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활동할래? 노동할래?

2023.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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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정치, 사회운동, 청년 등과 관련한 글을 씁니다.

활동과 노동 사이


‘활동가’는 가장 좁게는 어떤 일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 적극적으로 힘쓰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와 달리 ‘운동가’는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변화를 위해 활동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독재나 자본과 맞서 싸우는 사회운동을 하는 운동가라는 호칭과 구별되는 활동가라는 호칭이 사회적으로 일반화되어 자주 쓰이게 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현실에서 활동가는 우선 사회운동가, 시민단체 상근자를 지칭한다. 하지만 그 이상을 포함한다. 사회운동가라는 표현이 일정정도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대체 할 필요성이 제기되어 사용되었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주로 정치와 관련된 전통적 사회운동과 구별되는 새롭고 다양한 운동들을 포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는 의견이다. 이러한 관점은 협동조합 활동가, 마을활동가, 사회적기업가, 사회혁신가, 소셜디자이너 등 소위 ‘제3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포괄하여 활동가라 지칭하고 있다. ‘활동’은 사회운동을 넘어 사회적 가치를 지니면서도 개인적 삶의 재생산이 가능한 일을 통해 국가와 자본의 실패를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활동 전반을 표현하게 되었다. 시민사회단체 대신 NGO, NGO 대신 NPO라는 개념을 점점더 쓰게 되는 것도 유사한 맥락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활동가의 등장 맥락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노동의 위기 속에서 활동이 부각 된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현재 새롭게 나타나 활동을 벌이고 있는 청년 활동가 집단들은 장기화된 청년실업이라는 구조적 조건에 대응하는 청년주체들의 활동들 속에서 등장했다. 서울시와 청년유니온의 사회적 교섭 이후 서울시 청년기본조례가 제정되는 등 여러 과정을 거쳐 발전해 온 서울시 청년정책중 중요한 한 부분인 ‘뉴딜일자리’ 정책을 통해 형성된 청년활동가들이 핵심적인 사례일 것이다. 꼭 청년 범주가 아니어도 여러 중간지원조직을 포함하여 제3영역과 관련되어 늘어난 활동가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관점에서의 ‘활동가’ 개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구조적 차원의 노동 배제 혹은 소외된 노동으로의 복속’ 너머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활동’이라는 문제의식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향성은 ‘의미 있는 일’, ‘사회적 가치의 실현’, ‘대의의 추구’, ‘자아실현’ 등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바람이 환상으로의 도피에 그치는 것으로 귀결 될지, 새로운 사회를 추동하는 잠재적 가능성의 현실화가 될 지는 열려 있는 문제다. 


반면에 기존의 시민사회단체 상근자이건 새롭게 등장한 활동가이건 활동가들에게서 ‘노동’이라는 단어가 재소환 된다. 활동을 위해서는 신념과 열정, 헌신과 봉사로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당해야 한다는 인식 속에서 활동가들은 자신들의 삶을 좀먹어 갔고, 그것은 점점 견디기 힘든 것이 되었다. 활동가들은 자신들의 생계를 유지하고 더 나아가 삶을 조금씩이라도 윤택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활동가가 아니라 ‘노동자’임을 내세울 필요가 있었다. 노동권을 가지고 노동법의 적용을 받는 임금 노동자로 말이다. 이들은 활동을 노동으로 인정받고자 했고 이에 따라 사회적 차원의 노동권을 보장받고자 했다. 2017년에 참여연대에 조합원 37명의 노동조합이 생겨나게 된 것이 상징적인 사례이다. 이 관점에서의 ‘노동자’ 개념은 ‘불안정한 삶에서의 불안한 자아실현’ 너머를 지향하는 것이다. 이 역시 ‘의미 있는 일’, ‘사회적 가치의 실현’, ‘대의의 추구’, ‘자아실현’를 오래도록 안정적으로 추구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바람이 노동과 구별되는 활동을 소거하여 다른 노동들과 다름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게 될지, 활동을 지속가능한 것으로 만들게 될 지는 열려 있는 문제다.


