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성소수자정치 개론

2022.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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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의 정리

성소수자란 성 정체성(性正體性, sexual identity), 성 지향(性指向, sexual orientation), 신체적 특징이 사회의 다수를 이루는 성별 문화와 다른 사람들을 말한다. 성소수자 정치란 성소수자가 인간관계에서의 권리, 사회적/제도정치적 권력, 경제적 자원을 비-성소수자, 혹은 같은 성소수자끼리 어떻게 분배하느냐의 문제다. 성소수자 정치의 무대는 성소수자가 존재하는 모든 공간이며, 사회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사건이 성다수자를 중심으로 논의된다는 점에서 사회의 모든 주제는 성소수자 정치의 주제가 될 수 있다.


(BBC코리아.2021.06.28.)

성소수자 정치의 목적

성소수자는 주류 성문화와 다르다는 이유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노동, 범죄, 의료, 가정생활 등에 대한 논의를 할 때, 우선적으로 논의되지 못하고, 심한 경우에는 논의의 대상 그 자체가 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성소수자가 현실에서 느끼는 차별/소외감, 무력감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물론, 성소수자가 모든 주제에서 반드시 최우선으로 취급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주류가 아니라는 이유로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은 차별/소외받는 느낌, 무력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판단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다. 성소수자 정치는 다양한 사회적 주제 안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논의를 진행함으로써 성소수자가 현실에서 당면한 차별/소외/무력감을 세상에 알리고 이것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해나갈 것인지 논의하여 그 방안을 찾아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BBC코리아.2022.05.27.)

성소수자 정치의 주체

첫째, 성소수자 정치를 행하기 위해서는 성소수자 스스로 비-성소수자와 다른 성 정체성, 성 지향, 신체적 특징을 가지고 있음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고, 그로 인하여 사회적 논의에서 차별/소외를 받고 있거나 무력감을 느낀다고 인식할 필요가 있다. 비-성소수자와 다른 성 정체성, 성 지향, 신체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 성소수자로서의 특성을 갖고 있다고 해도 비-성소수자 문화 속에서 자신은 차별이나 소외, 무력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성소수자 정치의 주체가 될 수 없다.

둘째, 성행위 방식이나 성행위의 독특함, 성도착증은 성소수자로 분류될 수 없다. 비-성소수자 문화가 중심인 사회에서 성소수자의 성행위는 분명 독특한 것, 특이한 것으로 분류될 수 있다. 하지만 독특하거나 특이한 성행위가 성소수자의 정체성이 될 수는 없다. 자신을 비-성소수자라고 인식하는 사람이 동성과 성행위를 가지는 경험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현실에서 차별감, 소외감, 무력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지배와 복종, 가학과 피학을 중심으로 하는 BDSM은 반드시 성소수자여야만 할 수 있는 성행위가 아니다. 성도착 역시 특정한 성정체성이나 성지향을 가져야만 가능한 성행위가 아니며, 그 대상이 사람이 아닌 경우, 무력, 지적능력의 차이, 권력, 순간적인 돌발상황 등을 이용해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은 성행위를 행하는 것이므로 성소수자 정치의 주체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성소수자 정치는 BDSM, 성도착이나 소아성애 등을 성소수자의 범주 안에 넣으려는 시도를 모두 배격해야 한다. 이는 성소수자가 현실에서 당면한 다양한 문제를 흐리게 만들며, 대부분은 비-성소수자들이 성소수자들의 문화를 약탈하기 위해 행해지는 시도들이기 떄문이다.


성소수자 정치의 입장

성소수자 정치는 비-성소수자를 중심으로 한 주류 성문화와 성소수자, 성소수자 문화의 차이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성소수자(문화)가 비-성소수자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해 의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비-성소수자 문화가 주류이고 권력을 가지고 있는 만큼, 성소수자(문화)가 비-성소수자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로 인해 성소수자 중 일부는 끊임없이 비-성소수자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하여 성소수자와 친밀한 비-성소수자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외모가 훌륭하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성소수자가 많이 나와주어야 한다는 주장, 비-성소수자들이 불편하게 느낄 수 있는 문화/권력의 전복을 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 성소수자들이 비-성소수자 중심 문화에서 고급스럽다거나 상류 문화라고 여기는 행동을 해야한다는 주장 등이 이에 속한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히라츠카 라이쵸(平塚らいてう), 이치카와 후사에(市川房枝) 등 1930~40년대 일본의 자유주의계열 여성주의자들을 예로 들고 싶다. 이들은 여성의 참정권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당시 제국 일본 정부의 정책에 적극적으로 찬동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결국 대동아전쟁에 참여하여 전범이 되었다. 하지만 여성의 참정권은 이들의 노력이 아니라 미국의 강제 주입을 통해 이루어졌다. 결국 이들은 아무 소득도 얻지 못하고 전범만 되고 말았다. 

