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바다를 바란다, 수라'-갯벌을 위한 마지막 희망

2023.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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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과학기술운동단체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는 과학적 사고와 합리성이 한국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 및 문화 활동을 전개하고 시민사회와 연대하여 한국사회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설계하는 일에 동참합니다.

@영화 포스터

갑자기 보게 된 다큐멘터리 영화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팬데믹 와중에 소식이 뜸했던 친구에게 갑자기 톡이 왔다.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 친구가 출연한 다큐멘터리가 있으니 보러 오라는 얘기다. 개인적으로 환경에 관심이 많다.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사실 뭔가 행동으로 해온 게 없다 보니 환경영화제가 개최되고 있는 줄도 몰랐다. 게다가 친구가 출연?을 했다는 데 가봐야 할 일이다. 6월 4일 일요일 오후 7시 30분 성수동 메가박스, 도착해 보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와 있었다. 왜 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이전까지의 나의 게으름과 적잖은 편견을 쉬지 않고 반성하는 중이다.

초대장을 건네준 친구는 참 대단한 열정의 소유자다. 학교에서는 학보사 활동을 했고, 졸업해서는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하다가, 환경에 관심을 가지면서 공무원 생활도 했고, 다양한 환경단체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새만금에 가 있었나 보다. 열심히 사는 모습이 멋있고 좋아 보였다. 대학교 졸업 이후로 거의 만나지 못했던 선배도 우연히 만났다. 모두 열심히 살고 있구나, 그들의 바쁜 모습에 한참을 웃으며 이야기했다.

7시 30분에 영화가 시작됐다. 영화관에는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수라’는 ‘비단에 수를 새기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새만금 갯벌의 간척 사업이 최종 결정된 후 모두가 포기하고 떠난 그 자리를 못내 떠나지 못하고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10년간의 기록이다. 바다가 막히기 전 얼마나 많은 생명이 살아가고 있었는지, 그 생명들 덕분에 잘 살아가던 사람들의 모습은 어땠는지, 그리고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끝까지 남기고자 고군분투하는 기록이다. 새만금 간척 사업은 1991년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2006년 최종적으로 대법원에서 간척 사업이 합당하다는 판결이 났다. 나 또한 새만금을 보호하고자 뛰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2006년 이후 잊고 있었다. 끝난 거라고.

@ pixabay

처음 알았다. 그 이후에도 시민생태조사단이 있었고, 새만금에서 살아가는 그 많은 생명과 그 생명이 있기에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들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시민생태조사단은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이다. 새만금의 아름다운 모습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그 모습이 사라진다는 게 가슴 아픈 사람들일 뿐이었다. 바다가 막히기 전의 갯벌은 삶이 숨 쉬는 곳이었다. 1분 1초도 쉼 없이 셀 수 없는 많은 생물이 머무르고 떠나는 곳이었다. 왕발을 가진 게가 우아하게 풀을 자르고, 서해 비단고둥이 지나간 자리를 만들고, 조개들이 넘쳐나고 수만 마리의 새들이 날아드는 곳이었다.

@ 한반도 자연생태 공모전 (KOBICㆍBRICㆍNAVERㆍKCC)

그 갯벌에 어느 날부터 갑자기 물이 들어오지 않았다. 게들과 조개들과 갯벌 속의 생명들은 기다린다. 오늘일까? 내일일까, 항상 들어왔던 물이니까 들어올 거야, 조금 참고 있으면 들어올 거야. 마침 비가 내리자 온통 숨어있던 게며 조개들이 갯벌 위로 올라온다. 하지만 짠물도 아니고 비가 곧 그치면서 갯벌 위의 모든 생명체는 더 이상 숨 쉬지 않았다. 갯벌을 가득 메운 입 벌린 조개들의 모습에 난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어민들은 모두 떠났고, 나라에서 제공해 주는 공공근로로 생계를 이어가시기도 한다. 한동안 조개를 캐는 꿈을 꾸기도 했지만, 이젠 더 이상 그 꿈도 꾸지 않는다. 갯벌은 그렇게 황무지가 되어 간다.

@ 황무지가 된 갯벌(영화 '수라',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촬영)

시민생태조사단은 수라 갯벌에 여전히 살고 있는 보호 생물들이 있는지 조사하고 있다. 보호종이 있는 경우 말 그대로 그곳을 보호해야 할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여러 종의 보호종을 발견하고 소송을 하고 있으나 결과는 바뀌지 않고 있다. 물만 들어오면 갯벌은 살아날 거라고 믿는다. 포기하지 않으면 살릴 수 있다고 믿는다.

