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백래시의 시간, '존버'하는 우리를 위해

2023.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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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주도하고 시민이 확산하는 우리 사회 성평등 문화를 만듭니다.


2016년에 강남역 살인사건, 2018년 미투 공론화, 2020년 N번방, 그리고 작년 여성가족부 폐지 논의까지 우리는 수많은 백래시를 목격하고 경험해왔습니다. 여성가족부의 성평등 사업으로 4년째 이어왔던 버터나이크 크루 역시 작년 여름 일방적인 통보로 하루아침에 활동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를 경험했죠.

하지만 버터나이프 크루 참여팀들과 협력 파트너인 빠띠는 사업 중단 이후에도 ‘그럼에도 우리는’이라는 이름으로 성평등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그 의미를 돌아보며 백래시의 시대에 멈추지 않고 우리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서로의 경험을 꺼내고 연결되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초청 패널과, 프로젝트 참여 크루와, 시민들이 백래시를 주제로 함께 꺼낸 경험과 대안의 목소리는 어떤 것들이었을까요? 

*이 글은 지난 1월 진행한 ‘2023 그럼에도 우리는 성평등페스타 - 우리는 멈추지 않아’ 토크콘서트의 내용을 요약해 정리한 글 입니다.



Q.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윤가현
: 안녕하세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윤가현이라고 합니다. 아르바이트 노동조합에서 저랑 이름이 같은 가현이들을 만나 여성의 아르바이트 노동과 최저임금 1만원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가현이들>, 그리고 2016년 강남역 사건 이후 만든 ‘불꽃페미액션’이라는 페미니스트 단체를 4년 동안 기록한 <바운더리>라는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이슬기 : 안녕하세요. 저는 백래시가 가장 극심했던 작년과 재작년 서울신문에서 젠더 담당 기자로 일했던 이슬기라고 합니다. ‘일했던’이라고 말씀드리는 이유는 제가 지난달에 퇴직을 했거든요. ‘전' 기자라는 타이틀로나마 이 자리에 함께 하게 되어 반갑습니다.


 

나임윤경 : 저도 반갑습니다. 저는 사실 오늘 여기 도착해서 ‘내가 잘 온 건가’ 살짝 생각했어요. 일단 패널 평균 연령을 좀 많이 높여놓은 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나잇값을 좀 해야 될 텐데 어떤 얘기를 해야 나이 값을 할까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수달 : 저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담롱’이라는 팀에서 함께하고 있는 수달이라고 합니다. 담롱은 ‘서로가 서로의 편이 될 수 있도록’이라는 슬로건으로 소수자 의제를 다루는 인터뷰 영상들을 만들고 있어요. 이번 <그럼에도 우리는> 활동에서도 지역 커뮤니티를 찾아가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Q. 여는 질문으로, 각자 생각하는 '백래시는 OOO다'라는 짧은 한 마디를 부탁드릴게요!


수달
: 저희 팀원들한테 한번 물어봤어요. “애들아 백래시가 뭘까?” 하나로 모인 답변은 “정.말. 싫.다."였어요(웃음). 맞지 않을까요? 저희가 이렇게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단어로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당연히 너무 지긋지긋하다, 너무 싫다, 너무 짜증 난다,라는 의미였다고 해석해봅니다. 또 한 가지 기억에 남는 답변은, “페미니스트가 페미니스트로 살아가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 못하게 하는 것"이라는 말. 스스로를 주저하게 하고, 서로 연결되지 못 하게 하는 것이라고 들렸고, 되게 공감이 됐어요.

윤가현 : 저는 ‘우리가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일련의 사건들을 우리가 백래시라고 불러줄 수 있는 이유도 운동의 주체인 우리가 있기 때문이고, 저는 노동 운동이든 페미니즘 운동이든 운동이라는 건 파도와 같아서 어떤 ‘벽’에 부딪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무척 견고하지만, 또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백래시의 주체들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가 또 굉장히 노골적인 인간들이잖아요. ‘너네가 뭔데 갑자기?’라거나, ‘왜 너 뭐 돼?’라고 생각할 만한.



