력으로 만들어낸 그가 우리에게 계엄으로 위협을 가했다. 그 권력을 바로 다잡아야 하는 것도 우리이며, 이전과 같은 일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해야 하는 것도 우리다. 논의해야만 하는 것은 퇴진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전반이다. 그들에게서만 문제를 찾는 것이 아닌, 우리 자신도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위헌적인 계엄 선포에 맞서 민주적으로 대응하는 것에 자부심도 느꼈지만, ‘촛불’에 담긴 평화로워야 한다는 메시지는 불편했다. 악을 평화로, 사랑으로 대응하는 것은 한편으로 이상적이기도 하다. 허나 광장의 현장에서는 흐트러진 질서를 용납하지 못했기도 하다. 학생총회에서 학생들의 자유발언 때 학생의 말투로 비난을 가한 자들이 존재했다. 학과에 누가 되었다며 사과하라는 담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누구나 발언할 수 있는 광장에서, 우리는 반드시 평화롭고 질서 있고 선진적이어야 했다. 광장을 대표하는 그들만의 기준으로. 뿔뿔이 흩어진 사람들이 각자의 삶에서 치열하게 살다, 평일 저녁 혹은 주말에 나오는 것이 애달팠다. 하지만, 이 정도 마지노선에만 움직이는 사람들에 싫증도 났다. 최악만은 면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 세상살이가 힘들어 세상일에 관심 갖지 않는 것에 한편으론 이해도 하지만, 이것이 반복되고 있다면 우리는 조금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이상적인 사회를 합의하기 위해 광장에서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 반복되는 정치 사태, 이제는 지겹지 않은가. 최악만을 피하고자 하는 이에겐 ‘더 나은 사회’란 존재하지 않는다. 나도 ‘우리’ 안에 포함될 수 있나요? ‘시민이 승리’라는 단어를 외치며 정치적 효능감을 느꼈지만, 시민에 속하지 않은 모든 것들을 떠올리며 회의감도 들었다. 광장에서 울려 퍼지는 ‘우리’라는 말에, 과연 우리는 모두를 담아내고 있었는가? 모든 영역에서 차별하지 않는 ‘우리’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자신을 노래방 도우미라고 소개한 시민의 발언이 요 며칠 계속 맴돈다. “나도 ‘우리’ 안에 들어갈 수 있나요?”라고 외치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노동의 많은 영역을 이주민들이 책임지고 있음에도, 시위의 현장에서 조선족에 대한 혐오는 줄어들지 않는다. 친구에게 ‘물살이*’라는 단어를 배운 이후로 ‘국민이 개돼지입니까?’라는 말에 자꾸 멈칫한다. *물살이 : 돼지는 ‘돼지고기’와 ‘돼지’가 엄연히 다른 존재로서 자리한다. ‘고기’라는 단어에는 ‘식용하는 동물의 살’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반면 물고기는 식용이라는 기준에 따라 변하는 단어가 아니다. 물에 사는 수많은 어류를 모두 물고기라고 지칭한다. 이것에서 시작된 종평등 언어. 나는 이번 광장에서 기쁨과 안도의 눈물도 흘렸고 분노와 애달픔의 눈물도 흘렸다. 양가감정을 안고 매주 광장으로 나갔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한가운데 위치했지만, 외로움을 느꼈다. 6년 전 혹은 더 이전보다 작금의 광장이 더 민주적이라는 것도 안다.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민주적으로 투쟁하고 있음을 안다. 하지만 더 나아졌다 하여, 더 낫다고 하여 안도하고 싶지 않다. 나는 차별과 배제 없는 완전해진 민주주의를 위해 앞으로도 이 감정을 안고 광장으로 나아갈 것이다. 여의도에서의 ‘우리’가 확장된 모습과 남태령에서의 계층을 망라한 연대의 모습을 떠올리며, 보수(질서)적인 형태로 진보되는 사회를 마주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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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검자 수용소 ‘몽키하우스’, 민주주의에서 빗겨 선 그 곳
 *이 글은 피스모모의 대안언론 '더슬래시 Theslash.online' 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김대용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공동대표 인터뷰   낙검자 수용소를 낮춰 부르는 말 '몽키하우스'는 미군들이 사용했다고 하는데, 그 단어에는 동양인에 대한 비하의 의미가 섞여있고, 이후 한국인들이 함께 사용했는데 여기엔 차벌과 낙인이 담겨 있지요. '성병관리소'는 공식 명칭이지만 이 건물을 통해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맥락이 가려져 있어요. 그래서 성병관리소 철거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이 곳을 보건소처럼 여겨 그렇게 주장합니다. 보건소 건물이라면 굳이 보존할 이유가 없다고요. 실제 성병관리소는 강제 감금시설로 개인적으로는 '수용'보다는 '감금'이 진실에 가깝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  '낙검자 수용소' 용어 사용에 대한 김대용 공동대표의 말  소요산 자락에 위치한 낙검자 수용소. 감금된 한국 여성들이 낙검자 수용소(성병관리소) 쇠창살 너머로 구조를 요청하는 모습이 원숭이 같다고 하여 미군들은 이곳을 '몽키하우스'라고 불렀다.   가만히 서있어도 절로 땀이 흐르는 무더운 여름이었습니다. 벌써 1년 하고도 반이 지난 작년 여름, 피스모모 사무국과 해외에서 방문한 활동가 몇몇이 동두천을 방문했습니다. 김대용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공동대표의 안내로 미군기지의 흔적들을 또렷하게 마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미군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된 기지촌 여성 노동자 윤금이씨가 살던 집, 그리고 그 옆에 들어선 한미우호의 광장이라는 역설과, 여전히 거대한 드론이 뜨고 내리는 미군 기지의 담벼락으로 뚝뚝 끊겨버린 땅의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번듯한 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 뒤뜰에 숨바꼭질하듯 자리한 낙검자 수용소(일명 몽키하우스)의 모습도요. 그리고 지금, 낙검자 수용소는 철거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더슬래시는 근 30년간 방치되어있던 낙검자 수용소를 철거하고 호텔을 세우겠다는 동두천시의 일방적인 계획에 맞서 100일이 넘게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김대용 공동대표의 이야기를 “캠프페이지” 기획으로 담습니다.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은 경기 북부에서 지속되고 있는 인권과 민주주의 문제, 기지촌 역사와 여성들의 인권침해 역사를 기록하고 보관하고자 2017년에 시작됐습니다. 김대용 공동대표는 2015년에 낙검자 수용소의 존재를 알게 된 이후 최희신 공동대표와 함께 낙검자 수용소의 존재와 기지촌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국가폭력의 실태를 알리고자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1965년부터 미국은 기지촌 여성에게 유행한 성병을 ‘관리 및 정화’하도록 한국 정부에 요청했는데요. 이에 한국정부는 기지촌 주변에 ‘성병관리소(낙검자 수용소)’를 설립했습니다. 당시 미군 기지촌 여성들은 강제로 실시된 성병 검사에서 탈락하거나, 검진을 기피하거나, 성병에 걸린 미군에게 지목되면 '낙검자'로 분류되어 완치될 때까지 낙검자 수용소에 감금되었습니다. 이 여성들에게는 미군 남성을 표준으로 한, 여성 기준치의 10배가 넘는 양의 페니실린이 강제로 투약되기도 했다고 알려집니다.  “동두천과 의정부, 파주 등 경기도만해도 여섯 곳이 있었어요. 부산이랑 군산에도 있었다고 하고요. 그러다가 쥐도 새도 없이 사라졌죠. ‘몽키하우스’가 유일하게 남은 곳이에요.”      동두천 낙검자 수용소는 1973년에 세워져 1996년에 폐쇄된 채 방치되었습니다. 소요산 등산로를 곁에 두고 있지만, 소요산이 개발되고 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이 들어오기 전까지 소요산 주변 상가의 상인들이나 주민들도 그 존재를 알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동두천에 사는 사람들 중에서도)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대부분 몰랐죠.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난 곳에 위치해 있으니까요. 거기에 잡혀 온 여성들의 두려움은 상상하기도 어렵죠. 주변에 오래 거주한 주민들만 ‘양색시’들이 벌거벗고 건물 밖으로 뛰어내리는 모습을 봤다고들 해요.” 동두천시가 애써 외면하고자 했던 낙검자 수용소의 존재는 2023년 2월, 동두천시가 급하게 마련한 예산으로 낙검자 수용소 부지를 사들이면서 뜨거운 감자가 되었습니다. 학교법인 신흥학원의 소유였던 이 부지는 휴양지로 설정되었던 탓에 20년 넘게 방치되었다가, 공시지가의 2배인 29억원에 매입되었는데요. 시유지로 매입하는 과정에서 절차상의 문제가 여럿 발견되었습니다. 지방재정이 20억원 이상 투자되는 사업은 예산 편성 전에 투자심사를 거쳐야 합니다. 보통 1년 이상 소요되고, 천재지변의 경우가 아니라면 다음 회계연도에 시행하는 것이 원칙입니다.1 하지만, 동두천시의회는 2023년 1월 임시의회에서 추가경정예산을 승인했고, 바로 다음 달에 낙검자 수용소 부지를 매입했습니다.2 투자심사의 경우 이해당사자가 심사에 참여하지 않아야 하는데,3 ‘옛 성병관리소 철거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에 따르면 신흥학교 재단 교수 2명이 해당 투자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것으로 확인됩니다. 