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연구원정] 장애인 노동권을 보장하는 수단으로서 장애인 고용의무제의 현황과 한계

202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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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연구원정 부트캠프>에 참여 중인 대원님의 연구과정을 정리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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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회문제는 복잡다단하죠.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은 문제들을 사회적 난제,  Wicked Problem 이라고 부릅니다.”

연구원정 부트캠프에 소개글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많은 사회문제를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Wicked problem, 즉 ‘사악한 문제’입니다. 다음 문장은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하면 이렇게 서술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우리가 직면한 사회문제에 대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 하나의 명약을 찾아내려는 것이 아닙니다. 연구를 통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대안을 탐구하며 계속해서 변이하는 이 문제들에 대한 우리만의 방어체제, 면역체계 ****Immune System ****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한 군데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표현이 있습니다. “근본적 해결”입니다. ‘급변성, 불확실성, 복잡성, 모호성’(VUCA) 등의 특징을 가진 현대사회의 사악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싶은 것입니다. 물론 ‘근본적 해결’을 위한 ‘하나의 명약’을 찾는 프로젝트는 아니라는 취지를 분명히 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오해는 없습니다.)

연구원정에서 다루는 문제는 아마 모두 ‘사악한 문제’에 해당할 것입니다.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장애인 고용 혹은 일자리 문제 또한 그러합니다. 장애인에게 더 많은 일자리가 주어져서 일하는 장애인이 많으면 좋겠다는 견해는 매우 강력한 지지를 받을 것입니다. 복지관대성에 관한한 한국은 매우 소극적인 국가에 속하고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는 접근은 복지국가가 본격적으로 발전한 이후에도 정당성을 쉽게 얻고 있으니까요. 이동권과 기타 장애인 권리 보장을 요구하면서 지하철역에서 시위하는 장애인에 차가운 눈길을 주는 시민도 장애인에게 일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주장에는 흔쾌히 동의할 것입니다. 이렇듯 폭넓은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고 국가가 나름 다양한 정책을 통해서 보장하려고 하는데도 장애인 고용의 현실은 썩 개선되지 않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사악한 문제’와 관련된 전형적인 모습일 것입니다. 장애인 고용은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크게 개선되지 않을까? 어떤 접근이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이 이 주제에 대한 연구 관심사의 바닥 층위에 있습니다.

사전에 따져 볼 수 있는 질문이 있습니다. 왜 장애인이 꼭 일을 해야 하는가? 일을 하지 않을 권리는 없는가? 장애인 고용을 강조한다면 일하고 싶어도 일하지 못하는 장애인을 한 번 더 배제하는 접근 아닌가? 장애, 장애인은 도대체 어떤 상태와 어떤 대상을 지칭하는 개념인가? 장애 정의도 크게 다르고 장애의 상태에 따라 일자리, 노동 관련성이 크게 다른데, 장애인 고용으로 통틀어서 이야기하는게 정당한가? 실제 장애인 고용률이 그렇게 개선되지 않고 있는가? 여러 정책이 동원되고 있는데 통틀어서 얘기할 게 아니라 구분해서 따져봐야 하는 것 아닌가? 어떤 정책이 어떤 효과를 가져오거나 혹은 효과가 없는지?

이러한 질문은 모두 따져보고 연구해야 할 중요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다양한 방식으로 연구되고 있고 이에 대한 문헌도 방대합니다. 다만 나의 연구에서는 이를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기로 합니다. 한 사람의 연구자가 새롭게 제시할 수 있는 지식이나 사회에 대한 기여는 매우 작을 수 밖에 없는데 그걸 위해서라도 선택과 집중은 불가피하니까요.

선택과 집중의 대상은 “장애인 고용의무제”입니다(지난 1991년부터 국가와 지자체, 상시근로자 50인 이상인 민간 사업자에게 일정 비율의 장애인을 고용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그 비율은 2024년 기준 공공 3.8%, 민간 3.1%.). 한국에서 장애인 고용에 대한 공적 접근을 대표하는 정책이니까요. 실제 고용의무제 대상 인원으로 산정된 장애인이 전체 고용상태에 있는 장애인 중에서 차지하하는 비중이 그리 큰 편은 아니지만, 고용의무제는 고용 인원을 넘어서서 갖는 의미가 큽니다. 무엇보다 장애인 고용의무 미이행 사업체가 내는 고용부담금은 장애인 고용정책을 펼치는 주용한 재원입니다(장애인 고용의무 미이행 공공기관과 상시 노동자 100인 인상 기업은 고용부담금을 납부해야 한다. 부담기초액은 고용 수준에 따라 달라지는데 미이행 1개의 일자리에 대해서 월 1,237,000~ 2,060,740원이다.) 장애인 고용의무제는 많은 국가에서 장애인 고용을 위한 중요한 정책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이 제도가 없거나 혹은 폐지한 국가도 있습니다. 그런 국가에서도 다른 정책 수단을 통해서 장애인 고용의 활성화를 꾀합다. 장애인 고용정책은 여러 프로그램과 정책 수단의 믹스다. 이런 점이 특정 정책의 효과성 판별을 어렵게 만듭다.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판별하기는 쉽지 않지만 일반적인 결론을 내릴 수는 있습니다. 장애인 고용정책은 그 어떤 구체적 정책 수단을 쓰더라도 그 어떤 국가에서도 장애인 고용률을 눈에 띄게 개선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사실 그리 놀랍지만은 않은 현입니다. 대부분의 복지선진국은 일반적으로 고용률을 높이기 위해서 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고용을 담당하는 핵심 주체인 민간 기업의 고용 결정은 국가의 정책적 노력 보다는 경기 등 경제와 시장 자체의 맥락이 훨씬 더 큰 영향을 받기 때문입다. 장애인 고용정책의 효과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구체적 정책의 효과를 판별하기는 힘들다. 고용의무제의 경우 장애인 고용 이슈를 환기시킨다거나 관련 정책 수행을 위한 재정 조성 등에서 그 기능을 찾기도 합니다.