이슬기
 : 방금 감독님 얘기 들으면서 백래시를 숨 쉬듯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시는 것에 저는 어떤 감탄(?)이 들었어요. 저는 기자 생활 10년 했는데 저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직접적인 역풍 혹은 공격을 받는다는 느낌을 백래시 기간에 처음 느꼈거든요. 사실은 저도 의연한 마음으로 백래시를 맞이하고 싶지만, 제게 지난 2년간 백래시는 집요하고 조직적인 공격에 가까운 무언가라고 느꼈어요. 그전에는 오히려 저는 좀 백래시에 대해 ‘성차별적인 구조를 계속 유지하고 싶어 하는 이들의 관성’ 정도로 치부했거든요. 사건 사고의 피해자분들을 숱하게 보면서도 ‘그럼에도 내 일'이라는 생각을 크게 못했는데, (여가부 관련 사건들과) 유독 깊이 붙어있으면서 힘든 시절을 보낸 것 같습니다.

나임윤경 :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가 공공기관에서 잠깐 일을 했는데요. 거기서 ‘잠재적 가해자의 시민적 의무’라고 하는 제목의 굉장히 좋은(!) 영상을 만든 적이 있어요. 그게 이슈가 돼서 국회의원과 변호사들이 달라붙어서 명예훼손이라고 욕하는 일도 있었는데, 그런 과정을 느끼면서 들었던 생각은 백래시라는 게 되게 “최근 일인 것처럼 이슈가 되지만 옛날부터 했던 문제제기들을 한결같이 외면하고 있다가, 페미니스트 영향력이 확대되니까 화들짝 놀라고 있는 현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Q. 각자의 자리에서 느낀 경험들이 다른 듯 비슷한 게 인상적이네요. 백래시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 혹은 어려움은 뭘까요?

 
나임윤경 : 사실 저는 오늘 여기 앉아계신 분들하고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 중에 하나가, 페미니즘의 언어가 조금 어렵지 않나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여기 앉아 계신 분께 마이크를 넘겨서 “구조적 성차별이 뭐예요?”라고 설명을 부탁드리면, 느낌으로는 아는데 실체가 무엇인지, 성차별을 당한 당사자들은 감각적으로 그걸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모르거든요. 백래시는 그 이해를 잘못하면서 너무 겁을 먹고 혹은 겁 먹은 척하고 일어나는 현상이 아닐까 싶어요. 저는 제 직업상 좀 더 설득적인 언어를 개발해내고 대중적으로 유포하는 일에 백래시를 해체하는 작업을 지금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달 : 바로 그 겁 먹은 분들 이야기를 좀 더 해볼게요. 저희 담롱 팀에서도 페미니즘이나 여성노동 같은 주제로 영상을 올리면 여전히 좌표가 찍히고 악플이 달려요. 좌표 찍는 방법도 악의적이에요. 영상을 캡쳐해서 저희 메시지는 쏙 빼고 입맛대로 편집을 해서 그걸 이미지로 이어붙인 다음에 커뮤니티 등지에 뿌리면 그분들이 찾아오셔서 이제 열심히 댓글을 달아요.

이슬기 : 수달 님 말씀과 저도 조금 비슷한데, 개인적으로는 기자로서 악플에 되게 초연한 편이거든요. 근데 저희 부모님이 초연하지 않아서, 요새도 대댓글을 많이 달고 계세요. 이 기자 나쁜 사람 아니라고(웃음). 저희 부모님은 진짜로 상처를 받으셔서, 그때 정말 이런 식의 공격이 정말 효과가 있구나, 라는 생각이 좀 들었어요.
 

수달 : ‘페미니즘 정치' 관련한 인터뷰 영상을 만든 적이 있는데, 그런 걸 올리면 진짜 페미니즘 정치에 관심 있는 분들이 올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세상에, 좌표 찍어 욕하는 분들이 사서 검색을 해서 들어오시더라고요. ‘페미니즘 정책’이라는 키워드 영상에 남성 시청자의 비율이 70%인데, 유입 경로나 검색 키워드를 보면 대부분이 ‘페미니즘 참교육’ ‘페미' 이런 것들이에요. 다양한 검색어를 조합해서 굳이굳이 찾아오여서 굳이굳이 댓글을 남기시더라고요.