이에 더해 지난 9월 6일에는 철거 예산(2억2000만 원)을 추가경정예산에 편성해 통과시켰습니다.  “그 때부터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한 거예요. 새벽에 그럴 줄 어떻게 알았겠어요.4”  동두천시는 2023년 상반기에만 신흥학원 소유의 부지 세 곳을 총 157억원을 들여 매입하기로 결정했는데, 전·현직 의원 중 신흥학원 출신이 다수 있어 동두천시와 신흥학원의 특수관계가 의심되기도 합니다.5 이러한 맥락에서 김대용 공동대표는 낙검자 수용소를 두고 빗겨 난 결정들을 공정하게 되돌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낙검자 수용소 부지 매입 과정에서 부정은 없었는지 감사원이 조사해 달라는 취지의 공익감사 청구 서명 운동을 진행하면서요.6 낙검자 수용소 철거 여부를 놓고 실시된 시민여론조사 또한 편향된 것으로 밝혀졌는데요. 제대로 된 공론장이나 시민들이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소통도 시장과의 면담도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동두천시는 시민들의 의견을 힘으로 눌러왔어요. 주민들 안에도 권력에 승복하는 문화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고요. 도리어 시의 사업을 찬성하는 그룹들이 철거를 반대하는 시민들을 험담하고 있는 실정이에요.”   그림: 이동수    김대용 공동대표는 낙검자 수용소의 무조건 보존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지역의 개발을 위해 불편한 기억을 일방적으로 제거하는 것보다 그러한 불편함이 승화되는 민주적인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요. 오랜 기간 침묵으로 대체되었던 미군 위안부 여성들의 피해를 알리고, 그에 동조하며 직간접적으로 경제적인 이득을 취한 공동체와의 관계가 회복되며, 전쟁을 통해 만들어진 왜곡된 사회적 시선이 그대로 전시되는 그런 공간이 필요한 것이라고요.   “이걸 철거하냐 보존하냐 하는 과정에서 서로 숙의하는 과정, 시민들이 참여하는 과정이 지역 사회 민주주의를 위해서 굉장히 좋은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두천이라는 작은 동네에서 주민들이 참여와 관심을 끌어내는 과정들을 통해 지역의 비전을 설정하는 데도 도움이 될 거고요. 보존과 개발이 같이 잘 이어질 수 있는 좋은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어요.”           <주>   1)투자심사는 다음 회계연도부터 시행하는 투자사업을 대상으로 한다. 다만, 긴급히 국가시책사업을 추진하거나 연도 중에 사업을 시행하여야 할 특별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당해 회계연도 사업도 포함된다. 여기에는 천재지변에 의한 시설물 신축, 국비지원 사업으로 예산안 심의과정에 반영되거나, 지원대상이 당해 연도에 정해져 추진하는 사업 또는 이에 준하는 경우로 제한한다. 출처: 행정안전부(2024). 지방재정투자사업 심사 및 타당성 조사 매뉴얼. 16쪽 2)동두천시는 2022년 12월 13일부터 2023년 2월 6일까지, 감정평가 - 토지매입계획 내부승인 - 예산계획 수립 - 공유재산심의위원회 결정 - 투자심사위원회 결정 - 시의회 승인 – 매입 결정 과정을 석달 만에 벼락 치듯이 완료되었다. 출처: 양상현(2024년 10월 21일). 동두천 성병관리소 부지 매입 논란, 신흥학원 이해관계자 개입으로 법적 무효. 내외경제TV. https://www.nbntv.co.kr/news/a... 3)지방재정법 제37조의3 제6항과 제7항에서 지방자치단체의 투자심사를 할 때 ‘위원이 속한 기관이 해당 심의 대상 안건과 관련하여 용역·자문을 수행하는 등 이해관계가 있는 경우’에는 ‘해당 안건의 심의’에서 제척과 기피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출처: 상동 4)10월 13일 새벽 4시에 동두천시가 포크레인으로 몽키하우스를 기습 철거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활동가들과 시민들에 의해 저지되었다. 출처: 민성진(2024년 10월14일). '성병 관리소' 새벽 기습…시민들 "동두천 시장 나와라". 세상을바꾸는시민언론민들레. https://www.mindlenews.com/new... 5)동두천시는 노인회관과 장애인회관을 짓겠다며 지난 1월 생연동과 보산동에 걸쳐 있는 신흥학원 소유 신흥유치원 부지(5필지 3,980㎡)를 42억8천만원에 매입했다. 2월에는 소요산을 관광지로 개발하겠다며 신흥학원 소유의 성병관리소 부지(상봉암동 3필지 6,406.8㎡)를 29억원에 매입했다. 그런데 동두천시는 5월26일 제3회 공유재산심의위원회를 열고 생연동 523-1 외 7필지 토지(6,131㎡)와 건물 4동(2,790.68㎡)을 86억원(공시지가의 2배)에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출처: 유종규(2023년 5월 26일).‘동두천시-신흥학원 특수관계?’ 86억에 또 부동산 매입. 경기북부시민신문.http://simin24.com/?doc=news/r...  6)김연정(2024년 11월6일). ‘흉가체험 명소’ 앞 5성급 텐트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진실탐사그룹셜록. https://campaigns.do/discussio...         /가연피스모모에서 평화와 저널리즘의 교차점을 모색하는 일을 하고 있다. 갈등전환, 평화저널리즘, 소통을 키워드로 저널리즘을 통한 평화세우기의 비전을 키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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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라면 까? - 12.3 비상계엄령이 원했던 생각하지 않는 군인
 *이 글은 피스모모의 대안언론 '더슬래시 Theslash.online' 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살면서 이 말 한 번쯤 안 들어본 사람이 있을까요? 농담으로든 진담으로든,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많은 이들이 이 말을 듣고, 또 하곤 합니다. 좀 더 길게 풀어보자면 이런 식이죠. “하라면 하는 거지 뭔 말이 그렇게 많아.” 말이 많은 사람들은 욕을 먹게 됩니다. 방해되니까요. 일을 느리게 만드니까요. 자꾸만 딴지를 거는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말이 많다는 건 곧 생각이 많다는 겁니다. 결국 저 따옴표 안의 말들은 “생각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만 해라”라는 뜻인 거죠. 우리는 이것을 ‘상명하복’으로 여기곤 합니다.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다.” 군대의 작동 원리죠.  이를 증명하듯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12.3 내란 사태 당시의 방첩사 활동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위기 상황에 군인들은 명령을 따라야 한다고 강하게 생각한다.” 여 전 사령관은 거듭 강조합니다. “위기 상황이니까 1분, 2분, 10분, 20분 사이에 파바박 돌아가면 해야 할 일이 진짜 많다. 저희는 내려온 명령을 ‘맞나 틀리나’ 따지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여 전 사령관이 이끌던 방첩사의 중간 지휘관과 법무장교들은 달랐죠. 정성우 방첩사 1처장은 방첩사 요원들의 선관위 진입 및 서버 복사·압수 명령을 실행하기에 앞서 이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법무관들의 의견을 구했습니다. 7명의 영·위관급 법무관들이 절차적 위법성 문제를 제기하며 강력한 반대 의견을 제시했고, 이를 들은 정 처장은 현장의 부대원들에게 “절대 건물에 들어가지 말고 원거리에서 대기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짧은 회의 덕분에 선관위 서버는 불법 유출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군인이 그러진 못했습니다. 조선일보가 취재한 707 특수임무단 및 1공수여단 부대원들의 인터뷰에는 하루아침에 계엄군이 되어버린 이들의 당혹감과 혼란, 두려움, 좌절감, 배신감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국회 구조도 파악하지 못한 채 착륙했고, 국회의원을 다 끌어내라는 명령을 받고 공황 상태에 빠졌다. … 명령이라 일단 따랐지만, 무장하지도 않은 민간인을 상대로 707이 이사카(샷건)까지 들고 쳐들어가는 건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일부러 뛰지도않고 걸어 다녔다. (707 특임단 소속 A) 주변에서 ‘우리가 비무장 민간인을 상대하려고 이렇게 고생했느냐’ ‘군인을 그만두고 싶다’는 반응들이 나온다. (707 특임단 소속 B) 국회 보좌진이 군인들에게 “불법을 저지르지 말라” “국회에 진입하면 나중에 처벌될 것”이라고 했다. 비무장 시민을 마주한 부대원 일부는 ‘패닉’에 빠졌다. … 부대원들이 시민들에게 “제발 가까이 오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 민간인 상대로 작전을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당황했다. (1공수여단 소속 C) 버스에 탈 때까지도 도착지를 몰랐는데, 내리고 보니 국회였을 때 상부에 배신감이 들었다. … 국민들께 너무 죄송하고, 저희를 보고 놀란 시민들의 얼굴과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 실제 전쟁 상황이었으면 우리는 다 죽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우릴 그냥 쓰고 버리는 소모품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났다. (1공수여단 소속 D) 이들 계엄군을 이송하는 데 동원된 육군 특수작전항공단에서도 “조종사들이 자신들의 임무 수행 결과를 뉴스를 통해 확인하며 자괴감이 많이 들었다고 호소했다”라는 반응이 나왔죠.   