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총선, 기후정의운동의 핵심 요구로 ‘공공재생에너지’를 제안한다.
“지옥문이 열렸다” 지난 해 유엔기후정상회의에서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한 말입니다. 과학자들은 전지구 온실가스 배출이 다시 증가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서 지구 평균 기온의 상승도 지속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파리협정에서 정한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도로 막자는 목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고도 경고합니다. 이런 말과 숫자로는 실감이 나질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세계 곳곳에서 폭염, 가뭄, 산불, 홍수, 태풍, 한파 등 기후재난이 속출하고, 그 속에서 가족을 잃고 삶을 송두리째 뽑힌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가혹한 현실입니다. ‘기후우울’에 빠져들기 쉽습니다. 우리는 이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위기 속에서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절박하게 묻게 됩니다.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 많은 국가들이 탄소중립을 천명하고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고 발표를 했지만, 기후위기에서 벗어날 만큼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온실가스 배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전력 부문만 보더라도,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재생에너지의 비중은 아직 10%도 되지 않습니다. 여전히 OECD 국가들 중에서 꼴지 그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 윤석열 정부는 핵발전을 줄여간다는 지구적 흐름에 역행하면서, 오히려 재생에너지 확대 비중을 낮추고 있습니다. 줄어든 재생에너지 목표마저도 국가가 직접 나서기 보다는 민간 기업들이 알아서 하라고 뒷짐을 지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기업들에게 돈벌이 수단으로 내주기 위해서 빼둔 것입니다.   한국 기후정의운동, 성장하고 있다 전지구 기후운동과 비슷하게, 한국의 기후운동은 2019년 9월 21일, 전국 각지에서 7천 5백명이 모이는 기후위기 비상행동을 통해서 대중운동으로 면모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전까지 전문가와 활동가를 중심으로 기후위기를 경고하고 정부 대책을 촉구하고 협의하는 거버넌스를 통해서 활동해왔다면, 이때부터는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거리로 불러 모아서 그들의 목소리를 묶어 내는 활동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전통적 환경운동을 지지하는 시민 뿐만 아니라, 인권, 페미니즘, 평화, 반빈곤 등의 여러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 노동자, 농민, 여성, 청년 등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참여하는 행진이 되었습니다.  2020년부터 시작된 코로나 재난으로 한동안 대규모 집회와 행진이 불가능해진 상황 속에서, 기후운동은 더욱 과감해지고 또한 대중적으로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기후위기를 우려하는 시민들은 위기를 악화시키는 ‘기후 범죄의 현장’을 쫒아가 직접행동을 벌이고 경찰에게 연행되는 것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정부의 비민주적인 탄소중립위원회를 비판하면서 그린워싱을 고발했습니다. 이를 통해 위선적인 탄소중립과 녹색성장이 아니라 기후정의와 체제전환을 주장하는 기후정의운동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기후정의의 깃발을 앞세우고, 재작년(2022년) 9월 24일에 3만명이 넘는 사람들을 서울시청 광장으로 불러 모았습니다. 기후위기를 걱정하고 기후부정의에 저항하고자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확인하고 결의를 다졌습니다.  작년, 거리의 3만명은 기후정의를 위해 무엇을 요구했나  2023년 기후정의운동에서 가장 주목받아야 할 사건은 923 기후정의행진일 것입니다. 4월 세종에서 4천명의 사람들이 모여 “함께 살기 위해, 멈춰!”라고 외친 ‘기후정의파업’도 빼놓기ㅏ 아쉽습니다. 