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생추어리, 고기 아닌 생명으로 마주한 돼지들
작년 여름, 우연히 알게 된 새벽이생추어리에서는 마침 돌봄 활동가 보듬이 2기를 모집 중이었다. 당시 유기견묘 보호소 봉사를 하며 동물권에 관한 관심이 커졌던 때였기에 보호소와 생추어리의 차이가 궁금했던 것은 물론, 개와 고양이처럼 사람들과 정서적으로 가까워진 ‘반려동물’과 달리 ‘음식’으로 생명력 없이 만나온 세월이 훨씬 긴 돼지와는 돌봄으로 어떤 관계를 맺게 될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그렇게 7월부터 12월까지 2020년 4월에 설립된 국내 1호 생추어리에 거주 중인 돼지, 대한민국 최초 공개 구조된 동물해방의 ‘새벽’과 안락사의 위기에서 구조된 강인한 생명력의 ‘잔디’를 만나게 되었다. *웹사이트 : https://www.dawnsanctuary.kr/ 인스타그램 : @dawnsanctuary/ 책 : <훔친 돼지만이 살아남았다>를 통해 새벽이생추어리와 두 돼지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보호소, 동물원과 달리 생추어리는 입양, 전시, 관람, 교육, 연구 등 공간 존재의 초점이 인간이 아니다. 자신의 특성과 성향에 맞는 삶을 찾아 평생 온전하게 여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공간을 자유로이 개방하지 않으며, 적절하고 안전한 돌봄과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 생추어리의 목적이자 목표이다. 늘 다짐하는 것이 있다. 생추어리는 새벽과 잔디가 주인인 곳이며 나는 방문객임을 잊지 말자, 이들의 행동과 감정을 인간 중심적인 시선으로 판단하려는 것을 경계하자. 그동안 비인간동물과의 관계에서 그들을 인간동물의 기준으로 아는 ‘척’ 할 때가 많았기에 위 내용을 바탕으로 사전 교육을 받고 돌봄의 순간마다 곱씹는 과정은 굉장히 중요하다. 또한 탁 트인 녹색 풍경과 고스란히 느껴지는 계절감에 지침을 잊고 마냥 평화롭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이곳은 얼핏 평화로운 듯 보이나 하루하루가 투쟁인 곳임을 잊지 않고자 한다. 주 1회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이들과의 만남 및 돌봄이 이루어진다. 현장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활동가 새생이와 돌봄을 하는 활동가 보듬이는 네이버 밴드를 이용하여 돌봄 내용을 공유하고 이어나간다. 저녁밥을 주고 아침밥을 만들어 놓기, 물 주기, 건강 및 행동 살피기(기분, 눈, 다리, 대변 등), 여름에는 벌레 퇴치제를 뿌리고, 겨울에는 찜질팩을 챙겨주기, 간식 및 아늑한 집을 위해 근처 풀과 건초, 낙엽을 주기, 대변 줍기, 생추어리 내부 관리(장화 세척, 흙 정리) 등의 돌봄을 하다 보면 순식간에 어두컴컴해져 새벽과 잔디의 이름을 부르며 서로를 알아갈 시간이 부족할 때도 많다. 돌봄 초반에 궁금한 것이 너무나 많았다. 돼지는 무엇을 먹을 수 있지? 먹으면 위험한 음식은 무엇일까? 무얼 좋아하지? 의 물음을 가지고 인터넷에 검색한 결과, 정보를 바로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온통 ‘돼지고기를 맛있게 먹는 법’, ‘반려견이 먹을 수 있는 돼지고기의 부위’와 같은 글투성이였다. 황당하고 답답했다. 아, 새벽과 잔디는 딱 생추어리 안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이 밖에서는 살아있음에도 그 삶을 인정받지 못한 채 죽음이 당연한 존재구나. 콩, 보리, 오이, 고구마, 호박, 비트, 사과, 자두 등 돼지는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단단하고 날카로운 큰 이를 가진 새벽에게는 채소를 자르지 않고 주는 편이며, 이가 약한 잔디에게는 한입 크기로 잘게 썰어 준다. 