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방사능 오염수 대응을 IAEA 보고서에 근거할 수 있나?

2023.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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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운동단체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는 과학적 사고와 합리성이 한국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 및 문화 활동을 전개하고 시민사회와 연대하여 한국사회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설계하는 일에 동참합니다.

예측은 단지 미래를 전망하는 차원을 넘어 미래를 통제하는 문제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어느 것도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너무나 복잡하여 우리의 제한된 지적 능력으로는 완전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희망은 우리가 불확실성을 알고 있다는 데 있다. 불확실성을 없애려고 치열하게 오류를 줄이려 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출과 관련하여 정부는 국제원자력기구(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IAEA) 보고서에 근거해 오염수가 과학적으로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IAEA가 에너지와 관련해 과학적으로 권위 있는 기관은 분명 맞다. 그렇다고 해서 IAEA 보고서의 오염수 예측을 그대로 확신해도 될까?  

IAEA의 소위 자매기관인 국제에너지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 IEA)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 에너지 전망(World Energy outlook, WEO)은 에너지 분야에서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 자료는 정책 입안자와 투자자가 이를 기반으로 정책과 투자를 결정하는 데 사용된다.

그런데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2021년 기사에서 IEA가 재생에너지 예측을 늘 과소평가한다고 했다. IEA는 2021년 5월 풍력과 태양광의 전 세계 성장률 전망치를 6개월 전에 발표한 수치에 비해 25% 더 상향 조정했다. 2021년뿐 아니라 IEA는 지난 10년 동안 풍력과 태양광에 대한 예측을 반복적으로 상향 조정해 왔다. 즉, IEA는 전 세계가 재생 에너지 전환하는 속도를 늘 과소평가해 왔다.

WEO 2010은 2024년까지 태양광 발전 용량이 180GW가 설치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2015년 1월 이 목표에 도달했다. 2010년에 설치된 풍력 발전 용량은 WEO 2002와 2004의 전망치를 각각 260%와 104%를 넘었다. 2030년 풍력 에너지에 대한 WEO 2002 전망치는 2010년에 초과 달성되었다.

블룸버그 뉴 에너지 파이낸스(BloombergNEF)나 시티(citi)와 같은 다른 분석 기관들은 재생 에너지의 예측이 거의 정확했다. 반면, IEA의 부정확한 예측과 일치하는 결과를 내놓은 기관은 영국국영석유회사(BP), 셸(Shell), 엑손-모빌(Exxon Mobil)과 같은 화석연료 기업이었다. IEA는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화석연료 산업의 입장을 반영해 왔다. 어쩌면 IEA가 미래 에너지 전망에 대해 보수적인 관점을 취하는 것은 최근 급진적인 흐름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일수도 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성장 트렌드에서 볼 수 있듯, 이러한 입장은 혁신 기술의 흐름을 놓칠 수 있다.

전 세계에서 매년 추가된 태양광 용량(빨간색 선)과 2021년 IEA 태양광 업데이트(빨간색 삼각형), 2009~2020년 동안 IEA에서 매년 발표한 향후 20년 동안 매년 태양광 추가 전망.

@ 전 세계에서 매년 추가된 태양광 용량(빨간색 선)과 2021년 IEA 태양광 업데이트(빨간색 삼각형), 2009~2020년 동안 IEA에서 매년 발표한 향후 20년 동안 매년 태양광 추가 전망. 출처: IEA 보고서 자료를 이용한 카본 브리프(Carbon Brief) 분석을 세계경제포럼에서 재인용

산업사회에서 과학자의 의견은 봉건사회의 종교인만큼이나 권위가 있었다. 하지만, 위험사회에서는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 무엇이 얼마나, 어떻게 위험한지를 과학자의 판단에만 맡길 수 없다. IEA 보고서처럼 과학자의 예측결과는 생각보다 객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은 결과의 확실함이 아니라 물질 세상을 이해하는 과정의 합리성을 추구한다. 

인간이 제한 없는 합리성을 가지고 있다면 세상에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우리는 자신의 편향성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사람들은 저마다 이해관계가 다르고, 이 사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생각이 다르다. 이성은 자신의 편향을 합리화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결국,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고자 자료를 선별해서 해석하기도 한다. 당연히 우리 각자의 판단이 절대적인 진실이 될 수 없다.

과학자도 자기 분야 외에선 전문가가 아니긴 매한가지다. 전문가들도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한 걸음만 벗어나면 자신의 전문 분야 권위로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일본 오염수는 그 자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염수 이동, 오염수로 인한 해양 생태계 파괴와 인체에 미치는 영향 등 복잡한 작용을 한다. 이 모든 영역의 통합적인 이해는 개별 전문 영역을 넘어선다. IAEA는 방사능에 관한 전문기관이지만 다른 분야에 관해선 그렇지 않다. 

