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청년정치를 거부한다
*본 기고문은 캠페인즈x정치학교 반전의 공동 기획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지난 2022년 12월부터 2023년 5월까지, 약 반 년 동안 <정치학교 반전>의 첫 시즌을 함께했다. ‘한국정치의 반성과 비전을 말하자’는 반전의 제안에 반응하고 모여들 사람들이 궁금해서 문을 두드린 것이 시작이었고, 살아온 배경도 정당도 관심사도 제각각인 이들을 관통한 공통의 문제의식을 수 개월간 반복적으로 탐구하면서 우리가 발 딛고 서야 할 정치의 본질은 무엇인지 하나씩 다시 차근차근 세워보며 금새 6개월을 보냈다. 그간의 여정을 매듭짓는 ‘실천선언문’ 작성을 맡았던 나는 우리의 이름으로 어떤 반성과 다짐을 최종적으로 남겨둘 것인지 거듭 고민한 끝에 첫 번째 선언의 문장을 이렇게 썼다. “첫째, 지금까지의 청년정치를 거부합니다.” *사진=정치학교 반전 1기 수료식, 2023. 05. 20 우리가 ‘지금까지의 청년정치를 거부’하기로 결심한 이유 청년정치라는 말 자체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지난 선거에 왔던 청년정치 죽지도 않고 또 왔다 말해도 어색함 없을만큼 선거철마다 특히 자주 소환된다. 하지만 이 안에 ‘청년의 삶’도 함께 소환되어 왔을까? 이제껏 정치 기득권이 청년정치를 위치시킨 자리를 살펴보면 가늠할 수 있다. 나이가 어리고 젊으니 새롭고 신선해보이는 ‘이미지’를 전면에 배치시켜 보정효과를 톡톡히 노리고 주로 2030세대에 해당하는 스윙보터의 표심을 가져오려 애쓰지만, 정작 필요한 권한과 자리 앞에서는 ‘젊으니까 다음 번에도 기회가 있다’며 후순번을 쥐어준다. 청년다운 패기로 정치 생태계를 바꿔줄 것을 주문하지만, ‘우리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라는 전제 조건은 차마 빼놓지를 못한다. 별다른 고민 없이 솔깃한 제안에 응하는 청년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청년 정치인들은 이 현실을 아주 모르지 않는다. 다만 애석한 건, 알면서도 스스로를 장식품 내지 들러리로 세우기를 선택하는 경우가 적잖다는 점이다. 그렇게라도 열리는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지 않으면 또 얼만큼의 시간을 기다리며 무엇을 해야할지 막막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존 정치 생태계에 전환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식으로 소모되었던 청년정치를 마땅히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수동적인 위치에 세우는 일, 어느 쪽에 줄 서야 더 유리할지 골몰하는 일, 의사결정 과정에 마땅히 내야할 목소리 내기를 주저하는 일, 부당함과 불합리함을 관행으로 여기는 데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일을 거부하지 않고서 새로운 정치를 말한다는 건 모순이다. 시민들이 ‘청년정치’에 실망하면서도 거듭 기대를 걸어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미 너무 많은 걸 손에 쥐어버린 이들은 결코 쉽게 할 수 없는 말과 행동, 결단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나아가 조금 더 주체적으로 미래를 고민하고, 준비할 수 있다고 믿기에 약간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청년정치가 복원해야 할 기준은 바로 여기에 있다. 본질은 ‘젊은 나이로의 교체’가 아닌 ‘세계관의 교체’ 그렇다면 청년정치의 주체가 되겠다고 나선 우리는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얼만큼 제대로 준비하고 있을까? <정치학교 반전> 졸업 이후 몇몇 동료들과 그동안의 고민과 논의를 숙성시켜 실체가 있는 행동으로 전환해나가기 위한 그룹을 만들었다. 첫 모임에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일곱가지 원칙을 정했다. 만장일치로 채택된 첫 번째 원칙은 “나이가 아닌 감각과 대안으로 승부한다” 였다.  그동안 청년정치인들이 자주 쓰던 핵심 구호는 ‘나이가 어린/젊은 사람에게도 기회를 제공하라’는 것이었다. 일견 필요한 주장이다. 제21대 국회에서 2030대 의원은 2.4%에 불과하다. 지방의회의 경우 약 10%에 해당하지만, 30%에 달하는 청년세대 유권자를 대변하기엔 여전히 부족한 수치다. 