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전태일재단-조선일보 노동시장 이중구조 공동기획, 한석호 소명서

2024.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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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재단 전 사무총장 한석호

전태일재단-조선일보 노동시장 이중구조 공동기획, 한석호 소명서

- 2024년 3월 26일, 전태일재단 전 사무총장 한석호

 

소명에 들어가며

 

3월5일 조선일보 창간 104주년 특집호 1면 탑 “12 대 88, 쪼개진 노동시장을 바꿔야 한다”부터 3월22일 “‘나눔과 상생’ 전태일 정신… 이제 사회와 기업이 응답해야 할 차례”까지 10회차 특집은 전태일재단 이름을 앞에 걸고 진행한 기획입니다. 사안 성격상, 공동기획에 앞서 재단 안팎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고 이사회에서 승인하는 절차가 필요했습니다. 전태일재단 이사회는 과정과 절차의 책임을 물어 한석호 사무총장 사퇴 권고를 의결했습니다. 수용했습니다.

 

마무리와 짐 정리로 출근하는 길, 해방촌 위 남산자락 개나리가 활짝 웃고 있었습니다. 눈을 찬찬히 돌렸습니다. 산수유도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다시 눈을 돌렸습니다. 뽀리뱅이, 지칭개, 원추리, 망초 등 내 친구들이 곧 꽃 피울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 했습니다. 무릎 구부리고 봤습니다. 누구도 잘 보려 하지 않고 짓밟히기만 하는 보도블록 틈새의 개미자리가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나의 영원한 친구들, 고마워. 일 다 정리하고 힘내서 너희와 어깨동무하러 곧 산으로 들로 찾아갈게, 인사하며 환하게 미소 지었습니다.

 

사회적 파장과 충격을 예상했습니다. 보수와 진보, 노와 사를 북극과 적도의 환경과 거리만큼 가른 대한민국입니다. 편부터 따지고, 한 몸통의 다른 쪽 날개를 청산 대상으로 삼는 진영논리의 나라입니다. 관중까지 검투사에 이입되어 상대진영을 죽이려 덤비는 살벌한 검투장정치의 대한민국입니다. 지지 후보가 다르다는 이유로 아빠가 아들을 때리고 형제자매가 의절한 뒤 SNS에 자랑하기도 하는 삭막한 진영의 나라입니다. 그 험악한 풍토에서 대표적 진보단체 전태일재단과 대표적 보수매체 조선일보의 공동기획은 상상 이상의 파장과 충격을 불렀습니다. 조선일보와의 공동기획에 응한 이유를 소명하겠습니다.

 

1. 전태일을 국민의 바다에서 맘껏 헤엄치게 해야 한다는 마음, 간절했습니다

아동노동의 시절, 장시간노동에 배곯는 열서너 살 여공들에게 버스비 30원을 털어 풀빵을 사주고 평화시장에서 쌍문동 판잣집까지 13키로를 허청허청 걷고 뛰다 야간통금에 걸려 파출소에서 쪼그려 잔 따스한 청년 전태일, 실 먼지 풀풀 날리는 공장에서 폐병에 걸려 피 토하는 미싱사를 돕다 근로기준법에 눈뜬 각성한 청년노동자 전태일, 자신보다 어려운 처지의 시다·미싱사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려 동료 재단사를 모아 바보회·삼동회를 만들고 진정서 써서 노동청에 청원하고 설문지 돌려 기자에게 배포하고 대자보를 붙이며 집회를 개최한 불굴의 전태일, 150년 전 뉴래너크공장의 실험으로 사회적경제의 아버지가 된 로버트 오언처럼 노동의 처우를 개선하려 노·사가 상생하며 시장에서 제품으로 인정받고 세금도 제대로 납부하는 모범업체 태일피복을 구상한 뒤 창업자금을 마련코자 눈 한쪽을 팔려던 창의적·헌신적 기획자 전태일,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때에 한 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 치오니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시옵소서 기도한 독실한 기독교인 전태일, 자신보다 어려운 처지의 노동자를 우선 생각한 아름다운 전태일의 진면목, 낮은 곳에 임한 전태일의 사랑과 나눔과 연대와 실천의 정신이 국민의 바다로 두루두루 퍼져 나가는 희망의 꿈을 꾸었습니다.

