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인터뷰] 우리가 만들어내는 변화가 궁금해?_모두의숲 편

2024.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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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주도하고 시민이 확산하는 우리 사회 성평등 문화를 만듭니다.

‘모두의숲’은 23년 4월 강릉 산불 재난이 일어난 이후 재난대피소에서 겪은 사람들의 경험을 성평등 관점에서 기록하고, 더 나은 재난 대피소를 상상하고자 <그럼에도 우리는> 2기에 참여했다. <모두를 위한 재난 대피소> 제안서를 통해 단순히 생존에 대한 구호가 아닌, 서로의 돌봄을 위해 관계를 지키고 모두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꿈꾸고 있다. ‘모두의숲’ 활동가 ‘솜씨’, ‘열매’, ‘짜이’를 만나 그들이 만들고자 하는 재난 대피소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럼에도 우리는>은 성평등을 주제로 다양한 실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활동으로 2022년 1기 13팀에 이어 2023년에는 9팀이 참여하고 있다. 빠띠는 협력을 통해 참여 팀들의 새로운 시도를 돕고 연대를 통해 성평등 문화 시민 네트워크를 확장하고자 한다.

 

모두가 찾아오고, 모두가 되고싶은 ‘모두의숲'

 

‘모두의숲'은 지친 여성 활동가들의 소진을 방지하는 모임에서 시작했다. 구성원들이 활동했던 영역은 환경, 여성, 교육 등 모두 달랐지만, 숲을 기반으로 한 프로그램을 통해 쌓여있는 감정을 얘기하고, 강릉에서 활동하는 여성 활동가로서 힘들고 어려웠던 점을 나누며 서로를 돌봤다. 사업 외에는 마주하기 힘들었던 여성 활동가들이 서로를 통해 몸과 마음의 회복은 물론, 느슨하지만 끈끈한 연대를 만들어낸 시간이었다. 이 경험이 좋아 공통의 관심사가 생기면 짧게 협업하는 방식으로 ‘모두의숲’을 이어가게 되었다. 환경과 생태 교육을 공부한 ‘솜씨’를 중심으로 ‘모두의숲’은 산림복지서비스를 기획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주변의 여성활동가를 만나기 위해 노력했다. 2021년에는 버터나이프크루* 3기에도 참여하며 <성평등한 숲 학교 활동을> 진행했다. 성평등한 관점에서 숲을 바라보는 안내서를 만들고 숲이 가진 건강성과 회복성을 통해 성평등 가치를 전달하고자 했다.

올해 초까지 ‘모두의숲’은 숲을 기반으로 한 활동가의 회복에 초점을 맞췄었다. 하지만 2023년 4월, 강릉 산불 재난이 발생하고 숲과 집이 불길에 휩싸이며 재로 사라졌다. 숲을 기반으로 한 생태계가 파괴되고 강릉 시민의 터전이 무너진 가운데 ‘모두의숲’은 재난대피소에 머무는 이재민 회복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버터나이프크루 : 여성가족부가 2019년부터 시작한, 일상에서 성평등 의제를 찾아내는 청년 프로젝트 지원 사업

 

다양한 시민들이 달려가는 대피소

 

2023년 4월, 강원도 강릉시 난곡동에서 발생한 산불이 대형 화재 참사로 이어졌다. 많은 주민이 터전을 잃었고 긴급대피소와 임시주거시설에 머물렀다. 구호단체나, 군인, 시청 직원을 비롯해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일상을 잃어버린 이재민을 찾아왔다. 예술, 생태, 환경, 미디어,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저마다 캐리어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담아 이재민을 도왔다. ‘마술캐리어'로 불리는 캐리어에는 재난 현장과 직접적인 상관은 없지만,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마법 같은 물건들이 가득했다. 강릉에서 독립출판을 하는 사장님은 아이들을 위해 그림 도구와 종이를 지원했다. 봉사하러 왔던 숲 해설가와 씨앗 연구자는 그 자리에서 팀을 꾸려 아이들 놀이 활동에 보조 교사로 활약해주었다. 세월호 가족의 현장지원도 있었다. 배식봉사, 식기류 설거지, 심리지원 봉사 등 다양한 영역에서 힘써주셨다. 이재민들이 재난현장에서 벗어나 일상으로의 복귀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해나갔다.     

