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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함께 변화’ 집담회 : 우리가 상상하는 더 나은 정치
캠페이너들이 같은 기간동안 동일한 주제로 사회 이슈에 대한 토론을 만드는 ‘함께 프로젝트’ 2월에는 ‘함께 변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는데요, 프로젝트를 정리하며 참여한 캠페이너와 ‘정치’에 관심 있는 시민들이 집담회에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아이스브레이킹 먼저 모두가 마음 속에 품고 오셨을 질문부터 던져보았습니다. 시즌이슈 토의 시리즈 ‘더 나은 정치를 가로막는 걸림돌은?’에 답하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요즘 제왕적 대통령제를 전제로 시스템이 돌아가고 있다고 느낍니다. 투표 선택지에 대부분 동의하지만 제왕적 대통령제가 지금 가장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기보다는, 이를 통한 권력을 제도적으로 이용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바뀌는 과정을 생각했을 때 여론 형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여론이 투표로도 연결되기 때문이죠.” 🤔제가 요즘 고민이 되는 건 극단적 진영 대결입니다. 양당 외의 다른 목소리는 잘 나오지 못 합니다. 극단적 진영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봐도 해결법이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더 나은 정치를 상상하는 질문들 우리가 생각하는 한국 정치를 진단하기 위해, 점수를 매겨보았습니다. 참여자들은 한국의 정치에 어떤 점수를 주었을까요? 여러분이라면 몇 점을 주시겠어요?👀 3.95점 ⭐⭐⭐⭐ "세계적으로 보면 한국이 나쁜 편이 아니예요. 다른 나라를 보면 ‘선거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당선된다' 라는 당연한 절차가 안 지켜지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우리가 여기 모여 정치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잡혀가지는 않으니 그래도 희망적인 점수를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문제점은 많으니 4점 이상은 주고 싶지 않네요." 3점 ⭐⭐⭐ "서구 국가에서도 대통령을 끌어내린 국가는 거의 없습니다. 한국 민주주의는 사회운동 민주주의기도 합니다. 민주화, 노동, 탄핵 등 대중운동과 사회운동이 제도적인 민주주의를 견인해 온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3점을 주고 싶어요. 4점까지 주지 않은 이유는 경제적으로 나아진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치적 민주주의와 운동적 민주주의는 성숙했으나 경제적 민주주의는 택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적인 관점에서 지금 경제는 다 안 좋으니, 우리나라는 그에 비해 대단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운동이 이끌어왔다고 말씀 해주셨는데. 시민운동 측면에서는 지금 최대의 위기라는 생각도 듭니다. 당파성을 너무 많이 띄고 있어서요. 민주정권을 지나면서 시민사회 쪽으로 많이 풀렸고, 정치와 제도 쪽으로 많이 빨려들어가면서 정치와 시민사회의 경계가 많이 모호해졌다고 생각합니다." 2점 ⭐⭐ "제가 영화에 평점을 주는 기준으로 치환하면. 2점은 보다가 꾸벅꾸벅 존 영화입니다. 1점은 돈이 아까운 영화인데요, 한국 정치는 2점을 주고 싶네요. 저는 사람들이 정치 이슈를 보면서 ‘정치가 왜 필요’한지 느낄 수 있을까 회의감이 들곤 합니다. 정치가 내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 실감하기 어려운 게 한국 정치의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나를 이끌어주는 의제가 없다는 측면에서, ‘졸리다'는 평가를 주고 싶습니다." 1점 ⭐ "정권이 바뀌고, 예산이 없어져 일을 잃은 활동가들이 많습니다. 삶이 가난해지고 세금 도둑 소리를 듣기도 하니 정치가 더 가깝고 더 민감하게 느껴집니다. 예전보다도 지금 더 정치에 대해 무기력함을 많이 느끼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비해서는 지금은 정치 점수가 높을 거예요. 그러나 배분의 실패가 계속 누적되어 왔고, 지금은 기후위기라는 새로운 국면에까지 접어들었습니다., 새로운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자원 배분을 생각해야 할 시점에 여전히 폭탄 돌리기만 하고 있고 문제를 회피하고 있는 모습을 보입니다. 정치가 내 삶을 바꾼다기 보다는 정치인들이 내 삶과 유리되어 있다는 생각만 하는 무기력감을 사람들이 느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정치가 모두에게 5점 만점을 받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할까요?🤔 각자 생각하는 해결방안에 대해 이야기 나눴습니다. “행정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행정을 아는 사람들의 목소리'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지금 정치에서 유리되어 있는 계층이라고 해서 이걸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행정을 익히고 시스템을 알면 질문을 던질 수 있고, 공무원들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을 두려워 하고, 그게 변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대선보다 지선, 총선, 지방정치, 주민자치회 등에 관심을 가져서 지역에서 작은 단위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효능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제가 국정감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는데요, 뜯어보면 의미있는 질문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국감 보도를 검색하면 ‘국회의원이 하는 일이 없다’, ‘고성을 질렀다’ 등 자극적인 뉴스만 있습니다. 그런 것만을 부각하는 언론이 정치에 대한 기대를 구체화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저 같은 경우는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사회에는 어려운 지식을 쉽게 만들어서 전파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중간과정은 내용을 효율적으로 전달되도록 합니다. 공론을 위한 지식은 이런 유통체계가 부족합니다. 시민들은 자신과 관련된 의제에서 어떻게 좋은 지식을 접할 수 있을까요? 그건 언론도 한계가 있습니다. 중간 유통자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관심있는 사람들이 좀 덜 관심 있는 사람에게 전파하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사회 전반적으로 기득권 층들이 ‘나 아니면 안돼'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사명감이 있으신 것은 좋지만 ‘나만 할 수 있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죠. 왜 20대가 국회의원을 하면 안 될까요? 왜 20대 국회의원이 국회의 과반수면 안 될까요?”  “캠페인즈 같은 시민들이 질적으로 크게 고민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곳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분노 같은 감정만이 아니라 의견을 표출하고 얘기 나눌 수 있는 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회고 “아까 우리가 매긴 한국 정치 점수의 평균이 2.66점이더라고요. 평균을 넘어섰으니 희망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 화이팅!“ “정치에 대한 얘기는 지인들이랑만 하게 됩니다. 나이가 들수록 지인이 좁아지는데요, 싸우지 않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만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오기 전에는 뭘 이야기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습니다. 주제와 질문을 던져주시고 고민할 수 있는 시간도 주셔서 잘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웃으면서 정치얘기 했던 게 언제였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방식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더 많아져야 한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내가 가진 정치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대통령에 대한 충격으로 시작한 정치에 대한 관심이 정당으로 옮겨갔다가, 이제는 현실로 옮겨가게 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잘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각 분야에서 활동하다 오신 분들의 얘기를 들어서 좋았습니다. 저 업계, 저 현장에 있으면 저런 게 보이는구나 하는 걸 느꼈습니다. 특히 학계, 시민운동, 지역운동 얘기가 흥미로웠어요. 현장을 더 많이 겪고 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대화의 장이 끊이지 않고, 함께 모여 이야기 나누는 행동이 더 중요해진 시기입니다.  디지털 시민광장 캠페인즈는 항상 시민 여러분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 더 노력하겠습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 하고는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지? (2)
*Active Research Journal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에 대해 이야기하는 뉴스레터 입니다. 연구탐사대에서 매주 발행하는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싶으시다면 이 링크 를 클릭하세요. 지난 글(🚀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 하고는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지? (1) )에서 이어집니다. 2. 솔루션 공론장의 부재 : 사회문제는 너무 크고 어려운데, 함께 이야기할 공간과 사람이 너무 적다 전체 문제 해결 프로세스를 도식화해보았을 때 사회문제에 대한 연구는 ‘문제확인’에서부터 원인분석과 대안도출까지 이어지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렇게 도출된 대안들은 과거에는 정부와 국회에서 안건들이 논의되면서 법안이 통과되고 정책이 수립되는 방식으로 집행되고 문제를 해결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들이 공론장에서 주로 논의해왔던 것은 무엇이 사회문제인지를 발굴하고 드러내고 ‘의제(Agenda)화’하는 것과, 기존에 진행되고 있는 정부의 정책들에 대한 감시와 평가였습니다. 그것이 곧 언론의 역할이기도 했죠.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사회문제는 갈수록 복잡다양해지면서 정부 주도로 사회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없는 상황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사회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문제를 둘러싼 여러 이해관계자들과 플레이어들이 함께 입체적으로 사회문제를 바라보고 대안을 고민하는 공론장이 필요해진 것이죠. 하지만 현재의 공론장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문제제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여전히 ‘솔루션’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는 무르익지 않은 상황입니다. “다시 한번 혼란스러운 감정이 밀려왔다. 내가 A와 인터뷰하고 기사를 쓴다고 해서 A의 송두리째 무너진 일상이 회복될 수 있을까? 나는 혹시 공익적인 기사를 쓴다는 명분을 내밀어 나와 A를 동시에 속이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텔레그램 N번방에 있었다>, 오연서 한겨레 기자 기고문 중, 2020년 4월 17일자 Esquire 2020년 사회를 분노케했던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심층 취재했던 한겨레의 오연서 기자님은 취재 과정 내내 위와 같은 질문들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이는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공론화하고 그에 대해서 정부가 관심을 가지고 움직이게 하는 것은 언론과 공론장의 역할일 수 있지만, 문제제기와 함께 정부의 행동을 촉구하는, 더 나아가 문제 해결의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지는 상황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취재가 더 이상 불가능해진 탓이 큽니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문제를 공론화하는 취재행위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지조차 확신이 서지 않는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모르는 (Unknown Unknowns)’ 상황 앞에 서게 된 것이죠. 이 상황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문제의 본질과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 있는 ‘연구’일 것입니다. 하지만 보이는 것처럼 그 연구조차도 어떤 영웅 같은 연구자가 나타나서 사회문제를 명쾌히 정의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까지 제시할 수 있는 환경이 더 이상 아닙니다. 이 지난한 사회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여러 배경을 가지고 있는 연구자들이 여러 관점에서 문제를 진단해야 하고, 동시에 이론과 현장의 목소리가 함께 공명하면서 문제의 실체와 대안에 대해 접근해들어가야 합니다. 거기에 기존 사례와 대안에 대한 실험과 케이스에 대한 논의가 있을 수 있다면 더욱 좋겠죠. 하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그러한 ‘솔루션 공론장’은 한국 사회에 거의 전무하다고 이야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우리는 자연스럽게 사회문제 해결의 주체를 ‘정부’ 혹은 ‘국회’로 생각해왔고, 특정 전문가들이 대신 사회의 문제를 해결해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점차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진심’인 시민들이 생겨나고 있고, 이들이 각자의 역할과 전문성을 가지고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활동들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활동들을 촉진시키고 활동하는 이들을 서로 연결시키면서 ‘협업’을 통해 사회문제를 함께 해결해나갈 수 있는 공동체 혹은 공론장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입니다. 3. 자원의 제약 : 이 연구 계속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기존의 문제를 새롭게 개념화한 것이든, 새로운 방법론이든, 혹은 발견해낸 새로운 분야 자체든, 그 어떤 새로운 아이디어를 완벽히 숙지하고, 하나의 가설로 뽑아내고, 이를 경험적으로 증명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양의 시간과, 인지적 투입물, 그리고 연구자원들이 필요합니다.“ - George Stigler, 198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 연설 중 마지막으로 연구자들이 마주하는 막막함은 ‘자원의 제약’입니다. 연구를 하려고 하더라도 연구를 할 수 있는 자원이 부족해지면서 연구를 끝까지 해내는 것이 어려워지는 것이죠. 위 설문조사는 2021년 인문사회계열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연구탐사대에서 100여명의 연구자들에게 조사한 설문의 일부입니다. 다른 영역보다 ‘진로 및 생계를 위해 하고자 하는 연구를 하기 어려움’이라는 부분의 초록색 막대가 하늘을 솟구치는(…) 것을 보실 수가 있으실 거에요. 모두가 아시는 것처럼 설령 전업연구자라고 하더라도 ‘해야 하는 연구’와 ‘하고자 하는 연구’가 구분되고, 전자를 우선시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기도 합니다. 특히나 우리가 하고자 하는 연구의 주제가 ‘사회문제’라는 것 또한 그 자체로서 가지는 한계가 존재합니다. 결국 ‘개인’의 문제 혹은 나의 업과 직결되어 있는 문제가 아니라, 말 그대로 ‘공적 의식(Public Mind)’으로부터 출발해서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죠. 이는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엄밀히 말해 연구가 중단되거나 지연되더라도 나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해가 되지 않는 주제라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존재하지 않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기 위해서는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에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 이상으로 필요한 것은 결국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과 환경’이 되겠죠. 연구에 집중할동안 생계를 비롯한 생존에 위협을 받지 않아야 하고 연구와 커리어가 직접적으로 연계되어서 동기부여가 나뉘어지지 않을 수 있는 여건이 연구기간동안 충분히 조성될 때에야 연구는 충분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출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생업에 치여 연구주제가 뒤로 밀리기 일쑤이고, 연구주제를 둘러싼 데이터와 자원들을 확보하는 것도 용이하지 않으며, 설령 전업연구자라고 하더라도 해야 하는 연구들에 밀려 연구과정이 더딜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연구자 개인의 진심과 개인기에 의존하고 있다고 과언이 아니겠지요. 따라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가 정말 사회문제의 대안으로까지 열매를 맺을 수 있으려면 그에 대한 ‘인내자본(Patient Capital)’이 필요합니다. 재정적 지원 이상으로 장기적으로 몰입하고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한 셈이죠. (계속) *3월 1일부터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시작부터 함께 배울 수 있는 <연구원정 : 부트캠프> 상반기 대원 모집을 시작합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함께 신청해주세요.(아래 그림 클릭!) 액티브 리서치 저널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에 대한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전해드리는 뉴스레터입니다.나머지 이야기를 미리 읽고 싶으신 분들이나 구독하고자 하시는 분들은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Active Research Journal 뉴스레터 구독하기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 하고는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지? (1)
2024 LAUNCH 컨퍼런스가 개최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의 끝을 앞두고 있네요. 어느덧 매서운 추위도 잦아들고 조금씩 봄이 찾아오고 있는거 같네요. 💡 아직 못보셨다구요? 발제문을 확인해보세요! 2024 연구원정 LAUNCH Conference | 디지털 시민 광장, 캠페인즈 연구탐사대 또한 컨퍼런스 이후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함께 해나가기 위한 여러 서비스들을 개발하고 준비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3월 중에는 본격적으로 여러 서비스들을 진행하게 될텐데요. 결국 저희에게 남겨진 질문은 ‘그래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한 부분인 거 같아요. 컨퍼런스와 뉴스레터, 발제문 속에서 그 가능성을 확인하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면 그 자리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자리였지만 동시에 어느 ‘시작’에 대한 부분이 될 테니깐요. 이번 뉴스레터들에서는, 이제 본격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 Active Research를 해내기 위한 ‘How To’에 대해서 하나하나 짚어보면서 지금까지 저희가 나름대로 찾고 또 제안하고자 하는 방향성에 대해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그것들이 곧 저희가 여러분을 초청할 서비스와 커뮤니티의 취지일테니깐요. 0. 그래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는 어떻게 할 수 있는걸까?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가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컨퍼런스와 발제문, 그리고 지난 뉴스레터를 통해 어느 정도 설명을 드렸던 거 같아요. 각각의 세부 내용에 대해서는 또 소개해드릴 기회가 있겠지만,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연구가 필요하구나’라는 것과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직접 or 지지)하고 싶다’라는 마음들은 모두 가지고 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라고요? (1) 하지만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라는 거창한 단어와 달리, 한 명의 개인 연구자로서 혹은 예비연구자로서 ‘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하겠어!’라고 할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는 너무도 막막해요. 사실 이 고민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자를 돕고 싶어!’라고 외쳤던 연구탐사대도 똑같이 마주했던 막막함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길이든 처음 들어서는 길은 낯설고 막막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하고자 할 때에 마주하는 막막함들을 찬찬히 고민해보고 정리해보기 시작했습니다. 1. 방법론의 부재 :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먼저 첫번째 마주하는 막막함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라는 막막함이었어요. 사회문제에 대한 뜨거움은 있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연구’를 해야 한다! 라는 마음까지도 있는데 사회문제를 연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겠더라고요. 이럴 때에 많은 분들이 그렇듯이 제일 가까이에 있는 선택지는 ‘대학원’입니다. 당연히 ‘연구자를 길러내는 곳’은 ‘대학원’일테니깐요. 사회문제를 연구하기 이전에 먼저 연구를 배우기 위해, 또 연구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합니다. 그리고 연구역량을 기르고 학위를 따서 연구자 혹은 교수가 되어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수행하게 되지요.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학원’은 막상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공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등교육법상에서 대학원은 아래와 같이 정의됩니다. 💡 고등교육법 제29조의2(대학원의 종류) ① 대학원은 그 주된 교육목적에 따라 다음 각 호와 같이 구분한다. 1. 일반대학원 : 학문의 기초이론과 고도의 학술연구를 주된 교육목적으로 하는 대학원 2. 전문대학원 : 전문 직업분야의 인력양성에 필요한 실천적 이론의 적용과 연구개발을 주된 교육목적으로 하는 대학원 3. 특수대학원 : 직업인 또는 일반 성인을 위한 계속교육을 주된 교육목적으로 하는 대학원 실제 사회문제에 대한 고도화된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자를 양성하는 곳은 ‘일반대학원’입니다. 그리고 일반대학원은 법령에서 정의되어 있듯이 ‘학문의 기초이론과 고도의 학술연구’에 초점이 맞춰져 있죠.   실제 A 대학 인문사회계열 학과의 대학원 수업을 분석해보았을 때 전체 수업의 90%가 해당 학과의 핵심이론과 핵심논문을 가르치는 수업이었습니다. 이와 함께 각 원생들은 전임교수의 연구실에 배정되어서 도제식으로 연구를 훈련받는 구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행정학과라면 행정학자를, 사회학과라면 사회학자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 반해 사회문제는 기본적으로 ‘현상’에 초점을 두고 있고, 그 현상은 여러가지 층위가 쌓여 있는 입체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문제를 본질적으로 이해하고 연구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여러 학문의 지식’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따라서 아이러니하게도 특정 사회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진학한 대학원에서 해당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연구자 혹은 동료는 어느 학과를 가던 극소수가 되고, 배우는 수업에서도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기는 어려운 환경이 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학원 공동체의 전체적인 방향성이 ‘학술연구와 학자 양성’에 맞춰져 있다보니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개인기로 해나가기에는 굉장히 힘겨운 환경이 된다는 점입니다.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전문지식들을 쌓는 데에도 도움을 받을 곳이 마땅치 않고, 문제에 대한 진정성을 공유할 수 있는 동료 혹은 공동체를 만나기도 쉽지 않습니다. 특히 연구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연구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때에 대학원 공동체에서 주로 받게 되는 피드백은 ‘학술적 엄밀성’과 ‘학술공동체의 기여’에 초점이 맞춰지게 됩니다.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하고자 하는 연구자가 중시하는 ‘활용가능성’이나 ‘문제해결에의 기여’와 같은 기준과는 다소 차이가 생기게 되는 것이죠. 더욱이 연구자가 ‘전업연구자(Full Time)’의 양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일반대학원 상에서는 ‘연구범위가 너무 좁아서 연구자로서의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라는 피드백을 피하기 어렵고, 이러한 고립된 상황 속에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홀로 해나가기는 너무도 어려운 상황이 되버리고 맙니다. 이 이야기는 두번째 막막함으로 이어집니다. (계속) *3월 1일부터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시작부터 함께 배울 수 있는 <연구원정 : 부트캠프> 상반기 대원 모집을 시작합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함께 신청해주세요.(아래 그림 클릭!) 액티브 리서치 저널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에 대한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전해드리는 뉴스레터입니다.나머지 이야기를 미리 읽고 싶으신 분들이나 구독하고자 하시는 분들은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Active Research Journal 뉴스레터 구독하기