 

다들 말합니다. 전태일을 노조만의 전태일로 가져가면 안 된다, 전태일을 진영에 가둬도 안 된다. 그 말 듣고 그렇게 하려고 하면 화들짝 놀랍니다. 누구하고는 안 된다, 어떤 매체하고는 안 된다, 어떤 정부하고는 안 된다, 진영의 그물망 안에 머물라 합니다. 추상적 사고는 진영 너머로 나아가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구체적 현실은 진영을 벗어나지 말라 만류합니다. 전태일로 국한된 현상이 아닙니다. 같은 정책도 이 정부면 찬성 저 정부면 반대하는 현상, 같은 대안도 기업의 제안이냐 노조의 제안이냐에 따라 찬성과 반대를 뒤집는 현상, 같은 논조 기사도 이 매체면 용인 저 매체면 비난하는 현상, 대한민국을 옥죄는 극단의 진영논리가 만든 현상입니다. 그물망이 빽빽하고 억세져 가기만 하는 진영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전태일과 전태일정신도 진영 그물망을 넘나들 수 없었습니다.

 

전쟁 폐허에서 국내총생산 세계 10위대 3만불 시대를 일궈낸 나라, 세계 청년이 선망하는 나라, 앞으로 계속 도약해야 할 대한민국은 진보와 중도와 보수가 함께 만들었고 노와 사와 각계각층이 함께 만들었습니다. 보수 국민, 중도 국민, 진보 국민, 함께 만들었고 또 함께 만들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새는 좌·우·꼬리 날개에 균형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국가와 국민인 몸통은 훨훨 비상할 수 없습니다. 시름시름 앓다가 죽습니다.

 

전태일과 전태일정신이 대한민국 구석구석 살아 숨 쉬게 하고 싶은 마음 간절했습니다. 노조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진영의 그물망으로도 불가능합니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의 논리와 토론하고 설득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전태일과 진영 너머 국민이 손잡게 하고 싶었습니다. 진영 너머 국민이 전태일을 받아들이게 하고 싶었습니다. 꼭, 꼭 그렇게 만들어, 위로만 향하는 대한민국의 시각점을 아래로 향하게 해서 나눔과 연대의 대한민국으로 거듭나게 하고 싶었습니다. 진보·중도·보수 가릴 것 없이 전태일과 어울려서 함께 만들어가는 대한민국 재설계 기획을 간절하게 꿈꾸고 있었습니다. 공동기획에 응한 이유입니다.

 

2.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더 방치하면 나라가 절단 난다는 마음, 절박했습니다

3만불의 나라입니다. 하나의 계급이라는 노동이 8만불, 9만불, 10만불, 11만불로도 부족하다면서 계속 오르려고만 하는 상위 노동과 2만불, 3만불에 머물면서 허덕이는 하위 노동으로 분단됐습니다. 상층 노동과 하층 노동의 격차가 5배에서 6배까지 벌어졌습니다. 노동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재벌의 일상과 달리, 노동의 일상은 상층과 하층이 서로 매일 바라보며 비교합니다. 그 상황에서 30여년에 걸쳐 누적되며 고착된 노동의 분단은 임금 격차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상층 노동과 하층 노동의 얼굴과 피부색, 음식과 의복과 차량 종류까지 갈라놓았습니다. 육아, 교육, 결혼, 출산, 휴식, 여행, 건강, 노후까지 일생의 모든 삶을 갈라놓았습니다. 하층 노동이 상층 노동과의 격차를 매일 느끼며 평생 안고 갑니다. 재벌과의 격차 때문이 아니라, 일상의 삶 속에서 목격하고 비교되는 노동의 격차 때문에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자존심 상해합니다. 사태가 그렇게 심각한데 문제 해결의 주체인 노·사·정은 저마다 상대방 탓만 하면서 먼 산 불구경입니다. 평등주의가 태생 철학인 진보도 소홀합니다. 온정주의가 태생 철학인 보수도 소홀합니다.

 

10년 전부터였습니다. 노동의 분단 문제에 집중했습니다. 노조 바깥의 더 어려운 노동과 손잡는 사회연대전략을 노동운동 전면에 띄웠습니다. 대한민국 소득 기준, 상층에 진입한 조합원이 기금을 조성해 노조 바깥의 하위 노동을 지원하자 주장했습니다. 하위 임금은 두텁게 올리고 상위 임금은 얇게 올리는 하후상박 임금연대를 주장했습니다. 당시 노동운동 주류는 기업만 양보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10만불 상위 노동은 2만불 하위 노동에 양보하면 안 된다 했습니다. 재벌 일가의 주식과 배당금을 포함해, 잘 나가는 아이돌·연예인·체육인 등이 밀집한 최상위1%의 소득을 0으로 만드는 양보를 해도 노동의 격차를 줄일 수 없는데, 다음상위9%의 주축인 상층 노동은 양보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 상태에서 사회연대전략은 노동운동의 역린을 건드린 이단이었습니다. 숱한 비난과 욕설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사회연대기금을 주장한다는 이유로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에서 징계성 공개사과까지 했습니다.