하지만 “위기를 넘는 우리의 힘”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전국 각지에서 3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서울 시청 앞 대로에 모인 923 기후정의행진을 넘어서기는 힘들 것입니다. 거대한 무리를 지은 사람들은 기후정의를 외치며 용산 대통령 집무실로, 그리고 석유기업 SK와 같은 기후악당 앞으로 행진을 했습니다.  기후정의운동은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함께 불평등을 함께 살핍니다. 전세계 상위 10%의 부유층이 전체 온실가스 배출의 50%를 배출한다는 사실은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서도 불평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불평등도 기후위기도 나몰라 하고, 더 많은 돈을 버는데만 온통 관심에 쏠린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기후위기의 원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기후정의행진은 단순히 온실가슬 감축하라고만 주장하지 않습니다. 정부에게 죽지 않고 안전하게 살 권리, 탈화석연료와 공공재생에너지 그리고 정의로운 전환, 공공교통 확충과 이동권 보장, 신공항과 국립개발 개발 등의 생태학살 중단, 대기업과 부유층의 책임 부담과 민주주의를 요구했습니다(5대 핵심 요구는 아래 글상자 참조). 이 요구는 600 여개의 단체와 2천명이 넘는 추진위원들이 만들어낸 거대한 목소리였습니다.   1) 기후재난으로 죽지않고, 모두가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라 2) 핵발전과 화석연료로부터 공공 재생에너지로, 노동자의 일자리를 보장하는 정의로운 전환 실현하라 3) 철도민영화를 중단하고 공공교통 확충하여, 모두의 이동권을 보장하라 4) 생태계를 파괴하고 기후위기 가속화하는, 신공항과 국립공원 개발 사업 중단하라 5) 대기업과 부유층 오염자에게 책임을 묻고, 기후위기 최일선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어라 4월 총선, 기후정치의 희망을 만들 수 있을까  서울 거리 위를 3만명이 기후정의를 외치며 행진을 해도, 기득권 보수 양당 정치는 기후위기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있습니다. 국민의 힘은 찾을 수도 없는 문서에 3대 위기의 하나로 기후위기를 적어 놓았다고는 하지만,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서 무슨 정책을 내놓고 있는지 듣지 못했습니다. 민주당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매번 기후운동에 참여했던 변호사로 정치 신인을 수혈하지만, 기후 문제로 윤석열 정부와 여당과 맞서 싸우는 모습을 보기 힘듭니다. 무엇을 위해서 쓸지 알 길이 없는 정치권력 장악을 위해서만 맹렬히 다투고 있습니다.  4월 총선에서 기후정치를 싹트기 위해서, 애쓰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자리 걱정, 집 걱정 때문에 기후 걱정은 뒤로 밀린다고 걱정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일자리, 집, 기후 걱정이 서로 경쟁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바라볼 수는 없을까요? 기후정치는 기후위기와 불평등으로 현재와 미래의 삶을 위협당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요? 기업과 자본의 이윤 추구가 아니라, 지구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동시에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하는 정책을 제시하는 기후정치가 필요합니다. 작년 3만 명의 사람들이 함께 외친 공동의 요구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잘못된 해결책이 기후정치에 자리잡아서는 안된다 안타깝게도 기후정치의 이름을 걸면서도, 불평등의 문제를 외면하거나 가볍게 여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부유층과 대기업에게 책임을 묻기 보다는 기본권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에게까지 부담을 요구하는 기후정책들(전반적 전기요금 인상과 탄소세 등)이 제시되고, 재생에너지 확대를 빌미로 에너지 민영화로 귀결될 만한 정책(전력 판매 자유화 등)을 내놓기도 합니다. 또 온실가스 배출 기업들을 처벌하기 보다는 횡재 이익을 안기고 있는 정책(배출권 거래제)을 오히려 강화하자고 제안하기도 합니다. 이런 정책들과 제안들은 기후정의에 반하는 ‘잘못된 해결책’입니다. 총선에서 이런 정책들이 기후정치에 자리잡아서는 곤란합니다.  정치인들이 기후 이야기를 언급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기후정치를 하고 있다 아니다를 가늠하려는 단순한 판단을 넘어서야 합니다. 