둘의 몸 크기 차이만큼 식단의 양도 현저히 다르다. 새벽이는 새벽이답게, 잔디는 잔디답게. 시원한 물을 좋아하는 새벽과 달리 잔디는 무더운 여름에도 미지근한 온도를 선호한다. 잔디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와 코로 밀고 킁킁 냄새를 맡으며 인사를 건네는 반면, 새벽은 조심스레 천천히 알아가려는 편이며 낯선 대상을 경계한다. 그 조심성은 추운 겨울날에도 이어지는데, 온 땅이 꽁꽁 얼었을 때 걷다가 미끄러질까, 얼음이 깨질까, 울퉁불퉁한 땅 때문에 발을 다칠까 싶어 울타리 근처로 밥을 들고 와도 저 멀리 집 근처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인간이 일방적으로 다가가는 돌봄이 아닌 서로 관계를 쌓아가는 돌봄. 이러한 새벽과 가까워질 수 있을까, 새벽에게 나의 목소리가 익숙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새벽아, 내 목소리 기억해? 다음 주에 또 올게’ 하며 꾸준히 이름을 불렀다. 그저 밥 챙겨주는 사람에 불과하여 긴장 속에 아슬했던 우리의 관계는 돌봄 마무리가 가까워지자 서서히 변화했다. 밥이나 물, 풀을 들고 있지 않음에도 ‘새벽아’ 부르며 울타리를 따라 쭉 걷자 ‘컹’하고 외치며 새벽도 함께 그 옆으로 발을 맞추었다. 서로의 언어를 온전히 이해하진 못하지만 컹컹컹 말하는 새벽은 편안해 보였다. 몸이 닿는 것을 허락하여 코와 등으로 손길을 차분하게 느끼는 그의 모습은 나를 향해 입을 딱딱 부딪치며 불편함을 고스란히 드러냈던 만남 초반과 확연히 달랐다. 이렇게 우리가 더욱이 연결되어 서로를 돌보고 ‘오늘도 너와 내가 무사히 살아 숨 쉬고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은 안도감과 함께 더 오래 살아내 보자는 힘을 쌓아준다. *진흙 목욕을 하는 새벽과 루팅을 하는 잔디의 모습   날이 더울 땐 진흙 목욕을, 코로 땅을 파는 루팅을 하며 입을 쩝쩝거리기도, 짚을 열심히 뭉치고 정리하며 잠자리를 만들고, 딱딱하고도 말랑한 코로 밀면서 의사표현을 하고, 우다다 신나게 달리기도 한다. 인간의 몇 배나 큰 덩치의 돼지가 축구공을 가지고 놀며 달리는 모습이 상상되는가. 다양한 욕구를 가지고 자유로이 움직이는 돼지들을 바라보고 몸을 맞닿는 순간들을 보내며, 이들의 목소리를 모두 차단하고 몸을 부위별로 나누어 먹는 행위가 아무렇지 않게 이루어지고 있음이 더욱이 이상하고 끔찍했다. 특히 다리가 약한 잔디의 발과 다리를 주물러주다, 생추어리 밖 곳곳에 전시되어 판매 중인 ‘족발’을 마주할 때마다 잘린 몸과 얼굴이 함께 그려졌다. 주변에 지워지고 사라진 얼굴들이 너무나도 많다. 우리는 사라진 얼굴들의 행방에 의문을 가지고 살펴볼 필요가 있으며, 불편한 감정이 따르겠지만 함께 들추어 일상을 균열 내어 보자고 조심스레 손을 내밀고 싶다. 아는 얼굴과 이름의 돼지들을 만남에도 같은 이름의 ‘고기’라는 일부 덩어리를 보았을 때, 살아 움직이는 새벽과 잔디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생추어리에서의 경험은 분명 종과 종 사이의 경계를 흐려 상상의 범위를 확장해 주었다. 그러나 폭력이 무관심하게 일상이 되어버린 환경에서 지내며 이 감각이 다시 무뎌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함께 사는 삶을, 상호 돌봄을 지향하는 공동체의 확장이 필요하다. 생후 6개월이 되면 죽임을 당하는 대부분의 돼지와 달리, 새벽은 지난 7월 9일에 4번째 생일을 맞았다. 고기 아닌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삶을 살아가는 존재가 새벽과 잔디를 넘어 더 많은 동물에게 주어지길 바란다. 이들은 ‘고기’로 태어나지 않았다. 모두 자신의 본질대로 자유롭게 살아갈, 죽음이 아닌 삶을 살 권리가 있다.
동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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