 

무릎 꺾지 않았습니다. 성과가 나왔습니다. 징계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노총 공공부문 5개 산별 노사의 공공상생연대기금, 금융 노사의 금융산업공익재단, 사무금융 노사의 우분투재단이 잇달아 출범했습니다. 금속노조·보건의료노조·화섬식품노조 등은 사회연대기금을 적립해 노조 바깥을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부산지하철노조는 청년 고용을 늘리려고 조합원 1인당 1천만원 양보라는 파격의 고용연대를 실행했습니다. 현대차 노사는 하청 기본급을 원청보다 더 인상하는 하후상박 임금연대를 실험했습니다. 조선업 원하청 상생협의회, 제화산업 노사 상생협의회가 출범했습니다. 따스하고 시원한 사회연대의 바람이 노·사 현장에 확산하고 있습니다.

 

윤석열정부 상생임금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민주노총은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사퇴를 요구했습니다. 사회적 파장이 있었습니다. 노조 바깥 노동의 처우 개선이라는 일념으로 돌멩이 맞았습니다. 논쟁 없던 상생임금위원회는 호봉·직무급 임금체계는 이중화의 한 부분일 뿐이라는 점, 노사정 각각 부분적 자기주장만 되풀이하는 이중구조 문제의 종합적 분석과 종합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점, 그러면서 순서대로 하나하나 풀어가야 한다는 점을 합의하고, 마쳤습니다.

 

사회가 감당할 만큼의 적절한 경쟁은 대한민국의 활력입니다. 경쟁의 한계치를 넘으면 경쟁 도피 현상이 벌어집니다. 1차와 2차 노동시장 격차가 미국보다 더 심각한 대한민국 이중화는 한계치를 훌쩍 넘었습니다. 청년이 경쟁에서 도피합니다. 충격적 저출산의 핵심 원인입니다. 아이와 부모를 피폐하게 만들면서 한계치를 넘은 교육경쟁의 근저에도 노동시장 이중화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이중화는 유럽처럼 1차 노동시장 괜찮은 일자리와 2차 노동시장 기초일자리 간 격차를 개선해야 하는 난제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이중화는 유럽과 달리 2차 노동시장 일자리를 나쁜 노동으로 인식하며 기피하는 현상도 풀어야 하는 난제입니다. 모두가 머리 맞대고 사회적 대타협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도 20년에서 30년 걸리는 난제입니다. 그래도 꼭 해야 합니다. 미래세대가 더 크게 고통당하는 문제입니다.

 

대한민국 현재가 있기까지, 노사정과 사회 구성원 각각 공7 과3의 역할을 했습니다. 이중화는 정치의 산업전략, 기업의 경영전략, 노조의 임금전략 등에서 각각의 과3이 뒤엉켜 만든 합작품입니다. 보수·중도·진보 정치도 더 책임지고, 기업도 노조도 사회적 책임을 더 나누어야 풀 수 있습니다. 이중화는 노·사 측면만으로는 풀 수 없습니다. 노·노와 사·사, 노·상, 세대, 남녀, 생산자와 소비자 갈등까지 얽힌 난제입니다. 울타리 외부와의 갈등이 필수적 요소인 단결만으로도 풀 수 없습니다. 울타리 너머와의 협력을 무한대로 넓힐 수 있는 연대의 가치도 필요합니다. 시각점을 위가 아닌 아래에 둔 전태일정신이 절실합니다.