권력투쟁에만 몰두하고 기후위기에 관심이 없는 기득권 보수 야당의 정치인들이 때대로 기후를 보호한다는 명분 하에 ‘잘못된 해결책’을 추진하기도 합니다. 마치 이명박 대통령이 기후위기에 대응한다며, 4대강 사업을 추진하고 핵발전을 확대한 것처럼 말입니다. 이제 펼쳐져야 할 기후정치는 달라야 합니다. 과감한 온실가스 감축을 추진하는 동시에, 기후위기에 가장 큰 책임을 가진 부유층과 대기업들을 규제하고 그들에게 전환 비용을 부담케 하며, 모든 사람들이 기후위기 속에서도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하는 기후정치라야 의미가 있습니다.  재생에너지 민영화에 맞서는 공공재생에너지 전략을 요구한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가장 핵심적 과제입니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낮지만, 그나마의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의 대부분을 민간 기업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2021년 현재, 발전시장에 참여하는 재생에너지 발전소의 대략 10%만이 발전공기업이 소유, 운영하고 있을 뿐입니다. 현재까지 발전사업허가를 얻는 해상풍력 발전단지 77개 중 70개가 민간 기업, 특히 해외의 기업과 자본의 것입니다. 기후위기가 심화되는 와중에, 재생에너지 민영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국가는 재생에너지 확대에 별다른 투자를 하고 있지 않고, 윤석열 정부에 들어서서는 그나마의 재생에너지에 대한 공적 투자도 줄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기후위기 시대, 국가의 역할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코로나 재난 때 국가가 그랬던 것처럼,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 국가가 직접 나서 재생에너지를 확대해야 합니다. 대규모 공적 투자에 기반하여 발전공기업 및 지자체와 사회적경제 조직이 ‘공공협력’을 통해서 재생에너지를 직접 개발하여 소유하고 운영해야 합니다. 민간 기업들이 이윤이 날지를 따져 재생에너지에 투자하게 놔두면 신속한 재생에너지 확대는 불가능합니다. 최대 이윤을 뽑아내기 위해서 전국 각지에서 무분별한 재생에너지 개발로 지역 주민들과의 저항이 끊이질 않아, 오히려 신속한 확대에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높은 이자율의 자금을 동원하여 금융 자본의 배만 불려주고 거기에 더해 이윤까지 챙겨려는 민간 기업의 재생에너지 사업은 전력요금의 인상만 야기할 것입니다. 온실가스 배출의 책임을 물어서, 부유층과 대기업들에게 과세하자 노동조합, 기후환경단체, 진보정당들은 작년부터 ‘공공재생에너지 전략’을 세우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온실가스를 신속하게 감축하여 기후를 보호하고, 시민들의 필수적인 에너지(전력) 이용을 기본권을 보장하며, 지역 곳곳에서 난개발로 이어지는 재생에너지 사업이 생태/인권적 개발로 이어지도록 하고, 무엇보다도 석탄발전소 폐쇄로 인해서 일자리를 잃게 될 노동자들에게 녹색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전략입니다. 국가가 대규모 재정 투자를 통해서 통합된 발전공기업을 통해서 재생에너지 사업을 추진하면 가능한 일입니다.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서 600GW 규모의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를 추가 설치해야 하는데, 이때 연간 20조원의 자금이 필요합니다. 한전도 엄청난 적자인데, 국가의 대규모 재정 투자가 어찌 가능한 일지 물을 수 있습니다. 고소득에 기반하여 엄청난 온실가스를 배출해온 부유층과 이윤을 위한 생산으로 온실가스를 배출해온 대기업에게 소득세와 법인세의 세율을 누진적으로 높여서, 충분히 재원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복지 확대를 위한 소득의 재분배 정책만 아니라, 기후보호를 위한 정책이기도 합니다. 이는 단순히 재생에너지 투자 재원을 마련한다는 차원만 아니라, 부유층들의 과잉 소득을 줄여서 과시적 소비 지출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인다는 차원도 포함됩니다. 이는 토마 피케티 같은 국제적인 경제학자들의 제안이기도 합니다.  공공재생에너지로, 기후정의에 부합하는 총선 정책을 요구하자 4월 총선, 기후위기를 해결하고 기후정의를 실현하는데 어떤 정당과 정치인이 적합할 것인가 판단하는 리트머스가 필요하다면, 그들이 ‘공공재생에너지’를 정책과 공약으로 내세우는지 판단하면 됩니다. 노동조합, 기후환경단체 그리고 진보정당들은 공공재생에너지 전략을 알리고, 시민들의 지지를 모아갈 예정입니다.   공공재생에너지 전략에 대해서 궁금하다면, 다음의 보고서를 참고할 수 있습니다. http://m.ppip.or.kr/board_MRhQ99/6876#0
기후위기
·
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