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학교를, 선생님과 아이들을 부탁해

2023.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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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18일 서울서이초등학교에서 교내 교보재 준비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만24세 선생님. 

왜 이 죽음이 우리를 마음 아프게 하고 분노를 느끼게 할까요?

서이초 화환

전국각지에서 온 화환들(사진: 백아인)


무엇이 선생님을 죽음으로 몰았을까요?

왜 하필 학교에서일까요?


이제껏 선생님 자살 사건들이 심심찮게 있었음에도 공론화되지 못했습니다. 개인적인 우울증 등의 이유로 은폐되었기 때문이죠. 이번 서이초 자살 사건은 달랐어요. 선생님이 목숨을 끊은 장소가 학교 교내였습니다. 그녀는 우리에게 “학교”란 공간을 보여주고 그 속에 생활하고 일하는 선생님과 관리자, 아이들, 학부모들간의 복잡한 뭉치들을 던졌습니다. 우리가 파고들어 밝혀내야 할 뭉치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여기서 정치적으로 이 사건을 해석 이용하기보다, 학교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학교 안에서 선생님이 교육자로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고, 학생들도 학생으로서 배울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학교가 선생님에게나 학생에게나 안전한 장소가 될까요?

신규로 들어온 선생님이 초등학교 1학년 반 담임을 맡으며 한 해를 무사히 마치고 새로운 1학년을 또 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 해에 비해 스트레스는 극심했습니다. 자살하기 전에 쓴 선생님의 일기장 속엔 “업무폭탄”과 학부모와의 상담 갈등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몬스터 페어런츠(Monster Parents)를 아시나요? 


선생님의 전화번호를 학부모가 아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든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교권 이전에 사생활 침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시도 때도 가리지 않는 부모의 불만사항은 교사로서의 업무와 수업 중에도 피말리는 스트레스가 될 수 있지요.

일본드라마 : 몬스터 페어런츠(2008.7-9 일본KTV 방영)

일본에서도 2006년에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어요. 과도한 잔업 업무와 학부모의 불합리한 요구에 스트레스를 받은 23살 1년차 신규 선생님이 자살한 것이죠. 이러한 현상을 분석하면서 2007년 일본교육계에서는 “몬스터 페어런츠” (괴물 부모)라는 말이 만들어지고 드라마화 되기도 했습니다.(시사저널 2023.07.30)

일본 교육계의 분석에 따르면, 2020년대 지금의 학부형 세대는 과거 80년대 학력 위주의 학창시절을 지나며 학교에 대한 불신을 키워왔습니다. 선생님들의 폭력과 인권 침해 및 촌지 등 불합리를 무수히 보고 겪은 세대로 교육계에 대한 신뢰가 얕지요. 한편으로는 ’학벌만능주의’의 시대 속에서 ‘전인간적 교육’보다는 공부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는 ‘묻지마 고학력 세대’이기도 하죠. 

이 세대가 학부모가 되고 자식을 한두 명만 키워 기르다 보니, 자식에 대한 애착도 크고, 앞선 세대의 교육관을 신뢰하지 못하는 문제점도 있습니다. 동시에 자식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투영하여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고 통제하고 소유하려는 부분도 있습니다. 

이런 부모들 중 심한 경우에는 학교에 불합리한 요구를 당당히 할 뿐 아니라, 선생님에게 모든 잘못을 돌리고, 인권이란 이름으로 자기 아이 감싸기에 치중하는 몬스터 페어런츠가 되고 맙니다.

모든 아이들에게 좋은 것이 아닌, 자신의 아이에게만 유리하게 학교에 부당한 요구를 하는데, 그 예로, 특정 아이와 다른 반이 되게 해달라고 떼를 쓴다거나, 자신의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전달받길 원한다거나, 심지어 우리 애만 소풍 때 도시락을 못 쌀 거 같으니 선생님이 대신 싸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몬스터페어런츠의실례들참조). 

우리는 여기서 합리적인 요구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합리적인 것은 내 아이만이 아닌 모든 아이들을 위한 것일 경우가 많습니다. 몬스터 페어런츠란, 다른 아이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면서까지 불합리한 권리 주장을 하는 부모를 말합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하루에도 몇십통씩 악성 민원을 넣는 경우가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민원을 상대하느라 업무나 수업에 집중할 수 없고, 부모의 부당한 행위 때문에, 정작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이들입니다.(초코샘 네이버 블로그 2023.07.23)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부분은 “업무 폭탄” 부분입니다. 

