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등재, 세계가 인정한 4.19 혁명의 가치
들어가며 4월 19일,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상징적이고 중요한 날이다. 이 날은 독재 정권에 대한 국민의 저항이 처음으로 명확한 성과를 이룬 기념비적인 순간을 기리는 날이다. 4·19 혁명은 단순한 시위를 넘어서, 대한민국에서 민주적 가치가 꽃피우기 시작한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다. 2023년, 이 혁명의 중요성은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이로써 4·19 혁명은 한국 내부의 역사를 넘어 전 세계에 그 의미를 전달하게 되었다. 2024년 4·19 혁명 기념일은 이 특별한 인정을 받은 후 처음 맞이하는 해로서, 우리는 4월 19일을 통해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앞으로도 그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나가야 할 중요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 4·19 혁명 흐름을 간단히 살펴보며, 이 날이 우리 모두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그 정신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 숨 쉬고 있는지 확인해보자. 3.15 부정 선거 1960년은 우리나라가 여러모로 어지러운 시기였다. 일제에 의한 경제 수탈에서 회복 중이었고, 한국전쟁의 상처가 아물기 전이었다. 어지러운 시국을 틈타 이승만은 경찰력과 물리력을 동원해 대한민국을 자신의 입맛대로 다스리고 있었다. 이승만은 1952년 부산 정치 파동, 1954년 사사오입을 통해 영구 집권을 노렸다. 자유당은 1958년 12월 24일 국회에서 야당 의원들을 강제로 축출하고 국가보안법 및 지방자치법을 개악했다. 국가보안법에는 정부를 비판하는 언론을 처벌할 수 있다는 조항이 담겼고, 지방자치법은 선거로 선출하던 지방자치단체장을 정부가 임명하겠다는 쪽으로 개악됐다. 이를 '24파동'이라 한다. 결국 1년 뒤, 3.15 부정선거가 발생했다. 1960년 1월 23일에 실시된 경북 영일군(을)과 영주군 국회의원 재선거는 3.15부정선거를 위한 예행연습이었다. 이 재선거에서는 자유당은 미리 기표한 투표용지 40%를 투표함에 미리 넣어두는 부정을 저질렀고, 여기에 더해 3명과 9명씩 짝을 지어 조장이 기표 사실을 확인하는 공개투표까지 저질렀다(3인조·9인조 공개 투표). 이러한 수법은 이후 3.15부정선거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었다.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 계획을 사전 입수한 민주당은 3월 3일 언론을 통해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 비밀지령’을 폭로했다. 선거 전 부정선거 계획이 들통났음에도 이승만 정권은 계획대로 강행했다. 민주화운동사전에서 정리한, 대표적인 부정선거 방법은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1) 민주당 참관인의 투표소 입장 및 참관 방해. 2) 투표 개시 이전, 새벽부터 참관인 없이 진행된 사전 투표(지역에 따라 사전 투표율은 75~80%에 달함). 3) 민주당 참관인에 대한 폭행과 축출. 4) 유권자와 취재기자 폭행. 5) 한 기표소에 3명이 함께 들어가는 3인조 공개 투표. 6) 야당 지지자는 투표하지 못하도록 번호표 미교부. 7) 참관인석에서 볼 수 없는 위치에 투표소와 기표소 설치. 8) 대리 투표와 무더기 투표. 1960년 3월 15일 부정선거에 맞서 대규모 규탄 시위가 마산에서 일어났다. 경찰은 이를 진압하기 위해 물리력을 행사하는 강경진압을 택했다.이때 마산 집회에 참가한 고등학생 김주열 군이 집으로 돌아 오지 않았다. 4.19혁명 약 한 달 후인 4월 11일 오전, 마산 앞바다에서 최루탄이 박힌 채 시신 한 구가 떠올랐다. 김주열 군이었다. 김 군은 3월 15일 시위 때 경찰이 쏜 최루탄에 목숨을 잃었으며, 경찰은 자신들의 잘못을 은폐하기 김주열 군의 시신을 바다에 유기한 것이었다. 이 사실이 밝혀지자 마산 시민들은 분노했다. "살인 선거 물리쳐라", "시체를 인도하라"라고 외치며 시의회 의장 김성근, 자유당 허윤수, 파출소, 경찰서를 습격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의 발포로 또 다른 시민이 한 명이 사망했다. 마산 시위는 12, 13일까지 계속 이어졌다. 다만 한 달 전의 시위와 달리, 4월 마산에서의 시위는 새로운 요구사항이 나타났다.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구호가 등장한 것이다. 3월 15일 부정선거 항의 시위에서는 주로 학원의 자유, 정치 도구화 반대, 부정선거 배격, 공명선거 보장 등의 구호가 외쳐졌다. 시위는 곧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고등학생이 주도하는 가운데 4월 12일 대전, 14일 진주, 15일 마산, 16일 청주 그리고 18일 부산과 청주에서 대규모 학생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었다.  4월 18일 고려대 학생 3000여 명이 모여 "민주 역적 몰아내자", "자유, 정의, 진리 드높이자" 등의 구호를 외쳤다. 시위대는 가두행진으로 이어 가려 했지만, 경찰의 저지선을 뚫지 못 했다. 학생들은 삼삼오오 몰래 빠져나와 국회(현 서울시의회 건물) 앞에서 1000여 명이 다시 결집했다. 시위대는 연행된 학우들의 석방과 이승만 대통령이나 최인규 내무부장관의 부정선거 해명을 요구했다. 시위대는 6시 40분경 평화적으로 해산했다. 그러나 귀가하던 고려대 학생들이 봉변을 당했다. 종로4가 천일백화점 앞에서 유지광 대한반공청년단 동부특별단 부단장이 이끄는 화랑동지회 소속 정치깡패 60여 명이 흉기를 들고 학생들을 습격했다. 이로 인해 50여 명의 학생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다음 날, 고려대 학생들의 피습 소식이 대서특필되었고, 다른 대학 학생들에게도 급속도로 퍼졌다. 이 사건으로 인한 학생과 시민들의 분노가 일제히 폭발하면서 4월 혁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4월 19일 오전, 대광고와 동성고 학생들이 가두 행진을 진행하면서 국회(현 서울시의회 건물) 앞에 모인 학생과 시민이 1만 명에 달했다. 점심 전후로 동국대에서는 2000여 명이, 중앙대에서는 4000여 명이 한강대교를 넘어왔다. 한편, 광화문 쪽에서는 성균관대, 연세대, 홍익대 학생들이 서대문 이기붕 집 앞에서 경찰대, 헌병, 정치깡패와 대치했다. 내무부(현 외환은행 본점, 을지로입구역) 앞에서도 서울대, 건국대, 동국대, 성균관대 학생들이 시위를 벌였다. 늦은 오후가 되자, 중앙청(조선총독부 건물)에서 남대문까지의 대로를 10만 명이 넘는 군중이 메웠다. 경찰이 곳곳에서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다. 사상자가 연이어 발생했다. 서울뿐만 아니라 광주, 부산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시위가 일어났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이승만 정권은 계엄령을 고려했다. 내무부장관 홍진기가 계엄령 선포를 건의했고, 국방부장관 김정렬이 동의했다. 이승만의 승낙으로 오후 3시경 서울지구 일대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다. 김정렬은 가평에 있는 국군 제15사단을 끌어 들여 시위를 무력 진압하고 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시위는 '피의 화요일'로 불리는 4월 19일부터 4월 26일까지 계속되었다. 서울은 물론 부산, 대구, 대전, 인천, 김천, 목포, 천안, 포항, 울산, 공주, 원주, 묵호(동해), 진주, 밀양, 여수, 수원, 임실, 제천 등 전국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4월 26일 오전 8시 30분경 동대문, 세종로 일대에 75,000여 군중이 모였다. 시위대는 광화문 사거리에 설치된 바리케이드를 뚫고 중앙청(조선총독부 건물)으로 나아갔다. 진압대는 이에 최루탄으로 맞섰다다. 오전 10시경 시위대는 10만 명으로 늘어났다. 이때 주한미국 대사 월터 매카너기는 김정렬 국방부장관에게 정부통령 재선거 문제를 논의하고 이승만의 장래 역할을 숙고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후 이승만은 대통령직을 내려놓기로 결심한다. 약 한 달 뒤인 5월 29일 이승만은 하와이로 망명을 떠났다. 4.19 혁명이 남긴 것 4.19 혁명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독재에 맞서 국민이 직접 일어나 목소리를 높인 최초의 사례이며, 대한민국 최초로 전국적으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이었다. 고등학생과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젊은 세대가 시위를 주도하였고, 이후 시민들의 대규모 참여로 사회 전반의 민주화 운동으로 확대되었다. 이는 학생과 시민이 사회 변화의 주체로서의 역할을 명확히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더 큰 의미에서 볼 때, 4.19 혁명은 내전으로 확전되지 않고 비교적 평화로운 방법으로 대통령을 하야시킨 시민혁명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러한 평화적 접근 방식은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시민혁명은 약 55년이 지난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다.  2023년 5월 19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6차 유네스코 집행이사회에서 4.19 혁명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는 사실은 이 혁명의 세계적인 의미와 가치를 입증한다. 4.19 혁명을 기념하며, 우리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결코 잊지 말자. 4.10 혁명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정의의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참고문헌  4.19혁명디지털아카이브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4·19혁명 (四一九革命)’민주화운동사전 ‘4월혁명(4.19혁명) ‘국가기록원 <연표와 기록>《조선일보》, 1960. 3. 14.(석간)《동아일보》, 1960. 3. 14.(석간)《부산일보》, 1960. 3. 15.(석간)《조선일보》, 1960. 3. 15.(석간)《조선일보》, 1960. 3. 15.(조간)《동아일보》, 1960. 3. 16.(석간)《마산일보》, 1960. 3. 16.《서울신문》, 1960. 3. 15.(석간) 《고려대학교 4.18의거 실록》, 고려대학교출판부, 2012, 586쪽. 일상 속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사람들의 학습 놀이터 '성찰과성장' 글 작성 및 편집 : 박배민 성찰과성장.com
우리는 일을 하면서 행복할 수 있다 [처음 읽는 공동자원체제]
"임금 노동 외에 돈을 버는 방법이 없을까?" 성찰과성장은 '노동시장 너머 새로운 대안 제시하기'라는 주제 아래 3편 연재를 통해, 기존 노동시장의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뛰어넘는 새로운 노동 구조를 상상해 보고자 한다. 이 연재는 전통적인 노동시장의 구조와 내재된 문제점을 진단하고, 지속 가능한 노동의 형태를 모색한다. 들어가며 우리는 대부분 직장인(임금 노동자)이 되는 것에 익숙하다. 그런데 1, 2편에서 얘기했다시피 직장인은 노동소외를 겪을 수 밖에 없다. 일을 하면서 행복을 얻는 직장인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직장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이들은 퇴근 후에야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직장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자신의 행복을 찾는다. 그런데 일과 행복이 반드시 분리되어야 할까? 일하면서 동시에 행복할 수는 없는 걸까? 일을 하는 목적이 임금획득이 아니라면, 그리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해도 잘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일을 하면서 행복할 수 있다. ▲일과 행복이 반드시 분리되어야 할까? ⓒ성찰과성장 필자는 삶을 위해 일을 하면서 동시에 행복을 얻는 일이 보편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구조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글에서는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고용되지 않더라도 살아갈 수 있고, ‘일’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율성을 가지고 자신의 창의력을 발휘하며 행복을 추구하는 행위가 될 수 있는 새로운 구조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공동자원체제와 ‘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commons)’ 공동자원체제(commons)란 사람들과 함께 공동으로 사용하는 ‘유•무형의 자원 또는 그 자원을 관리하는 체제’를 말한다. 이 글에서는 ‘자원’보다는 ‘체제’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한 자원을 공동으로 관리하는 이유는 그 자원이 특정 개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자연이 제공했기 때문이다 ▲ 공동 자원이란? ⓒ성찰과성장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는 공동으로 만들어진 자원을 사유화, 즉 특정 개인 소유로 만들어버린다. 2편에서 일제강점기 토지조사사업으로 마을에서 공동으로 관리한 공용지를 개인 소유 토지로 만든 사례가 공동자원 사유화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 자본주의는 사적 소유가 특징이다. ⓒ성찰과성장 자본주의의 ‘공동자원을 사유화 해야한다’는 논리는 ‘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commons)’이라는 논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commons를 공유지라고 번역하는 것은 commons의 의미를 축소한다. commons라는 단어가 자원을 넘어서 이 자원을 구성원과 함께 관리하는 체제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장훈교(2022)는 commons를 공동자원체제라고 번역한다. 하지만 대부분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용어에 익숙할 것이기 때문에 공유지의 비극을 설명할 때에는 공유지라고 번역하겠다) ▲공동 자원이 고갈되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자 ⓒ성찰과성장 공유지의 비극은 캘리포니아 주립 샌타 바버라 대학의 교수 개릿 하딘이 1968년 발표한 논문의 제목이다. 논문의 내용을 간단히 알아보자. 여기 양을 키우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공동으로 사용하는 목초지가 있는데 이 목초지는 너무 자주 사용하면 황폐화된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또한 이들은 독립적으로 움직이며 공동 자원 관리에 대해 합의를 하지 못한다. 개인이 우선시 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각 개인의 입장에서 자신의 양들에게 최대한 많은 풀을 먹이는 것이 이익이기 때문에 목자는 목초지를 최대한 자주 사용하려고 할 것이며, 그 결과 목초지는 황폐화될 것이다. 하딘은 자원체제의 지속가능성을 파괴하는 이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 공유지(commons)를 없애야한다고 주장한다(장훈교, 2022). 하딘은 공동자원을 사적 재산으로 만들거나(목초지를 각자 나눠가질 것), 중앙집중적인 관리를 해야한다(목초지를 중앙 국가가 관리)고 말한다. 