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처음 만나는 공화주의] 시민 참여 - 민주공화국 실현을 위한 초석

2024.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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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사회를 위한 대안을 배달해 드립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에서는 우리나라를 민주공화국이라 설명한다. 진정한 민주주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공화’에 대한 개념이 중요하지만, 민주에 비해 공화를 다룬 글은 많지 않다.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공화‘. 창작그룹 ’성찰과성장‘은 [처음 만나는 공화주의] 연재를 통해 ’공화주의‘에 대해 쉽게 풀어보고자 한다.


민주적 공화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3가지 요소가 강조된다. ▲적극적인 시민 참여 ▲공동선을 추구하는 정치 ▲기본적인 물질적 보장을 통한 민주적 평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번 3편에서는 민주적 공화주의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적극적인 시민 참여’에 대해 탐구해본다.


‘시민참여’라는 말이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시민참여는 주로 공공 영역에서 수행하는 사업, 정책, 행정 등에 시민이 참여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말하는데, 논의의 간결함을 위해 정치 영역에 맞춰 시민참여를 이야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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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은 민주주의의 뿌리이다. ⓒ성찰과성장

시민참여로 더 나은 공화주의 만들기 

시민참여를 말할 때 항상 강조되는 것이 ‘시민의 덕성’이다. 이 개념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 기원을 두고 있다. 현대적 맥락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이를 잘 표현했다. 그는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라며 시민의 힘을 강조했다. 개인의 이익을 넘어 사회 전체의 이익을 함께 추구하는 능동적인 시민이 민주주의라는 나무가 꿋꿋이 서 있을 수 있게 만드는 뿌리라는 뜻이다. 성찰과성장은 일상 속 실천에 방점을 찍어 ‘시민의 덕성’을 ‘정치적, 사회 문제에 대해 관심을 두고, 그 관심을 자신의 일상으로 연결해 적극 행동하고 실천하는 것’으로 정리해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시민적 덕성’을 촉진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공동체의 공화적 역량을 향상할 수 있을까? 예상하듯 이 과정은 녹록지 않다. 시간도 많이 필요하다. 기후 위기 문제와 같이, 일상에서 공동체와 사회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논의, 꾸준한 성찰의 과정이 있어야 더 나은 민주공화제를 실현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상적이고 다양한 층위에서 시민의 사회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작금의 시대상을 떠올리며,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있는지 되돌아보자. ‘정치 참여’라는 말을 듣게 되면 무엇부터 떠오르는가? 대부분 '선거 투표'를 먼저 생각할 것이다. 선거는 중요한 정치 참여 수단이지만 이것만으로 정치에 충분히 적극 참여했다고 할 수 있을까? 다수결에 의한 결정 과정은 다수 의견만 반영하는 한계가 있고, 투표는 승패를 가를 뿐 근본적으로 양측(혹은 그 이상)의 진정한 화합을 이루어 낼 수 없다. 또한 정치권력에 대한 심판은 몇 년 단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수시로 정치권력을 견제하기 어렵고, 유권자의 무관심은 민주적 공화주의를 위태롭게 만든다.


소수에 대한 다수의 억압을 예방하려면, 민주공화제 내에서 권력이 분산되어야만 한다. 대통령이나 특정 집단의 권력 독점을 차단하고, 다양한 관점을 가진 집단과 권력 구조 안에서의 상호 견제가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의 원동력이 바로 '시민의 덕성'이다. 시민적 덕성으로 무장한 정치 공동체는 단일 권력을 감시하고 사회의 부패를 방지한다. 이것이 우리가 일상 속 실천을 그토록 강조하는 이유다.


아래에서 시민적 덕성이 실제로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지 두 가지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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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은 곧 권력이다. ⓒ성찰과성장

대표적인 시민참여 제도, 주민참여예산제 

우리나라는 주민자치회, 청년네트워크 등 시민으로서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가 있으며 대표적인 제도로는 전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주민참여예산제(이하 참여예산)가 있다. 주민참여예산제는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과정에 주민을 참여시키는 제도로, 시민이라면 누구나 참여예산제를 통해 거주 지역에 필요한 정책과 예산을 제안할 수 있다. 서울시의 경우, 2022년 서울시민이 제안한 사업을 심의하여 총 22.5억 원을 23년 예산에 편성했다.


참여예산은 재정 운영 측면에서 행정 시스템을 견제하고 투명성과 책임성을 청구할 수 있는 제도다. 참여예산 도입 전에는 의회 · 행정 등 공공 권력이 예산 편성권을 독점하고 있었지만, 이 제도가 도입된 2011년부터는 예산 과정이 점차 주민에게 개방되었다. 참여예산이 효과적으로 실행된다면, 내가 어디에 살든 지역 예산 과정(편성·집행·평가)에 참여할 기회가 생긴다. 이러한 참여는 예산 사용의 효율·효과에 대한 주민의 관심을 증가시키고, 재정에 대한 책임이 궁극적으로 주민에게 있다는 인식을 강화하며 시민적 덕성을 함양한다.