[처음 만나는 공화주의]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이익은 공존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에서는 우리나라를 민주공화국이라 설명한다. 진정한 민주주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공화’에 대한 개념이 중요하지만, 민주에 비해 공화를 다룬 글은 많지 않다.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공화‘. 창작그룹 ’성찰과성장‘은 [처음 만나는 공화주의] 연재를 통해 ’공화주의‘에 대해 쉽게 풀어보고자 한다. '민주적 공화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3가지 요소가 강조된다. ▲적극적인 시민 참여 ▲기본적인 물질적 보장을 통한 민주적 평등 ▲공동선을 추구하는 정치가 바로 그것이다. 마지막 5편에서는 민주적 공화주의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공동선’에 대해 탐구해본다. 사회적 불신 속 공동선의 가치를 되새기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갈등과 대립, 그리고 불신의 확산은 우리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세대 간, 성별, 정치 진영, 지역 및 사회적 계층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는 다양한 축을 중심으로 깊은 분열을 경험하고 있다. 경제적 불확실성, 국제 정세의 동요, 타인에 대한 이해 부족, 포용의 결핍 등이 이러한 분열의 원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 현상을 깊게 들여다보면 공동체적 가치와 공동선의 결핍이 근본적인 문제로 드러난다. 공동선이라는 개념은 우리에게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공동선이란 과연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지 않다. 왜냐하면 공동선은 각 구성원, 계층 간의 지속적인 대화와 소통, 그리고 조율을 통해 형성되고 발전하기 때문이다. 이는 공동체의 현실, 맥락, 그리고 구성원의 다양성에 따라 그 정의가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전근대 사회에서는 사람마다 정해진 귀천에 따라 사회가 구성되고 운영되었으며, 이러한 사회적 구조가 당시 공동체의 공동선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모든 인간이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인식이 공동체의 합의된 공동선으로 자리 잡았다. ▲ 패러다임의 변화는 공동선의 변화를 불러온다 ⓒ성찰과 성장 자연 환경에 대한 우리의 태도 역시 공동선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과거에는 자연을 무한한 자원으로 여기고 마음껏 이용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지속 가능한 자연과 지구 생태계를 고려하는 새로운 인식으로 변화했다. 이는 공동체가 공유하는 공동선의 진화를 반영한 것이다. 우리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그토록 분노하는 이유도 전지구적 공동선을 해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공동선은 중요한 것일까?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지향하는 정치공동체는 반드시 공동선을 고민하고 실천한다. 정치체제가 무엇이든지 관계없이 말이다. 공동선이 결여된 사회는 부패와 해체의 위험에 쉽게 노출된다. 오로지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회는 결국 서로를 향한 끊임없는 투쟁의 장으로 전락한다. 이러한 상황은 공동체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며, 결국 사회의 기반을 약화시킨다. 이에 비해, 공동선에 대한 깊은 이해와 적극적인 실천은 사회의 건강과 지속적인 발전을 보장하는 기반이 된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공동선이 무엇인지에 대한 지속적인 성찰과 논의, 그리고 그 실현을 위한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공동선: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이익 사이에서   공동선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사전에서는 공동선이 해당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것 또는 이익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개념은 어떤 의미일까? 공동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그 유기체 전체에 이로운 것을 의미할 수도 있고, 반대로 구성원 개개인의 이익이 모여 공동선을 형성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공동선이 공동체의 최종 목적지인지, 아니면 번영을 위한 수단일 뿐인지에 대한 질문은 공동선을 둘러싼 복잡한 논의를 잘 드러낸다.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종교적 차원에서 공동선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가운데, 공화주의에서의 공동선 개념을 짚어 보자. 전통적으로 공동선은 선지자가 자신의 개인적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공동체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발견할 수 있는 '그 무엇'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현대로 넘어오면서, 공동선에 대한 이러한 전통적 시각은 개인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다는 비판에 마주한다. 자유주의적 사상이 확산된 현대 사회에서는 비지배의 원칙을 바탕으로 개인의 이익을 출발점으로 삼아 공동선을 모색하는 새로운 접근 방식이 제시되고 있다(곽준혁, 2008). 공동선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 중 하나는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개인의 이익을 희생으로 이어 진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공익과 사익은 주종 관계가 아니다. “공동체주의의 관점과 달리 사익은 공익과 부분적으로 겹쳐질 뿐 종속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놓지 않아야 한다(구은정 2021). 공익과 사익은 서로 대치해야만 하는 관계가 아니다. 둘의 공존은 가능하다. 어느 한 쪽이 존재하기 위해 다른 한 쪽이 희생해야만 하는 관계도 아니다. ▲ 누군가 얻으면, 누군가는 잃어야 하는 제로섬 게임만이 답일까? ⓒ성찰과 성장 우리가 공동선 개념을 쉬이 받아 들이기 어려운 것은 바로 근대 사회를 구성하는 자유주의적 관점 때문이다. 자유주의적 관점은 제로섬 게임, 즉 한 쪽의 이익이 반드시 다른 쪽의 손실을 초래하는 구조가 기본이다. 제로섬 거래는 상호 작용과 타협을 강조하지만, 동시에 경쟁적이고 대립적인 거래 관계를 전제로 한다. 하지만 앞서 말한 공익과 사익의 교집합으로서 존재하는 공동선은 다르다. 공동선의 발전이 개인의 이익이며, 개인의 이익이 공동체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이런 관점을 기반으로, 이익을 위한 ‘거래 행위’가 아니라, 서로 신뢰를 형성하기 위한 ‘호혜적 활동’이 필요하다. 공화주의는 오히려 공화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비-지배’를 기반으로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넓히려고 노력한다. 비-지배는 ‘타인의 자의에 종속되지 않는 상태’라고 정의된다. 조금 어려운 개념이지만, 비유하자면 구성원 간 평등하여 권력, 재력 등으로 서로가 ‘주인과 노예’ 상태에 놓이지 않는 것으로 이해하자. 여기서 오해하지 말 것은 어디까지나 ‘비지배 기반의 자유’이지, 개인의 무한한 자유를 보장하는 ‘자유주의적 자유’가 아니라는 점이다. (비지배 기반의 자유 개념은 이 시리즈의 1편을 추천한다. 링크 참고) 공동체 가치만을 우선하여 개인이 가지는 자유의 경계를 설정하는데 실패한 사례가 있다. 이웃 국가 중국이다. 중국은 ‘위(권력층)’에서 설정하고 꽂아 내린 공동선(민족주의, 국가 발전 등)을 개인의 자유보다 우선 순위에 놓으면서 시민의 자유와 공동선의 경계를 설정하는 데 실패했다(Kwak, Matsuda 2015). 공동선이 위에서 내려진 지시로 간주될 경우, 진정한 공동선은 훼손된다. 공동선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도구가 아니라, 개인과 공동체가 상호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함께 추구해야 할 가치임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민적 덕성 - 공동선을 향한 사회적 기초  이제 시민적 덕성을 살펴보자. 공동선을 이야기하면서 시민의 덕성을 빼먹을 수 없다. 시민적 덕성이란 무엇일까? 단순히 법을 잘 지키는 착한 시민의 차원이 아니라 더 포괄적인 의미를 갖는다. 시민적 덕성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시민적 덕성은 자발적인 ‘행동’을 수반한다. 관심 있는 분야의 집회에 나가 의견을 표명하거나, 귀찮더라도 환경 보호를 위해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등 사익을 넘어 공동체 이익을 위해 자발적으로 ‘행위하려는 성향(조일수, 2011)’을 가지고 있다. 또한 나와 다른 의견을 수용하고 경청하는 태도이다. 이는 타인에게 ‘설득 당하려는 의지(구은정 2021)’로 바꿔 말할 수도 있다. 갈등 없는 사회는 없다. 우리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크고 작은, 아주 다양한 갈등 상황을 마주한다. 건강한 공동체는 갈등을 외면하고 묵살하지 않는다. 갈등이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인지하고 구성원 간의 충분한 소통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나간다. 시민적 덕성은 공동선을 위한 전제이다. 중국의 실패 사례처럼, 시민의 덕성이 함양되지 못 하고 강력한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에 묻혀 버린다면 공동선을 찾아내기 어렵다. 시민적 덕성은 강력한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에 묻히지 않고, 개인과 공동체가 서로의 발전을 위해 협력하고 공존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시민적 덕성 함양은 공동선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만이 아니라, 개인의 성장과 사회적 책임감을 높이는 데에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일상 속 실천하는 시민은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원동력이다 ⓒ성찰과 성장 우리의 공동선은?  우리가 좇아야 할 공동선은 무엇일까? 성찰과성장에서 ‘이것이 답이다!’라며 제안할 수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공동선은 절대적이거나 고정된 것이 아니며, 단일한 종교적 진리나 일률적인 도덕 규범으로 정의될 수 없다. 오히려 대한민국의 모든 구성원이 함께 참여하여 만들고, 시간과 상황에 따라 발전시켜 나가는 동적인 과정이다. 이제 여러분의 몫이다. 우리 사회의 공동선은 공정성, 평등, 상호 존중, 지속 가능성 등의 기본 원칙에 기반해야 한다. 또한 경제적 번영, 사회적 안정, 문화적 다양성, 환경적 지속 가능성 등을 포함하여, 모든 구성원이 누릴 수 있는 복지와 기회의 균등한 분배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결국, 우리의 공동선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며, 공동선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과정은 지속적인 노력과 헌신을 요구한다. 변화하는 시대와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여, 모든 구성원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한 지속적인 여정이다. 우리 사회에는 저마다의 진실이 존재한다. 다양한 관점과 경험을 가진 우리 모두에게, '처음 만나는 공화주의' 연재가 일상생활과 시민사회 현장에서 활용되어 공동선을 향한 더 깊은 이해와 실천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참고 문헌 곽준혁(2008). “공화주의.” 『한국정치학회 편. 정치학 이해의 길잡이: 정치사상』 (pp.171-205). 서울: 법문사. 구은정. (2021). 탈진실(Post-truth) 시대, 숙의와 공공선. NGO연구, 16(2), 1-38. 조일수. (2011). 공화주의적 시민성에 대한 연구 -아테네적 전통과 로마적 전통의 차이를 중심으로. 倫理硏究, 1(80), 291-316.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드, <의무란 무엇인가>, 2021 Kwak, Jun-Hyeok and Koichiro Matsuda. 2015. Patriotism in East Asia. New York: Routledge.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대안을 배달해드립니다 - 창작그룹 '성찰과성장'글 작성 및 편집 : 김설, 박배민, 신동주 성찰과성장.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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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정치적 토양을 만드는 고전의 힘
총선 전야, 격동의 한국정치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정당이 나타납니다. ‘개혁’, ‘새로운’, ‘미래’, ‘민주’, ‘연합’ 등 새롭게 설립된 당명에 사용된 용어도 비슷합니다. 몇 가지 용어가 조합된 정당들은 당명 뿐만 아니라 정체성 또한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신당 창당을 발표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다른 정당과 합당을 한다고 합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비례정당 셈법은 복잡해지기만 합니다. 2024년 4월 10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두 달이 채 남지 않았는데 선거구는 획정되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어디에서 누구와 싸워야 하는지도 모르고 눈치만 봅니다. 획정되지 않은 선거구에 출마하는 (예비)후보자들은 지역의 유권자가 누군지도 모릅니다. 제도를 협상하고 공천을 결정하는 정당 지도부의 실체가 더욱 명확해 보입니다. 우리 사회에 선거 제도라는 ‘씨앗’ 자체가 영글지 않았고 이러한 ‘씨앗’이 내려앉기 위한 정치적 토양 또한 척박합니다. 비단 선거 제도에만 한정되어 있는 게 아닙니다. 민주화 이후 정치적 과도기라 불리는 한국 사회의 경우, 하나의 이름으로 오랜 전통을 가지고 뿌리를 내린 제도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는 씨앗을 영글게 만들 수 있고, 다양한 씨앗을 뿌릴 수 있고, 건강한 토양을 만들기 위해 밭을 갈 수도 있습니다. 씨앗을 심고 흙을 덮고 물을 줄 수도 있고요! 결국 우리는 건강한 정치적 토양을 만들기 위해 ‘본질’부터 깊이있게 탐구해야 합니다. 작물이 자라기까지 수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는 농부의 마음가짐과 태도 또한 겸비되어야 하겠죠.   정치를 고전이라는 뿌리에서 시작하는 이유 한국은 정치적 이념에 예민합니다. 정치 교과서를 고르는 것조차 망설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보수일까 진보일까’ 질문을 먼저 던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많습니다. 정치고전은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오래토록 인정받은 책이기에 기본적인 신뢰가 쌓여 있어 입문자들이 접근하기 좋습니다. 혼자 읽기 쉽지 않지만 좋은 해설을 제공하는 자료는 우리 주변에 충분합니다.  무엇보다 ‘개념’의 합의 차원에서 정치고전을 공부해야 합니다. 개념은 공동체의 기본적 합의 측면에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논의를 위해서는 개념 합의가 선행되어야 하죠. 실컷 토론을 했는데 다른 대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것이라면 그 논의와 토론은 실패한 것입니다. 공통의 장을 넓히는 작업은 정치 고전에서 출발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정치고전은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나’는누구인지, ‘타자’는 어디까지 인지, 그 사이 경계와 권력은 어떻게 작용하는지 고민하게 됩니다. 자연스레 우리를 둘러싼 공동체와 정치의 역할로 의제가 이어지게 돼요. 무엇보다 정치철학은 인간의 존재 자체가 불안하고, 모순적이고, 취약성과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일깨워줍니다. 결국 정치는 인간을 다루는 영역이기에 인간을 이해하는 시도가 이어져야 하고 이를 통해 정치가 작동해야 합니다.  나아가, 인간에 대한 뿌리 깊은 이해가 바탕이 되면 현실정치를 바라볼 때 조금 더 객관적인 눈을 가지게 됩니다. 정치적 대상에 대해 감정이나 직관을 앞세우기 보다 기존 체제나 제도의 특성으로 바라보게 되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정치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뿌리부터 시작하는 정치 커뮤니티 폴티  정치 커뮤니티 플랫폼 폴티는 2021년 2월 '정치고전(반복)독서클럽'으로 시작했습니다. 국회 연구원일 때, 담당 박사님이 하시던 정치고전 세미나 예습을 위해 독서모임을 꾸렸습니다. 그때 주변 친구들과 모임을 이어가다 온라인 클럽을 열었습니다. 플라톤의 <국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마이카벨리의 <군주론>, 홉스의 <리바이어던> 등 정치철학을 읽고 정리하며 의견을 공유했습니다. 그러다가 고향인 대구에 와서 오프라인 모임을 열게 되었습니다. 국회에서 일을 할 때와 달리 대구에서 정치적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은 굉장히 협소했습니다. 대구에서 오프라인 독서모임을 시작했고, 5개 정당 소속(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전)정의당, (전)기본소득당, (전)녹색당)의 지역 정치인들과 정치고전 토크행사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정치고전(반복)읽기클럽’으로 운영하다가 ‘정치Politics’와 ‘커뮤니티Community’의 합성어인 ‘폴티POLTY’라는 브랜드로 안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건강한 정치적 토양을 만들기 위해 폴티는 정치고전을 기반으로 현실정치와 지역정치를 바라봅니다. 평소 혼자 읽기 어려운 정치고전을 함께 읽고, 폴티가 개발한 자체 노트 및 교재로 정리하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정치적 대화를 자유롭고 안전하게 나눕니다.   정치에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선택지 모든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할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없을 뿐더러 모두가 참여하면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손해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면 본인의 분야에 몰두하다가 때가 되면 정치 토론을 하러 가거나 투표를 하러 가야 합니다. 일과 가정, 여가를 누릴 수 없어 삶은 더욱 퍽퍽해질 겁니다. 정치 커뮤니티는 개인과 정치 사이의 공간을 다양하게 채울 수 있습니다. 커뮤니티에서는 정치 및 정책, 역사, 예산 등 지식을 제공하고, 참여자들은 이를 기반으로 더욱 풍부한 지식을 쌓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의견과 견해를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고 자신과 다른 정치적 관점을 배우게 됩니다. 폭넓은 시각을 확보해 자신의 관점을 확장시킬 수 있습니다. 나아가 보다 나은 논의와 결론을 도출하는 기회를 만날 수 있습니다. 폴티는 자신의 영역에서 정치적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건강한 정치 커뮤니티’라는 선택지를 제공합니다. 나아가 우리 사회의 정치적 논의 수준을 높이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과학자, 개발자, 건축가, 사업가, 디자이너, 운동선수 등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개별적으로 고군분투하던 이들이 정치적 장벽을 만나거나 어떠한 갈증을 느낄 때 믿고 선택할 수 있는 커뮤니티 플랫폼이 되고 싶습니다. 우리 가까이에 접근성이 높고 안전하고 유익한 정치 커뮤니티가 있다면 사회 구성원은 정치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의식을 공유할 수 있고 다양한 의견과 관점이 공동체에서 교환될 수 있어 궁극적으로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의 뿌리를 잘 가꾸는 일 선거가 끝나도 우리의 삶은 계속됩니다. 개혁과 혁신, 전환을 말하며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하지만 오래가는 변화는 하나의 기회로 만들어지기 어렵습니다. 급속도로 변하는 정치에 대응하는 삶은 여유가 없습니다. 계속되는 삶과 변화 이후의 삶을 인지해야 합니다. 대전환 이후의 삶을 꾸려가야 합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정치의 본질과 가치에 집중해야 합니다. 정치가 더욱 정치다울 수 있도록 살펴야 합니다. 고전이라는 뿌리에서 정치를 시작하는 일은 정치의 기초원리를 그 기원에서 찾고, 이를 통해 본질을 이해하고, 현 시대의 새로운 언어로 우리의 정치를 만들어가는 일입니다. 고전 그 자체를 직접 대면하면 난해한 서술을 오독하기 쉽고 해석 자체를 놓치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헤매고 좌절하고 실패하는 경험 또한 자산이 될 수 있다고 믿어요. 적절한 가이드와 함께 정치고전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훌륭한 정보와 자료가 많습니다.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도전하는 가이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좋은 해석을 보면서 고전을 다가가는 접근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고전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살피며 우리 앞에 놓여진 정치를 바라보는 시야와 관점을 만들어나갈 수 있습니다. 정치고전을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읽을 수도 있어요! 혼자 읽기 어려운 책을 함께 읽으면 다양하고 풍부한 관점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의 차이를 느끼게 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시야를 확장하고 폭넓은 관점을 갖게 됩니다. 정치는 정답을 만드는 과정이기에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면 토론과 논쟁의 기회 또한 만날 수 있어요. 나아가 고전에서 함께 시작했다는 연대감 또한 느껴지기도 하죠. 폴티는 정치고전을 읽으면서 현실정치와 지역정치를 바라보는 시도와 실험을 이어갑니다. 커뮤니티와 세미나, 토크 등을 꾸준히 만들고 있어요. 이론교육이 아닌 토론하는 정치교육을 연구하고 강의를 나가기도 합니다. 정치와 관련한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마음이 맞는 팀과 협업을 하기도 해요. 나아가 정치 혹은 정치학을 깊이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사업도 하고 싶습니다. 폴티와 함께 정치고전을 매개로 정치를 말하는 건 어떨까요? 폴티 자세히 보기
[함께 변화] 그래서 명절에 정치 얘기 어떻게 해요?
명절에 오랜만에 친척들과 모이면 주의해야 할 게 있다. 바로 ‘정치 이야기’다. 약삭빠른 정치인들은 전국 각지의 유권자들이 지역별로 섞이는 명절 밥상에 본인들의 이야기를 올리고 싶어 한다. 명절 정치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낸 유튜브가 있어서 공유한다. (3:13초부터 보면 더 재미있다.) [문쌤] 명절특강! 세뱃돈 네 배로 받는 가불기... 드디어 공개한다 세뱃돈 이외의 수입을 챙기고 싶은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정치 이야기를 이용하라는 팁이다. 큰아빠와 다른 정치적인 입장을 고수하며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완벽하게 패배를 인정하면 용돈을 더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평화로운 가정을 지켜야 하므로 우리 집에서는 어림도 없다. 실제로 몇 년 전 일명 조국사태 때문에 난리 난 적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끼리 조국 교수에 대한 의견이 일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치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닌 것 같기는 하지만…)  또 내 오래된 친구들 사이에는 명문화된 규율이 있다. ‘정치 이야기 금지’. 시사 이야기는 자주 하지만 그 상황에서 급발진하여 특정 정치 세력을 비난하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경고가 들어온다. 그러면 잠시 흥분했던 침착했던 친구는 다시금 침착한 상태를 유지하곤 한다.  정치 이야기와 관련된 흥미로운 조사를 소개하고 싶다. MBC 패널조사에서 ‘정치 스트레스’에 관해 물었다. 항목은 다음과 같다. “정치 때문에 스트레스받는다.”, “내가 지지한 후보가 졌을 때 화가 나거나 우울하다.”, “정치 이야기 피곤하고, 피하고 싶다.” 조사 결과 '정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79%, '내가 지지한 후보가 졌을 때 화가 나거나 우울하다' 65%, '정치 이야기가 피곤하고 피하고 싶다' 61%로 집계되었다. MBC는 조사 결과에 대해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세 문항 중 하나의 문항에 하나라도 '그렇다'고 답한 응답자는 91% 였는데, 4천 4백만 명의 유권자로 환산하면 약 4천 만 명이 '정치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겁니다.”  미국심리학회(APA)는 선거철 정치 스트레스 관리법을 이렇게 제시하고 있다.  정치 뉴스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미디어 소비를 제한하고,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지거나, 산책을 하거나, 친구나 가족과 함께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십시오. 선거에 관한 토론이 갈등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면 아예 참여하지 마세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스트레스와 불안은 생산적이지 않습니다. 선거일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삶은 계속될 것입니다. 투표하십시오. 스트레스가 많은 선거에 참여해서 적극적인 조치를 취했다고 느끼시길 바랍니다. 사실 이 정도로 스트레스를 주는 주제라면 이야기를 안 하는 게 맞다. 몇몇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현상이라면 진작에 다 같이 주의하고 쉬쉬해야 주제여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계속 정치 이야기를 하게 된다. 아니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생각이 든다. ‘왜 정치 이야기는 이렇게 하기 어려울까?’ 사실 정치 이야기는 할 수 있다. 그 이야기를 한 이후에 대화 상대와 어떻게 지내느냐가 문제다. 그럼, 질문을 이렇게 바꿔본다. ‘정치 이야기를 한 후에도 어떻게 안 어색해질 수 있을까?’ 혹은 ‘정치 이야기 후에도 어떻게 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  결국은 서로의 민감하고도 다른 의사를 직면했을 때 그것을 수용하고 지낼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평소에는 세련되게 대화 할수 있는 사람들이 정치 이야기에만 유독 약한 모습을 보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한 APA의 스트레스 관리법을 보면 ‘선거일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삶은 계속될 것입니다.’라는 항목이 있다. 우리는 정치라는 두 글자가 단번에 변화를 이뤄낼 것이라는 기대 혹은 우려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대화 자체가 두려웠던 게 아니었을까? 김민하 작가가 지은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에서 몇 문장을 옮겨본다. “결국 권력과 변화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권력의 선의를 믿거나 사익 추구를 의심하거나 하는 양자택일로 귀격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관점은 마치 정치를 만능 스위치가 존재하는 방에 들어가기 위해 각 세력이 경쟁하는 것처럼 여겨지게 한다.” 정치에 대한 우리의 의견과 선택이 매번 절벽 끝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듯한 위기 상황으로 여겨지는 것은 아닐까? 상대방의 다른 선택과 이야기를 그저 의견으로 받아들일 여유 따위는 우리에게 없다. 이런 양극화된 정치는 계속될 것이다. 이미 너무 많은 정치인이 그 단맛을 보았고 유권자들도 그들에게 길들여졌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의 선택에 더 많은 기대를 걸어야만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런 악순환과 관련된 문장이 있다. “민주주의는 주권자들의 총의를 모아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논의의 장을 여는 역할을 하기보다는 ‘반대’를 통해 ‘우리 편’을 조직하는 효과적 방식을 찾는 도구로 전락한다. 이것이 온갖 정치적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우리 눈앞의 현실이 변하지 않는 이유다…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만능 스위치를 통해 바꾸려고 했던 현실에 우리가 직접 개입해야 한다. 민주주의란 도구는 여기에 써야 한다.”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 김민하. 이데아) 우리는 정치 이야기를 어떻게 안 어색하게 할까를 고민할 게 아니라, 우리의 대화를 어색하게 만들어버린 정치에 개입해야 한다. 투표 말고는 어떻게 정치에 개입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뉴스부터 읽어보자. 뉴스를 통해 내가 관심 있는 문제를 찾아보고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다양한 주체(국회의원, 지방의원, 국기기관, 시민사회단체 등)를 찾아보자. 그들에게 내 이야기를 건의하고 제안해 보자.  시민의 한 표는 작아 보이고 그 표를 받는 세력은 커 보인다. 하지만 정치를 어떤 세력만의 것으로 두지 말자. 정치는 시민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임을 잊지 말자.
