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6411의 목소리] 재일동포는 ‘투명인간’이 아닙니다

2024.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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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재단은 6411 버스 속의 사람들처럼, 지치고 힘들 때 함께 비를 맞고 기댈 수 있는 어깨가 되겠습니다.

[6411의 목소리] 재일동포는 ‘투명인간’이 아닙니다 (2022-06-08)

공경순 | 재일동포 3세

한국·일본·미국에서 펼쳐지는 재일동포 4대의 가족사를 다룬 드라마 파친코. 애플티브이플러스 제공


저는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재일동포 3세입니다. 일본에서 나서 자랐지만 민족교육을 받아 제 정체성을 확립했습니다. 제 성격의 일부를 만든 것은 민족교육에 있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민족학교에서는 차별을 별로 못 느끼고 컸습니다.

제가 일본 사회에서 크게 차별을 느꼈던 때는 다 커서 어른으로 살아가게 되어서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벌써 20년도 지난 이야기여서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사소한 걸림돌이 많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난 건데, 사회 초년생 때 자취를 하게 되었는데 집 계약을 할 수 없어 회사에서 빌려줬습니다. 그때 저는 “그래, 안 빌려준다면 빌려주는 길을 꼭 찾아올 거야”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낙담하기보다는 어떻게든 되게 하는 길을 찾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빌린 건 아니니 본질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네요. 그렇지만 굴하는 모습만은 보여주기 싫었던 그 시절이 기억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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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국에 온 지 11년이 흘렀습니다. 한국에 오면 차별이 없을 거라는 기대를 살짝 했지요. 저는 한국 국적을 가진 한국인이니깐요. 그렇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제가 한국에 넘어온 11년 전에는 아직은 거소신고증을 갖고 생활을 해야 하는 등 여러 면에서 굉장히 불편했습니다. 그 흔한 네이버 아이디 등록도 힘들었고, 핸드폰도 남편 명의로 개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몇년이 흘러 거소신고증이 ‘주민등록증’으로 바뀐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주민등록번호가 생성되면 이제 나는 이 나라에서 내국인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일부 편해진 면도 있었으나 외국인 취급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외국인이 나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여러번 했었습니다. 요새 대포통장 때문에 법이 강화된 건 이해하는데 은행에 가면 저희는 늘 외국인으로 분류가 됩니다. 주민등록증을 보여줘도 전산에 외국인으로 뜹니다. 한국 국적을 가졌지만 외국인인 셈입니다. 그런데 다문화가정 혜택에서는 제외됩니다. 어린이집 대기를 걸 때도 다문화가정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내국인으로 대기 줄을 섭니다. 왜냐고요? 그냥 법을 따랐을 뿐이라고 답합니다. 저는 한국에서 외국인도 내국인도 아닌 법의 중간에 낀 ‘투명인간’이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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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제 명의 집을 매도할 일이 있었는데 내국인이 필요한 서류를 다 준비했으나 매도하는 날이 되니 세무서에서 세무 관련 서류를 떼오라고 하더군요. 부동산 계약용 인감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세무 관련 서류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세무서에 달려갔는데 그 서류를 떼는 데 2~3일 걸린다고 했습니다. 계약이 엎어질 수도 있는 큰 문제였습니다. 세무서 직원에게 빌고 빌었더니 다행히 빨리 대처해줘 그날 매도를 무사히 할 수 있었으나,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합니다. ‘재일동포는 법 사이에 낀 투명인간이구나’라고 다시금 느꼈습니다.

재일동포 사회는 커뮤니티 사회입니다. 힘든 일이 많은 속에서도 작은 동네 안에서 서로 돕고 살았지요. 저는 그런 환경이 그리워설까요, 김포지역 한 봉사 모임에서 2018년부터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캘리그라피 작가로 활동 중인데요, 소외계층 분들에게 힘이 되는 글귀를 써드린 액자를 드리거나 사랑의 글귀를 담은 머그컵을 제작했습니다. 그로 인해 저는 경기도지사 표창도 받아보았습니다. 제 인생에서 이런 큰 상을 받게 될 줄 생각도 못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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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온 지 10년이 넘은 지금 이제는 외롭지도 않고 내 편이 많아서 든든합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법 안에서는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일본에서 조선사람으로서 꿋꿋이 살아왔는데, 한국에 와보니 ‘내 나라는 어디일까?’ 헤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그냥 포기해버리는 것이 더 쉬울 수도 있습니다. 평생 외국인도 아닌, 내국인도 아닌 존재로 살아가려면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나라를 가든 늘 투명인간 취급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슬프기도 합니다. ‘재일동포’라는 존재가 좀 더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일본에 오래 살았지만 한국 국적을 갖고 계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 왜 그들은 국적을 바꾸지 않을까요? 재일동포라는 존재 자체가 바로 일제강점기의 아픔입니다. 제가 캘리그라피를 열심히 하고 인정받고 싶은 이유 중 하나가 ‘재일동포 공경순’이라는 존재를 알리고 싶어서입니다. 저는 캘리그라피 글귀에도 재일동포에 관한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자주 담습니다.

수십년이 지나도 조국을 잊지 않고 우리 민족의 자부심을 갖고 살아온 재일동포를 더 알리고 싶고 한국 사회에서 더불어 잘 살아가고 싶습니다. 내국인도 외국인도 아닌 그런 ‘끼인’ 존재가 아닌, 저희 재일동포를 알아주세요. 저희도 같은 민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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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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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이 중요하다는 말을 한국에서 참 많이 하는 것 같은데요. 정작 가장 가까운 동포조차 차별받고 있다고 느낄 정도로 여전히 곳곳에 문제가 남아있네요.

그 어느곳에서도 속하지 못한다는 느낌의 구조적 각인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평생에 걸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인 것 같습니다.

주민등록증이 있음에도 전산에서는 외국인으로 뜨게 해놨으면서, 그렇다고 다문화 복지 관련해서는 외국인이 아니어서 전혀 이용할 수 없다니.. 일본에서도 차별을 받고, 내 나라 한국에서도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다니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이러한 사각지대가 하루빨리 개선되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해야 목소리를 더 많이 모을 수 있을지 고민이 됩니다.

재일동포들은 어디서나 '외국인'으로 대해지며 외롭고 힘든 일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국경이라는 경계는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잘 체감하지 못하는 법이지요. 매일 경계를 넘나들고 삶이 곧 경계인 삶들에 대해 귀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 사회의 많은 차별과 불합리성을 발견하게 되고 문제를 해결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다양성을 존중해야 더 풍요로운 세상으로 갈수 있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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