주민참여예산제의 현황과 한계: 13년의 여정과 지속적인 개선 필요성 

주민참여예산제도는 2011년 지방재정법 개정을 통해 각 지방자치단체가 의무적으로 운영하게끔 변화되었다. 시행 13년이 넘은 제도의 현황을 간략히 살펴보자.


지난 2018년 3월, 「지방재정법」이 다시 한번 개정되면서 주민참여예산의 범위는 ‘예산 편성 과정에의 참여’에서 ‘지방 예산 편성을 포함한 전반적인 예산 과정에의 참여’로 확장되었다. 개정 전에는 주민이 예산 ‘편성’ 과정에만 참여할 수 있었다면, 최근 개정은 주민이 예산의 시작 단계인 편성을 넘어 ‘집행’과 ‘결산’ 등 전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나 법 개정 이후 5년이나 지났음에도, 지방재정법 개정 취지에 맞추어 조례를 개정한 지방자치단체는 전체의 43.2%에 불과해, 아직도 많은 지자체에서 이 제도의 완전한 이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민참여예산제는 민주적 공화주의를 위한 중요 수단이지만 여전히 많은 개선과 발전이 필요하다.


*최승우, 전국 지방자치단체 주민참여예산 조례 정비 현황 분석, 나라살림연구소 브리핑 350호, 20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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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주의는 평범한 시민의 일상적 참여가 전제되어야 한다. ⓒ성찰과성장

아일랜드의 헌법회의: 시민 주도 참여의 모범 사례 

아일랜드의 ‘헌법회의’는 행정과 의회가 시민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을 넘어 실질적인 정책 반영의 기회와 충분한 숙의 과정을 보장해준 모범 사례로 꼽힌다.


2012년 12월부터 2014년 3월까지 약 15개월간 아일랜드에서는 시민이 참여한 헌법회의(The Convention on the Constitution)를 운영했다. 아일랜드는 먼저 100명의 시민을 모집하고 1박 2일 간 전문가 발표와 토론을 거쳐 의제에 대한 시민의 이해를 높였다. 그 후 의원 33명, 무작위로 추첨된 시민 55명, 의장 1명 등 100명으로 구성된 헌법회의를 출범시켰다. 이 헌법회의는 ‘동성결혼 합법화’와 ‘대통령직 출마 나이를 21세로 하향조정’ 등의 권고안을 제출하였고, 마침내 2015년 ‘동성결혼 허용’이 국민투표로 최종 승인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아일랜드 시민은 시범기구 ‘위드 더 시티즌(With The Citizen)’를 시작으로 헌법회의를 거쳐 ‘시민의회’를 정착시켰다. 시민의회는 ‘17년 낙태 논의를 거쳐 ‘23년에는 마약 대책에 대해 활발히 논의하는 등 시민의 적극적인 정책 개입이 이어지고 있다.



시민참여: 민주적 공화주의를 위한 시작 

아일랜드의 헌법회의·시민의회 사례에서 정치권력이 시민을 진정한 논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토론과 숙의를 통해 대안을 모색한 과정을 확인했다. 아일랜드 정치권력은 시민의 의견을 무조건 수용해야 하는 의무가 없다. 그럼에도 헌법회의(시민의회)에 더 큰 권한을 이양하고 시민에게 더 넓은 참여 기회를 보장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시민을 관망자가 아닌 정책 과정의 핵심으로 인식한다는 긍정적 신호다. 또한 시민의 일상적 정치 참여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음을 뜻한다.


시민참여는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때론 힘들고,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생동감 넘치는 민주주의는 시민의 힘으로만 가능하다. 여전히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는 2024년에는 더 많은 시민의 참여로 문제가 해소되길 바란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대안을 배달해 드립니다" - 창작그룹 성찰과성장
글 작성 ・ 편집 : 김설, 박배민, 신동주
(성찰과성장.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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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참여·정치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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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성찰과 성장 김설입니다.

좋은 질문 감사합니다. 저도 평소 고민했던 지점이었는데 덕분에 생각 정리를 하게 되었네요.

시민의 의견 수렴 및 의사 결정권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 대한 시민 참여 활성화 방안을 몇 가지 답변드립니다.



1. 민주주의 활성화를 위한 시민 참여의 필요성
- 시민의 참여는 민주주의의 핵심 원칙 중 하나입니다. 비전문가인 시민의 참여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중요한 요소임을 인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시민 참여 제도는 직접적인 정책 반영을 넘어 정치에 참여한 경험을 통해 시민 의식이 깨어나고, 정치적 효능감이 높아지는 시민 교육적 역할도 지니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활성화를 위해 시민 참여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함께 인지해야 합니다.



