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팩트체크] 국회의장 당적 보유 금지가 법률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발언이 사실인지 확인해봤습니다.

2024.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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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국회의장 당적 보유 금지, 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
국회법 제20조2에 따라 국회의장으로 당선된 의원은 그다음 날 소속 정당에서 탈당해야 합니다. 해당 조항은 국회의장 역할 수행에서 중립성이 중요하다는 이유로 2002년에 신설됐습니다. 그러므로, 법률에 국회의장 당적 보유 금지 조항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는 정성호 의원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단됩니다.
사실이 아님

22대 국회 개원을 약 한 달가량 앞두고, 국회를 끌어 나갈 국회의장의 중립성과 당적에 관한 논란이 뜨겁습니다. 차기 국회의장 출마 의사를 밝힌 더불어민주당 당선인 대부분은 입법 성과를 위해 국회의장에게는 ‘기계적 중립성'이 아니라 ‘선명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지난 23일,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5선, 경기 양주)이 CBS 라디오 에서 국회의장의 당적 보유 금지에 대해 "법률에 당적을 이탈하라고 하는 것이 그게 구체적인 내용은 있지 않습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국회의장 당적 보유 금지가 법적으로 명문화되어 있지 않다는 정성호 의원 주장의 사실 여부를 검증해 보고, 국회의장의 당적에 관한 역사적 맥락과 국내외 국회의장 선출 과정을 짚어보려고 합니다.


현행 국회법에 명시된 국회의장 당적 금지 여부

가장 명확하게 정성호 의원의 발언을 검증하는 방법은 현행 국회법에 국회의장 당적 여부에 관한 조항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국회법 제20조2에는 국회의장의 당적 보유 금지에 관해 아래 내용과 같이 명시하고 있습니다.

제20조의2(의장의 당적 보유 금지) 

① 의원이 의장으로 당선된 때에는 당선된 다음 날부터 의장으로 재직하는 동안은 당적(黨籍)을 가질 수 없다. 다만,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공직선거법」 제47조에 따른 정당추천후보자로 추천을 받으려는 경우에는 의원 임기만료일 90일 전부터 당적을 가질 수 있다.

② 제1항 본문에 따라 당적을 이탈한 의장의 임기가 만료된 때에는 당적을 이탈할 당시의 소속 정당으로 복귀한다.

[전문개정 2018. 4. 17.]

법적으로 국회의장으로 선출된 국회의원은 당선 다음 날부터 임기 만료일까지 당적을 가질 수 없어, 본인이 소속 정당에 탈당계를 제출해 기존 당적을 포기해야만 합니다. 의장이 당적을 가질 수 있는 예외적인 상황은 ‘임기 만료 90일 전 차기 총선의 후보자로서 출마하기 위한 경우’뿐입니다. 그러므로 법률에 당적을 이탈하라는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는 정 의원의 주장은 사실과 다릅니다.


국회의장의 당적 금지 조항과 중립성의 관계 

그렇다면 국회의장 당적 금지 조항은 언제부터 존재했을까요? 국회의장 당적 보유 금지 조항은 1960년 9월 26일에 시행된 국회법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제19조 (의장의 당적이탈) 각원의 의장은 정당의 적을 가질 수 없다.

[시행 1960. 9. 26.]

당시 4·19 혁명으로 3·15 부정선거가 무효가 되고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했습니다. 이후 허정의 과도 정부가 수립돼 개헌이 이뤄졌는데, 이때 우리나라의 정부 및 의회 형태가 대통령중심제-단원제에서 내각책임제-양원제로 변화하게 됩니다. 의회 형태에 맞춰 국회법도 전면 개정됐는데, 제19조에 민의원과 참의원의 각 의장은 당적을 보유할 수 없다는 점을 처음 명시하게 됩니다. 하지만 1963년 또 한 번의 개헌을 통해 대통령중심제-단원제로 정부-의회 형태를 바꾸게 되면서 양원제 내용을 담은 국회법이 폐지되자, 의장의 당적 금지 조항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국회의장 당적과 중립성에 대한 논란은 지속됐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적 보유 금지 조항의 역사를 조사하던 중, 일부 의원들이 국회의장 당적 보유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국회법 개정안을 제출했다는 기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2000년 제16대 국회 당시 김원웅, 오세훈,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 등 21명은 국회의장과 부의장의 당적보유 금지 조항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김원웅 의원은 "국회의장단이 당적을 보유해 공평한 국회운영을 담보하지 못하고 소속정당의 당략에 따른 의사진행으로 국회파행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국회법 개정 필요성을 설명한 바 있습니다.