이슬기 : 비슷하게, 여성 페미니스트 인터뷰를 기사화했을 때 착한 반응들을 찾아보기가 어렵거든요. 그건 그냥 인터뷰이에게 몹쓸 짓이 아닌가. 제가 오히려 대놓고 욕 먹을 판만 만들어주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어요. 실제로 그런 악플을 받고 저한테 댓글창을 내려달라고 해 주셨던 분도 계셨고요. 제가 받는 아픔에는 스스로 조금 이제 조금 익숙해졌다면, 익숙하지 않은 분이 그런 일을 겪는 것을 제가 보호할 수 없고, 그분의 행보에도 타격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런 데서 오는 주저함이 있죠. 요청을 주저하거나, 저도 모르게 “그럼 익명으로 하실래요?”하기도 하죠. 익명 인터뷰는 힘이 없는 걸 아는데도. 자꾸 이런 식으로 제가 작아지는 그 모습이 백래시의 효과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느 정도 현실과 타협을 해 가야 되니까 그런 면이 좀 힘들었던 것 같아요. 

윤가현 : <바운더리>라는 영화 편집할 때 한창 편집이 너무 하기 싫어서 여초 카페를 들락거린 적이 있거든요. 거기 익명 게시판에 어떤 여자가 둘이서 얼굴도 모르고 닉네임도 모르는데 만나서 동반 자살을 하려다 실패했다라는 기사가 나가고, 카페가 완전 난리가 난 거예요. 그 익명 게시판을 닫아야 된다, 자살이나 죽고 싶다라는 단어 금지화시켜야 된다 등등 되게 많은 논의가 오가고 혼란스러운 와중에 제가 들었던 고민은, ‘너무 많이 죽는다.’ 20대 여성이 너무 많이 자살을 한다는 거였어요. 여성들이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죽기까지 하는 것, 그게 저한테는 가장 두려운 일이었던 것 같아요. 여전히 정책이 나아진다고 그 여성들이 죽는 걸 붙잡을 있을까, 그런 고민들은 있습니다.


Q. 가볍지 않지만 비관적이지도 않은, 대안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보면 어떨까 싶어요. 백래시의 범람 속에서도 성평등 활동이 계속 연결되기 위해서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이슬기
: 앞서 기사나 영상에 선플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했는데, 또 없지는 않아요. 이전에 어디 강연을 갔다가 마치고 나오는데 어떤 분이, “기자님 기사 잘 보고 있다”라고 하시면서 “근데 댓글이 엉망진창이던데 거기에 힘을 못 보태드려서 죄송하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좀 많이 놀랐어요. 저도 짠하고 서로 짠한데, 한편으로 그런 기운들이 이 백래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윤가현 : 저는 가끔 지역에 가서 영화 상영을 하는데, 할아버지나 할머니 분들이 무료상영이라고 하니까 무조건 와서 보시거든요. 근데 이 영화에는 막 찌찌도 나오고, 여자들끼리 손 잡고 행진하고 이러는데 보시다가 이거 뭐야 소리지르고 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 되게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놀랐던 건, 솔직함들이 좋은 기억으로 남기도 한다는 거였어요. 페미니스트랑 동성애랑 무슨 상관이냐 이런 되게 정직한 질문을 해 주시기도 하고, 예전부터 여성들이 어렵고 힘들게 살아오고 있다는 걸 나누기도 하고, 이런 시간 속에서 저도 약간 페미니스트로서 편견 없는 마음을 좀 가져야겠다 생각을 했어요. 꺾이지 않는 마음을 좀 더 가져갈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스스로…


수달 : 페미니스트 커뮤니티나 성평등 활동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저희 지역에 내려가서도 많이 드렸거든요. 청주, 대구, 지리산에서 받은 대답들을 모아봤는데, 놀랍게도 대답들이 너무 비슷한 거예요. ‘할 수 있을 때, 내가 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그리고 우리는 우정으로 뭉치는 게 즐거운 공동체’라는 것. 때로는 여가부 폐지 반대나 여성혐오 반대 시위에도 나가고, 때론 지역사회의 성폭력 문제에 대한 공동체적 해결방안도 고민하다가, 또 어떤 때는 망한 섹스썰 파티를 하고, 내 최애가 얼마나 빠는지 얘기를 하고, 연말 파티를 하고, 잔디밭에서 보물 찾기를 하고, 그런다는 거예요. 그런 일상화된 활동이 늘 같이 가는 게 지치지 않고 즐거울 수 있는 마음인 것 같아요. 힘든 얘기만 할 게 아니라 즐거운 일도 하고 우리 안에 있는 어떤 길티 플레져도 꺼내서 한번 얘기해보고 우리에게 너무 엄격하지 않고 그래야겠다!는 생각.