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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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 공무원 준비생에게 이준석 대표 공약에 대해 묻다
제목 : 소방 공무원 준비생에게 이준석 대표 공약에 대해 묻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연일 논쟁적이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폐지에 이어, 소방・경찰・해양경찰・교정직 공무원의 경우, 군복무를 해야지만 지원할 수 있게 한다는 공약이다. 적용은 2030년부터이며, 이를 통해 감소하는 군복무 인원에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이준석 대표는 공약을 발표하며, “이제 더 많은 여성이 국방의 의무를 담임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자 합니다.” 라고 말했다. 또한, “노량진에서 수험생활 하면서 몇 문제 더 맞고, 덜 맞고로 우열을 가리는 경쟁보다, 국가를 위해 군복무를 자발적으로 한 진정성 있는 사람들로 제한해 경쟁을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경쟁일 것이다.” 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해당 방안이 논쟁이 있을 수 있지만, 현재 병역자원 감소 문제 해결을 위해선 병역제도 개혁이 필요하며 (중략) 여성 신규 공무원 병역 의무에 대해 활발한 토론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준석 대표 공약 취지에 공감하는 부분도 있고, 의문이 드는 부분도 있었다. 공감되는 부분은 문제 몇 개 더 맞고, 틀리고로 우열을 가린다는 부분이었고, 의문이 드는 부분은 “국가를 위해 군복무를 자발적으로 한 진정성 있는 사람들로 제한해 경쟁하게 한다.”는 부분이었다. 평소에도 현행 공무원 시험 과목이 직무 수행에 얼마나 필요한지 의문이 있었다. 때문에 자칫 직무에 필요 없는 시험을 위한 성적으로 사람을 뽑는게 적합한 건가 의문이 들었다. 그 점에서 시험 점수 경쟁이 적합하지 않다는 부분에서는 공감했다. 반면, 군복무를 해야지만 소방・경찰・해양경찰・교정 공무원에 지원할 수 있다는 부분에서는 의문이었다. 거기에 더해 “자발적으로 한 진정성 있는 사람"이라는 부분은 더욱 그랬다. 나 역시 군복무를 했지만, 자발적으로 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군복무 자발성과 소방, 경찰, 해양경찰, 교정직 근무와의 연관성에 의문이 들었다. 군복무가 해당 직무 근무 능력을 보장한다는 근거는 없다고 생각해서다. 이준석 대표가 활발한 토론을 바랐다. 까짓거 해주겠다고 생각했다. 해당 사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해당 직무 공무원 준비생들의 생각이 너무 궁금했다. 설날 긴 연휴를 맞아, 노량진으로 가서 공시생 몇 명을 인터뷰 했다. 설 연휴를 노량진에서 보냈다. 공부에 방해될까봐 걱정 했는데, 괜찮다며 인터뷰에 참여해 주고, 외부 게재를 허락해 소방 공무원 준비생 분께 이 글을 빌어 감사드린다. 꼭 합격하셨으면 좋겠다. 인터뷰 내용이다. — Q. 간단한 소개 부탁드린다. 노량진 공시생이다. 현재 소방 공무원 준비 중이다. 원서 접수가 얼마 안 남았다. 합격하고 싶다. Q. 소방공무원을 선택한 이유는 중학생 때 집에 불이 났었다. 그 불로 집이 까맣게 탔었다. 당시 우리 가족 전부 집에 있었다. 새벽에 난 불이라 대피가 어려웠다. 죽는 줄 알았고,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 기침이 계속 났고, 눈이 따가웠다. 뜨거운 화마가 주는 공포에 몸이 얼어서 움직이지 못했다. 공포에 질려본 사람만이, 그 공포가 뭔지 알 수 있다. 정말 무서웠다. 그때 우리를 구하러 와준 게 소방관 분들이었다. 소방관분들이 들어오시는 걸 본 것까지 기억하고 그 뒤론 기억이 안난다. 아마 기절했던 것 같다. 일어나니 병원이었다. 소방관분들이 나를 살려준 거다. 조금만 늦었어도, 난 없을 거다. 그렇게 누군가의 생명을 살린다는 것이 참 멋지고 고귀한 거라는 걸 체험하고 나니, 소방관이 되고 싶다고 어릴 때부터 생각했었다. 이젠 이루고 싶다. Q. 큰 일을 겪으셨다. 나였다면 불이 무서웠을 것 같은데, 소방관이 됐을 때 마주할 화마가 무섭지는 않은지 궁금하다 물론 무섭다. 한동안은 작은 불도 무서워했다. 성냥 불, 라이터 불 처럼 작은 불씨도 무서웠다. 그때문에 아버지가 담배를 끊으셨다. 라이터 불과 담배 불이 자식 트라우마 심는 것 같다고. 솔직히 내가 그 화마 앞에서 다시 얼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도 한다. 하지만, 이건 모든 소방관들이 다 겪고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소방관이라고 불이 무섭지 않을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섭지만, 화마 안에 사람이 있고, 그 속에서 느끼는 공포가 무엇인지 알기에 불에 뛰어드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 무서운 불과 마주하고 싸우기에 소방관이 대단하고,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그때 느낀 공포를 알기에, 그 공포에서 사람을 구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또 조금이라도 빨리, 더 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훈련하는 게 아닌가 싶다. 격투기 선수들이 항상 훈련을 하듯, 소방관들도 훈련을 한다. 영어로 소방관을 Fire fighter라고 하지 않나. 불과 싸우는 사람들. 이길지 질지 모르지만, 항상 불에 맞서는 사람들. 정말 응원하고 싶다. Q. 말만 들으면 이미 소방관인 것 같다. (웃음) 준비를 많이 한 것 같다. 공부 안 하고 딴짓을 많이 해서 그렇다. (웃음) 사실 뒷 부분에 말한 건 예전에 현직 소방관에게 들은 말이다. 학교 다닐 때 현직에 있는 분들을 학교에 초청해서 강의를 듣는 게 있었는데, 그때 들었던 말이다.  당시 내가 “불이 무섭진 않으신가요?” 라는 질문을 했었는데, “소방관도 불이 무섭습니다.” 라고 하셨다. 또 가족이 있기에 더욱 무섭다고 하셨다. 소방관인 가장은 화재 현장의 사람도 구해야 하지만, 가정도 지켜야 한다고 하셨다. 소방관의 무게를 말씀하려고 하셨던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러한 고민은 화재 현장에서 하고 있을 순 없다. 현장에선 빠르게 판단해서 움직여야 한다고 하셨다. 찰나의 고민의 순간에 나와 시민, 내 동료가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빠른 판단을 하기 위해, 훈련을 계속한다고 말씀하셨다. 혹여나 소방관을 꿈꾸시는 분들이 있다면, 생각 이상으로 혹독하고, 무서운 일이라고 조언해주셨다. 또 그 만큼 값지고, 가치 있다고 하셨다. Q. 소방관에 대한 마음가짐이 남다른 것 같아서 묻고 싶다. 소방관이 되는데 필요한 자격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마음가짐이나, 능력이나 그런 것들. 현직이 아니라서 모르겠다. 현직 소방관에게 묻는 게 확실할 것 같다. (웃음). 뭐 사실 소방관도 어째든 공무원이니, 짤리지 않는 직업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다를 거다. 근데 그걸 다 재단할 수 없으니, 나 같은 수험생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개인 생각으로 판단할 수 없으니, 시험 성적으로 판단하는 게 아닌가 싶다. 모든 시험이 다 그렇지 않나. 하지만 소방관이라면 어느 정도의 사명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째든 목숨 내놓고 하고, 죄책감도 느끼는 직업이니까. Q. 목숨을 내놓고 사람을 살리는데, 죄책감을 느낀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지금도 종종 보는 웹툰이 있다. <죽음에 관하여>라는 웹툰이다. 거기에 소방관 에피소드가 나온다. 소방관이 화재 현장에서 다른 동료를 구하다 사망한다. 눈 떠보니 신이 그 앞에 있었고,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한다. 너라면 어떤 이야기라도 들어주겠다고. 그때 그 소방관이 십 수년 전 자신이 화염 속에 놓고 온 것이 사람인지, 물건이었는지 묻는다. 과거 한 화재 현장에서 물건인지, 사람인지 판단이 안 되 도망치듯 나온 현장이 있었다. 신은 “물건이었어.”라고 말한다. 물건이라는 말을 듣고 소방관은 울며 주저앉아, 내내 마음 속에 품고 살았다고 말한다. 내가 생명을 버리고 도망친 것은 아닌지, 계속 마음에 걸렸다고. 의문이 풀린 소방관은 다시 환생하는 문을 통과한다. 소방관이 가고 나자, 까맣게 그을린 어린이가 신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흔든다. 신은 그 꼬마에게 “이제 그를 용서해. 이런 사람들이야.” 라고 말한다. 소방관이 두고 온 건 물건이 아니라, 어린 아이였고 모두가 해당 사실을 알지만 숨겨줬던 거다. 진실을 알고 싶어 신에게 물었지만, 그 신 마저도 그에게 진실을 숨겨준다. 그가 느낄 죄책감과 소방관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알기에 했던 행동이다. 그 웹툰을 볼때면 소방관이라는 직업과 사명감, 죄책감에 대해 생각한다. 까만 어린 꼬마의 모습처럼, 수 많은 소방관들의 마음도 그렇게 까맣게 그을려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소방관도 한 명의 사람이다. 아무리 잘 훈련된 사람이라도 화마 앞에서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싸움에서 이길 순 없다. 때론 질 때도 있다. 또 개인적으론 소방관 자신을 가장 먼저 챙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때 어쩔 수 없이 사람을 두고 올 수도 있는데, 그것이 소방관에겐 평생의 죄책감으로 남는 게 아닌가 싶다. 그 웹툰의 그 장면을 보면서, 모든 소방관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고,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사람들이 그런 소방관들을 더욱 알아주고, 지지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고, 소방관이 많아지고 또 소방관을 위한 지원도 많았으면 좋겠다. Q. 최근 정치에서는 소방관 지원 자격을 추가하려고 하고 있다. 군복무를 해야지만, 지원할 수 있다는 방식으로. 그런 장벽이 논의 되는 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그런 것이 정말 소방관이 되는데 필요한 자격이라고 생각하나? 해당 공약을 봤다. 유튜브에 공약과 취지를 말하는 영상이 있어서 몇 번이나 봤었다. 솔직한 심정은, 군인 수를 채우기 위해 소방관, 경찰관을 이용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소방관과 경찰관이 군인 수 채우는 도구인가? 묻고 싶었다. 군인 수가 부족하다던데, 소방관, 경찰관은 충분한가? 묻고 싶다. 만약 이준석 대표가 군복무 경험이 소방관 업무에 얼마나 필요하고, 어떤 점에서 필요하고 연관되는지 설명하고, 그 필요성 때문에 군복무를 말한 거라면 납득 했을 수도 있을 거다. 일반 사병 경력을 말하던데, 사병들의 어떤 경험이 도움이 된다고 근거로 제시했다면 설득력이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그것 마저도 군 경력이 높은 가산 점의 형태로 되어야지, 전제 조건으로 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근거도, 논리도 없이 소방관이 되려면 군대를 다녀와라? 그저 주목 받고, 여성 징병을 위한 수단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Q. 현재 군 특수부대 출신은 소방 특채로 뽑는 것으로 안다. 군 경력을 내세우려면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건지? 맞다. 해당 경력들은 분명 소방 현장에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불을 끄는 것만큼이나 사람을 구하는 것도 중요한 임무다. 간호사, 의사, 혹은 군 특수부대에서 관련 경험을 했다면 그들은 빠르게 소방 현장에 투입돼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해당 직무 들은 특수한 능력이 필요한 만큼, 그런 사람들을 위주로 뽑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사람을 구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거고, 그들의 경력이 그것을 뒷받침 해주는 근거가 되니까. 몇 년 전이다. 소방항공대원 5명이 독도 인근 해상에서 사고로 순직한 일이 있었다. 당시 합동영결식에서 순직한 5명의 동료 소방관들에게 하는 고별사를 본 적이 있다. 보고 많이 울었다. 순직한 분 중 해군해난구조대에서 군 복무 후 소방에 임용되신 걸로 안다. 그런 분도 현장에서 사고로 순직하는 게 소방현장 같다. 사병 경험이 그들에게 준하는 경력을 주는건지 의문이다. 물론 군인도 고귀한 직업이다. 소방관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경찰이 치안을 담당한다면, 군인은 국방을 맡아 외부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군인도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아직 군인에 대한 처우와 인식도 안 좋은 것 같다. 이러한 인식 개선과 처우 개선을 말해도 부족할 것 같은데, 그런 공약을 보니 솔직히 후졌다고 생각했다. 감정이입이 돼서 말이 좀 센 거 같다. Q. 솔직해서 좋다. 노골적으로 묻자면, 여성도 의무적으로 군대에 가야한다고 보는지? 사실 이준석 대표는 경찰과 소방을 미끼로 여성 징병을 말하고 싶은 거였다. 이거 정치 인터뷰인가? (웃음) 지극히 개인적으론 여성도 군대에 가고 싶다면 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가는 여성도 있지 않나. 내가 소방관이 꿈이듯, 누군가에겐 군인이 꿈일 수도 있다. 그걸 막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월드 인베이전>이라는 영화가 있다. 미국 영환데, 외계인이 전 세계를 침공한다는 내용이다. 거기에 맞서 싸우는 군인들을 그린다. 그 중에는 여성 군인도 있다. 공군인데, 주인공 분대와 합류하면서 분대장이 “싸울 줄 아나?” 라고 묻는다. 그때 그 여성 군인의 답변이 인상 깊었다. “얼굴 반반해서 살아 남은 게 아닙니다.” 라고 말한다. ‘니들이 할 수 있으면, 나도 할 수 있다.’ 라는 걸로 느껴졌다. 그렇게 누군가에겐 군인이라는 직업이 평생의 꿈이자, 사명감 넘치는 직업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중엔 분명 여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분들이라면 사명감과 나라를 위한다는 마음에서 군 복무를 할 것 같다. 그런 분들의 사기는 조금 더 다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만, 의무로 복무하는 사람에게 그런 사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의문이긴 하다. 군인에 대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사회 분위기와 지원이 필요할텐데, 그런 게 있나? 라고 물어보고 싶다. 의무로 인원 수를 채우는 게 아니라, 자긍심으로 군에 지원할 수 있게 하는 게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재밌었다. 노량진은 분위기가 우중충 한 게 있다. 공시생들만 모여서 그런 것 같다. 잠깐 이지만 분위기 전환도 되고 좋았다. 이제 현실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불 조심 하시고, 연휴 잘 보내시라. — 노량진에서 공시생 찾기가 생각보다 어려웠다. 설날이어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건지, 학원에 간 건지, 독서실에 간 건지 찾기가 어려웠다. 공시생을 인터뷰 하는 유튜브도 검색해서 어떻게 찾았나도 살펴보고, PC방에도 가보고, 식당에도 가봤다. 그렇게 만난 공시생들 대부분은 인터뷰를 거절했다. 시간 아깝고, 본인에게 떨어지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당연할 것이다. 검색해보니 공무원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쉽지 않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며칠간 노량진을 서성였다. 그리고 모 카페에서 우연히 소방 공무원 교재로 공부하는 분을 봤고,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인터뷰 문의를 드렸다. 처음엔 나를 의심스럽게 쳐다 봤으나, 예전에 했던 인터뷰들을 보여드리고, 내가 준비한 질문들을 보여드리자 재밌을 것 같다며 흔쾌히 응해주셨다. 앞서 인터뷰 내용은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해당 인터뷰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는 각자의 생각이니, 내 생각을 정리하며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몇 년 전, 코로나가 아직 한창일 때 집 근처 보건소에 간 적이 있었다. 코로나 의심 증상이 있었고, 검사를 위해서 선별 진료소를 간 거였다. 선별진료소가 있던 게 벌써 몇 년 전이라니 시간이 빠르다. 검사를 마치고, 집으로 가려는데 보건소 근처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걸 봤다. 그 쪽으로 가니 시뻘건 불길에 상점이 불타고 있었다. 불길은 거셌고, 검은 연기는 계속 위로 솟아 오르고 있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창이 깨지고, 깨진 파편이 튀어 나왔다. 당시 찍은 동영상 캡처 사진 그리고 불과 1분이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소방차가 왔고, 이미 준비를 끝 낸 소방관 분들이 내려 신속히 화재를 진압했다. 화재 진압은 순식간이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는 것 같았다. 소방관 분들은 뜨거운 불에 다가가며 물을 뿌리셨다. 멀찍이 서있는 내게도 화마의 뜨거움이 전달 됐다. 방화복을 입었다고 해도 그 뜨거움을 막지는 못할텐데 라며 숨을 죽였던 게 기억난다. 화마(火魔)란 화재를 마귀에 이르는 말이다. 화재 현장이 마치 마귀가 할 퀴고 간 듯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해당 화재 현장을 보고 화마가 할 퀸 자국이 어떤 것인지 체감할 수 있었다. 저 안에 사람이 있었다면, 그 공포가 어느정도 일까. 경험하지 못한 나는 감히 상상할 수 없다. 그리고 저 불 속으로 들어가 내가 아닌 남을 구하는 사람들의 심정과 사명감이란 무엇일까도 역시 상상할 수 없다. 확실한 건, 나는 할 수 없다는 점 뿐이다. 그런 사명감 있고, 위험한 직업에 도전하는 한 분과의 인터뷰는 그래서 특별했다. 어느정도 불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불길을 경험하고도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불에 맞서고 싶다는 분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그 분 외에 수 많은 소방 공무원 준비생 분들에게도 동일한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준석 대표는 군복무를 해야 공무원 응시 자격을 주겠다며, 공무원 경쟁률에 대해서 말했다. 2023년 소방 공무원 경쟁률은 합계 21.2이었고, 남성의 경우 20.3, 여성의 경우 30.8이었다. 선발 인원 자체에서도 남성은 730명을 뽑고, 여성은 63명을 뽑았다. 여성 지원자는 1,939명이었다. 2023년 경찰 공무원 2차 하반기 경쟁률은 남성이 15.1, 여성이 28.9이었다. 여성 지원자는 10,552명이었다. 이준석 대표는 해당 경쟁률과 지원자를 근거로 연 1만에서 2만 명의 병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지만, 실제로 어떻게 될지는 의문이 든다. 얼마전 문경 육가공 공장 화재 현장을 진압하다가 2명의 소방관 분들이 순직했다. 두 사람은 공장안에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갇힌 사람을 구하러 들어간 것이었다. 불행히 들어간 두 사람은 순직했고, 그 안에 그 두 사람이 구해야 할 시민은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수색 역시 인원이 부족한 상태로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만성적인 인원 부족 상태에, 이준석 대표의 공약이 과연 득이 될지 독이 될지 모르겠다. 인원 부족에 또 하나의 자격이 있어야만 지원할 수 있다면, 그건 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소방, 국방, 경찰 등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정치권에서 해야할 건, 이들이 보다 안전하고 사명감을 갖고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일 것이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다루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세금을 투입해도 아깝지 않은 게 개인적으론 소방과 국방이다. 그것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탐욕과 무능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부디 새로운 정치인들은 그러지 않기를 바래본다. 철골을 엿가락 처럼 휘게 만드는 그 화마 속에서 누구보다 살고 싶었을 문경 화재 공장 순직 소방관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 부디 좋은 곳에 가셔서 편안하셨으면 좋겠다. 왠지 그 두 사람은 좋은 곳에 가서도 웹툰의 이야기처럼, “제가 구하려고했던 시민은 무사한가요?”라며 첫 마디를 내뱉을 것 같다. 소방관들은 그런 사람들이니까.
[함께 변화] 내가 돈도 안되는 정치학 대학원을 나왔던 이유
[함께 변화]프로젝트는 우리의 더 나은 일상을 위해 더 나은 정치를 이야기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보통 이런 프로젝트를 함께 하게 되면, 저는 프로젝트의 필요성(당위성)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즉, 저는 이번 글에서 '왜 정치가 필요한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해요. 이 주제는 평소 제가 쓰는 글들처럼 다소 딱딱하게, 이론 중심으로 접근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 더 가볍게 '내가 왜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가'를 친구와 이야기하듯 풀어내고자 합니다. '더 나은 사회'를 꿈꾸며 - 발명가, 기자, 그리고.. 여러분들의 어릴적 꿈은 무엇인가요? 대통령? 운동 선수? 다양하게 있을 수 있겠지만, 저는 '발명가'가 꿈이었습니다. 당시 위인전 중 '에디슨'의 이야기를 보고, 와 나도 발명을 멋지게 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고 생각했거든요. 한참 과학상자로 이것저것 만들어보고, 중학생 때는 과고를 준비하기도 했지만, 발명가의 꿈을 그만두고 평범하게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됐습니다.  고등학생때는 꿈이 기자였어요. 저는 여전히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방향을 잡고 있었는데, 중학생~고등학생을 거치면서 저는 제 어머니께 논술을 배우면서 기자라는 직업이 여론 형성을 통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이 꿈 역시 고3때 접게 되었는데, 당시 교내에 있던 논문쓰기 대회에서 언론의 중립성과 객관성에 대한 글을 쓰던 중 신문 기자가 생각보다 '제약'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에요(프레이밍 이론 / 게이트키핑 이론). 저는 지금도 그렇지만 언제나 제 멋대로 사는 걸 되게 중요하게 생각했거든요. 글을 회사와 독자 눈치를 보며 써야 한다니! 제 성격에 맞지 않았어요. 대학교도 적당히 점수 맞춰서 경영학과에 진학했고, 이렇게 더 나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꿈은 가슴 속에 묻어두나 했죠. 그러다가 지금은 사라진 '크리에이터 클럽'이라는 곳에서 활동할 기회를 얻었는데, 거기에 있던 사람들은 너무나도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멋지게 사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저도 묻어두었던 '사회를 바꾸는 꿈'을 다시 실현하자고 동기 부여가 되었고, 정치학을 복수전공 했습니다. 그리고 졸업이 다가오며 제 진로를 고민하게 되었죠. '돈'이 안되는 정치학 대학원에 들어간 이유 건국대학교 정치학과에서 진로를 고민하면서 교수님들과 진로 상담을 했어요. 대부분 대학생들이 그렇지만 구체적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던 시절, 교수님들은 '국내에서 사회를 바꾸기 위한 일을 할 거라면, 국내 정치학 대학원부터 진학해 봐라'라는 공통된 조언을 해주셨어요. 저 역시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말하면서, 어떻게 바꿔야 할 지 모르겠기 때문에 공부를 조금 더 해보자! 라는 마음가짐으로, 약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연세대 정치학 대학원에 입학했어요.  그래서, 따지고 보면 돈이 되는지 안되는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정치학 대학원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저희 아버지는 공대 박사 출신이신데, 문과 대학원이 일반적으로 랩에 소속되지 않고 돈도 평균적으로 얼마 받지 못한다는 걸 모르셔서 충격받기도 하셨어요. 동료 연구자들도 다들 정말 열악한 환경에서, 혹은 저처럼 가정의 지원을 받으며 생활하고 연구하는 경우가 많아요. 대충 생각해봐도 경제학과, 통계학과, 경영학과 같은 학과에 비해 돈이 안될 건 알았지만, 대학원 생활 중이나 대학원 졸업 후나 꽤 막막하다는 건 들어와서 더 체감했어요. 오죽하면 제 지도 교수님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정치학 때려치우고 먹고 살기 위해선 다른 과 공부 빨리 하는 게 낫다'라고 하실 정도로, 정치학은 돈이 되기 어려운 학문이에요.  그래서, 후회하냐고요? 아니요. 저는 대학원에 들어온 덕분에, 그 짧은 2년의 시간동안 정말 많은 발전을 할 수 있었어요. 강제로 많은 논문을 읽고, 간단한 연구들을 진행하면서 국제정치는 물론 국내정치도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느 정도 머리에 그릴 수 있게 됐죠. 예를 들어, 독재 정권보다 민주주의 정부가 왜 좋은지 설명할 수 있게 됐어요. 경제 제재를 그렇게 많이 받아도 북한이 핵을 왜 포기하지 못하는지 알게 됐어요. 한국이 왜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할 수 있는지 알게 됐어요. 이런 지식들도 중요했지만, 제게는 사회 문제를 분석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게 됐다는 점이 제일 중요해요. '사회를 바꾸고 싶다'는 신념을 최소 20년을 넘게 관철해왔고, 그 길이 자연스럽게 '정치학'으로 연결됐다고 정리할 수 있겠네요. 정치, 그래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필요해? 그렇게 졸업한 정치학 대학원생이 봤을 때, 정치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필요하냐구요? 제 대답은 '그렇다'에요. 물론 정치학과 정치는 조금 달라요. 하지만 정치학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인용하는 이스턴의 정치 개념인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 '은 그 정의부터 결국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일을 뜻해요. 여기에서 '권위적'이라는 말이 어려우실 수 있는데, 민주주의 국가에서 권위는 '선거'등으로 발현되는 국민의 힘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캠페인즈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소수자의 권리, 동물권, AI, 교사들의 인권, 저출생 문제 등 다양한 문제에는 다양한 사회적 가치가 포함되어 있어요. 우리는 이 문제들을 정치 - 선거를 통해 뽑힌 공직자들이 여론과 전문성을 고려해 법을 만들고, 그 법과 제도를 실행하고 - 하는 방법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어요. [함께 변화]프로젝트를 포함하여, 캠페이너들의 여러 활동들이 진짜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저는 확신해요. 여러분들도 다른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무엇보다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자 '시스템'인 '정치'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고, 함께 해결해 나갔으면 좋겠어요..!  