재미있는 것은 하딘은 공유지의 비극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두 가지 제시했지만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주류)경제학계에서는 공유지의 ‘사적 자산화’만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공유지(자원)는 어떻게 관리되어야 할까? ⓒ성찰과성장 한편 공유지의 가장 큰 역할은 바로 사회적 약자가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는 것에 있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 사회적 약자는 공유지를 생산수단으로 삼고 살아간다. 따라서 공유지를 없애겠다는 하딘의 주장은 사회적 약자의 삶의 기틀을 무너뜨리겠다는 것과도 같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것은 신기하게도 하딘이 우생학의 지지자였다는 사실이다(장훈교, 2022). 하딘은 “사회의 패배자는 유전학적으로 열등함과 연결되어 있고” 패배한 이들을 지원하는 복지정책은 미국사회의 유전 자본을 잠식한다고 주장했다. 하딘이 공유지를 없애려고 한 것에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가 깔려있던 것은 아닐지 합리적 의심이 든다. 하딘의 ‘공유지의 비극’ 논문은 많이 알려진만큼 사람들의 다양한 비판을 받았으며, 그 속에서 공동자원체제(commons, 이 문단부턴 공동자원체제로 번역하겠다)를 옹호하는 그룹들이 등장했다. 그 중 엘리너 오스트롬으로 대표되는 신제도경제학 그룹은 정부와 시장 외에 제3의 자원관리제도가 역사적으로 많은 곳에 존재했으며,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정부와 시장만큼이나 효율적이고 공평하며 견고한 자원관리제도”로 공동자원이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 다른 그룹인 사회운동 진영에서는 공동자원체제를 단순히 공동자원을 넘어서 현대 자본주의에 의해 발생한 사회문제를 치유하고 사회 변화를 촉발하는 새로운 질서를 구축할 정치적 프로젝트로 여긴다. 이들에게 공동자원체제는 공동자원의 사유화(쉬운 예로 공기업의 민영화가 있다)를 막고 전통적인 국가의 관료적 해결이나 시장의 가격조절방식과 다른, 협력적이고 자율적인 활동양식을 의미한다. ▲공동자원체제는 허황된 꿈이 아니다. ⓒ성찰과성장 공동자원체제와 일의 관계 필자는 (굳이 선택을 하자면) 사회운동 시각에서 공동자원체제를 바라보고 있다. 즉, 자원을 넘어서 그 자원을 공동으로 관리하는 체제이자 협력적•자율적인 활동양식으로서 공동자원체제를 본다. 그리고 ‘노동’을 공동자원체제에서 다룰 수 있는 자원으로 볼 것이다. ‘노동’도 개인이 독립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닌, 공동의 필요와 욕구를 실현시키기 위해 구성원들이 함께 만들어낸 무형 자원이기 때문이다. ▲노동도 하나의 자원이다. ⓒ성찰과성장 먼저 노동이 혼자가 아닌 함께 만들어졌다는 것을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우리는 노동에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혼자 습득하지 않는다. 학교, 학원 등에서 선생님의 강의(강의 내용도 선생님이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과거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자료로 형성된다)를 통해 습득하거나, 책, 온라인에서 타인이 제공한 정보들을 토대로 습득한다. 학습 자료가 무료이든 유료이든, 사회가 제공한 정보를 통해 우리는 기술을 습득하고 다양한 노동을 할 수 있게 된다. 한편 노동은 ‘공동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무형의 자원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공동의 필요와 욕구’란 모두가 동일하게 갖고 있는 필요와 욕구가 아니라, 많은 사람이 갖고 있는 다양한 필요와 욕구를 말한다. 예를 들어 시장에서 판매되는 모든 상품과 서비스(소수가 원하는 것은 시장에서 판매되지 않는다)는 공동의 필요와 욕구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공동의 필요와 욕구는 한 사람의 노동으로 해소될 수 없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고 싶은 욕구가 생겨서 KTX를 타기로 했다고 해보자. KTX를 타려면 우선 기찻길을 설치하는 사람, 기차를 만드는 사람, 기차를 관리하는 사람, 기차표를 판매하는 사람 또는 기차표 구입 어플을 개발하는 사람 등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노동을 개인의 것으로 생각하고 노동시장에서 각자 판매하는 것은 공동자원인 노동을 개인화하여 공동자원체제를 파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KTX가 운영되기 위해 필요한 노동을 생각해보자 ⓒ성찰과성장 ‘노동’이 개인의 능력으로 만들어진 독립 자원이 아니라 공동자원으로 정의된다면 우리는 노동의 분배를 민주적 논의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다시 직장인 생활로 돌아가보자. 생산수단이 없는 직장인은 먹고살기 위해 ‘노동시장’에서 임금을 기준으로 일을 선택하며, 하루에 8시간 이상 강제로 일한다. 그런데 만약 자원과 노동을 함께 관리하고 민주적으로 배분할 수 있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서 직업적으로는 협동조합의 조합원이 되어 하고자 하는 노동을 하고 실생활에서 필요한 노동(돌봄 등)은 거주 지역의 공동체 안에서 민주적으로 논의해서 각자의 역할을 정해보는 것이다. 물론 협동조합과 지역 공동체에서의 노동 외에도 개인의 자율성을 위한 시간도 보장받아야 한다. 다른 사람과 함께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소유해야 하는 생산수단이 없어도, 누군가에게 고용되지 않더라도 살아갈 수 있다.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자율성을 존중받기 때문에 노동소외가 발생할 확률이 줄어든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일을 하면서 행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생산수단 소유만이 정답은 아니다. ⓒ성찰과성장 공동자원체제가 노동시장을 대체할 만큼 거대해지기 위해서는 협동조합, 지역공동체, 지방정부, 국가, 국제사회 간 연계방안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장훈교(2022)는 공동자원생활체제를 위한 참여계획의회를 제시하였다. 참여계획의회는 국가, 지방, 지역 단위에서 국가, 시민사회, 시장 영역의 대표들로 구성된 의회로 전체 사회의 필요 충족 우선순위와 그에 따른 투자 및 시민의 참여과정 등을 공동으로 디자인 하는 곳이다. 여기에서 공동자원, 상품 및 서비스, 공공자원(국가가 중앙에서 관리하는 것을 공공자원, 공동체 구성원이 함께 관리하는 것을 공동자원이라고 한다) 간 관계와 균형지점에 대한 타협이 이루어진다. 모두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바라며 윤석열 대통령이 그렇게 강조하듯이,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다. 비록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는 반공주의를 의미하는 것 같지만. 어찌되었든 헌법에서 자유민주주의를 기본 질서로 명시하고 있는 만큼 우리는 자유롭고 민주적으로 살아가야 한다. 권리이자 의무인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하루 8시간 이상을 사무실이라는 공간에 갇혀서, 감시 속에서 하고싶지 않은 일을 하며 지내야 한다. 출퇴근 시간과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자유시간은 4시간 정도밖에 확보되지 않는다. 그리고 일을 선택함에 있어서도 민주적 논의를 거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수요 공급의 법칙과 임금 수준, 본인의 경제적 상황에 따라 결정된다. 자유와 민주는 법전 속 단어로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당신의 24시간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 ⓒ성찰과성장 1편을 통해 노동소외를 당연하게 경험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고, 2편에서는 노동시장이 아닌 방법으로도 각자의 노동을 정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 3편에서 공동자원체제를 소개하여 노동소외 없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해 얘기하고자 했다. 장훈교(2019)는 공동자원체제를 노동시장을 통한 노동분배시스템에 대항하는 개념으로 활용하였다. 자본가-노동자라는 계급은 노동시장을 통해 형성되는 것인데, 이에 대항하겠다는 것은 결국 산업혁명 이후에 형성된 자본주의 체제에 대항하겠다는 의미이다. 노동을 공동자원으로 보고 민주적 논의를 통해 분배하겠다는 시각이, 아직은 현실성 없는 이야기로 보일 것이다. 실현된 사례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필자는 이 개념이 불안정한 일자리가 확대되고 불평등이 증가하는 현재의 상황에서 새로운 지향점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노동시장에 연연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좀 더 행복한 삶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 공동자원체제에 관심이 있다면 장훈교(2019, 2022) 책을 직접 읽어보길 바란다. 기고 글에 넣은 내용은 아주 일부이다. 『공동자원체제: Commons 2018-21 연구노트』, 『일을 되찾자: 좋은 시간을 위한 공동자원체계의 시각』 참고문헌 장훈교, 『공동자원체제: Commons 2018-21 연구노트』, BOOKK, 2022 장훈교, 『일을 되찾자: 좋은 시간을 위한 공동자원체계의 시각』, 나름북스, 2019
사회적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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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에서 의제가 실종된 이유와 이민자에 대한 고민
정쟁만 있고 의제는 없는 이번 선거에 대해 그 이유를 한 번 고민해본 적이 있습니다.  구체적인 정답은 찾지 못하였지만, 가장 먼저 머릿속에 든 생각은 ‘실망’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2016년 총선 때에는 ‘청년’이 의제였습니다. 청년의 목소리가 정치권에 반영이 되지 않은 시기였고 청년 후보라고 나온 이들은 40세가 넘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 청년들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부서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청년기본법이 제정되었으며, 진짜 청년 나이대인 국회의원도 등장하였습니다. 그런데, 청년의 삶이 그다지 나아진 것 같지 않습니다. 청년 정치인이라는 사람들은 이해되지 않는 행동들을 하였고, 청년이 직접 정책을 제안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정책이 실현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청년수당, 청년센터 등 제안 정책이 막상 실현되어도 큰 변화가 느껴지지 않기도 했습니다. 재작년부터 큰 이슈로 뜨고 있는 전세 사기 피해자의 50% 이상이 2030 청년이었지만, 정부는 이들을 구제할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정치권은 계속 청년을 위한 정책을 하겠다고 부르짖지만 여전히 청년세대의 목소리는 기성세대 목소리보다 작습니다. 담론의 당사자인 청년의 입장에서 이러한 현실은 정치에 대한 관심을 사그라들게 만듭니다. 청년 외에도 다양한 의제가 있었습니다. 여성, 환경, 기본소득 등 2010년대 후반부터 과거에는 대중적이지 않았던 의제들이 대중화되었습니다. 여성 의제는 우리의 실생활을 바꾸는데 크게 기여했지만(몰카 범죄, 성범죄가 ‘범죄’임을 인식하도록 함) 이에 대한 백래시는 엄청 납니다. 레디컬 페미니스트의 행동을 일반화하면서 페미니즘을 혐오하는 현상이 생겨나고, 대다수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 정치인들은 더 이상 ‘여성’을 의제로 하지 않습니다. 한편으로 ‘페미니스트’ 의제로 정치인이 된 이들은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환경 의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개인의 노력이 지구를 고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됨에 따라 약해졌습니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체감하지만, 금세 무기력해집니다. 많은 이들이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강력한 운동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기본소득도 한때 혁신적인 의제였으나, 완전하지 않은 기본소득(청년수당, 재난지원금 등 소득기준 없이 지급되었던 소득)이 지급된 후, 그 정책은 단지 삶에 약간의 도움을 주는 복지 정책이 되었습니다. 기본소득만으로는 지금의 경제 문제들을 해소할 수 없음을 경험한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실망들이 모여 의제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지 않았나 추측합니다. 선거 때만 되면 등장하는 의제들이 선거 후에는 지속적으로 실망을 안겨주니, 사람들도 더 이상 의제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이러다 영영 의제가 사라지는 선거만 하게 되는 것은 아닐지 두렵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우울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최근 주변 친구들에게 투표를 할 건지 물어본 적이 있는데요, 친구들이 하나같이 ‘남들은 안할 것 같은데 나는 할 것이다’라고 답했습니다. 무엇을 보고 후보를 뽑을 것이냐는 질문에 ‘지역을 위해서 일할 것 같은 사람’이라는 뻔한 답변을 받았지만, 중요한 것은 ‘투표는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2030 청년의 투표율은 점점 오르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누군가가 ‘실망하지 않을, 그러면서도 매력적인 새로운 의제’를 띄우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그 의제를 찾는 것이 매우 어렵겠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이민자와 관련해서 최근 큰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위 기사는 극우성향 정당 자유통일당의 총선 후보자와 자국민보호연대라는 단체가 이주노동자들을 강제 검문·체포하는 활동을 했다는 기사입니다. 저는 이 기사를 처음 접하고 나서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불법이민자’를 직접 잡아서 경찰서에 넘기는 행위를 총선 전략으로 세웠다는 것과 그것을 실행하는 단체 이름이 ‘자국민보호연대’라는 사실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이러한 비인간적 행위를 총선전략으로 선택했다는 것은 사람들이 암암리에 가지고 있는 이민자 혐오를 이용하겠다는 것이고, ‘자국민보호연대’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는 것은 이민자를 자국민의 적으로 보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전형적인 약자에 대한 혐오입니다. 