윤가현 : 한 가지, 그냥 아무것도 안 해도 되니까 그냥 그 마음만으로도 관심만으로도 저는 운동이 된다고 생각해요. 내가 페미니스트로서 뭘 해야지 막 이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지금은 좀 쉬어도 되고 언제든 돌아와도 괜찮으니, 강박으로 함께 하지 않아도 좋겠다는 말씀 드리고 싶었어요.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이슬기 : 저도 좀 비슷한데, 페미니스트로 살면서는 약간 성공은 좀 작게 느껴지고 실패만 크게 와 닿을 때가 많은 것 같아요. 예를 들면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에 많이 좋아진 줄 알았는데 신당역 사건을 겪었을 때의 어떤 처참함. 엄청난 실패인 건 맞지만, 그 사이에 저희가 조금씩 이루어 온 것들이 있거든요. 버터나이프크루 보면서도 같은 마음이에요. 제가 여가부 출입할 때 버나크에 대해서 기사를 많이 썼고 계속해서 마음이 동화되어 아픈 것들이 많았는데, 이번에 보니까 17개 팀 중에서 13개 팀이 꾸준히 이어왔다는 것, ‘중꺾마'가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이 첫 번째 마음이고요. 두 번째는 페미니스트는 자기 자신한테 좀 후했으면 좋겠어요. 성공을 열심히 자세히 바라봐주는 일도 하셨으면 좋겠다. 그건 이제 저한테도 같이 드리는 말씀입니다.


청중과의 일문일답.


Q. (나임윤경 교수님께) 좀 더 설득적인 언어에 대해 고민하고 계신다고 하셨는데 가장 다듬기 어렵다 싶은 개념이나 표현이 있는지?

나임윤경 : 저의 요즘 강의 기법은 제가 절대 말하지 않는다는 거거든요. 지지난 학기에 가족과 젠더라는 수업을 했었는데, 그때 <가족의 탄생>이라는 영화를 소개했어요. 봉태규 씨하고 정유미 씨가 썸타는 장면인데, 정말 썸 타는 장면인데 제가 거기서 성적 억압과 통제라는 개념을 끄집어내기를 바랐어요. 왜 저 사람은 저런 질문을 하고, 저 사람은 저런 대답을 할까, 그냥 볼 때는 보다가 제가 질문을 계속하니까 그 영상들이 달리 보이는 거죠. 모든 사람은 단순히 썸 타고 연애하는 거지만, 그거 알아보는데 90분이 걸렸어요. 굉장히 어렵지만, 이렇게 해야겠구나 라고 생각하는 경험이었어요.

Q. (수달 님께) 버터나이프크 참여 크로로서 느꼈을 막막함이 크셨을 것 같은데, 사업 중단 소식을 듣고 당사자로서 어떤 마음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수달 : 제일 큰 마음은, 황당했죠. 왜 황당했냐면 여당 원내대표가 페이스북에 글을 써요. 그리고 그다음 날 사업이 없어진대요. 그게 하루 사이에 일어난 것도 너무 황당한 일이지만 저희로서는 그 일이 있기 며칠 전에 발대식을 했거든요. 여가부 장관이 와서 잘 해보라 축사까지 하고, 저희도 처음 만나서 네트워킹 파티도 하고 한바탕 킥오프를 했는데, 이럴 거면 발대식에 장관은 왜 왔나, 그 자리에 무슨 자리인지는 알고 왔나 이런 생각도 들고요.

취재 요청이 오고 어쩌다 어떻게 됐냐 물어보시는데 저희도 경황이 없고, 입장도 정리해야 되고. 근데 우리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기 전에 입장을 정리해야 되고, 상식적이지 못한 건 저쪽인데 왜 우리가 피곤한 건지 하는 생각을 좀 했던 것 같아요.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인, 다른 팀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좀 걱정되는 면도 있었고요. 아예 못 하게 되려나, 하는 생각도 했죠. 그런데 저는 불안과 분노도 물론 있지만, 버터나이프크루가 엎어졌지만, 우리가 우리 프로젝트는 엎지 않고 결국에는 새로운 이름으로 마무리했다는 걸 꼭 기억해주시면 어떨까 합니다. 

