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외국인의 ‘어눌한’ 한국어를 따라하는 개그에 대해

2023.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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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MBC 라디오스타 794화 “[#라디오스타] 드디어 공그중그파에 지명 받은 다나카상의 k-예능 적응기! | #다나카상 #김경욱 #엠뚜루마뚜루 MBC221207방송”, 엠뚜루마뚜루 : MBC 공식 종합 채널.

다양한 방송 매체에서 외국인의 ‘어눌한’ 한국어를 따라 하는 개그를 만나곤 합니다. 최근의 사례로는 코미디언 김경욱이 연기하는 일본인 ‘다나카’가 먼저 떠오르는데요. 다나카는 2000년대 초반 일본 하라주쿠에서 유행했던 패션 스타일과 일본어 특유의 발음과 억양이 섞인 서툰 한국어 구사로 일본인을 재현합니다. 다나카가 캐릭터로서 개그를 구성하는 방식은 옷차림부터 호스트라는 직업 설정까지 다차원적이지만, 무엇보다 주요한 점은 그가 일본인처럼 한국어를 구사한다는 것입니다. 다나카는 한국어의 받침 발음을 어려워하는 일본인의 특징을 과장하며 재미를 만들어 냅니다. 가령 ‘꽃미남’을 ‘꼬츠미남’으로, ‘몸매’를 ‘모므매’로 발음하면서 말이죠.

외국인의 어색한 한국어 발음은 오랫동안 개그 소재로 사용되었습니다. 최근 방영한 쿠팡플레이 의 ‘위켄드 업데이트’ 코너에는 한국에 온 지 6개월이 된 베트남인으로 설정된 리포터 ‘응웨이’가 등장합니다. 응웨이를 연기하는 배우 윤가이는 베트남 사람이 한국어를 구사할 때 주로 나타나는 억양과 발음을 모사하며 베트남인 캐릭터를 만들어 냅니다. 같은 코너에는 중국인 배우 탕웨이가 구사하는 한국어를 따라 하는 ‘마라탕웨이’라는 캐릭터도 등장하는데요, 탕웨이 특유의 한국어 발음과 말투를 성대모사하며 웃음을 자아냅니다.

이러한 개그는 인종차별과 제노포비아(외국인/이방인 혐오)의 맥락에서 지속적으로 비판 받아왔습니다. 외국인의 서툰 발음을 웃긴다고 따라 하는 것이 혐오와 맞닿아 있다는 문제의식입니다. 물론 위의 개그 프로그램들이 인권 침해와 관련하여 별다른 제재를 받은 적은 없습니다. 유튜브 개인 채널로 출발한 ‘다나카’는 오히려 인기를 타고 공중파 TV 프로그램에까지 진출했죠. 이런 종류의 개그를 악의적 의도 없는 개그로만 봐야 한다는 관점의 시청자들은, 언어 구사를 비슷하게 따라 하는 것일 뿐, 조롱과 혐오라고 보는 것은 비약이라고 주장합니다. 특히 외국인 당사자들 또한 기분 나빠 하지 않고 개그로 즐긴다는 점이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동원되곤 하죠. 혹자는 외국인의 발음을 따라 하는 것을 조롱으로 간주하는 것이 이미 그들의 한국어를 낮잡아 보는 관점을 내포하고 있지 않느냐 반문하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바는 다양한 한국어 발음을 그 자체로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일 겁니다. 지금 한국에는  200만 명 이상의 외국인이 머물고 있고, 특히 방송계에도 많은 외국인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들 중 대다수는 한국어를 외국어로서 학습하고 구사하는데요. 한국어 모어 화자가 구사하는 자연스러운 발음과 억양을 익히는 것도 언어 학습의 중요한 부분이기는 하겠으나, 그들이 한국어를 한국인처럼 하지 못하는 것은 실은 당연합니다. 한국어 모어 화자에게 덜 자연스럽게 들리는 한국어는 대개 ‘어눌하다’는 수식을 받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외국인의 발음 앞에 어눌하다는 수식어를 너무나 간단히 붙이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한 반문입니다. 한국 사회는 꾸준히 더욱더 다문화적인 사회로 나아가고 있고, 앞으로는 더 다양한 언어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한국어를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한국어 억양과 발음을 부족하거나 어눌한 것만으로 본다면, 이는 상당한 시대착오일지 모릅니다.

외국인의 특징적인 한국어 발음을 과장하여 웃음거리로 삼는 개그는 일차적으로 그들의 한국어가 어눌하다는 인식을 고착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입니다. 나아가, 그러한 개그가 외국인의 발음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내포하지 않는 단순한 모사일 뿐이라고 두둔하는 것 역시 문제적이라고 보입니다. 이러한 개그가 외국인들에 대한 조롱과 혐오라는 혐의를 간단히 벗어버리기 어려운 이유는, 당연하지만 그것이 진공 상태가 아닌 특정한 사회적 맥락 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특정 집단 혹은 사람을 따라 하는 코미디가 조롱과 혐오라는 혐의를 받게 되는 것은, 그것이 사회적 약자를 향하거나, 누군가의 선택이 아닌 조건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입니다. 사회 구성원의 절대다수와 다른 출신과 배경을 가진 외국인은 일반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로 살아갑니다. 외국인 중에서도 출신 국가와 사회경제적 지위 등에 따라 서로 다른 경험을 하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외국인이 약자라는 사실은 여전히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외국인들이 구사하는 (한국인들과는) 다른, 혹은 미숙한, 한국어를 모사하는 코미디는 불편함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론 약자와 강자의 구분은 절대적이라기보단 맥락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그것만큼이나 패러디와 희화화의 경계도 대단히 맥락적이죠. 또, 같은 장면이라도 개인마다 그 의도와 의미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종류의 개그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쉽게 하나로 모이기 어려워 보이기도 하는데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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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식의 개그가 왜 한국에서만 유달리 지속되는 걸까 고민했네요. 희화화의 대상과 방식을 꼭 이렇게 설정해야 했는지 의문입니다. '프로불편러'와 같은 단어로 합당한 비판들이 묻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시각들이 더 늘어나면 좋겠어요.
특히나 우리 민족은 제노포비아에 모순적인 듯 합니다. 피해에는 크게 분노하면서도, 막상 가해자가 되었을 때는 비판하는 이들에게 오히려 "예민하다"고 말합니다. 특히나 이러한 코미디에서는 더욱 그런 모습을 자주 목격하는데요, 희극인들께 코미디로 모두를 웃길 수는 없어도, 한 명이라도 울게 하지는 않을 수 있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정말 위험한 인종차별 행태인데, 공공연하게 방송에 나오는 걸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겠더라구요. 문제의식이 빠르게 공유되고 개선되어야할텐데 그런 논의는 드러나기 어렵고 방송에서는 이런 끔찍한 상황만 계속 보여주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글 잘 읽었습니다. 발음 외에도 2020년 의정부고의 흑인 장례 문화패러디가 떠올랐어요. 이걸 비판한 샘 오취리가 여론의 질타를 받고 방송에서 모습을 들어내지 못했는데 조건을 대상화 한다는 말이 공감됩니다.

어떤 개그가 웃음을 자아내고 어떤 개그가 논란이 되는지는 대중의 반응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개그를 써야할지에 대한 선택은 개그를 전달하는 사람의 책임이며, 대중의 반응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검토하여 논란을 예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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