 

청춘 다 바친 민주노총에서 사회연대기금 주장을 이유로 징계당할 때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소득을 재벌과 아이돌과 스포츠인 등 최상위1%가 14.7퍼센트(14.7배) 점유하고, 상층 노동이 주 구성원인 다음상위9%가 31.8퍼센트(3.53배) 점유하고, 중위40%는 37,5퍼센트(0.93), 하위50%는 16퍼센트(0.32) 점유하는 황당한 불평등의 나라입니다. 그러한 사태를 20~30년에 걸쳐 최상위1%는 10퍼센트로, 다음상위9%는 20퍼센트로 낮춰, 아래 국민 90%의 점유율을 높이자는 주장에 대해, 공산당 위세가 서슬 퍼런 중국조차 임금은 정부가 강제로 삭감할 수 없는 것인데, 소득 점유율 낮추자는 주장을 임금 삭감이라 왜곡하면서 노동 분단 문제를 회피하는 민주노총이 몹시 안타까웠습니다. 최저임금위의 올해 최저임금 논의에서 공익위원의 9920원 제안이 1만원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9860원을 결정하게 만든 민주노총의 몽니를 지켜보며 무척 슬펐습니다. 회계 공시를 거부할 경우 조합원에게 미칠 불이익 연간 3~5만원 세액공제는 아까워 공시를 수용한 민주노총이 매몰차게 걷어찬 그 시급 60원은 연간으로 계산하면 150,480원입니다. 최저임금 노동자에게 그 금액은 상층 노동과 비교하면 50만원 60만원 가치가 있는 소중한 피땀입니다. 민주노총에 절망했습니다. 그만 멈추고 싶었습니다.

 

멈출 수 없었습니다. 낮은 곳의 노동을 품고 실천하고 나누고 구상하다 온몸 던져 산화한 전태일의 불에 타 절규하는 아픈 손을 차마 놓을 수 없었습니다. 사회연대전략을 민주노총이 거부해도 민주노총 산하의 금속노조 지부, 보건의료노조, 부산교통공사노조 등으로 확산하고 있었습니다. 한국노총은 임금인상분 중 1.5%를 사회연대기금으로 조성하자고 했습니다. 사회연대는 제3노조로도 확산하고 있습니다. 기업도 사회연대 대열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노사에 희망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노동의 상하 분단과 격차는 노동 당사자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노동 가족의 삶의 모습도 서로 다른 격차로 쪼갰습니다. 천진한 아이의 이유식과 밥과 간식, 옷과 신발, 학용품과 장난감, 놀이터와 여행경험까지 쪼개 버렸습니다. 그 가족의 가슴앓이와 한탄을 켜켜이 쌓고 있는 대한민국입니다. 비애감에 젖어 들게 하는 노동시장 이중화 문제를 대한민국 전면에 띄우고 싶었습니다. 관련 당사자가 모두 머리 맞대고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한국판 베버리지보고서를 만들어 사회적 대타협을 하는 대한민국 노·사·정과 대한민국 보수·중도·진보를 간절하게 희망했습니다. 조선일보와의 공동기획에 응한 이유입니다.

 

3. 기초노동의 애환, 그리고 전태일과 이소선의 삶을 떠올렸습니다

따듯한 찬성과 응원이 답지했고, 성마른 비판과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글에 못 담을 욕설도 묵묵히 감수하겠습니다.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향해 던지는 돌팔매입니다. 과거 한때, 조중동 폐간의 언소주 회원으로 조선일보 폐간 피켓도 들어 봤기에, 어떤 심정이고 어떤 생각일지 충분히 이해합니다.

 

전태일은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오로지 어린 여공의 처우를 개선한다는 일념만으로 물불 가리지 않다 산화한 전태일입니다. 공동기획에 응했을 것입니다. 진영과 매체를 가리지 않았던 전태일입니다. 독재자 박정희 대통령에게 존경 표현을 사용하며 편지를 썼습니다. 당시에는 박정희 정부 관제언론이던 경향신문 기자에 매달려 “골방에서 하루 16시간 노동” 기사를 싣도록 했고 평화시장의 열악한 노동 문제를 사회화했습니다. 재단사 친구 최종인은 손목시계를 전당포에 맡기고 그 기사가 나온 관제신문을 대량으로 사서 평화시장 곳곳에 뿌렸습니다.

 

아들 대신 41년간 낮은 곳에 임하다 아들 곁으로 떠난 이소선 어머니를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는 전태일기념사업회 안팎의 성마른 비난을 무릅쓰고 전태일기념사업회에서 민주노총 그물망을 걷어내고 한국노총을 품었습니다. 그 때문에 지금껏 전태일재단과의 연대를 거부하는 일부 흐름이 민주노총 안팎에 있습니다. 어머니는 강퍅한 진영논리에 강한 심적 압박을 받고 숙고하기는 했겠지만, 아들처럼 제안을 받았을 것입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조선일보와의 공동기획 제안에 응했냐, 물어 왔습니다. 조선일보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전태일재단에 공동기획을 제안한 것 같냐, 물어 오기도 했습니다. 보수로 전향했다는 비난도 받았습니다.

