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인공지능을 '지구적 존재'로 인식해야 하는 이유

2023.06.09

875
3
활동이란 무엇인가 고민하는 활동가

챗GPT와 같은 대화형 인공지능 등장으로 세계가 술렁거리고 있다. 본격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기존 온라인 플랫폼이나 소셜미디어의 알고리즘과 같은 기술을 넘어서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인식되었던 대화와 창작의 영역까지 인공지능이 섭렵하고 있다. 스마트폰 이전의 시대를 상상하기 어렵듯이, 인공지능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각자가 인공지능 기술을 실감하는 방식은 다를 것이다. 나의 경우, 기술적 변화보다는 대화의 주제가 다양해졌다는 점에서 인공지능을 실감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도구로 남을지, 인간과 인공지능은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하는지, 우리의 일자리는 어떻게 되는지 등. SF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닌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놀란다. 

영화 Her(2014)의 한 장면. 인공지능 ‘사만다’와 함께 일과 후 집에서 게임을 하는 주인공 (출처 : 네이버영화)

인공지능이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를 어떻게 가져다줄지 아직은 예측뿐이다. 그동안 쌓여있던 HER, 아이로봇, 매트릭스와 같은 SF 영화들을 기반으로 저마다 다양한 상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신기술과 가깝지 않은 나는 기술의 ‘발전’에 대한 기대보다는 확증편향, 민주주의의 위협, 혐오와 차별 문제에 대한 우려가 더 크다. 사실 가짜뉴스, 혐오와 차별의 문제, 범죄 사기는 인공지능 기술 이전에도 존재했던 기본값의 문제들이다. 그러나 인공지능 기술은 가짜뉴스와 범죄 사기를 더욱 교묘하게 만들고 통제 불가능한 속도로 퍼트린다. 변화를 앞둔 사회는 어수선하고 초조하다. 변화의 물결이 거세고 방향성이 보이지 않을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인공지능을 둘러싼 해외 동향

유럽, 미국 등의 기술 강대국이 인공지능 기술을 받아들이는 갈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 듯 보인다. 이용자 보호 우선에 중점을 둔 법규제 방식과 선제적 인공지능 기술 개발에 중점을 둔 기업 자율성 보장이다. 전자의 사례로는 대표적으로 유럽연합이 있다. 유럽연합은 2020년에 인공지능 백서를 지침서로 만들었다. 유럽연합의 인공지능 대응 핵심은 인공지능 기술 구축과 확산에 있어 윤리성을 강조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법제 및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다. (김지윤, 2020) 기술과 관련된 법은 기본적으로 규제의 성격을 띤다. 기술 개발에 제어를 거는 동시에 이용자를 보호하는 효과를 보기 때문에 안정성을 위해서는 법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출처: EU인공지능 (AI) 백서 주요 내용 및 시사점 _주간기술동향 2020.7.29

영국은 유럽연합과는 다르게 규제보다는 기술에 대한 투자로 혁신 촉구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3월 영국도 마찬가지로 인공지능 백서를 제작했다. 인공지능 사용 촉진을 위해 안전/보안, 투명성 및 설명 가능성, 공정성, 책임 및 거버넌스, 경쟁 가능성 등 5가지 원칙을 발표하고 일자리 창출과 의료 기술 개발을 기대하며 1600억이 넘는 투자를 약속했다.  (에이아이타임즈 2023.03.29)

미국은 의외로 인공지능 기술 규제와 개발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처음에는 기술 개발, 혁신을 외치는 모습이었다가 빅테크 기업 경영인들의 우려로 인공지능 기술 개발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아직 어느 입장을 뚜렷하게 고수하지 못하고 논의만 이어가고 있다. (에아이아타임스 2023.03.30) 전 세계 이용자들의 데이터를 쓸어모으고 있는 빅테크 기업이 밀집한 미국 내부에서 이런 서한이 나온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개인적으로 평가한다. 