이런 가운데 김현태 육군 특수전사령부 707 특수임무단장은 12월 9일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국민 여러분께 무거운 마음으로 깊이 사죄드린다”라면서, “부대원들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이용당한 가장 안타까운 피해자”라고 말했습니다. 김 단장은 자신이 무능하고 무책임한 지휘관이라며, 부대원들을 사지로 몰았다며, 부대원들이 많이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있다며 부대원들을 용서해달라고 간곡하게 청했습니다. 모든 책임은 자신이 질 테니, 자신이 모든 죄를 짊어질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요. 미워하고 원망하더라도 707 부대와 부대원들을 버리진 말아달라고요. 이상현 1공수여단장 역시 장병들이 불안해한다는 보고를 받았다면서 김 단장과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자신은 현장 지휘관으로서 책임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있지만, 국민들은 장병들을 많이 위로하고 격려해달라고요. 비난하지 말고 끌어안아 달라고요.   이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 ‘부하들은 죄가 없다, 죄가 있다면 지휘관을 따른 죄뿐이다. 책임은 내게 있다.’ 이는 한편으로 지휘관으로서 응당 보여야 할 모습이겠지만, 그렇다고 정말 모든 책임이 그들에게서 그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아마 그럴 순 없을 겁니다. 달리 보면 그 지휘관들 역시 거대한 ‘상명하복’ 연쇄 고리의 일부였으니까요. 면죄부를 주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잘못된 판단으로 부대원들까지 위험에 처하게 만든 지휘관들은 마땅한 책임을 져야겠죠. 그렇지만 지휘관 몇 명을 처벌하는 걸로 끝내거나, 온 군대와 모든 군인을 악마화하는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기 어려울 겁니다.  방첩사의 요원들이 적극적으로 명령의 ‘부당성’을 판단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세월호 유가족 사찰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대비 계엄령 검토가 문제가 되어 이루어진 ‘기무사 해체’로부터 비롯합니다. “당시 760명의 간부가 조직에서 쫓겨난 역사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방첩사 요원들 사이엔 ‘법적 테두리 내에서 임무를 수행한다’는 조직문화가 자리 잡았다”, “두 번 다시 과오를 범하지 말자는 부대원들의 결기가 상당하다”라는 한 군 관계자의 말에 실마리가 보입니다. 이들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거죠. 생각하지 않고 따른 명령이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요.   현 정부가 원했던 것이 ‘생각하지 않는’ 군인이었다는 점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이미 지난해 군인들이 ‘부당한 명령에 거부할 권한’과 관련한 정책을 폐기한 바 있죠. 문재인 정부 시기 만들어진 ‘군인복무기본정책서’에는 “상관의 명령이 위법한데도 불구하고 맹목적인 복종은 범죄”이며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됐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관련 내용을 모두 삭제했고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육군사관학교에서는 기무사 계엄문건 사태를 계기로 지난 정부에서 신설됐던 ‘헌법과 민주시민’ 수업을 올해 들어 없앤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민주사회에서의 민군관계, 헌법정신, 시민 불복종이나 운동에 있어서 군의 역할에 대해 가르쳤던 해당 수업은 ‘육사 정상화’라는 이름으로 군사법과 형법 등 법학 중심 수업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이 모든 게 일종의 예고편 혹은 복선이었다고 하면, 과한 해석일까요?  이번 내란 사태를 지켜보며, 아마 모든 군인은 ‘부당한 명령’에 복종하는 것의 위험을 깊이 새겼을 겁니다. 이제는 방첩사뿐 아니라 707 특임대도, 1공수여단도, 다른 많은 부대들도 부당한 명령 앞에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겠죠. ‘몰라서 그랬다’라거나 ‘시키니 따랐을 뿐이다’라는 핑계도 더 이상 나올 수 없을 겁니다. 몰랐다는 이유로, 항명할 수 없었다는 이유로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되어버린 사태를 온 국민이 보았으니까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비상계엄 발표 직후, 전군 지휘관에게 관련 내용을 전파하며 “명령 불응시엔 항명죄가 된다”라고 언급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김 전 장관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근거도 바로 그 항명죄에 있습니다. 군형법 제44조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반항하거나 복종하지 아니한 사람은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처벌한다.” 이는 정당하지 않은 명령에 불복한 사람은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해석을 가능케 합니다. 실제로 대법원은 “군인이라도 위법한 명령에 대해선 복종할 의무가 없다”고 판시한 바 있죠. 정당한 명령인지 어떻게 아냐고요? 헌법과 법률, 그리고 시민으로서의 양심을 준거로 삼아야겠죠. 너무 어려운 것 아니냐고요? 그러니 앞으로 더욱 강화해야죠. 전군을 대상으로 한 헌법과 법률 교육, 민주시민교육, 군인 기본권 교육, 그 밖에 진짜 ‘제복 입은 시민’을 키워낼 여러 방안까지요.  이것은 비단 군인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긴박했던 12월 3일 밤의 대치 상태를 둘러싸고 떠도는 많은 말들에서, 시민이기보다 군인인 사람들의 반응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군인에게 총기는 목숨인데 그 총기를 잡는 것은 총기 탈취이고, 이는 죽여달라는 행위나 다름없다. 저러다 죽어도 할 말 없다’라고 단언하는 댓글들을 보며 민간인과 군인, 전시와 평시도 구분하지 않고 “군복을 입지 않은 군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보게 됐거든요. ‘제복 입은 시민’이 가능하기 위해선, 시민이 먼저 ‘군복만 벗은 군인’이 아니어야만 합니다.  바라건대, 이번 내란 사태는 결국 ‘생각하지 않는’ 상명하복의 연쇄 고리를 끊어낼 계기가 될 겁니다. 부당한 명령을 생각 없이 따른 이들에게 책임을 묻고, 위험을 무릅쓰고 부당한 명령에 불복한 이들을 보호하고, 그럼으로써 앞으로도 부당한 명령에 따르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으로요. 그러다 보면 군인에게도 더 ‘안전한’ 군대가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군인도 그럴 수 있는 사회라면, 시민들도 그럴 수 있을 테고요. 그렇게 만들 의무가 이제 우리 시민들에게 있습니다.   <참고문헌> 「군형법」 고유찬·장윤. “"대북 작전으로 알고 나섰는데... 내려보니 국회였다"” (조선일보, 2024.12.06.) 김경준. “"계엄군 선관위 투입, 방첩사 법무장교 7명 모두 반대했다"” (한국일보, 2024.12.10.) 김명진. “'비상계엄' 지휘 김용현, 軍지휘관들에 "명령불응시 항명죄"” (조선일보, 2024.12.05.) 문재연. “육사, 올해부터 계엄에 대해 가르쳤던 '헌법과 민주시민' 수업 없앴다” (한국일보, 2024.12.10.)연합뉴스TV. “[특보/생중계] 김현태 특전사 제707 특수임무단 단장 기자회견|"707은 김용현에게 이용당한 피해자"” (2024.12.09.) 우태경. “"위법한 명령에 복종은 범죄"라 했던 국방부, 정권 바뀌니 내용 삭제” (한국일보. 2023.09.13.)윤예솔. “특수작전항공단 “영문도 모른 채 계엄군 이송, 자괴감”” (국민일보, 2024.12.09.) 차장희. “상관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계엄군, 처벌 대상?...대법원 판례 보니” (매일경제, 2024.12.07.) 최서인·양수민. “1공수여단장 "장병들 불안해한다, 국민이 안아달라"” (중앙일보, 2024.12.07.) 홍제표. “707단장 "우리는 김용현에게 이용당한 피해자"(종합)” (CBS노컷뉴스, 2024.12.09.) 홍지인·김정진. “여인형 "맞든 틀리든 군인은 명령 따라야…체포명단 기억안나"” (연합뉴스, 2024.12.07.)       /김엘림언론정보학과 북한학에 발을 담그고 미디어, 사회, 젠더, 통일, 평화 같은 것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평화를 더 배워보겠다며 시작한 국제정치학 공부 중에 전쟁과 젠더의 교차에 눈길이 머무르면서, 6.25 전쟁기 여성의 전쟁 경험을 연구했다. 피스모모 평화페미니즘 연구소와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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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군들을 위한 시: 지역에 살으리랏다!
