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장애인 이동권 현실 : 지하철과 버스만 문제일까?

2023.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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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철학 연구자. 일어/중국어 교육 및 번역. => 돈 되는 일은 다 함

장애인의 대중교통 이용이 힘들다는 점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하루에 장애인을 몇 명이나 보는지만 각자 세어보셔도 쉽게 알 수 있지요. 그런데 대중교통만 문제일까요? 가까운 곳을 걸을 때엔 아무 문제가 없을까요?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면 문제가 해결될까요?


횡단보도

2019년부터 20년까지 장애인들이 직접 서울시 전역을 걸어보며 만든 전수조사가 2021년에 발표되었습니다. 조사결과, 총 74,320건(1km당 44건)이 설치기준에 맞지 않거나 교통약자 보행에 불편을 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설치기준에 맞지 않는 시설 중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 것은 횡단보도로 턱의 높이가 휠체어나 유모차가 오가기 힘들거나 점자블록이 없는 횡단보도가 설치기준 미달 시설 중 40.5%(30,114건)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서울시.2021.04.08.) 경사로 턱 높이의 법적 기준은 2cm입니다.

신호등에 부착된 음향신호기가 문제인 곳도 많았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는 횡단보도 117,484개 중 음향신호기가 설치된 횡단보도는 39,811개(34%)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마저도 지역편중이 심해서 세종과 서울은 각각 74.13%, 66.08%로 비교적 많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대구는 8.14%, 울산은 7.8%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최혜영 의원 보도자료)

또, 도로에서 차량이 함부로 인도로 드나들지 못하게 하기 위해 만드는 말뚝인 볼라드도 문제입니다. 볼라드 30cm 앞에는 점자블록이 설치되어 있어야 하지만 이 규정을 무시한 곳이 많고, 볼라드의 규격인 높이 80~100㎝, 지름 10~20㎝, 간격 1.5m 안팎을 지키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매일신문.2022.04.19.)

연신내역에서 저희 집인 동명여자고등학교 근처까지 오는 동안, 총 7개의 횡단보도 신호등을 마주쳤고, 그곳에는 턱의 높이가 지나치게 높은 경우, 장애인 휠체어가 오가는 낮은 턱이나 점자블록을 볼라드가 가로막고 있는 경우, 음향신호기가 고장난 경우는 다행히도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만 7개와는 별도로 폭이 좁은 도로에는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가 하나 있는데 그곳에는 음향신호기가 없어서 시각장애인들이 다니기에는 조금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들도 길을 다니시면서 신호등 밑에 있는 음향신호기를 한번씩 눌러봐 주십시오. 그리고 신호기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음향신호기 위에 있는 전화번호 02-120를 통해 이를 신고해 주십시오. 몇초 걸리지 않습니다.

또,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나 음향신호기가 없는 신호등을 보시면 시간이 나실 때 시청, 군청, 구청 등에 민원을 넣어주십시오. 여러분의 작은 관심이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장애인 콜택시

2022년 3월 31일,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이 MBC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장애인 콜택시라고 있긴 하지만 그것을 위해선 출근길은 아예 포기해야 되고 2시간 이상 기다려야 될 때도 많고요. 그건 사실 저도 직접 겪었던 일입니다"라고 말하자(MBC.2022.03.29.), 연합뉴스는 보란듯이 “서울 평균 32분 대기…2시간 이상 기다린 비율 2019년 6.1%→작년 1.1%”라는 내용의 팩트체크 기사를 냈습니다. 


서울시각장애인 생활·이동지원센터는 일별 장애인 복지콜 접수건수와 탑승건수, 평균 대기시간 등을 집계하고 있다.
이 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21일부터 25일까지 하루 평균 접수 건수는 1천348건, 탑승 건수는 1천51건, 탑승률은 78%다.
이 중 79%(830건)는 30분 이내 배차가 완료됐다. 30분 이상 1시간 이내는 16%(168건), 1시간 이상 2시간 이내는 4.9%(51건)다. 접수한 지 2시간이 넘게 배차되지 않으면 접수는 자동으로 취소된다. 배차가 완료된 뒤 장애인이 택시에 실제 탑승하기까지는 평균 19분이 더 걸린다. 접수했으나 실제로 탑승하지 않은 161건은 접수자가 택시 호출을 취소한 경우다.

(연합뉴스.2022.03.31.)


데이터에서는 32분이라고 말했는데 왜 두 시간이라고 했느냐, 팩트가 틀렸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미디어오늘윤유경 기자는 “기사는 데이터에만 의존하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보여줬다. 장애인 콜택시를 기다리다가 포기한 경우를 보여줄 수 있는 취소율, 대기시간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현저히 낮은 문제점을 간과했다. 비장애인이 타는 일반택시의 호출 대기시간과 비교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라고 비판했습니다.

