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할 이슈
더보기오늘의 캠페이너
애증의 정치클럽
4
💰연금개혁 근황 총정리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결렬됐습니다. 500명의 시민이 공론조사에 참여해 개혁안을 골랐지만, 국회는 합의에 이르지 못했어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의 활동은 종료됐고, 공은 22대 국회로 넘어갈 가능성이 큽니다.
연금개혁이 1년 지체될 때마다 국민들의 부담액은 수십조 원 늘어납니다. 그런데도 ‘폭탄 돌리기’만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최대한 간단하게 정리해봤어요.
국민연금은 국가에 보험료를 내고 노후에 연금으로 돌려받는 사회보험제도입니다. 보험료의 일부는 연금으로 지급되고, 나머지는 기금으로 적립됩니다.
⚙️보험료율: 월 소득에서 국민연금 보험료가 차지하는 비율. 보험료율이 높을수록 보험료 금액이 커집니다.
⚙️소득대체율: 연금액이 생애 평균 소득을 대체하는 비율. 소득대체율이 높을 수록 돌려받는 연금액이 커집니다.
현행 국민연금은 보험료율 9%, 소득대체율 40%입니다. 2007년 노무현 정부의 연금 개혁을 마지막으로 바뀌지 않았죠.
이대로라면 1990년생이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2055년에 국민연금은 고갈됩니다.
원인은 저출산과 고령화입니다. 보험료를 낼 인구는 줄어드는데, 연금을 받을 사람은 늘어납니다.
2078년에 지금과 같은 수준의 연금을 받으려면 보험료율을 35%까지 올려야 합니다. 현재 5세 이하인 아이들이 일하는 시기입니다
공론조사 결과 어땠어?
공론조사에서 검토한 안은 2가지입니다. 일명 ‘소득보장론’과 ‘재정안정론’입니다.
1️⃣ 소득보장론: 더 내고 더 받기
보험료율은 13%로 올리되, 소득대체율을 50%까지 올리자는 안입니다.
기금 고갈 시점을 2061년으로 미룹니다. (+6년)
기금 고갈 뒤 미래 세대가 내야 할 보험료율은 43.2%로 현행 안보다 오릅니다.
⭕ 찬성: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려면 연금 가입자들의 소득 안정이 중요하다. 소득대체율이 높아져 연금액이 많아지면 내수도 활성화된다. 소득대체율이 높아져 생기는 구멍은 국가 재정을 투입하면 감당할 수 있다.”
❌ 반대: “기금 소진 후의 미래 세대 부담이 커진다. 높은 소득대체율은 고소득 장기가입자에게 혜택을 준다. 국가 재정은 연금 가입자 전체보다 연금을 덜 받는 사람을 지원하는데 써야 한다.”
2️⃣ 재정안정론: 더 내고 그대로 받기
보험료율은 12%로 올리되, 소득대체율은 40%로 유지하자는 안입니다.
기금 고갈 시점을 2062년으로 미룹니다 (+7년)
기금 고갈 뒤 미래 세대가 내야 할 보험료율은 35.1%로 현행 안과 비슷합니다.
⭕ 찬성: “미래 세대를 위해 안정적인 재정 운영이 중요하다. 노후소득 보장은 기초연금, 퇴직연금을 함께 강화해 해결해야 한다.”
❌ 반대: “국민연금이 낮은 상황에서 기초연금과 퇴직연금을 올리긴 어렵고, 다층 연금제도를 강화하면 민간 연금의 영향력이 커질 우려도 있다. 보험료를 안 내도 세금으로 지원하는 기초연금이 오히려 미래 세대에게 부담이다.”
시민대표단이 선택한 안은 1안입니다. 참여자 56%가 찬성했어요. 조사가 진행될수록 1안으로 의견이 기울었습니다. 미래 세대의 부담이 더 높은데도 불구하고 20대의 찬성율이 높다(53.2%)는 점이 주목할 만 합니다. 그만큼 20대가 노후를 막막하게 생각한다는 의미로 해석됐어요.
