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불평등’이라는 이름의 재난☹

2023.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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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소비자 아니고, 선명한 효비자 / 흩어진 나의 조각을 모아 빛나는 선물을 만드는 창작자

사진: Unsplash의Anandu Vinod


영화<기생충>에서 무섭게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집으로 향하던 한 가족의 모습을 기억하시나요? 이들이 사는 반지하 집은 성인 허리까지 물이 차고 화장실 변기가 역류합니다. 구정물 사이에서 중요한 물건만 간신히 챙긴 가족들은 열악한 대피소에서 쪽잠을 자고 출근하죠. 다시 맑아진 낮에 기택(송강호)은 박 사장(이선균)이 탄 차를 운전하는데, 박 사장은 무심한 얼굴로 창밖을 보며 “싸악 씻겨 내려가서 깨끗하네.”라고 내뱉습니다. 마음이 서늘해지는 장면이었습니다. 경험하는 현실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집니다. 기생충은 그 선을 눈에 보이게 드러내는 이야기였죠. 한편 기후위기는 우리에게 그 ‘선’을 피부로 느끼게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저 집안에서 바라보는 ‘날씨’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집 안까지 들이닥치는 ‘재난’이 되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니까요.


 이런 지구기온의 변화는 재난을 만들어내고 있다. 폭염과 폭우, 한파와 폭설, 태풍과, 가뭄뿐만 아니라 더 구체적으로 건강을 위협하는 대규모 ‘감염병’까지 모두 지구기온 상승과 연결된다. 지난 8월, 115년 만에 중부지방에 집중되어 쏟아진 ‘역사적’ 폭우 역시 이러한 기후변화와 연관성을 갖는다. 환경단체 ‘그린피스’에 따르면 최근 몇 년 사이 장마철을 제외하고도 폭염과 폭우가 시도 때도 없이 오고, 연평균 강수량은 30년 전에 비해 늘었지만, 강수일수는 21.2일로 줄어 사실상 ‘폭우’가 크게 늘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한다. 이번 집중호우에 대해서도 기상청장의 말을 인용하면, “1시간에 141.5㎜ 집중호우는 기후변화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거주불능 지구🔥 우리의 주거권은?



지구의 온도가 상승하면서 곳곳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작년 여름, 엄청난 폭우로 강남 한복판이 마비되었습니다. 당시 물에 잠긴 고급 승용차에 걸터앉아 휴대전화를 보고 있는 남성의 사진은 인터넷상에서 빠르게 퍼지며 유쾌하게 소비되었죠.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서 반지하에 거주하던 한 가족은 수해 때문에 집안에서 사망했습니다. 보안을 위한 방범창이 재난 상황과 탈출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방식으로 설치되어 사람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았죠. 같은 대한민국 하늘 아래서 벌어진 일이고 모두 재난으로 피해를 본 경우이지만, 도시는 한쪽에 유독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변혜진 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 상임연구위원은 기후변화의 불평등한 영향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합니다.


‘기후 변화로 인한 직접적인 건강 피해는 폭염, 홍수, 폭우 등과 같은 직접적 재난이 주는 상해와 죽음 그리고 질병이다. 환기가 어렵고, 밀집도가 높은 빈곤한 주거환경에 사는 사람들은 코로나19 감염에도 취약했지만, 폭염과 홍수와 같은 기후 재난에도 취약하다.’, 

국내 온열질환 사망자 중 의료급여 환자가 건강보험 환자에 비해 4배 많았던 사실은 기후위기와 그 재난이 불평등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획4] 고열로 들끓는 세계를 구출하기 - 기후위기와 건강정책의 전환 - 참여연대 -



아프게 생명을 잃고 난 뒤 정부가 재난 방지를 위한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사안의 위급함에 비해 진척 속도가 더딘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재해 취약 주택을 줄이는 방안으로 반지하 주택의 신축을 금지, 현재 반지하에 거주하는 세대에게 공공주택을 공급할 계획을 수립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미 들이닥친 여름을 어떻게 나야 할지 막막한 사람들에게 현 상황이 국가에 대한 믿음을 담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재해 취약주택 줄인다… 반지하 주택, 커뮤니티 시설 활용 등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 선택지가 된 반지하는 서울 가구 비율의 5%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번 폭우에서 서울 사망자 8명 중 절반이 반지하에서 나왔다. 이번에는 운이 좋게도 살아남았지만, 앞으로 계속해서 마주해야할 기후위기의 순간에 우리는 ‘알아서’ 살아남을 것인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있도록 구조적인 변화를 요구할 것인가.