우리 사회에 스며든 인구감소 문제는 정말 심각하죠. 때로는 ‘0.72’라는 출산율이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정말 홀로서기조차 불가능한, 소멸을 알리는 카운트다운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특히 도시보다 인구와 인프라가 적은 지역에서는 이 바람이 더욱 매섭습니다. 저출생 문제에 대도시 쏠림 현상까지 중첩되었기 때문이죠.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난 10월 24일 열린 제15회 아시아미래포럼 분과세션 1 ‘기로에 선 지역, 위기를 기회로’에서는 인구감소 시대에서 한일 양국 지역 사례와 정책을 다뤘습니다. 관계인구, 지역순환경제, 시민참여 에너지 정책 등 양질의 일자리와 탄소중립 실현, 다양성을 포용하는 공동체가 탄탄한 삶터로서의 지역을 만들기 위한 도전과 사례들로 가득 찬 시간이었습니다.   ‘관계인구’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기조발제를 맡은 다나카 데루미 일본 시마네현립대 교수이자 <관계인구의 사회학> 저자는 “인구가 줄어들어도 지역은 재생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발표를 시작했습니다. 2016년 일본에서 처음 등장한 ‘관계인구’는 ‘특정 지역에 지속해서 관심을 두고 관여하는 외부인’을 뜻합니다. 관광과 정주 사이에 있는 사람들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다나카 교수는 지역 주민들이 ‘정서적으로 고립’되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무슨 말일까요? 알고 보니 우리에게도 익숙한 감정이었어요. ‘자녀들이 도시로 나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이요. 그런데 다나카 교수는 이것이 문제라고 말해요. 정서적 고립이면서 지역의 진정한 문제라고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이라도 문제가 발생했을 때 주체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남의 일처럼 여겼다는 이야기예요. 그래서 다나카 교수는 외부인, 즉 외부에 있는 인재에 주목합니다. 외부인은 지역에 5가지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다고 하는데요, ①지역을 재발견하고 ②주민들의 자부심을 함양하고, ③새로운 지식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④지역 변화를 촉진하고, ⑤지역에 얽매임이 없기에 보다 자유롭고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죠.  시마네 현 오난초 아스나 지구의 사례를 한번 볼까요? 이 600명 정도 규모의 작은 마을에는 지상에서 높이 20m에 있는 ‘천공의 역’이라 불리던 우즈이(宇都井)역이 있었습니다. 2018년 JR산코센이 영업 종료로 이 특별한 역이 폐허가 될 위기에 처하자, 주민들은 ‘이나카 일루미네이션’ 축제를 시작했습니다. ‘이나카’는 일본어로 시골이라는 뜻으로, 시골에서만(!) 볼 수 있는 멋진 일루미네이션을 함께 즐기자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처음에는 주민들이 손수 진행하는 작은 행사였지만, 연간 2천여명의 관광객이 찾는 축제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고령의 주민들은 행사 진행이 점점 힘에 부치기 시작했고, 결국 행사를 폐지하자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이때 주민들은 ‘관계인구’의 도움을 받기로 했습니다. 관광객들은 축제를 구경하고 돌아가는 것에 그치지만, 관계인구는 축제의 준비부터 진행, 뒷정리까지 함께하기로 한 거예요! 지난해에는 시마네 현립대학 학생들을 포함한 60여명의 관계인구가 축제 전 과정에 참여했습니다. 이전까지는 뒷정리가 너무 힘들어 행사의 꽃(!)인 뒤풀이도 없었는데, 지난해에는 관계인구들과 즐거운 뒤풀이까지 가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주민들은 이제 관계인구를 위해서라도 축제를 그만두지 않겠다고 다짐하셨다고요.😀  다나카 교수는 관계인구가 가져온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를 강조합니다. 바로 ‘지역 재생 주체의 형성’이죠. 외지에서 온 관계인구와 함께하며 지역 주민들이 정서적 고립에서 벗어나 문제 해결의 주체로 거듭난 것입니다. 관계인구의 구성원이 바뀌더라도 주민들의 주체성이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지역 쇠퇴의 악순환이 지역 재생의 선순환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주민과 관계인구의 창의적인 발상을 통해 지역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① 신안군: 햇빛과 바람, 그리고 연금 우리나라 지자체 중에 섬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곳, 알고 계세요? 바로 전라남도 신안군입니다. 인구 3만8천여명 규모의 신안군은 대한민국 전체 약 3천여개 섬 중 천여개 섬을 가지고 있대요. 또한 전국 최고 수준의 일조량을 자랑하는 지역이기도 하고요. 섬과 햇빛, 바람이라는 지형적 조건을 활용해 신안군은 태양광과 지주식 해상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산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뭔가가 더 있습니다.😎 신안군은 2018년 10월 전국 최초로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익 공유 등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습니다. 이 조례의 핵심은 태양광 발전을 통한 개발이익을 지역 주민과 공유하는 것입니다. 햇빛과 바람은 자연이 준 것이니까요.😀 구체적으로는 발전회사가 수익의 30%를 지역 주민들과 공유하면, 사업 인허가와 행정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수익을 주민들과 나누는 제도가 바로 ‘햇빛연금’이에요. 2021년 첫 지급액 17억원을 시작으로 3년 만에 지급 총액이 100억원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햇빛연금은 지역화폐로 지급되기에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된다네요. 나아가 신안군은 이 조례를 바탕으로 ‘햇빛아동연금’ 제도를 신설하고, 농협과 협력하여 관련 전용 상품도 개발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인구 고령화와 지방소멸 위기 고위험군에 포함된 신안군 인구가 햇빛연금 수혜 지역을 중심으로 소폭 증가했습니다. 2014년 이후 7년 만에 처음으로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해, 2023년 9월까지 248명이 순증가했다고 합니다.  ② 영암군: 로컬상생과 수평적 경제로의 전환 인구 5만여명의 전라남도 영암군은 여느 지역처럼 지역소멸 문제로 고민하는 곳입니다. 영암군에는 ‘대불국가산단’이 있습니다. 1997년부터 가동한 대불산단은 현재 2만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재직하며 지역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곳입니다. 하지만 재직자 절반 이상이 인근 남양과 목포시에 거주하고 있어요. 영암에서 돈을 벌어 다른 지역에서 돈을 쓰는 셈이죠. 농업 분야의 양극화도 심각합니다. 영암군 5만여명 중 1만2천여명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전체 농가 중 7%에 불과한 대규모 농가(5만 헥타르 이상)가 영암군 전체 농지 면적의 약 5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네요.  그 때문에 영암군은 지역의 부(富)를 증식하고, 지역공동체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을 핵심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지역소멸이 단순한 인구감소를 넘어 지역사회의 경제적·사회적 기반이 무너지는 과정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영암군은 ‘로컬 상생과 수평경제로의 전환’을 기조로 하는 지역순환경제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협약을 맺고 계속 교류하고 있는 영국 프레스턴의 ‘부유한 지역공동체 만들기(Community Wealth Building: CWB, 공동체자산구축)’ 모델을 참고하여 ‘영암형 지역순환경제’ 정책을 펼치고 있어요. 그러기 위해 영암군은 사회적 가치가 있는 물품의 판매와 구매를 통한 일자리 창출, 사회적 가치 기반의 경제조직 설립 등을 추진하고 있어요. 또 지자체 자산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예산이잖아요? 예산을 지역경제 순환의 핵심 동력으로 활용하고자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예컨대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기업에 우선권을 부여하거나, 영암 지역에 있는 자재와 인력을 활용하는 업체인 경우 다음번 계약 시 해당 사항을 반영하는 등의 방식이죠. 나아가 공공조달시스템이나 ESG 관련해서 주변 시군과 광역 공공조달권도 함께 추진해 볼 예정이라고 해요.  ③ 부여군: 지역화폐로 순환경제 박차 인구 약 6만여명의 충청남도 부여군. 백제의 수도로 널리 알려진 역사도시라 꽤 친숙하실 텐데요. 부여 역시 다른 농촌 지자체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인구감소, 이로 인한 소비 침체, 그리고 인근의 대전, 세종, 천안으로의 역외 유출과 같은 문제들이요. 특히 농업과 자영업 종사자 비중이 높은 부여군의 특성상, 인구도 돈도 바깥으로 나가니 남아있는 주민도 떠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구조 속에 있는 것이죠.😥  이러한 유출을 막고 지역 안에서 부(富)를 불리기 위해 부여군은 지역화폐 ‘굿뜨레페이’를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부여군의 인구가 6만명인데 굿뜨레페이 가입자는 7만5천명을 넘어섰어요. 이는 인근 지역 주민들도 부여의 지역화폐를 활발히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지역화폐가 실질적 효과를 내려면 골목상권, 소상공인 등 자영업자 쪽으로 돈이 흘러가야 의미가 있는 거잖아요. 부여 굿뜨레페이는 부여군 내 가맹점 비율이 94%에 달하고, 사용액도 2020년에 47억에서 2023년에 56억원으로 골목상권에서 사용되는 비중이 높아졌다고 합니다. 이러한 성과 뒤에는 행정의 많은 노력이 숨어있습니다. 소상공인 매장 이용 시 최대 10%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신용카드와 겸용을 제한하는 한편, 독자적인 블록체인 시스템을 따로 개발·관리해 굿뜨레페이 가맹점 수수료는 0원이라고 합니다. 박정현 부여군수는 “지역화폐 없이 살아가기 불편한 지역으로 확 바꿨다”고 표현할 만큼 굿뜨레페이에 자신감을 내비쳤습니다.  앞서 살펴본 사례들은 각 지역의 특성을 살린 혁신적인 접근을 보여줍니다. 