[함께 변화] 한국 정치에 대한 소시민적 고찰
정치? 잘 몰라요 😐 정치에 아무런 관심이 없던 시절, ‘정치’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양복 입은 어른들이 뒤엉켜 싸우는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청소년이었던 당시 뉴스에서는 국회에서 벌어지는 몸싸움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국회의원은 맨날 싸운다는 인상이 있었죠. 정치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정치한다는 사람들이 미덥지 않다는 생각은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크게 슬프지는 않았어요. 그들이 열심히 싸우는 것이 제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정권이 바뀐다’라는 것의 의미부터 체감했던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쓰는 예산부터 달라졌으니까요. 그리고 대학 입시를 겪으면서 정부 정책에 따라 제게 주어지는 기회가 좁아질 수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죠. 그때는 투표권이 없다는 것이 억울한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드디어 투표권을 갖게 된 해에 세월호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이래서 투표를 잘해야 해”라는 정도의 후회(혹은 불평)로 그 일을 뒤로할 수 있을까요? 어른들이 뽑아놓은 대통령이 참사 앞에서 취한 태도는 경악을 넘어 공포스러운 수준이었습니다. 저는 사는 게 무서워졌습니다. 그때부터 사회의 여러 부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멀게만 느껴지던 정치가 내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정치 이야기 안 좋아합니다 재발 방지를 위해 온 사회가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조사부터 쉽지 않았고 생각보다 바뀌는 것이 없었습니다. 수학여행을 갔기 때문에 사고가 난 게 아니지만 수학여행이 사라졌고, 그 배에 탔던 게 잘못이 아님에도 생존자들은 고통스러웠습니다. 만천하에 무능력을 드러낸 정권은 탄핵당하고 다시 한번 정권이 바뀌었지만, 곧 여러 지도자의 추한 모습이 드러나면서 쉴 새 없이 분노가 찾아왔습니다. 실망하기도 지쳐서 잠시 모든 관심을 거두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아마 많은 사람이 비슷한 이유로 정치를 멀리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하지만 자꾸만 제 삶에 끼어드는 정치의 영향 때문에 마냥 무관심할 수는 없었습니다. 어쩌면 실망하는 일도 의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주주의는 국가의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명시한 것인데, 주인이 자기 것을 잘 살피지 않으면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책임을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까요. 세월호 참사에서 느꼈던 부채감을 떠올리며 다시 뉴스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눈 비비고 다시 들여다본 정치권은 여전히 싸움판이었지만요. 서로 상대의 부족한 점을 공격하기에 바빴고 중요한 사회 문제는 매번 싸움거리로 전락했습니다. 젠더 이슈나 계층 이슈로 여론이 갈라지고, 행정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 국가원수가 되는 이변까지 보고 나니 문제는 누가 정권을 잡느냐에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제가 너무 많은 게 문제 😵‍💫 무엇이 왜 문제인지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서 한국 정치의 문제점으로 자주 언급되는 ‘정치 양극화’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그러자 제 경험의 굴곡마다 이게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을 갈라 싸우는 정치인들의 모습,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실감하던 크고 작은 변화들, 끝없는 논쟁에 지쳐 정치와 멀어지는 마음마저 모두 말입니다.  어떤 정치인의 부조리함에 대해 기사가 나면 댓글에는 그의 소속 정당에 대한 비난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그 정당’이라서 문제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다른 당 정치인의 기사를 봐도 정당 거부감을 바탕으로 원색적인 비난이 난무하죠. 편이 갈라져 서로 비난하고 싸우는 동안 정작 중요한 사회 문제는 곪아가는데도 말입니다. 한국행정연구원에서 진행한 국민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유권자들은 특정 이슈를 제외하고 이념에 따른 의견 차이보다 정당에 대한 의견 차이가 크게 나타났습니다. 정책보다 정당이 차이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슈에 대한 찬반 논쟁보다 진영 구도로 갈라져 대립하는 일이 많고 우리 편이 하는 말이 맞다는 식으로 싸움이 전개됩니다. 그리고 싸우는 게 일이 된 정치인들의 모습 때문에 모든 정당의 이미지는 다수 국민에게 확실한 호감보다는 확실한 비호감으로 인식되고 있었습니다. 또한 한국 정당정치의 가장 중요한 해결 과제에 대해서 전체 답변자의 약 25%가 ‘거대 양당 중심의 대결 정치적 정치 구도’를 꼽았습니다.  정치양극화 시대 한국 민주주의 발전 방안 연구_발제 (2023.02.27) 한국형 정치 양극화 특징: 그만 좀 싸워요;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정치 양극화 현상이 문제가 되었지만, 한국은 좀 더 특징적인 양극화 현상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거대 양당의 대결 구도가 대표적인 특징인데요.  <한국의 정치 양극화가 가진 특징 13가지> 1. 극단적 당파성에 따른 무책임한 정당정치 2. 정당 내 파벌 양극화 3. 정책이나 이념적 차이보다 권력 이슈로 갈등하는 정치 4. 공존과 협력을 어렵게 하는 혐오의 정치 5. 법안 폭증과 과도한 입법 경쟁 6. 대통령 의제가 갖는 과도한 지배력 7. 대표되지 않는 사회 갈등 8. 정당의 낮은 자율성 9. 열정적 지지자와 반대자가 지배하는 정치 10. 소수 지배의 강화 11. 여론 동원 정치의 심화 12. 양극화된 양당제의 출현 13. 추종과 혐오의 팬덤 정치 국회미래연구원 박상훈 연구위원이 집약한 한국의 정치 양극화 특징은 13가지입니다. 목록만 보면 다소 중복되는 것 같은 항목도 보이는데요.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한층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열된 단어만 봐도 다소 경쟁적입니다. 사회 문제 해결보다는 권력 쟁취에 목적을 둔 경쟁으로 정치가 오염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한국의 정치 양극화: 유형론적 특징 13가지 (2023.07.03) 선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권한은 매우 큽니다. 선거 한 번에 정세가 크게 바뀌기도 하죠. 힘겨루기에서 진 정당은 많은 것을 잃게 된다는 인식 때문에 선거는 표를 확보하기 위한 전쟁이 됩니다. 정치를 전쟁처럼 이끌다 보니 분열과 혐오가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국회의원은 원래 국민을 대표하여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갈등을 부추겨서라도 정권을 얻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혐오 정치, 팬덤 정치 등이 힘을 얻는 데 좋은 수단이 되어 갈등에 불을 지핍니다. 진흙탕 싸움을 보며 누구에게 표를 던질지 고민하다 보니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고른다”는 말이 나오는 것 같아요. 윤광일 한국 정당 학회장은 정치의 양극화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다른 정당을 지지한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자신과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으로 보는 타자화(othering)와 이들을 싫어하고 불신하는 혐오(aversion), 그리고 심지어는 이들을 도덕적으로 사악한 사람들로 보는 경향인 도덕화(moralization) 현상이 강해 종교 분파 간 갈등과 유사한 분파주의(sectarianism) 특징을 보인다.”  증오 불러내는 정치 양극화, 왜 갈수록 독해질까 (2022.04.24)  다 싸웠니? 이제 할 일을 하자 🤫 여러 학자, 전문가가 정치 양극화 해결을 위한 방안을 내놓았는데요. 문제에 대한 진단처럼 해결 방안도 비슷한 맥락으로 모이고 있었습니다. 개별 기사와 논문에 따라 조금씩 관점이 다르지만 제가 이해한 요점은 ‘정치의 본래 역할에 충실할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기원으로 이야기되는 ‘아고라’의 기능은 ‘공론장’이었습니다. 토론과 협의로 문제를 해결하던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의견이 다르다고 상대방을 깎아내리거나 논외의 것으로 비난하지 않는 것은 토론의 기본입니다. 물론 여러 주장을 가지고 치열하게 다투게 되겠지만 지금처럼은 안 됩니다.  정치 양극화를 ‘싸우는 정치’로 정의하고 그 대안을 ‘싸우지 않는 정치’로 설정하는 것은 지극히 단순하다. 정치에서는 싸움 그 자체가 아니라 싸움의 방법이 중요하다. 그런 방법 가운데 정치 양극화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해결할 수 없게 만들고, 합의 쟁점으로 다뤄질 문제도 많은데 모든 정치 쟁점을 적대적 싸움의 쟁점이 되게 함으로써 사회를 분열시키고 시민을 사납게 만드는 유해한 싸움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정치 양극화는 싸워서가 아니라 잘못 싸워서 나타나는 문제다. 양극화된 정치,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_국회미래연구원 (2020.12.31)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다소 생경하지만 원래 정치는 갈등을 해소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달해 왔습니다. 갈등을 해소하려면 대화해야 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의견을 모아 결정한 것을 잘 수행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론으로는 쉽고 현실에 적용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만 싸우고 할 일을 해야겠죠? 당면한 과제가 너무나 많으니까요. "그놈이 그놈"이라는 이야기로 끝내지 않고 "정치인들이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라며 외면하지 않기 위해 개인적으로도 노력해 보려 합니다. 화낼 일이 많아서 ‘사나운 시민’으로만 머물 수도 있지만, 그렇게 시간만 지나버리면 수많은 죽음 앞에 또다시 미안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뉴스를 읽고 글을 씁니다. 스스로에게 “다 울었니? 이제 할 일을 하자”라고 하면서요. 시민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지만 할 수 있는 게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좋은 정치인을 뽑는 게 어렵다고 포기하지 마세요. 선거 이후의 국민들 역할이 훨씬 중요합니다.
좋은 일인 거 아는데 여유가 없어요 - 공화주의를 위한 기본적인 물질 보장 [처음 만나는 공화주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에서는 우리나라를 민주공화국이라 설명한다. 진정한 민주주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공화’에 대한 개념이 중요하지만, 민주에 비해 공화를 다룬 글은 많지 않다.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공화‘. 창작그룹 ’성찰과성장‘은 [처음 만나는 공화주의] 연재를 통해 ’공화주의‘에 대해 쉽게 풀어보고자 한다. 민주적 공화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3가지 요소가 강조된다. ▲적극적인 시민 참여 ▲기본적인 물질적 보장을 통한 민주적 평등 ▲공동선을 추구하는 정치가 바로 그것이다. 이번 4편에서는 민주적 공화주의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기본적인 물질적 보장’에 대해 탐구해본다. 고상한 일에 시간 쓸 여유 평일 내내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는 30대 직장인 조 씨가 있다. 그에게 공동선을 위해 “구청에서 정책 토론회가 열리는 데 같이 가볼래요?”라고 제안했다. 과연 조 씨의 반응은 어땠을까? 그런 고상한 일에 시간 낼 여유가 어디 있느냐는 표정과 함께 대답이 돌아왔다. “주중에 퇴근하고 들어오면 밤 9시예요. 그나마 주말은 오롯이 저를 위해 쓰고 싶고요. 남는 시간이 있다면 차라리 게임을 하며 쉬고 싶어요.” 성찰과성장은 '공화주의'에 대한 관심이 경제적 불평등 해소와 새로운 경제체제 구상에 직결되어 있다고 본다. 생계를 위해 온종일 일하고 주말에는 휴식을 원하는 사람에게 더 나은 사회(공동선)를 위해 논의하고 고민해보자는 권유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특히 사회적 약자로서는 이러한 제안이 현실과 동떨어진 무의미한 외침으로 여겨질 수 있다. 생계가 불안정한 상황에서는 공동선에 대한 고민이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최소한의 생계 걱정이 해소되어야만, 개인을 넘어서 사회 전체를 위한 고민을 할 여유가 생긴다. ▲ 생계 노동에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기고도 공동선에 대해 고민할 수 있을까? Ⓒ성찰과성장 실제로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한 토론회나 주민자치회 참여자를 보면 상대적으로 개인 시간이 많은 가정주부나 은퇴한 장년이 많으며 생활 전선에 있는 청년이나 중년 남성의 참여율은 저조하다. 전국 960개 주민자치회 위원의 평균 연령은 58세이며, 20대 위원이 단 한 명도 없는 자치회는 839개, 무려 87%(!)에 이른다. (2021 이은주 의원) 지난 23년 11월, 한국은행은 우리나라가 경제 침체 국면이라고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우리의 삶은 항상 힘들었던 것 같지만, 질적, 양적 데이터는 우리나라의 엄청난 성장을 입증했다(2021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그런데 한국은행이 공식적으로 이제 경제 ‘둔화’를 넘어 경제 ‘침체’에 들어섰다고 인정한 것이다. 여기에 부의 양극화와 불평등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 23년 3분기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소득 5분위 기준 1분위(하위 20%)의 소득은 전년동기대비 감소하였으며, 2~3분위의 소득은 증가하였으나 소득증가율이 물가 상승률(3.1%)을 밑돌았다. 이는 가계소득 하위 60%의 실질소득이 감소하였음을 의미한다. 또한 1분위의 가계소득은 112.2만 원, 가계지출은 123.7만 원으로 적자임을 확인할 수 있는데, 1분위의 적자상태는 국가통계포털에서 데이터 확인이 가능한 2003년부터 매년 보이는 현상이다. 이는 하위 20%가 생계를 위해 빚을 지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 상위 40%의 실질소득은 증가했는데 이는 국민연금, 기초연금 등 물가에 연동되어 지급되는 연금 수혜를 상대적으로 더 많이 받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 경제적 상황과 관계없이 다양한 계층의 만남이 필요하다. Ⓒ성찰과성장 공화주의는 공허한 이상이 아니다. 우리 삶에 맞닿을 때 공동체의 운영 원칙으로서 힘이 생긴다. 이 원칙을 현실화시키는 힘은 다양한 계층 간의 만남과 대화에서 나온다. 이러한 계층은 기득권층 뿐만 아니라, 생계를 위해 일상에서 분투하는 직장인, 자영업자 그리고 사회적 약자로 여겨지는 장애인, 여성, 노인, 아동, 이민자, 저소득층까지 다양하다. 다양한 계층이 어떻게 만날 수 있냐고? 방법은 간단하다. 이들이 만날 수 있는 시간과 재정적 여건을 만들어 주면 된다. 하지만 재정적 부담이 덜한 부유층과 달리 소시민에게는 재정적 지원이 필수다. 구성원이 공동선에 기여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재정적 자원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들에게 경제적 여유를 통해 시간적 여유까지 함께 제공함으로써, 공동선을 향한 참여와 이바지를 기대할 수 있다. 사회적 노동을 인정하는 참여소득 그리고 그 너머를 상상하며 사회 기여를 위한 시간과 재정적 여유를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한 가지 대답은 ‘참여소득’이다. 기본소득이 모든 이에게 최소한의 생활비를 보장하여 사회적 최저선을 끌어올리기 위한 제도라면, 참여소득은 교육 참여, 봉사, 돌봄, 직업 훈련과 같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에 참여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는 제도이다. 1990년대 영국 경제학자 앤서니 앳킨슨(Anthony Barnes Atkinson)이 처음 제안한 참여소득은 사회적 기여와 의무에 중점을 두고 있다. 비록 금액적으로 충분하지는 않지만, 참여소득은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실현되고 있다.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건 공동선을 위한 회의 참여 시 지급되는 회의참석비(예: 청년네트워크, 주민자치회, 참여예산위원)이다. 또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실업자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월 30만 원 정도의 ‘훈련 장려금’과 훈련비가 지급된다. 아이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가정에는 최대 20만 원의 가정양육수당과 최대 70만 원의 부모급여가 제공된다. 사회적 기업・마을기업・사회적 협동조합과 같은 사회적 경제 조직에 대한 각종 지원금, 일반 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노인이나 장애인을 위한 공공일자리도 역시 참여소득의 일환이다. 참여소득 제도는 시민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공동선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하고 참여할 수 있는 시간과 재정적 여유를 부분적으로나마 제공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현 단계에서 참여소득은 여전히 보조적인 수입원에 불과하다. 마치 봉사활동을 하고 소정의 교통비를 받는 것과 유사하다. 현재의 참여소득제도는 결함도 가지고 있다. 현재 시행 중인 대부분의 참여소득이 중앙정부와 지자체 관료의 행정력에 의해 결정된다. 시민과 공론을 통해 함께 결정한 소득이 아니기 때문에 그 내용이 참여소득 범주에 포함될 수 있는지 논란도 있고, 또한 참여소득의 존폐가 전적으로 행정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문제도 있다. ▲ 부유층과 빈곤층의 투표 참여 의향은 3배에 달한다. Ⓒ성찰과성장 2018년 한겨레 신문의 지방선거 국민 의식 조사에 따르면, 경제적 상황에 따른 최상위 계층과 최하위 계층 간 투표 의향 차이를 살펴보니 최대 3배 격차를 보였다. 이는 경제적 여유가 정치 참여도에 영향을 미침을 시사한다. 해당 조사는 투표율 향상의 장애물로 주거 불안정성과 경제적 불평등을 지목했다. 경제적 여건이 열악할수록 선거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지역 사회 내 네트워크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17대부터 21대 국회에서 보좌관으로 활동한 손낙구는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를 통해 부유한 지역일수록 투표율이 높다는 사실을 데이터로 입증했다. 소득 양극화는 공화주의에 큰 걸림돌이지만 문제는 점점 더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모두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끼지만, 계층 간 이동의 가능성, 즉 ‘사다리’의 격차는 점점 더 확대되고 있다. 소득 양극화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만능열쇠 같은 답을 내놓긴 어렵다. 그럼에도 분명한 점은 소득의 책임을 오로지 개인에게만 전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회적 차원에서 개인의 소득 불안정성을 해결할 수 있는 강력하고 포괄적인 소득 보장 체계의 마련할 수 있다면 한층 더 공화주의에 다가설 수 있다. ▲ 각자도생 사회에도 희망은 있다. Ⓒ성찰과성장 과도한 경쟁, 불안정한 노동 시장, 예고된 장기 경제 불황, 우리는 대한민국이 민주적이지도, 공화적이지도 않은 각자도생 사회로 무너지는 걸 경험하고 있다. 현대 사회는 인공지능(AI)이 촉발한 노동 시장의 변혁을 몸소 경험하고 있으며, 이는 경제 침체와 함께 고용 축소라는 현실로 이어지고 있다. 기존에 유지되던 일자리도 점차 불안정한 형태, 예를 들어 하청 노동이나 플랫폼 기반 노동으로 전환되는 추세다. 개인이 가계 경제를 전적으로 부담하는 현재 구조를 넘어, 기존 복지 제도 외에도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사회적 노동에 대한 인정이 필요한 때다. 사회 참여에 대한 소득 보장은 개인을 넘어, 공화주의 실현을 위한 필수 요소임을 잊지 말자.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대안을 배달해 드립니다" - 창작그룹 성찰과성장글 작성 ・ 편집 : 김설, 박배민, 신동주(성찰과성장.com) 참고 자료 이상준, “한국은 이미 참여소득 강국, 그러나…”, 프레시안, 2020.12.02. 이상민, “2023년 윤 정부 재정위기…‘눈 떠보니 후진국’”, 한겨레, 23. 11. 5. 정의정책연구소, “참여소득, 기본소득으로의 단계인가 사회적 경제의 실현인가”, 2020. 12. 01. 이은주, 전국 주민자치회 현황 전수 조사, 2021 통계청, ‘2023년 3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 2023
Active Research :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
0. 들어가기에 앞서 본 발제문은 나이오트가 제안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Active Research)와 나이오트가 그리는 새로운 연구생태계에 대한 제언 및 스케치입니다. 지면 및 발표시간의 관계상 밑그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며,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Active Research Journal와 나이오트의 활동을 통해 이야기 나눌 예정입니다. 1. 서론 : 왜 사회문제 해결에 연구가 필요한가? "내가 고통스러웠던 건 범죄의 잔혹성을 봐야 했기 때문이 아니었다.죄책감과 무력감 때문이었다.”- <나는 텔레그램 n번방에 있었다>, 한겨레 오연서 기자 기고문. Esquire. 2020년 4월 17일 2020년. 경악할만한 사건 앞에 온 국민이 분노하고 있을 때에, 본래 패션잡지인 에스콰이어 지에는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 대해 주요하게 보도했던 한겨레 오연서 기자님의 기고문이 올라왔습니다. 처음 제보를 받은 순간부터 피해자와 긴밀히 연락했던 긴박한 상황들에 대한 소회를 기록한 그 기고문에는 사회문제 해결의 일선에 서 있는 기자를 비롯한 여러 체인지메이커들이 실제 마주할 감정들이 기록되어 있었고, 그 감정 중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무력감’이었습니다. 무력감. Helplessness로 번역되는 이 단어에 대해 네이버 지식백과는 ‘영아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때 반드시 양육자와 같은 타인들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뜻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마치 갓 태어난 아이가 자신의 생존과 모든 욕구를 완전히 타인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듯이, 거대한 사회문제 앞에서 그것을 어찌 해야 할 지 모르겠고 개개인 한 두 명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임을 알게 될 때에 느끼는 감정. 사실 이 감정은 사회문제 해결에 진심을 가졌던 모두가 한번쯤은 느꼈을, 어쩌면 항상 지니고 다니는 감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우리는, 사회문제 앞에서 이러한 무력감을 느끼게 된 것일까요. VUCA :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상태 현대사회를 나타내는 주요한 용어로 사용되는 VUCA는 급변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을 줄인 말입니다. 1990년대 미국 육군대학원에서 군사용어로 사용되던 이 단어가 사회 전반에 확대되게 된 데에는 그만큼 사회의 변화가 급격해지면서 국가안보 뿐만 아니라 사회일반에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VUCA라는 특성에 대해서는 보통 2가지 축을 가지고 설명하는데요. 하나는 ‘현재의 문제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가’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내가 행동 했을 때에 내 행동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가’입니다. 이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이 두 가지 축 앞에서 마주하는 현실은 우리가 ‘상황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 과 그 이상으로 ‘우리의 행동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 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말 그대로,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기에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태. 그것이 우리가 느끼는 ‘무력감’의 실체이지 않을까요. 사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이 사회문제의 해결에 있어 ‘연구’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결국 문제상황에 대한 이해와 나의 행동에 대한 이해 모두 각각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여전히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연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연구가 가지는 선입견 때문인데요. 연구는 ‘현장성이 없고’, ‘느리고’, ‘탁상공론만 반복한다’는 것이죠. 사실 이러한 선입견에 근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연구의 대부분은 ‘이미 일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그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그것은 연구 자체가 추구하는 ‘학문적 엄밀성’으로 인함일텐데요. 과학적 사실에 입각한 지식을 도출하고자 하다보니 연구의 자료를 설정함에 있어 의견이 가라앉고 사실이 확실해진 과거의 자료를 보다 선호하게 되고, 이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지금껏 축적되어 온 전문지식을 활용하면서 그 내용이 점점 난해해지기도 했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구 없는 사회문제 해결’은 가능한 것일까요? 연구에는 그 자체로 기록과 축적, 사유라는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연구를 하지 않고 사회문제의 해결에 뛰어드는 것은, 마치 전쟁터에서 적에 대한 정보와 지형에 대한 정보, 그리고 아군의 전략전술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그저 눈 앞의 적들만을 상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연구를 통해 우리는 앞선 세대의 지식과 연결되고, 또 문제의 본질을 파악해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죠. 결국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현장에서는 “현장의 문제해결에 즉시 사용할 수 있는”, 그리고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현상에 맞추어 대응할 수 있는” 연구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문제의 해결에 필요한 연구’는 어떻게 해야 가능할 수 있을까요? 2. Agile Research : 문제해결을 위해 빠르고 민첩하게 연구하기 사실 사회문제의 해결에 앞서 이러한 VUCA에 발빠르게 대처한 영역이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비즈니스 영역’인데요. 앞서 이야기한 VUCA의 성격이 그들이 문제를 해결하고 돈을 벌 수 있는 고객들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났고, 기존의 방식으로는 풀 수 없는 고객들의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비즈니스 영역에 있어서 새롭게 풀리지 않는 고객의 문제는 곧 그들의 ‘사업기회’라는 것을 의미했죠. 이러한 새로운 사업기회를 잡기 위한 많은 시도들이 있었지만, 오늘 소개해드릴 시도 중 하나는 ‘애자일(Agile)’이라는 방식입니다. 애자일(Agile)이란 단어는 사전적 의미로 ‘민첩한’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일종의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인 ‘애자일 소프트웨어 개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001년 17명의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애자일 소프트웨어 개발 선언’이라는 성명서를 만들면서 시작되었는데요.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설명 드릴 기회가 있겠지만, 간단하게는 “프로세스를 짧게 가져가면서 결과물을 만들고 발전시키는 사이클을 반복해서 변화에 유연하고 신속하게 대응하는 방법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수개월의 시간이 소요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보신 분들은 프로젝트의 진행과정에서 프로젝트 본연의 목적보다 프로젝트 계약서의 요구사항만을 충족하기에 급급했던 기억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에 있어서도 같은 상황들을 마주했던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특히 고객들의 요구가 빠르게 변하는 불확실한 환경에서, 정작 오랜 시간에 걸쳐 제품을 개발했는데 그 제품이 제대로 쓰이지 못하는 상황들을 마주합니다. 이에 따라 제품 자체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키는 엄격함보다 빠르고 유연하게 니즈에 대응하는 방법론이 필요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개발된 방법론이 애자일 방법론(Agile Methodology)입니다. 애자일 방법론 상에서는 큰 프로젝트의 요구사항들을 여러 단계로 쪼개어서 빠르게 개발하고 테스트하면서 사용자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그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프로젝트의 목적(비전)에 맞춰 방향성을 조정할 수 있고, 동시에 테스트 과정에서의 피드백을 빠르게 반영하여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되었죠. 현재의 애자일 방법론은 소프트웨어 개발에 있어서도 일대 혁신을 가져다주었고, 이를 바탕으로 신속하고 민첩하게 비즈니스를 수행하는 스타트업(Startup)들의 등장과 스타트업 생태계의 산업 혁신에까지 영향을 주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VUCA로 대표되는 사회적 난제들을 해결하는 연구방법론에 있어서도 이러한 애자일(Agile)한 접근 방식을 사용하게 된다면 어떨까요? 연구프로세스 자체보다 진정한 ‘연구협업’이 일어날 수 있다면, 논문화 자체보다 문제해결에의 기여에 초점이 맞춰진 연구를 할 수 있다면, 현장과 연구자가 ‘문제해결’에 초점을 맞춰 협업할 수 있다면, 연구계획 자체보다 연구를 통해 해결할 가치에 초점을 맞춰서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는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요? 