‘노동자가 아닌 활동가’, ‘활동가가 아닌 노동자’는 의외로 유사한 지향성 속에 위치시킬 수 있다. 활동과 노동에 대한 그간의 논의에서 활동가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내적 동기와 외적 보상 두 측면에 유지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활동이 더 이상 하고 싶은 무언가가 아닌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되면 그만둘 수밖에 없고, 내적 동기가 있다 하더라도 일정 이상의 외적 보상이 따라주지 않으면 언젠가는 그만둘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노동자가 아닌 활동가’, ‘활동가가 아닌 노동자’, 활동과 노동 사이에서의 진동은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사회적 전환을 추동하는 가치 지향의 활동들의 지속가능성이라는 고민 속에 위치하는 것이다. 이러한 고민들 속에서 제기되는 활동과 노동을 포괄하는 개념들이 있다. 


출처: 픽사베이


사회연구자 류연미는 “노동과 운동이 공존하는 행위, 환원하면 먹고 살 수 있으면서도 사회변화를 모색할 수 있는 행위, 그리고 때로는 노동이나 운동의 일환으로 파악할 수 없지만 소규모 공동체를 바탕으로 사회적 의미를 추구하는 행위들”이 ‘활동’ 내지는 ‘사회적 활동’이라 규정한다. 이영롱·명수민은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라는 책에서 실무를 수행하거나 유무형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여 임금을 받는 ‘(경제적) 노동’, 사회를 바꾸려는 집합적 실천으로서의 ‘(정치적) 운동’, 가치지향적으로 새로운 관계를 유지하거나 구축하고자 하는 ‘(사회적) 활동’이 복합되어 있는 ‘사회적 노동’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어떤 개념을 받아들이건 소외된 노동 너머 사회적 변동을 추구하는 활동이라는 지향성과 안정적인 삶의 재생산이라는 두 가지 문제의식이 결합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시도들의 인식을 대체로 공유하며 좀 더 깊이 고민해야 할 부분들이 있다. 활동가들이 일하고 있는 조직들은 많은 경우 활동가로 하여금 안정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임금을 지급하기 어려운 조건에 있다. 특히 작은 규모의 조직인 경우에 더욱 그러하다. 인건비를 충분히 지급할 수 없기 때문에 노동 시간 등 노동조건들이 악화되거나 개선의 여지를 가질 수 없게 된다. 명망가에 기대고 있는 경우 명망가 개인의 영향 아래에서 자유롭게 활동을 벌이기 어려워지는 문제가 생겨날 것이다. 프로젝트이건 인건비 지원이건 국가의 지원을 받고 있다면 국가의 영향 아래에서 국가를 비판하는 활동을 자유롭게 벌이기 어려워지는 문제가 생겨날 것이다. 조직 자체의 영리 활동 강화도 하나의 대답이 될 수 있겠지만 영리 활동 자체가 ‘활동’ 없는 임노동의 강화로 이어지기 쉽다. 대안이 무엇인가에 대한 또 하나의 대답은 회원의 회비 충원을 통한 건강한 재정구조의 형성일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경제와 노동의 위기 속에서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에서 쉽지 않다. 자원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큰 조직의 경우에는 ‘소외된 노동을 넘어서는 안정적인 활동’에 대한 고민에 집중할 수 있지만, 자원이 부족한 작은 조직의 경우에는 조직의 자원 확보라는 고민을 동시에 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임노동과 구별되는 ‘활동’이라는 것이 강제된다면 바로 이 부분일 것이다. 임금과 노동조건이 충분하지 못한 조건에서 만약 타협을 할 수 있다면 그 대체재는 무엇일까?