영화가 끝나고 GV(Guest Visit) 시간에 나왔던 두 가지 질문이 있다. (GV에는 황윤 감독, 우광훈 감독, 시민생태조사단 정희정님이 참석했다)

한 어린 학생이 손을 하늘 높이 뻗으며 질문을 신청한다. “그래서 지금 갯벌은 어떻게 됐어요?” 짧지만 가장 궁금한 질문이기도 하다. 정희정님의 대답이다. “새만금은 1991년에 착수를 시작했지만 너무나 넓고 덮을 흙이 모자라서 아직 다 못 덮었다. 그래서 수라 갯벌처럼 여전히 남아 있는 곳이 있다. 2020년 12월부터 해수가 조금이나마 유통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생물들이 다시 살아났다. 물만 들어온다면 갯벌은 다시 살릴 수 있다.” 또 다른 한 학생의 질문이다. “보호종의 발견이 증거로 채택이 됐나요?” 시민생태조사단은 보호종의 발견 증거를 제출하고 소송을 하고 있다. 정희정님의 대답이다. “제출은 했으나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수라갯벌 바로 옆에 신공항을 지으려고 공고를 했고 국내 유수의 업체들이 참여를 신청했다. 6월이면 신공항 사업자를 정할 것 같다. 많은 시민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이 결과도 지켜봐 주시고 수라 갯벌에도 와 주셨으면 한다”

어린 학생들의 질문이 가슴에 꽂힌다. 영화에 나왔던 승준이와 동윤이처럼 아버지가 봤던 아름다운 모습을 승준이는 보지 못했고, 승준이가 봤던 남아있는 아름다운 모습을 동윤이는 더 이상 보지 못한다. 질문을 했던 어린 학생들은 어쩌면 더 이상 갯벌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인간이 훼손시키고 있는 게 어디 갯벌뿐인가?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살릴 수만 있다면 살려야 한다. 사라지는 게와 조개, 사라지는 새, 바뀌는 생태계 그리고 결국 그 끝에는 사람.
“물만 들어오면”
어쩌면 갯벌은 물이 들어올 때까지 끈질기게 버티고 있는지도 모른다. 게와 조개, 새를 살리고 곤충과 동물을 살리고 인간을 살리기 위해서 말이다. 갯벌을 잊고 있었던 나는 그 간절한 기다림이 미안해서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난 이 글을 써야만 했다.
새만금은 여전히 인간의 손에 의해 바다가 막히고, 막혀 있는 물은 죽어 가고, 갯벌은 사라지는 중이다. 알고는 모른척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새만금이 그렇다. 갯벌을 위한 마지막 희망일 수도 있다. 

※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이 있다. 수라갯벌 방문도 할 수 있고 소송 중인 재판에 참여할 수도 있다.
※ 새만금신공항 기본계획 취소 1만인 서명운동을 진행 중이다. (서명 참여 링크)

작성자: 옆집고양이
IT기업에서 오래 숙성되고 있는 와인같은 엔지니어. 인문학을 사랑하고 세상 모든 것에 관심이 있고 그래서 과학과 인문학 그 어디쯤을 여행하는 휴먼. 

출처
본 글은 사단법인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에서 제작한 콘텐츠로,  ESC에서 운영 중인 과학기술인 커뮤니티 '숲사이(원문링크) '에 등록된 정보입니다.
ESC: https://www.esckorea.org/
숲사이: https://soopsc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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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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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지 못했는데 꼭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네요ㅠ 주변에서 많이 봤다는데 다들 평이 좋더라구요. 먹먹하다고 해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겠지만 이 글을 읽고 꼭 봐야지 생각했습니다.

이 영화 본 뒤로 새 소리가 달리 들려요.? 글에서 링크 알려주셔서 서명 참여했습니다! 영화를 보고나니 서명을 안 할 수가 없어요!

생명과 죽음이 동시에 느껴지던 수라갯벌을 만난 순간이 떠오릅니다. <수라> 포스터의 문구처럼 '바다를 바라고' 있어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인간만이 바다를 향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이기심에 생태계가 파괴되는 상황이 안타깝습니다. 이번 다큐멘터리를 통해 아직도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다시 돌아올 생명들이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 좋겠어요.

10여년 전에 무안 갯벌 보전을 위한 거버넌스와 관련된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전까지는 갯벌이 소중한지 잘몰랐습니다. 한국의 갯벌이 생태계 차원에서 지구적으로 소중하다는 것을 많은 분들이 알게 되면 좋겠습니다.


람사르 습지
https://terms.naver.com/entry....

자연을 훼손하고 생태계를 파괴하면서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수라를 통해서 새만금 사업 문제가 더 많이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수라 영화를 보러 간 분들은 좀 있었던 것 같은데, 막상 저는 자세하게 알고 있지는 못했네요. 관련 내용 잘 풀어주셔서 감사해요!

마지막 엔딩크레딧의 출연배우(?) 이름 사진이 화제가 되어 꼭 보고싶었던 영화인데 소개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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