저희는 그런 연구를 적극적 연구, Active Research라고 이름 짓고 사회문제별로 연구공동체를 조성하면서 정말로 사회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목표를 가진, 빠르고 뾰족한 연구들을 만들어보고자 합니다. 2. Active Research란 무엇인가? (Ver 1.0) 저희가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인 Active Research의 경우, 기존의 연구라는 관점만으로 해석하기에 분명하게 다른 점들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에 대해 적극적 연구, 즉 Active Research라고 명명하고 그에 대한 특징들을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아직 스케치단계이고, 보다 구체적인 원칙과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데에는 많은 연구와 시행착오, 고민들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Ver 1.0 정도의 내용으로 봐주시면 좋을거 같습니다. 저희가 지금까지 정리해본 Active Research는 아래와 같은 특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1) 문제해결 지향 먼저 Active Research는 먼저 ‘사회문제를 해결한다’라는 명확한 목적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확한 지향과, 그 지향의 중심이 생각이나 글이 아닌 현장의 변화에 있다는 것은 기존 연구와 분명하게 다른 점들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Active Researcher들은 아래와 같은 특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특정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 및 ’진정성‘을 연구의 동력으로 삼는다. Active Researcher들이 가지고 있는 공적 의식(Public Mind)은 연구의 동력이 되는 동시에 전혀 새로운 형태의 연구를 가져가게 합니다. 연구의 여러 난관에도 불구하고 문제의식과 진정성은 그 모든 난관들을 넘게 해주고 연구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북극성‘과 같은 요소입니다. 이들은 ’장기적 관점‘으로 연구를 수행한다. Active Researcher들이 풀고자 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다양한 층위의 연구가 연속적으로 수행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연구를 설계함에 있어 단회적인 연구설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중장기적인 연구계획을 가지고 연속적인 연구를 수행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은 ’지식인’의 유산을 계승합니다. Active Researcher들은 학문공동체의 엄밀성과 연구윤리를 중시하며 기존 학계의 단단하고 깊이 있는 학술문화를 존중합니다. 기존 학계의 연구유산을 계승하며 앞선 연구자들의 선행연구들을 토대로 연구를 수행하고, 과학적 사고와 기준에 따라 연구의 스탠다드를 맞추기 위해 노력합니다. (2) 혁신성 사회적 난제가 풀리지 않는 이유는 기존의 방식이 더 이상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유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Active Research의 주요한 특징은 혁신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제중심으로 연구하면서 간학문적이고 융합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필요한 과감한 연구도전이 이루어집니다. 이 모든 것은 실패를 학습의 일환으로 여기는 문화에서 기인합니다. 이들은 ’주제중심‘으로 학습하고 연구합니다. 이들의 목표는 사회문제의 해결이기 때문에 해당 문제를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여러 자료와 정보, 지식들을 주제중심으로 습득합니다. 모든 문제들은 다층적이고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은 필연적으로 ’다학문적‘ 속성을 가지고 있고, 주제를 중심으로 필요한 지식들을 습득하고 활용하는 데에 능숙합니다. 이들은 ’도전적인 연구‘를 하는 데 있어 주저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해결의 실마리나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서는 보다 새롭고 도전적인 방식의 연구가 요구되며, 이들은 이러한 연구를 수행함에 있어 가질 수 있는 위험성을 인지하며 도전적인 방법론과 연구방식을 차용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빠르게 실패하고 학습하면서’ 성장합니다. 동시에 이들은 연구의 ’실패‘를 서로 격려하며 보다 나은 연구로 이어질 수 있는 ’학습‘을 중시합니다. 연구 하나하나의 성패여부보다 연구들을 통해 문제해결을 향해 얼마나 ‘성장’했는가에 초점을 맞춥니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에 따라 연구계획을 바꾸는 데에 주저하지 않고, 그에 맞는 지식과 툴들을 적극적으로 학습합니다. (3) 협력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한 명의 뛰어난 연구자가 뛰어난 연구물을 낸다고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Active Research를 지향하는 연구자들은 서로의 연구과정과 연구자료를 공유하며 함께 연구를 수행해나가는 데에 주저함이 없습니다. 동시에 연구와 현장, 대중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사회가 함께 연구를 활용해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도록 돕습니다. 이들은 ’협력‘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들이 풀고자 하는 사회문제는 한명의 영웅이 모든 문제의 원인과 내용을 파악하고 대안까지 제시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들은 기꺼이 자신과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연구하고자 하는 이들을 환영하고, 이들과 연구교류와 데이터 공유, 상호학습을 하고자 하며 여러 협력 연구를 통한 문제해결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이들은 ’현장성 있는 연구‘를 수행하고자 합니다. 이들의 목표는 결국 ’사회문제해결을 통한 현장의 변화‘이기 때문에 이들의 연구는 결국 사회문제가 일어나고 있는 현장과 현실 그 자체를 향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현장의 당사자 및 현장전문가들과의 교류를 중시하며 현장의 1차 데이터를 토대로 연구를 수행하고자 합니다. 이들은 연구를 통한 ’대중과의 소통‘에 주저함이 없습니다. 이들의 연구는 결국 사회문제의 본질과 원인, 그리고 대안을 통찰하는 데에 있지만 결국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중의 관심과 지지, 그리고 행동이 요구되어집니다. 이들은 대중의 언어로 자신들의 연구결과를 공유하고, 대중들과의 소통을 통해 이러한 연구를 확산시키며 또 대중적인 방식으로 연구를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3. Active Research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Active Research라는 연구방식은 기존의 연구와 비슷한 것 같지만 조금씩 다른 측면들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기존의 연구계에서 Active Research를 수행하기에는 다소 다른 기준들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Active Research를 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요소들이 필요할까요? 이번 발제문에서는 스케치만 그려봅니다. (1) 연구자들의 공동체 먼저는 Active Research의 방향성에 공감하고 이를 지지해줄 수 있는 연구공동체가 필요합니다. Active Research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체득하고, 이미 Active Research를 수행하고 계셨던 연구자들이 그 길을 보여주고 또 함께 Active Research를 진행해나간다면 그 공간이 연구자들이 안전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Active Research를 수행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 줄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Active Research가 무엇인가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필요합니다. Active Research의 특성이 잘 구분되고, 그 관점으로 어떻게 연구를 바라볼 수 있는지, 더 나아가 Active Research가 가능할 수 있는 연구 프로세스에 대한 개발이 필요하겠죠. 그리고 Active Research의 관점으로 닮아갈만한 기존 연구와 연구자에 대한 발굴이 필요합니다. 이미 누군가는 사회문제해결을 위해 Active Research의 방식으로 연구를 해온 연구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Active Researcher로 호명하고, 이들이 축적해온 연구의 유산을 Active Research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또 이들과 함께 그러한 공동체를 만들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영역별로 함께 연구해나갈 연구공동체를 꾸려나가야 할 것입니다. 아직 연구를 모르지만 Active Researcher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과 이미 연구를 하고 또 배우고 있는 사람들 중에 Active Research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주기적으로 Active Research에 맞는 활동들을 수행하면서 그 서사를 단단하게 세워나가는 것. 이러한 활동들이 Active Research의 주체가 되는 연구자를 길러내는 연구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활동들이 되어 줄 것입니다. (2) 연구자들을 담아낼 공간 Active Research가 가능하기 위해서 연구자들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연구를 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이 공간의 개념은 그저 물리적 공간을 넘어서서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 전반을 의미합니다. 기존의 연구공간과 연구 프로세스는 Active Research에 있어서 보수적으로 반응하기 쉽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먼저는 연구자 개개인을 위한 공간이 필요합니다. 중장기적인 연구를 지향한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에, 연구자들이 긴 호흡으로 연구자료들과 연구과정들을 아카이빙할 수 있는 공간들을 마련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나 같은 방향성을 가진 연구자들의 경우, 서로의 연구과정을 공유하면서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동시에 연구를 실제 해낼 수 있는 단계별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Active Research의 특성상 장기간의 주제를 가지고 도전적인 연구를 하게 되기 때문에, 모험적인 활동들을 수행하는 데에 연구를 지탱해 줄 안전망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연구자금에 대한 지원이나 연구계획에 대한 펀딩, 연구도전들에 대한 피드백과 코칭 등을 받을 수 있는 여러 환경들의 조성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각 문제별, 주제별로 함께 연구를 축적하고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의 조성이 필요합니다. 결국 ‘사회문제의 해결’이라는 지향을 가지게 되는 연구의 특성상, 한 두 연구자의 특출난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각 주제별, 영역별 연구자들이 서로의 기여를 보장하는 선에서 연구자료와 연구과정들을 적극적으로 교류하면서 함께 연구를 해나갈 수 있는 협업의 환경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연구자들이 연구할 수 있는 ‘공간’은 어떠한 연구 ‘플랫폼’의 형태를 가질 것이며 그 플랫폼 내에서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자신들의 연구물을 정리하고 작성하고 교류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3) 연구자들 주변의 지지공동체 마지막으로 Active Research에서 꼭 필요한 요소 중 하나는 연구자들의 연구가 실제 사회문제의 해결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지지공동체의 존재입니다. 연구자들의 연구를 지지하고 응원할 뿐만 아니라, 현장과 대중의 시선으로 연구에 적극적으로 피드백하고 더 나아가 연구를 활용해서 실제 사회문제 해결에 적용함으로서 사회문제를 실제로 해결해나가는 공동체의 존재가 연구자들에게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연구자들이 연구해내는 결과물을 대중과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지식 포맷이 필요합니다. 현재의 논문구조는 학술적으로 엄밀하게 정리된 지식을 담기에는 적합하지만, 관련 자료들을 검색하고 필요한 지식들을 얻고 대중적으로 이해하는 데에는 다소 어렵게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연구에 흥미를 가지는 대중들과 긴밀하게 연결될 수 있고 또 필요한 지식들이 적절하게 연결될 수 있는 새로운 지식 포맷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연구물에 대해서 대중들과 함께 토론하고 피드백을 나눌 공론장이 필요합니다. 학회 중심으로 학자들만의 전유물로 지식이 공유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당사자들과 관심을 갖게 되는 전문가 및 일반 대중들이 자유롭게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하고 피드백할 수 있는 공론장이 필요합니다. 이 공론장을 통해 연구자들 또한 현장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들의 연구에 피드백을 반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연구를 지속하고 나아가 사회에 임팩트를 내는 때까지 지속적으로 지지해줄 수 있는 지지공동체가 필요합니다. 마치 아티스트에게 팬들이 있듯이 연구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연구과정에서 필요한 지원과 지지를 해주고 더 나아가 연구와 현장을 잇는 가교역할을 해줄 수 있는 연구지지자들의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지지공동체의 존재는 연구자가 연구를 계속해서 수행하는 동력이 될 뿐만 아니라 해당 연구의 공공성을 담보하면서 동시에 연구가 실제 사회문제의 해결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에너지를 제공해줄 것입니다. 4. 결론 : Active Research의 시작을 선언합니다. 저희는 이러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Active Research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그 중 이번 컨퍼런스에서는 24주 사회문제해결형 연구자 부트캠프인 <연구원정>에 참여하신 분들이 발표를 진행하게 되는데요. (1) 연구원정 연구원정(Research Fellowship)은 24주 사회문제해결형 연구자 부트캠프입니다. 총 6개의 트랙으로 구성되어 있는 연구원정 프로그램은 처음 ‘연구주제설정’부터 시작해서 실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연구계획서 작성 까지의 전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연구원정의 개발 자체가 Active Research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Active Research에 대한 필요성과 중요성을 느끼고 있는 중에, 결국 이 연구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연구 프로세스 자체가 사회문제해결에 초점을 맞추어 재구성되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를 실제로 수행해보기 위해 저희는 기존의 연구를 수행하는 프로세스와 대학원 과정 자체에 대한 해킹을 진행하고, 이 내용을 문제정의 및 문제해결프로세스와 접목시켜서 24주 과정의 연구 프로세스를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 자체가 사회문제해결에 진심인 사람들이 연구를 배울 수 있는 부트캠프 프로그램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베타테스트를 거친 끝에 현재 기후위기 4기, 공공문제 1기, 교육문제 1기가 진행이 완료된 상황입니다. (다음 기수는 2월 중에 모집 예정입니다.) 연구원정 모집 페이지 (클릭!) 연구원정을 진행하면서 다양한 배경의 대원들을 만나고 함께 연구를 수행하면서, Active Research에 대한 실체를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Active Research의 방향성은 연구연차를 막론하고 누구나 가져갈 수 있는 부분이라는 점과 함께 연구원정을 부트캠프 형태로 운영하면서, 사회문제해결의 진심을 보전하면서 연구역량을 길러가는 연구환경의 중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되았죠. 이에 대한 연장선으로 저희는 2월 중에 ARC(Active Researcher Crew)라고 불리는 사회문제해결형 연구 커뮤니티를 런칭할 예정입니다. ARC는 영역별 문제의 해결에 진심인 연구자들이 함께 모여서 연구를 훈련하고 실제 수행하면서 연구 결과를 만들어내는 온라인 커뮤니티 프로그램입니다. 앞선 연구원정 프로그램이 연구프로세스 전반에 대한 교육과 연구계획서 완성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이라면, ARC는 실제 연구를 빠르고 뾰족하게 수행하면서 여러 연구자들과의 협력과 교류를 통해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커뮤니티가 될 예정입니다. ARC에 대해서도 조만간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2) 2024 연구원정 LAUNCH Conference 네, 긴 이야기를 돌고돌아 2024 연구원정 LAUNCH Conference에 도달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24주 내내 함께 진행한 대원분들의 연구주제가 너무도 반짝였기에 그 문제해결에 대한 바이브를 더 많은 분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구요. 다음으로는 이 반짝반짝한 연구주제들이 실제 연구로까지 이어지기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지속적으로 연구에 대해 지지해주고 지원해줄 수 있는 ‘지지공동체’의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컨퍼런스를 통해 연구계획을 선언하는 대원들을 지지해주고 지원해줄 수 있는 지지자들을 찾고자 하구요. 동시에 연구자분들에게도 이번 컨퍼런스가 계속해서 이 연구들을 수행해나가실 수 있는 큰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기술과 기업가정신을 통해 산업을 혁신하는 기업들인 스타트업 생태계에는 데모데이Demoday라는 문화가 있습니다. 창업 3년 이내의 극초기 기업들이 투자자들 앞에서 자신들의 사업계획을 발표하는 행사이지요. 사실 이때까지 창업가들은 이렇다 할 뚜렷한 실적을 내지 못합니다. 하지만 MVP(Minimum Viable Product)라는 파일럿 결과물과 자신들의 사업계획을 가지고 사업의 가능성을 설득하고, 투자자들은 기업의 현재 자산과 수익이 아닌, 창업가의 역량과 사업계획의 잠재성을 중심으로 투자를 집행합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토스, 배달의민족과 같은 산업을 혁신하는 기업들이 초기자원을 확보할 수 있었고 자신들의 사업계획을 실현해서 산업을 혁신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Active Research 또한 스타트업 생태계 못지않게 큰 임팩트를 낼 수 있는 생태계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이 6명의 반짝반짝한, 가슴 뛰는 연구 만큼이나 수백, 수천가지의 문제들이 꼭 연구할 연구자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관심 있으신 연구자 및 예비연구자분들도 언제든 함께 해주시길 기다리겠구요. 연구자가 아니더라도 이 분들의 연구에 대해 계속해서 관심 가져주시고, 사회문제들의 해결과 사회의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는 “면역체계”를 구축하는 그 날까지 함께 해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문헌 Bennett, N., & Lemoine, J. (2014). What VUCA really means for you. Harvard business review, 92(1/2). 오연서. "나는 텔레그램 N번방에 있었다." Esquire. 2020년 4월 17일자. https://www.esquirekorea.co.kr... 애자일 소프트웨어 개발선언. (2001). https://agilemanifesto.org/iso... "무력감". 네이버 위키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 애자일(Agile)이란 무엇인가, https://m.post.naver.com/viewe...
[함께 변화] 선거 공약이 내게 미칠 영향을 상상하는 것
“노인들 무임승차가 문제야. 노인들이 양보해야지. 요즘 누가 65세를 노인으로 생각해. 75세로 연장하던가. 젊은 사람들만 고생이라니까. 우리랑은 시대가 다르잖아.” 지난 1월 24일 저녁 10시, 2호선 외선순환 열차안이었다.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새로 산 책의 서문을 읽고 있었다. 늦은 저녁에도 앉을 자리 없이 사람이 붐볐다. 환승 가능 역에서 사람들이 내리더니, 이내 옅은 술냄새와 진한 스킨 냄새를 풍기는 두 사람이 탔다. 직장 선/후배 혹은, 학교 선/후배처럼 보였다. 두 사람 모두 머리에 눈이 서려있었다.  둘은 65세 이상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관련 대화를 하고 있었다. 얼마전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쏘아올린 공약이다. 찬성하든, 반대하든 이목을 집중시키는 공약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유권자 다수의 표를 잃을 수도 있는데 꽤 과감했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책이나 읽자 싶었지만, 이내 책이 읽히지 않았다. 얼굴을 가리고, 귀를 쫑긋세워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다. 참기엔 귀가 너무 간지러웠다. 선배로 보이는 사람은 “예전에는 그냥 빨리 갈 수 있는 걸 탔단 말이야. 그게 지하철이든, 버스든, 택시든. 그런데 무임승차 가능하니까, 그때부터는 지하철만 타게 돼.” 그는 말을 이어갔다. “근데 얼마전에 이준석이 무임승차 폐지한다고 공약 걸었잖아. 나는 이거 잘한거라고 봐.” 라며 뒤이어 말을 강조했다. “노인들 무임승차가 문제야. 노인들이 양보해야지. 요즘 누가 65세를 노인으로 생각해. 75세로 연장하던가. 젊은 사람들만 고생이라니까. 우리랑은 시대가 다르잖아.” “결국 그거 적자나면 누가 매워? 젊은 사람들 세금으로 매워야 돼. 그게 얼마나 부담이 돼. 우리 때처럼 뭐하면 다 잘 되고, 성공하는 시기가 아닌데. 아무리 본인들이 세금을 냈다고 하지만, 그때는 혜택으로 다 돌아왔어. 혜택도 다 누린거고. 근데 젊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단 말이야.” 혜택을 받고 있는 사람이 혜택을 줄여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게 신기했다. 문득 어떤 백그라운드를 갖고 있는 사람일까 궁금했는데, 곧바로 말했다. “내가 사학연금 받잖아.” 사학연금을 받는다는 건, 일평생 사립학교 교직원이었다는 말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중 어느 학교였는지는 모르지만, 어디에서 근무했든 ‘선생님'이라는 위치였던 건 동일했다. 요즘은 어떤지 정확히 모르지만, 과거 선생님으 존경받는 직업이었고, 사회적 위치가 있다고 여겨진 직업이었다. 그 말을 듣고보니, 말하는 사람에게 여유가 있어 보였다. 애초 지하철, 버스, 택시든 가리지 않고 빨리 도착하는 걸 탔었다는 말에서 금전적 여유가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뒤에는 어떤 내용으로 말하나 궁금하고 더 귀를 세웠는데, 아쉽게도 두 사람은 다음 환승역에서 부리나케 내리고 말았다. 더 듣지 못해 아쉬웠다. 읽고 있던 책을 다시 폈지만,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임승차 관련 내용이 자꾸 떠올랐다. 잠깐 상상을 해봤다. 저 공약이 실현되면 어떻게 될까. 우선 지하철에 사람들이 줄어들 것 같다. 지하철 타는 노인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인들은 어디로 갈까.  한국 노인들은 지하철에서 목적지 없이 종점을 왕복하며 하루를 보낸다. 지하철 없는 노인들은 어디로 가서 시간을 보내게 될까? 우리 사회에 노인들이 보낼만한 즐길거리가 있나? 거리에서 두는 바둑? 장기? 우리 사회 노인들이 문화생활을 영위할만큼 배려가 되어 있나?  여러가지 모습이 떠올랐다. 값싼 커피숍에 와서 커피를 마시는 노인들, 미로 같은 키오스크 앞에 서서 어쩔 줄 몰라하는 노인, 카페에 시험 공부하러 왔다가 자리가 없음을 알고 돌아가는 대학생, 자소서를 쓰러 왔다가 돌아가는 취준생, 갈 곳 없어 집에만 있어서 우울증 증세가 심해진 노인들 등. 재밌는 모습도 떠오르고, 씁쓸한 모습도 떠올랐다. 무임승차 관련해서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궁금해 관련 기사를 찾아봤다. 무임승차 폐지에 찬성하는 기사가 많았고, 그 중에는 청년과 노인 갈등을 말하는 기사도 있었다. 한 기사에 따르면, “밤새도록 실험하고 녹초가 되어서 왔는데, 등산복 입은 노인이 자리르 비켜줄 것으로 요구했다” 라며 “등산할 체력으로 서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며 청년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무임승차까지 하면서, 노인들이 청년에게 자리 양보까지 요구한다 목소리였다. 노컷뉴스는 해당 주제로 투표를 진행했다. 네 개 답변이 있었다.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해야 한다.’, ‘혜택 유지하되 연령 상향 등 조정 이뤄저야 한다.’, ‘복지 일환이므로 유지해야 한다.’, ‘잘 모르겠다.’. 투표 결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약 50%를 차지했고, 혜택 유지하되 연령 상향 등 조정 필요가 약 30%였다. 실시간이어서 달라질 수는 있으나, 현행 무임승차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물론, 투표 연령대가 어떻게 되는지 확인할 수가 없어서 정확하지는 않다. 시사위크는 무임승차로 인한 적자가 사실인지 팩트체크하는 기사를 썼다. 기사는 무임승차로 인한 수익감소가 있고, 무임승차를 폐지했을 때 분명 수익이 증가하는 건 맞지만, 기본적이 적자는 지하철의 싼 요금에 있다며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의 무임승차로 인한 적자가 ‘대체로 사실 아님'이라고 썼다. 예전에 한 노인 관련 조직 대표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일종의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노인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나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노인들은 평생 살아오면서 세금을 낸 분들이예요. 그 분들이 낸 세금으로 우리 사회가 이뤄질 수 있었어요. 지금의 혜택은 그때 낸 세금에 대한 보상이예요.” 그리고 이런 말도 덧붙였다. “우리는 모두 노인이 돼요.” 지하철에서 본 노인들의 대화를 들으며, 관련 기사를 찾아 보며 여러 생각이 맴돌았다. 지하철 무임승차에 대해서 무엇이 맞는건지는 모르겠다. 각자의 판단에 달린 문제다. 하지만, 한 개의 공약으로 우리 사회를 조금 더 둘러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사학연금이든, 공무원 연금이든, 국민연금이든 노후가 보장된 사람에게는 지하철 무임승차가 시간을 보내는 놀이나 복지보다는, 싸게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일 것이다. 반면, 노후 보장이 없고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는 사람에게는 마음 둘 곳이고, 삶의 긴장감을 낮춰주는 복지일 수도 있다.  후자의 사람에게 75세 연장은 긴장의 시간을 10년 더 늘리라는 요구로 들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더 나아간다면, “과거에 당신이 세금을 냈지만, 지금은 보장을 받을 수 없습니다.” 라는 말이었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다. 나와 전혀 상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실은 내 일상에 큰 영향을 준다.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처럼, 당장 내 세대에 관한 게 아니라고 해도 그것이 돌고 돌아 내게 돌아온다. 무임승차로 인한 적자가 계속되는 한, 지하철 요금은 인상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내 지갑은 더욱 얇아질 수 있다. 그렇다고 무임승차를 중단하자니, 사회의 안전망 하나를 허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경제적 문제가 있으면 복지를 허물어야 한다는 논리가 지배된다면, 훗날 내가 낸 세금의 보상을 내가 받게 될 때 동일하게 내 보상이 뒤로 밀리는 건 아닐까 싶다. 그때 이건 아니다 라고 내 목소리를 낼 때 과거의 나 역시 동일한 논리를 지지하지 않았나 생각하게 될 것 같다. 내가 내세운 목소리가 내 목을 쥐는 모양새. 이것만은 막아야겠지만, 당장의 경제 논리는 너무 강해보이기에 섣불리 가타부타 말하기가 어렵다. 선거철만 되면 쏟아지는 수많은 공약이 언젠가 내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쏟아지는 공약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는 것도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라고요? (3)