성소수자(문화)가 비-성소수자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비-성소수자 문화로 인해 차별감, 소외감, 무력감을 받고 있는 성소수자를 차별감, 소외감, 무력감을 가하는 비-성소수자들에게 기생하고 아부하겠다는 것이며, 차별감, 소외감, 무력감의 원인이 되는 권력에 일조하는 것이므로, 지극히 무식하고 굴종적인 태도라 할 것이다.

그러면 성소수자는 비-성소수자를 배격하고 성소수자만의 국가를 세워 비-성소수자와 투쟁해야 하는가? 물론, 비-성소수자 중심 문화 속에서 성소수자들만의 공간을 만드는 것은 잠시라도 차별과 소외, 무력감을 잊을 수 있는 안식처, 피난처를 제공할 수는 있는 것이지만, 이 세상을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얼핏 들어도 불가능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성소수자는 비-성소수자에게 아부할 필요도 없고 그들을 무조건적으로 배격할 필요도 없다. 성소수자를 다수자로 만들고 성소수자 문화를 주류 문화나 상위 문화로 만들어야 할 필요도 없다. 성소수자 정치란 성소수자들과 그 문화가 비-성소수자가 중심이 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노동, 범죄, 의료, 가정생활, 인간관계 등의 다양한 분야 속에서 성소수자들이 차별, 소외,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안을 제공하는 것이다. 비-성소수자에게 굴종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나 그들과 연대, 투쟁하는 것이 특정한 상황 속에서 일시적인 방편이 될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성소수자 정치의 영원한 방법이 될 수는 없다. 성소수자 정치는 성소수자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차별, 소외, 무력감을 받지 않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하고, 그 안에서 시간/공간의 제약에 맞추어 다양한 방략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BBC코리아.2022.01.07.)

성소수자 정치의 실천

하지만 성소수자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다양한 주제와 그에 대한 성소수자들의 논쟁은 한두 가지의 입장을 이용해 성소수자들의 경험을 일반화할 수 없다. 성소수자에 대한 정의부터 커밍아웃에 대한 입장, 성소수자의 제도권 정치화 등에 대해 성소수자 내부에서도 너무나 다양한 생각이 존재할 것이라는 것은 굳이 예시를 찾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다.

비-성소수자 중심의 사회에서 성소수자는 지속적으로 무력감, 소외감,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으며, 성소수자 문화 역시 비-성소수자 문화의 영향을 받아 구성되어 있는 경우도 크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성소수자가 동일한 방식으로, 동일한 정도의 무력감과 소외감, 박탈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폭력을 당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의 성 정체성이나 성 지향을 폭로당하고 괴로움을 받기도 한다. 어떤 이는 비-성소수자 사회 안에서 비-성소수자 문화 안으로 어떻게든 들어감으로써 자신의 공포, 불안을 해소하려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이는 이러한 괴로움 속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비-성소수자 문화가 중심인 사회라는 공통된 억압 속에서 성소수자들은 다양한 차이를 보여준다.

성소수자 정치는 성소수자와 비-성소수자의 차이 뿐 아니라 성소수자 안에서의 차이도 가시화할 필요가 있다. 이런 차이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다각도로 광범위하게 분석하여 그 맥락을 분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성소수자 정치는 성소수자들이 다양한 범위에서 주체성을 가지고 차별받거나 소외받지 않을 권리를 확보하는 것을 중심 과제로 삼아야 한다. 성소수자 안에서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성소수자의 정체성과 소외의 원인은 성정체성과 성지향, 신체적 특징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연령, 성별, 출신지, 거주지, 장애여부, 경제적 계급, 학력, 국적, 인종, 가족제도 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생기는 문제다. 그러므로 성소수자 정치는 사회 전반의 평등의 문제와 함께 논의될 필요가 있다. 사회 전 영역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차별과 폭력에 대하여 그 원인과 해결 방략을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실천하는 것은 그 윤리적 중요성과 더불어 장기적으로 성소수자 정치의 목적을 달성하는 중요한 방안이 된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로 유명을 달리한 희생자 분들을 추모합니다.

이태원 참사의 원인과 대책에 대한 정부/지자체의 설명을 촉구합니다.

댓글

들리지 않던 목소리를 들리게 하고, 배제 된 자들의 몫을 되찾도록 하는 것이 소수자의 정치인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성소수자 관련 정책이나 의제가 더 논의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는데요. 그런 것들을 포괄하는 '정치'가 필요하다는 논의거리를 만난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성소수자 정치에 대해 좀더 이해 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