경제가 불안정해지고 삶이 어려울수록 사람들은 자신과 다르다고 생각되는 어떠한 집단을 혐오하게 되는데, 앞으로의 혐오 대상이 ‘이민자’가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민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과거부터 여러 나라에서 이어져온 문제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에는 이민자가 많지않아 정책적인 고민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면서, 마치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을 간 것처럼, 개발도상국 사람들이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들어오고 있어 이제는 진지하게 고민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이민자들은 한국에서 고된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 제도에 의해 불법체류자가 되고, 실생활에서도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이 문제에 대해 인지는 하고 있었지만 사실 작년까지 크게 관심을 가져보지는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작년 가을에 두바이에 가게 되면서 이민자를 자국민과 차별하는 것이 어떠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두바이가 속해있는 아랍에미리트는 80%가 이민자로 구성되어있는데 2021년 이전까지 이민자에게 시민권을 거의 내주지 않았습니다(21년도부터 부동산을 보유하거나 과학자, 의사, 엔지니어, 예술가, 작가 등 특별한 재능과 직업을 가질 때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음). 그래서 온갖 복지혜택은 20%의 자국민만 받고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은 모두 이민자가 하고 있으며, 자국민은 주로 편안한 일자리를 얻습니다. 이 사실을 처음 인지하였을 때, ‘이민자 문제’가 얼마나 큰 문제인지 깨달았습니다. 그 나라 경제활동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80%가 정치적 권리를 가질 수 없다니,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우리나라는 아랍에미리트만큼 자국민이 적지는 않으나 이민자들이 계속 증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2015년 1,711,013명이었던 외국인주민 수는 2022년 2,258,248명으로 증가함). 이들은 우리나라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정치적, 경제적으로 차별당합니다. 정치적 권리가 없으며 수혜의 대상으로만 인정됩니다. 신체적으로 힘든 일을 주로 하며, 비자가 끝나 불법체류자가 되면 그나마 있던 보호망도 잃은 체 저임금으로 착취당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시민권이 없다면 차별은 계속될 것입니다(물론 시민권 획득이 충분조건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생김새, 말투 등에 의해 시민권을 획득했더라도 차별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다만 시민권 획득은 정치적 권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에 의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두바이에 같이 간 지인에게 너무 심각한 문제이지 않냐고 물어보자 “어쩔 수 없지 뭐. 자국민이 먼저지”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지인에게 이민자에게 시민권을 주는 방법을 고민해봐야하지 않겠냐는 얘기를 했을 때, 그 지인은 절대 그러면 안된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유는 말해주지 않았지만, 너무나 단호하여 당황한 기억이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국제결혼 했지만 남편이 아기 태어난지 일주일 만에 죽어서 한국 국적을 따지 못한 여성에 대한 영상을 보았는데 많은 댓글들이 이민자에게 시민권을 주면 도망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늦게 주어야 한다는 주장을 합니다.  이 문제를 다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모두가 이민자 친구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집단에 대한 혐오는 그 집단의 구성원을 직접 만나고 이해했을 때 해소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친구가 이민자일 때, 이민자에 대한 차별을 목격하면 함께 분노하겠죠. 다만 이민자와 친구를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정책입안자 분들이 고민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이민자 권리를 확대하는 캠페인을 하거나, 공론장 논의 주제로 띄우거나, 관련 컨텐츠 등을 만드는 활동이 있을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 이민자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의제를 어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유통일당과 같은, 인권에 대한 아무런 의식도 없고 타인에 대한 혐오로 가득한 극우 정당이 득세하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부적격자는 밖으로: 대한민국 낙천낙선운동
2024 총선시민네트워크 지난 1월 31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2024 총선시민네트워크(이하 2024 총선넷)'가 '다시 한번, 기억 약속 심판'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식을 가졌다. 90여 개의 시민 조직이 참여한 2024 총선넷은 혐오 정치를 종식시키고 희망 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낙천낙선 활동을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대한민국 시민사회가 이뤄온 낙천낙선운동의 역사*를 되짚어 본다. *본 글에서는 낙천낙선운동을 처음 시작한 진보 진영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다룬다.▲ 2024총선시민네트워크 출범식 모습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제공 낙천 그리고 낙선 지난 3월 한 달간 뉴스에서 자주 등장한 단어는 아마 '공천'일 것이다. 데이터 분석 서비스 'Sometrend'에 따르면, 3월 한 달간 '공천' 키워드 언급은 2,145건으로, 단순 계산 시 하루 평균 71.5건, 시간당 세 번씩 뉴스에서 다뤄졌다. 공천이란, 정당이 선거 출마자를 당의 후보로 공식 추천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성찰' 정당 소속 '박성장'이 선거에 출마하려면, 공천을 받아야 '성찰당의 박성장입니다'라고 소개할 수 있다. 공천에서 떨어지면 선거를 포기하거나 무소속으로 출마해야 한다. 낙천낙선운동은 바로 이 공천에서 시작된다. 간단히 말하자면, 낙천(공천에서 탈락시키기) 운동은 부적격자를 사전에 정당 밖으로 나오지 못 하게 하는 것이며, 낙선(후보자를 탈락시키기) 운동은 이미 후보로 등록된 사람을 선출하지 않는 것이다. ▲ 지금도 쏟아 지고 있는 ‘공천’ 키워드 ⓒ성찰과성장 감시에서 낙천낙선으로 대의민주주의(의회정치)에서 정당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다. 정당은 다양한 사회적 이해관계를 하나의 정치적 의제로 집약하여 유권자가 자신의 의견을 정책과정에 반영시킬 수 있게 한다. 또한 정당 활동을 통해 유권자가 정치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시민 참여가 촉진되고, 민주적 참여 방법에 대해 배우게 된다.그런데 이런 정당 시스템이 제대로 수행하지 못 할 때, 정당의 역할을 대체하려는 새로운 흐름이 생겨난다. 이미 유럽(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에서는 1970년대부터 유럽의 시민사회는 기성 정당 체제(위계적이고 비민주적인 대의 방식)에 비판을 제기하며, 새로운 정치 이슈를 제안해왔다(Lawson and Merkl, 1988; Dalton and Keuchler, 1990).이런 세계적 흐름 속에서 등장한 것이 2000년 ‘총선시민연대’다.  잠시 세기말로 눈을 돌려보자. 1999년 국정감사를 앞두고 참여연대, 경실련, 환경운동연합 등 중앙시민단체를 주축으로 ‘국정감사 모니터 시민연대(이하 국감연대)’가 결성됐다. 목적은 국회의원의 의정활동 평가였다. 하지만 국회 14개 상임위원회 중 9개 상임위가 국감연대의 방청을 불허하고, 2개 상임위는 부분 방청만 허용했다. 국회의 입장은 시민이 감히 국회의원을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 변호사 출신 의원은 “시민단체가 무슨 권력 집단이냐? 아예 완장 차고 교통단속도 하지 그러냐.”라며 비꼬았다(참여연대 2012).상임위 회의실에 입장조차 못 한 국감연대는 좀 더 근본적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실무자를 중심으로 낙천낙선 운동팀을 꾸렸다. 여성단체연합,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이 주축이 돼 2000년 총선시민연대를 결성했다. 총선시민연대는 2000년 1월 1차로 66명을, 2월 2차로 42명의 공천 부적격자 명단을 발표했다. 부적격 기준은 부패 행위, 선거법 위반, 헌정파괴 반인권 이력 등이었다. 총선시민연대가 부적격자로 판단한 102명 중 64명은 결국 당의 추천을 받아 총선 후보로 공천되었다. 2000년 4월, 총선시민연대는 64명에 출마자 22명을 더해 86명의 낙선 대상자 명단을 발표했다. 최종적으로 86명 중 59명(68.6%)이 낙선되는 성과를 얻었다. 시대별 낙천낙선 운동 낙천낙선운동은 16대(2000), 17대(2004), 19대(2012), 20대(2016) 총선에서 이뤄졌다. 18대와 21대 총선은 연대 조직이 결성되지 않았다. 이 운동은 각 시기의 쟁점에 맞춰 부적격자 기준을 조정했다. 구성 조직이나 세부 방향에 차이는 있어도 핵심은 낙천낙선운동이었다. 현직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진 17대 총선에서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찬성투표 의원들이 낙천낙선 대상에 추가되었다. 또한 ‘비례대표 부적격 후보’도 개별적으로 별도로 발표했다. 17대 총선에서 낙선 대상자 63%를 낙선시키는 성과를 얻었다(206명 중 129명 낙선).18대 총선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에 대해 반대 운동을 펼치는 것은 선거법 위반이라는 중앙선관위의 유권해석 등으로 인해 진보 진영 시민사회가 결집하는 총선 대응 조직은 꾸려지지 않았다. 각 단체에서 개별 대응하거나 분야별(2008총선미디어연대)로 대응 조직이 꾸려졌다.19대 총선에서는 ‘2012총선유권자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낙천낙선운동이 개진됐다. 해당 시기의 뜨거운 쟁점이었던 한미자유무역협정, 의료 민영화 등이 부적격자 기준이 되었다. 19대 총선에서는 낙선 후보 55명 중 15명(27%)만 낙선하는 아쉬운 성과를 얻었다.20대 총선은 비극적인 세월호 참사 이후 치러진 첫 총선이었다. 부적격자 기준에 세월호 참사, 역사교과서 국정화 기준 등이 추가되었다. 또한 시대 흐름에 맞춰 ‘3분 총선’ 등 온라인 환경을 적극 활용했다. 2016총선넷이 추린 집중심판대상자(낙선명단) 35명 중 15명(42.9%)이 낙선했다.21대 총선에서는 18대 총선처럼 범연대 조직이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경실련이 '21대 총선 후보 선택 도우미(vote2020.ccej.or.kr)' 사이트를 통해 특정 후보자에게 ‘낙선’ 표시를 달았고, 환경운동연합은 각 당의 환경 공약을 평가하여 등급을 매기는 등 단체마다 개별 대응했다. 성과 그리고 과제 2000년에 시작된 낙천낙선운동은 높은 낙선율로 시민운동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는 성과를 보였다. 이 운동을 주도한 총선시민연대는 낙선 대상자의 67%를 낙선시키며 국민적 관심을 모았다. 특히, 수도권에서 비적격 판정을 받은 20명 중 19명을 낙선시키는 성과를 달성했다. 이 운동은 권력 감시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형태의 정치운동으로 발전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그러나 이 운동에는 명확한 한계도 있었다. 단순히 인물 교체에만 초점을 맞추며 근본적인 정치 개혁을 이루지 못했다는 점, 강한 당파성으로 인해 시민사회와 정치권의 경계가 모호해졌다는 점,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 네거티브 운동이라는 비판이 그것이다. 이러한 비판을 수용하여, 2004년 총선부터는 긍정적인 지지를 기반으로 한 당선 운동도 등장했다.▲ 2024총선넷에서 선정한 ‘최악의 후보’ ⓒ2024총선넷 누리집 갈무리한편 2024년 총선시민네트워크는 현재 진행형이다. 이 운동이 과거의 한계를 극복하고, 보다 구체적인 정치 개혁의 방향성을 제시하며, 시민사회와 정치권 사이의 건설적인 대화와 협력의 장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또한, 단순히 부적격자를 배제하는 것을 넘어, 유능하고 도덕적인 인물들이 정치에 참여하도록 격려하고, 이를 통해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신뢰와 참여를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해나가길 기대한다. 2024 총선시민네트워크의 노력이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중요한 동력이 되길 바란다.참고문헌 참여연대 누리집 경실련 누리집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누리집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 <[정치] 의정 감시에서 업그레이드된 정치 참여 시민운동, 낙천낙선 운동은 어떻게 진행되었을까요?>, 2020.10.13. 강창구, <안산 시민 70% 시민단체 낙천ㆍ낙선운동 공감>, 연합뉴스, 2000.12.16. 김호경, <20대 총선 낙천·낙선 운동 본격화…공천 부적격자 기준은?>, 동아일보, 2016.2.23. 손봉석, <20대 총선 낙선·낙천운동 위력은?…16·17대 총선은 낙선운동 성공률 60% 넘어>, 경향신문, 2016.3.23. 김태진, 이수현, <시민단체 '총선 사이트'는 낙천·낙선운동 버전?>, 매일신문, 2020.4.29. 조재연, <보수·진보 시민단체 4·15 총선 낙천·낙선운동 시동>, 문화일보, 2020.2.21. 김현철, <‘낙선운동 합법’ 2024 총선넷 “혐오정치 끝내고 희망정치로”>, 인천투데이, 2024.1.31. Lawson, Kay and Peter Merkl, eds. 1988. When Parties Fail.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Dalton, Russell and Manfred Kuechler. 1990. Challenging the Polit cal Order.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대안을 배달해드립니다 - 창작그룹 '성찰과성장'글 작성 및 편집 : 박배민성찰과성장.com
새로운 노동분배 방식 상상하기 [처음 읽는 공동자원체제]