 

숱하게 천명했듯, 안정적 임금인상도, 고용안정도, 기업복지도, 노조 보호도 없는 2차 노동시장의 기초노동과 어울리며 기획하고 조직하고 지원하고 개선하는 일에 매진할 것입니다. 41년 전 어느 한밤, 건설노동자 아버지의 뜻을 따르려 고위 공무원을 꿈꾸던 대학생의 눈물을 쏟아내게 해서 운동의 삶으로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게 만든 전태일의 절반이라도 채우다 죽는 것이 목표입니다. 노동시장 이중화와 기초노동의 처우를 개선할 수만 있다면, 진영과 노사의 그물망에 개의치 않겠다는 결심입니다. 진보 외투를 벗은 이유입니다.


조선일보에서 “변화를 만드는 것은 강력한 투쟁도, 시장 논리도, 자본가나 정부만의 몫도 아니다” 했습니다. 강력한 투쟁과 시장 논리를 같은 반열로 엮어 놓았습니다. 노조 투쟁에 우호적이지 않았던 조선일보가 말입니다. “‘나눔과 상생’ 전태일 정신… 이제 사회와 기업이 응답해야 할 차례”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노조로 한정하지 않은 채, 전태일 정신을 사회와 기업이 응답해야 한다, 했습니다. 조선일보에서 말입니다. 가슴이 벅찼습니다. 전태일과 함께 평화시장 어린 여공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감옥에도 갔고 아내와 자식을 먹여 살리려고 봉제업에 복귀해 큰돈을 벌다가 어느 날 불현듯 이렇게 계속 돈 벌면 전태일 친구로서 전태일 이름에 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사업을 접은 전태일 친구 최종인은 살아생전 조선일보에 이런 기사가 나올 줄 상상도 못 했다며 기뻐했습니다.

 

전태일재단도 조선일보도 노조도 기업도 정당도 손가락입니다. 전태일과 이소선도 손가락입니다. 달은 노동과 국민의 삶이고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입니다. 누구도 전태일의 열 손가락 가운데 한 손가락만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전태일재단은 종합적으로, 민주노총·한국노총·제3노조는 각자 방식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종교는 종교대로, 보수·중도·진보도 제 방식대로, 각계각층은 저마다의 방식대로, 단 분신은 빼고, 실천과 나눔과 상생 등등 전태일의 열 손가락 가운데 마음에 드는 손가락을 알아서 선택하면 되는 것입니다.

 

과거의 나에게 무릎 굽히지 않겠습니다. 기초노동의 눈물을 닦을 수만 있다면, 무릎 꿇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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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와 주변에서 어떤 고민과 비판이 있었는지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사무총장님도 글에서, 비판하는 분들이 어떤 심정일지 이해한다고 하셨네요. 저도 비판의 지점들도 이해가 가는 동시에 이런 생각에서 기획에 응하셨구나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며 저도 우리 사회의 바람직한 노동의 모습을 한번 더 상상해보게 되었습니다. 좋은 논의가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처음 조선일보와의 기획을 보았을 때 신박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해 보지 않았던 것을 시도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에요. 덕분에 그 과정과 결과를 자세하게 알 수 있게 되었네요.

1970년 전태일 열사의 분신, 1987년의 민주화와 노동자대투쟁, 그 이후의 조선일보와 노동운동, 그리고 전태일재단의 역사를 어느정도 알고 있는 분들이라면, 전태일재단과 조선일보의 공동기획기사를 의아해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한석호 전 사무총장님의 이 글을 읽어보니 이번 이 일에 대하여 여러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듣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개인이나 조직에 대한 비난이 중심이 되기보다는 한국사회의 노동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 차원과 더 관련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국민과 정부, 국민과 국민 사이에서도 불신이 높고 소통이 어렵다는 걸 모두가 인정하는 세상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영을 넘어 대화를 시도하는 일이 꼭 필요하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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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에서 “변화를 만드는 것은 강력한 투쟁도, 시장 논리도, 자본가나 정부만의 몫도 아니다” 했습니다. 강력한 투쟁과 시장 논리를 같은 반열로 엮어 놓았습니다. 노조 투쟁에 우호적이지 않았던 조선일보가 말입니다. “‘나눔과 상생’ 전태일 정신… 이제 사회와 기업이 응답해야 할 차례”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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