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창업자의 뜻을 지우는, 유한양행 이사진의 위인설관(爲人設官)

2024.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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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입니다

*1편 '유한양행 창업 이야기, 유일한 정신에 대해'와 이어 지는 콘텐츠 입니다.

위인설관(爲人設官) : 사람을 위해 벼슬 자리를 일부러 만듦.

3월 15일 주주총회의 안건, 회장과 부회장직 신설

유한양행은 지난 2월 14일, 주주총회 소집 공고를 냈다. 한 개 안건이 논란이 됐다. 정관 변경 건이었다. 현재 유한양행 정관 33조 2항을 변경한다는 것이다.

출처 : https://dart.fss.or.kr/dsaf001/main.do?rcpNo=20240214002484 

기존 정관 제33조 2항에는 “이사회 결의로 이사 중에서, 사장, 부사장, 전무이사, 상무이사를 선임할 수 있다.”로 되어 있다. 이를 “이사회 결의로서 회장, 부회장, 사장, 부사장, 전무, 상무를 선임할 수 있다.”로 바꾸자는 내용이었다.

회장과 부회장직 신설이었다. 이는 곧 이사회에서 결정만 하면, 회장, 부회장을 선임할 수 있다는 말이다. 28년 전에 없어진 회장직을 다시 살리는 이유에 대해 의문이 제기됐고, 이것이 유한양행을 사유화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됐다. 직전 회장은 연만희 유한양행 고문이었고, 당시엔 정관에 회장・부회장도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28년이 지나서 다시 기한조차 명시되지 않은 회장?부회장직 신설하는 저의에 대한 의문 속에서, 이는 수년 간 착실하게 준비된 된 것이라는 목소리기 나왔다. 그 시작은 2022년, 유일링 고(故)유일한 박사 손녀의 유한재단 이사 퇴출이었다.

쫓겨난 고(故)유일한 박사의 손녀 유일링(유은영), 견제와 균형 붕괴의 초석

고(故)유일한 박사의 유산은 기업 소유와 경영의 분리이자, 견제와 균형 시스템이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기 위해, 고(故)유일한 박사는 1969년 친아들을 유한양행 경영으로부터 손 떼게 했으며, 경영권을 전문경영인에게 넘겼다. 

자식들에게 유한양행 주식을 1주도 남기지 않음으로써 주식을 통한 경영권 소유를 방지했다. 또한, 모든 주식을 교육기금에 기부하며 자식들은 이 기금 관리에만 힘쓰게 했다. 이 기금은 유한재단과 유한학원이며, 그의 자식들은 이곳 경영에만 참여할 수 있다.

유한재단과 유한학원이 유한양행 대주주라는 점에서, 유한재단과 유한학원은 유한양행 결정에 ‘반대표를 행사할 수 있다. 견제와 균형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하는 이유다. 견제와 균형을 위해선 유한재단 이사진의 역할이 중요하다. 의사결정은 그들 몫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2년 1월 유일링 이사는 유한재단 이사로 재선임 되지 않았다. 임기 만료가 이유였다. 당시 유일링 이사를 포함해 4명의 임기가 종료 시점이었지만, 유일링 이사만 재선임되지 않았다

고(故)유일한 박사가 스스로를 기업가가 아닌 교육자라고 말했던 만큼, 유한재단은 유일한 박사의 정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차원에서 그의 유일한 손녀인 유일링 이사가 이사직에 재선임되지 않은 건 당시 큰 논란이었다. 또한, 고(故)유일한 박사의 뜻을 이어야 한다는 면에서 그의 후손이 유한재단에 남아야 한다는 시각이 강했다.

당시 유한재단 이사진들은 “유일링 이사가 미국에 있어서 재단 업무를 보기 어렵다" 고 말했다. 해임된 유한재단의 이시진은 전, 현직 유한양행 관계자로 채워졌다.

출처 : 유한재단 홈페이지 / 빨간색 표시는 유한양행 전, 현직 관계자들이다.

현재 유한재단 이사진 중 유한양행 전・현직 관계자는 5명 이상이다. 조욱제 (현 유한양행 대표이사・사장), 이정희(전 유한양행 대표이사・사장), 송두영(전 유한양행 재무팀 이사), 김성섭(전 유한크로록스 대표이사・사장), 정수길(전 쉬랑프라우 대표이사・사장). 유한크로록스는 유한양행의 가족회사이며, 쉬랑프라우는 유한양행의 합작 회사다.