"임금 노동 외에 돈을 버는 방법이 없을까?" 성찰과성장은 '노동시장 너머 새로운 대안 제시하기'라는 주제 아래 3편 연재를 통해, 기존 노동시장의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뛰어넘는 새로운 노동 구조를 상상해 보고자 한다. 이 연재는 전통적인 노동시장의 구조와 내재된 문제점을 진단하고, 지속 가능한 노동의 형태를 모색한다. 들어가며 필자는 1편(당신은 왜 일 하나요)에서 우리가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고 그 과정에서 노동소외를 겪는다고 말했다. 노동소외는 '일'을 임금 획득을 위한 도구로만 취급하게 만든다. 이번 2편에서는 '일'을 임금 획득 수단이 아닌, 우리의 창의성을 발현하고 자아실현을 하는 과정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방법, '노동 분배 방식' 차원에서 말해보려고 한다. 여기서 노동 분배 방식이란 모든 인간이 노동을 한다고 전제하고 분야별로 얼마나 많은 인원이 어떤 일을 할지 결정하는 방식을 말한다. 조금 어렵게 느껴지지만 일단 천천히 글을 읽어보자.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어떤 과정을 겪으면서 일을 선택하게 되는지 생각해보자. 고등학생 시기 우리는 (부모님이 원하는) 돈을 많이 벌고 안정적인 직업을 얻기 위해 좋은 대학, 좋은 학과에 입학하려고 한다. 시기마다 인기 있는 직업이 다른데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직업 중 하나가 의사다. 공부 꽤나 하는 친구들은 최상위권 대학 합격을 포기하고 의대에 들어간다고 한다.  ▲  대한민국 최근 10년간 대학 진학률 ⓒ 성찰과성장 올해 초 1,343명이 의대를 가기 위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합격을 포기했다(김승직, 2024). 의대 외에도 교사, 소프트웨어 개발자, 컴퓨터 공학자 등 수입이 안정적이거나 4차산업혁명 시대에 인기 있는 업종들도 학생들 사이에서 뜨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본인의 재능, 흥미가 직업선택의 기준이 아니라 '안정적으로 돈을 많이 벌 수 있느냐'가 기준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게 대학을 입학한 뒤 우리는 대학생활 2년~4년동안 취업준비를 한다. 높은 학점을 유지하고 수많은 스펙을 쌓는 그 모든 고생은 오로지 임금이 높은 기업에 들어가기 위함이다.   ▲  오로지 ‘임금’ 만을 위해 운영되는 자본주의 체제의 교육 ⓒ성찰과성장 왜 임금을 기준으로 직업을 선택하는가? 당연히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다. 반복적으로 말해왔듯 생산수단이 없는 우리는 임금이 없으면 먹고 살 수 없다. 그리고 임금이 많을수록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더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이렇게 '일'은 임금 획득을 위한 도구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일의 내용, 일의 질이 아니라 '임금'이라는 노동 가격에 맞춰 일자리를 선택하고 기업에 선택되는 것.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노동 분배 방식이다. 자본주의의 노동 분배 방식 자본주의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데, 여기서는 온라인 백과사전의 내용을 인용하여 간단히 말해보자. 다음 백과사전에서는 자본주의를 "이윤의 획득을 가장 큰 목적으로 하는 경제활동"으로 정의하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자본이 상품유통 과정이나 고리대금업의 과정에서 이윤을 창출해 내는 기업조직이 아니라 생산과정에서 부가가치의 형태로 이윤을 창출해 내는 기업이 사회적 생산의 주류를 이루는 기업사회"라고 정의한다. 전자의 해석에 따르면 15~16세기 중상주의가 나타날 때부터 자본주의 사회라고 볼 수 있고, 후자의 해석에 따르면 산업혁명이 일어난 18세기부터 자본주의 사회라고 볼 수 있다. 필자는 후자의 시각에서 자본주의를 말할 것이다. 직장인에게 '노동소외'를 느끼게 하는 이 구조, 사장 밑에서 일해야만 하는 구조가 산업혁명 이후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한 거대한 기계가 만들어지자 그것을 소유한 사장(자본가)들은 단순 노동을 할 수많은 사람들을 고용했다. 고용된 사람들은 국가나 지주에게 토지(공용지)를 빼앗겨 생산수단을 잃거나, 대규모 상품을 생산하는 공장과의 경쟁에서 진 수공업 장인들이었다. 그렇게 형성된 자본가-임금노동자의 고용관계는 일의 내용이 바뀌었을 뿐, 지금까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주류) 경제학적으로 표현하면 자본가-임금노동자의 관계는 노동시장에서의 수요자와 공급자 간 관계라고 볼 수 있다. 노동시장에서 수요자는 자본가이며, 공급자는 임금노동자이다. 그리고 노동의 가격은 임금으로 표현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노동시장에서 노동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분배된다. ▲  산업별 노동시장에서 노동수요와 노동공급에 의해 임금이 결정되면 사람들은 임금을 보고 어떤 산업에서 일 할지 결정하고 기업들은 결정된 임금에 맞춰 얼마나 고용할지 결정한다. ⓒ 성찰과성장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산업이 농업, 자동차산업, IT 3가지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하자. 각 산업은 노동시장을 따로 갖고 있다. 노동시장은 노동공급자, 노동수요자, 임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를 (주류)경제학에서 사용하는 그래프로 표현하면 위와 같다.왜 그래프가 저렇게 그려지는지 설명해 보자면, 우선 공급자 입장에서 노동 공급자는 산업의 임금이 올라가면 그 산업에 고용되려고 노력하고, 반대로 임금이 떨어지면 임금이 더 높은 다른 산업을 찾으려고 한다.즉 임금이 높아질수록 노동공급자는 증가한다. 노동수요자인 기업은 아무도 일하려하지 않을 때 임금을 높게 제시하고, 누구나 일하려고 할 때는 임금을 낮게 제시한다(사실 경제학 이론상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수요는 좀 더 복잡하게 결정되지만, 여기서는 간편하게 가정하겠다). 즉 노동자의 공급이 적어질수록 기업들이 제시하는 임금은 높아진다. 기업들의 수요와 노동자들의 공급을 합하여 표현한 것이 위의 그래프이다. 두 그래프가 만나는 지점, 즉 서로 원하는 임금이 동일해질 때 고용관계가 발생한다.이렇게 각 산업의 노동시장에서 임금이 결정되면 사람들은 임금을 보고 어떤 산업에서 일할지 결정한다. 과거 자동차 산업이 잘 나갔을 때 농업보다 자동차 산업의 임금이 높았고, 그 결과 자동차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농업에서 일하는 사람보다 많아졌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IT 산업의 임금이 높아지자 이제 사람들은 IT 업계에서 일하려고 한다. 물론 이들이 모두 고용되느냐는 별개이다. 기업은 자신이 지불하려는 비용에 맞추어 고용 인원을 결정한다. 그렇게 시장에서 정해진 임금에 따라 노동이 분배되는 것이 자본주의의 노동분배 방식이다.노동시장에서 임금으로 일을 분배한다는 것에는 중요한 전제가 숨어있다. 모든 사람은 동등한 위치에 있으며, 따라서 모든 사람의 노동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동일하다는 것은 어떤 '신분'인지와 관계없이 모든 노동을 동일하게 취급한다는 의미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평등한' 방식으로 노동시장에서 노동을 분배한다. 자본주의 이전의 노동 분배 방법 그렇다면 자본주의 이전에는 노동이 어떻게 분배되었을까? 기본적으로는 '신분'에 따라 노동을 분배하였다. 조선시대로 돌아가보자. 조선시대에는 양인과 천민이라는 신분이 있었다. 시기에 따라 정도는 다르지만 천민은 육체노동을 해야만 하는 존재였고, 양인도 양반이 아닌 이상 농사를 짓고 세를 바쳐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과거시험을 통해 관료가 된 사람과 왕은 육체노동보다는 나라를 다스리고 정책을 만드는 정신노동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권력을 가지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양반도 생겨났다. 양반은 (넓은 의미에서) 양인 중 하나지만, 재력과 정치력을 보았을 때 당시 하나의 계급이었다고 볼 수 있다(유승원, 2007). 이러한 신분 사회에서는 사람들의 노동이 동일하게 취급되지 않는다. 천민은 양인이 하는 일을 할 수 없고 양인은 천민이 하는 일을 할 수 없다(하지 않는다). 사람의 신분에 따라 할 수 있는 노동이 다르므로 '모든 사람의 노동이 동일하다'고 가정하는 노동시장은 존재할 수 없다. 한편, 조선시대 농민 사이에는 마을을 중심으로 협동과 협력의 문화가 있었다. 조선 후기 이앙법(모내기)이 보급된 이후로 보편적 마을 문화로 정착된 두레는 협동과 협력의 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공동 노동 조직이라고 볼 수 있다(최순규, 2021). 이앙법은 모판에서 모를 따로 싹을 틔운 뒤 논에 옮겨 심는 방식인데, 한 가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노동력이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농민들은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마을 공동노동 조직인 두레를 만들었다. 또 조선 후기 마을 단위의 공동납체제가 만들어지면서 세금 납부를 위한 마을 단위 공동 경작지가 탄생하였는데, 공동 경작지를 운영하기 위해서라도 공동 노동 조직이 필요했다(최순규, 2021). 당시에는 교통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못하여, 외부의 자원과 노동력을 끌어올 수 없었기 때문에 서로의 노동을 나누고 함께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두레는 구성원 간의 수평적 관계를 추구하였고, 구성원의 노동을 분배할 뿐만 아니라 마을 단위의 자치기구 역할도 하였다.  ▲  과거에는 신분과 공동체가 노동을 분배하였다면 지금은 노동시장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성찰과성장  정리하면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서는 신분과 공동체가 구성원의 노동을 분배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노동 분배의 방식은 시간이 지날수록 약화되었다. 조선시대의 신분제는 임진왜란 당시 노비들이 의병 활동으로 공을 세워 면천의 특권을 누리면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후 재정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양곡을 바치는 대가로 신분을 상승해 주는 납속책을 강화하면서 면책 받은 노비의 숫자가 늘어났다.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신분을 사고 파는 지경에 이르고, 노비의 봉기가 자주 발생하면서 신분의 의미가 점차 희미해졌다. 1886년 고종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노비세습제를 폐지하였고, 동학농민운동 이후 1984년 갑오개혁에서는 신분제 자체가 폐지되었다(필진네트워크, 2006).한편 새로운 문물, 특히 철도는 사람들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했다. 일본이 조선을 침탈하면서 설치한 철도는 조선사람의 노동을 착취하고 자원을 수탈하는 수단이기도 했지만 사람들의 이동을 자유롭게 해주는 교통수단이 되기도 했다.또한 1910년대 일제가 진행한 토지조사사업은 지주에게 '배타적 소유권'을 승인함으로써 지주가 농민들의 경작권(본래 땅을 경작할 수 있는 권리는 토지를 소유하는 권리와 별개로 존재하였다. 땅을 소유하고 있더라도 거기서 경작하고 있는 농민들을 토지 소유자가 마음대로 내쫒을 수 없었다)을 무시할 수 있도록 했으며 마을 공동 토지도 개인이 소유하도록 하여 마을 공동체를 파괴시키는 데 영향을 주었다(조수진, 2022). 토지라는 주된 생산수단을 빼앗긴 농민들은 먹고 살기 위해 도시로 이동했다. 마을 공동체는 사라져버렸다. ▲  토지의 소유권과 경작권을 구별해 생각해보자. ⓒ성찰과성장    조선시대 신분제 폐지와 마을공동체의 축소는 새로운 노동 분배 방식을 요구했다. 일제강점기에는 폭력과 수탈, 과도한 노동 착취 방식으로 노동이 분배되었으나 해방된 후 한반도 남쪽에 위치한 대한민국은 자본주의를 선택하면서 (비록 국가가 노동을 강제 동원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노동시장이 대부분의 노동을 분배하게 되었다. 새로운 방식에 대한 상상 신분제 그리고 다소 폐쇄적인 마을 공동체에 의한 노동 분배 방식은 자유롭고, 평등하고, 민주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우리 세대가 받아들일 수 없는 방식이다. 그럼에도 과거의 방식에서 한 가지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함께 마음과 힘을 합하는 것, 바로 협동이다. 협동을 통해 일을 분배한다는 것은 동등한 위치에서 어떤 일을 할지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임금이 아닌 민주적인 논의 과정을 통해 각 구성원의 일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 '협동'이라는 단어가 너무 구시대적이고 진부하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양극화가 심화되는 지금의 상황에서 협동은 과거보다 더 필요한 가치가 된다. 부유한 이들은 금융과 부동산으로 더 많은 돈을 끌어모으지만, 애초에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난해진다. 국가가 가난한 이들을 충분히 지원해주지 못한다면, 남은 것은 서로의 얼마 없는 자원과 능력을 모아 함께 살아가는 방법뿐이다. ▲  노동시장이 없어진다면 어떤 사회가 될까?ⓒ 성찰과성장  물론 우리는 협동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끝없는 경쟁 속에서 살아남느라 주변을 돌보지 못한다. 또한 능력주의는 가난한 자를 '실패한 자'로 낙인찍는다. 사람들은 노동시장에서 실패한 자가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에만 매몰되어 있다.하지만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상위 1%가 되는 경우는 손에 꼽는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 SKY 입학생의 절반 이상이 고소득 가정 출신이라는 사실은 이제 너무 유명해서 사례로 넣을 필요도 없다(박지원, 이정한, 2021). 세상은 공정하지 않다. 주변 도움없이 홀로 살아남을 자신이 있다면 홀로 남아도 되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필자는 협동의 가치를 한번 고민해보는 것을 추천한다.한편 '협동'과 함께 추구해야 할 가치는 '자율성'이다. 자율성이란 "독립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개인의 감각. 즉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 또는 다른 사람의 통제로부터의 독립"(다음 백과사전)을 말한다. 이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직장인은 '일'에 대한 자율성을 회사에 빼앗겼다고 볼 수 있다. 일을 하면서 행복하고 싶다면 우리는 일에 대한 자율성을 되찾아와야 한다.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  당신의 일은 자율적인가? ⓒ 성찰과성장  '협동'과 '자율성'의 가치를 모두 추구하면서 일할 수 있다면 노동하는 시간이 더이상 지금처럼 고통스럽지 않을 것이다. 협동을 통해 혼자 하지 못했던 일을 해내고, 상사의 명령이 아닌 동등한 위치에서 논의를 통해 일을 나누며, 자율성을 가지고 하고 싶은 노동을 한다면 일하는 시간이 오히려 보람차고 행복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 정말 그것이 가능할까? ▲  우리나라에선 아직 낯설지만, 협동조합은 국제연맹(ICA)도 존재한다. ⓒ성찰과성장  우리는 '법적으로' 그러한 조직을 만들 수 있다. 바로 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의 모든 조합원은 동등한 위치에서 논의와 협력을 통해 자신의 일을 결정할 수 있다. 아쉬운 부분은 협동조합은 아직 비주류이며, 일반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모든 조합원의 협력과 협동을 통해 운영하는 방식'이 오·남용되기도 한다. 또한 협동조합은 기업이 좋은 일자리를 충분히 만들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실업과 불안정한 일자리로 삶이 파괴된 사람들을 달래주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되기도 한다.그래도 희망은 있다. 임금노동자를 고용해서 상품을 생산하는 자본주의적 방식도 처음 등장할 때부터 전면적으로 도입된 것은 아니었다. 조금씩, 서서히 만들어졌다. 