활동가의 성장, 자존감과 자율성, 협력와 연대


나는 활동가의 자존감 독려와 자율성 확보, 그리고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일을 하는 조직적 실천에 활동가 개인을 동일시하라는 간접적인 사회적 가치 실현 방식은 일정 부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활동가 개개인의 문제를 해결 할 수는 없다. 활동가 개인이 점점 기계의 톱니바퀴가 된 듯한 생각이 들어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조직의 가치와 활동가 개인의 가치 사이에서의 간극은 항상 존재한다. 활동가 개인의 가치를 실현하는 자아실현이 그 활동가의 자존감 확립과 직결되어 있는 것이라면 조직의 비전이 이를 위한 하나의 핵심 요소로 위치될 수 있도록 관계를 조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간극이 벌어지게 되면 점점 활동은 어려워진다. 벌어진 간극을 견디게 해주는 요인은 대개 높은 임금이나 좋은 노동조건이다. 문제는 이러한 간극을 좁히기 위한 매개로서의 자율성이 활동가에게 보장되어 있느냐는 것이다. 구성원들의 합의 된 틀 내에서 활동가 개인이 자율성을 가지고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활동가 개인의 성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고, 역량을 강화하여 전문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더 나은 활동으로 나아가기 위한 징검다리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율성은 활동가의 성장에 대한 독려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조직 내에서 조직의 비전과 가치에 따라 함께 활동하는 것이 활동가의 성장과 직결된다는 것을 설득하고 증명 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성장이야말로 활동과 노동이 공유하는 최고의 보상 중 하나일 것이다.  


간극을 좁히는 매개는 자존감과 자율성, 성장뿐만이 아니다. 조직의 구성원들의 협력체계 형성 및 연대감 형성이 필수적이다. 자율성에 대한 강조는 개인에게 과도한 부담으로 귀결되기 쉽다. 대부분의 중요한 일은 혼자 할 수 없으며 함께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자율성에 대한 강조는 안타깝게도 다른 구성원들의 자율성에 대한 무시, 때로는 방해로 해석되어 작동하기도 한다. 때문에 주어진 조건들을 공유하는 가운데 소통을 통한 합의, 타협과 조정 등의 과정이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구성원들의 협력체계와 그에 기반한 연대감이 형성되면, 그리고 그러한 틀 내에서의 자율성이 보장되면 활동가들은 제약된 물적 조건 속에서 자존감을 가지고 활동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물적 조건의 개선을 통한 노동조건의 개선 가능성을 높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은 때로 조직의 가치나 비전 그 자체를 바꾸거나 재구성하기도 한다. 이러한 노력들은 많은 경우에 다 때려치우고 싶을 정도로 실패율도 높고 고통스럽지만 끊임없이 시도되어야만 한다.  



이 글은 4년 전, 2019년 4월 한 토론회에서 발표했던 글의 일부를 약간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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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노동을 이야기하면서 활동가 개인의 삶을 알아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활동가의 지속 가능한 활동 혹은 노동이 지속 가능하려면 어떠한 안전망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활동가들의 열정과 역량 덕분에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들이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활동과 노동에 대한 인식이 과거에 머물러 있는 단체들도 적지 않은 것 같고요. 그래서 언급하신 것처럼 스스로를 하나의 부품 정도로 느끼다가 소모되어 버리고, 떠나버리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문제가 장기화 되면서 활동가들의 근속기간이 짧아지니 자연스레 긴 시간 활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험과 전문성이 줄어들고, 과거에 머물러 있는 세대만 남게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느낌이 드네요. 경제적 여건 마련이 현재 시민사회에 담겨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만능열쇠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활동과 노동이 이분법으로 나뉘지 않는다는 것,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활동이 활동가들을 소진시키는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공감할 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인상 깊게 잘 읽었습니다. 소셜섹터에서 재정적 지속가능성은 언제나 큰 화두였지만, 이는 그간 조직 차원에서만 고찰되었을 뿐 개인 활동가 차원에서의 논의는 비교적 부족했습니다. 중요한 문제 제기를 해주신 덕에 활동가 차원에서 경제적 지속성과 사회적 가치 간의 화해를 위한 방안에 대한 고민을 해보게 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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