장애인 고용정책은 나름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해 왔고, 고용의무제 역시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세부 정책 프로그램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이러한 장애인고용정책의 발달과 변화에 대한 연구도 꾸준히 수행되어 왔습니다. 주로 사회복지학, 장애인복지학, 행정학, 정책학, 사회학 분야에서 이를 다루고 있습니다. 학계 바깥에서는 주로 장애인 당사자단체에서 장애인 고용문제를 꾸준히 다루면서 개선책도 제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관련 논의가 상대적으로 덜 활발한 편이고 제시되는 논지나 대안도 재활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신선한 접근이나 새로운 이슈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그런 지점을 연구자의 시선으로 포착하려는 것입니다.

최근 한국의 장애인 고용의무제는 어떤 방식으로 발전(진화)하고 있는가? 그 양상은 무엇이고, 원인은 무엇인가? 고용의무제의 변화는 장애인 고용의 궁극적 목적인 장애인의 직업세계와 노동시장으로의 포함(inclusion), 일자리를 통한 소득 보장, 사회권 등 인권 보장 등의 관점에서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까지 관찰한 바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잠정적으로 내려 볼 수 있습니다.

장애인 고용의무제는 1980년대 후반 도입 논의와 발전 과정에서 장애인 노동권을 보장하는 획기적 수단으로 주목받았습니다.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서 도입되었지만 그 이후 정책의 대상, 재정, 사업범위 등이 지속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2000년 큰 폭의 법개정이 있었고 그 이후로는 그 틀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재정적인 측면에서도 부침이 있었는데 지금은 안정적입니다. ‘안정’은 다면성을 가진 표현인데, 한편으로는 변화의 가능성이 줄어들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장애인고용의무제는 지금 전반적으로 안정적입니다. 크게 변화를 가져 올 계기를 찾기 힘듭니다. 오히려 고용의무제의 변화는 고용의무제 자체의 기준을 충족시키는 방향을 택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고용의무 이행으로 인정되는 고용 형태 중에는 일종의 편법으로 볼 수 있는, 장애인고용브로커를 통한 재택근무나 간접근무 방식이 채택되고 있습니다. 장애인 고용을 돕기 위해서 배치되는 ‘근로지원인’제도도 발달장애인에게까지 확대되고 있는데 그 실행 현실을 보면 장애인 근로자의 업무 독립성 증진에 도움이 되지 않음에도 장애인 일자리와 사회적 일자리를 동시에 창출한다는 점에서 확대되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이처럼 장애인 고용의무제는 제도 자체의 경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미세조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제도가 유지될 때 주어지는 수확, 편익을 관련 행위자들이 나눠 갖고 있는 셈입니다. 이 경로가 아닌 어떤 새로운 경로가 있을까요? 고용의무제보다 더 나은 대안도 쉽게 떠올리기 힘든 것도 사실이니까요. 편익을 나눠 가고 있기 때문에,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에 고용의무제는 장애인의 노동권의 온전한 보장이란 측면에서는 결함이 많음에도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대안적 접근이 없는 것은 아닙디다. 장애인 일자리 뿐 아니라 노동에 대한 패러다임적 전환을 요구하는 시도로 볼 수도 있습니다. 먼저 일자리 개념의 확장이다. “이것도 노동이다!”는 관점에서 장애인의 권리 증진 활동을 권리 중심 일자리로 지원하는 정책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는 서울시의 경우 오세훈 시장 취임 이후 폐지되었습니다. 또 다른 대안은 일개념의 확장입니다. 자원봉사, 돌봄 등의 활동을 일에 준하는 사회적 참여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는 탈노동(post-work) 패러다임입니다. 이러한 대안적 접근은 지나치게 이상적이거나 그 적용범위가 제한적이어서 고용의무제를 대체하거나 변화를 자극하는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큰 변화는 작은 변화의 축적으로 인한 결과이기도 해서 이런 변화의 의의를 간과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장애인 고용정책, 특히 고용의무제를 둘러 싼 다양한 변화의 양상을 파악하고 그 원인과 의의 등을 추적하는 것을 연구의 방향으로 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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