협동조합 방식이 일방적 기업 방식보다 인간의 삶에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증명해낼 때, 협동조합이 주류가 될 수 있다. 나오며 임금을 기준으로 일을 결정하는 것에 우리는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임금 중심 노동 분배' 방식에서 빠져나오려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어렵게 대기업에 들어간 청년이 1~2년 만에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어렵사리 입사했다가 퇴사하고 구직 포기자가 된 청년이 증가하고 있다. ▲  니트청년은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성찰과성장  필자는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노동 분배 방식에 대한 새로운 저항이 아닐까 생각한다. 더 이상 임금을 위해 일하고 싶지 않다는 저항. 하지만 저항만으로는 답을 구할 수 없다. 저항을 넘어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 앞서 '협동조합'을 제시했지만 이것은 대안의 일부일 뿐이다.다음 편에서는 협동조합을 포함해, 더 큰 대안에 대해 얘기해본다. 참고문헌 필진네트워크, "[필진] 120년 전 오늘, 노비세습제 폐지되다", 한겨레, 2006.02.06. 김창수, "[라이프&경제] 아는 만큼 달라지는 학자금 준비", 한국교육신문, 2023.05.15. 김승직, "1343명 의대 가려고 SKY 합격도 포기…최근 5년 내 최고", 2024.01.22. 유승원, "조선시대 '양반' 계급의 탄생에 대한 시론", 역사비평, 2007 최순규, "조선 후기 두레 공동체에 나타난 평화적 성격에 대한 재조명", 신학과 학문, 2(2012), 2021 조수진, "빼앗긴 커먼즈, 되찾는다면'… 마을목장으로 상상하는 미래", 제주투데이, 2022.08.02. 박지원·이정한, "강남구 '107' vs 도봉구 '2'… 부자동네 서울대 싹쓸이 [연중기획-끊어진 계층이동 사다리]", 세계일보, 2021.05.19.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대안을 배달해드립니다 - 창작그룹 '성찰과성장'글 작성 및 편집 : 신동주, 박배민성찰과성장.com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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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왜 일하나요 [처음 읽는 공동자원체제]
"임금 노동 외에 돈을 버는 방법이 없을까?" 성찰과성장은 '노동시장 너머 새로운 대안 제시하기'라는 주제 아래 3편 연재를 통해, 기존 노동시장의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뛰어넘는 새로운 노동 구조를 상상해보고자 한다. 이 연재는 전통적인 노동시장의 구조와 내재된 문제점을 진단하고, 지속 가능한 노동의 형태를 모색한다. 들어가며 이 글은 ‘왜 우리가 하루 24시간 중 8시간 이상을 원치 않은 곳에서 원치 않은 일을 하며 살아가야만 하는가’라는 의문으로 시작되었다.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우리가 강제적으로 일을 하는 이유는 말 그대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물려받은 자산이 있다면 ‘먹고사니즘’에 대한 고민이 덜 하겠지만 자산이 없는 사람은 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어떤 일을 하고 돈을 벌지 결정한다. 그리고 그 중 약 80%는 누군가의 밑에서 임금을 받으면서 살아간다(2024년 1월 기준 비임금근로자는 22.7%, 임금근로자는 77.3%이다). ▲ 우리나라는 임금근로자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성찰과성장 강제적인 일 직장인이라면 모두 알 것이다. 누군가의 밑에서 일을 하게 되면 그 일은 강한 강제성을 띌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그 ‘누군가’는 우리가 흔히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으로, 이들은 직원을 항상 감시하고 통제하려 한다.  사무직으로 일했던 본인의 경험을 꺼내보자. 사장(또는 관리자)은 심심할 때마다 사무실로 조용히 들어와 돌아다녔으며(일을 제대로 하는지 감시하기 위해 온 것처럼 느껴졌다), 언젠가는 오래 쉬는 직원이 많다고 생각이 들었는지 20분 이상 자리에서 사라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 사장의 ‘꼼꼼한’ 감시는 필요악일까? ⓒ성찰과성장 사장의 ‘꼼꼼한’ 지시는 열심히 일하고 있는 구성원의 의욕을 꺾는데 영향을 끼쳤는데, 그 지시를 유발한 장본인(너무 많이 쉬고, 꼼수를 부려서 일을 안하던 사람)들이 그 후에도 태도를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지시를 지키는 사람은 기존에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던 직원들이었고 이들은 괜히 회사에 대해 없던 불만만 품게 되었다. 사장의 감시와 통제는 수익을 얻기 위한, 그리고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행위임을 안다. 하지만 이 행위 때문에 회사에서 8시간 이상 시간을 보내야 하는 직장인은 아무리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더라도 노동 의욕이 꺾이기 마련이다. 거기다 직장인이 회사에서 만들어낸 모든 생산물은 사장이 소유(정확하게는 회사가 소유하는 것이지만 대한민국 대부분의 사장은 ‘내 것’이라고 생각한다)하기 때문에 일에서 느끼는 효능감은 점차 사라진다.  그럼에도 직장인은 회사를 그만둘 수 없다. 그저 매월 통장에 급여가 입금되는 것을 바라보며 산다. 일을 그만두면 먹고 살 수 없기 때문이다. ▲ 시대별 가구 평균 근로소득 대비 수도권 아파트 매매가 비율 ⓒ성찰과성장 외환위기 이후 불안정일자리가 확대되고 부동산 가격이 임금을 저축하는 것으로는 구입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아짐에 따라 직장인의 비애가 더욱 심해졌다.  특히 부동산 가격 상승은 가계부채를 높이는 데 영향을 주었다(박대근, 최우주, 2015). 통계청 데이터(주택매매가격지수, 아파트 규모별 매매 실거래 평균가격 등)를 활용하여 구한 수도권 85㎡ 아파트의 매매 가격은 2000년 1억 3천 6백만 원으로 2000년 근로자가구의 월 평균 근로소득 200만원의 68배 정도 되는 가격이었으나, 2022년에는 6억 2천만 원으로, 2022년 월 평균 근로소득 470만 원의 132배 정도 되는 가격으로 올랐다. (참고로 2022년 서울 85㎡ 아파트 가격은 가구 월 평균 근로소득의 230배이다) ▲ 가계의 월 평균 근로소득을 전부 모아도 서울 아파트를 구입하려면 19년이 걸린다. ⓒ성찰과성장 근로소득의 절반을 부동산 구입을 위해서만 저축한다고 가정해도 2022년 기준으로 22년을 모아야 수도권 아파트 한 채를 겨우 구입할 수 있다.  이는 아파트 구입을 위해서는 사실상 부채를 져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근로소득 470만 원이 평균값이라는 것을 잊지말자. 소득분위의 60%는 평균 근로소득에 미치지 못한다. 대부분 사람은 자가구입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세로라도 살기 위해 부채를 지니고 거주할 곳을 얻는다.  과거 경제성장 시기 직장인은 자유시간을 위해 직장생활을 버텼지만 지금의 직장인은 부채를 갚기 위해 직장생활을 버틴다(장훈교, 2019). ▲ 가계 대출의 위험을 알리는 뉴스 (가계대출 '1086조' 7개월 연속 증가..경제위기 뇌관 '빚폭탄' 터지나 - [핫이슈PLAY] MBC뉴스 2023년 11월 9일) ⓒMBC 뉴스 유튜브 갈무리 사장이 된다면? 필자가 직장인이었을 때 겪었던 일들, 그리고 주변 직장인 지인의 생각들을 종합하여 알게된 것은 많은 직장인은 (당연하게도) 출퇴근을 싫어하고, (생각보다) 회사에 애정이 없으며, 회사가 성장하든 말든 자신의 일자리와 임금에 타격을 줄 정도가 아니라면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사장의 자녀로 아버지 밑에서 일하고 있는 또 다른 지인의 생각과 행동은 완전 다르다. 그는 업계 특성상 하루에 12시간을 근무하며 간혹 일이 몰렸을 때는 밤 12시까지 일하기도 하고, 일요일이나 연휴 때도 출근 한다(이 업계에서 대부분 그렇게 일한다).  기본적인 노동 강도가 매우 높음에도 이 지인은 동료 직원보다 더 빠르게 출근하고, 더 늦게 퇴근한다. 그는 일이 들어오지 않으면 회사의 안위를 걱정하고, 쉬는 날에도 생산 기계가 잘 돌아가는 지 확인하기 위해 잠시 회사에 다녀오기도 한다.  그의 행동 속 숨겨진 이유는 간단하다. 회사의 자본을 자신의 것이라고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가 돈을 많이 벌어들이고 커질수록 자신이 소유할 자본이 커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는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하고 회사를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 ▲ 마르크스와 생산수단 ⓒ성찰과성장 직장인과 사장 자녀가 가지는 태도의 근본적인 차이는 생산수단의 소유(예정) 여부이다. 생산수단은 토지, 기계, 설비, 공장, 건물 등 무언가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말한다.  사무직을 중심으로 생각해보면 사무실, 의자, 책상, 컴퓨터, 소프트웨어, 프린터, 인적네트워크 등도 생산수단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통제와 감시 속에서 일을 하고, 자신이 만들어낸 것을 소유하지 못함에도 ‘직장인 되기’를 선택한 것은 이러한 생산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정리하자면 직장인은 생산수단이 없기 때문에 하루 8시간 이상을 통제와 감시 속에서 일하고, 스스로 창조한 것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상황 즉, ‘자신의 노동을 통제하지 못하는 객관적 조건’을 ‘노동소외’라고 칭했다(최일붕, 2023). 우리는 노동소외로 인해,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노동시간을 ‘임금획득을 위한 시간’으로만 바라보게 된다.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이 들지 않은가?  어릴 때부터 우리는 좋은 직장을 갖기 위해 경쟁하고, 취업 후에도 살아남기 위해 회사의 감시 속에서 발버둥친다.  참고 살면 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커져가는 빈부격차, 낮아지는 경제성장률, 불안정한 일자리, 나의 노후를 책임지지 않을 것 같은 국가,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압박한다. ▲ 임금노동자는 영원히 고통 받아야 할까? ⓒ성찰과성장 고백하자면 본인은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이 압박에서 벗어났다. 먹고 살 고민을 하지 않고 원하는 공부와 활동을 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고민을 시작했다.  다른 사람도 매일 보람차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를 위해 필요한 첫번째 방안은 바로 노동소외를 해소하는 것이다. ▲ 노동소외는 개인의 문제인가, 구조의 문제인가 ⓒ성찰과성장 노동소외를 해소하기 위한 시각에는 크게 두 가지가 존재한다.   첫 번째는 노동소외를 개인의 문제로 보고 개인이 열심히 노력하여 생산수단을 획득함으로써 노동소외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시각이다. 이 시각은 직장인 생활이 싫다면 주식, 코인, 파생상품, 부동산 등에 투자해서 자본을 모으고 사업을 차리면 된다고 본다. 이와 관련해 최근 ‘경제적 자유’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된다. 벤 칼슨, 로빈 포웰의 『경제적 자유: 돈의 알고리즘』(2023)에 따르면 경제적 자유는 ‘돈으로 얻는 자유’를 뜻한다.  경제적 자유는 학문적으로 사유재산권을 강조하는 고전적 자유주의 관점과 시민의 도덕적 능력 계발을 강조하는 평등주의적 자유주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나(황재홍, 조필규, 2015) 요즘 대다수가 사용하는 ‘경제적 자유’는 전자의 관점에 따른 자유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 많은 이가 ‘노동소외’를 겪는다고 해서 당연하게 여기지 말자 ⓒ성찰과성장 두 번째 시각은 노동소외 문제를 구조의 문제로 인식한다. 직장인이 투자를 잘해서 자본을 모으고 사업을 차려 성공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자영업자 중 영세자영업자(고용원 존재 여부 기준)의 비중이 74%인 것을 보면 이를 더 확실히 알 수 있다. 또한 회사의 성장을 통해 주식 배당금을 받는 이상적인 투자 방식과 다르게 앞에서 말한 주식, 금융상품, 부동산 등 돈을 한번에 많이 버는 투자 방식은 제로섬 게임이다. 누군가 돈을 벌면, 다른 누구는 돈을 잃는다. 따라서 거시적으로 봤을 때 직장인이 사업가가 되는 것은 ‘노동소외’ 현상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필자는 노동소외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누가 되었든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더라도, 고용되어 감시 속에서 살아가지 않더라도,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그런 구조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대다수가 겪는다고 해서 ‘노동소외’ 현상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되며, 노동소외를 해소하기 위한 새로운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오며 필자는 세 편의 글을 통해 노동소외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의 구조를 모두의 노동이 “생명의 자유로운 발현이 되고 인생의 즐거움”(최일붕, 2023)이 될 수 있는 구조로 바꾸는 방법을 찾아갈 것이다. 2편에서는 노동시장의 의미와 노동시장이 없었던 시기에 살았던 사람들은 어떻게 생활했는지 짚어보고 능력주의를 넘어서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우리는 일을 하면서 즐거움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월요일 아침이 싫은 이유는 ‘일을 해야해서’가 아니라 ‘살기위해 강제로 돈 버는 일을 해야만’하기 때문이다. 단지 개인의 불평불만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가 부딪쳐야만 하는 객관적인 조건이자 구조의 문제이다. 세상에는 많은 것이 이해 불가 투성이지만, 거기에 한가지 의문을 더해보자. “왜 나는 매일 출근해야 하는 거지?” 참고문헌 박대근, 최우주, 2015, ‘가계부채의 결정요인에 대한 패널자료 분석: 주택가격과 대출심사기준을 중심으로’, 경제연구, 33(1) 최일붕, ‘마르크스주의의 방법 (1) 노동소외(https://wspaper.org/article/29843) 벤 칼슨, 로빈 포웰, 2023, 『경제적 자유: 돈의 알고리즘』, 인사이트엔뷰 황재홍, 조필규, 2015, ‘경제적 자유와 사회정의 신고전적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 검토’, 한국경제학보 22(2)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대안을 배달해드립니다 - 창작그룹 '성찰과성장' 글 작성 및 편집 : 신동주, 박배민 성찰과성장.com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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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공화주의]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이익은 공존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에서는 우리나라를 민주공화국이라 설명한다. 진정한 민주주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공화’에 대한 개념이 중요하지만, 민주에 비해 공화를 다룬 글은 많지 않다.