관계인구를 통한 일본의 지역 축제 활성화, 신안군의 지리적 이점을 활용한 신재생에너지 사업과 이익 공유 모델, 영암군의 부유한 지역 공동체를 위한 수평적 경제로의 전환, 부여군의 지역화폐 활성화 등 각 지역의 노력이 의미 있는 결실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규모 산업단지나 대기업 유치와 같은 기존 문법이 아닌, 지역의 고유한 특성을 잘 파악하고 활용한 맞춤형 정책이 새로운 해결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박은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더나은사회연구센터장은 지역 문제의 핵심을 “경제·사회적 불평등으로 시민들의 삶이 침해받고, 이러한 문제들이 동시다발적이고 복합적으로 목격된다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지역의 삶의 질 저하는 인구 유출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지역 쇠퇴를 가속화하는 악순환을 만들어냅니다. 이러한 악순환을 끊고 느리지만, 천천히 지역의 자산과 가치를 늘리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래서 한겨레는 지역 정책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다양한 지역 전환 사례를 발굴, 확산하기 위해 ‘지역 조사 및 평가’(가칭)를 기획하고 있다고 합니다. 전국 226개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환경, 보건복지, 경제와 사회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정량·정성적 조사를 진행하려 해요. 단순히 줄세우기식 순위 발표가 아니라 지역의 인구 규모와 인프라 등을 감안하고, 지역 특색에 맞춰 노력하고 성과를 보이는 곳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조사 항목에는 삶의 전환이 이뤄질 수 있는 환경과 고용 안정은 물론 사회연대경제 활성화까지 포괄한 경제, 삶의 튼튼한 안전선인 복지, 각자의 다양성을 포괄할 수 있는 사회 등 폭넓게 살펴볼 예정이라네요. 아마 2025년 상반기에 결과를 보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지역의 공간적, 기능적 범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요? 그 범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는 지역 정책의 핵심 과제입니다. 이날 토론에서 서재교 우리사회적경제연구소 소장은 주민들의 생활권, 정책 범위, 공공조달의 역할이라는 3가지 관점에서 접근할 것을 제안했어요. 지역의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적절한 정책적 개입이 필요할 텐데요. 특히 앵커 기관과 사회적경제, 지역순환경제 간의 상호작용과 경제적 승수효과를 면밀히 보고 지역과 중앙정부가 서로 협력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 이 콘텐츠는 뉴스레터 스피커스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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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20시간 일하라던 윤석열, 조폭 때려잡듯 노동자들 몰아쳤다. (2)
편집자주: 1회 업로드 할 수 있는 용량 문제로, 이번 콘텐츠는 두 편으로 나눠서 올립니다. 2편입니다. [민주노총×슬로우뉴스 공동 기획]  적대적 노동관이 부른 시스템의 붕괴… 안정성은 후퇴, 양극화는 심화. ③ 습관적 ‘가짜 출근’ 윤석열의 노동 정책:  윤석열 탄핵 이후의 과제. 안전운임제가 폐지되면서 화물 노동자들 소득이 크게 줄고 노동시간은 크게 늘었다. 한겨레가 만난 화물 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안전운임제 시행 때는 운임이 건당 44만7000원이었는데, 지금은 31만 원으로 떨어졌다. 월 소득도 400만 원에서 200만~250만 원으로 줄었다. 소득을 메꾸려면 더 많이 일해야 해서 과속에 과로할 수밖에 없다.” 화물연대 실태 조사에 따르면 월 소득이 2022년 378만 원에서 2023년 241만 원으로 줄었다. 월평균 노동 시간은 264.5시간에서 309.2시간으로 늘었다. 응답자의 70%가 졸음운전이 늘었다고 답변했고 66%는 과속이 늘었다고 답변했다. 전국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 조사에서는 운수사의 98%가 운송료가 줄었다고 답변했다. 민주당이 안전운임제 재도입을 추진하고 있고 국민의힘은 가이드라인만 제시하는 표준운임제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건폭 몰이 이후 건설 현장은 초토화되다시피했다. 건설근로자공제회 조사에서는 2022년과 비교해서 연간 소득이 평균 86만 원 가까이 줄었다. 퇴직공제부금 가입자도 지난해 12월과 비교하면 올해 6월 기준으로 10만 명 가까이 줄었다. 많은 현장에서 “노조 조끼를 벗고 오라”며 노골적인 노조 탄압이 일상화됐다. 철근콘크리트연합회 등 사측은 노임 단가를 2만 원 삭감하겠다고 요구하고 있다. 최악의 노동 지표, 무너진 것들을 일으켜 세워야 할 때다.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은 올해 8월 기준 38.2%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취업률이 개선된 것처럼 보이지만 65세 이상 취업률이 늘어난 효과가 크고 청년들 가운데 비경제활동인구의 비율이 늘어나는 추세가 심상치 않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5~34세 청년층 ‘쉬었음’ 인구가 지난해 3분기 33.6만 명에서 올해 3분기 42.2만 명으로 늘었다. 자발적 사유가 28%, 비자발적 사유가 72%였다. 한국은행은 비자발적 사유의 ‘쉬었음’이 늘어난 이유를 고용의 질이 추세적으로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려우니 구직 활동을 포기하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은행은 “이들이 노동시장에서 영구 이탈하거나 니트족화 될 가능성에 유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올해 임금체불액은 사상 처음으로 2조 원을 넘을 전망이다. 이미 지난 7월까지 체불액이 지난해 1조 7846억 원의 70% 수준에 이른다.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2001년 2748명에서 2023년 2016명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날마다 5명 이상이 일터에서 죽고 있다. 한국의 산재 사망자 수는 OECD 최고 수준이다. 해마다 등락이 있지만 여전히 10만 명당 5명 안팎으로 멕시코나 튀르키예와 비슷한 수준이다. 비정규직 비율도 크게 늘었다. 올해 8월 기준 비정규직 비율은 전체 임금노동자 38%에 이른다. 임시 일용직 노동자의 월 평균 임금은 179만 원으로 정규직 노동자 421만 원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300인 이상 사업장과 그 이하 사업장의 임금 격차도 크다. 중위소득 밑도는 최저임금, 위험 수준. 최저임금 인상률도 역대 두 번째로 낮았다. 첫째, 내년 최저임금 인상은 물가 상승률에 못 미친다. 위험한 수준이다. 중위 소득을 밑돈다. 2018년에 잠깐 넘었지만 다시 2010년 초반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다. 둘째, 여전히 공익위원들의 역할이 너무 크다. 노동자 위원과 사용자 위원, 공익위원이 각각 9명인데 공익위원들이 들고 온 안이 결론이 된다. 셋째, 최저임금이 을들의 문제로 변질됐다. 주휴 수당과 쪼개기 알바 논란이 대표적이다. 이상헌(ILO 고용정책국장)은 “자영업자가 어려운 근본적 원인과 구조적 환경은 도외시하고 현상을 본질인 것처럼 호도한다”고 지적했다. “최저임금이라는 건 그 자체로 협상력이 낮을 수밖에 없는 하층부 노동자를 돕기 위한 비시장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의 개입이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이 제도 자체는 최저임금 당사자의 협상력을 기초로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가장 폭력적이고 획일적인 방식으로 그 낮은 하층 노동자의 협상력을 보완하는 제도다. 그래서 그 제도적 기초를 제대로 쌓아 놓는 게 중요하다. 다른 논의는 모르겠지만, 법적‧제도적‧정책적 기초를 제대로 쌓아야 한다. 그건 ‘사회적인 책임’이다.” 노동조합 조직률 2년 연속 하락. 윤석열 정부의 노조 탄압의 영향이 컸다. 노동조합 조합원 수는 지난해(2023) 기준 274만 명, 전체 가입 대상 2103만 명의 13.0%로 줄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이 각각 116만 명과 109만 명이다. 특히 건설노조 조합원은 지난해 1월 7.3만 명에서 올해 12월 4.5만 명 수준으로 줄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비정규직 노조 가입률은 2023년 8월 기준 2.77%까지 떨어진 상태다. 윤석열 정부 2년 7개월, 노동자들의 삶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어렵게 구축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와 사회적 연대 구조도 바닥부터 무너졌다. 결론: 노란봉투법부터 다시 시작하자. 비상계엄과 탄핵은 윤석열의 자폭에 가까웠지만 윤석열 정부의 몰락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이른바 4대 개혁은 뭐 하나 제대로 추진된 게 없고 노동 개혁은 퇴행을 거듭했다. 우리는 이제 탄핵 이후 대선 국면에서 새로운 노동 의제를 제안하고 노동 개혁의 판을 다시 짜야 한다. 노란봉투법을 다시 논의해야 하고 안전운임제를 복원하고 확대 적용해야 한다. 최저임금도 최소한 물가 상승률 이상을 반영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비정규직 차별 해소와 플랫폼 노동자 보호 입법도 서둘러야 한다.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라는 원칙을 바로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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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세계, 다시 만날 세계