IAEA는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출과 관련하여 독립적인 조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대응 조치가 적절한지를 판단한다. 그러므로 2022년 11월에 발간한 IAEA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출 4차 보고서의 표지 다음 쪽에 “이 보고서에 포함된 정보의 정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지만, IAEA와 그 회원국은 이 보고서의 사용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결과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라고 했다. 결국 오염수 위험 대응은 각 국가가 스스로 판단할 몫이라는 것이다. 

위험에 대해 합리적인 판단이 이루어지려면, 제한적 합리성을 가진 사람들이 위험을 어느 정도까지 수용할 수 있는지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감수할 위험이 어떤 사람에게는 위험한 도박일 수 있다. 그러므로 위험 대응은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서로 다른 가치와 이해를 가진 시민들 간 논쟁은 불가피하다. 위험에 대한 판단은 어떤 과학적 사실에 어느 정도의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위험에 대한 정부의 의사결정과 전문가의 의견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와 전문가가 위험 담론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 카이스트 전치형 교수는 “우리의 신뢰는 과학지식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생산하는 사람과 조직, 이를 운용하고 감독하는 제도, 이 모든 과정을 뒷받침하고 책임지는 정부를 향한다.”라고 했다. 정부가 시민으로부터 신뢰를 얻는다는 것은 정보가 널리 공유되고 이를 바탕으로 신뢰할 수 있는 의사소통 구조를 만들어 민주적 합의를 이뤄내는 데 있다. 이는 불필요한 불안과 갈등을 줄일 수 있다. 정부는 시민들의 불안감을 괴담이라고 치부할 게 아니라 시민들에게 정부를 믿을 수 있겠다는 신뢰감을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염수에 대한 불안과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증폭된 근거 있는 우려는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소설가 김훈은 “이 사회의 지배적인 언론과 담론들이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고 사실을 의견처럼 말해버린다. 아마 당파성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정의라고, 신념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의견과 사실은 뒤죽박죽이 된다.”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는 각자 의견에 따라 사실이 다른 경우가 많다. 서로 다른 사실에 대해 “내 것이 사실이야.”라고 하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을 수 없어 우리 각자의 의견을 하나로 모을 수 없다. 결국 우리 공동체는 하나가 되지 못하고 각자가 되어 위험에 속수무책인 상황에 빠질 수 있다. 

게다가 정부는 다양한 의견을 민주적 합의에 이르도록 노력하기는커녕 특정 기관의 권위를 빌어 시민을 계몽의 대상으로 삼으려 한다. 힘 있는 사람이나 기관이 ˝이거야말로 확실한 것˝이라고 외치는 큰 목소리를 경계해야 한다. 신념이 확신이 되어 다른 것을 살펴보지 못하게 해 결국 우리 공동체를 위험에 빠지게 할 수 있다.  마크 트웨인은 "우리는 그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인해서 위험에 처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확실성만을 추구해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 확실함은 현실의 복잡함과 모순을 놓치게 한다. 인간관계에서도 확실함을 부여잡으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욱 불안해진다. 자신감을 진실로 착각하는 세상에서 확신하지 않는 것은 나약한 태도가 아니라 진정 강인한 태도일 수 있다. 자신을 확신하지 않기에 서로 다른 의견을 듣고 모을 수 있어 위험에 함께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작성자: 조천호 (대기과학자, 전 국립기상과학원장, ESC 회원)  

출처
본 글은 사단법인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에서 제작한 콘텐츠로,  ESC에서 운영 중인 과학기술인 커뮤니티 '숲사이(원문링크) '에 등록된 정보입니다.
ESC: https://www.esckorea.org/
숲사이: https://soopsc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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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31명

"확실성만을 추구해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 확실함은 현실의 복잡함과 모순을 놓치게 한다. "

이 말씀에 매우 공감합니다. 어려운 문제를 쉽고 명쾌하게 이야기하겠다는 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인지 생각하곤 하는 요즘입니다. 

지금의 과학기술이 주는 정의는 지금에 국한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연구방법과 이론들이 나오면서 그 정의는 계속해서 바뀌는 거니까요. 지금의 기술로 방사능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것은 너무 성급하고 위험해 보입니다. 우리 세대 뿐만 아니라 우리 다음세대 모두에게 까지 영향을 미치는 사안을 너무 성급하게 결정한거라 생각이 듭니다.

종은 글 잘 읽었습니다.

"우리의 신뢰는 과학지식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생산하는 사람과 조직, 이를 운용하고 감독하는 제도, 이 모든 과정을 뒷받침하고 책임지는 정부를 향한다"

“이 사회의 지배적인 언론과 담론들이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고 사실을 의견처럼 말해버린다. 아마 당파성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정의라고, 신념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의견과 사실은 뒤죽박죽이 된다.”

동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