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공화‘. 창작그룹 ’성찰과성장‘은 [처음 만나는 공화주의] 연재를 통해 ’공화주의‘에 대해 쉽게 풀어보고자 한다. '민주적 공화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3가지 요소가 강조된다. ▲적극적인 시민 참여 ▲기본적인 물질적 보장을 통한 민주적 평등 ▲공동선을 추구하는 정치가 바로 그것이다. 마지막 5편에서는 민주적 공화주의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공동선’에 대해 탐구해본다. 사회적 불신 속 공동선의 가치를 되새기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갈등과 대립, 그리고 불신의 확산은 우리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세대 간, 성별, 정치 진영, 지역 및 사회적 계층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는 다양한 축을 중심으로 깊은 분열을 경험하고 있다. 경제적 불확실성, 국제 정세의 동요, 타인에 대한 이해 부족, 포용의 결핍 등이 이러한 분열의 원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 현상을 깊게 들여다보면 공동체적 가치와 공동선의 결핍이 근본적인 문제로 드러난다. 공동선이라는 개념은 우리에게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공동선이란 과연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지 않다. 왜냐하면 공동선은 각 구성원, 계층 간의 지속적인 대화와 소통, 그리고 조율을 통해 형성되고 발전하기 때문이다. 이는 공동체의 현실, 맥락, 그리고 구성원의 다양성에 따라 그 정의가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전근대 사회에서는 사람마다 정해진 귀천에 따라 사회가 구성되고 운영되었으며, 이러한 사회적 구조가 당시 공동체의 공동선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모든 인간이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인식이 공동체의 합의된 공동선으로 자리 잡았다. ▲ 패러다임의 변화는 공동선의 변화를 불러온다 ⓒ성찰과 성장 자연 환경에 대한 우리의 태도 역시 공동선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과거에는 자연을 무한한 자원으로 여기고 마음껏 이용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지속 가능한 자연과 지구 생태계를 고려하는 새로운 인식으로 변화했다. 이는 공동체가 공유하는 공동선의 진화를 반영한 것이다. 우리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그토록 분노하는 이유도 전지구적 공동선을 해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공동선은 중요한 것일까?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지향하는 정치공동체는 반드시 공동선을 고민하고 실천한다. 정치체제가 무엇이든지 관계없이 말이다. 공동선이 결여된 사회는 부패와 해체의 위험에 쉽게 노출된다. 오로지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회는 결국 서로를 향한 끊임없는 투쟁의 장으로 전락한다. 이러한 상황은 공동체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며, 결국 사회의 기반을 약화시킨다. 이에 비해, 공동선에 대한 깊은 이해와 적극적인 실천은 사회의 건강과 지속적인 발전을 보장하는 기반이 된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공동선이 무엇인지에 대한 지속적인 성찰과 논의, 그리고 그 실현을 위한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공동선: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이익 사이에서   공동선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사전에서는 공동선이 해당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것 또는 이익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개념은 어떤 의미일까? 공동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그 유기체 전체에 이로운 것을 의미할 수도 있고, 반대로 구성원 개개인의 이익이 모여 공동선을 형성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공동선이 공동체의 최종 목적지인지, 아니면 번영을 위한 수단일 뿐인지에 대한 질문은 공동선을 둘러싼 복잡한 논의를 잘 드러낸다.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종교적 차원에서 공동선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가운데, 공화주의에서의 공동선 개념을 짚어 보자. 전통적으로 공동선은 선지자가 자신의 개인적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공동체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발견할 수 있는 '그 무엇'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현대로 넘어오면서, 공동선에 대한 이러한 전통적 시각은 개인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다는 비판에 마주한다. 자유주의적 사상이 확산된 현대 사회에서는 비지배의 원칙을 바탕으로 개인의 이익을 출발점으로 삼아 공동선을 모색하는 새로운 접근 방식이 제시되고 있다(곽준혁, 2008). 공동선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 중 하나는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개인의 이익을 희생으로 이어 진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공익과 사익은 주종 관계가 아니다. “공동체주의의 관점과 달리 사익은 공익과 부분적으로 겹쳐질 뿐 종속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놓지 않아야 한다(구은정 2021). 공익과 사익은 서로 대치해야만 하는 관계가 아니다. 둘의 공존은 가능하다. 어느 한 쪽이 존재하기 위해 다른 한 쪽이 희생해야만 하는 관계도 아니다. ▲ 누군가 얻으면, 누군가는 잃어야 하는 제로섬 게임만이 답일까? ⓒ성찰과 성장 우리가 공동선 개념을 쉬이 받아 들이기 어려운 것은 바로 근대 사회를 구성하는 자유주의적 관점 때문이다. 자유주의적 관점은 제로섬 게임, 즉 한 쪽의 이익이 반드시 다른 쪽의 손실을 초래하는 구조가 기본이다. 제로섬 거래는 상호 작용과 타협을 강조하지만, 동시에 경쟁적이고 대립적인 거래 관계를 전제로 한다. 하지만 앞서 말한 공익과 사익의 교집합으로서 존재하는 공동선은 다르다. 공동선의 발전이 개인의 이익이며, 개인의 이익이 공동체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이런 관점을 기반으로, 이익을 위한 ‘거래 행위’가 아니라, 서로 신뢰를 형성하기 위한 ‘호혜적 활동’이 필요하다. 공화주의는 오히려 공화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비-지배’를 기반으로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넓히려고 노력한다. 비-지배는 ‘타인의 자의에 종속되지 않는 상태’라고 정의된다. 조금 어려운 개념이지만, 비유하자면 구성원 간 평등하여 권력, 재력 등으로 서로가 ‘주인과 노예’ 상태에 놓이지 않는 것으로 이해하자. 여기서 오해하지 말 것은 어디까지나 ‘비지배 기반의 자유’이지, 개인의 무한한 자유를 보장하는 ‘자유주의적 자유’가 아니라는 점이다. (비지배 기반의 자유 개념은 이 시리즈의 1편을 추천한다. 링크 참고) 공동체 가치만을 우선하여 개인이 가지는 자유의 경계를 설정하는데 실패한 사례가 있다. 이웃 국가 중국이다. 중국은 ‘위(권력층)’에서 설정하고 꽂아 내린 공동선(민족주의, 국가 발전 등)을 개인의 자유보다 우선 순위에 놓으면서 시민의 자유와 공동선의 경계를 설정하는 데 실패했다(Kwak, Matsuda 2015). 공동선이 위에서 내려진 지시로 간주될 경우, 진정한 공동선은 훼손된다. 공동선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도구가 아니라, 개인과 공동체가 상호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함께 추구해야 할 가치임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민적 덕성 - 공동선을 향한 사회적 기초  이제 시민적 덕성을 살펴보자. 공동선을 이야기하면서 시민의 덕성을 빼먹을 수 없다. 시민적 덕성이란 무엇일까? 단순히 법을 잘 지키는 착한 시민의 차원이 아니라 더 포괄적인 의미를 갖는다. 시민적 덕성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시민적 덕성은 자발적인 ‘행동’을 수반한다. 관심 있는 분야의 집회에 나가 의견을 표명하거나, 귀찮더라도 환경 보호를 위해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등 사익을 넘어 공동체 이익을 위해 자발적으로 ‘행위하려는 성향(조일수, 2011)’을 가지고 있다. 또한 나와 다른 의견을 수용하고 경청하는 태도이다. 이는 타인에게 ‘설득 당하려는 의지(구은정 2021)’로 바꿔 말할 수도 있다. 갈등 없는 사회는 없다. 우리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크고 작은, 아주 다양한 갈등 상황을 마주한다. 건강한 공동체는 갈등을 외면하고 묵살하지 않는다. 갈등이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인지하고 구성원 간의 충분한 소통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나간다. 시민적 덕성은 공동선을 위한 전제이다. 중국의 실패 사례처럼, 시민의 덕성이 함양되지 못 하고 강력한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에 묻혀 버린다면 공동선을 찾아내기 어렵다. 시민적 덕성은 강력한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에 묻히지 않고, 개인과 공동체가 서로의 발전을 위해 협력하고 공존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시민적 덕성 함양은 공동선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만이 아니라, 개인의 성장과 사회적 책임감을 높이는 데에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일상 속 실천하는 시민은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원동력이다 ⓒ성찰과 성장 우리의 공동선은?  우리가 좇아야 할 공동선은 무엇일까? 성찰과성장에서 ‘이것이 답이다!’라며 제안할 수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공동선은 절대적이거나 고정된 것이 아니며, 단일한 종교적 진리나 일률적인 도덕 규범으로 정의될 수 없다. 오히려 대한민국의 모든 구성원이 함께 참여하여 만들고, 시간과 상황에 따라 발전시켜 나가는 동적인 과정이다. 이제 여러분의 몫이다. 우리 사회의 공동선은 공정성, 평등, 상호 존중, 지속 가능성 등의 기본 원칙에 기반해야 한다. 또한 경제적 번영, 사회적 안정, 문화적 다양성, 환경적 지속 가능성 등을 포함하여, 모든 구성원이 누릴 수 있는 복지와 기회의 균등한 분배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결국, 우리의 공동선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며, 공동선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과정은 지속적인 노력과 헌신을 요구한다. 변화하는 시대와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여, 모든 구성원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한 지속적인 여정이다. 우리 사회에는 저마다의 진실이 존재한다. 다양한 관점과 경험을 가진 우리 모두에게, '처음 만나는 공화주의' 연재가 일상생활과 시민사회 현장에서 활용되어 공동선을 향한 더 깊은 이해와 실천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참고 문헌 곽준혁(2008). “공화주의.” 『한국정치학회 편. 정치학 이해의 길잡이: 정치사상』 (pp.171-205). 서울: 법문사. 구은정. (2021). 탈진실(Post-truth) 시대, 숙의와 공공선. NGO연구, 16(2), 1-38. 조일수. (2011). 공화주의적 시민성에 대한 연구 -아테네적 전통과 로마적 전통의 차이를 중심으로. 倫理硏究, 1(80), 291-316.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드, <의무란 무엇인가>, 2021 Kwak, Jun-Hyeok and Koichiro Matsuda. 2015. Patriotism in East Asia. New York: Routledge.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대안을 배달해드립니다 - 창작그룹 '성찰과성장'글 작성 및 편집 : 김설, 박배민, 신동주 성찰과성장.com
좋은 일인 거 아는데 여유가 없어요 - 공화주의를 위한 기본적인 물질 보장 [처음 만나는 공화주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에서는 우리나라를 민주공화국이라 설명한다. 진정한 민주주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공화’에 대한 개념이 중요하지만, 민주에 비해 공화를 다룬 글은 많지 않다.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공화‘. 창작그룹 ’성찰과성장‘은 [처음 만나는 공화주의] 연재를 통해 ’공화주의‘에 대해 쉽게 풀어보고자 한다. 민주적 공화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3가지 요소가 강조된다. ▲적극적인 시민 참여 ▲기본적인 물질적 보장을 통한 민주적 평등 ▲공동선을 추구하는 정치가 바로 그것이다. 이번 4편에서는 민주적 공화주의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기본적인 물질적 보장’에 대해 탐구해본다. 고상한 일에 시간 쓸 여유 평일 내내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는 30대 직장인 조 씨가 있다. 그에게 공동선을 위해 “구청에서 정책 토론회가 열리는 데 같이 가볼래요?”라고 제안했다. 과연 조 씨의 반응은 어땠을까? 그런 고상한 일에 시간 낼 여유가 어디 있느냐는 표정과 함께 대답이 돌아왔다. “주중에 퇴근하고 들어오면 밤 9시예요. 그나마 주말은 오롯이 저를 위해 쓰고 싶고요. 남는 시간이 있다면 차라리 게임을 하며 쉬고 싶어요.” 성찰과성장은 '공화주의'에 대한 관심이 경제적 불평등 해소와 새로운 경제체제 구상에 직결되어 있다고 본다. 생계를 위해 온종일 일하고 주말에는 휴식을 원하는 사람에게 더 나은 사회(공동선)를 위해 논의하고 고민해보자는 권유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특히 사회적 약자로서는 이러한 제안이 현실과 동떨어진 무의미한 외침으로 여겨질 수 있다. 생계가 불안정한 상황에서는 공동선에 대한 고민이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최소한의 생계 걱정이 해소되어야만, 개인을 넘어서 사회 전체를 위한 고민을 할 여유가 생긴다. ▲ 생계 노동에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기고도 공동선에 대해 고민할 수 있을까? Ⓒ성찰과성장 실제로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한 토론회나 주민자치회 참여자를 보면 상대적으로 개인 시간이 많은 가정주부나 은퇴한 장년이 많으며 생활 전선에 있는 청년이나 중년 남성의 참여율은 저조하다. 전국 960개 주민자치회 위원의 평균 연령은 58세이며, 20대 위원이 단 한 명도 없는 자치회는 839개, 무려 87%(!)