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를 기억하는 방식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식들 2014년 TV 화면에서 세월호란 이름을 처음 마주했다. 가라앉는 배와 그 주변을 둘러싼 헬기와 구명보트, 기자의 브리핑 등 분주한 화면 속에 사고 현장에 저렇게 많은 사람이 있으니 배는 가라앉더라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무사히 구출되지 않을까. 그렇게 뉴스에 나오는 교통사고같이 세월호는 스쳐 지나가는 하나의 소식이었고 그렇게 ‘문제없이’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생존자 구출에 대한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고 여러 이유로 구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기사만 쏟아져나오며 배는 점점 바다 아래로 가라앉았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1년 뒤 TV 화면에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시위하고 있었다. 이를 보던 아버지는 혀를 차며 유가족 흉을 봤다. 저 사람들 때문에 나라의 경제가 어렵게 되었다고, 보상도 받았다고 하던데 이제 그만할 때도 된 거 아니냐고. 혼잣말이었지만 내 귀에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가 아니었다. 저런 생각을 옳다고 생각하며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건가? 경제와 보상의 진실 여부를 떠나 아버지에게 묻고 싶었다. 만약 세월호 희생자가 나였어도 아버지는 혀를 차실까? 죽은 애들 가지고 장사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2017년 박근혜 퇴진 시위 때 다시 세월호를 마주했다. 퇴진 시위에 참여한 수많은 인파 사이로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깃발을 들고 행진하고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의 눈과 우연히 마주쳤다. 몸이 얼어붙고 저절로 눈물이 났다. ‘슬프다’는 표현 외 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미안했다. 나의 정치적 무관심으로 인해 유가족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짊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 거짓으로 선동된 지식에 맞서 어떤 말도 하지 못한 나의 소극적인 태도에 죄책감이 들었고 매주 거리를 나오는 원동력이 되었다. 광화문 거리를 걷고 걸었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큐 <장기자랑이>이 기억하는 애도의 방식 누군가는 진실을, 누군가는 거짓을 말하며 진실 전쟁이 거듭되었다. 그 사이 4.16 세월호 참사도 10년이 흘렀다. 10년 동안 유가족들이 원하는 진상규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리고 22년 10월 세월호처럼 사고가 예견된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다. 여전히 안전하지 못한 사회에서 마음 한편에 남아있는 부채감과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위험 속에 작년 이소현 감독의 <장기자랑>을 봤다. 세월호 엄마들 중심으로 수학여행 속 장기자랑을 배경으로 한 극을 준비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였다. 피해자다움에서 벗어나 엄마들의 욕망이 솔직하게 드러나는 점이 흥미로웠다. 아이들의 못 이룬 꿈을 대신 이뤄준다는 의미에서 의욕적으로 임하는 사람이 있지만, 누군가는 웃으며 연극을 참여하는게 맞는지 의문을 품는다. 또한 배역에 대한 욕심 때문에 갈등이 일어나고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극단을 떠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다큐의 마지막은 어느 한 고등학교에서 연극 <장기자랑>이 펼쳐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엄마가 대신 그 무대에 서서 한 번 놀아볼게." 아이들과 똑같은 교복을 입고 무대 위에서 웃고 즐기는 엄마들의 모습은 참사를 바라보고 기억하는 새로운 방법을 보여줘 반갑다. 아픔을 아픔으로만 남기지 않겠다는 결심이 낳은 애도 방식이다. (출처 : 노컷뉴스) 10년이 흐르는 동안 죄책감이 희미해지고 세월호를 다루는데 피곤함이 느껴질 때도 종종 있었다. 그래서 다큐 <장기자랑>이 반가웠다. 참사 피해자의 피해자다움에서 벗어나 엄마들이 실천하는 애도의 방식은 이소현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좀 더 가까운 이웃으로, 욕망을 가진 주체로서 내 기억에 남게 되었다. 그리고 나란 사람도 죄책감으로 세월호를 남겨두는 것이 아닌, 내일을 위해 ‘무엇을’을 기억할 것인지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식을 다시 묻게 되었다. 여전히 세월호 참사에 풀리지 않는 문제의 실타래가 있고 하루빨리 해결되어야 한다. 그리고 세월호에 대한 기억을 더 넓게 가져보는 순간도 남아있는 우리를 위해 꼭 이야기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4.16 세월호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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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에너지 생산하고 판매까지... 이런 동네, 가능합니다
