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정] 안전한 이별은 정말 여성만의 문제일까요?
들어가며 지난 여성운동의 노력으로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호주제 폐지부터 불법 촬영 법률 제정까지 여성운동을 통해 여성의 인권에 대한 제도와 인식은 긍정적으로 변화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만큼 새로운 여성혐오 문제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현상이 있습니다. 바로 친밀한 관계(연인, 부부) 간에 일어나는 폭력(신체 폭력, 언어폭력, 폭행, 성폭력, 강간 등) 문제입니다. 데이트폭력, 스토킹 등의 문제로 대표되는 친밀한 관계 폭력은 여성의 건강을 침해하고 일상의 불안감을 높이는 주요 원인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친밀한 남성이 죽인 여성은 최소 138명입니다. 19시간에 1명의 여성이 살해되거나 살해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범죄의 동기로 “(피해 여성이) 이혼이나 결별을 요구하거나 가해자의 재결합 및 만남 요구를 거부해서”가 1위를 차지하죠. 그만큼 친밀한 관계 내에서 여성의 ‘거부 의사'는 살해를 정당화하는 주요 이유가 됩니다. 2022년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이후 스토킹 범죄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아지고 있으나, 여전히 여성의 교제는 안전하지 않습니다. 경찰청의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스토킹 범죄 신고 건수는 2만 9565건으로  전년 신고 대비 2배 이상 증가한 수치입니다. 스토킹 처벌을 위한 관련 법과 제도는 발전하지만, 여성이 느끼는 일상의 불안감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제 20~30대 여성들은 “안전한 이별"을 일상의 권리로 인식합니다. 젠더 폭력을 일상에서 여실히 체감하는 것이죠. 그런데 문득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왜 남성들은 “안전한 이별"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까요? 남성들에게 “안전한 이별은" 상관없는 문제일까요? 여성이 경험하는 차별과 폭력은 왜 남성의 문제로 연결되지 않을까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문제가 일어날까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대한 사전 탐구가 필요합니다.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은 왜 일어날까요?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우선 원인부터 살펴봤습니다. 크게 4가지 영역을 꼽을 수 있는데요. 인식과 문화 교육 법과 제도 언론 첫 번째 인식과 문화 영역에서는 통제와 폭력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위계적 남성 문화와 여성을 도구화하는 성차별적 문화로 세분화해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교육 영역에서는 제도적으로 시행하는 인권/성교육의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육 제도 특성상 충분한 교육 시간이 주어지지 않고, 상대를 존중하며 관계 맺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교육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또 하나의 분야로 법과 제도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폭력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제도와 조치는 미비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제도는 부족한 것이 현실이니까요. 마지막으로 언론이 폭력을 보도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가해 사실을 자극적으로 묘사하거나, 사적 관계에서 일어나는 문제 정도로 축소하고 왜곡하는 뉴스나 기사 말이죠. 써놓고 보니 새삼 놀랍습니다. 하나의 사회 문제에 이렇게 많은 분야가 원인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요. 솔직히 말하면 맥이 탁 풀렸습니다. 이렇게 많은 원인이 있는데 연구는 어디에서부터 시작하지? 연구로 해결이 가능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한숨은 나오지만, 꾹 참고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이 미치는 영향들을 적어봤습니다. 모든 사회문제는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그 이후에 더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니까요.  이 문제를 연구 주제로 고민하게 됐던 가장 큰 이유가 여성의 일상 불안감이었습니다. 젠더 폭력은 여성의 생명과 정신/신체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뿐더러, 사회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이어집니다. 사회적 안전망(경찰, 법 제도)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이렇게 한 번 낮아진 신뢰도를 다시 회복하기까지는 사회적 비용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폭력을 자극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을 통해 유사 범죄가 증가하고, 이것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혐오 문화가 퍼지는 결과를 만들기도 합니다. 보이지 않는 사람, 들리지 않는 사람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매우 빠르게 번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성의 불안감이 증가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폭력의 경험은 한 사람을 다르게 바꾸어 놓습니다. 