에 이른다. (2021 이은주 의원) 지난 23년 11월, 한국은행은 우리나라가 경제 침체 국면이라고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우리의 삶은 항상 힘들었던 것 같지만, 질적, 양적 데이터는 우리나라의 엄청난 성장을 입증했다(2021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그런데 한국은행이 공식적으로 이제 경제 ‘둔화’를 넘어 경제 ‘침체’에 들어섰다고 인정한 것이다. 여기에 부의 양극화와 불평등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 23년 3분기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소득 5분위 기준 1분위(하위 20%)의 소득은 전년동기대비 감소하였으며, 2~3분위의 소득은 증가하였으나 소득증가율이 물가 상승률(3.1%)을 밑돌았다. 이는 가계소득 하위 60%의 실질소득이 감소하였음을 의미한다. 또한 1분위의 가계소득은 112.2만 원, 가계지출은 123.7만 원으로 적자임을 확인할 수 있는데, 1분위의 적자상태는 국가통계포털에서 데이터 확인이 가능한 2003년부터 매년 보이는 현상이다. 이는 하위 20%가 생계를 위해 빚을 지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 상위 40%의 실질소득은 증가했는데 이는 국민연금, 기초연금 등 물가에 연동되어 지급되는 연금 수혜를 상대적으로 더 많이 받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 경제적 상황과 관계없이 다양한 계층의 만남이 필요하다. Ⓒ성찰과성장 공화주의는 공허한 이상이 아니다. 우리 삶에 맞닿을 때 공동체의 운영 원칙으로서 힘이 생긴다. 이 원칙을 현실화시키는 힘은 다양한 계층 간의 만남과 대화에서 나온다. 이러한 계층은 기득권층 뿐만 아니라, 생계를 위해 일상에서 분투하는 직장인, 자영업자 그리고 사회적 약자로 여겨지는 장애인, 여성, 노인, 아동, 이민자, 저소득층까지 다양하다. 다양한 계층이 어떻게 만날 수 있냐고? 방법은 간단하다. 이들이 만날 수 있는 시간과 재정적 여건을 만들어 주면 된다. 하지만 재정적 부담이 덜한 부유층과 달리 소시민에게는 재정적 지원이 필수다. 구성원이 공동선에 기여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재정적 자원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들에게 경제적 여유를 통해 시간적 여유까지 함께 제공함으로써, 공동선을 향한 참여와 이바지를 기대할 수 있다. 사회적 노동을 인정하는 참여소득 그리고 그 너머를 상상하며 사회 기여를 위한 시간과 재정적 여유를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한 가지 대답은 ‘참여소득’이다. 기본소득이 모든 이에게 최소한의 생활비를 보장하여 사회적 최저선을 끌어올리기 위한 제도라면, 참여소득은 교육 참여, 봉사, 돌봄, 직업 훈련과 같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에 참여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는 제도이다. 1990년대 영국 경제학자 앤서니 앳킨슨(Anthony Barnes Atkinson)이 처음 제안한 참여소득은 사회적 기여와 의무에 중점을 두고 있다. 비록 금액적으로 충분하지는 않지만, 참여소득은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실현되고 있다.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건 공동선을 위한 회의 참여 시 지급되는 회의참석비(예: 청년네트워크, 주민자치회, 참여예산위원)이다. 또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실업자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월 30만 원 정도의 ‘훈련 장려금’과 훈련비가 지급된다. 아이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가정에는 최대 20만 원의 가정양육수당과 최대 70만 원의 부모급여가 제공된다. 사회적 기업・마을기업・사회적 협동조합과 같은 사회적 경제 조직에 대한 각종 지원금, 일반 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노인이나 장애인을 위한 공공일자리도 역시 참여소득의 일환이다. 참여소득 제도는 시민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공동선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하고 참여할 수 있는 시간과 재정적 여유를 부분적으로나마 제공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현 단계에서 참여소득은 여전히 보조적인 수입원에 불과하다. 마치 봉사활동을 하고 소정의 교통비를 받는 것과 유사하다. 현재의 참여소득제도는 결함도 가지고 있다. 현재 시행 중인 대부분의 참여소득이 중앙정부와 지자체 관료의 행정력에 의해 결정된다. 시민과 공론을 통해 함께 결정한 소득이 아니기 때문에 그 내용이 참여소득 범주에 포함될 수 있는지 논란도 있고, 또한 참여소득의 존폐가 전적으로 행정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문제도 있다. ▲ 부유층과 빈곤층의 투표 참여 의향은 3배에 달한다. Ⓒ성찰과성장 2018년 한겨레 신문의 지방선거 국민 의식 조사에 따르면, 경제적 상황에 따른 최상위 계층과 최하위 계층 간 투표 의향 차이를 살펴보니 최대 3배 격차를 보였다. 이는 경제적 여유가 정치 참여도에 영향을 미침을 시사한다. 해당 조사는 투표율 향상의 장애물로 주거 불안정성과 경제적 불평등을 지목했다. 경제적 여건이 열악할수록 선거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지역 사회 내 네트워크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17대부터 21대 국회에서 보좌관으로 활동한 손낙구는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를 통해 부유한 지역일수록 투표율이 높다는 사실을 데이터로 입증했다. 소득 양극화는 공화주의에 큰 걸림돌이지만 문제는 점점 더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모두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끼지만, 계층 간 이동의 가능성, 즉 ‘사다리’의 격차는 점점 더 확대되고 있다. 소득 양극화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만능열쇠 같은 답을 내놓긴 어렵다. 그럼에도 분명한 점은 소득의 책임을 오로지 개인에게만 전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회적 차원에서 개인의 소득 불안정성을 해결할 수 있는 강력하고 포괄적인 소득 보장 체계의 마련할 수 있다면 한층 더 공화주의에 다가설 수 있다. ▲ 각자도생 사회에도 희망은 있다. Ⓒ성찰과성장 과도한 경쟁, 불안정한 노동 시장, 예고된 장기 경제 불황, 우리는 대한민국이 민주적이지도, 공화적이지도 않은 각자도생 사회로 무너지는 걸 경험하고 있다. 현대 사회는 인공지능(AI)이 촉발한 노동 시장의 변혁을 몸소 경험하고 있으며, 이는 경제 침체와 함께 고용 축소라는 현실로 이어지고 있다. 기존에 유지되던 일자리도 점차 불안정한 형태, 예를 들어 하청 노동이나 플랫폼 기반 노동으로 전환되는 추세다. 개인이 가계 경제를 전적으로 부담하는 현재 구조를 넘어, 기존 복지 제도 외에도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사회적 노동에 대한 인정이 필요한 때다. 사회 참여에 대한 소득 보장은 개인을 넘어, 공화주의 실현을 위한 필수 요소임을 잊지 말자.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대안을 배달해 드립니다" - 창작그룹 성찰과성장글 작성 ・ 편집 : 김설, 박배민, 신동주(성찰과성장.com) 참고 자료 이상준, “한국은 이미 참여소득 강국, 그러나…”, 프레시안, 2020.12.02. 이상민, “2023년 윤 정부 재정위기…‘눈 떠보니 후진국’”, 한겨레, 23. 11. 5. 정의정책연구소, “참여소득, 기본소득으로의 단계인가 사회적 경제의 실현인가”, 2020. 12. 01. 이은주, 전국 주민자치회 현황 전수 조사, 2021 통계청, ‘2023년 3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 2023
[처음 만나는 공화주의] 시민 참여 - 민주공화국 실현을 위한 초석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에서는 우리나라를 민주공화국이라 설명한다. 진정한 민주주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공화’에 대한 개념이 중요하지만, 민주에 비해 공화를 다룬 글은 많지 않다.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공화‘. 창작그룹 ’성찰과성장‘은 [처음 만나는 공화주의] 연재를 통해 ’공화주의‘에 대해 쉽게 풀어보고자 한다. 민주적 공화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3가지 요소가 강조된다. ▲적극적인 시민 참여 ▲공동선을 추구하는 정치 ▲기본적인 물질적 보장을 통한 민주적 평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번 3편에서는 민주적 공화주의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적극적인 시민 참여’에 대해 탐구해본다. ‘시민참여’라는 말이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시민참여는 주로 공공 영역에서 수행하는 사업, 정책, 행정 등에 시민이 참여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말하는데, 논의의 간결함을 위해 정치 영역에 맞춰 시민참여를 이야기해보자. 시민참여로 더 나은 공화주의 만들기  시민참여를 말할 때 항상 강조되는 것이 ‘시민의 덕성’이다. 이 개념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 기원을 두고 있다. 현대적 맥락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이를 잘 표현했다. 그는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라며 시민의 힘을 강조했다. 개인의 이익을 넘어 사회 전체의 이익을 함께 추구하는 능동적인 시민이 민주주의라는 나무가 꿋꿋이 서 있을 수 있게 만드는 뿌리라는 뜻이다. 성찰과성장은 일상 속 실천에 방점을 찍어 ‘시민의 덕성’을 ‘정치적, 사회 문제에 대해 관심을 두고, 그 관심을 자신의 일상으로 연결해 적극 행동하고 실천하는 것’으로 정리해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시민적 덕성’을 촉진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공동체의 공화적 역량을 향상할 수 있을까? 예상하듯 이 과정은 녹록지 않다. 시간도 많이 필요하다. 기후 위기 문제와 같이, 일상에서 공동체와 사회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논의, 꾸준한 성찰의 과정이 있어야 더 나은 민주공화제를 실현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상적이고 다양한 층위에서 시민의 사회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작금의 시대상을 떠올리며,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있는지 되돌아보자. ‘정치 참여’라는 말을 듣게 되면 무엇부터 떠오르는가? 대부분 '선거 투표'를 먼저 생각할 것이다. 선거는 중요한 정치 참여 수단이지만 이것만으로 정치에 충분히 적극 참여했다고 할 수 있을까? 다수결에 의한 결정 과정은 다수 의견만 반영하는 한계가 있고, 투표는 승패를 가를 뿐 근본적으로 양측(혹은 그 이상)의 진정한 화합을 이루어 낼 수 없다. 또한 정치권력에 대한 심판은 몇 년 단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수시로 정치권력을 견제하기 어렵고, 유권자의 무관심은 민주적 공화주의를 위태롭게 만든다. 소수에 대한 다수의 억압을 예방하려면, 민주공화제 내에서 권력이 분산되어야만 한다. 대통령이나 특정 집단의 권력 독점을 차단하고, 다양한 관점을 가진 집단과 권력 구조 안에서의 상호 견제가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의 원동력이 바로 '시민의 덕성'이다. 시민적 덕성으로 무장한 정치 공동체는 단일 권력을 감시하고 사회의 부패를 방지한다. 이것이 우리가 일상 속 실천을 그토록 강조하는 이유다. 아래에서 시민적 덕성이 실제로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지 두 가지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대표적인 시민참여 제도, 주민참여예산제  우리나라는 주민자치회, 청년네트워크 등 시민으로서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가 있으며 대표적인 제도로는 전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주민참여예산제(이하 참여예산)가 있다. 주민참여예산제는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과정에 주민을 참여시키는 제도로, 시민이라면 누구나 참여예산제를 통해 거주 지역에 필요한 정책과 예산을 제안할 수 있다. 서울시의 경우, 2022년 서울시민이 제안한 사업을 심의하여 총 22.5억 원을 23년 예산에 편성했다. 참여예산은 재정 운영 측면에서 행정 시스템을 견제하고 투명성과 책임성을 청구할 수 있는 제도다. 참여예산 도입 전에는 의회 · 행정 등 공공 권력이 예산 편성권을 독점하고 있었지만, 이 제도가 도입된 2011년부터는 예산 과정이 점차 주민에게 개방되었다. 참여예산이 효과적으로 실행된다면, 내가 어디에 살든 지역 예산 과정(편성·집행·평가)에 참여할 기회가 생긴다. 이러한 참여는 예산 사용의 효율·효과에 대한 주민의 관심을 증가시키고, 재정에 대한 책임이 궁극적으로 주민에게 있다는 인식을 강화하며 시민적 덕성을 함양한다. 주민참여예산제의 현황과 한계: 13년의 여정과 지속적인 개선 필요성  주민참여예산제도는 2011년 지방재정법 개정을 통해 각 지방자치단체가 의무적으로 운영하게끔 변화되었다. 시행 13년이 넘은 제도의 현황을 간략히 살펴보자. 지난 2018년 3월, 「지방재정법」이 다시 한번 개정되면서 주민참여예산의 범위는 ‘예산 편성 과정에의 참여’에서 ‘지방 예산 편성을 포함한 전반적인 예산 과정에의 참여’로 확장되었다. 개정 전에는 주민이 예산 ‘편성’ 과정에만 참여할 수 있었다면, 최근 개정은 주민이 예산의 시작 단계인 편성을 넘어 ‘집행’과 ‘결산’ 등 전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나 법 개정 이후 5년이나 지났음에도, 지방재정법 개정 취지에 맞추어 조례를 개정한 지방자치단체는 전체의 43.2%에 불과해, 아직도 많은 지자체에서 이 제도의 완전한 이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민참여예산제는 민주적 공화주의를 위한 중요 수단이지만 여전히 많은 개선과 발전이 필요하다. *최승우, 전국 지방자치단체 주민참여예산 조례 정비 현황 분석, 나라살림연구소 브리핑 350호, 2023.11 아일랜드의 헌법회의: 시민 주도 참여의 모범 사례  아일랜드의 ‘헌법회의’는 행정과 의회가 시민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을 넘어 실질적인 정책 반영의 기회와 충분한 숙의 과정을 보장해준 모범 사례로 꼽힌다. 2012년 12월부터 2014년 3월까지 약 15개월간 아일랜드에서는 시민이 참여한 헌법회의(The Convention on the Constitution)를 운영했다. 아일랜드는 먼저 100명의 시민을 모집하고 1박 2일 간 전문가 발표와 토론을 거쳐 의제에 대한 시민의 이해를 높였다. 그 후 의원 33명, 무작위로 추첨된 시민 55명, 의장 1명 등 100명으로 구성된 헌법회의를 출범시켰다. 이 헌법회의는 ‘동성결혼 합법화’와 ‘대통령직 출마 나이를 21세로 하향조정’ 등의 권고안을 제출하였고, 마침내 2015년 ‘동성결혼 허용’이 국민투표로 최종 승인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아일랜드 시민은 시범기구 ‘위드 더 시티즌(With The Citizen)’를 시작으로 헌법회의를 거쳐 ‘시민의회’를 정착시켰다. 시민의회는 ‘17년 낙태 논의를 거쳐 ‘23년에는 마약 대책에 대해 활발히 논의하는 등 시민의 적극적인 정책 개입이 이어지고 있다. 시민참여: 민주적 공화주의를 위한 시작  아일랜드의 헌법회의·시민의회 사례에서 정치권력이 시민을 진정한 논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토론과 숙의를 통해 대안을 모색한 과정을 확인했다. 아일랜드 정치권력은 시민의 의견을 무조건 수용해야 하는 의무가 없다. 그럼에도 헌법회의(시민의회)에 더 큰 권한을 이양하고 시민에게 더 넓은 참여 기회를 보장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시민을 관망자가 아닌 정책 과정의 핵심으로 인식한다는 긍정적 신호다. 또한 시민의 일상적 정치 참여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음을 뜻한다. 시민참여는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때론 힘들고,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생동감 넘치는 민주주의는 시민의 힘으로만 가능하다. 여전히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는 2024년에는 더 많은 시민의 참여로 문제가 해소되길 바란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대안을 배달해 드립니다" - 창작그룹 성찰과성장글 작성 ・ 편집 : 김설, 박배민, 신동주(성찰과성장.com)