12/22 한남동 대통령 관저 부근, 집회 막바지에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따라 불렀다. 가사를 흥얼거리다 집회의 순간을 정리해보았다. 특별한 기적을 기다리지마 눈 앞에선 우리의 거친 길은 알 수 없는 미래와 벽 바꾸지 않아, 포기할 수 없어 (중략)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그려왔던 헤매임의 끝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 언제까지라도 함께 하는 거야 다시 만난 나의 세계 소녀시대, <다시 만난 세계> 가사 중 12/21일 동짓날 남태령. 그 곳에서 긴 밤 지새운 이들을 떠올린다. 영하 6도, 사방에 어둠으로 가득하고 경찰차 바리케이트가 쳐진 날이다. 이 곳에 고립된 시민들은 날이 밝기까지 긴 밤을 지샜다. 이대로 꼼짝없이 고립되는 건 아닌가 걱정하던 찰나 소식을 들은 시민들은 일제히 남태령고개로 넘어와 집회에 자리했다. 28시간 뒤, 물러나지 않을 것 같던 경찰차 바리케이트는 시민들의 힘으로 물러갔다. 동학농민이 넘지 못한 우금치를 후대가 넘은 순간이자 시민들의 승리를 눈으로 목도한 순간이기도 하다. 트랙터를 몬 농민들은 남태령을 지나 대통령 관저 부근 한남동으로 향했다. 시민들의 호위와 응원을 받으며 끝까지 시위에 참여했다. 광장에 모인 여성,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농민, 동물권, 장애인, 어린이, 참사유가족, 노인 등. 다시 만날 세계를 만나기까지 가사처럼 숱한 슬픔을 지나온 이들이다. 윤석열 정부 이후 이들이 나아갈 미래의 벽은 막막하여 빛을 볼 수 없었다. 지나가지 않을 깊은 어둠을 마주했다. 그보다 차가운 현실정치의 냉담함을 오롯이 홀몸으로 견뎌야만 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아랑곳않고 함께 연대했다. 먹을 것으로, 발언으로, 후원으로, 손난로로, 자리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서로가 서로를 돌보았다. 보이지 않던 빛이 어둠을 밝히고 추위는 견딜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촛불을 넘어 꺼지지 않는 LED 응원봉을 든 시민들이 추위에 아랑곳 않고 다시 광장에 모였다. 아니 모인 곳 어디든 광장이 되어 계엄령으로 무너진 민주주의의 본질을 회복했다. 여의도, 광화문, 남태령고개 그리고 한남동 관저 어디든 시민들은 광장에 모여 목소리 외쳤다.  산 자는 죽은 자를 기억하고 현재를 살아내는 이들이다. 산 자는 목격한 이들이고 역사를 만들어간다.  불평등에 억눌린 여성들의 분노와 연대를. 성소수자가 섰던 시청광장을 극우개신교에게 내어주며 차별을 보인 서울시청의 폭력을. 20년 넘는 시간동안 이동권 투쟁을 하며 변화의 물결을 이어오던 전장연을. 세월호 폭우로 숨진 세 모녀를 이태원과 아리셀 그리고 채상병 등 참사를 겪은 유족들에게 사과없이 거부권을 남발한 채 등한시하던 윤석열의 타자화를. 서울로 넘어오던 농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경찰들을. 기후위기의 악당이 되었음에도 이를 등한시하던 정부의 소홀함을 산 자는 광장을 통해 목격하고 역사를 이어나갔다. 나 역시 이들을 보며 지역농민들의 목소리에 소홀했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물, 전기, 가스를 비롯농산물 등 지역의 자원을 착취하는 서울 중심주의를 돌아보고, 이주노동자와 원주민의 문화나 언어 차이에 이질감에 불쾌를 표하던 때를 반성하게 된다. 어쩌면 변화는 나와 나를 마주한 세계를 돌아볼 때 출발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 옆에 50대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응원봉을 들고 다만세를 따라부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50대가 20대였던 시절에 부른 임을 위한 행진곡을 지금의 20대가 따라 부르고 20대를 지나 50대가 된 이들이 응원봉을 들고 다만세를 따라 부르는 모습은 생경하면서도 이미 다시 만난 세계에 접어든 것 같았다.  나이에 권위를 부여하며 변화를 거부하는 이로만 여겼던 중년도 변화의 물결에 따라가고 있음을 보았다. 작은 변화는 아주 가까이서 일어나고 있었다. 광장은 다시의 장이겠다. 만나기 어려울 것 같은 세대의 벽이 허물어지고, 의제를 만나 다시 생각하게 한다. 잃었던 기회를 얻고 광장에서 ‘다시‘ 만난 이들 은 두 번 다시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엄혹한 사회의 전언을 부수고 다시,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가고자 한다. 고로 이 시대에 광장이 꼭 필요하다. 기회를 잃은 이들이 다시 기회를 갖고 발언하기 위해, 연대하기 위해선 광장이 필요하다. 단, 그저 광장에 있었다는 만족감에 머물러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윤석열이 자리에 내려오고 차기 대선 후보가 대통령 자리에 앉았을지라도 세상은 극적으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8년 전 박근혜 대통령 퇴진 이후 광장 민주주의와 일상의 민주주의의 괴리가 일어났다. 탄핵에 쏠려 정치,경제,노동, 기후위기,이주노동자, 어린이, 여성,소수자 등의 의제가 일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렇다면 일상 속에서 광장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수 천명이 모이지 않아도, 꼭 물리적 광장이 아닐지라도 적은 수로나 온라인에서도 광장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민주주의는 완벽한 제도가 아님을 안다. 그러나 완벽하지 않기에 우린 가능성을 염두한다. 가능성이란 빈 틈으로 의견을 주고받고 틈을 메우는 시도가 광장에서 이뤄지기에. 감정적인 혐오를 지양하고 오늘날 집회에서 낸 목소리를 더욱 의제로 빌드-업 할 수 있도록 하려면 시민들의 관심과 목소리를 내려는 동력이 필요한 이유다. 아울러 다시 만난 세계는 앞으로 다시 만날 세계이기도 하다. 정치인들은 다시 만날 세계가 다시 절망으로 빠지지 않도록, 시민은 지금도 변화한다는 사실을 염두하며 상처입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길 바란다.  우리는 탄핵 이후의 삶을 그려야 할 것이다. 희미한 빛을 쫓아가 기회는 자신이 품은 질문에 스스로 대답할 때 마주할 때 생긴다는 것을 잊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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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투세 폐지와 자사주 매입은 삼성전자 주가 상승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올 한 해는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요. 연말이 되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신경 쓰고 있는건 ‘자산 포트폴리오 재정비’입니다. 그중 개인적으로 가장 큰 고민거리인 항목은 2021년 동학개미운동이 일어났을 때 매수한 ‘삼성전자’인데요. 주가에 영향을 미칠만한 요소들에 대하여 정리해 보고, 포트폴리오 정비를 위한 결단을 내려야겠습니다. 📉비상계엄, 상속세율 등으로 인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코리아 디스카운트란 한국 기업이 가치에 비해 주가가 저평가되는 현상을 말하는데요. 최근 생각지도 못한 사태로 인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입증되었습니다. 지난 3일 한밤중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고 6시간 만에 해제되는 사태가 있었는데요. 4일 외국인들은 5,300억원 이상을 순매도했습니다. 이로 인한 여파는 지속되고 있어 주가 하락과 더불어 회사채 시장도 얼어붙고 있어 기업의 자금조달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갑작스러운 사태 외에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되던 문제인 ‘상속세’ 문제도 있는데요. 가장 높게는 60%에 이르는 상속세 최고세율을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 주주 환원에 적극적인 밸류업 기업에 투자하면 배당소득 증가분을 낮은 비율로 분리 과세하는 소득세법 개정안 등이 발의되었었는데요. 11일에 부결 처리되어 밸류업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금투세 폐지와 자사주 매입으로 인한 주가 상승 기대 국회는 10일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와 가상자산 과세 2년 유예가 핵심인 소득세법 개정안을 전격 통과시켰는데요. 금투세는 투자로 얻은 연간 수익이 국내주식/채권 5,000만원, 해외투자 250만원 등을 넘으면 20~25%만큼 부과하는 세금을 말합니다. 이는 2023년 1월부터 도입하기로 했지만 2년이 미뤄져 25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는데 또다시 미뤄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지난 11월 14일 4년 5개월만에 4만전자가 등장하면서 삼성전자는 자사주를 10조 매입하기로 했는데요. 삼성전자는 앞서 자사주 소각으로 주가 상승 효과를 본 경험이 있는데요. 2015년 말 11조4000억원, 2017년 초 9조 3,000억원의 자사주 매입·소각 계획을 발표했었고, 2017년의 경우 자사주 매입 계획 발표 이후부터 주가가 계속 오름세를 보이며, 9개월여 만에 50%가량 상승했었습니다. 반도체 전망은 대체로 맑지만 뒤처진 시간을 따라잡는 것이 관건  고종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략기획실장은 "내년 글로벌 반도체 설비투자는 주요국들의 반도체 지원책에 힘입어 올해 대비 7.9% 증가한 1,872억 달러로 전망된다"라고 밝혔는데요. 삼성전자 송명섭 연구원은  “반도체 재고가 넘쳐나서 업황이 좋지 않다”라고 밝혀 전망에 대한 의견은 견해에 따라 조금 나뉘는 것 같아요. 하지만, AI와 양자컴퓨터 등의 산업이 급진적으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으로 보았을 때  반도체 산업 전망은 대체로 맑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경쟁업체들의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조금은 버거워 보이는데요. 일례로 엔비디아는 당초 2026년 출시 예정이었던 AI 가속기 ‘루빈’을 최대 6개월 앞당겨 빠르면 내년 3분기 내놓을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여러 가지로 혼란한 상황 속에서 누군가는 위기로 느끼고 국장을 떠나고, 누군가는 저가로 매입하는 기회로 삼는 모습을 보이면서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데요. 아직도 저는 입장을 정리하지 못한 채 고민 중 입니다. 여러분의 자산 포트폴리오는 어떠신가요?  삼성전자와 국장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자유로운 의견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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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20시간 일하라던 윤석열, 조폭 때려잡듯 노동자들 몰아쳤다. (1)