한국 정부 물론 지난 2020년 12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이른바 ‘사람이 중심이 되는 인공지능 윤리기준’을 마련했다. 인공지능 윤리기준의 3대 기본원칙과 10대 핵심요건을 발표했다. 인간의 존엄성 원칙, 사회의 공공선 원칙, 기술의 합목적성 원칙이다. 10대 핵심요건은 인권보장, 프라이버시 보호, 다양성 존중, 침해금지, 공공성, 연대성, 데이터 관리, 책임성, 안전성, 투명성을 언급한다. (대한민국 전자정부 누리집,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020.12.23) 온갖 좋은 말을 기본으로 원칙을 세웠지만, ‘자유’에 영혼을 바친 현 정부가 과연 이용자 보호를 위해 인공지능 기술 개발을 규제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인공지능도 지구의 땅을 밟고 서있다

과기부의 자료에 따르면 “‘인공지능 윤리기준’을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하에 인공지능 윤리 쟁점을 논의하고, 지속적 토론과 숙의 과정을 거쳐 주체별 체크리스트 개발 등 인공지능 윤리의 실천 방안을 마련한다”라고 나와있다.  윤리 쟁점에 대한 논의와 지속적 토론, 숙의는 매우 중요하다. 이해관계자를 다양하게 구성하는 것이 숙의의 핵심이 될 것이다. 윤리의 쟁점과 방향에서는 인간 가치와 존엄을 지키는 방법을 이야기할 수 있다. 윤리, 도덕, 공동체 가치 등 철학적인 이야기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의 윤리를 논하는 이유는 그만큼 기술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윤리 구성에는 가짜뉴스, 노동시장의 변화 같은 사회적 시각도 중요하지만, 현 시점에서는 생태적 관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인간이 지구적 존재임을 망각하고 지구 자원을 무분별하게 훼손하는 바람에 현재 우리는 이 모양 이 꼴이 됐다. 태평양의 섬이 물에 잠기고, 이상기온으로 산불, 홍수 재난을 수시로 겪는 일상을 마주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인공지능 기술은 온라인상에 존재하는 무형의 존재가 아니다. 데이터 보관소와 컴퓨터 기계로 구성된, 물리적 실체를 갖고 있는 존재다. 인공지능 기술 개발에는 전력, 에너지 자원이 어마어마하게, 정말 어마어마하게 소모된다. 2021년 발표된 연구논문에서는 챗GPT의 핵심 기술인 언어모델이 학습하는데 1천 287메가 와트시(MWh)가 소모된다고 한다. 이는 미국 120개 가구의 1년 전기 사용량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 110개 가구의 1년 배출량에 해당하는 502톤의 탄소가 배출됐다고 한다. (매일경제 2023.03.10

기술 개발과 에너지자원, 기후위기가 이루는 삼각 균형은 아슬아슬하고 치명적이다. 인공지능 기술 개발이 에너지 자원의 한정치를 넘어서면 균형은 무너진다. 인공지능의 윤리적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인공지능을 지구적 존재로 먼저 인식하고, 인류 보편의 가치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논해야 한다. 챗GPT와의 대화가 그만한 전기 사용량 만큼의 가치가 있는가, 기업이 인류의 에너지를 사용하고 얻은 이익을 어떻게 배분할것인가, 혹은 탄소배출로 인한 기후위기 문제에 얼마큼 책임을 물을 것인가. 인공지능이 ‘기술’로만 분류될 때, 인간 사회의 윤리는 더욱 시험에 들 것이다. 


이슈

인공지능

구독자 137명

인공지능 역시 지구적 존재라는 지적이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지구적이라는 것, 물리적 장치로 작동하며 자원을 사용한다는 것, 지구 환경 속에서 다른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 인공지능 윤리를 이야기할 때 잊어서는 안 될 내용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인공지능도 지구의 땅을 밟고 서있다"는 문장이 와닿네요. 지속가능성이 없는 기술이라면 결국 발전이 아닌 퇴보를 불러올 것입니다. 인공지능 기술도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면서 개발되어야 합니다.

여러 나라들의 대응 상황에 대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역시나 많이들 모르고 있지만 한국에서도 논의되고, 생산된 사례들도 있구요. 문제는 숙의와 공론이라는 것이 수많은 시민들이 참여하거나 지켜보는 가운데,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고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러했나 하는 점일 것 같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는 우리는 이제 시작 단계이며, AI를 포함한 디지털 기술 혁신에대한 사회적 공론화를 이어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