한편 공론조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 공론조사 과정이 잘못됐어
숙의 토론이 총선 직후 급하게 이뤄졌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공론조사가 여론과 떨어져 진행되면서 제대로 된 ‘공론화’는 없었다는 겁니다.
토론 자료가 공론조사 막바지에 올라와 충분히 검토되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 팩트체크 제대로 안됐어
시민대표단 참여자는 “양측의 데이터 산정 방식이 너무 달라 결론 도출에 한계가 뚜렷했다”고 말했습니다. 어느 쪽의 데이터가 정확한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토론 자료에도 오류가 있었습니다. 소득안정론 측 자료에 소득대체율을 올리면 저소득층 월 연금이 50만원 오른다고 적혔는데, 실제로는 23만원이 오릅니다.
양측이 반박을 주고받지 못하고 각자의 주장만 나열하는 식으로 진행돼 시민대표단이 혼란스러웠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국회에서는 어떻게 한대?
결론적으로 여야는 합의에 실패했고, 국회 연금특위는 5월 7일 종료됐습니다. 시민단체들은 “정치가 시민을 버렸다”며 분노했습니다.
✅ 연금특위 결과
공론조사 결과에 대해 민주당은 수용, 국민의힘은 수정을 요구했습니다.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인상하는 것에는 여야가 합의했습니다.
소득대체율을 두고 의견 차를 좁히지 못했습니다. 45%가 절충안으로 제안됐지만, 국민의힘이 43%를 언급하면서 합의가 멀어졌어요.
국민의힘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의 숫자만 논할 것이 아니라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 제3의 관점
‘소득보장 VS 재정안정’이라는 구도 자체가 문제라는 주장도 있어요. 두 가지 모두 연금개혁의 목표가 되어야 하기에 한 쪽으로 기울어져 해석되면 안 된다는 겁니다.
KDI에서는 국민연금을 ‘구연금’과 ‘신연금’으로 나누자는 안을 제시했어요. 구연금의 적자는 국고로 지원하고, 신연금(2006년생부터 적용)은 보험료를 낸 만큼만 연금을 받게 하자는 내용입니다. 개혁신당에서 지지하는 안이에요.
공론 과정에서는 청년층을 중심으로 ‘안 내고 안 받으면 안 되겠느냐’는 얘기도 나왔어요. 연금제도에 대한 불신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연금개혁은 윤석열 정부의 3대 개혁 과제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구체적인 안을 제시하지 않았어요.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주 영수회담에서 연금개혁을 22대 국회로 넘기자고 언급했습니다. 다음 국회로 공이 넘어가면 특별위원회 구성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논의가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여야는 보험료율 인상을 두고 공감대를 형성했고, 소득대체율 안도 2%p밖에 차이나지 않습니다. 타협의 여지는 남아있습니다.
진보 진영은 소득보장론, 보수 진영은 재정안정론을 주장해왔지만, 각 진영 내에서 이견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인구구조가 너무 빠르게 바뀌고 있고, 연금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의당이 지난 대선에서 ‘소득대체율 인상 없는 보험료율 인상’을 공약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정치개혁
·
노회찬재단
17
[6411의 목소리] 이곳에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이곳에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2023-10-08)
고현석 | 영어 번역가
번역은 옮김보다는 만듦에 가깝다. 하지만 번역자는 뭔가를 만드는 사람에 대한 대우와는 많이 떨어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H6s픽사베이
번역 일을 처음 시작하고 하루에 꽤 많은 시간을 작업에 할애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당시 매우 어렵게 얻은 일거리를 붙잡고 하루 12시간 넘게 번역에 매달렸다. 그렇게 몇년 동안 일하면서 나름 노하우도 생기고 번역료도 어느 정도 받게 됐지만, 이젠 허리 통증 등 몸이 안 좋아져 장시간 작업하기 힘들다. 초기의 절반쯤이나 일할까.