편집자주: 1회 업로드 할 수 있는 용량 문제로, 이번 콘텐츠는 두 편으로 나눠서 올립니다. 1편입니다. [민주노총×슬로우뉴스 공동 기획]  적대적 노동관이 부른 시스템의 붕괴… 안정성은 후퇴, 양극화는 심화. ③ 습관적 ‘가짜 출근’ 윤석열의 노동 정책:  “한 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 2021년 7월, 윤석열이 대선 후보 시절 했던 말이다. “2주 바짝 일하고 그 다음에 노는 거지.” 많은 사람들이 경악했지만 윤석열은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됐고 이듬해 3월 대통령에 당선됐다. 주 120시간 발언은 비극의 시작이었다. 윤석열 정부 노동 정책은 원칙도 철학도 없었다. 이 글은 세 가지 주제로 구성된다. 첫째, 오락가락했던 노동 시간 정책과 둘째, 화물연대와 건설노조에 대한 집요한 공격, 셋째, 노동 정책의 퇴행을 살펴본다. “바짝 일하고 쉬라고? 그러다 죽어요.” 주 120시간이면 5일 동안 24시간 연속 일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금요일까지 일하고 토요일에 죽고 일요일에 장례식을 치른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기도 했을 정도다. 휴일 없이 일한다고 치면 하루 17시간씩 일해야 한다. 2차 대전 때 독일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노동시간이 주 98시간이었고 산업혁명 시절 영국의 노동시간도 100시간을 넘지 않았다. 전태일 열사 시절 1970년대 한국도 하루 15시간 정도였다. 민주당이 “쌍팔년도 퇴행적인 인식”이라고 비난하자 윤석열은 “발언의 취지와 맥락을 무시하고 특정 단어만 부각해 오해를 증폭시키고 있어 안타깝다”고 반박했다. 정작 윤석열은 ‘가짜 출근’ 쇼. 청와대에서 하루도 자지 않겠다며 집무실과 관저를 각각 용산과 한남동으로 옮긴 윤석열은 정시 출근을 하지 않는 날이 많았다. 출근이 늦을 때면 관저에 대기하고 있던 빈 차를 먼저 보내고 윤석열은 몇 시간 뒤 다른 차를 타고 뒷문(남문)으로 출근하는 경우가 숱하게 많았다는 폭로가 나왔다. 심지어 비상계엄을 선포한 3일에도 위장 출근 행렬이 8대나 8시52분에 출발했고 정작 윤석열이 탄 차를 별도로 9시42분에 출발했다. 11월29일에는 가짜 출근 행렬이 9시2분에 출발했고 진짜 출근 행렬은 오후 1시9분에 출발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한 달 동안 정상적으로 출근한 날은 이틀밖에 안 됐다. ‘가짜 출근’ 쇼는 경찰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한다. ‘위장제대’라는 은어도 있었다. 전직 경찰 고위 간부가 이런 말을 했다. “2022년 11월 도어스테핑 중단 이후 늦게 출근하는 날이 늘었다. 그때부터 차량 행렬을 두 번씩 내보내기 시작했다.” 불길한 징후. 윤석열 발언의 맥락을 살펴보면 주 52시간 제도가 경직적이라 인력 운용에 어려움이 있으니 월간 단위로 총량을 정하고 유연하게 적용하자는 취지라고 이해할 수 있다. 52시간씩 4주면 208시간이니 몰아서 쓸 수 있게 하자는 의미다. 논란이 확산하자 연장 근로를 1주일 단위가 아니라 월 단위나 분기 또는 반기 단위로 늘려서 관리할 수 있게 하되 총량을 줄인다는 방안을 내놨지만 “바짝 일한다”는 당초 취지에서 달라지지 않았다. 연장 근로 총량을 월 52시간이나 분기 140시간으로 정하면 주 69시간까지 가능하다는 개편안을 내놓기도 했다. 노동 시간 단축의 흐름에 역행하는 데다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심각하게 위축할 수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주 60시간 근무만 해도 고용노동부의 과로사 기준을 초과한다. 주 60시간 이상 근무한 노동자의 뇌혈관계 질병 산재 승인율은 93%에 이른다. 52시간 이하에서 승인율은 10~20% 수준인 것과 비교된다. 산업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2020∼2022년까지 3년 동안 30명 미만 사업장에서 뇌혈관질환과 심장질환(뇌심혈관계 질환)으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는 883명, 같은 질병으로 숨진 1458명의 61%였다. 52시간 규제를 적용받지 않은 소규모 기업에서 과로사가 많았다는 이야기다. 돌아보면 이날 윤석열의 발언은 윤석열 정부 노동 정책의 방향을 예감할 수 있는 불길한 징후였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전태일 이전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해프닝으로 끝날 것 같았지만 주 120시간은 명실상부 윤석열의 노동 공약 1호였고 2년 반 동안 이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120→92→69→60시간 오락가락 정책. 한국의 법정 근로시간이 주 40시간으로 줄어든 게 2003년이다. 법정 근로시간과 최장 근로 시간은 별개였다. 2018년까지는 주 68시간을 넘지 못했는데 문재인 정부 들어 주 52시간으로 줄었다. 주 68시간일 때는 법정 근로 40시간에 연장 근로 12시간과 휴일근로 16시간까지 가능했다. 하루 2~3시간 야근에 주말 이틀 출근까지 가능한 구조였다. 그런데 최장 근로 시간이 52시간으로 줄면서 연장 근로와 휴일 근로를 합쳐 주 12시간까지만 가능하게 됐다. 2021년부터는 5인 이상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됐다. 윤석열의 120시간 발언은 이때 나왔다. 실제로 정권을 잡자마자 노동부가 연장 근로시간을 월 단위로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나섰고 1주일에 최장 92시간까지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논란이 확산하자 한발 물러서는 것 같았지만 92시간이 80.5시간으로 줄었고 다시 69시간으로 줄었을 뿐 퇴행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윤석열이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며 보완을 지시해서 나온 안이 ‘64시간 상한 캡’이었고 다시 ‘60시간 상한 캡’으로 줄었다. “120시간 바짝 일하고”가 “60시간 바짝 일하고”로 줄어들었다. OECD 평균보다 150시간 더 일한다. 한국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오래 일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2022년 기준으로 연간 1901시간, 2023년은 1874시간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OECD 평균보다 150시간 이상 길다. 윤석열 정부는 일부 업종을 중심으로 연장 근로를 확대하겠다며 미련을 버리지 못했지만 올해 들어 총선 패배와 김건희 이슈 등으로 정책 동력을 소진하느라 진도를 뽑지 못했다. 화물연대의 끝나지 않은 싸움. 화물연대는 윤석열의 적대적 노동 정책의 첫 희생양이었다. 화물연대는 2022년 6월 안전운임제를 확대 적용해 달라며 파업에 돌입했다. 윤석열은 “안전운임 확대하라”는 요구를 업무 개시 명령으로 찍어 눌렀다. 안전운임제는 화물운송 노동자의 과로와 과속, 과적을 방지하고 적정 운임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다. 2020년 1월, 한시적으로 도입됐다가 3년 일몰 기간이 다 돼 종료됐다. 윤석열은 “화물연대 파업은 북핵 위협과 같다”는 막말을 쏟아냈다. 참모들과 회의에서는 “불법 행위와 폭력에 굴복하면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며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범죄로부터 국민을 지켜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윤석열은 업무 개시 명령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동원했다. 운수사업법에 따르면 “국가 경제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우려가 있을 때” 업무 개시 명령을 발동할 수 있지만 윤석열은 단순히 파업을 찍어 누르기 위해 발동했다. 업무 개시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3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화물연대는 결국 그해 12월 조합원 62%의 찬성으로 파업 철회를 결정하고 복귀했다. ILO(국제노동기구)는 보고서를 내고 “한국 정부는 화물 노동자의 작업 중단이 어떻게 국민의 생명과 건강, 안전을 위험에 빠뜨렸는지 설명하지 못했다”면서 “한국 정부의 업무 개시 명령 발동은 파업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를 침해(infringed)한 것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표적 수사와 프레임 조작, 건설 노조 때리기. 화물연대를 찍어 누른 윤석열은 건설노조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건폭’은 윤석열이 만든 용어다. 2023년 2월, “임기 내 건설 현장 갈취·폭력 행위는 반드시 뿌리 뽑겠다”고 선언한 뒤 경찰이 나서서 특별 단속을 시작했다. 건설 노조 사무실을 압수수색 했고 1000명 이상의 조합원들을 소환 조사했다. 윤석열이 “노조 부패는 공직·기업 부패와 함께 우리 사회에서 척결해야 할 3대 부패다”라고 했고 원희룡(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이 맞받아서 “건설노조는 노조의 탈을 쓰고 돈을 뜯어가는 약탈집단”이라고 비난했다. 명백한 표적 수사였고 정당한 노조 활동을 범죄로 몬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경찰은 건설노조가 회사에 조합원 채용을 요구한 게 강요라고 봤다. 다른 노동자들의 일할 권리를 침해한다는 논리였다. 구조적 문제를 봐야 한다. 한국의 건설업은 계약직과 일용직 노동자들을 알음알음 소개로 채운다. 건설근로자공제회에 따르면 84%의 노동자들이 인맥으로 일자리를 얻었고 6%가 직업소개소를 통해서 왔다. 건설 현장은 가뜩이나 단기 비정규직 일자리가 많다. 건설노조가 채용 교섭을 맡게 된 건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에서 건설노조의 조합원 채용 협의가 시스템으로 자리 잡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건설 현장에서 결원이 발생하면 노조에 통지하거나 지원자를 배치하도록 요구한다. 고용 불안정을 해소하고 불법 하도급과 중간착취를 줄이는 해법이다. 윤석열이 문제 삼은 타워크레인의 월례비도 마찬가지다. 월례비는 밤샘이나 돌발 작업 등을 의뢰하면서 추가로 지급하는 위험수당이라고 할 수 있다. 연장 근로 수당과 급행비 등을 더한 개념이다.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2023년 11월 논평을 내고 “건설노조에 대한 수차례 압수수색, 고액의 과징금 부과, 조합원 구속 등 사법적 괴롭힘과 낙인찍기를 포함해 노조 활동을 심각하게 탄압했다는 보고에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양회동의 죽음이 말하는 것. 2023년 5월 경찰 조사를 받던 양회동(건설노조 강원지부 지대장)이 분신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양회동은 “정당하게 노조 활동을 했는데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라니 자존심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글을 남기고 몸에 불을 붙였다. 피해 업체들이 협박과 강요가 없었다는 탄원서를 냈는데도 수사가 계속됐다. 양경수(민주노총 위원장)는 양회동 영결식에서 “아픈 사람이 더 아픈 사람을 위로하고, 고통받는 사람이 더 고통스러운 사람을 위로하는 잔인한 현실을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가 양회동의 분신 방조했다는 의혹을 제기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이 CCTV 영상을 조선일보에 유출했다는 의혹이 있었지만 수사가 지지부진한 상태다. 