‘모두의숲’은 몇몇 구호단체와 함께 아이들의 심리지원부스를 운영했다. 높은 난간이나 계단이 아닌 <어린이 쉼터>를 만들어 서로의 얼굴을 그려주는 활동을 했다. 대피소라는 제한된 환경에서 머무는 아이들의 심리 표현을 자유롭게 발산할 수 있도록 도왔다. 사진 작업에 익숙한 팀원은 <추억의 사진관>을 운영했다. 핸드폰에 있는 사진 혹은 화재로 전소된 집에서 훼손된 사진을 인화하거나 복원하는 활동을 했다. 서로의 얼굴을 그리며 아이들이 웃고 떠든다. 인화된 사진을 손에 쥔 이재민은 사진을 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화재로 생긴 상처를 되돌릴 수 없지만 잔상이 옅어지기를 희망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대피소 내에서 아이들이 생일을 맞이하였습니다. 생일을 앞두고 아이들이 기대가 많았지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 걱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들이 방문하여 깜짝 생일 파티도 해주시고, 선물도 주셔서 아이들이 정말 행복해 했어요. “엄마 나 행복해" 이러면서 좋아했습니다.”

출처 : 「재난현장에도 00이 필요해!」 45p

 

이재민들의 마음을 돌보기 위해 여러 단체와 개인이 노력을 기울였다. 다만, 관 중심의 일방 소통과 매뉴얼은 여러 주체가 섞인 재난현장에서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방적인 소통이 아닌 다양한 모양으로 자신의 삶을 회복하는 과정을 거칠 때 기후재난 이후의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다양한 세대로 이루어진 재난 대피소에는 어린이 쉼터가 필요하다. 그림으로 아이들의 심리적 지원 활동을 진행하며 나온 결과물 ⓒ모두의숲

 

이재민의 다양한 목소리

 

‘모두의숲’은 다양한 목소리를 담은 재난 매뉴얼을 만들기 위해 ‘그럼에도 우리는’ 2기에 참여했다. 대피소 내 성중립 화장실이 왜 필요한지, 물품이나 자원을 분배할 때 사회적 정체성에 따른 선택권 부여 여부가 얼마나 중요한지, 대피소 내 소통방법이 ‘이재민'이라는 큰 이름으로 묶여 내・외부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건 아닌지 등 매뉴얼에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고자 했다. 그러나 매뉴얼이 제시하는 정형화된 안내보다 이재민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담아내는 게 선행되어야 했다. 내부적으로 열띤 논의를 거쳤다. 다양한 목소리를 어떻게 담아낼 것이며, 이를 현실적으로 구체화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논의 끝에 프로젝트의 방향을 매뉴얼이 아닌 재난 대피소 제안서를 만드는 것으로 선회했다. 

‘모두의숲' 참가자 ‘열매'는 인터뷰를 통해 제안서를 만들기 위해 산불 피해자 인터뷰를 진행하며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았음을 고백한다. 하나의 예로 집을 잃은 건 똑같은데 주거 형태가 세입자인지 자가인지에 따라 보상금액이 달라졌다. 세입자는 기존에 사는 집의 계약이 해소되어 또 다른 집을 구해야 했다. 하지만 보상받은 금액으로 새로운 집을 구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재민이자 세입자인 시민은 마음을 추스르기 위한 여유도 없이 임시로 머무는 대피소에서 경제생활을 이어가야만 했다. 이재민의 실생활권 문제도 있었다. 장애를 가진 자식을 둔 고령의 이재민은 임시로 엘리베이터가 있는 거주 시설에 머물게 되었다. 자식의 거동이 불편하므로 이곳에 왔지만 밭을 일구며 생활했던 기존의 일상은 잃어버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건강이 점점 악화되었다. 주거 지원은 있지만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이 깊어져 갔다. ‘이재민'이란 뭉뚱그려진 이름에는 제 각각 살아온 일상의 모습이 지워져버리고 있었다.     

‘솜씨’도 공간에 대한 문제를 언급한다. 이동식 주택에 거주하는 이재민은 가족 단위로 생활하게 되는데, 주거 공간이 원룸처럼 되어 있어 성별・연령 차이에 따른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또한, 대피소는 설치된 화장실이 성별로 구분되어 있어 아들이 장애가 있거나 부모가 치매가 있는 경우 보호자가 보조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임시 주거시설은 말 그대로 ‘임시'이기 때문에 집처럼 편안함을 기대하는 건 어렵다. 다만, 다양한 맥락이 고려되지 않는 시설에 오래 머물수록 이재민들의 일상 회복도 더디게 진행되지 않을까. 

그럼, 같은 강릉이지만 재난피해에 비교적 피해를 받지 않는 시민은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짜이’는 피해 주변 지역을 인터뷰하며 그렇지 않다는 걸 발견했다. 인터뷰에 응한 할머니는 겨울을 대비한 땔감을 많이 갖추고 계셨는데, 귀가 잘 들리지 않고 집에는 장애가 있는 아들이 누워있어 화재가 발생했을 때 대피하는 게 쉽지 않아 보였다. 화재 경보는 알림 등을 이용해 소리로 전파되는 경우가 많은데, 듣기 어려운 노년층과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은 화재 피해에 노출될 가능성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훨씬 컸다. 기후위기로 산불이 더 자주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서둘러 이들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였다.