유한재단 이사진이 전, 현직 유한양행 관계자와 가족회사, 합작회사 인원들로 채워졌다는 면에서 고(故)유일한 박사가 말했던 견제와 균형 시스템은 무너진 것과 진배없다. 유한양행 경영진과 이사회를 견제하기 위해선, 대주주가 견제할 수 있어야 하고, 그 대주주인 유한재단에 유한양행과의 특수 이해관계가 없어야 한다.

공익법인의 설립ㆍ운영에 관한 법률 5조 5항에서는 공익 법인의 현역 이사진 중 특수관계인을 5분의 1 이상 둘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단을 통한 기업 지배 방지를 위해서다. 특수관계인인 유일링 이사가 2022년 축출되고, 유한양행 관계자로 채워졌다. 유한재단의 유한양행 견제 능력에 의문이 드는 이유다.

출처 : 유한대학교 홈페이지 / 유일링 이사의 한문 이름은 유은영이다.

한편, 유일링 이사는 유한학원 이사진에서도 해임될 뻔했다. 2023년의 일이다. 당시, 유한학원 이사진 중 유한공고 이사진들이 막아줘서 가까스로 이사직을 유지한 바 있다. 고(故)유일한 박사 지우기 논란과 이사진의 기업 사유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유한양행 임직원 

“유일한 박사님은 경영과 소유를 분리했고, 사회환원을 말했다.” 

“회장 부회장 직제 신설로, 기업 사유화 안 돼"

주주 소집 공지가 올라온 2월 14일 이후,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서는 유한양행 직원들의 게시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현 경영진들이 유한양행을 사유화하려고 한다는 비판이었다.

직원들은 유한양행 경영진의 비리와 경영 판단 오류, 이정희 전 유한양행 대표이사・사장의 채용 비리와 부하 직원 전 부인과 재혼하는 등 도덕성 문제들을 알리고, 부디 3월 15일 주주총회에서 반대 투표 해 줄 것을 요청했다.

출처 : 블라인드 댓글 중

유한양행 임직원의 평균 근속연수는 12년 8개월이다. 남성은 13년 9개월, 여성은 9년 7개월이다. 이는 국내 제약 바이오사 평균 근속연수가 5.25년인 것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또한, 국내 200대 기업 평균 근속연수인 9.45년보다도 높은 수치다.

근속연수 측면에서 직원들의 애사심이 높다는 걸 추측할 수 있다. 또한, 트럭시위는 전체 임직원 중 6분의 1에 해당하는 300명이 자발적으로 모금해서 이루어진 시위였다. 540만 원가량을 모아서 진행한 시위다. 높은 근속연수의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시위까지 벌인다는 면에서, 유한양행 직원들이 회장・부회장직 신설에 큰 우려를 하고 있고, 큰 사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유한양행 주주총회, 95% 찬성으로 회장・부회장직 신설 통과

3월 15일 열린 주주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는 직접 한국에 방문했다.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는 주주총회에서 "오늘 하고 싶은 말은 할아버지의 뜻과 정신이야말로 회사가 나아가야 할 가이드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모든 건 이를 따라 얼마나 정직하고 거버넌스(지배구조)에 도움이 되는가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의 반대 의사 표명에도 의결권 행사자 68% 중 95%의 찬성으로 모든 안건은 원안대로 통과됐다. 회장, 부회장직이 신설되고, 이사회는 회장과 부회장을 임명할 수 있게 됐다. 회장, 부회장에 누가 임명되느냐가 벌써 주목받고 있다. 이정희와 조욱제 이사 모두 자신들은 “안 한다. 명예를 건다.”고 말했다.

회장을 안 할 거면, 이사회 의장은 왜 계속 하나. 

“이미 경영진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이정희 현 유한양행 이사장은 유한양행 대표이사・사장으로 총 6년 임기를 마치고, 돌연 기타비상무이사로 등재해 3년간 유한양행 이사회 의장 자리를 맡았다. 전문경영인 6년 이후 회사를 떠나는 것이 관행인 가운데 이례적인 모습이었다. 3월 15일 주주총회에서 또다시 3년 연임을 안건으로 올려 통과시켰다. 합계 12년을 이사회 의장 자리에 있는 셈이다.

출처 : 유한양행 홈페이지

이정희 현 유한양행 이사회 의장이 유한양행 대표로 재직하던 시절, 이미 일감 몰아주기와 채용비리가 있었다.

조욱제 현 유한양행 대표이사・사장이 자기 아들을 유한양행 관계사에 취업 압력을 넣었고, 또한, 유한양행 주력 제품 판매 대리점 대표의 아들을 유한양행 2022년 공채에 뽑으라고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이었다.