* 이 글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에 대해 이야기하는 Active Research Journal의 뉴스레터 중 일부입니다. 연구탐사대에서 매주 발행하는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싶으시다면 이 링크 를 클릭하세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라고요? (1) 읽으러가기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라고요? (2) 읽으러가기 #4.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듯,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 또한 그러합니다. 나이오트는 이 지난한 과정을 기꺼이 하고자 하는 분들과 함께 연구탐사대(Research Explorer)를 꾸려 함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역량을 훈련하고 있습니다. 이 중 24주 사회문제해결형 연구자 부트캠프인 연구원정(Research Fellowship)에서는 자신이 진심인 사회문제를 중심으로 그에 관련된 논문과 선행연구들을 학습하고, 연구설계과정을 학습하면서 진심이 빚어낸 연구계획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연구계획, 사회문제의 대안을 향한 로드맵 저희는 먼저 연구가 아닌 ‘연구계획’을 세우는 데에 초점을 가진 프로그램을 운영해왔습니다. 혹자는 연구계획은 연구가 아니기 때문에 연구계획서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이야기하고, 저희 또한 그 주장에 대해 십분 공감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희는 감히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에 있어서는 연구계획이 8할이다’라고 이야기하려 합니다. 왜냐하면 연구계획서 안에 연구자가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문제에 대한 진정성과 치열한 학습을 통해 발견한 앞선 연구자들의 기록들, 그리고 연구자의 연구질문과 가설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이 연구계획서는 그저 수개월짜리 논문 한 개 정도의 계획을 담고 있는 문서가 아닙니다. 이 연구계획서는 연구자 자신의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사회문제를 풀어내는 데에 연구로서 기여하고자 하는 영역의 선언에 가깝습니다. 특히 처음일수록 연구는 부족할 것이고 좌절감은 클 것입니다. 배워야 할 것과 알아야 할 것,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자기확신이 흔들리며 계속해서 고뇌할 것입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시행착오와 현실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계획서는 기어이 도달하고자 하는 방향을 가리키는 북극성이 되어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는 계획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고, 계획은 끝이 아닌 시작에 가깝습니다. 저희 프로그램은 각 대원들의 문제의식과 진정성을 연구주제와 계획으로까지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단계까지 구성되어 있습니다. 동시에 연구라는 것은 요소에 따라 굉장히 많은 시간과 학습, 자원이 투입되는 활동이기도 합니다. 즉, 이 대원들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연구자 개개인을 도와줄 수 있는 ‘지지공동체Supporting Community’가 필수적으로 필요합니다. 스타트업 데모데이: 같이 축하하고 응원하고 지지하는 축제 기술과 기업가정신을 통해 산업을 혁신하는 기업들인 스타트업 생태계에는 데모데이Demoday라는 문화가 있습니다. 창업 3년 이내의 극초기 기업들이 투자자들 앞에서 자신들의 사업계획을 발표하는 행사이지요. 사실 이때까지 창업가들은 이렇다 할 뚜렷한 실적을 내지 못합니다. 하지만 MVP(Minimum Viable Product)라는 파일럿 결과물과 자신들의 사업계획을 가지고 사업의 가능성을 설득하고, 투자자들은 기업의 현재 자산과 수익이 아닌, 창업가의 역량과 사업계획의 잠재성을 중심으로 투자를 집행합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토스, 배달의민족과 같은 산업을 혁신하는 기업들이 초기자원을 확보할 수 있었고 자신들의 사업계획을 실현해서 산업을 혁신할 수 있었습니다. 스타트업의 데모데이를 보면서 저희는 생각했습니다. 스타트업처럼 연구자의 연구계획을 대중 앞에서 발표하는 행사를 가질수는 없을까. 연구자의 역량과 연구계획의 잠재성만으로 평가를 받아 연구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 재원이 꼭 정부만이 아니라, 사회문제의 해결을 진심으로 바라는 일반시민들이 되어줄 수는 없을까. 그래서 재정적 지원 뿐만 아니라, 연구를 포기하지 않도록 계속해서 돕고 지원하는 지지공동체를 만들 수는 없을까. 그렇게 된다면, 정말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연구자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연구가 연구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문제 해결의 실천까지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구요. 그렇게 기획된 컨퍼런스가<2024 연구원정 LAUNCH 컨퍼런스>입니다. #5. 여기, 6명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하기로 결심한 연구자들이 있습니다. 이번 2024 연구원정 컨퍼런스에는 지난 6개월여동안 치열하게 연구계획을 만들어온 3개 영역(기후위기, 공공문제, 교육문제) 6명의 연구자들이 6개의 연구계획을 발표합니다. 킹핀(Kingpin) 같은 연구주제들 다음 뉴스레터에 보다 자세히 소개되겠지만 6명의 연구자들 중에는 연구를 배워본 분도 아예 배워보지 않은 분들도 있지만, 각자가 마음에 품은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진심만큼은 그 누구보다 강렬한 분들입니다. 또한 각각의 연구주제들은 사회에 정말 필요하지만 아직 미처 연구되지 않아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는, 뒤집어 이야기하면 이 연구가 진행된다면 사회문제의 해결에 있어 큰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킹핀(Kingpin)과 같은 주제들입니다. 따라서 저희는 개별 연구자들의 연구계획을 소개하면서, 각 연구자들을 재정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지원하고 지지해줄 수 있는 지지공동체를 개발하는 것을 목적으로 이번 컨퍼런스를 기획하였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사회문제해결형 연구’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보다 많은 사회문제에 대한 진심을 가지고 계신 사람들이 연구에 뛰어들어서 각종 사회문제들에 대한 대안들을 함께 연구하고 고민하고 연결될 수 있는 장을 기대하고, 또 그런 장을 점차 키워나가는 것을 이 컨퍼런스의 목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특히 연구계획발표 세션에서는 연구 크라우드펀딩(Crowdfunding)을 시도합니다. 연구계획발표를 듣고 각자가 구입한 펀딩티켓별로 가진 투표권을 지지하고 싶은 연구자 및 연구계획에 투표하면, 해당 연구자에게 투표수에 비례한 연구비가 지원됩니다. 투표자들은 지지하고 싶은 연구자에게 정서적 지지와 재정적 지지를 할 수 있게 됩니다. ROUND TABLE : 정책가, 연구자, 교육자가 들려주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야 할 일' 또한 저희는 연사분들의 세션을 따로 마련하여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야 할 일’라는 주제를 가지고서 각 발제를 듣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준비했습니다. 저희가 모시게 된 각 연사분들은 대원들보다 먼저 사회문제해결을 위한 연구(문제의 해결을 고민하고 탐구하는 모든 행위)에 뛰어들어 분투하고 계신 분들이십니다. 동시에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직접 하는 것과 연구를 바탕으로 사회변화를 촉진시키는 것, 또 그런 연구자들을 길러내는 것에 대해 현장과 최전선에서 고민하고 행동하고 계십니다. 사회문제해결에 진심인 연구계획을 품고 있는 연구자들과 먼저 사회를 변화시켜가고 계신 연사들을 중심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 자체에 대한 지지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이 이 컨퍼런스의 주된 목적이기도 합니다. #6. 세상을 구할 연구에 투표하세요! 작은 스타트업에서 개최하는 행사의 주제치고 너무 거대해 보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긴급성을 가지고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사회문제들은 갈수록 심화되어가고 있고, 문제를 풀어내는데에 필요한 역량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기후위기, 디지털전환, 공교육붕괴 등 각종 사회문제들은 난제가 되어가고 있고 그에 대한 해결을 이야기할 공론장과 해결역량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정말 사회문제 해결에 진심인 사람들이 연구를 시작으로 문제해결공동체를 구축하고 문제의 본질을 드러내고 대안을 제시하는 작업을 빠르고 뾰족하게 해나간다면 분명 인류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사회문제의 대안과 해결책들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 대안을 함께 만들어갈 분들을 만나는 장이 되기를 바라고, 또 함께 그 대안을 만들어가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이 컨퍼런스에 온오프라인으로 참여하는 모든 분들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에 대해 관심들이 생겨나고 더 많은 일들을 만들며, 진짜 사회문제의 킹핀을 쓰러뜨리는 여러 일들을 함께 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2024년 2월 3일,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컨퍼런스에 함께 하세요!  🚀 컨퍼런스 신청하기 : 아래 이미지를 클릭해주세요! *다음 뉴스레터에서는 연구계획을 발표하는 연구자들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다룰 예정입니다. 아울러 연구자들의 발제문도 홈페이지에 업로드 될 예정이니 함께 지켜봐주세요! 이 글은 연구탐사대에서 발행하는 액티브 리서치 저널(Active Research Journal) 특별호의 일부입니다.액티브 리서치 저널이 무엇이냐구요? 우리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죠! 이 저널을 통해 지속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연구탐사대는 사회문제해결형 연구자를 양성하는 연구 훈련 플랫폼입니다. 현재 기후위기, 공공문제, 교육문제 부문의 24주 사회문제해결형 연구자 부트캠프 <연구원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구독하시려면? 참고문헌 George J. Stigler – Prize Lecture. NobelPrize.org. Nobel Prize Outreach AB 2024. Sun. 28 Jan 2024.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라고요? (2)
* 이 글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에 대해 이야기하는 Active Research Journal의 뉴스레터 중 일부입니다. 연구탐사대에서 매주 발행하는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싶으시다면 이 링크 를 클릭하세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라고요? (1) 읽으러가기 #2.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한다는 것 하지만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1) 앞선 이론 학습하기: 여러 관점으로 문제 바라보기 먼저는 사회문제를 보다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이론 학습’이 필요합니다. 이론이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뭐이리 딱딱한 용어가 나와?’라고 생각하셨나요? 이론은 다시 말해 어떤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이자 렌즈와 같습니다. 우리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전부터 수많은 연구자들과 시민들이 해당 문제 혹은 문제를 둘러싼 환경에 대해 고민해왔고 끊임없는 토론과 학습을 바탕으로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렌즈를 개발해왔습니다. 사회문제를 정말로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보다 앞선 연구자들의 지혜를 빌려야 하고,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 문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특히 사회문제는 여러가지 층위의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특정 학과의 지식만으로는 현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기후위기를 대응할 때에 그 자체의 과학적 사실 뿐만 아니라 대응을 둘러싼 국제정치적 관계와 기후위기를 둘러싼 여러 담론들, 그리고 기후위기 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정부구조까지 다양한 지식들이 필요하죠. 따라서 주제를 중심으로 여러 학과의 지식들을 적재적소에 학습할 수 있어야 보다 종합적으로 문제를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갖게 됩니다. (2) 연구하는 방법 이해하기: '사실'이라는 엄격한 기준 충족하기 동시에 ‘연구하는 방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연구라는 것은 과학적 방법론에 근거해서 정보를 재료 삼아 지식을 만들어내는 고도의 작업이죠. 여러 정보들을 토대로 많은 글과 의견, 생각들은 다양하게 만들어질 수 있지만 그것이 하나의 ‘지식’이자 ‘사실’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엄격한 절차와 기준을 통과해야 합니다. 오랜 시간 학문공동체는 인류의 지식에 대한 기준을 세우고 이를 검증해왔고 이 덕분에 인류는 여러 지식을 활용해서 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해왔습니다. 이 기준과 절차를 이해하고,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지식을 생산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은 사회문제로부터 문제를 해결하는 ‘지식’을 생산하는 데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라는 것이 더욱 어려운 이유도 말 그대로 ‘펄펄 끓는 얼음’이라고 하는,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모순적인 요소들을 모두 끌어안고 있는 연구여야 하기 때문이죠. 이러한 연구를 시작하게 하는 동기인 사회문제 해결을 향한 열정은 연구를 지속하게 하는 매우 큰 동력이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다소 감정적이고 편향되기 쉽습니다. 이런 뜨거움은 연구과정에서 학문공동체의 기준과 절차를 통과하면서 차갑게 식어버리기 쉽습니다. 나에게 영감을 준 사건들이 객관적 사실이라 할 수 없는 극단적 케이스일 수 있고, 과학적 방법론을 가지고 문제를 드러내고자 할 때에도 그것이 입증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현실가능한 연구’에 초점을 맞추다보면 문제해결과 크게 상관없는, 불만족스러운 지식이 생산되기 쉽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쉽게 좌절하죠. (3) 연구자의 진심: 지난한 과정을 견디는 힘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어떻게든 하고자 하는 연구자의 진심입니다. 어떤 연구가 사회문제의 본질을 드러내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기 위해서는 정보가 지식이 되어가는 연구의 높은 기준과 절차를 견뎌내면서 그 방향이 뾰족하게 사회문제를 겨냥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 연구의 과정에서 열의 아홉은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는 의견이 될 것이고, 사회문제를 입증할 수 있는 데이터를 구하는 것도 복잡한 구조를 이해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기껏 열심히 연구해놓았더니 결국 그저그런 뻔한 사실을 연구한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하는 자괴감에 휩싸이기도 할 것입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라는 것은, 대부분 그런 지난한 자리들의 연속입니다. 이것은 마치 심증은 있지만 물증을 찾지 못해 범인을 잡지 못하는 형사의 모습과 같습니다. 끊임없이 물증을 찾기 위해 분투하지만 그 물증을 쉽게 찾지 못하고,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물증 앞에서 ‘진짜 저 사람이 범인이 맞는가?’에 대한 자기검열도 계속될 것입니다. 함부로 범인을 단정지어 수사하는 방법도 옳지 않지만, 여러 정황 속에서 형사의 감이 향하고 있는 범인에 대한 의구심을 걷어내기 전까지는 사건의 실체를 알 수 없는 것 또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견디어내는 힘은 결국 연구자의 ‘진심’ 뿐입니다. 연구가 실패해도 다시 연구하고, 이번 연구가 불만족스러우면 포기하지 않고 다음 연구를 수행하는 자리. 없는 데이터들을 어떻게든 활용해서 사실을 드러내고, 기꺼이 현장으로 뛰어들어 그 데이터들을 만들어내고 연구하는 자리. 끊임없이 학습하고 끊임없이 연구하면서 문제의 실체와 대안의 가능성에 점점 더 도달하는 자리. 형사가 포기하지 않고 증거들을 수집하며 사건의 실체에 다다라가듯 그렇게 연구하는 자리. 그 자리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아가는 것은 연구자의 집념과 끈기가 없이는 불가능한 자리이기도 합니다. #3.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 :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의 사례 여기에서 소개하고 싶은 사례는 1995년부터 15년 여 동안 2000명에 가까운 사망자와 수많은 피해를 입힌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을 밝힌 연구입니다. 1994년 처음 출시된 가습기 살균제는 따로 유독물로 지정되지 않았었기 때문에 대중에게 광범위하게 사용되어왔습니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는 공기중에 떠다니며 흡입될 경우 강한 독성을 유발하며 폐조직이 굳는 폐섬유증을 유발하는 물질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2011년 진상이 규명되기까지 17년 동안 대중들은 아무런 위험성을 감지하지 못한 채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죠. “기이한 질환, 2006년 시작된 공포… 공기 중 떠다니는 그 무엇이 문제였다” 경향신문 기사 보기 봄마다 찾아오는 원인불명의 폐질환 환자 매년 봄철마다 원인불명의 폐질환 환자가 발생하였고 2006년부터 의학계에서 그 징후를 발견하기 시작합니다. 매년 봄철마다 원인미상의 폐질환 소아과 환자들이 대학병원 응급실에 실려왔고 그 중 절반이 사망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던 것이죠. 일선의 소아과 의사들을 중심으로 긴급하게 논의가 진행되었고 이에 15명의 영유아 환자 사례를 모아 <2006년 초에 유행한 소아 급성 간질성 폐렴>이라는 논문을 발표합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이 사례는 일종의 ‘급성 간질성 폐렴’이라는 병명으로 이해되고 그 원인이나 증상 등을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2006년 초에 유행한 소아 급성 간질성 폐렴] 논문 보기 이후 2007년에도 봄이 되자 또 다시 폐질환 소아 환자들이 급증했고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전국의 소아과에 설문을 보내면서 80여개의 사례를 확보합니다. 이를 통해 <급성 간질성 폐렴의 전국적 현황 조사>라는 논문이 게재됩니다. 이 질환이 그저 예외적인 질환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굉장히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죠. 하지만 여전히 그 원인이나 실체는 증명하지 못했고 속절없이 매년 봄은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급성 간질성 폐렴의 전국적 현황 조사] 논문 보기 공기 중에 떠다니는 무언가,문제 해결의 실마리 그러던 중 2011년 영유아가 아닌 산모들이 유사한 증상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터졌고, 이에 대학병원에서 태스크포스팀이 꾸려지면서 조금씩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기관지 주변에 염증이 생기고, 기관지 옆 폐포가 손상을 받는 것. 어쩌면 기관지를 통해 무언가가 들어오고 그것으로 인해 염증이 생겨서 기관지가 막히고 호흡곤란이 일어나 폐가 찢어지는 것. 그리고 아이 뿐만 아니라 부모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 여기까지 도달했을 때에 ‘공기중에 떠다니는 무언가’가 문제의 원인으로 제기되었고, 2011년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 때 환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가습기 살균제가 문제라는 것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리고 2011년 질병관리본부가 원인미상 폐손상의 원인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지목하고, 이를 시장에서 퇴출한 후 환자는 완전히 나타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의 책임과 피해파악 등의 문제들이 여전히 남아있지만 추가적인 사망은 막게 되었던 것이죠. 사회문제해결, 기쁨보다 죄책감이 크지만그럼에도 걸어가야 할 자리 사회문제가 어떻게 연구를 통해 해결했는가를 드러내는 사례라 하기엔 피해도 참혹했고 보다 빠르게 대처할 수 없었을까라는 아쉬움이 남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2011년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는 대중에게 많이 알려졌지만 6년여동안 수많은 소아과 의사들이 케이스 하나하나를 찾아 살펴낸 과정은 쉽게 드러나지도 않고, 그 과정은 시행착오와 더듬음의 연속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멈춘 사회적 비극 후에 찾아오는 것은 문제를 해결했다는 기쁨보다는 왜 더 빨리 해결할 수 없었나에 대한 죄책감일 가능성이 더 큽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진행과 교훈(Q&A)] 논문 보기 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는 문제의 최전선에서 자료 하나하나를 수집하면서 단단한 근거들을 만들어가야 하고, 수년동안 집요하게 심증을 붙들고 연구를 지속해야 합니다. 당시 이 사건을 계속해서 쫓고 있었던 홍수종 교수는 실체를 알 수 없을 때에 할 수 있는 일은 ‘환자들의 자료 하나하나를 되짚어보는 것’ 뿐이었다 이야기합니다. 케이스를 하나하나 축적하면서 초기, 중기, 말기별로 케이스가 모이게 되었고 그에 따라 조금씩 질환의 실체에 다다라갈 수 있었고, 그 연구들은 2011년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해주게 됩니다. 빠르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고, 누군가 알아주지도 않고, 해결한다해도 기쁨보다 죄책감이 더 큰 이 자리에 그럼에도 연구자들이 스스로를 밀어넣는 이유는, 사회에 대한 책임감과 문제해결에 대한 진심, 그리고 연구를 통해 사회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나갈 때에 사회가 조금씩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멀고도 험한, 그 끝에 기쁨보다 죄책감이 있는 길을 마땅히 걸어가고자 하는 연구자들이 있고,저희는 이들을 위한 지지공동체Supporting Community를 만들어 나가고자 합니다. (다음에 계속) 이 글은 연구탐사대에서 발행하는 액티브 리서치 저널(Active Research Journal) 특별호의 일부입니다.액티브 리서치 저널이 무엇이냐구요? 우리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죠! 이 저널을 통해 지속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연구탐사대는 사회문제해결형 연구자를 양성하는 연구 훈련 플랫폼입니다. 현재 기후위기, 공공문제, 교육문제 부문의 24주 사회문제해결형 연구자 부트캠프 <연구원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이번 특별호는 액티브 리서치 저널의 시작호인 동시에,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에 대한 컨퍼런스인 2024 연구원정 LAUNCH Conference를 소개하는 호이기도 합니다.사회문제 해결에 진심인 분들이시라면, 이번 컨퍼런스에 함께 해요!신청하시려면 아래 이미지를 클릭하세요! 참고문헌 송윤경. "기이한 질환, 2006년 시작된 공포… 공기 중 떠다니는 그 무엇이 문제였다” 경향신문. 2013년 7월 26일자. https://www.khan.co.kr/article/201307262341045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라고요? (1)
* 이 글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에 대해 이야기하는 Active Research Journal의 뉴스레터 중 일부입니다. 연구탐사대에서 매주 발행하는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싶으시다면 이 링크 를 클릭하세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무언가 어감이 맞지 않아 보이시나요?많은 분들이 연구라고 생각하면, 거대한 대학 건물의 구석진 연구실 안에서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는 어떤 지식인을 떠올리실 거에요. 무언가 세상과 동떨어진, 사회가 곧 망하더라도 쓰고자 하는 글을 쓰고야 마는 창백한 얼굴의 누군가를 떠올리실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사실 연구는 그것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Active) 활동들을 수행해왔습니다. 인류가 고난을 당했을 때 그 문제를 넘는 흐름의 가장 앞에는 연구자들이 있었거든요. 연구자들은 모든 문제에 앞서 문제가 무엇인지를 진단하고,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알려주면서, 문제가 어떠한 방식으로 해결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타를 알려주는 역할을 수행해왔어요.사회문제해결형 연구의 롤 모델: 베버리지 리포트베버리지 리포트(Beveridge Report)라는 보고서에 대해 아시나요? 2번의 세계대전과 대공황이 지나가고 전세계가 전쟁과 가난의 상처로 신음하고 있을 때에, 파괴된 사회를 어떻게 복구시킬까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던 시기였어요. 영국에서는 사회제도 전반에 대한 혁신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고 어떠한 방식으로 제도를 혁신할 것인가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 ‘윌리엄 베버리지(William Beveridge)’라는 연구자로 하여금 조사위원회를 꾸려 1년 간 영국 사회의 실태를 진단하고 그에 대한 대안책을 제시하도록 합니다. 그렇게 해서 1942년 탄생한 보고서가 베버리지 리포트입니다. 베버리지 리포트에서는 기존의 영국 사회의 실태를 지적하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한 대표적인 방법으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개인의 생활을 책임지는’ 보편적 복지제도를 제안합니다. 과거에 자율적으로 선택했던 사회보험에 있어 일종의 강제성과 의무를 갖도록 하는 방식이었죠. 이 제도는 이후 ‘복지국가’라는 방식으로 국가의 복지서비스에 대한 기초가 되었고,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여러 사회복지서비스와 건강보험 등의 사회보험이 바로 이 베버리지 리포트에서 비롯되었다고 이야기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일 거에요.물론 역사는 위의 글처럼 그렇게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베버리지 리포트 이전에도 여러 차례 보편복지에 대해 주장하는 글들이 나왔었고, 동시에 여러 제도들이 시도되기도 했었죠. 동시에 베버리지 리포트가 나왔다고 해서 완벽한 정책이 수립되고 그에 따라 빈곤이 한번에 종식되었다 라고 한다면 그보다 소설 같은 이야기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아는 것처럼, 사회문제는 그렇게 쉽게 단순하지 않고 그 해결 또한 어떤 영웅을 통해 가능하지 않으니깐요. 사실 그렇기에 정말 대단했던 것은, 베버리지 리포트 라는 상징적인 연구결과물이 아니라, 저 리포트의 맥락을 형성하고 있는 여러 연구자들과 그 주위의 여러 정책가, 정치인, 사회활동가, 그리고 시민들. 그들이 지난하게 씨름해 온 흐름 자체라고 할 수 있어요. 사실 윌리엄 베버리지라는 사람은 페이비언 소사이어티(Fabian Society)라는 지식인 그룹의 일원이었고, 그 그룹에 속한 많은 사람들이 여러 사상가들의 책을 읽고 또 노동자 거주지역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하면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오고 있었던 것이죠. 동시에 베버리지 리포트로 대표되는 보편적 복지제도를 실현시키기 위해 여러 정치인들의 정치적 타협과 정책가들이 아이디어를 정책으로 구체화시키는 과정, 그리고 이에 대한 대중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활동들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보험제도는 아마 세상에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뜨겁고도 차가운,펄펄 끓는 얼음 같은 연구저희가 함께 이야기하고자 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연구 라는 것은 이와 같이 사회문제의 현장 한가운데에서 직접 자료를 조사하고, 역사와 맥락을 이해하고, 끊임없는 고민과 학습, 토론을 통해 그에 대한 대안들을 제시하는 활동을 이야기합니다. 땀냄새가 가득 배여있구요, 마치 어둠 속에서 물건을 찾는 듯한 막막함과 아득함을 견디면서 단서 하나하나를 찾아내어 사실의 퍼즐을 맞춰 나가는 탐정과 같기도 합니다. 그것을 기록하는 문장 한 줄의 표현 하나에 하룻밤을 지새우기도 하구요. 그럼에도 문제의 실체를 파악하고, 그 문제를 기어이 ‘해결’하고자 하는 집념이 포기할 수 없게 하는 탐구. 그 탐구가 만들어내는 글은 그 자체로 사회문제 해결을 향한 열정과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소망으로 뜨겁지만, 동시에 진짜 사회를 ‘변화’시켜야 하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사실을 직시하고 편향을 걷어내야 하기에 차갑습니다. 마치 눈을 띄워주듯 사회문제를 둘러싼 구조들을 명확하게 밝혀주고 본질을 비추어주면서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하고 우리가 지금 당장 무슨 일을 해야 할 지 알려주는 연구. 동시에 그 시선 하나하나에 연구자의 갈망과 애정이 묻어 있어서 그 자체로 문제해결을 위한 책임감과 인사이트를 불러 일으키는 연구. 그것이 저희가 이야기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 액티브 리서치 일지도 모르겠습니다.저희는 그런 연구들을 너무나 사랑하구요. 그렇게 뜨거우면서도 차가운, 펄펄 끓는 얼음과 같은 연구야말로 우리 주위에서 풀리지 않는 사회적 난제들에 대해 우리의 눈을 띄워주고 해결의 방향과 동력을 제시해주는, 사회문제 해결의 최전선이자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그렇다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다음 화에서 계속) 이 글은 연구탐사대에서 발행하는 액티브 리서치 저널(Active Research Journal) 특별호의 일부입니다.액티브 리서치 저널이 무엇이냐구요? 우리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죠! 이 저널을 통해 지속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연구탐사대는 사회문제해결형 연구자를 양성하는 연구 훈련 플랫폼입니다. 현재 기후위기, 공공문제, 교육문제 부문의 24주 사회문제해결형 연구자 부트캠프 <연구원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이번 특별호는 액티브 리서치 저널의 시작호인 동시에,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에 대한 컨퍼런스인 2024 연구원정 LAUNCH Conference를 소개하는 호이기도 합니다.사회문제 해결에 진심인 분들이시라면, 이번 컨퍼런스에 함께 해요!신청하시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2024 연구원정 LAUNCH Conference액티브 리서치 저널에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계속해서 읽고 싶으시다면?아래 링크를 클릭해서 구독하세요!액티브 리서치 저널 구독하기 참고문헌Beveridge, W. (1942). Social insurance and allied services (Vol. 942). HMSO: London.김보영. (2020). 정권이 바뀌어도 삶이 바뀌지 않는 이유. [IDEA2050_022]. Lab2050 Medium.  https://medium.com/lab2050/%EC%A0%95%EA%B6%8C%EC%9D%B4-%EB%B0%94%EB%80%8C%EC%96%B4%EB%8F%84-%EC%82%B6%EC%9D%B4-%EB%B0%94%EB%80%8C%EC%A7%80-%EC%95%8A%EB%8A%94-%EC%9D%B4%EC%9C%A0-67c95ab09a72김종영. (2017). 지민의 탄생. 휴머니스트.