양회동의 부인 김선희는 윤석열 탄핵 소추안 가결 직후 매일노동뉴스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고작 이런 사람 때문에, 남편이 그랬다는 게…, 더 화가 났어요.” 노동자들의 숙원, 노란봉투법에 거부권 행사. 노란봉투법은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는 법이다. 노란 봉투는 원래 쌍용차 파업 때 경찰이 낸 손배를 시민들이 나눠 내자며 노란 봉투에 후원금을 담아 보낸 데서 유래했다. 파업 노동자에 손배와 가압류 폭탄을 제한하는 내용도 담겼다. 2015년 정의당 주도로 발의됐다가 폐기됐고 문재인 정부에서도 폐기됐다. 윤석열 정부 들어 21대 국회에서 통과됐는데 윤석열이 거부권을 행사했고 22대 국회에서 다시 통과됐지만 역시 거부권을 행사해서 폐기된 상태다. 윤석열은 “교섭 대상을 무리하게 넓히고 손해 배상 책임에 예외를 둬 불법 파업 조장법이라고 불릴 정도”라고 비난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논란이 간과한 사실. 중대재해 처벌법은 2022년 1월 50인 이상 사업장부터 시행됐다가 2년 뒤부터 확대 적용됐다. 윤석열은 확대 적용을 유예하자고 주장했으나 국회를 설득하지 못했다. 민주노총은 논평을 내고 “정부와 여당은 중대재해처벌법의 확대 시행이 마치 영세·중소기업의 숨통을 옥죄는 것처럼 사실을 호도하며 국민을 협박하고 있다”며 “국내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산업재해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기에 중대재해처벌법은 오히려 중소기업들에 더 시급한 법”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50명 이상 기업(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 원 이상)의 중대재해 사망자 가운데 65%가 하청 노동자라는 집계도 있었다. 다행히 적용 유예는 무산됐지만 여전히 의무와 책임이 모호하고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중대재해 처벌법 도입 이후 2년 동안 실형 선고는 27건 가운데 4건밖에 안 됐다. 나머지는 모두 집행유예나 벌금형으로 끝났다. 한국제강은 사망 사고가 반복됐지만 법정 하한선인 징역 1년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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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왕이 남긴 건 번아웃이 아니라 Q저널리즘상!” [셜록 이야]
“사채왕 프로젝트는 제게 번아웃을 남겼죠.” 지난가을이었나. ‘사채왕’ 프로젝트를 돌아보며 조아영 기자가 남긴 말이었다. ‘T’인 조 기자의 성격상, 저 답변은 진심에 아주 가까울 것이다. 지난 2월 처음 제보를 접했을 때, 꼭 영화 같은 이야기란 생각이 들었다. 대출브로커 조직이 벌이는 금융사기 범죄를 다룬 영화 <원라인>도 떠올랐고, 금융사 직원 김재민 대리가 ‘사채왕’의 손발로 일하며 검은 돈의 달콤한 유혹에 빠지는 대목에선 <돈>이 떠올랐다. 김상욱이 정치권과 검찰에 줄을 대고 있다며 으스대는 데선 <범죄와의 전쟁>이 연상됐다. 2023년 서울 청구동새마을금고 뱅크런 사태를 몰고 온 1500억 원대 불법대출 사건. 결국 청구동새마을금고는 문을 닫았다. 금융기관 하나를 망하게 한 천문학적 액수의 불법대출 사건 뒤에는, 이른바 ‘사채왕’으로 불리던 한 남자가 있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제보자에게 건네받은 2000여 개의 녹음파일과 문서 자료를 분석하고, 현장 취재와 피해자 인터뷰 등을 통해 청구동새마을금고를 개인금고처럼 주무르던 ‘사채왕’ 김상욱의 실체를 밝혔다.(관련기사 : <새마을금고 뱅크런의 진실, ‘사채왕 리스트’에 있다>) 다섯 명의 셜록 기자 모두가 하나의 프로젝트에 투입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약 두 달 동안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모두에게 참 고된 시간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김상욱과 김재민의 통화 녹음파일만 약 900개. 범죄 ‘자백’에 가까운 그 파일들을 분석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진행될 수 없었다. 녹음파일을 모두 듣고 내용을 정리하는 건 정말 지루하고 힘든 작업이었다. 사기수법을 파악하고 그 규모를 확인하기 위해 발급받은 신탁원부만 약 200통. 상자 다섯 개를 채우고도 넘쳤다. 전국 곳곳을 다니며 부동산 물건지를 직접 확인하고, 사기 피해자들을 설득해 입을 열게 하는 일 역시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두 달 이상의 시간을 쏟아부은 끝에 ▲불법대출 수법을 낱낱이 밝힌 기사부터 ▲대출사기 피해자들의 기막힌 사연들 ▲김상욱의 공범 매수 방법 ▲김상욱 일당 3인방 각자의 역할과 실패한 ‘배신’ 이야기 ▲제보자의 입을 막기 위해 김상욱 일당이 벌인 사기극 ▲‘사기꾼’ 김상욱의 화려한(?) 과거까지 많은 이야기를 준비했다. 지난 4월 17일 첫 보도 이후 9월까지 20편의 기사를 내보냈다. 그사이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감사원에 행정안전부에 대한 공익감사를 청구하고, 기자회견도 함께 진행했다. 이후 KBS와 MBC, 뉴스타파 등도 보도에 나섰다. 셜록이 ‘사채왕’ 김상욱 일당의 사기범죄 수법을 낱낱이 공개한 것은, 단순히 이야기의 재미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미래의 피해자들을 막기 위한 고민의 결과이기도 하다. ‘명의를 빌려줬으니 너희도 공범 아냐?’‘순수한 피해자는 아니잖아?’ 피해자들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은 이들을 또 한 번 궁지로 몰아넣는다. 이런 시각은 언뜻 냉정하고 객관적인 듯하지만, 결과적으로 ‘사기범죄’의 본질을 흐릴 뿐이다. 전국적 사기범죄를 기획하고 실행한 김상욱 일당과, 그의 손발이 된 금융기관 직원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돈을 빌려주고는, 빚 독촉장만 날리는 금융기관까지.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이 사건에서, 피해자들만 인생의 낭떠러지로 내몰리는 것이 과연 옳은가. 김상욱 일당은 당연히(?)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았다. 사기꾼의 개인금고로 전락한 새마을금고 역시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았다. “믿고 맡긴다”는 신탁(信託)이란 말이 무색하게, 범죄자 일당에게 자동문처럼 활짝 열려버린 무궁화신탁 역시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무궁화신탁은 “마음먹고 범죄 저지른 사람 하나 잡는다는 게, 조직원 100명을 동원해도 못 잡는 게 범죄”라는 소리를 변명이랍시고 늘어놓았다. 새마을금고는 본인들은 오직 ‘채권자’일 뿐이라는 식으로, 대출사기 피해자들에게 부지런히 독촉장을 날렸다. 우리는 김상욱 일당의 거짓말에 속아서, 한 번 만져보지도 못한 빚 수억 원을 뒤집어쓴 사람들을 직접 만났다. 어렵게 찾아낸 그들을, 더 어려운 설득을 거쳐 말문을 열게 했다.(관련기사 : <유흥주점 텐트에서 잠드는 아이… “사채왕이 망친 삶”>) “저는 8억 7000이란 숫자를 그때 태어나서 처음 적어봤어요. 동그라미를 얼마나 많이 그렸는지, 아주 까마득하더라구요.” 한 사기 피해자의 말이다. 김상욱 일당의 대화를 듣다 보면, 1억 원이 무슨 구멍가게 거스름돈처럼 느껴졌다. 그놈들이 그렇게 하찮게 입에 올리는 그 돈은 누군가의 피눈물이었다. 김상욱과 청구동새마을금고 상무 전종남, 무궁화신탁 대리 김재민은 모두 구속돼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사채왕’ 일당은 감방에서 셜록 기자 전원을 고소했다.(관련기사 : <사채왕이 아니라 ‘고소왕’이라 불러야겠습니다>) 셜록의 ‘사채왕과 새마을금고’ 보도는 23일, 제2회 Q저널리즘상(심층기획 부문)을 받았다. 젊은 기자 130여 명으로 구성된 공부 모임인 ‘저널리즘클럽Q’가 만든 언론상. 셜록은 지난해 ‘로드킬 : 남겨진 안전모’ 보도로 수상한 데 이어 2년 연속 상을 받았다. “특히 실명보도를 전제로 한 끈질긴 취재가 돋보였다. 한 심사위원은 “익명으로 처리될 법한 주제를 실명과 사진을 통해 보도한 용기 있는 기사였다”고 했다.”(지난 17일 Q저널리즘상 선정 보도자료 중) 김상욱 일당의 범죄 수익금은 현재까지 경찰 수사로 확인된 것만 약 100,000,000,000원, 천억 원이다. 보통 사람들은 평생 한번 만져보기는커녕 손으로 적어보지도 못할 돈. 하지만 Q저널리즘상의 가치보다 빛날 순 없다. 이번 수상으로 셜록은, 우리가 매일같이 던지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은 것 같다. ‘기자의 일은 무엇인가. 그리고 셜록의 일은 무엇인가.’ 0의 개수를 세는 것도 무의미한 ‘무한대’의 보람이 가슴에 번진다. ‘언론 같지 않은 일을 하면서, 가장 언론답게 일하는 언론.’ 셜록이 듣고 싶은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국외훈련 논문을 표절한 검사를 권익위에 고발하고,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간이 녹은 청년의 부모님과 함께 겨울 거리에 서고, 정신질환자로 몰려 해고당한 신부와 함께 교황청의 문을 두드리며 일한다. Q저널리즘상은 셜록의 어제에 대한 인정이자, 오늘에 대한 신뢰이며, 내일에 대한 기대라 여기며, 그 뜻을 감사히 간직한다. 그리고 언제나 빼놓을 수 없는 것. ‘셜록의 친구’ 왓슨(유료독자)의 존재다. 왓슨들의 무한한 신뢰가 없었다면 기자 전원이 두 달의 시간을 투자하겠다는 결정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단언컨대 ‘셜록 이놈들 후원금만 받아먹고 두 달 동안 새 기사는 안 쓰고 대체 뭐하고 있나’라고 항의한 분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셜록 지면이 조용한 걸 보니 뭔가 열심히 취재하고 있나보군’ 하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고 지지해주신 분들 덕분에, “끈질긴 취재”로 “용기 있는 기사”를 쓸 수 있었다. 왓슨의 마음과 셜록의 땀으로 함께 이룬 결과다. 지난가을 ‘사채왕은 번아웃을 남겼다’며 탄식하던 조아영 기자. Q저널리즘상 선정 소식을 듣자마자 그는 전향적(!)으로 입장을 급선회했다. “사채왕이 남긴 건 번아웃이 아니라 Q저널리즘상!” ‘사채왕과 새마을금고’ 프로젝트를 전자책으로 만들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직접 선보이는 전자책 시리즈, ‘셜록 뉴스북’ 첫 번째 이야기다. 길고 또 깊은 셜록의 이야기를 좀 더 편하게 즐길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서투르지만 정성껏 준비했다. 여러 온라인서점에서 절찬리(?)에 독자 분들을 만나게 되길 고대하고 있다. ☞ 알라딘 http://aladin.kr/p/IRGZM☞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40255997☞ 교보문고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10758698☞ 리디 https://ridibooks.com/books/754043758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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