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꼬리에 꼬리를 무는 ♾️ 집시법 이야기

2023.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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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소비자 아니고, 선명한 효비자 / 흩어진 나의 조각을 모아 빛나는 선물을 만드는 창작자
(Image by Niek Verlaan from Pixabay)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약칭 집시법과 관련한 이야기를 해보려합니다. 

집시법 개정과 관련한 논쟁은 꽤 오래전부터 이어졌습니다. 집시법 제 10조의 경우, 해가 진 후부터 해가 뜨기 전까지의 옥외집회 및 시위를 금지한다는 법안이 2009년 헌재에서 헌법 불합치 판결을 받았습니다. 2010년 6월 30일이 폐기 시한이었는데요. 2010년 국회에는 끝없는 토론과 마찰 끝에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마무리되었습니다. 개정안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입법공백 상태로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또 다시 집시법 개정 바람이 붑니다. 지난 5월,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서울 도심 1박 2일 집회 이후 대통령은 “불법 집회에 엄정하게 대응할 것”이라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6월부터 대통령실에서 ‘국민참여투표’를 진행했고, 7월에 그 결과를 바탕으로 집시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정치권은 바로 찬반 논쟁으로 달아올랐고, 시민단체들도 우려를 표했습니다.



민노총의 불법 집회로 많은 시민들이 불편과 고통을 겪었다. 민노총은 시민을 위한 공공시설을 무단으로 점거하여 서울시를 무법지대로 만들었다. 경찰이 오후 5시 이후 집회를 허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노숙집회를 이어갔다. 그런데 경찰은 이를 제지하지도 못한 채 지켜봐야만 했다. 공권력이 무력화된 것이다. 공권력이 이렇게 처참하게 붕괴된 것은 지난 문재인 정부의 친시위대 정책이 빚은 참사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유죄가 확정된 범죄자를 연이어 사면시키고 오히려 원칙대로 법을 집행하던 경찰관들에게 불이익을 안겨준 일이 빈번했다. [23.05.26] 공공질서 확립과 국민 권익 보호를 위한 당정협의회 주요내용(보도자료) - 국민의힘


이와 같은 정부의 방침이 헌법이 규정하는 집회·시위의 허가제 금지 원칙에 반할 우려가 현저함은 많은 언론이 지적한 바와 같다. 무엇보다 집시법의 명문에도 반한다. 집시법은 그 어디에도 집회 신고자의 범죄 전력을 조회할 것을 규정하고 있지 않다. 출퇴근 시간대에 관해 일률적으로 집회를 금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도 않다. 집시법 위반이 문제 된 사건에서 대법원은 수차례에 걸쳐 집회에 관한 사전신고제도가 결코 허가제로 변질되어선 안 됨을 강조했다. 지금 정부와 집권 여당이 시도하는 것은 변질된 신고제. 즉, 허가제다. ‘법이 규정하지도 않고 있는’ 행정청의 자의적 기준에 따라 집회의 허용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헌법이 금지하고 있는 허가제의 전형이다. [23.05.25] 처참히 무너지고 있는 것은 공권력이 아니라, 시민의 기본권이다.(논평) - 민주노총


국민의힘은 윤재옥 원내대표가 지난 2020년 6월에 이미 발의한 집시법 개정안을 추진할 방침이다. 야간옥외집회 금지 시간을 종전의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서 ‘오전 0시부터 오전 6시까지’로 바꾸는 방안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위헌적 발상’이라고 못박은 상태라 2010년의 갈등이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 야간옥외집회금지 시간을 일부 제한하든, 집시법 10조를 삭제하든 위헌 결정을 받은 법 조문에 대한 개정은 필요하다. 집회시위의 자유라는 기본권이 걸려있는만큼 여야 모두 치열한 논의 끝에 합의안을 이끌어 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23.05.26] 與 야간옥외집회 금지 개정 예고한 집시법…14년째 위헌 방치 - 서울신문



대통령실에서 진행했다는 국민투표 결과를 찾아봤습니다. 6월 13일부터 7월 3일까지 진행된 투표의 결과는 대통령실 국민제안 누리집에서 아래와 같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간편하게 추천/비추천 버튼을 클릭해서 투표에 참여하는 방식입니다. 추가로 의견을 남기고 싶은 사람은 투표 버튼 아래에 댓글로 의견을 적을 수 있었습니다. 18만 명은 우리나라 인구의 5174만(2021년 기준)의 0.35%의 비율을 차지합니다. 국민참여토론으로서는 많이 아쉬운 참여율입니다. 한사람이 여러 계정으로 중복투표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참여율은 더 낮을 수 있습니다. 참여 방식과 결과를 인용하는 것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 이유입니다.