교재를 준비하고, 수업을 준비하고, 그밖에 잔업을 몽땅 처리해야 하는 업무 과잉이 교사에게 끼치는 정신적 압박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때로 우울증과 극단적인 선택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시사저널 2023.07.30)

 “업무폭탄”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또다른 문제를 낳는데, 정작 선생님의 본업인 ‘가르치기’를 위해 수업준비할 시간이 없다는 점입니다. 수업 준비가 안 되면 수업이 질적으로 저하됩니다. 수업의 질적 저하로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선생님을 무시하거나 불신하게 되고, 다시 컴플레인이 생기고, 선생님은 또 수업에 집중할 수 없게 되어 악순환이 무한루프를 탑니다. 

이 두 가지는 서이초 선생님의 일기에 표면적으로 드러난 두 가지 원인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좀더 사안을 깊이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선생님과 아이들을 믿어 주세요 

서이초
추모하는 글귀들과 꽃들(사진: 백아인)

서이초 신규 교사의 자살 사건을 접한 많은 선생님들이 고개를 갸우뚱한 부분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은 특히나 다루기 힘든 학년으로 경험 많은 선생님도 어려워하는데, 갓 선생님이 된 젊은 선생님에게 맡겼다는 부분에서였습니다.

초등학교 1, 2학년 아이들의 어머니들은 아직 유치원과 초등학교가 다르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치원에서는 아이 하나 하나의 발달에 주목하고 학부모와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받습니다. 그러나 학교는 우리 아이가 여러 아이들 중 하나라는 사회화 과정을 배웁니다. 사회의 규율을 처음으로 맞딱드리고 교육받는 장소입니다. 다른 한편, 학부모도 학부모가 처음이라서 유치원 때와 같이 자신의 아이에게 집중캐어가 있기를 기대하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기도 합니다. 

우리 아이도 사회의 일원이 되는 과정을 학부모들은 조금 떨어져서 기다려주어야 합니다. 또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성격이 맞지 않는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우도록 기다려주고 도와 주어야겠지요.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못할 일도 아닙니다. 괜한 부모 등쌀에 아이가 배워야 할 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건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학생으로서의 권리와 의무 


미국의 경우, 카운슬러와 관리자 등의 협력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입학 시 수십페이지가 되는 학교 메뉴얼과 규율에 동의할 것을 요구받습니다. 자유나 권리는 그에 마땅한 의무가 함께할 때만이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학생의 사생활 보호로 핸드폰을 보는 게 허여된다면, 그것이 적어도 다른 학생들의 교육권에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가능합니다. 

학생 인권을 말하는 것은 단지 “내 아이가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학생들이 학생으로서 자신의 의무와 그에 따른 자유를 누리도록 하고 인격체로서 대우받기 위함이지, 아무때나 누구나를(심지어 선생님마저) 자신의 방해자로 설정하고 끌어내리기 위해서는 아닙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이미 전제가 되어야 하지요.

서이초

벽에 붙은 추모 포스트잇(사진: 백아인)

사회는 이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시스템적인 노력

이번 사건의 핵심은 선생님 한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수업 외 과중한 업무, 학부모와의 상담 등 선생님이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고 도움을 요청하거나, 관리자나 카운셀러가 함께 문제에 대해 대응하는 시스템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선생님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합니다. 현재 눈 앞의 문제를 봉합하기 위해 단순히 선생님 권한 강화로 가면, 일견 좋아 보이지만, 종국에는 선생님 혼자 짐지어야 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학교일로 인한 스트레스, 병가는 산업재해에 들어갈 것입니다. 선생님 혼자 책임감에 밀려 벼랑끝으로 몰리는 현 제도는 선생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일본의 경우 학부모 대응 매뉴얼이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한국 역시 현실에 맞는 매뉴얼이 시급합니다. 

미국의 경우 학교에 상주하는 카운셀러와 교장이 선생님과 반드시 함께 협력하여 학부모 민원을 처리합니다. 폭력 사건이 있거나 하면 일단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시킵니다. 분리는 인권 침해가 아니라, 피해자 보호이기도 합니다. 가해자나 벌을 받아야 하는 아이는 일단 교장실로 분리됩니다. 그리고 보조교사로 선생님 대신 각계 전문가가 와서 수업을 하기도 합니다. 한 달에 한번 수업 대신 업무만 하는 업무일(working day)이 있는 학교도 있습니다. 

외국의 경우가 절대적으로 옳고 우리 실정에도 딱 맞는다고 말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 참고할 수는 있을 겁니다. 

서이초

잠긴 수도꼭지 위 추모 포스트잇(사진: 백아인)

사회문화적 노력 

2020년대의 가장 큰 화두는 생명권일 겁니다. 보호받지 못하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하는 국가행정시스템에서 국민들은 말그대로 죽어나가고 있습니다. “각자도생”이 당연시되고 있는 씁쓸한 상황입니다. 이것은 진실 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과 국가 시스템이 개인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국가에 대한 불신과 맥을 같이 합니다. 