Q. (윤가현 감독님께) 바운더리라는 작품에서 선 받는 행동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 깊었고 그게 강력하게 선을 넘으면 그만큼 강력한 백래시를 경험할 거라 생각하는데, 두려움으로 다가온 적이 없었는지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윤가현 : 제 영화에 그런 장면이 있어요. 그러니까 저희가 월경페스티벌에서 가슴을 까고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거든요. 그런데 페이스북이 음란물로 규정하고 막무가내로 내렸어요. 열 받아서 페이스북 코리아 앞에서 그냥 가슴을 까버리는 그런 활동을 하고 제가 그 현장에서 촬영을 했었어요. 그때 제 친구가 그랬어요. “큰일 났다. 다 잡혀가면 알바를 못 가.” 그런 종류의 두려움도 있었고, 또 하나는 집에서 가족들과 밥을 먹는데 그 뉴스가 나오는 거예요. 남이 나한테 욕을 한다거나 모르는 사람 댓글로 욕을 하는 건 별 상관없는데, 모자이크가 쳐진 뉴스 장면을 아빠와 남동생과 함께 보며 밥을 먹는다 이런 건 상상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저도 두려움이 많고, 마음 속으로 어쩌라고를 말하는 연습을 하거든요. 마음속으로 누가 뭐라고 얘기하면 어쩌라고요 이렇게 대답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연습도 되게 많이 하고 그래요. 사실 두려움이 없진 않죠. 저희도 다 똑같이 두렵죠.


Q. 마지막으로 간단한 소감 한 마디 부탁드려요.



이슬기 : 오늘 이 행사에 전 기자라는 타이틀로나마 참여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고요. 혹시나 오해하실까 봐 말씀드리자면 저는 백래시로 인해서 퇴사한 것은 아니에요(웃음). 근데 이제 일반지 호흡이 아닌 좀 다른 플랫폼으로 페미니즘 활동을 하고 싶다라는 마음으로 퇴사하게 됐고 앞으로 활동도 많이 기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반가웠습니다.

나임윤경 : 사실 여성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한국 사회 같은 곳에서는 늘 성차별 성폭력의 문제가 내가 겪지 않아도 내가 겪은 것만큼 힘들고 참 어렵죠. 그런데 우리 아까 다 모두 어려움을 얘기를 했지만, 차별받는 사람들의 힘은 차별 없는 세상에 대해서 무한히 꿈꾸는 거잖아요. 정말 차별 없고 폭력 없는 세상에 대한 상상력을 마음껏 키우고 정말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힘을 바로 피해자인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있잖아요. 그 사실을 기억하면서 피해자 정체성에 자신을 가두지 말고, 물론 분노하고 슬퍼하고 노여워하되 그 상상력을 계속 서로에게 독려하면서 정말 정말 더 나은 삶을 페미니스트 우리가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오늘 이 공간을 나가셨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윤가현 : 스스로의 멘탈 관리도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가끔 저는 스스로 나 페미니스트인데 이래도 될까라는 말을 진짜 많이 하거든요. 그냥 그렇게 살기로 했어요. 저 같이 페미니스트도도 있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들도 조금 덜 두렵게 사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데, 여러분들도 그냥 좀 자신 있게 사셨으면 좋겠어요. 그게 우리가 오래 갈 수 있는 힘인 것 같아요.

수달 : 담롱이 이번 프로젝트에서 만든 영상 시리즈의 이름이 ‘여기선 안 된다 말했지만’이에요. 여기선 안 된다 말했지만 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 만든 영상이고, 그게 오늘부터 순차적으로 공개됩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하는 얘기보다 훨씬 좋은 이야기를 지역에서 실천하고 계신 분들의 입으로 들을 수 있으니, 꼭 많은 관심 가져주세요. 저희 담롱도 지역을 왔다갔다하는 게 고되지만, 사실 사이드 프로젝트거든요. 내가 왜 무슨 부귀영화들을 누리려고 이런 걸 하나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그냥 이게 다 재밌게 살려고 하는 짓이다,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해요. 재밌게 같이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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