[처음 만나는 공화주의] 시민 참여 - 민주공화국 실현을 위한 초석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에서는 우리나라를 민주공화국이라 설명한다. 진정한 민주주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공화’에 대한 개념이 중요하지만, 민주에 비해 공화를 다룬 글은 많지 않다.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공화‘. 창작그룹 ’성찰과성장‘은 [처음 만나는 공화주의] 연재를 통해 ’공화주의‘에 대해 쉽게 풀어보고자 한다. 민주적 공화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3가지 요소가 강조된다. ▲적극적인 시민 참여 ▲공동선을 추구하는 정치 ▲기본적인 물질적 보장을 통한 민주적 평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번 3편에서는 민주적 공화주의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적극적인 시민 참여’에 대해 탐구해본다. ‘시민참여’라는 말이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시민참여는 주로 공공 영역에서 수행하는 사업, 정책, 행정 등에 시민이 참여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말하는데, 논의의 간결함을 위해 정치 영역에 맞춰 시민참여를 이야기해보자. 시민참여로 더 나은 공화주의 만들기  시민참여를 말할 때 항상 강조되는 것이 ‘시민의 덕성’이다. 이 개념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 기원을 두고 있다. 현대적 맥락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이를 잘 표현했다. 그는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라며 시민의 힘을 강조했다. 개인의 이익을 넘어 사회 전체의 이익을 함께 추구하는 능동적인 시민이 민주주의라는 나무가 꿋꿋이 서 있을 수 있게 만드는 뿌리라는 뜻이다. 성찰과성장은 일상 속 실천에 방점을 찍어 ‘시민의 덕성’을 ‘정치적, 사회 문제에 대해 관심을 두고, 그 관심을 자신의 일상으로 연결해 적극 행동하고 실천하는 것’으로 정리해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시민적 덕성’을 촉진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공동체의 공화적 역량을 향상할 수 있을까? 예상하듯 이 과정은 녹록지 않다. 시간도 많이 필요하다. 기후 위기 문제와 같이, 일상에서 공동체와 사회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논의, 꾸준한 성찰의 과정이 있어야 더 나은 민주공화제를 실현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상적이고 다양한 층위에서 시민의 사회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작금의 시대상을 떠올리며,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있는지 되돌아보자. ‘정치 참여’라는 말을 듣게 되면 무엇부터 떠오르는가? 대부분 '선거 투표'를 먼저 생각할 것이다. 선거는 중요한 정치 참여 수단이지만 이것만으로 정치에 충분히 적극 참여했다고 할 수 있을까? 다수결에 의한 결정 과정은 다수 의견만 반영하는 한계가 있고, 투표는 승패를 가를 뿐 근본적으로 양측(혹은 그 이상)의 진정한 화합을 이루어 낼 수 없다. 또한 정치권력에 대한 심판은 몇 년 단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수시로 정치권력을 견제하기 어렵고, 유권자의 무관심은 민주적 공화주의를 위태롭게 만든다. 소수에 대한 다수의 억압을 예방하려면, 민주공화제 내에서 권력이 분산되어야만 한다. 대통령이나 특정 집단의 권력 독점을 차단하고, 다양한 관점을 가진 집단과 권력 구조 안에서의 상호 견제가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의 원동력이 바로 '시민의 덕성'이다. 시민적 덕성으로 무장한 정치 공동체는 단일 권력을 감시하고 사회의 부패를 방지한다. 이것이 우리가 일상 속 실천을 그토록 강조하는 이유다. 아래에서 시민적 덕성이 실제로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지 두 가지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대표적인 시민참여 제도, 주민참여예산제  우리나라는 주민자치회, 청년네트워크 등 시민으로서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가 있으며 대표적인 제도로는 전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주민참여예산제(이하 참여예산)가 있다. 주민참여예산제는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과정에 주민을 참여시키는 제도로, 시민이라면 누구나 참여예산제를 통해 거주 지역에 필요한 정책과 예산을 제안할 수 있다. 서울시의 경우, 2022년 서울시민이 제안한 사업을 심의하여 총 22.5억 원을 23년 예산에 편성했다. 참여예산은 재정 운영 측면에서 행정 시스템을 견제하고 투명성과 책임성을 청구할 수 있는 제도다. 참여예산 도입 전에는 의회 · 행정 등 공공 권력이 예산 편성권을 독점하고 있었지만, 이 제도가 도입된 2011년부터는 예산 과정이 점차 주민에게 개방되었다. 참여예산이 효과적으로 실행된다면, 내가 어디에 살든 지역 예산 과정(편성·집행·평가)에 참여할 기회가 생긴다. 이러한 참여는 예산 사용의 효율·효과에 대한 주민의 관심을 증가시키고, 재정에 대한 책임이 궁극적으로 주민에게 있다는 인식을 강화하며 시민적 덕성을 함양한다. 주민참여예산제의 현황과 한계: 13년의 여정과 지속적인 개선 필요성  주민참여예산제도는 2011년 지방재정법 개정을 통해 각 지방자치단체가 의무적으로 운영하게끔 변화되었다. 시행 13년이 넘은 제도의 현황을 간략히 살펴보자. 지난 2018년 3월, 「지방재정법」이 다시 한번 개정되면서 주민참여예산의 범위는 ‘예산 편성 과정에의 참여’에서 ‘지방 예산 편성을 포함한 전반적인 예산 과정에의 참여’로 확장되었다. 개정 전에는 주민이 예산 ‘편성’ 과정에만 참여할 수 있었다면, 최근 개정은 주민이 예산의 시작 단계인 편성을 넘어 ‘집행’과 ‘결산’ 등 전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나 법 개정 이후 5년이나 지났음에도, 지방재정법 개정 취지에 맞추어 조례를 개정한 지방자치단체는 전체의 43.2%에 불과해, 아직도 많은 지자체에서 이 제도의 완전한 이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민참여예산제는 민주적 공화주의를 위한 중요 수단이지만 여전히 많은 개선과 발전이 필요하다. *최승우, 전국 지방자치단체 주민참여예산 조례 정비 현황 분석, 나라살림연구소 브리핑 350호, 2023.11 아일랜드의 헌법회의: 시민 주도 참여의 모범 사례  아일랜드의 ‘헌법회의’는 행정과 의회가 시민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을 넘어 실질적인 정책 반영의 기회와 충분한 숙의 과정을 보장해준 모범 사례로 꼽힌다. 2012년 12월부터 2014년 3월까지 약 15개월간 아일랜드에서는 시민이 참여한 헌법회의(The Convention on the Constitution)를 운영했다. 아일랜드는 먼저 100명의 시민을 모집하고 1박 2일 간 전문가 발표와 토론을 거쳐 의제에 대한 시민의 이해를 높였다. 그 후 의원 33명, 무작위로 추첨된 시민 55명, 의장 1명 등 100명으로 구성된 헌법회의를 출범시켰다. 이 헌법회의는 ‘동성결혼 합법화’와 ‘대통령직 출마 나이를 21세로 하향조정’ 등의 권고안을 제출하였고, 마침내 2015년 ‘동성결혼 허용’이 국민투표로 최종 승인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아일랜드 시민은 시범기구 ‘위드 더 시티즌(With The Citizen)’를 시작으로 헌법회의를 거쳐 ‘시민의회’를 정착시켰다. 시민의회는 ‘17년 낙태 논의를 거쳐 ‘23년에는 마약 대책에 대해 활발히 논의하는 등 시민의 적극적인 정책 개입이 이어지고 있다. 시민참여: 민주적 공화주의를 위한 시작  아일랜드의 헌법회의·시민의회 사례에서 정치권력이 시민을 진정한 논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토론과 숙의를 통해 대안을 모색한 과정을 확인했다. 아일랜드 정치권력은 시민의 의견을 무조건 수용해야 하는 의무가 없다. 그럼에도 헌법회의(시민의회)에 더 큰 권한을 이양하고 시민에게 더 넓은 참여 기회를 보장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시민을 관망자가 아닌 정책 과정의 핵심으로 인식한다는 긍정적 신호다. 또한 시민의 일상적 정치 참여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음을 뜻한다. 시민참여는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때론 힘들고,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생동감 넘치는 민주주의는 시민의 힘으로만 가능하다. 여전히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는 2024년에는 더 많은 시민의 참여로 문제가 해소되길 바란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대안을 배달해 드립니다" - 창작그룹 성찰과성장글 작성 ・ 편집 : 김설, 박배민, 신동주(성찰과성장.com)
공화는 수입품이 아니다 [처음 만나는 공화주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에서는 우리나라를 민주공화국이라 설명한다. 진정한 민주주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공화’에 대한 개념이 중요하지만, 상대적으로 민주보다 공화에 대해 다루는 글은 많지 않다.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공화‘. 창작그룹 ’성찰과성장‘은 [처음 만나는 공화주의] 연재를 통해 ’공화주의‘에 대해 쉽게 풀어보고자 한다. 공화가 무엇인지 깊이 이해하려면, 공화주의가 탄생한 역사 배경과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어떤 과정을 통해 발전하고 변화해 왔는지 그 변천사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화주의의 유래와 그 역사적 진화 과정을 살펴본다면, 공화의 진정한 의미와 중요성을 더욱 명확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공화주의의 역사를 살펴보자. 공화(republic)의 유래  서양에서 사용되는 '공화국' 또는 '공화'라는 용어는 라틴어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에서 기원했다. 이 라틴어 표현에서 'res'는 '사물', '물건', '재산'을 의미하는 명사이며, 'publica'는 '공적인'을 뜻하는 형용사다. 이 두 단어의 조합을 간결하게 해석하면, '레스 푸블리카'는 '공적인 것' 또는 '공공의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는 공화주의가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의 복리를 중시함을 암시한다. 로마 철학자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는 레스 푸블리카를 “공동의 법과 이익에 의해 결속된 공동체로서의 국가”라고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동의 법과 이익’이다. 특정 개인 또는 소수 권력자의 이익을 위한 국가가 아니라 구성원 모두의 이익을 위한 국가가 레스 푸블리카인 것이다. 그래서 공화는 단순히 왕정이나 귀족정 등만이 아닌 다양한 정치 체제 요소가 섞여 있는 ‘혼합정’을 의미하기도 했다. 공화주의의 진화  르네상스 이후 이탈리아의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 미국의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 Jr), 프랑스의 알렉시스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 등 여러 철학자에 의해 공화주의는 구체적이고 다양한 의미를 담게 된다. 마키아벨리는 통치자와 인민(people)이 덕성을 갖춘 상태에서 제도적 장치를 통해 '절대권력을 제한'하는 형태의 공화정을 제안했다. 이와 비슷하면서 다르게, 제임스 매디슨은 다수가 권력을 독점해 소수를 지배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안전장치로서 헌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상호 견제와 협력이라는 관점에서 공화를 '혼합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한, 토크빌은 소수에 대한 다수의 횡포를 방지하기 위해 '시민의 자발적 결사'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공화 사상가들의 이론은 공화주의가 다양한 형태로 해석되고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인류를 비극으로 이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공화주의의 핵심 사상 중 하나로 '비-지배의 자유'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1편에서 언급한 필립 페팃(Philip Noel Pettit)은 이 개념을 중심으로 자신의 이론을 전개한다. 페팃에 따르면, '비-지배의 자유'란 개인이 타인의 자의적인 의지에 의해 지배받지 않는 상태다. 그는 단순히 간섭받지 않는 자유를 넘어서, 어떠한 외부 권력에도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자유 상태를 강조한다. 페팃의 이론은 공화주의가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동양 공화의 뿌리: 려왕에서 군신공치까지  공화는 서양만의 개념이 아니었다. 동양의 '공화' 개념이 최초로 언급된 것은 사마천의 '사기본기(史記本紀)'다. 기원전 841년, 주나라 백성들이 려왕(厲王)을 나라 밖으로 추방한 후, 13년 간 왕이 없는 상태에서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이라는 두 재상이 정치를 맡았다. 이 시기를 가리켜 '공화'라고 불렀다. 후에 공백화라는 인물이 려왕을 대신해 국가를 통치했다는 기록이 발견되긴 했지만, 역사적 맥락을 떠나 '공화'라는 용어는 오랫동안 왕이 없는 상황에서 신하들이 국가를 다스리는 상황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려왕 사례를 통해 우리는 '공화'가 단순히 서구에 국한되지 않고, 동양에도 그 뿌리를 내리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유교에서는 '천하위공(天下爲公, 천하는 모두의 것)'을 정치의 근본 방향으로 채택했다. 이는 정치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임을 강조하는 동시에, 덕치(덕을 통한 통치)와 함께 법치를 중시하는 관점을 반영한다. 유교는 법치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았고, 특히 사대부 계층의 도덕적 자기 수양을 중요시했다. 조선을 포함한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군주제 국가에서는 왕정과 귀족정이 혼합된 '군신공치(君臣共治)' 체제가 정착되었다. 이 체제에서 사대부와 신하들은 왕의 권력을 견제하며 국정을 공동으로 운영했다. 따라서 넓은 의미에서 혼합정 형태의 공화(공공의 이익을 위한 공동 통치)가 이미 조선 시대에도 존재했던 것이다. 우리만의 공화를 재구성할 때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는 우리나라가 민주공화국이 되어야 한다고 자연스레 인식했다. 이러한 생각은 임금이란 백성을 위해 나라를 다스리는 존재이며, 만약 임금이 주권을 빼앗겼다면(혹은 포기했다면) 백성이 직접 나라를 운영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에 기반을 두었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임시 헌장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고 명시했으며, 1948년 제헌헌법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선언한 것은 단순히 서양의 '공화' 개념을 비판 없이 받아들인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역사적 맥락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공화주의는 서양만의 전유물이 아닌, 동양에서도 과거부터 이어 내려온 가치였음을 잊지 말자. 이제 우리의 과제는 '우리만의 공화주의'를 정립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권력 분산, 시민의 덕성, 자발적 결사, 소수의 권리 보호 등 기존의 공화주의 원칙을 기반으로 하되, 우리나라의 독특한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반영해야 한다. 서구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동양의 전통과 가치를 통합한 새로운 정치적 접근을 통해 공화주의를 재구성할 때 우리 사회에 더욱 적합하고 대중이 느끼는 '답답한 현실 정치'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대안을 배달해 드립니다" - 창작그룹 성찰과성장글 작성 ・ 편집 : 김설, 박배민, 신동주(성찰과성장.com)
[처음 만나는 공화주의] 공화주의란 무엇인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에서는 우리나라를 민주공화국이라 설명한다. 진정한 민주주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공화’에 대한 개념이 중요하지만, 상대적으로 민주보다 공화에 대해 다루는 글은 많지 않다.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공화‘. 창작그룹 ’성찰과성장‘은 [처음 만나는 공화주의] 연재를 통해 ’공화주의‘에 대해 쉽게 풀어보고자 한다. 공화주의(republicanism)란?     ‘공화’란 무엇일까? ‘공화’라는 말 자체는 아주 오래전 중국 대륙에 있던 주나라의 ‘려왕’을 통해 탄생했다. 려왕이 나라를 폭압적으로 다스릴 때, 여러 제후가 반란을 일으켜 려왕 대신 나라를 다스리던 시기를 가리키면서 처음 사용됐다. 요는 ‘왕 없이 운영되는 정치’라는 것이다. 이 말은 서양의 혼합정을 뜻하는 republic의 번역어로 사용된다. 공화주의의 역사에 대해서는 ‘동양과 서양의 공화주의 역사’를 다룬 2편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1편에서는 공화주의를 이해하기 위해 공화주의의 핵심 이념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공화주의의 핵심 이념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자유, 법치 그리고 공동선이다. 이 3가지를 갖추어야 공화주의가 추구하는 건강한 정치공동체가 될 수 있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우린 왜 건강한 공동체를 원할까? 답은 간단하다. 정치공동체가 건강해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행복’하기 때문이다. 이제 3가지 이념에 대해 하나씩 살펴보자. 비-지배의 자유  아일랜드의 정치철학자 필립 페팃(Philip Noel Pettit)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공화주의 사상의 핵심으로 비지배(Non-Domination)의 자유를 주장한다. 공화주의에서 말하는 자유는 누구도 ‘주인’이나 ‘노예’가 아닌 상태다. 즉, 공화주의적 자유는 타인의 의지로부터 자유로울 때 가능하다. 어떻게 해야 서로가 서로에게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여기서 법이 등장한다. 법은 공동체 구성원간 지켜야 할 규칙이자 원칙인 동시에 서로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것을 중요시 여긴다. 법은 특정 집단이나 개인의 의지를 제한하는데, 국가의 개입이 공정하다는 전제하에 법의 제한은 구성원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한다. 공화주의의 핵심 요소인 ‘비-지배의 자유’가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법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법치  법에 의한 다스림, 법치를 계속 이야기해보자. 법치는 타인의 자의적 지배를 막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공동체의 구성원이 주인과 노예가 되는 것을 막으려면, 법이 공평하게 적용돼야 한다. 단순히 법이 존재하는 것을 넘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돈과 권력으로 법을 유리한 대로 이용하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겉으로 보기에 민주국일지언정 ‘공화’국으로 보기엔 어려울 듯하다. 앞서 말한, 비-지배의 자유는 ‘타인의 자의적 의지’로부터의 자유를 말한다. 말이 어렵다. 쉽게 생각해보자. 어떤 노예와 그 주인이 있다. 주인이 노예를 예뻐해 자그마치 10년 간의 특별 휴가를 허락했다. 노예는 자유로운가 아닌가? 공화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노예는 여전히 예속(남의 지배나 지휘 아래 매임) 상태다. 노예가 간섭 없이 편하게 지내더라도 결국 노예는 주인의 말 한마디에 마음과 행동이 제약된다. 하지만 법은 다르다. 판사가 죄인에게 형량을 선고하는 것은 지배가 아니다. 판사는 범죄자를 지배할 수 없다. 그저 법의 집행자일 뿐이다. 법치에 기반한 비-지배 자유가 이루어진 것이다. 공동선(common good)  마지막 세 번째는 공동선과 시민의 덕성(civic virtue)이다. 앞서 비지배의 자유와 법치를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경험적으로 현실과 이상은 많이 다르다는 걸 잘 안다. 법치만으론 완벽하지 않다는 걸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공동선이 요구된다. 공화주의의 법은 공동선을 향해야 한다. 공동선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법이 특정 계층, 특정 집단처럼 사익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추구할 때’, 그것이 바로 공동선이다. 공동선이 무엇인지 잘 그려지지 않을 수 있다. 사실 당연한 결과다. 공동선은 어떠 어떠하다며 정의돼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동선은 우리 사회의 여러 계층, 분야, 집단이 함께 논의하고 의견을 조율해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시민의 덕성이 중요하다. 시민의 덕성 없이는 공동선을 달성할 수 없다. 시민의 덕성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겠다는 마음가짐과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정치공동체 구성원의 시민적 덕성은 공동체 전체에게 이로운 방향을 먼저 생각한다. 그리하여 특정 개인이나 집단만의 사익을 밀어내고, 사회를 좀 먹는 부패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시민의 덕성이 없어지면 어떻게 되냐고? 한순간도 마음 편히 지낼 수 없는 무제한의 공포 상태, 즉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시대가 열린다. 나오며  공화주의가 유일한 정답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민중(people)을 대변해야 하기 때문에 소수를 억압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공화주의가 오용되어 과도하게 집단을 우선하게 될 경우, 개인의 자유가 침해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구더기가 무서워 장을 못 담그는 상황이 생겨서는 안 된다. 2023년은 검찰 독재라고 불릴 만큼 민주주의가 편의에 따라 오용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공동선을 논의하며 공화주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시기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대안을 배달해드립니다 - 창작그룹 '성찰과성장' 글 작성 및 편집 : 김설, 박배민, 신동주성찰과성장.com
시민사회 활동가들, 시민사회의 현실에 대해 논하다