하지만 ‘청년정치는 다르다’고 말하려는 이들이라면, 젊음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젊음을 바탕에 둔 대안과 방향은 어떻게 다른지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당장 5-10년 뒤에 거대한 현실의 문제로 닥칠 디지털 전환, 기후위기, 외교-안보위협, 지역소멸 등과 이로 인해 생겨날 새로운 유형의 불평등을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의 문제로써 어떻게 유능하게 풀어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청년정치인이 주류에 설 수 있도록 하는 힘의 본질은 ‘젊은 나이로의 교체’가 아닌 ‘세계관의 교체’에서 나올 수 있다고 본다. 과거 선배세대의 성공 사례만을 답습하거나 관성적 사고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우리가 가장 잘 이해하고 소화할 수 있는 문법으로 이 다음을 상상하고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더 많은 시민들에게 유효한 미래는 이 뱡향이라고 설득하고 이끌어갈 수 있어야 한다. 지금껏 청년정치를 표방하는 개인이나 그룹 단위에서 이러한 논의가 제대로 깊이있게 전개된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본질을 잃은 기득권 정치를 비판하기 전에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이미지=정치의 본질에 다시 집중하기 위해, 가치-비전 수립 및 미래 의제 우선순위 세우기 (2023. 10~) 청년 정치인들만의 개인기로 돌파 가능할까 그렇지만 동력을 잃은 청년정치의 현주소의 책임을 과연 청년 정치인 개개인에게 오롯이 돌릴 수 있을까. 분명 그간의 청년정치가 보여준 행보엔 아쉬운 지점이 많지만, 동시에 ‘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앞선 제안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 정치 영역에서는 꽤 높은 수준의 역량과 자질이 요구된다. 충분한 훈련의 기회와 준비의 공간이 필요한 이유다. 흔히 청년정치의 비교 사례로 언급되는 유럽의 어느 젊은 총리나 국회의원들 역시 반짝 탄생하지 않았다. 10대 시절부터 정당 내외에서 꾸준하게 훈련하고 실력을 쌓을 여건이 뒷받침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주요 정당에서는 이런 당내 인재 양성 시스템이 전무하다시피 하다. 정당이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청년정치를 그저 소모하고 있으니 ‘정치학교 반전’과 같은 기획이 정당 바깥에서 생겨난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이렇듯 준비운동을 할 여건은 하나도 갖춰지지 않았는데, 출전하기 위한 장벽은 너무 높게 설정되어 있다. 출마를 위한 각종 제반비용은 물론이고 유권자와의 연결이나 당 내외 네트워크까지, 청년 정치인은 이미 완벽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고군분투할 수 밖에 없다. 기울기를 임의로라도 조정하고 그나마의 가능성을 만들어내기 위해선 어떻게든 당내 주요 의사결정권자들의 신임을 받는 게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다. 개인의 신념과 비전을 펼치기 쉽지 않은 이유다. 이런 고질적인 시스템과 구조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고 청년 정치인 개개인만을 비판할 수는 없다.  더 이상 망가진 정치에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 없어서 뭐라도 직접 해보겠다고 나선 친구, 동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수 번을 다짐한 것들이 때때로 꺾이고 무너지고 길을 잃기도 하면서 실망하는 날들도 분명히 있겠지만, 그럼에도 지키고 싶은 존재와 가지고 싶은 미래를 포기하지 않고 끝내 나아갈 수 있길 바란다. 위기의 순간 가장 먼저 손쉽게 밀려나고 지워졌던 우리 세대의 이름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결국 우리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명확히 세우고, 유효한 힘을 가지고, 책임을 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구조적 문제와 현실의 한계를 지적하되 비판자의 위치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선명히 제시하며, 근거있는 희망을 품고 성실하게 미래를 준비해나가자.
정치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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