2.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정보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보완 장치 구축
- 분명 현실적으로 모든 시민이 전문성과 정보에 대한 편중이 갈릴 수 있는 현실을 인지하고 이를 위한 보완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무작정 시민 참여 장을 여는 것이 아니라 참여자 간 정보 격차 해소를 위한 섬세한 설계가 필요합니다. 아일랜드 사례에서도 헌법의회를 진행하기 전에 1박2일 동안 전문가 포럼 및 토론 등을 통해 숙의 과정을 위한 사전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이외 필요한 자료 제공, 시민 친화적 언어 순화 등의 환경 조성이 필요합니다.



3. 의사결정 시 다양한 주체 간 협의 과정 강화
- 간혹 시민 의견을 수렴하자고 하면 시민의 의견을 전적으로 따라야 한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시민 참여는 시민 의견의 무조건적인 수용이 아니라, 정책 과정에서 시민을 소외시키지 말자는 의미입니다. 행정, 의회, 전문가 중심의 정책 결정 방식에서 벗어나 시민, 민간, 기업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별 입장을 고려하여 더 나은 방안을 모색하자는 것이지요.
- 시민 의견의 무조건적 수용이 옳은 것은 아니며, 반대로 당사자 의견이 배제된 전문가 중심의 의사 결정 역시 옳지 않습니다. 협의체를 구성하여 행정, 전문가, 시민들이 함께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시민의 입장을 고려한 정책을 개발하는 것이 좋은 방법입니다.
- 유사 사례로, 서울시 시민참여 예산제의 ‘민관예산협의체’가 있습니다. 서울시 시민참여 예산제는 시민들이 직접 정책을 제안하고 시민 투표를 통해 차년도 일부 정책 및 예산을 결정하는 제도입니다. 서울시는 모든 시민 의견을 시민 투표에 올리지 않고 선정 과정에서 행정, 전문가, 시민으로 구성된 ‘민관예산협의체’를 운영합니다. 이 협의체를 통해 시민들은 정책 집행 및 실무를 담당하는 행정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으며, 전문가는 논의 중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4. 시민 참여의 성과를 공개적으로 평가

- 시민 참여가 정책 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평가하고 결과를 공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 시민들은 자신들의 참여가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으며, 신뢰와 참여의욕을 높일 수 있습니다.



5. 정보 투명성 강화
- 정부와 관련된 정보에 대한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민들은 정책 결정과정에 대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정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제공하고, 투명한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유지해야 합니다.

주민참여예산, 헌법회의나 시민의회, 국민 참여 재판까지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실험적인 모델들이 제시가 되고 있는데요. 일명 '전문성이 적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결과물을 제대로 믿을 수 있겠느냐?'라는 비판도 있는걸로 아는데요. 시민참여가 더 활성화되려면 위 비판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글을 반겨주시고 궁금한 점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양쪽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의제일 때 시민 의견을 모두 수렴해야 하는지에 대해 물어보셨는데요.


먼저, 시민 의견 수렴 정도는 논의 목적 및 목표에 따라 달라집니다. 단순히 시민 의견을 청취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을 넘어, 합의 및 의사 결정을 지어야 하는 사안이라면 당사자 및 주요 이해관계자 위주로 구성원을 모집하고 핵심 관계자를 중심으로 먼저 논의를 진행하여 쟁점에 대한 의견을 좁히고 시민 투표를 올려 많은 시민의 의견을 듣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반면, 합의가 필요 없이 가능한 많은 시민 의견 및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면 모든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공론장을 열거나, 시민의 선호도 및 경향성을 알고 싶다면 설문조사나 시민 투표로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말씀해주신 대로 첨예한 사안의 경우 시민 간 갈등의 소지가 있어 상호 의견에 대한 혐오 및 선입견을 예방하는 작업이 많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논의 전 전문가 포럼이나 관련 자료를 배포하여 각 입장에 대한 의견과 근거를 들어봄으로써 정보 격차와 편향된 시각을 줄이는 사전 작업이 필요합니다. 또한 현장에서는 혐오 표현 및 감정적 갈등을 예방하기 위한 그라운드룰(약속문)을 제안하고 전문 퍼실리테이터를 배치하여 원활한 논의가 이루어지기 위한 장치가 필요합니다.

세 번째 글도 흥미롭네요. 시민참여 혹은 시민주도 활동들이 더 늘어나는 게 사회 전반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노무현 대통령이 했던 말들을 다시 찾아보곤 했는데 글 내용에 들어가 있어서 반가웠네요. 더 많은 사람들이 제도와 문제를 정확하게 이해할 때 더 많은 논의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한 가지 궁금한 점은 양쪽의 입장이 첨예하게 나뉘는 사안에 대한 논의 방식이었는데요. 더 많은 시민과 논의의 장을 열기 위해서 우선 모든 시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중요할지 아니면 일종의 그라운드 룰과 같은 규칙을 마련하고, 규칙을 준수하는 선에서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중요할지였습니다. 이 글에서 언급해주신 사례에서 비슷한 내용을 보신 게 있는지, 성찰과 성장에서는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