해당 내용은 국민신문고에 접수되어 드러났지만, 조욱제 대표는 “지시한 바 없다"고 반박한 바 있다. 반면, 압력을 받았다는 A씨는 “조 대표의 압력이 없었다면, 학점 2점대 사람을 뽑지도 않는다.”고 반박했다.

유한양행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업계 관계자는 “유력 병원장이나 정부 관계자 자녀, 기관장 자녀 등이 채용된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며 “대주주인 유한재단이 ‘경영과 소유를 분리한다’는 원칙으로 주주권 행사를 사실상 하지 않는 바람에 경영진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모습에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대표,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 이석연 전 법제처장 등 ‘유한을 사랑하는 시민사회 인사 대표'들은 “유한양행은 국민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아름다운 기업 문화의 상징”이라며 “(유한양행 경영진은) 유일한 박사의 창립 이념과 기업가 정신을 잊지 않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사람을 신뢰한 고(故)유일한 박사

고(故)유일한 박사는 “한 사람을 믿고 영입하면 그 사람과 거의 일생 동안 함께 일할 생각을 가지는 편이었다.” “그래서 창업 시기의 직원들이 20년, 30년 오랫동안 유한양행을 지키는 것을 보게 된다.”* 

이정희 현 유한양행 이사회 의장은 1978년에 유한양행에 입사했고 2015년에 대표이사・사장으로 취임했다. 조욱제 현 유한양행 대표는 1987년에 유한양행에 입사했고, 2021년에  대표이사・사장으로 취임했다. 

이정희 의장은 45년 동안 유한양행에 재직했고, 조욱제 대표는 37년간 재직했다. 모두 신입부터 시작해 전문경영인까지 올라간 사람들이다. 고(故)유일한 박사가 구축했던, 체제의 증인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더더욱 고(故)유일한 박사가 만들고 추구했던 정신을 추구해야 한다. 현재의 의혹들과 경영 행태 어디에 유일한 정신이 있는지 의문스럽다.

고(故)유일한 박사는 “기업의 생명은 신용이다.”** 라고 말했다. 현 이정희 이사회 의장과 조욱제 대표는 직원들에게 신용을 잃었다.

고(故)유일한 박사, “기업의 주인은 누구인가”

우리나라 기업 지배구조의 가장 큰 문제점은 독립성이다. 이사회 독립성은 경영진을 객관적으로 감시 할 수 있는가다. 독립성 없는 지배구조는 한 두 사람이 기업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만든다.

고(故)유일한 박사가 만든 유한양행의 지배구조는 경영과 소유의 분리했고, 견제와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했다. 한두 사람의 결정으로 기업이 움직이고, 사익 추구의 도구로 전락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고(故)유일한 박사가 국내 최초로 종업원주주제를 채택한 것도, 국민에게 시장가의 7분의 1 수준으로 주식 공개를 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기업의 주인은 누구이냐는 물음에, 고(故)유일한 박사의 답변은 “국민과 종업원”이었다. 이 체제를 위해 균형과 견제를 제도화한 것이, 그의 유산이다. 이 유산을 유지를 위해 그에 걸맞은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했고, 그 때문에 자식에게도 그 자리를 물려주지 않은 것이다.

Ⓒ 한량, 서울시 동작구에 위치한 유한양행 본사

그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선 위인설관(爲人設官)이 아니라, 위관택인(爲官擇人)**** 해야 한다. 현재 유한양행 이사진의 행동은 위인설관(爲人設官)이다. 당장 필요도 없는 회장과 부회장직을 추후 필요하니까 만든다는 논리는 오히려 의심만 키울 뿐이다. 오히려 고(故)유일한 박사의 정신을 가장 잘 계승하고, 유한양행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위관택인(爲官擇人) 해야 한다.

고(故)유일한 박사는 유한양행의 로고로 버드나무를 택했다. 일제강점기 일제의 모진 행태에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 끈질기고, 무성하게 대성하기 바란다는 뜻이 담겨있다. 고(故)유일한 박사의 정신이 정말 무성하게 대성했으면 좋겠다.

Ⓒ 한량, 유한대학교 내에 있던 버드나무

* ⟪유일한 평전⟫ (조성기/ 작은씨앗/ 2005) p.237, 289

** ⟪위대한 선각자 유일한⟫ (김윤섭, 최상후/ 유한양행) p.23

*** ⟪유일한을 기억하다⟫ (민석기/ 중앙북스/ 2015) p.44

**** 위관택인(爲官擇人) : 관직을 위하여 인재를 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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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역할이 다시금 조명되는 시기인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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