▲  시민들이 기후위기에 대응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언플래쉬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의 협력은 어떻게 가능할까?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에너지 전환은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에너지원을 바꾸는 것만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에너지를 소비하는 태도 전반에 걸친 변화를 포함합니다. 작게는 일상에서 에너지 사용 습관을 바꾸는 것부터 도시의 구조, 에너지 생산과 소비의 변화, 에너지 소유와 통제 시스템까지. 에너지 전환을 위해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의 방식을 상상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에너지를 어떤 식으로 전환할지, 우리 일상을 바꿔야 하는 문제에 대해 보다 많은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고 협력을 만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에너지자립마을은 주민들 스스로 마을의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는 공동체를 말합니다. 주민들이 에너지 생산, 공급에 직접 참여하여 에너지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지역의, 일상의 에너지 전환을 만들어 간 국내외 에너지자립마을의 사례를 통해 시민주도의 에너지 전환의 의미와 기후위기의 대응에서 시민협력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상상하고 나누는 노력, 에너지자립 마을 성대골 성대골은 서울시 동작구 상도 3, 4동 성대시장에 자리 잡은 도시형 마을입니다. 대도시 안에 있는 에너지자립마을이라고? 생각이 들지만, 2011년부터 지금까지 에너지 전환을 위해 안 해 본 것이 없는 국내의 대표적인 에너지자립마을입니다. 성대골 마을은 일본 후쿠시마 제 1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 이후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주민들을 중심으로 ‘절전소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주민 스스로 에너지 강사가 되어 학습과 실천을 통한 변화를 만들어 갔습니다. 또한 에너지 문제를 다루는 기업을 만들자는 데 뜻을 모으며 ‘마을닷살림' 협동조합을 만들고, 마을기업 ‘에너지 슈퍼마켙’도 열었습니다. 특히 여성, 청소년, 다문화, 인권, 노동 등 성대골에 함께 있는 다양한 활동 커뮤니티와 연결됨으로써 주민 중심의 에너지 전환운동이 확장되고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성대골의 에너지 전환운동은 ‘서울시 원전하나 줄이기 정책'에 반영되어 에너지자립마을을 만드는 파트너로 함께 성장했고, 일상의 실천을 넘어 시스템적인 변화에도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전기요금 정상화를 위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한 시민회의를 조직한 것도, 온실가스 총량을 줄이지 않는 국가에 대한 소송도 성대골에서 제안하고 적극적으로 진행했습니다. 성대골 마을의 활동 원동력은 참여하는 주민들이 에너지자립의 필요성에 대해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내가 쓰는 전기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디에서 오는지를 알고, 절약과 효율로 내가 쓰는 전기를 먼저 줄이는 것부터 시작한 후 자연적인 방식으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데까지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도시민에게 저 멀리 떨어진 발전소와 송전탑을 거쳐 이 전기가 나에게 오는 동안 누군가의 희생과 부담이 있었을지 상상하고 나누려는 노력. 에너지전환은 이런 시민 스스로의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는 실천과 이를 지원하고 확대하는 정책이 함께 해야 가능할 것입니다. ▲  성대골 마을기술학교의 ‘우리집 그린케어' 강의가 진행되고 있다. Ⓒ성대골 전환센터 '우리가 바꿀 수 있다' 오스트리아 무레크 에너지 전환 오스트리아의 무레크(Mureck)는 몇몇 주민의 아이디어로 마을에서 바이오디젤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이 아이디어에 동의한 지역 농민 200명이 조합원으로 참여해 에너지 협동조합(SEEG)을 설립했습니다. 농민들은 협동조합의 설립뿐만 아니라 민주적인 운영을 위해 주민들의 투표로 임기제 사장을 선출하거나 주요 사항을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는 과정을 거치며 주체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에너지 전환이 자신들의 일이 된 무레크 주민들은 지역의 대학과 산학협력을 통해 기술을 발전시키고 매뉴얼에 따라 적극적으로 바이오에너지 생산에 참여했습니다. 그 결과 폐식용유 등 마을 자체에서 생산하는 연료로 지역의 난방, 주유 등의 에너지를 100%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쓰고 남은 70%의 잉여에너지는 다른 지역에 판매하여 수익까지 만들어냅니다. 지역 주민으로부터 시작한 아이디어가 주민들의 지지로 길을 열고, 아이디어를 실현시키기 위해 개인이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고, 그 개인들의 행동이 모여 커다란 변화를 일구어낸 것. 