이 글은 대화 참여자들의 주장을 압축하여 재구성한 것으로 오마이뉴스에 2023년 11월 21일에 발행된 글입니다. 시민운동 운동권세대 보십시오... MZ 활동가들 4시간 성토 [오마이뉴스 23.11.21] ▲ 시민사회 현실에 대한 3인의 대화 시민사회의 현실에 대한 난상토론을 위해 3명의 시민사회 활동가가 모였다. ⓒ 손우정  변화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시민사회단체는 이전과 결이 다른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치열했던 1980년대를 뒤로하고, 계급보다는 생활을, 민중보다는 시민을 중심으로 한 일상적 민주주의의 기치를 내걸고 활발하게 전개된 시민운동은 정치적·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중요한 주체로 자리 잡았다.일부 시민운동 출신 인사는 정치권으로 나가기도 했고, 작은 생활 속 이슈만이 아니라 낙천낙선 운동, 정치개혁 운동으로까지 확장됐다. 노무현 정부 시기부터는 보수적 시민운동도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시민사회의 분화와 함께, 시민운동도 다양화, 세분화되었다. 사실상 하나의 이름, 하나의 성격으로 불릴 수 있는 시민사회, 시민운동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무엇보다 시민운동도 사회의 다른 여러 분야와 마찬가지로 세대교체를 경험하고 있다. 여전히 시민운동을 이끌고 있는 간부들은 격렬한 학생운동의 경험과 민주화 시대의 가치를 공유하고 있지만, 새롭게 유입되고 있는 활동가들은 소위 'MZ적 감수성'으로 무장하고 있다. 거대한 시대의 변화가 우리 사회 곳곳에 반영되며 충돌하는 중이다. 시민단체에서는 이 충돌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을까?다양한 의제를 둘러싼 논쟁과 대화의 자리를 마련하는 '대담한 대화'에서는 이질적 세대가 각축하는 시민운동의 현실을 들여다보기 위해 세 명의 활동가를 초대했다. 이제 막 30대에 접어든 5년 차 활동가인 조선희 활동가(민주언론시민연합, 이하 '민언련')와 서민영 활동가(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이하 '연대회의'), 그리고 벌써 18년 차 활동가가 된 권복희 대표(민주시민교육 곁, 이하 '곁')다. 이들의 대화를 축약하여 싣는다."경험과 세계관 모두 다르다"연대회의 교육위원회에서는 지난 7월 19일부터 8월 20일까지 전국 시민사회운동 활동가 101명을 대상으로 시민운동의 현실과 과제를 알아보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이 설문 결과에서 눈에 띄는 점은 저연차 활동가(5년 미만)와 중견 활동가(5~20년), 임원급 활동가(20년 이상)의 응답이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조선희(민언련 활동가, 5년 차): "임원급이나 20년 차 이상의 활동가와 저연차 활동가의 차이는 어쩌면 당연한 것 같아요. 악을 상대하는 방식이랄까?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점을 파악하는 방식, 세계관이나 가치관, 경험이 전부 달라요. 5060세대는 2030세대의 문제인식이 안일하거나 얕다고 보시는 것 같아요. 거악과 싸우고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는 게 우선이라고 보시니까. 반면에 2030 세대는 '내부의 민주주의부터 정립해야, 외부를 향한 활동도 정당성을 갖출 수 있다'고 생각해요. 40대의 존재는 그동안 좀 간과해 왔던 것 같은데, 50대, 60대의 지지자나 후원자라고 생각했었어요."권복희(곁 대표, 18년 차): "네? (우리 세대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줄은 전혀 몰랐어요. 우린 낀 세대예요. 영향력 있던 시절의 선배(50~60대), 청년 후배 사이에 끼어있죠. 다만 선배들이 '야'라고 하면 '어'라도 대답해야 할 것 같은, 그런 문화가 있긴 해요. 거절을 잘 못하는 세대이기도 하고. 선배들과 다른 방식으로 활동하고 싶지만 여러 상황으로 어렵기도 하고, 항상 조심스러워서 소통을 잘 못하는 세대일 수는 있어요."서민영(연대회의 활동가, 5년 차): "40대 활동가 선배들을 보면, 대부분 학생운동 경험을 공유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뭔가 그 윗세대와 끈끈한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여요. 옛날에 전통적인 운동했던 분들이 그러지 않나요? 선후배가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고, 막 토론하다가도 선배 그룹이 딱 등장해서 뭐라고 말하면 싹 정리되는."조선희: "맞아요."(웃음)권복희: "아니라니까요!"서민영: "나쁘게 보인다기보다는 우리와 많이 다르다는 느낌이 들어요. 2030 세대는 뭘 하려면 일단 설득이 되어야 하는데, 선배들은 설득 과정 없이 뭔가 확 모이는 것 같은? 물론 경험에서 나오는 차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잘 이해가 안 되는 측면이 있어요."조선희: "설문 결과를 보고 좀 복잡한 생각이 들기는 했어요. 시민사회의 가능성 같은 질문에 40대에 해당하는 선배들이 가장 부정적이잖아요. '아, 이분들이 많이 지치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전에는 그냥 이분들이 60~70대의 지지그룹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와 잘 대화하면 이해의 폭을 넓힐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권복희: "우리는 소위 586으로 불리는 선배 세대를 이해는 하지만 경험이 달라요. 그런데 청년 활동가들은 우리와 선배들을 다 같이 묶어서 비판하는 것 같아요.  ▲ 권복희 민주시민교육 곁 대표 권복희 대표는 흥사단 인턴으로 시작해 이제 18년 차 시민운동가가 되었다. ⓒ 손우정    86세대(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1960년대생)와 97세대(1990년대에 대학을 다닌 1970년대생)는 학생운동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지만 일정한 '단절'이 존재한다. 당사자들은 그 차이가 크다고 생각하지만 이후 세대의 눈으로는 같은 그룹, 혹은 서로를 지지하는 그룹일 뿐이다. 그만큼 86·97세대와 이후 세대의 간격은 86세대와 97세대의 간격보다 더 크다. 그래서 여기저기 불협화음이 들린다.조선희: "생각해 보니까 우리가 반성할 점도 있는 것 같아요.(웃음) 선배들에게 '비민주적'이라고 지적할 때가 있는데, 이 말을 너무 쉽게 썼다는 생각도 들어요. 선배들은 이 말을 굉장히 공격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이시더라고요. 우리 세대가 적절한 언어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더 많은 언어가 필요한 건 사실이에요."서민영: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상급자는 직급과 경험에서 오는 권위가 있잖아요? 그래서 권위가 있다고 했더니 '내가 권위적이라고?' 하면서 굉장히 놀라고 당황하더라고요. 그런 의미는 아니었는데."권복희: "권위는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권위적이라는 말은 우리에겐 전혀 다른 의미로 전달돼요. 저도 '민주시민교육 한다는 사람이 그래도 되냐?'는 말을 들으면 굉장히 상처받거든요. 생각해 보면 그 말을 했던 분도 적절한 언어를 찾지 못해서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아이디어 내면, "네가 책임질 수 있어?"'적절한 언어'의 사용, 경험의 차이에서 오는 오해와 실수는 시간이 흘러가면서 차차 해소될 수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문제는 '서로 다른 생각'이 원하는 만큼 교통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새로운 세대는 기성세대가 자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경청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세상의 변화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시민운동의 정체를 낳는다고 보고 있다.서민영: "시민운동의 방식이 잘 안 변해요. 늘 농성, 단식, 삭발... 물론 이런 방식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니까 계속하는 것이라고 이해는 하는데, '계속 반복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은 들어요. '이번엔 단식했으니까, 다음은 누가 삭발할래?' 같이 거의 매뉴얼처럼 움직인달까? 시민들이 이런 모습을 보고 마음이 움직일까 싶고, 너무 갇혀 있는 느낌이에요. 낙천·낙선 운동하면 잡혀간다고 겁주는데, 저는 잡혀가면서까지 운동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진짜 무서워요."권복희: "선배들은 학생운동 하면서 구속과 수배를 불사했기 때문에 그렇지만,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싶어서 (사기업 취직 대신) 공익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상당한 압박을 받을 것 같아요. 그런데 예전에는 단식하고 삭발하고 행진하는 방식을 통해서 실제로 많은 걸 바꾼 경험이 있어서 새로운 운동 방식을 생각하거나 시도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지금은 예전과 같은 효능감이나 확장력이 없는데도요. (시민사회가) 의제도 주체도 다양해졌으니까 운동 방식도 다양해질 수 있는 논의와 시도를 계속해야죠."조선희: "문제가 터지면 자동으로 '기자회견 열자'고 해요. 그럼 금방 열어요. 그런데 기자는 안 와요. 토론회도 입장이 다른 사람과 해야 의미가 있는 건데, 너무 비슷한 사람들하고만 해요. 입장이 다른 사람을 부르자고 하면 당황하는 경우도 있어요."새롭고, 세련된 방식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새로운 시도는 언제나 실패의 가능성이 공존한다. 대신 기존방식은 안전하다. 그래서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은 섣불리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어렵다. 그래도 누군가 실패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도전하지 않는다면 변화가 있을 리 없다. 이들은 제안이라도 충분히 해봤을까?조선희: "우리에게 결정권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회의는 대부분 실무자를 정하고 업무를 나누는 시간이에요. 새로운 시도나 아이디어를 토론하는 자리가 아니에요."  ▲ 조선희 민주언론시민연합 활동가 조선희 활동가는 5년 차 민언련 활동가다. ⓒ 손우정    서민영: "아이디어를 내면, '네가 의견 냈으니까 실현 가능하게 책임져'라는 식이에요. 의견을 내면 같이 고민해 주지 않고 '제안서 만들어와' 이런 식이면 또 의견을 내기 힘들어요. 나도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은데... 그래서 젊은 활동가들은 동아리나 책모임 같은 사이드 프로젝트를 많이 해요. 조직 내에서 소화를 못 하니까."권복희: "시민단체 처장들이나 팀장들은 다들 너무 바빠요. 새로운 것보다 당장 지금 하는 일을 책임지는 게 중요한 사람들이죠. 나를 포함해 처장님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난 (새로운 방식을) 잘 모르니까 확신이 안 서, 결국 내가 책임져야 하는데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할 것 같아요.""사회적 영향력? 생각하는 의미가 서로 달라"새로운 세대는 기존의 시민운동이 정체되어 있다고 느끼고, 시민운동의 사회적 영향력이 줄었다는 평가도 많다. 그런데 연대회의가 진행한 설문조사 중 의외의 부분은 시민단체의 사회적 영향력이 높다는 것에 동의하는 비중이 생각보다 높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물론 40대의 긍정 응답 비율은 가장 낮다. 여기에는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이 섞여 있다.  ▲ 2023년 시민사회단체 현황조사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교육위원회에서 2023년 7월 19일부터 8월 20일까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10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사회적 영향력 부분에서 40대 활동가의 응답이 가장 낮다. ⓒ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권복희: "86세대에 해당하는 20년 차 이상은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한 경험을 이미 해 봤어요. 그런데 우리 세대는 윗세대가 영향력을 행사할 때 지원만 했지, 우리가 한 일로 느끼지는 못했어요.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니까 (40대가) 낮게 응답한 것 같아요."서민영: "사회적 영향력을 서로 다른 의미로 이해하는 것 같아요. 선배들은 사회적 영향력이라고 하면 어떤 결과가 바뀌는 것으로 생각하잖아요? 우리는 이걸 '내 친구들이 알고 있느냐'로 판단해요. 우리의 주장이 널리 알려지면 영향력이 있다고 보는 거죠."조선희: "전 5년 차 미만 활동가들이 사회적 영향력이 높다고 응답한 건, 현실에서 그런 걸 경험해 봤다기보다 희망이나 기대가 섞인 결과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일반회사에 취업할 수도 있었지만, 시민운동을 선택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어요. 그런데 우리 활동이 아무런 영향력도 없다고 하면 이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잖아요?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영향력을 경험할 틈이 없었던 것 같아요. 어떤 일이 끝나면 평가해서 '아, 이런 영향력이 있었구나'하고 느껴야 하는데 바로 다음 이슈로 넘어가기 바빠요."서민영: "평가 자체를 잘 안 해요. 단순히 바빠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성과에 대한 피드백이 없으니까, 활동가들이 쉽게 지치는 것 같아요. 힘들게 뭘 마치고 나면 '수고했다'하고 끝. 한 시간만이라도 내가 하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었고 어떻게 하면 더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활동의 의미를 더 잘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건 개인의 몫으로 남겨 놓는 거죠."조선희: "변화보다는 남아있는 문제에 더욱 집중하는 것도 문제 같아요. 우리 단체에서 지원해서 포털에 이태원 참사 2차 가해 댓글을 막는 일을 한 적이 있어요. 처음에는 많이 참여 안 했는데, 두 번째 할 때는 1차에서 참여 안 한 곳들이 많이 참여했어요. 3차 때는 2차 때 안 한 곳이 또 많이 참여하고. 아주 작고 소소하긴 하지만 이런 작은 변화도 분명히 영향력인데, 조직에서는 성과를 강조하기보다 '아직 동참하지 않은 언론사'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결과가 쓰였어요. '우리 조직은 이런 작은 변화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나? 너무 작은 변화라고 생각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 우리가 변화시킨 것에도 초점을 좀 맞추면 좋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잘하고 있는 게 맞나 싶고, 문제는 계속 쌓여가는 것 같아서 답답해요."권복희: "우리가 작은 변화를 주목하지 못하는 야박함이 있는 것 같아요. 중요한 영향력을 가졌어도 이걸 내부의 자부심으로 연결하지는 못하고 있어요. 시민사회의 아쉬운 부분 중 하나죠."전환의 길? 의미와 방향을 가진 대화부터예정된 시간을 훨씬 넘겨서 진행된 '대담한 대화'의 화두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만큼 쌓인 것도 많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다. 대화 중간 자주 나온 이야기 중 하나는 성토의 대상이 된 '선배들'과 함께 대화했다면 더 좋았겠다는 의견이었다. 요즘 청년세대는 선배들과 대화하기 싫어한다는 것은 근거 없는 선입견이다. 신진 활동가들은 누구보다 대화에 목말라했다. 다만 문제는 대화의 화두,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다.서민영 "조직 내에서 소통을 많이 해야 해요.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워크숍 같은 것으로는 안 돼요. 인간적인 고민을 터 넣고 소통할 수 있는 유대감이 필요해요."  ▲ 서민영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활동가 서민영 활동가는 대학시절 YMCA활동으로 시민운동을 시작해 이제 5년 차 활동가가 되었다. ⓒ 손우정    조선희: "그냥 유대감을 나누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한데, 아무리 워크숍을 가고 대화를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예요. 그냥 '저 사람은 나와 다르구나'하고 인정하는 것이 필요한데, 같이 일하는 사람이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잘 인정하지 못해요. 우리가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 할지를 많이 이야기해야 조직에 대한 애정이 생기지, 그냥 대화만 한다고 되나요?"권복희: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에 대한 대화를 못하고 있는 건 사실이에요. 이슈 중심으로 싸우기만 했죠. 돌아보는 과정이 필요해요. 시민사회와 세대가 다 변화하고 새로운 세대는 계속 등장하고 있는데 우리 방식은 변하지 못하고 있어요. 성찰하고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해요."이들의 대화가 시민사회 활동가들의 모두를 대표할 수는 물론 없다. 아마도 이들의 평가와 해석에 반론도 많을 것이다. 청년 활동가들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생각을 가진 것도 아니며, 이런 인식 차이와 갈등이 시민단체에만 고유한 것도 아니다.그러나 지금 시민단체, 사회적 세대 갈등의 저변에는 단순한 '생각의 차이'가 아니라 '문화적 차이'가 깔려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생각의 방식, 평가의 관점이 다르다. 같은 장(field)에 있다고 생각했던 공간의 문법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차이를 좁힐 방법은 분명한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를 이해해 보려는 노력으로 새로운 문법을 만드는 것뿐이다. 비록 몇 번의 실패와 좌절, 마음의 상처가 예고되어 있더라도. * 이 글은 이날의 대화를 축약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시민사회 전반에 대한 이들의 신랄한 대화 전문을 읽고 싶으시면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십시오. 대담한 대화 전문 읽기 
활동할래? 노동할래?
활동과 노동 사이 ‘활동가’는 가장 좁게는 어떤 일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 적극적으로 힘쓰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와 달리 ‘운동가’는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변화를 위해 활동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독재나 자본과 맞서 싸우는 사회운동을 하는 운동가라는 호칭과 구별되는 활동가라는 호칭이 사회적으로 일반화되어 자주 쓰이게 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현실에서 활동가는 우선 사회운동가, 시민단체 상근자를 지칭한다. 하지만 그 이상을 포함한다. 사회운동가라는 표현이 일정정도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대체 할 필요성이 제기되어 사용되었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주로 정치와 관련된 전통적 사회운동과 구별되는 새롭고 다양한 운동들을 포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는 의견이다. 이러한 관점은 협동조합 활동가, 마을활동가, 사회적기업가, 사회혁신가, 소셜디자이너 등 소위 ‘제3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포괄하여 활동가라 지칭하고 있다. ‘활동’은 사회운동을 넘어 사회적 가치를 지니면서도 개인적 삶의 재생산이 가능한 일을 통해 국가와 자본의 실패를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활동 전반을 표현하게 되었다. 시민사회단체 대신 NGO, NGO 대신 NPO라는 개념을 점점더 쓰게 되는 것도 유사한 맥락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활동가의 등장 맥락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노동의 위기 속에서 활동이 부각 된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현재 새롭게 나타나 활동을 벌이고 있는 청년 활동가 집단들은 장기화된 청년실업이라는 구조적 조건에 대응하는 청년주체들의 활동들 속에서 등장했다. 서울시와 청년유니온의 사회적 교섭 이후 서울시 청년기본조례가 제정되는 등 여러 과정을 거쳐 발전해 온 서울시 청년정책중 중요한 한 부분인 ‘뉴딜일자리’ 정책을 통해 형성된 청년활동가들이 핵심적인 사례일 것이다. 꼭 청년 범주가 아니어도 여러 중간지원조직을 포함하여 제3영역과 관련되어 늘어난 활동가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관점에서의 ‘활동가’ 개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구조적 차원의 노동 배제 혹은 소외된 노동으로의 복속’ 너머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활동’이라는 문제의식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향성은 ‘의미 있는 일’, ‘사회적 가치의 실현’, ‘대의의 추구’, ‘자아실현’ 등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바람이 환상으로의 도피에 그치는 것으로 귀결 될지, 새로운 사회를 추동하는 잠재적 가능성의 현실화가 될 지는 열려 있는 문제다.  반면에 기존의 시민사회단체 상근자이건 새롭게 등장한 활동가이건 활동가들에게서 ‘노동’이라는 단어가 재소환 된다. 활동을 위해서는 신념과 열정, 헌신과 봉사로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당해야 한다는 인식 속에서 활동가들은 자신들의 삶을 좀먹어 갔고, 그것은 점점 견디기 힘든 것이 되었다. 활동가들은 자신들의 생계를 유지하고 더 나아가 삶을 조금씩이라도 윤택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활동가가 아니라 ‘노동자’임을 내세울 필요가 있었다. 노동권을 가지고 노동법의 적용을 받는 임금 노동자로 말이다. 이들은 활동을 노동으로 인정받고자 했고 이에 따라 사회적 차원의 노동권을 보장받고자 했다. 2017년에 참여연대에 조합원 37명의 노동조합이 생겨나게 된 것이 상징적인 사례이다. 이 관점에서의 ‘노동자’ 개념은 ‘불안정한 삶에서의 불안한 자아실현’ 너머를 지향하는 것이다. 이 역시 ‘의미 있는 일’, ‘사회적 가치의 실현’, ‘대의의 추구’, ‘자아실현’를 오래도록 안정적으로 추구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바람이 노동과 구별되는 활동을 소거하여 다른 노동들과 다름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게 될지, 활동을 지속가능한 것으로 만들게 될 지는 열려 있는 문제다. ‘노동자가 아닌 활동가’, ‘활동가가 아닌 노동자’는 의외로 유사한 지향성 속에 위치시킬 수 있다. 활동과 노동에 대한 그간의 논의에서 활동가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내적 동기와 외적 보상 두 측면에 유지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활동이 더 이상 하고 싶은 무언가가 아닌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되면 그만둘 수밖에 없고, 내적 동기가 있다 하더라도 일정 이상의 외적 보상이 따라주지 않으면 언젠가는 그만둘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노동자가 아닌 활동가’, ‘활동가가 아닌 노동자’, 활동과 노동 사이에서의 진동은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사회적 전환을 추동하는 가치 지향의 활동들의 지속가능성이라는 고민 속에 위치하는 것이다. 이러한 고민들 속에서 제기되는 활동과 노동을 포괄하는 개념들이 있다.  사회연구자 류연미는 “노동과 운동이 공존하는 행위, 환원하면 먹고 살 수 있으면서도 사회변화를 모색할 수 있는 행위, 그리고 때로는 노동이나 운동의 일환으로 파악할 수 없지만 소규모 공동체를 바탕으로 사회적 의미를 추구하는 행위들”이 ‘활동’ 내지는 ‘사회적 활동’이라 규정한다. 이영롱·명수민은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라는 책에서 실무를 수행하거나 유무형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여 임금을 받는 ‘(경제적) 노동’, 사회를 바꾸려는 집합적 실천으로서의 ‘(정치적) 운동’, 가치지향적으로 새로운 관계를 유지하거나 구축하고자 하는 ‘(사회적) 활동’이 복합되어 있는 ‘사회적 노동’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어떤 개념을 받아들이건 소외된 노동 너머 사회적 변동을 추구하는 활동이라는 지향성과 안정적인 삶의 재생산이라는 두 가지 문제의식이 결합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시도들의 인식을 대체로 공유하며 좀 더 깊이 고민해야 할 부분들이 있다. 활동가들이 일하고 있는 조직들은 많은 경우 활동가로 하여금 안정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임금을 지급하기 어려운 조건에 있다. 특히 작은 규모의 조직인 경우에 더욱 그러하다. 인건비를 충분히 지급할 수 없기 때문에 노동 시간 등 노동조건들이 악화되거나 개선의 여지를 가질 수 없게 된다. 명망가에 기대고 있는 경우 명망가 개인의 영향 아래에서 자유롭게 활동을 벌이기 어려워지는 문제가 생겨날 것이다. 프로젝트이건 인건비 지원이건 국가의 지원을 받고 있다면 국가의 영향 아래에서 국가를 비판하는 활동을 자유롭게 벌이기 어려워지는 문제가 생겨날 것이다. 조직 자체의 영리 활동 강화도 하나의 대답이 될 수 있겠지만 영리 활동 자체가 ‘활동’ 없는 임노동의 강화로 이어지기 쉽다. 대안이 무엇인가에 대한 또 하나의 대답은 회원의 회비 충원을 통한 건강한 재정구조의 형성일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경제와 노동의 위기 속에서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에서 쉽지 않다. 자원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큰 조직의 경우에는 ‘소외된 노동을 넘어서는 안정적인 활동’에 대한 고민에 집중할 수 있지만, 자원이 부족한 작은 조직의 경우에는 조직의 자원 확보라는 고민을 동시에 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임노동과 구별되는 ‘활동’이라는 것이 강제된다면 바로 이 부분일 것이다. 임금과 노동조건이 충분하지 못한 조건에서 만약 타협을 할 수 있다면 그 대체재는 무엇일까? 활동가의 성장, 자존감과 자율성, 협력와 연대 나는 활동가의 자존감 독려와 자율성 확보, 그리고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일을 하는 조직적 실천에 활동가 개인을 동일시하라는 간접적인 사회적 가치 실현 방식은 일정 부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활동가 개개인의 문제를 해결 할 수는 없다. 활동가 개인이 점점 기계의 톱니바퀴가 된 듯한 생각이 들어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조직의 가치와 활동가 개인의 가치 사이에서의 간극은 항상 존재한다. 활동가 개인의 가치를 실현하는 자아실현이 그 활동가의 자존감 확립과 직결되어 있는 것이라면 조직의 비전이 이를 위한 하나의 핵심 요소로 위치될 수 있도록 관계를 조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간극이 벌어지게 되면 점점 활동은 어려워진다. 벌어진 간극을 견디게 해주는 요인은 대개 높은 임금이나 좋은 노동조건이다. 문제는 이러한 간극을 좁히기 위한 매개로서의 자율성이 활동가에게 보장되어 있느냐는 것이다. 구성원들의 합의 된 틀 내에서 활동가 개인이 자율성을 가지고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활동가 개인의 성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고, 역량을 강화하여 전문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더 나은 활동으로 나아가기 위한 징검다리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율성은 활동가의 성장에 대한 독려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조직 내에서 조직의 비전과 가치에 따라 함께 활동하는 것이 활동가의 성장과 직결된다는 것을 설득하고 증명 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성장이야말로 활동과 노동이 공유하는 최고의 보상 중 하나일 것이다.   간극을 좁히는 매개는 자존감과 자율성, 성장뿐만이 아니다. 조직의 구성원들의 협력체계 형성 및 연대감 형성이 필수적이다. 자율성에 대한 강조는 개인에게 과도한 부담으로 귀결되기 쉽다. 대부분의 중요한 일은 혼자 할 수 없으며 함께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자율성에 대한 강조는 안타깝게도 다른 구성원들의 자율성에 대한 무시, 때로는 방해로 해석되어 작동하기도 한다. 때문에 주어진 조건들을 공유하는 가운데 소통을 통한 합의, 타협과 조정 등의 과정이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구성원들의 협력체계와 그에 기반한 연대감이 형성되면, 그리고 그러한 틀 내에서의 자율성이 보장되면 활동가들은 제약된 물적 조건 속에서 자존감을 가지고 활동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물적 조건의 개선을 통한 노동조건의 개선 가능성을 높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은 때로 조직의 가치나 비전 그 자체를 바꾸거나 재구성하기도 한다. 이러한 노력들은 많은 경우에 다 때려치우고 싶을 정도로 실패율도 높고 고통스럽지만 끊임없이 시도되어야만 한다.   이 글은 4년 전, 2019년 4월 한 토론회에서 발표했던 글의 일부를 약간 수정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