친밀한 관계에서 폭력을 경험한 여성은 그 이후의 새로운 친밀한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경험합니다. 어쩌면 아예 새로운 관계를 맺기 두려울 수도 있고요. 그런데 관계는 늘 상호적입니다. 친밀한 관계에 놓인 파트너가 불안감을 호소하면 그 영향은 동시에 상대 파트너의 문제가 됩니다. 이것이 여성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남성이 폭력 문제를 심각하게 느껴야 하는 이유입니다. ‘너’의 문제는 ‘우리'의 문제이고, 동시에 ‘나’의 문제니까요. 이 부분에서 연구하고 싶은 주제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잠깐!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을 연구하기에는 생각보다 정의 내려야 하는 범위가 넓습니다. 우선 ‘친밀한 관계’에도 종류가 많습니다. 친구, 연인, 부부 관계를 생각하면 쉽지만, 가족과 파트너 등등 다양한 인간관계 형태를 고려했을 때 더 구체적으로 범위를 좁혀야 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연구의 주제 키워드를 ‘교제폭력'으로 수정했습니다. 교제폭력은 데이트 관계에서 발생하는 언어적·정서적·경제적·성적·신체적 폭력을 말합니다. 그럼 왜 데이트폭력 대신 교제폭력으로 설정했을까요?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데이트폭력’이라는 표현은 공권력이 개입하여 처벌해야 할 범죄의 심각성을 희석하여 연인 사이에 발생하는 불미스러운 일로 가볍게 비칠 우려가 있어 ‘교제폭력’으로 용어를 바꿔 사용한다고 합니다. 선행 연구 등 연구를 위한 자료를 찾아보면 ‘데이트폭력'이라는 키워드가 훨씬 더 많이 등장합니다. 다만 제가 하고자 하는 연구는 사회 운동에 기여하는 연구입니다. 어떤 언어로 문제를 부르는지에 따라 그 영향력은 크게 달라지죠. 나름 ‘세상을 구할 연구'를 계획하고 있느니 운동적 의미를 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연구는 여성의 교제폭력으로 인해 겪는 불안감이 남성의 교제 만족도에 어떠한 부정적 영향을 주는지 연구하고자 합니다.  그동안 어떤 연구가 있었을까? 모든 연구는 크게 새로운 것이 없다고 합니다. 대학원에서 공부하다 보면 “네가 생각하고 있는 연구는 이미 누군가가 했을 거다"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죠. 대신에 기존의 연구를 탐구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나의 연구 문제를 뾰족하게 다듬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제폭력'에 대해 어떤 학문 분과에서 어떤 연구를 해왔는지 키워드 중심으로 찾아봤습니다. (교제폭력, 데이트폭력, 불안감, 친밀한관계폭력, 젠더폭력, 관계만족도) 교제폭력을 연구하는 학문 분과는 많지만, 그중에서도 크게 5가지가 있습니다. 여성학: 젠더와 여성에 대한 연구 주제를 전반적으로 다루는 학과입니다. 교제폭력을 연구하기 위한 기초 자료가 가장 많습니다. 법학: 주로 데이트폭력에 대한 처벌 규정과 사례를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교제폭력을 신고하고 가해자 처벌을 위한 법체계를 경유하는 여성의 경험이 담긴 연구자료들이 있습니다. 사회심리학: ‘친밀한 관계'에 대한 정의를 가장 잘 찾아볼 수 있습니다. 관계에서의 경험이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 자료가 많습니다. 사회복지학: 세부 연구 분야로 여성복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로 ‘가정폭력'을 중심으로 선행 연구가 많습니다. (보건)간호학: 여성이 경험하는 신체적/정신적 폭력에 주목한 연구가 있습니다. 이렇게 조사하고 보니, 각 학문 분과마다 ‘교제폭력'을 중심으로 특색있는 연구들이 나뉩니다. 여성학과 사회심리학은 제가 하고자 하는 연구를 위해 가장 많은 선행 연구를 참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학습 계획 그럼 앞으로 어떻게 조사를 이어나갈까요? 우선 연구 주제가 ‘관계'에 맞춰져 있는 만큼, 여성과 남성의 친밀한 관계(교제 관계)의 만족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찾아볼 예정입니다. 특히 과거의 경험이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말이죠. 그리고 더 크게 확대해 한 사람의 생애 중 폭력 피해 경험이 추후 인간관계에 미치는 영향도 탐구할 계획입니다. 전반적으로 ‘과거 경험 → 요인 형성 → 현재 관계 형성→ 관계 영향'의 구조에 대해 조사하겠네요. 마무리하며 왜 여성이 겪는 문제는 여성만의 것으로 인식될까요? 우리는 일상에서 관계를 맺으며 살고, 서로 연결되어 사회가 구성되는데 말이죠.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도 변화를 인지하고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연구하려고 합니다. 행동까지 가기 전에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발견하고 알리기 위해서요. 제가 하고자 하는 연구가 세상을 단번에 바꿀 수 없을지라도, 변화를 위한 땔감 또는 성냥불 하나 정도는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참고문헌] “지난해 친밀한 남성이 죽인 여성 최소 138명… 공식 통계도 없다” <여성신문> 2024.3.8 “‘스토킹 범죄 신고’ 2년 연속 최고치 찍나···처벌 강화했는데 왜?” <경향신문> 2023.9.14 한국여성의전화. 데이트폭력 대응을 위한 안내서. 2018 