 

모두의숲 솜씨가 재난 현장에서 자료 수집을 진행하고 있다. ⓒ모두의숲

 

모두의 회복을 위한 모두의 제안서

 

‘모두의숲’이 만들어낸 제안서는 성평등한 관점을 바탕으로 대피소 생활을 말하고자 한다. 여성청소년이 월경대의 위치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표시를 하거나 배부처를 만든다. 반려견과 임산부가 편히 쉴 수 있는 쉼터를 조성한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에는 성별에 따른 구분이 아닌,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보호자의 편의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성적지향을 지닌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게 한다. 모두가 안전하고 회복할 수 있는 대피소가 되도록 공간을 이끌고 싶다. 그리고 이 제안서가 2023년 강릉 산불의 재난 현장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재난 현장에서도 적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 꼭 재난 당사자가 아니어도 좋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목소리를 내면 재난 대피소가 몸만 피신하는 공간을 넘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회복의 공간으로 바뀌지 않을까.  

 

“짝꿍도 제가 피해자 인터뷰를 가면 “너는 왜 그걸 하니” 라고 할 때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 주변에 있는 피해자를 보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니까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이재민들을 보기 시작한 거죠. 이렇게 주변이 바뀌는 모습들. 대학원 동기들이 기사가 한 번 나고 이후 산불에 대한 소식이 없으니까 “그래서 어떻게 되고 있느냐” 이런 것들을 물어봐 주는데 이렇게 사람들의 관심이 늘어나는 게 제가 기대하는 변화 같아요.”(열매)

 

“보통 강릉 산불 재난처럼 사건이 일어나면 재난, 사회적 이슈 이런 큰 이름으로 덮이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금방 사라지죠. 근데 피해 당사자들은 계속 남아있어요. 사라지지 않거든요. 그래서 개인의 개별성이나 관점을 잃지 않고 버티는 게 필요한 거 같아요. “불이 나고 망했어.” 이렇게 하는 게 아니라 여기서 생태적으로 지낼 수 없나? 미디어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거지? 대피소도 조금만 공적으로 접근하면 좋아질 것 같은데? 이런 고민하고 있어야 해요. 저는 각자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잊지 않고 다시 해내는 힘 그걸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면 뭔가 다시 할 수 있는 힘이 생길 거 같아요.”(솜씨)

 

“주변 친구들이 “왜 자꾸 거기 가서 그렇게 열심히 해?”라고 할 때 화도 내고 부딪히기도 많이 부딪혔는데 친구들이 기분 나빠할 수도 있는데 한 번은 다시 물어보더라고요. 저도 그런 관심이 결국에는 변화된 세상을 만들지 않을까 이런 부분이 있어요. 그리고 이재민 중에서도 몇몇 분들은 산불로 힘들긴 하지만 내가 상황이 좋아진다면 이제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말을 하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따뜻함을 많이 느꼈어요.”(짜이)          

 

👉모두의숲이 제안하는 <모두를 위한 재난 대피소> 제안서가 궁금하다면? 

https://bit.ly/guide4_00

 

📝 글ㅣ우디 (데모스X5팀 크루)

소소한 주변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활동가

📷 사진 | 데모스X5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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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모든 재난은 약자들에게 더 큰 재난으로 다가가는군요. 대피소라는 공간을 특정해 이야기를 해 주셔서 더욱 와닿게 되었습니다.
'모두의숲'의 <모두를 위한 재난 대피소> 제안은 흥미로운 시도인 것 같아요! 정독하겠습니다!
직접 마주하지 못하면 알지 못했던 지점을 적어주셔서 감사해요. 재난이라는 특성상 모든 사람들이 기존의 삶으로 돌아가기 쉽지 않고,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을텐데 지금 이 순간 어디까지 우리가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겠네요.

네트워크파티 토크쇼에서 "대피소에서는 영유아 가족, 집 임차인을 볼 수 없다"는 말씀이 계속 기억에 남더라고요. 대피소가 재난 피해자 '모두'의 공간이 될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모두의 숲'을 응원합니다!

재난으로 인해 살아왔던 터전이 사라져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계속 살아갈 장소와 방법이 있어야 하는데,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그 사실을 금방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세입자들에게 지급되는 보상금으로는 마땅히 새로운 살 곳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참 마음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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