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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가 청소노동자를 해고했습니다
며칠 전 누군가 청소노동자에게 피로회복제 두 박스를 선물하는 모습을 봤다. 노동자들끼리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힘내세요”라고 응원한 사람은 정규직 노동자였다. 몇 분 뒤에는 정규직 노동조합의 간부가 노동자들을 찾아왔다. 그는 회사에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노조 성명서를 최근 발표했고, 예정된 노사교섭에서도 이 문제를 다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참을 노동자들과 함께했다. EBS(한국교육방송공사) 청소노동자 이야기다. 이 노동자들은 태어나 처음으로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투쟁’이라는 것을 하고 있다. 수백명의 노동자들이 점심식사를 하러 나오는 시간에 청소노동자들은 로비에 모여 피켓을 든다. 피켓에 적힌 내용은 이렇다. “내가 쓸고 닦은 EBS에서 동료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일방적으로 인원감축하는 EBS 규탄한다.” “노예계약 요구하는 EBS 규탄한다.” “미화노동자도 사람이다.” 구호가 정확히 알려주듯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선 이유는 간단하다. EBS는 5월 들어 청소용역업체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청소노동자 TO를 27명에서 24명으로 3명 줄였다. 그런데 3명 전부 노동조합 간부다. 게다가 평일 노동시간을 줄이고 주말 특근을 아예 없앴는데, 이로 인해 임금이 50만원 이상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해고, 노동강도 강화, 일방적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삭감… 누구의 밥줄이 끊길 줄 모르는 상황에서 각자도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EBS 노동자들은 용기 있게 ‘노동조합’으로 뭉쳤다. 그리고 해고된 동료와 함께 ‘투쟁’하는 길을 결심했다. 노동자들이 단단하게 뭉쳤고(공공운수노조 경기지역지부 EBS분회), 정규직 노조가 함께하고(전국언론노동조합 EBS지부), 미디어 전문 언론들이 꾸준히 이 사태를 보도하고 있는 만큼 청소노동자들이 결국 웃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태가 며칠 만에 해결되지는 않을 것 같다. 왜냐면 이 사태는 ‘원청이 주도하는 구조조정-노동개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EBS 사측이 전형적으로 악덕-원청의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EBS는 재정 위기가 심각하다는 이유로 제작비와 제작인력을 줄이고 있고, 청소용역비도 이런 맥락에서 줄였다. 회사의 논리는 대략 이런 식이다. 우리 회사는 오래 전부터 재정 압박을 받아왔다. →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위기상황을 맞았고, 전사적으로 비용절감을 해야 한다. → 고통분담에 예외는 없어야 한다. → 청소노동자들 요구를 받아들이면 비용절감 기조가 흔들린다. 굉장히 익숙한 주장과 논리다.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모든 회사, 모든 원청이 이렇게 선동한다. 그래서 우리는 익숙하게도 이런 선동의 효과를 정확히 안다. EBS의 주장은 고통분담을 해야 할 정규직 노동자 일부 또는 다수에게 이렇게 다가간다. ‘회사가 망해가는데 청소노조가 떼를 쓴다.’ 회사는 또 이런 여론을 명분 삼아 구조조정을 강행할 것이다.  불과 몇 개월 전 덕성여대의 모습이다. 2022년 청소노동자들은 시급 400원 인상을 요구했다. 그러자 학교는 노동시간을 줄이거나 2022~2026년에 걸쳐 TO를 줄일 것을 요구했다. 청소용역비 예산을 증액할 수 없다는 것이 학교 입장이었다. 