[김지학의 미리미리] 기후탄력성: 주거정의와 탈성장




사진: Unsplash의Pavel Neznanov


지난 6월 23일, 안세창 기후변화정책관의 정책 브리핑이 진행되었습니다. 환경부가 관계부처 합동으로 마련하여, 탄소중립 녹색성장위원회 전체 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하는 ‘제3차 국가 기후위기 적응 강화 대책’의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 기후 감시・예측 시스템을 보다 과학화하고 적응정보의 대국민 활용
  2. 기후재난 극복을 위한 기반 시설을 확충하여 안전 사회 실현
  3. 기후재난 사전 예·경보 강화 등 재난 대응 역량을 높여서 국민 피해를 최소화
  4. 기후위기 취약계층에 대한 국가적 보호를 강화하고 적응 협력체계를 강화

내용이 많아 소제목으로 요약해 보았습니다. ‘사회 전반의 적응 인프라를 강화하고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실행 계획으로 보강’하였다는 설명에 비해 내용은 그다지 구체적이지 못합니다. 뭔가 강화하고 확충하겠다는 것 같은데 대상이 추상적입니다. 정책 브리핑 자료를 보면 기자들도 비슷한 인상을 받았는지, 보다 자세한 내용에 대해 질문합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답변도 구체적이지는 못했습니다. ‘기후위기 취약계층에 대한 국가적 보호’가 서둘러 시행되지 않으면 당장 올여름부터 불안하긴 작년과 매한가지입니다.

제3차 국가 기후위기 적응 강화대책 수립 - 부처 브리핑



“불평등이 재난이다.”

많은 사람이 계속해서 불평등을 이야기 하는 것은 사회의 어떤 부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지 발견하고 개선해 나가기 위함이죠. 불공평한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애초에 모든 인간이 평등할 수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다름을 이해하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차이를 좁힐 방법을 구해내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고, 안전한 집에 살 수 있고, 중증 장애가 있는 사람도 일해서 돈을 벌 수 있어야 합니다. 자본주의는 우리 사이의 여러 가지 차이점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하지만, 어떻게든 차이를 만회하고 모두가 기본적인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임무입니다.

기후위기 취약계층 위한 韓美日정책 비교

기후위기 취약계층 보호대책 개선 방안(이동영, 국회입법조사처)


대한민국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발행한 [기후위기 취약계층 보호대책 개선 방안] 자료에서는 현행 재난방지 정책에서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적절한 입법과 대책이 부족하다고 지적합니다. 더욱 적극적인 실태조사로 장기계획을 수립하고, 홍수나 폭염 등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재해를 대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지원되어야 합니다. 기후위기는 피부로 느껴지는데 이를 대처하는 국가의 존재는 멀게만 느껴진다면, 영화<기생충>에서 본 것처럼 보이지 않는 선에 의해 갈라진 사람들 사이에 적대감과 갈등만 남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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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 농촌, 개발도상국... 하나의 나라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기후위기는 낮은 곳에 더욱 냉담하게 몰아치는 듯 합니다. 불평등이 재난이다, 아릴 정도로 아픈 말이네요.
기후위기와 그로 인한 재해는 모든 이에게 평등하게 닥쳐오지 않을 것입니다. 불평등이 재난이다, 라는 말로 강하게 잘 요약해주셔서 그게 다시 또 와닿네요. 폭우가 내리는 날이라 더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불평등한 세상에 공평하게 내리는 재난은 불평등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어떤 노력을 해야할지 고민해보게 됩니다.....

불평등이 재난.. 정말 와닿는 말입니다ㅠㅠ.. 부유하지 않은 사람들도 최소한 기후로 인한 생명의 위협은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불평등, 양극화가 심화될수록 각자도생의 분위기가 만연해지는거 같아요. 각자도생 사회라 양극화가 심해지는건지.. 뭐가 우선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각자도생, 양극화와 같은 무시무시한 상황에서 국가의 책무가 뒷받침되지 않으니 더욱 망하는 길로 가는거 같네요.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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