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6411의 목소리] 정부가 허락한 병원 노예, 간호조무사 실습생

202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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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재단은 6411 버스 속의 사람들처럼, 지치고 힘들 때 함께 비를 맞고 기댈 수 있는 어깨가 되겠습니다.

정부가 허락한 병원 노예, 간호조무사 실습생 (2023-10-16)

임정은 | 간호조무사·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특성화고노동조합 운영위원

지난 8월30일 국회 소통관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이 간호조무사 실습생 최저임금 청구 소송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 제공


저는 2022년 9월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취득해 10개월째 정형외과 병동에서 일하고 있는 간호조무사입니다.

간호조무사가 되기 위해서는 740시간 이론수업과 780시간 의료기관 실습을 거쳐 시험을 보고 합격해야 합니다. 환자의 생명, 건강과 관련된 일을 하는 만큼 이런 과정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780시간 실습이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이 아니라, 온갖 잡일과 허드렛일, 심부름 등으로 채워진다는 점입니다. 병원의 부족한 인력을 메꾸는 일을 하는데 ‘실습’이란 이유로 임금도, 노동법의 보호도 받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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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정형외과 병원에서 약 5개월 동안 실습했습니다. 주로 환자 대기실 의자 청소, 진료실 문 열어주기, 환자 혈압 및 체온 재기, 원무과로 환자 안내 등 단순 업무를 했습니다. 그러다 실습생 관리 담당자인 간호부장이 갑자기 자기공명영상(MRI) 부서에서 실습하라고 하더군요. 그곳에서 환자들 자기공명영상 검사 안내를 했는데, 한달 뒤 신규 직원이 채용되더니 제 업무를 하더군요. 저는 또 다른 부서로 옮겨졌고요. 자기공명영상 부서 직원을 구할 때까지 임시방편으로 간호조무사 실습생에게 업무를 맡겼던 것입니다.

제가 운이 없었던 걸까요? 아닙니다. 실습생 대부분 단순 허드렛일로 시간을 보내는데, 심지어 빨래, 직원 커피나 우체국 심부름, 병원 에어컨 청소를 하며 시간을 채우기도 합니다. 일부 병원은 간호조무사 학원에 연락해 ‘우리 병원에 실습생 보내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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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에서 간호조무사 실습생 603명을 대상으로 병원실습 실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단순하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업무가 주요 실습 내용에 있는지 묻는 말에 71.3%가 ‘그렇다’라고 응답했습니다. 부당한 업무로는 잡무, 허드렛일이 71.9%로 가장 많았고, 병원 직원 개인 심부름(49.1%), 청소(41.2%)가 뒤를 이었습니다.

병원 특성상 감염 등 산업재해를 당할 우려가 크지만, 간호조무사 실습생은 노동자가 아니기에 다쳐도 산재 적용을 받지 못합니다. 환자 혈당을 체크하다가 주삿바늘에 찔려도 개인 돈으로 검사를 진행하라고 하거나 방역 마스크 하나 던져주고 감염병실에서 혈압을 재라고 시켰던 사례도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실습생이 결핵에 걸리거나 감염돼도 병원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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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의 방관 아래 병원들이 간호조무사 실습 제도를 통해 인력난을 해결하는 사이 실습생은 그저 혼자 버티는 수밖에 없습니다. 매년 간호조무사 시험에 응시하는 이는 약 4만명에 이릅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정도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렇듯 무임금으로 노동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8월 말, 실습병원 병원장을 상대로 임금청구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임금청구는 저의 780시간 노동에 대한 정당한 권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대법원은 근로자성 여부를 형식이 아니라 실질에 비추어 종속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고 합니다. 형식은 ‘자격 취득을 위한 실습’이지만, 실제로 병원에서 지시하는 노동을 했다면 노동자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2016년 고용노동부는 실습생, 수습생, 수련생 등이 교육 없이 단순 노동력으로 활용되는 문제를 막기 위해 ‘일경험 수련생에 대한 법적 지위 판단과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했습니다. 이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직무교육 프로그램 없이 업무상 필요에 따라 수시로 업무를 지시하는 등의 방식으로 일경험 수련생의 노동력을 활용하는 경우’, ‘교육·훈련 내용이 지나치게 단순·반복적이어서 처음부터 노동력의 활용에 그 주된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경우’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수련생이 사실상 근로를 제공한다면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 근로자로 볼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 기준에 따르면, 간호조무사 실습생은 노동자로 인정돼야 합니다.

저의 소송이 간호조무사 실습생들의 권리와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첫 시작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소송으로 다른 간호조무사 실습생분들도 용기와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간호조무사 실습생 노동착취 문제가 알려지고,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지급되기를, 실습생의 노동 사각지대가 없어지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간호조무사 실습생은 정부가 허락한 병원의 노예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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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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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는 작가들이 떠올랐네요. 파견직 소속으로 정규직과 같은 노동을 하지만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어디에 이야기 할 수 없는 신세라는 게 너무 유사하게 느껴졌습니다. 더 많은 노동자의 노동권이 보호될 수 있도록 많은 노동자들이 연대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꼭 필요한 간호사들의 여건이 하루 빨리 개선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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