나는 주로 과학 단행본을 번역한다. 처음에는 긴 호흡의 글과 싸움하는 게 쉽지 않았다. 꽤 오랫동안 신문사와 뉴스통신사에서 일하면서 짧은 글을 쓰는 데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번역은 원저자의 문장을 매우 충실하게 우리말로 옮겨야 하는, 매우 지루한 작업이다. 가끔 원저자가 잘못된 내용을 쓸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원문을 뜯어고치고 싶은 충동이 든다. 약간 고민하다 결국 그대로 우리말로 옮긴 뒤 편집자와 나중에 상의하기로 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다.
광고
늘 마감에 쫓기긴 하지만, 그러면서도 외국어 문장을 우리말로 옮긴다는 것이 애초 가능한 일인지 하는 생각을 쓸데없이 많이 하게 된다. 어떤 날은 어떻게 번역해도 문장들이 죄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Absence of evidence is not evidence of absence.” 내게 번뇌를 일으키게 만드는 전형적인 문장이다. ‘코스모스’의 저자인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한 말로 알려져 있다. 이 영어 문장을 직역에 가까운 “증거의 부재는 부재의 증거가 아니다”라고 옮길 것인지, 조금 풀어서 “증거가 없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고 옮길 것인지 며칠을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풀어서 번역하면 이해는 쉽지만 원저자의 글맛을 살리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이런 고민을 별로 하지 않는다. 몇년 번역 일을 하면서 요령이 생겼거나, 무감각해져서인지도 모르겠다.
광고
광고
하지만 지금까지 이야기한 문제들은 어쩌면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문제일 수 있다. 생계형 번역가인 나에게 가장 큰 문제는 수입, 즉 번역료와 관련된 것일 수밖에 없다. 이제까지 수십권 책을 번역하면서 계약서에 명시된 날짜에 번역료를 받은 경우는 몇번 안 된다. 지급일에 입금을 기다리다 출판사에 연락하면 담당 편집자는 매우 미안해하면서 다음 달 또는 그다음 달에 반드시 지급하겠다고 약속한다. 항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출판사와의 관계에서 을인 처지이기에 다음에 주겠다는 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담당자에게 밉보이면 차후에 내게 일거리를 주지 않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번역 단가 문제도 크다. 내 경우 초보 딱지를 떼고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게 된 몇년 전에 받던 번역료와 지금 받는 번역료가 거의 같다. 심지어 1990년대와 비교해도 거의 같은 수준이다. 번역료 책정에는 물가상승 요인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번역 단가를 올리기 위한 협상은 위험하다. 그러다 계약이 성사되지 않은 경험을 한두번 하며 웬만해선 출판사가 제시하는 단가에 맞추는 것이 결국 이득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광고
가끔 원서를 검토해달라는 의뢰를 받곤 한다. 출판사에서 책이 얼마나 시장성이 있을지 판단하는 데 참고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번역자에게는 계륵 같은 일이다. 책 전체를 읽고 출판사가 원하는 양식대로 정리해야 하므로 원서 검토에 걸리는 시간은 동일 매수의 번역 원고를 작성하는 시간보다 길다. 그럼에도 며칠 시간이 필요한 검토 의뢰를 받아들이는 이유는 검토비 명목으로 주는 10만~20만원보다도 출판이 결정될 경우 자신이 번역을 맡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몇년 동안 번역 일을 하면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은 언제 이 일을 그만두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모든 프리랜서가 그렇듯이 번역가도 일거리가 더는 들어오지 않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면서 산다. 그럴 때마다 이번 책만 마감하고 차분하게 미래를 생각해 보자고 결심하지만, 결국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음 책을 번역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좌절하곤 한다.
“이곳에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단테의 ‘신곡’ 지옥 편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이 문장도 어떤 번역가의 손을 거쳤으리라. 그 번역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오늘의 코멘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