국회미래연구원이 발간한 연구보고서에서는 국회의장 당적 보유 금지 조항이 없을 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의회가) '통법부'로 불릴 때는 청와대 지시에 따라 의장이 '날치기' 처리에 나서거나 여당 단독으로 의안을 처리하는 경우도 많았다. 심지어 민주화 이전에는 의장을 대통령이 지명하기도 했다. (후략)"

출처: 국회미래연구원, 연구보고서 <국회의 기능과 역할,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p20

세세한 일화들까지는 찾을 수는 없었지만, 기사와 보고서를 통해 대체로 국회의장이 원활한 회의 진행과 질서유지 등의 역할을 당파성 혹은 편파성으로 인해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2002년 3월 7일, 국회법에 지금의 당적 보유 금지 조항이 신설됐습니다. 조항의 신설 이유도 '국회의장의 중립성 보장'으로 명시했습니다. 새천년민주당 소속이었던 당시 이만섭 국회의장은 당적 보유 금지 조항을 담은 국회법 개정 합의를 이끌었고,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자마자 민주당에 탈당계를 제출했습니다. 이만섭 국회의장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당적 없는 국회의장'이 됐고, 그 이후부터는 국회의장이 되는 의원들은 모두 소속 정당에서 탈당하는 관례가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제20조의2 (의장의 당적보유금지) 

①의원이 의장으로 당선된 때에는 당선된 다음 날부터 그 직에 있는 동안은 당적을 가질 수 없다. 다만, 국회의원총선거에 있어서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 제47조의 규정에 의한 정당추천후보자로 추천을 받고자 하는 경우에는 의원 임기만료일전 90일부터 당적을 가질 수 있다.

②제1항 본문의 규정에 의하여 당적을 이탈한 의장이 그 임기를 만료한 때에는 당적을 이탈할 당시의 소속정당으로 복귀한다.

[본조신설 2002. 3. 7.]

조항이 제정된 역사적 맥락을 살펴봤을 때, 당적 보유 금지 조항은 국회의장의 역할을 수행할 때 정파적 이해관계 개입이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의 국회의장은 당적을 보유해도 괜찮을까?

그렇다면 다른 나라의 국회의장은 어떨까요? 2017년 국회입법조사처의 자료에서 미국과 영국의 의회의장 당적 관련 내용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하원의장은 의장 선출과 관계없이 당적을 유지합니다. 보통 다수당에서 선출되는 하원의장은 중립성보다도 다수당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 정파적인 스탠스를 취한다는 것입니다.

정파적 입장을 가감 없이 드러냈던 대표적인 사례는 민주당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입니다. 2021년 1월 6일(현지시각) 당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대선 결과에 불복해 의사당에 난입했던 사건 이후, 민주당 소속 하원 의원들은 선동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책임을 물어 탄핵 결의안을 발의하려 했습니다. 당시 펠로시 의장은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탄핵안 채택에 대한 의지를 밝히며,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수정헌법 제25조 4항을 발동할 것을 공개적으로 요구했습니다. 수정헌법 제25조 4항은 대통령이 직무 불능 상태에 있다고 판단되면, 부통령이 직무를 대행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법률입니다.

영국은 어떨까요? 영국의 하원의장은 의장으로 선출되는 동시에 모든 당직을 사임합니다. 영국 하원의장에게는 회의 주재자로서 모든 의원에게 발언권을 공평하게 부여하고 원내 토론을 원활하게 이끌어가야 할 책임이 강조되기 때문입니다. 즉, 국회의장은 당파성을 배제하고 중립적으로 의회를 끌어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의장에게 중립성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국회의장은 미국보다는 영국 하원의장과 유사합니다.

다만, 영국은 한국과 달리 법적으로 의장의 당적 포기를 강제하지 않습니다. 영국 의회 홈페이지의 ‘하원의장의 역사’(History of the Speakership) 페이지를 확인해 보면, ‘19세기 중반부터 하원의장은 초당파적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표준이 확립됐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여기서 ‘norm’은 ‘표준, 일반적인 기준’을 의미하는 것으로, 법률을 뜻하는 ‘act’나 강제적인 규정을 의미하는 ‘rule’, ‘regulation’ 등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출처: 영국 의회 홈페이지

정성호 의원의 입장 등을 확인하기 위해 4월 24일 관련 질의 및 반론을 의원실에 요청했으나 콘텐츠가 업로드된 27일 현재까지 답변을 받지 못했습니다. 답변이 오는 대로 정 의원님의 반론을 게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콘텐츠는 노무현시민센터의 지원으로 진행되는 캠페인즈 시민팩트체커 활동으로 작성됐습니다.

**노무현시민센터는 지원 외에 캠페인즈 시민팩트체커의 활동에 개입하지 않으며, 캠페인즈 시민팩트체커가 작성하는 콘텐츠는 독립적으로 기획, 작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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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에 생긴 법으로 규정하고 있었군요. 꽤 되었네요.

다른 나라는 어떤 기준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는데 잘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국회 의장인 만큼 '정치적 중립성'이 기본으로 요구되는 자리인 것 같네요.
정 의원은 5선이신데 규정을 모르셨을리는 없을텐데... 왜 그런 발언을 하셨을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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