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함께 기억] 어떤 일이 있었더라도, 잘 지내고 있다고

2023.10.31

627
4
인천 사는 김승길입니다.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픔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사회적참사를 각자의 방식으로 기록한 아홉 캠페이너의 기억을 소개합니다.

안방에서 뉴스를 보던 엄마가 알려줬다.

“이태원에서 사고 났대”

작년 10월 29일 밤, 나는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보는 그저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엄마로부터 사고 소식을 듣고 무슨 일인가 싶어 뉴스를 찾아보았다. 아마 처음 접한 피해자의 수는 한 자릿수였던 것 같다. 사람이 정말 많이 모였구나 하고는 뉴스를 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뉴스를 다시 틀었을 때 피해자의 수는 두 자릿수로 바뀌어 있었다. 경악스럽다기보다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제야 실시간 뉴스를 보기 시작했다. 전혀 상상되지 않았다. 실내도 아닌 도로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게. 괜한 걱정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자 주변 지인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무사한지 확인했다. 다음날 아침, 사망자 수만 세 자리였다.

1년이 지난 지금. 이태원에서의 일을 나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너무 큰 충격이었던 탓인 걸까, 사실 작년 10월 29일을 잘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미디어를 통해 접한 이태원에서의 일은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잘 와닿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지치고 무기력한 감정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서일 수도 있다. 약 10년 전에 있었던 세월호 참사의 기괴함을 슬픔과 분노로 마음 어딘가에 두고 있다면 이태원 참사는 기괴함만 남아있다. 그 기괴함이 나는 아직 얼떨떨하다. 기괴함과 얼떨떨함 사이 어딘가에서 보라색 리본은 어색하기까지 하다. 나에게 1년 전 이태원 참사는 기괴하고 얼떨떨하며 어색한 지금이다.

나와 같은 사람이 적지 않을 거다. 세월호 참사 이후 일종의 집단적 트라우마로 인한 문제 회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안전한 사회를 위해 많은 이들이 노력하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노력 속에서 다시 나타나는 ‘참사’는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의식하지 못하는 절망감 아닐까. 대체 우리는 이 절망감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우선, 우리는 마주할 용기가 필요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1년 전 이태원 참사를 회피하지 않고 마주할 용기가 필요하다. 기괴한 일을 마주할 용기, 얼떨떨함에서 벗어날 용기, 어색해하지 않을 용기 모두. 그리고 얼떨떨함으로만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닌 슬픔과 분노의 과정을 거쳐, 떠난 이들을 진심으로 애도하고 안전한 사회가 되길 바라는 이들과 함께이길 바란다. 나는 이 용기를 가지겠다는 다짐부터 시작해야 된다.


1주기 전날, 참사로 친구를 떠나보낸 지인이 유가족으로부터 문자를 받았다고 알려줬다.

"잘 지내시나요?"

잘 지내냐고 묻는 말. 내가 가늠할 수 없는 1년이 담긴 안부였다. 어떤 안부는 정말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나에게 그런 안부가 온다면 잘 지낸다고 답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안부를 물었을 때도 잘 지낸다고 했으면 좋겠다. 어떤 일이 있었더라도, 잘 지내고 있다고. 

이슈

10.29 이태원 참사

구독자 45명
만약 저라면 지인에게 안부를 묻지 못할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야하는 것이겠죠... 용기를 내 주신 것을 보고, 저 또한 용기를 내어보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안부를 묻는 일이 큰 용기를 필요로 할 때도 있다는 얘기가 공감됐어요. 더 많이 서로의 안부를 묻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점점 더 각자의 섬으로 가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는 당신을 신경쓰고 있고, 기억하고 있다는 걸 느꼈으면 해서요. 그리고 그 질문에 잘 지낸다고 답할 수 있는 시간이 오면 좋겠습니다.

저도 글쓴님과 마찬가지의 심정과 느낌을 가지고 있었는데 ”다시 나타나는 ‘참사’는 절망감“이라는 문장이 많이 와닿았습니다..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참사는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무력감인지도 모르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면으로 마주하기 위해 저도 용기를 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회피하지 않고 마주할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마음속의 아린 느낌이 뭔가 했더니, 회피하지 않고 마주칠 용기가 필요한, 용기없는 마음이었던 것이구나 하고 덕분에 깨달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