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6411의 목소리] 나는 네번의 전쟁을 겪은 27살 팔레스타인 난민입니다

202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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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재단은 6411 버스 속의 사람들처럼, 지치고 힘들 때 함께 비를 맞고 기댈 수 있는 어깨가 되겠습니다.

나는 네번의 전쟁을 겪은 27살 팔레스타인 난민입니다 (2024-04-01)

살레 알란티시 | 팔레스타인 난민

지난 3월2일 협동조합 쩜오책방에서 열린 ‘파주 팔레스타인 평화’ 행사에 필자가 발표자로 참여해 가자지구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H6s김지하 제공


폭발의 굉음이 시작된 2008년 여름, 나는 영어시험을 치르려고 교실에 앉아 있었다. 학교의 온 사방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제야 이스라엘 점령군이 가자지구에서 전쟁을 시작했다는 것을 알았다. 급히 집으로 돌아와 텔레비전을 틀었다. 사람이 죽어가고 건물이 파괴되는 충격적인 장면들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가자에서 내가 목격한 첫번째 전쟁이 시작됐다.

내 이름은 살레 알란티시, 1997년 가자시티에서 태어났다. 세상에 나온 첫날 이래 지금까지 난민으로 살고 있다. 1948년 야브나로부터 강제 이주한 내 부모님과 가족은 칸유니스, 마가지, 마지막으로 샤티까지 여러 난민 캠프를 전전해야 했다. 2022년 12월, 한국에 유학생으로 입국한 나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한국 정부에 난민 지위를 신청한 상태다. 생계를 위해 중고차 매매업에 종사하며 팔레스타인의 인권 상황을 알리는 활동가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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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점령 아래 살아가는 가혹한 현실을 깨닫게 한 그날 이후, 가자에서 나고 자란 팔레스타인인으로 고통은 점점 커졌다. 지구의 어떤 곳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지옥과 같은 상황을 견디며 살아야 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75년이 넘도록 초법적인 살인과 자의적 체포와 구금에 시달려왔다.

내가 처음으로 폭격에 노출된 건 2001년, 네살 때였다.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각, 나는 시장에서 산 조그만 병아리의 집을 짓고 음식과 물을 주면서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즐거움에 들떠 있었다. 해 질 무렵, 폭격이 시작되고 집이 마구 흔들렸다. 어머니가 달려와 덜 위험한 아래층 할아버지 집으로 피하라고 했다.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고, 미처 데려오지 못한 병아리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첫번째 폭격의 기억은 불행히도 마지막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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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며 네번의 전쟁(2008, 2012, 2014, 2021년)을 겪은 나는 현재 스물일곱살의 난민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지붕 없는 감옥’으로 불리는 가자에서 19년 동안 가혹한 봉쇄 속에서 살아왔다. 사람이 아니고 새가 되었으면 하고 바란 적이 있는가? 한국에 오기 전에 내가 그랬다. 벽을 넘어, 어떤 곳이든 여행할 수 있는 자유로운 새와 달리, 나는 장벽과 가시철조망에 둘러싸인 새장에 갇혀 있었다.

가자를 벗어날 수 없는 나와 200만 주민들의 고통은 이스라엘 점령군이 이집트로 통하는 육로를 차단하고, 물건의 이동을 가로막으며, 유일한 공항을 파괴하고, 지상과 해상 봉쇄를 시작한 2006년 시작됐다. 가자지구는 기본적인 생필품마저 바닥난 거대한 감옥이 되었다. 16시간이 넘게 전기가 차단되어 봉쇄가 시작된 직후엔 완전한 암흑 속에서 지내야 했다. 작은 손전등에 의지하다 배터리가 다 되면 촛불을 켜기도 했지만 그 때문에 가자의 다른 지역에서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자동차 배터리로 등을 밝히는 것을 생각해냈다. 부엌 가스가 바닥나 나무나 종이로 불을 지펴 요리했고, 유일한 이동 수단인 자동차의 연료가 없어 주민들은 요리용 오일을 이용했다. 담수화를 위한 연료 부족으로 물을 얻기도 쉽지 않았다.

이것이 가자에서 매일 겪어야 했던 일이고, 나는 그 세세한 장면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나는 심각한 파괴와 참혹한 전쟁을 피해 안전하고 더 나은 삶을 찾으려 한국으로 왔다. 2022년 12월에 새로운 삶이 나를 맞이했다. 그리고 한국에 온 지 1년이 채 안 돼, 잔혹한 전쟁이 다시 가자에서 벌어졌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전쟁은 120일 넘게 지속되고 있다. 대부분 여성과 아이들인 3만명에 가까운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군에 의해 목숨을 잃었고, 6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부상을 당했으며, 70%가 넘는 주택과 시설이 파괴되었다.

할아버지, 삼촌, 외숙모, 사촌 그리고 많은 내 친구들이 죽임을 당한 이후,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다. 아버지 차에 떨어진 폭탄, 여동생 집을 파괴한 포탄에도 불구하고, 기적처럼 내 부모님과 형제자매들은 살아남았다. 전쟁은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수천명이 고향을 잃고 난민이 되어 극한의 추위에도 텐트에서 살고 있고, 먹을 것이 없어 나뭇잎과 동물 사료를 먹으며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 나의 민족이 겪는 고통이 끝나기를, 전쟁이 종식되기를, 내 나라가 해방되어 모두가 평화와 안전 속에 살아가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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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유유리 ‘한옥커즈’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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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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