(대통령실 국민제안 투표 결과 화면 이미지 캡쳐)

대통령실은 26일 '집회·시위 요건 및 제재 강화'를 주제로 한 국민참여토론 결과를 공개했다. 지난달 13일부터 3주간 진행된 온라인 토론 결과 총 18만여 명이 참여해 이 중 71%가 집회·시위 요건 및 제재 강화에 찬성했다. 게시판 댓글 토론에서도 약 13만건 중 약 80%는 과도한 집회·시위 때문에 피해를 본다며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었다. [23.07.26] 국민 70%가 '집시법 개정' 찬성, 이래도 야당은 반대할텐가 (사설) - 매일경제


이번 투표는 사실상 여론 동원전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로 보수 유튜버들 사이에서 이번 국민참여 토론에 동참할 것을 독려한 뒤 ‘추천’ 투표수가 급증하는 양상이 벌어졌고, 각종 에스엔에스(SNS) 단체방에서 조직적 표심 동원 움직임이 포착됐다.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실 소속 행정관들이 직접 나서 ‘투표 독려’ 메시지를 보내면서, 사실상 ‘찬성’ 의견 쪽으로 여론몰이를 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23.07.04] 집회·시위 제재 강화…‘대통령실 국민제안’ 인기투표가 뒷배? - 한겨레



여러 의견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여당은 위 투표 결과를 인용하며 집시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말합니다. 주요 개정 내용은 소음, 교통 체증 등 시민 불편을 줄이기 위해 집회 시간을 제한하는 방향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자정부터 06시 까지 심야 집회를 금지하겠다는 것 입니다. 집시법과 관련한 정치권 논쟁은 수없이 많았지만, 다른 때와 특히 다른 점은 이번엔 경찰청장이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는 것 입니다. 사실 경찰에게 입법에 대한 권리가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소 의아한 그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경찰청은 자체 대응 규정을 수정해서라도 집회 시위 제재를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경찰, '0~6시 집회 금지' 추진‥"헌법상 권리 훼손" 반발 (2023.09.21/뉴스데스크/MBC)



잊을 만 하면 돌아오는 집시법 이슈, 유독 길게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고 있습니다. 집회/시위의 신고 단계에서 제한 사항을 늘리거나, 집회 시위 현장에서 경찰 등 공권력이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범위를 늘리는 등의 개정시도가, 비슷한 내용으로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았음에도 끊임없이 발의됩니다. 개정 추진 사유와 반대 사유 또한 비슷한 내용으로 반복됩니다. 교통 체증, 소음과 관련한 시민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과 기본적으로 보장된 국민의 권리 침해라는 목소리의 대립입니다. 


헌재는 2009년 야간옥외집회금지 위헌제청 사건 심판에서 “주최자가 질서 유지인을 두고 미리 신고한 경우에는 관할 경찰관서장이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도 옥외집회를 허용할 수 있다”는 조항을 문제삼았다. 당시 헌재는 이 문구가 허가제의 형태를 띠고 있고, 헌법은 집회 허가제를 금한다며 이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23.09.22]‘밤샘 집회 전면 금지’ 밝힌 정부…경찰, 사실상 ‘허가제’ 역주행 - 한겨레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과 국민 경제를 인질로 삼고 정치 파업과 불법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의 협박에 절대 굴복하지 않고 단호히 대응하겠다”라고 말했다. 참 희한하다. 최근 들어 대통령이 자주 언급하는 단어 중 하나가 ‘헌법정신’이다. 그 헌법에는 집회의 결사의 자유가 기본적인 권리로 보장되어 있다. [23.07.05] 불법시위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윤석열 대통령. 노동자. 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헌법정신과 법원의 판단에 굴복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랍니다. - 민주노총 논평



입법 시도와 헌법 재판의 반복, 끝나지 않는 찬반 반목 속에 행정·사회적 자원이 소모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도 있어 보입니다. 논쟁이 길어지며 오히려 근본적인 문제해결과 동떨어진 법안 발의가 있기도 했습니다. 여야가 각각 집회 시위가 금지되는 장소 요건에 ‘대통령의 집무실’과 ‘직전 대통령의 사저’를 추가한 일이 그렇습니다. 사실 현/전 대통령의 공간 인근에서 집회 시위를 금지하는 것은 ‘시민의 일상 불편’과 ‘공공질서의 안녕’과는 다소 관련이 적은 요소입니다. 지난 9월 5일에 참여연대에서 발표한 <꼭 2023 정기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과제>에는 이런 부분에 대해 꼬집는 내용도 포함되었습니다. 


집회는 항의대상에게 보일 수 있고, 들릴 수 있는 곳에서 개최가 가능해야 함. 누구보다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대통령의 집무 공간 인근과 더이상 헌법적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 직전 대통령의 사저를 집회 금지 구역에 포함시키는 것은 집회의 자유의 본질적 부분을 침해하며 특정인만을 위한 규제를 신설하는 것으로 평등의 원칙에도 반함. [저지과제1] 집회자유 위한 「집시법」 개정 및 개악 저지 - 참여연대


입법을 위해서는 의회의 가결과 법원의 판단을 통과해야 합니다. 여당의 이번 개정안에 대해 야당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반대하고 있는데요. 최종 입법이 어려운 것을 알면서도 ‘선언적 의미’를 위해 개정안을 발의한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대립의 무한 변주가 계속되는 집시법 논쟁.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댓글로 여러분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캠페인즈에서 진행중인 집시법 개정 토론/투표에도 참여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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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민주주의는 독특하게도 사회운동, 대중운동, 시위가 만들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시위는 민주시민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핵심 방법입니다!

시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하는 합법적인 시위는 민주주의 사회에 필요합니다. 그 외 일방적인이고 폭력적인 집회는 강력한 처벌이 필요합니다.

집회 관련해서는 늘 '시민들에게 불편을 준다'는 프레임으로 건강한 논의가 불가능하게 하네요. 이 또한 조직, 국가를 향하는 '시민'들의 목소리임에도 상대를 자꾸 같은 '시민'으로 말하는 것은 우민화로 기본권을 방해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정부에서 밀리고 밀리는 의제가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집회 시위의 자유가 있는 나라인데, 논의 자체가 진척되지 않는다니 너무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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