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6411의 목소리] 바다가 이추룩 됐는데도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2024.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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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재단은 6411 버스 속의 사람들처럼, 지치고 힘들 때 함께 비를 맞고 기댈 수 있는 어깨가 되겠습니다.

[6411의 목소리] 바다가 이추룩 됐는데도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2023-11-26)

박영추 | 제주 해녀

제주에서 난 박영추씨는 열아홉살에 물질을 시작해 육십년 이상 해녀로 살고 있다. ♣️필자 제공


나는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에서 나고 자랐수다. 태어난 해는 1941년이고. 물질은 조금 늦게 시작했수다. 열아홉살에. 보통 열다섯살 정도면 시작하는데 우리 집은 (바닷가에서 떨어진) 윗동네라 늦게 된 거우다.

그때는 지금같이 큰 거 아니고 조그만 물안경을 썼수다. 물안경을 쓰고 물 아래를 보면은 물이 막 깊어 보이고, 손도 이만하게 크게 보이고 그랬주마씀. 적삼이랑 물소중이(무명천으로 만든 물옷) 입고 처음으로 미역 따러 가니까 미역이 가득 깔려 있는데도 물속에 들어가지질 않는 겁니다. 그래도 막 억지로 들어가서 미역을 붙잡으려고 하면 물살에 이리 착 눕고 저리 착 누워 그게 잘 안되는 거라. 어떻게 어떻게 확 잡았다 싶어 나와보니까 미역 꼬랑댕이만 쪼꼼. 하하하. 그렇게 차차 배운 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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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에는 아무것도 못 잡았는데 다른 해녀들이 망사리(채취물을 넣어두는 그물주머니)에 미역이랑 소라 몇개 넣어줬주게. 해녀들은 지금도 그래요. 만약에 깊은 데 못 들어가서 몇개 못 잡은 사람이 있으면, 깊은 데서 대여섯개쯤 해가지고 올라와서 망사리에 넣어주고, 막 추운 날 해삼 잡으러 갔다가 하나도 못하고 오돌오돌 떠는 사람 있으면 하나쯤 놔주고, 경(그렇게) 헙니다.

7~8미터 이상 깊이 들어가는 해녀는 상군, 5미터쯤 들어가는 해녀는 중군, 얕은 데밖에 못 가는 해녀는 하군, 그렇게 됩니다만 상군이 하군을 돕는 겁주(거지요). 어릴 때는 다 하군, 한창때는 중군도 되고 상군도 되지만, 늙어지면 다시 하군이 될 거니, 서로 도와사주마씀(도와야지요). 그게 해녀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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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해녀는 바다에 갈 때 혼자 가는 법이 어수다(없습니다). 혼자 가면 안 됩니다. 잠수가 서툰 때는 물길을 잘 몰라서 물살에 휩쓸릴 수도 있고, 하나 더 하겠다고 욕심을 내다가 숨이 모자라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으니까, 위험할 때 도울 수 있도록 같이 어울려 가는 겁니다. 그래서 해녀는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사람이라고 허는 말도 있는 거주마씀(것입니다). 해녀들한테 바다는 무서우면서도 고마운 곳입니다.

바닷속은 땅 위나 똑같수다. 농사지으면 땅 갈고 씨 심어서 싹이 나서 자라면 수확하고 그거지요. 바다도 철 따라 싹이 나고 자라고 수확하고. 옛날에 오염 안 됐을 때는 그랬지요. 몸(모자반)이 막 자라면 몇미터씩 자라서 물속이 꽉 차주마씀(찹니다). 땅 위에 수풀이 우거지는 거같이. 그 속이 왁왁해요(깜깜해요). 그걸 헤치며 헤엄쳐가면 그 소곱(속)에 소라가 있수다. 그때는 몸도 막 돌마다 많이 나고, 톨(톳)도 많이 나고, 감태도 바닥이 안 보일 정도로 많이 깔렸고, 그거 먹고 소라도, 전복도, 문어도, 오분자기도 그렇게나 많아났수다(많았었습니다). 그때는 바다가 그렇게 좋아서 물질로 밭도 사고, 집도 사고, 아기들 공부시키며 먹고살았수다. 밭에 갔다가 물에 갔다가 종일 일하느라 고달파도 막 힘이 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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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헌디(그랬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어수다(없습니다). 한 15년 전부터 이렇게 된 거 달마예(같아요). 돌을 잡으면 돌이 바삭바삭 부서져. 바다가 얼마나 오염되었으면 경 되시코(그렇게 되었을까). 돌이 단단하고 깨끗해야 미역도, 톨도 붙을 건데, 그게 붙어서 자라야 고기들 의지도 되고 소라도 자라고 그러는 거주게(거지요). 풀이 못 자라니까 다른 거도 자랄 수 없어요. 물속이 사막이나 마찬가지라…. 성게가 먹을 거 없으니까 막 댕기다가 그냥 죽어버려요. 바다가 이추룩(이처럼) 됐는데도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산에 소나무가 충이 들어 죽어가는 거 보니까 그거랑 같으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자연이 죽으면 사람도 죽어. 살 수 없잖아요. 바다에 해초가 없으면 고기도 못 살듯이 산에도 마찬가지라. 자연이 없으면 사람도 없어. 작은 거부터 죽어가다 차차 큰 것들까지…. 앞으로 질병만 남지 뭐 남을 게 있을까. 우리는 다 살았지만, 낼모레 죽을 거지만, 앞으로 후손들이 이 오염을 다 겪을 거난(거니까) 걱정입니다.

※정리 이혜영 ‘세대를 잇는 기록’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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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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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죽으면 사람도 살 수 없다는 말 깊이 공감합니다. 전에 봤던 영화 <수라> 생각이 나요. 8.8

바다에 대해서 이추룩 묵상해 본 적이 없어서 흥미로운 글이었습니다

바다의 변화를 피부로 경험한 분의 이야기군요. 요즘 밥상을 보며 기후의 변화를 실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따뜻한 이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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