공화는 수입품이 아니다 [처음 만나는 공화주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에서는 우리나라를 민주공화국이라 설명한다. 진정한 민주주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공화’에 대한 개념이 중요하지만, 상대적으로 민주보다 공화에 대해 다루는 글은 많지 않다.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공화‘. 창작그룹 ’성찰과성장‘은 [처음 만나는 공화주의] 연재를 통해 ’공화주의‘에 대해 쉽게 풀어보고자 한다. 공화가 무엇인지 깊이 이해하려면, 공화주의가 탄생한 역사 배경과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어떤 과정을 통해 발전하고 변화해 왔는지 그 변천사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화주의의 유래와 그 역사적 진화 과정을 살펴본다면, 공화의 진정한 의미와 중요성을 더욱 명확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공화주의의 역사를 살펴보자. 공화(republic)의 유래  서양에서 사용되는 '공화국' 또는 '공화'라는 용어는 라틴어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에서 기원했다. 이 라틴어 표현에서 'res'는 '사물', '물건', '재산'을 의미하는 명사이며, 'publica'는 '공적인'을 뜻하는 형용사다. 이 두 단어의 조합을 간결하게 해석하면, '레스 푸블리카'는 '공적인 것' 또는 '공공의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는 공화주의가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의 복리를 중시함을 암시한다. 로마 철학자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는 레스 푸블리카를 “공동의 법과 이익에 의해 결속된 공동체로서의 국가”라고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동의 법과 이익’이다. 특정 개인 또는 소수 권력자의 이익을 위한 국가가 아니라 구성원 모두의 이익을 위한 국가가 레스 푸블리카인 것이다. 그래서 공화는 단순히 왕정이나 귀족정 등만이 아닌 다양한 정치 체제 요소가 섞여 있는 ‘혼합정’을 의미하기도 했다. 공화주의의 진화  르네상스 이후 이탈리아의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 미국의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 Jr), 프랑스의 알렉시스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 등 여러 철학자에 의해 공화주의는 구체적이고 다양한 의미를 담게 된다. 마키아벨리는 통치자와 인민(people)이 덕성을 갖춘 상태에서 제도적 장치를 통해 '절대권력을 제한'하는 형태의 공화정을 제안했다. 이와 비슷하면서 다르게, 제임스 매디슨은 다수가 권력을 독점해 소수를 지배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안전장치로서 헌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상호 견제와 협력이라는 관점에서 공화를 '혼합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한, 토크빌은 소수에 대한 다수의 횡포를 방지하기 위해 '시민의 자발적 결사'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공화 사상가들의 이론은 공화주의가 다양한 형태로 해석되고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인류를 비극으로 이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공화주의의 핵심 사상 중 하나로 '비-지배의 자유'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1편에서 언급한 필립 페팃(Philip Noel Pettit)은 이 개념을 중심으로 자신의 이론을 전개한다. 페팃에 따르면, '비-지배의 자유'란 개인이 타인의 자의적인 의지에 의해 지배받지 않는 상태다. 그는 단순히 간섭받지 않는 자유를 넘어서, 어떠한 외부 권력에도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자유 상태를 강조한다. 페팃의 이론은 공화주의가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동양 공화의 뿌리: 려왕에서 군신공치까지  공화는 서양만의 개념이 아니었다. 동양의 '공화' 개념이 최초로 언급된 것은 사마천의 '사기본기(史記本紀)'다. 기원전 841년, 주나라 백성들이 려왕(厲王)을 나라 밖으로 추방한 후, 13년 간 왕이 없는 상태에서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이라는 두 재상이 정치를 맡았다. 이 시기를 가리켜 '공화'라고 불렀다. 후에 공백화라는 인물이 려왕을 대신해 국가를 통치했다는 기록이 발견되긴 했지만, 역사적 맥락을 떠나 '공화'라는 용어는 오랫동안 왕이 없는 상황에서 신하들이 국가를 다스리는 상황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려왕 사례를 통해 우리는 '공화'가 단순히 서구에 국한되지 않고, 동양에도 그 뿌리를 내리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유교에서는 '천하위공(天下爲公, 천하는 모두의 것)'을 정치의 근본 방향으로 채택했다. 이는 정치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임을 강조하는 동시에, 덕치(덕을 통한 통치)와 함께 법치를 중시하는 관점을 반영한다. 유교는 법치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았고, 특히 사대부 계층의 도덕적 자기 수양을 중요시했다. 조선을 포함한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군주제 국가에서는 왕정과 귀족정이 혼합된 '군신공치(君臣共治)' 체제가 정착되었다. 이 체제에서 사대부와 신하들은 왕의 권력을 견제하며 국정을 공동으로 운영했다. 따라서 넓은 의미에서 혼합정 형태의 공화(공공의 이익을 위한 공동 통치)가 이미 조선 시대에도 존재했던 것이다. 우리만의 공화를 재구성할 때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는 우리나라가 민주공화국이 되어야 한다고 자연스레 인식했다. 이러한 생각은 임금이란 백성을 위해 나라를 다스리는 존재이며, 만약 임금이 주권을 빼앗겼다면(혹은 포기했다면) 백성이 직접 나라를 운영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에 기반을 두었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임시 헌장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고 명시했으며, 1948년 제헌헌법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선언한 것은 단순히 서양의 '공화' 개념을 비판 없이 받아들인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역사적 맥락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공화주의는 서양만의 전유물이 아닌, 동양에서도 과거부터 이어 내려온 가치였음을 잊지 말자. 이제 우리의 과제는 '우리만의 공화주의'를 정립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권력 분산, 시민의 덕성, 자발적 결사, 소수의 권리 보호 등 기존의 공화주의 원칙을 기반으로 하되, 우리나라의 독특한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반영해야 한다. 서구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동양의 전통과 가치를 통합한 새로운 정치적 접근을 통해 공화주의를 재구성할 때 우리 사회에 더욱 적합하고 대중이 느끼는 '답답한 현실 정치'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대안을 배달해 드립니다" - 창작그룹 성찰과성장글 작성 ・ 편집 : 김설, 박배민, 신동주(성찰과성장.com)
[처음 만나는 공화주의] 공화주의란 무엇인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에서는 우리나라를 민주공화국이라 설명한다. 진정한 민주주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공화’에 대한 개념이 중요하지만, 상대적으로 민주보다 공화에 대해 다루는 글은 많지 않다.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공화‘. 창작그룹 ’성찰과성장‘은 [처음 만나는 공화주의] 연재를 통해 ’공화주의‘에 대해 쉽게 풀어보고자 한다. 공화주의(republicanism)란?     ‘공화’란 무엇일까? ‘공화’라는 말 자체는 아주 오래전 중국 대륙에 있던 주나라의 ‘려왕’을 통해 탄생했다. 려왕이 나라를 폭압적으로 다스릴 때, 여러 제후가 반란을 일으켜 려왕 대신 나라를 다스리던 시기를 가리키면서 처음 사용됐다. 요는 ‘왕 없이 운영되는 정치’라는 것이다. 이 말은 서양의 혼합정을 뜻하는 republic의 번역어로 사용된다. 공화주의의 역사에 대해서는 ‘동양과 서양의 공화주의 역사’를 다룬 2편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1편에서는 공화주의를 이해하기 위해 공화주의의 핵심 이념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공화주의의 핵심 이념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자유, 법치 그리고 공동선이다. 이 3가지를 갖추어야 공화주의가 추구하는 건강한 정치공동체가 될 수 있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우린 왜 건강한 공동체를 원할까? 답은 간단하다. 정치공동체가 건강해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행복’하기 때문이다. 이제 3가지 이념에 대해 하나씩 살펴보자. 비-지배의 자유  아일랜드의 정치철학자 필립 페팃(Philip Noel Pettit)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공화주의 사상의 핵심으로 비지배(Non-Domination)의 자유를 주장한다. 공화주의에서 말하는 자유는 누구도 ‘주인’이나 ‘노예’가 아닌 상태다. 즉, 공화주의적 자유는 타인의 의지로부터 자유로울 때 가능하다. 어떻게 해야 서로가 서로에게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여기서 법이 등장한다. 법은 공동체 구성원간 지켜야 할 규칙이자 원칙인 동시에 서로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것을 중요시 여긴다. 법은 특정 집단이나 개인의 의지를 제한하는데, 국가의 개입이 공정하다는 전제하에 법의 제한은 구성원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한다. 공화주의의 핵심 요소인 ‘비-지배의 자유’가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법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법치  법에 의한 다스림, 법치를 계속 이야기해보자. 법치는 타인의 자의적 지배를 막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공동체의 구성원이 주인과 노예가 되는 것을 막으려면, 법이 공평하게 적용돼야 한다. 단순히 법이 존재하는 것을 넘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돈과 권력으로 법을 유리한 대로 이용하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겉으로 보기에 민주국일지언정 ‘공화’국으로 보기엔 어려울 듯하다. 앞서 말한, 비-지배의 자유는 ‘타인의 자의적 의지’로부터의 자유를 말한다. 말이 어렵다. 쉽게 생각해보자. 어떤 노예와 그 주인이 있다. 주인이 노예를 예뻐해 자그마치 10년 간의 특별 휴가를 허락했다. 노예는 자유로운가 아닌가? 공화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노예는 여전히 예속(남의 지배나 지휘 아래 매임) 상태다. 노예가 간섭 없이 편하게 지내더라도 결국 노예는 주인의 말 한마디에 마음과 행동이 제약된다. 하지만 법은 다르다. 판사가 죄인에게 형량을 선고하는 것은 지배가 아니다. 판사는 범죄자를 지배할 수 없다. 그저 법의 집행자일 뿐이다. 법치에 기반한 비-지배 자유가 이루어진 것이다. 공동선(common good)  마지막 세 번째는 공동선과 시민의 덕성(civic virtue)이다. 앞서 비지배의 자유와 법치를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경험적으로 현실과 이상은 많이 다르다는 걸 잘 안다. 법치만으론 완벽하지 않다는 걸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공동선이 요구된다. 공화주의의 법은 공동선을 향해야 한다. 공동선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법이 특정 계층, 특정 집단처럼 사익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추구할 때’, 그것이 바로 공동선이다. 공동선이 무엇인지 잘 그려지지 않을 수 있다. 사실 당연한 결과다. 공동선은 어떠 어떠하다며 정의돼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동선은 우리 사회의 여러 계층, 분야, 집단이 함께 논의하고 의견을 조율해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시민의 덕성이 중요하다. 시민의 덕성 없이는 공동선을 달성할 수 없다. 시민의 덕성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겠다는 마음가짐과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정치공동체 구성원의 시민적 덕성은 공동체 전체에게 이로운 방향을 먼저 생각한다. 그리하여 특정 개인이나 집단만의 사익을 밀어내고, 사회를 좀 먹는 부패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시민의 덕성이 없어지면 어떻게 되냐고? 한순간도 마음 편히 지낼 수 없는 무제한의 공포 상태, 즉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시대가 열린다. 나오며  공화주의가 유일한 정답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민중(people)을 대변해야 하기 때문에 소수를 억압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공화주의가 오용되어 과도하게 집단을 우선하게 될 경우, 개인의 자유가 침해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구더기가 무서워 장을 못 담그는 상황이 생겨서는 안 된다. 2023년은 검찰 독재라고 불릴 만큼 민주주의가 편의에 따라 오용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공동선을 논의하며 공화주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시기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대안을 배달해드립니다 - 창작그룹 '성찰과성장' 글 작성 및 편집 : 김설, 박배민, 신동주성찰과성장.com