노동자들이 투쟁하자 학교는 이렇게 주장했다. ‘모두가 고통분담을 하고 있는데 청소노동자들이 특혜를 바라며 억지농성을 하고 있다.’ 학교는 담화문에 달린 댓글, 게시판에 올라온 노조 비난 글을 명분으로 노동조합과는 대화조차 하지 않았다. 올해 2월 졸업식 때 청소노동자들이 세 시간 동안 길바닥에 드러누워서야 대화가 시작됐고, 일 년이 넘은 갈등이 끝났다.  나는 EBS가 악덕-원청의 전철을 밟지 않으면 좋겠다. 하지만 지금까지 EBS가 보인 모습은 전형적이다. EBS는 다른 공공기관들이 일정 수준에서 진행한 정규직화를 계속 미뤄왔다. EBS는 다른 기업이 그런 것처럼 청소노동자들을 ‘비용’으로만 다뤘다. EBS는 노동부의 용역노동자 보호지침을 위반했다. EBS는 노동자들 그리고 노동조합과 어떠한 협의조차 하지 않은 채 구조조정-노동개악을 추진했다. EBS는 노동조합 간부들에 대한 표적해고에 “용역업체가 한 일”이라며 뒤로 숨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에 있는 EBS가 왜 충북 청주에 사무실이 있는 직원수 25명의 청소용역업체와 계약했는지, 왜 청소노동자들부터 해고하고 임금을 삭감하는지, 원청이 친 사고인데 왜 원청이 수습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고 주장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경험적으로 그리고 상식적으로 나는 해고된 노동자들이 결국 현장에 복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궁금한 것은 EBS 청소노동자들과 정규직 노동자들이 앞으로 어떻게 싸워나갈지다. 정규직-비정규직이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하면 좋겠다. 그리고 이들이 EBS의 예산 운용과 경영방향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대응하면 좋겠다. 함께 EBS의 현재를 만들고 미래를 고민하면 좋겠다.  나는 EBS의 구성원들이 충분히 그럴 역량이 있고, 그렇게 해야 할 책임도 있다고 생각한다. 검색사이트에 ‘EBS+청소노동자’라는 키워드를 입력하면, 그간 EBS가 청소노동자들의 노동환경과 이들의 투쟁을 다룬 뉴스리포트와 다큐멘터리가 결과창을 가득 채운다. 이중 다큐멘터리 <세상을 잇는 다큐 it> 시리즈인 <휴게실, 어디에나 있지만 아무 데도 없는> 편은 대학, 빌딩, 옥외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휴게실에 주목한 내용이다. EBS의 이 다큐멘터리는 청소노동자들의 휴게실을 바꾸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 다큐멘터리의 마지막에는 이례적으로 제작진의 당부가 적혀 있다. 촬영하는 동안 청소노동자들은 행여 들킬세라 그림자처럼 움직여야 했습니다. 얼굴이 알려지면 일자리를 잃을까 봐 인터뷰를 하면서도 신분을 감춰야 했습니다. 취재진을 따라다니는 감시의 눈길도 있었습니다. 당연한 요구를 하면서도 해고되지 않을까 걱정부터 해야 하는 청소노동자들이 방송이 나간 후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제작진의 걱정은 현실이 됐다. 바로 EBS 로비에서 말이다. 노동자들은 해고됐고 불이익을 당했다. 경제위기의 시대, 많은 기업과 원청이 청소·보안 노동자들부터 수를 줄인다. EBS도 그 중 하나다. 그래서 우리는 EBS 문제가 어떻게 정리될지 더 관심을 갖고 연대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고민과 토론을 시작하면 좋겠다. 나는 청소노동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토론이 노동자 전체의 권리를 끌어올리는 시작점이라고 믿는다.  청소노동을 왜 외주화해야 하는가. 직접고용하면 안 되는가.청소노동자들의 노동은 왜 저임금이어야 하나.청소노동자의 휴게실은 왜 발밑에 있어야 하나.청소노동자들의 휴게실에는 왜 창문이 없나.청소노동자들을 ‘어디에나 있지만 아무 데도 없는’ 존재로 만든 것은 누구인가.청소노동자들은 왜 다른 구성원들이 출근하기 전 새벽 5~6시에 출근해야 하는가.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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