김예지 의원도 이에 대해 “취소율은 당사자들이 기다렸다가 포기한 비율을 뜻한다”, “사실상 탑승 포기율”, “이용자들은 실제로 배차를 기다리는 동안 대기자가 너무 많아서 중간에 취소하고 기다렸다가 재신청하기를 몇 번 반복한다”고 말했습니다. 몇 시간 동안 계속 신청과 취소를 반복하다가 대기한 결과 마지막 신청의 대기 시간이 30분이 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김준우 송파솔루션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도 “대기 시간 두 시간이 넘으면 자동 취소되는데, 그런 취소되는 콜들을 다 제외하니까 평균 32분이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윤 기자는 서울시관리공단 장애인콜택시 운영처에 전화를 해, 취소율에 대한 데이터가 없음을 확인했는데, 이에 대해서도 김예지 의원실은 “통계가 없다고해서 팩트체크를 하지 않는 게 아니라, 통계가 없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장애인 콜택시의 중요한 문제점 중 하나는 대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홍윤희 장애인 협동조합 ‘무의’ 이사장도 “5분이 될지, 2시간이 될지 모르는 배차시간에 대한 불확실성이 가장 큰 불안 요소”라고 말하며, “이번 콜을 취소하면 두 시간 있다가 올 수도 있다라는 불안감이 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콜택시를 부르는 게 아니라, 콜택시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맞춰야하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미디어오늘.2022.04.05.)


또, 장애인 콜택시는 장거리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있습니다.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장거리 이동을 하기 위해서는 이동 전날에 예약을 해야 하는데, 예약 대수는 각 지역에서 보유한 장애인 택시 차량의 30%만큼만 선착순으로 가능합니다. 장애인들은 여행은 커녕 출장이나 경조사 참여도 힘든 것입니다. (KBS.2022.04.20.) 장애인 택시 안에는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차량과 불가능한 차량이 뒤섞여 있고, 그 안에 휠체어 탑승 가능 차량의 비율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숫자 만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야말로 눈가리고 아웅인 격입니다.


근본적인 문제

장애인 이동 현실이 좋아지지 않는 문제의 근본 원인은 장애인 복지 문제를 시혜적인 입장에서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돈이 있으면 해주겠지만 돈 없으면 굳이 그것까지 해줄 건 없다는 태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런 태도는 비장애인들이 원거리 여행을 하듯이 계획을 세워서 장애인들이 외출을 해야만 하는 현실을 만들었습니다. 복지가 되었건 뭐가 되었건 간에, 장애인들이 현실에서 배제되는 현실을 우리는 직시하고 이것을 개선해야 합니다. 시위가 아니어도 우리는 장애인들에게 우리 사회의 일원임을 보여주는 관용을 보여준 적이 없습니다. 장애와 장애인의 현실에 대해 무지했고, 장애인들의 현실 문제에 대해 찬반은 커녕 거론 자체를 하지 않는 무관심으로 이 문제들을 대해 왔습니다.

이것은 비단 이동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관계와 노동, 교육, 정치참여, 형사사법 같은 사회 문제 뿐 아니라 의식주 같은 인간의 기본적인 영역에서도 우리는 장애인들의 문제를 지나치게 시혜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떤 개인의 기본적인 생활을 시혜적으로, 그리고 동정심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매우 큰 오만이고 더 나아가서는 비윤리적인 일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태도는 우리 모두가 동등한 시민이며, 동등한 시민이어야 한다는 정치적, 법적 질서 하에서도, 우리 모두가 동등한 인간이며 동등한 생명체라는 생물학적, 윤리적 입장 하에서도 모두 그른 일입니다. 세상이 각박해서 어쩔 수 없다는 탓만 하지 마시고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알아 가려는 노력을 기울여 주십시오. 생각보다 엄청난 공력이 드는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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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사 고맙습니다.

장애인이동의 어려움을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짚어주셔서 읽고 나니 많은 생각이 드네요. 현재는 지하철 탑승, 역사 문제가 주로 조명받고 있지만, 사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으니 이것은 역시 장애인의 생계문제, 삶의 질 문제와도 너무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어서 여러 차원에서 심도 있는 고민을 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글 너무 감사합니다. 

여러 현실을 잘 짚어주셔서 감사해요. 이런 내용과 통계를 함께 보면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직접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보행이 어려운 구역을 확인하셨을 때 어떤 감정이 들었을지도 궁금하네요.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장애인 이동권 문제는 장애인의 문제이면서 이동의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시간과 장소로 이동을 원하는지 그 필요와 욕구가 결합된 상태를 이해하고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단순히 제도나 도구만 준비하면 된다는 한계에 멈춘 것 같습니다. 그 기반은 본문에서 언급하신대로 '시혜적인 입장' 때문인 것 같구요. 여야에서 장애인 당사자 국회의원이 활동을 하는데도 아직이니... 시민적 공감대가 더 만들어져야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렇게 구체적으로 장애인의 이동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짚어 주시다니... 심지어 직접 다녀보셨네요. 다들 꼭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장애인 이동 현실이 좋아지지 않는 문제의 근본 원인은 장애인 복지 문제를 시혜적인 입장에서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돈이 있으면 해주겠지만 돈 없으면 굳이 그것까지 해줄 건 없다는 태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 우리는 장애인들에게 우리 사회의 일원임을 보여주는 관용을 보여준 적이 없습니다. 장애와 장애인의 현실에 대해 무지했고, 장애인들의 현실 문제에 대해 찬반은 커녕 거론 자체를 하지 않는 무관심으로 이 문제들을 대해 왔습니다."


그리고 특히 이 부분을 유념해서 보게 됩니다.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시혜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항상 되돌아보며, 민주주의 국가의 구성원 모두가 시민이며, 시민의 권리라는 것이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장애인의 이동권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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