젠더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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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의 대화] '소외되는 사람들을 위한 더 너른 이야기'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은 남성과 남성성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페미니즘 단체입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노동 분야와 사회적 소수자/약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함께 고민해보았습니다. 진행개요 진행일시 : 2023년 6월 28일(목) 21:30~22:10 진행장소 : 이한열기념관 1층 (서울 신촌역 인근) 함께한 사람들 : 3명 (한, 태이, 곽명진) 대화모임의 계기 시민사회 활동가로서 '노동'이 가지는 의미를 고민해보고 싶었습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들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었습니다. 진행 흐름 사전 영상을 각자 시청했습니다. 진행자가 대화모임의 취지를 소개했습니다. 5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토론했습니다.  토론 정리  [질문 1] 나에게 노동이란 OO다. 한 : 의미와 생계 그 어딘가를 떠도는 일. 태이 : 나에게 노동이란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다. 곽명진 : 돈벌이를 위한 것, 내 인생의 가장 큰 줄기 중 하나,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질문 2] "좋은 노동"이란 무엇일까요? 한 : 정당한 보상이 있으면서도 개인의 삶을 잠식하지 않을 수 있고 또 그것이 단지 한 사람의 밥벌이에만 그치지 않고 사회에 최소한의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노동 태이 :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각자의 역할을 다 할 수 있을 때 좋은 노동이지 않을까. 그리고 노동의 결과가 사회 전체에 도움이 되면 제일 좋은 것. 곽명진 : 스스로 존재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노동. 즐거움을 느껴도 좋고 자신만의 자부심을 느껴도 좋고, 각자 일련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면 그게 좋은 노동이라 생각합니다. [질문 3] "디지털 노동"하면 드는 느낌은? 한 : 디지털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생산물이 실질적인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에 대한 물음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 챗GPT의 발달 같은 것을 보면서 노동 해방이 가능하지 않을까. 아니 가능했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도 여전히 든다. 태이 : 내 일자리가 없어질까봐 두려움. 동시에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챗GPT 같은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생산성을 높일 수 있겠다는 기대감. 근데 적응 못한 사람들은 뒤쳐지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걱정. 곽명진 : 디지털 노동 시대에 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미 영미권 출판계에서는 초벌 번역을 하고 있고, 관련 번역가들이 일자리를 잃었다고 한다. 나도 걱정되기도 하고, 기술이 더 발전하면 일에 활용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질문 4] 디지털 기술 발전은 위기일까요 기회일까요? 한 : 둘 다 일거라고 생각. 너무 뻔한 이야기지만 누군가에게는 기회이겠고 누군가에게는 너무 큰 위기일 것이 자명한 현실에, 이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좋을지 같이 이야기 나누는 장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 이를테면 '저작권', '개인정보'라는 개념에 있어서도 엄청난 변화가 있어야할 것이고, 생산물을 분배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노동' 아닌 다른 대안이 모색되어야. 태이 : (위기) 정보와 기술을 자본이 있는 기업/국가가 소유해서 시민들이 상대적으로 노동 영역에서 소외될 수도 있겠다. (기회) 역사적으로 없었던 새로운 노동시장이 열리면서, 인간 미래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 많아지지 않을까. 곽명진 : 늘 새로운 게 나오면 소외되는 이들이 있고, 배제되는 이들이 있다. 과거 산업혁명은 위기였을까, 기회였을까. 결국 위기나 기회를 만드는 건 기술 발전이 아닌 그걸 사용하는 제도,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함. 우리가 고민해야 할 건 이걸 기회로 만들기 위해, 소외되는 이들이 없게 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닐지. [질문 5]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사회적 약자 또는 소수자의 노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한 : 디지털 기술 발전 자체는 생산성을 높인다거나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분명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 다만,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그로 인한 소외가 아닐까? 재분배에 대한 소외, 정보접근성에 대한 소외, 노동 가치의 소외. 태이 :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노동이 점점 많아지면서, 몸을 쓰는 노동에 대한 값이 점점 낮아지고, 노동권이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 이미 발생하고 있다. 집청소, 아이돌봄, 배달노동자 등등 곽명진 : 디지털 기술을 생산, 소비, 향유하는 매체는 주로 고가일 것이고, 그렇다면 접근성 자체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지 않을까. 특히 맹목적으로 좇다 보면 뒤처지는 이들은 필연적으로 발생하리라 생각함. 기억에 남는 발언 혹은 감상 앞으로는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바뀔 것이다. 이미 웹툰 시장에서는 저작권 관련 논의가 많다.  기술의 발전으로 추가적인 소득이나 가치가 발생할 때, 이것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더 필요하다. 몸으로 하는 노동과 신기술 기반의 노동 사이에 의미부여가 달라지면서, 점점 노동의 가치가 극과 극으로 나뉠 수도 있다.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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