무레크의 지역 주민들은 이 모든 과정을 직접 겪었습니다. 그리고 주민의 참여와 협력이 이 지역 전체의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며, ‘우리가 해낼 수 있다’, ‘우리가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성취감을 가지게 된 무레크 주민들은 이후 지역의 목재를 활용한 열에너지 전환과 전력 분야의 자립 등 에너지 전환 실험을 끊임없이 시도해나갑니다. 이처럼 중앙 정부의 주도로 진행한 하나의 정책이 아닌, 주민의 주도와 협력으로 이루어진 실험과 성공은 그 지역 주민들의 또다른 동력이자 귀한 자산이 됩니다. 무레크의 사례는 인근 지역인 그라츠(Graz)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그라츠는 지역에서 생산할 에너지의 다양한 원료를 주민들의 일상에서 효과적으로 얻기 위해 지역 주민들과 앱(App)을 통해 폐기물의 정보와 수거방식 등을 적극적으로 공유했습니다. 특히, 주민들이 매뉴얼대로 폐기물을 버릴 뿐만 아니라 직접 폐기물의 사진을 촬영하여 앱에 업로드하면 GPS 기반으로 폐기물의 빠르고 정확한 수거로 이어지는 방식은 작은 실천을 통해 에너지 전환이 가능하다는 점을 주민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성취감을 안겨줍니다. ‘우리가 할 수 있다'라는 자기효능감은 개인의 변화만이 아니라 주변 지역에도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 줍니다. ▲  유채로 바이오디젤을 만들고 있는 무레크 마을의 모습 ⒸSEEG Mureck 홈페이지 시민 중심의 에너지협동조합을 통한 에너지 전환 독일의 재생에너지 협동조합 역시 시민참여를 통해 에너지 민주주의를 실현해 온 의미 있는 사례입니다.독일의 재생에너지 생산량은 1990년대만 하더라도 전체 생산 전력의 3.1%에 불과했지만, 2018년 기준으로 40%를 넘기며 발전원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에너지전환에 대해 전문가들은 오랜 기간 에너지전환 기조를 유지하며, 사회적 합의를 발전시켜온 가장 큰 동력으로 '주도적 시민참여'를 뽑았습니다. 에너지경제연구원(2019)에 따르면 협동조합의 장점은 재생에너지 생산을 통해 창출한 경제적 수익을 분배한다는 점 외에도, 조합원들의 투명하고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돕는다는 데 있습니다. 주식회사와 달리 주민 모두가 동등한 의결권을 가짐으로써 지역의 에너지문제 해결과정에서 자발성을 가질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에너지전환을 통한 협동조합 배당금(실질적 수익)이 그리 높지 않음에도 재생에너지 사업이 지역 주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이유는 '내 손으로 지역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는 효능감과 만족감 덕분이기도 했습니다(프레시안, 2020). 확대된 시민의 역할을 바탕으로 진행된 지역의 에너지전환은 실제 에너지 공급에도 큰 기여를 했습니다. 기존 화석연료가 바탕이 된 중앙집중식 전력수급 체계와 달리, 지역 단위의 바텀업(bottom-up) 방식으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함으로써 도출된 해결책은 자급이 가능한 에너지 시스템을 만들고 남은 에너지는 판매함으로써 중앙정부도 협동조합 활성화를 적극 권장하고 지방정부의 거버넌스를 확대해가고 있습니다. 시민 중심의 에너지전환이 지역을 넘어 중앙 정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요. ▲  독일 재생에너지 기반 발전량과 에너지 협동조합 개수의 변화 (1990년~2017년)Ⓒ독일에너지전환대화(2018) 에너지 전환 속 시민주도성 국내외 에너지자립마을의 사례는 훨씬 많고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함께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전 지구적 위기에 우리 스스로, 함께 풀어야 하는 문제라는 인식이 그만큼 확장되었기 때문이죠. 우수한 에너지자립마을의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지점은 ‘시민주도’입니다. 에너지 정책의 파트너로, 변화의 주체자로, 의사결정자로, 다양한 시민주도 에너지 전환활동을 통해 시민들의 협력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에너지 전환은 삶의 전면적 전환이고 국가의 힘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나의 자리에서부터 에너지 자립을 실천하고 그 실천의 마음들이 계속 연결되어야 합니다. 빠띠도 에너지 전환을 위해 작은 실험을 해보려고 합니다. 그린워싱을 주제로 시민들과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함께 협력해 공익데이터를 만들어 보는 데이터실험 활동(링크)입니다. 시민주도는 문제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시작해 작은 행동과 협력 이런 경험들이 서로를 성장시키며 우리 모두의 일로 공감을 확장하는 것에서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확장된 연결들이 사회 변화의 축이 되어 시민이 중심이 된 에너지 전환을 더 많은 일상과 마을에서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 : 우디 / 사회적협동조합 빠띠 활동가 / woody@parti.coop 이 글은 오마이뉴스, 빠띠 홈페이지, 빠띠 블로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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