우리는 개인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개인이 아닙니다. 보다 나은 대안을 찾기 위해서는, 여야가 정치적 도구로 이 문제를 볼 게 아니라, 서로 협력하여 선생님과 아이, 학교가 함께 웃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학부모나 폭력사건 등에 대해 카운셀러가 교장과 교사와 함께 협력하여 대응할 수 있게 해 주고, 선생님들 간에도 남의 문제라고 생각지 않고 같이 도움을 요청하고 받아야 할 때입니다. 

여기에 학부모는 조금 떨어져서 아이와 선생님들을 기다려 줄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야 선생님 한 명이지만, 선생님은 아이들과 연결된 대가족 전체를 대응해야 하기도 합니다. 선생님의 고충과 아이의 사회화를 좀더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맡길 줄 아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법적인 부분이 현실과 닿아 있지 않다면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회적으로 선생님을 존중하지 않고, 선생님의 고충을 내 일이 아니라고 모른 척하면, 또 학교를 믿지 않으면, 학교는 누구에게나 그저 감옥일 뿐입니다. 

학교를, 선생님과 아이들을 부탁합니다. 그것은 우리 미래에 대한 부탁이고, 우리 현재에 대한 부탁입니다. 무엇보다 나 역시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없는 건 아닌가, 나 자신부터 돌아봐야겠습니다. 

서이초

사랑과 죽음 사이 (사진: 백아인)

이슈

교육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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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수 비회원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고 인정하려는 자세나 예의가 부족하므로 발생하는것 같아요.
교사.학생.학부모가 다름을 인정하며 일체가 되려는 맘보다 내가 우위에서 나만을 생각하고 양보하고 이해하려는 맘이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배상철 비회원

교사의 권리도 학생의 권리도 모든 권리는 존중받아야 합니다

나 혹은 자녀가 학교에 다니는 것은, 다른 곳에서 돈을 내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도 소비자 권리를 찾으려 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닐까 생각도 드네요. 사회적 규범을 배우는 일은 때로는 힘들고 쓰리기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이 아이들의 인권을 침해하면 안되겠지만요. 모두의 인권이 함께 보장되고 함께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야 우리 사회가 똑바로 굴러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학교가 학생과 교직원 모두에게 안전한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현직 교사이신 가족, 지인들께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모두 '수업 준비할 시간'이라고 답하더군요. 일상 업무 처리로 인해 수업자료 개발을 충분히 하지 못할 때 자괴감이 든다고 하시는데요,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한 듯 합니다.
학교에서는 공부 뿐 아니라 규칙을 이해하고 사회적인 관계맺기에 대해 배워야 한다는 내용이 특히 와닿습니다. 아이들이 더 현명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학부모들이 넓은 마음으로 바라봐주셨으면 하네요..
김도연 비회원

16살 중3학생입니다. 학생의 입장에서 봐도 이해가 안가는 부모들의 행동이 정말 화가납니다. 정말 이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학생의 인권이 중요하다고 해도 선생님이라는 한 사람의 인권이 무시당하는 것은 아닙니다..진상피우시는 분은 물론 본인이 무었을 잘못했는지, 무었이 잘못됐는지 모르겠지만 본인 자식에게 하지 않을 또 하지못할 말은 남의자식에게도 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하지말아야 할 행동과 해도될 행동을 구분하는 것. 나이를 먹는다는 건 그런거라고 생각합니다.

밥상머리의 교육인 가정교육이 점점 잃어가고 있고 물질만능, 이기주의 등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방법과 질서에 대한 교육의 부재. 환경과 이웃과 세계에 대한 고민이 없는 우리네 삶이 문제이겠죠

가슴 아픈 일이네요

이 현상을 어떻게 정의해야하나 궁금했었는데 '몬스터 페어런츠'라는 개념이 있군요. 시스템적으로, 문화적으로 어떤게 필요한지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냥 슬퍼하기에는 한 사람의 목숨이 너무 귀하고,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 할텐데요. 본문에 적어주신 인식이 사회 전반으로 퍼지면 좋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일부 몰지각한 학부모들의 행태에는 '소비자주의' 같은 것이 깔려있지 않은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한국 사회 전반에 '나는 돈(세금)을 냈으니 권리를 누려도 된다/누릴 수 있다"라는 생각이 다소 과잉으로 흐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저는 약간 졸부, 소위 천민자본주의 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제도적인 노력도 필요하지만 이런 인식도 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듭니다... 노동과 자본에 대한 사고방식에 대해서도 좀 재고를 해야할 것 같고, 기본적인 예의의 문제 같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시스템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의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능력과, 아이들을 지지해주고 도움도 주시는 선생님의 애씀을 믿고 기다릴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학교의 질서가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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