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그 사람이 궁금해"라는 상투적인 말에 대하여

2023.09.01

482
6
타인을 눈치채는 밝은 눈

이해는 누군가의 생각과 감정을 맥락적으로 공감하는 일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넓은 범주에 있다. 이해는 그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감각하고 어떤 외로움 안에 사는지 통틀어 삶의 체계를 밝혀내는 일이다. 공감, 다정함, 친절함 같은 기술로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피상적으로 '긍정적인' 교감은 온기를 나눌 수 있을지언정 누군갈 이해하는 데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이 가능한데, 이건 정성을 쏟아야만 가능한 게 아니다.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감정 전이가 된다. 그리고 나아가서 자연스러운 공감보다 더 깊숙한, 이해를 하려거든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엔 귀찮게 집중하지 않아도, 속절없이 노력하게 만드는 열망이 있을 것이다. 그걸 난 사랑이라고 안다. 사랑해서 이해를 하고 싶어지면, 그 사람의 언어는 얼마나 고립되어 외로운지, 그 사람은 어떨 때 나랑 있어도 혼자인 것 같은지, 슬픈 얘기를 웃으면서 하는 그가 무얼 기만하고 있는지, 모든 걸 말하지 않는 그의 속셈은 무엇인지, 밝은 눈으로 찾게 된다. 이럴 때 사람들은 말한다. "그 사람이 궁금해"

그 사람이 궁금하다는 말은 낡고 떼가 타서 진부함으로 훼손됐지만, 사실은 한 마디, 한 마디마다 서로 다른 독특함이 있다. 단 하나뿐인 삶을 단 하나뿐인 그와의 관계 속에서, 알고 싶다는 거니까. 정확한 언어를 찾지 못한 이들이 이 특별한 노력을 표현할 길이 없어 그렇게 에둘러 말을 한다.

나도 사람을 사랑하면, 그의 도서관에 쌓인 백만스물한가지의 책을 계속 계속 읽고 싶다. 조금 과해지면 내가 이해한 저 이의 세계관이 마침내 나의 세계관을 이해하여 접점을 만들기를 소망하게 된다. 혼자만의 기대에 타인을 끌어들이는 이 소망을 경계하며, 다만 오직 내가 그를 이해하고자 한다. 우정과 구분되는 내 깊숙한 사랑은 이런 것이다. 사랑이 깨지면, 그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없어진다. 그땐 그저 우정이 된다. 내가 하는 사랑이, 잘 언어화되지 않아서 감히 "친구들을 사랑한다", "애인을 사랑한다"라고 쉽게 말해왔었다. 

이제는 특별한 소수에게만 써온 내 사랑이 무엇이었는지 알 것 같다.

징징이 님의
활동을 응원해주세요
징징이 님의
활동을 응원해주세요
이 글을 읽자마자 '핫펠트-나란 책'이라는 노래가 떠올랐어요.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나를 이해해줬으면 하던 시절 많이 듣던 곡인데요. 오랜만에 가사를 다시 들춰보니 화자에 나를 덜 대입하게 되네요. 그보다는 다른 이를 진득하게 들여다 볼 줄 알고 그 사람이 흘리는 작은 조각들을 주워내 궁금함을 풀어낼 줄 아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사랑'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게 된 걸까요?
비슷한 듯 다른 것 같지만 읽으면서 한 자리에 앉아 누군가에게 시간을 쏟고 싶은 마음이 드는가를 떠올렸습니다. 궁금하다는 건, 이해한다는 건 상대방 혹은 무언가를 충분히 들여다보고 싶다는 의미 같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순간들을 되돌아보게 되네요.
글을 읽고 나니 '궁금하다'는 말이 더욱 정성스럽고 다정하게 느껴집니다!
관심을 알아채는 순간이 바로 '궁금해지는 순간'인 것 같다는 걸 깨닫고 가네요 ㅎㅎ
그 사람을 알고 싶어하는 것이, 그리고 이해하고 싶은 것이 사랑이라는 단어로 표현이 되니 머리가 아니라 감정적으로 이해가 되는 글이었습니다. 다만 저는 우정이란 것 또한 사랑의 범주 안에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우리가 친구사이라고 불린다고 우정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에 의문을 가지게 될 때가 있는데요. 그건 유대감이란 것도 결국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생겨날 수 있기에 우정 또한 사랑의 일종이 아닌가 싶고요 ㅎㅎ 또 가끔 궁금해 하는 사람만 있는 것 같기도 해요. 궁금해만하고 이해하려고 하진 않는 사람들이 있어 보입니다. 여러 생각이 드는 글이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깊은 통찰력이십니다. 사랑과 우정이라는 단어로 확정적으로 구분 할 수 있을지는 또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싶지만(반대는 아닌..), 그의 도서관에 쌓인 책들을 읽고 싶은 마음과 그렇지 않은 마음의 구분에는 동감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의 책들을 읽고 싶어졌고 시도 했는데, 이제는 왜 그런 마음이 잘 들지 않는지..ㅎㅎ 주어진 삶에 치이고 있는 것일지.. 그런 생각을 하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